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06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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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가는 것은 힘들어 보입니다. 정령의 힘만으로 끌어가기엔 기구의 중량이 과한 편이라.”
“그래. 이 정도면 많이 왔지 뭐. 고생했다 이드라실.”
교수는 슬며시 느껴지는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기구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였다.
결국, 그날 이후 다나는 대화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난 뒤라 혹시 병원에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났는데, 다행히 다나를 보고 온 홀리가 별일 없다고 말해준 덕에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언제든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 상대의 연락이 갑자기 끊겼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지도 못하는 무력한 기분. 이게 다나가 느꼈던 그 기분이겠지.
나도 모르게 느슨해졌던 마음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나가자. 이곳 3월드의 모든 사람들도 구하고, 그것으로 내 목숨도 구하는 거다. 나가서 다나한테 옷이라도 좀 사주고, 걱정할 필요 전혀 없다는 걸 보여주자.
그런 생각들이 사막으로 향하는 일행의 여정에 박차를 가했다.
폭풍의 언덕에서 아스트라드 일행과 헤어진 뒤. 블루라인의 능선을 넘으며 서서히 가라앉던 기구는 이드라실의 바람 정령 지원과 운 좋게 불어닥친 좋은 바람 덕분에 원래 떨어져야 할 곳보다 한참 더 멀리 날아와 착륙하는 중이었다.
“이드라실. 그런데 정말 고향에 들렀다 오지 않아도 괜찮은 것 맞아? 제국에 그렇게 큰 사건이 있었으니 대모님이 걱정하실 만도 한데.”
“당신은 아침에 본 사람을 점심이 되어 그리워합니까.”
“응?”
“고작 몇 달. 바스러진 삶이 기억이 되는 인간에게는 제법 그리움이 쌓일 시간이나, 엘프의 삶은 더디고, 가늘게 마모됩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가 카네란을 떠난 아침에 물을 준 분재의 순서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마모되지 않았으니, 그리움도 쌓이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음…. 본인이 괜찮다면야 뭐. 슬슬 내릴 테니까 가서 오트만이랑 노툼 좀 깨워 놔. 조금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
“네.”
타닥-
이드라실이 기구 한 켠의 생활 공간에 두 사람을 깨우러 가는 사이, 교수는 굵은 밧줄을 내리고 어슴푸레한 새벽빛 사이로 발아래 펼쳐진 땅을 유심히 살폈다.
다행히, 민가나 도로를 피해 착륙할 곳은 많았다.
“초봄이라 다행이군.”
지금 그들이 도착한 곳은 황금의 곡창지대로 유명한 나라, 텔드랏이었으니까.
쿠웅.
꽈아악, 드드드드득!
기구에서 뛰어내린 교수가 기구와 연결된 밧줄을 붙잡고, 여력에 끌려가는 그의 두 발이 아직 서벅서벅한 차가운 밭에 긴 고랑 두 개를 만드는 사이.
졸음에 취해있던 경비병의 황급한 경종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평화로운 텔드랏의 도시, 칼라샨의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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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에 감사하오, 영주.”
“하하하하! 감사라니요, 귀하신 분에게 응당 맞는 대접을 하는 게 귀족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막 겨울을 지낸 터라 텔드랏의 풍요를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 이건 애피타이저이니 간단하게 입맛만 돋우는 정도로-”
“충분하오. 전쟁을 수행 중인 나라치고는 음식이 과하게 남는 듯한데. 로 하람께서는 사치를 멀리하라고 가르치시니.”
“그, 그렇지요! 아, 안 그래도 상을 과하게 차린 터라 남은 것들은 거리의 잡것들….. 아, 아니! 백성들과 나눌 생각이었습니다!”
호로록-
교수는 그의 앞에서 쩔쩔매는 영주를 보며 근엄한 척,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찰팍-
[오트만, 여기 와인 진짜 괜찮은데요.] [으음. 확실히. 정중하다 느껴질 만큼 절제된 맛이로군.] [쓰읍. 몇 병 얻어가고 싶은데. 성질 좀 긁어보려고 검소한 척해놔서 당장은 어렵고… 가기 전에 집사한테 슬쩍 말해야겠다.] [고기 맛있다. 제국에서 도와준 조상님한테 공양해야 하니 흰 암소 한 마리만 더 달라고 해라.] [그래, 그래. 다 달라고 하자. 이드라실 너는 밥상 앞에서 뭘 그렇게 적고 있냐?] [인간의 악하지 않은 양면성에 대한 기록입니다.]물론, 속내는 고작 애피타이저라 폄하된 기가 막힌 생선찜과 포도주에 감탄하며 사막에서 쓸 물건을 마구 강탈할 생각뿐이었지만.
로드릭이 블루라인을 기준으로 동쪽, 그중에서도 북부의 넓은 영토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가늘게 뻗어 나오는 형태라면, 도시국가 연합은 위가 넓은 삼각형과 같은 로드릭의 우상단 근처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 아래로 텔드랏이 대륙 동부의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로드릭이 북부의 동토와 마주하고 있다면 텔트랏은 동부 사막지대와 맞닿아 있다는 뜻.
기구에서 착륙해 순순히 이곳 칼라샨의 경비대에게 체포된 교수 일행은 당당하게 성자의 이름을 밝히고, 그 이름이 텔드랏에서 얼마나 잘 먹히는지 살살 간을 보는 중이었다.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춘궁기를 준비하며 밀 한 톨을 쪼개 먹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 기름진 음식이 쉬이 넘어가지 않는구려.”
“그, 성자님. 이 도시의 재무를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한 말씀 드리자면 작년 칼라샨의 작황이 그리 나쁘지 않아 그리 배를 곯지는….”
따악-!
“어허, 재무관! 감히 성자님의 말씀에 이견을 표하다니! 신앙심이 부족한 게 아닌가! 안 그래도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베풀 생각이었습니다!”
얼씨구.
“흐음. 참된 신자로군. 아, 배불리 먹어 행복해할 사람들을 생각하니 로 하람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지는데.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조금 기다렸다가 따로 내 방에서 기도를-”
“사, 상을 치워라! 성자님의 기도라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자리에서 하시면 됩니다! 성자님의 기도라면 성에 축복이 내려앉는 것과 다름없지요!”
이야아.
“….다섯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소만. 정말 괜찮겠소. 응접실을 한사람이 그리 오래 쓰면 남작의 업무가-”
“괜찮습니다! 괜찮고 말고요! 여봐라! 당장 상을 치우고 경전과 제기를, 아니! 근처 광명 교단에서 성자님의 기도를 도울 사제들을 불러라!”
이것 봐라?
다소 무리한 것을 넘어 무례에 가까운 부탁에도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다는 듯 뭐든 해주려 하는 칼라샨의 남작. 교수는 순식간에 응접실에서 기도실로 바뀌어가는 주변을 보며 웃음을 참기 위해 애썼다.
[이건 뭘 말해도 다 해줄 것 같은데요? 또 뭐 시켜볼까…. ‘성의껏’ 기부금 좀 내라고 할까? 텔드랏 영주는 돈도 많다던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반응입니다. 칼라샨의 영주는 제국 접경지인 만큼 용기의 교단 신자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영지 내에도 용기 교단의 신전만 있을 뿐 광명의 신전은 보이지 않았는데.] [당연하지. 설마 여기 남작님이 신앙심이 넘쳐서 날 이렇게 대우해주실까.]제 기쁨이라는 양 연신 박수를 치는 사이에도 요리조리 굴려대는 저 눈알만 봐도 알지.
저 인간, 내가 성자라서 이렇게 대우해주는 게 아니다.
정확히는 ‘최근 루실라 아에드란 영애랑 얽히더니, 그 집 딸내미를 제국의 황후로 만들어버린 성자’ 라서 이렇게 살랑거리는 거지.
루실라가 가문에서 도망쳐 나올 때만 해도, ‘그냥 상제가 좀 있는 아에드란 가문 딸. 어디 가문의 후처로 정략결혼 예정’ 정도가 그녀에 대한 평가의 전부였다.
그런데 걔가 집을 나가더니 성자님 일행에 합류를 하네? 얼마 안 가서 안 팔리는 영애들의 마지막 도박, [텔드랏의 구혼자] 라는 소문이 돌아서 ‘아이고, 아에드란의 황금 상단도 가세가 기울었구나!’ 하고 비웃었는데 진짜 전설적인 인물이 되더니 제국 황후 자리를 콱! 움켜쥔 것이다.
기도할 자리를 만들어준다며 밖으로 나간 남작과 재무관이 ‘엠페리스 메이커’가 어쩌고, 자기 세 딸 중 누가 객관적으로 가장 괜찮은 것 같냐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흐음. 과년한 딸 셋을 가진 부유한 귀족과, 사교계에서 평가가 박하던 아가씨를 몇 달 만에 황후로 만든 성자님이라. 내가 남작의 입장이었어도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날 만하군.
이게 단순 소문이나 한번 얻어걸려라, 하는 정도였으면 한 영지의 영주라는 사람이 저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오진 않았겠지만, 냉철한 귀족 생리로 봐도 내가 가진 위치가 꽤나 괜찮단 말이지. 구혼자 이야기를 제쳐두고서라도, 황제의 즉위식을 증명한 사람이니까.
대대로 황제랑 친할 예정인 사람 -> 대대로 제국 귀족이 잘 보여야 할 사람 -> 제국 귀족 대부분과 연결 고리를 가진 사람.
내가 적당히 소개해주기만 해도 일반적으로 사교계에서 만날 수 있는 귀족보다 월등히 가치 있는 상대가 매칭된다는 말이다. 가뜩이나 이곳은 블루라인 접경지나 마찬가지니까 제국 쪽 혼사에 더더욱 관심이 있을 것이고.
그러니, 내가 이렇게까지 일부러 까탈스럽게 군다 한들. 입안의 혀처럼 싹싹 맞춰주는 것이겠지.
테스트 결과. 성자 교수님은 텔드랏의 딸자식 있는 귀족 영지에서 무적이고, 신이다.
[보급 걱정은 없겠구먼.] [여차하면 광명 교단에서 지원받으려고 했지만, 광명도 지금 전선에 돈을 물처럼 쏟아붓고 있으니까. 가을걷이 끝나고, 겨울 넘기면서 팔 거 다 팔아서 알이 꽉 찬 귀족만큼의 지원은 어려웠을 겁니다. 잘 왔죠, 뭐.]어느새 남작가 사람들이 전부 나가고 일행만 남은 응접실에서, 교수는 그들이 순식간에 차려놓고 간 제단 위의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생각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긁어갈 수 있는 건 죄다 긁어갈 생각입니다.] [으음. 얼마 전부터 묘하게 의지를 불태우는 느낌이 있네만….] [열심히 해야죠.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타아악!
성수 그릇 자리에 준비된 물그릇을 깔끔하게 비워버린 교수는 의지에 불타는 눈으로 칼라샨 영지를 돌아보았다.
남작이 말한 것처럼, 전체를 충분히 즐기기 위해 애피타이저는 적당히 즐길 생각이었다.
저, 너머. 이곳보다 몇 곱절은 풍부한 곡창지대를 가진 영지.
사막지대로 가는 길을 좀 돌아가게 되겠지만, 교수는 텔드랏에 온 김에 아에드란 영지에 들렀다 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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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런! 아에드란 영지로 가실 생각이셨다니!”
“….그렇소. 군량 보급 문제로 협조라도 좀 받을까 하여.”
“흐으으으음…. 군량이라. 교단 차원에서 중요한 일을 맡으신 것 같은데, 이것 참 곤란해지셨군요.”
“무슨 문제라도.”
조금 억지를 부리면 이곳 칼라샨 영지의 창고를 거덜 낼 수도 있었지만, 성자가 지나간 영지마다 영주들이 길바닥에 나앉았다는 소문이 돌면 아에드란 가문에서 경계할 수도 있으니 적당-히 빨아먹는 선에서 멈추고, 대가 없이 털어먹은 게 미안해서 차 한잔하자는 영주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영주의 세 딸과 함께하는 자리가 됐고. 적당히 물 흐르듯 흘려보내고 맞장구치며 넘겨버릴 생각이었는데 행선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문제라…. 있지요. 아에드란이라면 꽤나 불가사의한 문제가 있습니다.”
“불가사의?”
“예. 근 몇 달 사이, 아에드란 가문의 가세가 제법 기울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지요. 가세가 기울었다 한들 황금 가문의 명성이 있으니 성자님 개인 업무를 위한 지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저 너른 전선의 보급을 담당할 정도의 여력은…. 으으음. 광명을 대리하시는 귀한 분께서 괜히 헛걸음 하시는 게 아닐지….”
파삭!
“어머, 찻잔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란 말인가.
아에드란이. 현금 자산만 따지면 텔드랏 왕실보다 더 부유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아에드란이, 3대째 가주가 돈으로 헤츨링도 살 수 있다는 헛소리를 했다가 드래곤한테 잡혀갔는데, 깔끔하게 살만 발라 먹은 드래곤이 유골을 돌려주며 ‘거짓말로 보기 애매하여 가문은 그대로 두겠다.’라고 말한 황금 가문 아에드란이 뭐, 망해? 가세가 기울어어?!
조만간 아에드란 가문에 쳐들어가 루실라 중매 서준 대가를 받아낼 단꿈에 젖어있던 교수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세상에, 이를 어째! 성자님, 어디 다치신 곳은-”
“괘, 괜찮소 영애. 찻잔이 좀…. 무르구려. 그나저나, 남작이 말한 그 소문은 조금 믿기 힘들 것 같소만. 혹시 남작께서 질투심 섞인 작은 소문에 귀를 기울이신 것은 아닐지…. 근래 아에드란 가문의 여식이 제국의 국모가 되었으니 시샘하는 이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소?”
“저도 처음 들었을 때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사교계 싸구려 가십거리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에드란 가문에서 가문의 이름으로 자금을 좀 융통받을 수 있겠냐는 편지가 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믿을 수 없어서 알아보니, 그 유명한 황금 상단도 삼분지 일에 가깝게 정리해 좋은 말과 마차가 대량으로 시중에 풀렸다는 게 아닙니까?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텔드랏의 말값이 뚝 떨어질 정도였다지-”
까드득!
“테, 테이블이!”
“어, 음…. 테이블도 조금 무른 것 같구려. 너무 놀라는 바람에 그만.”
하인들이 부산스럽게 깨진 찻잔을 치우고 남작의 세 딸이 차를 따르는 사이, 이번에는 교수가 가볍게 손을 올려둔 대리석 테이블이 교수의 손가락 모양으로 깎여나갔다.
다른 것은 다 그렇다 쳐도, 상단을 정리했다면 빼도 박도 못할 사실이다.
드래곤도 인정한 알부자 가문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텔드랏의 모든 영지에 드워프제 성벽을 새로 지어줘도 돈이 마르지 않는다는 돈귀신 가문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지?
‘이전 플레이 중 골드 가이저 상단이 쫄딱 망한 경우가 있었나?’
[네 기억에는 없는데.]‘그럼 내 월드에 와서 뭔가 건드리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는 거네?’
[그렇지.]‘뭐지? 딱히 아에드란과 관련된 것은 루실라 밖에 없는데. 혹시 루실라가 황후가 되어서 시스템이 밸런스 맞춘다고? 그렇게 작위적으로 돌아가는 게임이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에드란 가문과 내가 얽힌 일도 없고, 그쪽에 영향을 미칠 일도 없었다.
아에드란이 망했다. 상단은 팔아먹고 신용 대출도 하는 상황. 그 산더미 같은 금은 다 어디로 갔나. 부자. 말도 안 되는 부자가 망하는 경우. 그 많은 돈이 한순간에 허깨비처럼….
“아.”
순간,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과거의 기억과.
———
골드만SUCKS : 흐허허허허허
———
한참 대화방에서 아무 말도 없더니,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좋다고 웃어 재끼는 저 아저씨.
“설마….?”
———
– 골드만SUCKS : 흐허허허허. 그놈이지. 재화는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아. 무언가 구매했다면 그 물건으로 가치가 이전되었을 뿐, 대가문이 빚쟁이로 전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지. 이렇게, 경제논리를 벗어날 정도로 돈을 날려먹을 수 있는 놈은 그놈 하나뿐이야…. 그놈, 그 개자식! 뼈를 갈아 탄소 다이아몬드를 만들어서 팔아먹어도 시원찮을 그 거지 발싸개 같은 그놈!
———
“로만…. 로만 가치아 맨슨?”
“아. 성자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최근 아에드란의 가주가 뭔가에 홀린 듯 사교계에 엄청난 투자에 대해서 역설하더니, 반응이 시원치 않자 자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어찌나 비밀스러운지 영주성을 걸어 닫고 외부인을 들이지 않으며, 영지에 출입하는 사람도 철저하게 검문 중이라고 하더군요. 쯧쯧쯧.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하던데, 어찌 황금의 아에드란이 이다지도 쉽게 몰락하다니….”
그 뒤로 영주가 군상(軍商)이 어쩌고, 자기네 칼라샨 영지도 지난 가을에 대 풍년이었으니 교단과 보급 거래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 소리를 마구 떠들어댔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 골드만SUCKS : 결국, 그 대단한 아에드란의 가주도 그놈의 마수에 걸려든 것이다! 꼴 좋다! 칼슈테드 아에드란! 내 비록 상인으로서 네놈을 뛰어넘지 못했으나! 네놈도 그 망할놈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으하하하! 내 살아 생전에 아에드란이 상단을 정리하고 돈을 빌리러 다니는 꼴을 보게 될 줄이야! 으하하하하하하하!
– takealook : 역시 3월드의 자폭버튼이야. 상대가 누구든 가차없지!
– 노루Drug해요 : 마! 정통 가챠는 원래 천장 같은 상냥한 시스템이 없다! 안되는 놈은 평생을 해도 안된다, 이말이야!
– 골드만SUCKS : 후흐흐흐…. 그놈은 보통 악마같은 자식이 아니지. 장사하는 눈이 있을수록 놈의 비전이 선명하게 눈에 보여서 그만 홀려버리고, 돈을 쏟아붓게 되지! 그리고, 망한다! 처절하게! 그놈과 플레이어 말고는 가치를 알아볼 수 없는 실패작과, 온갖 새로운 방식의 마력이 파고들어 원가도 챙길 수 없게 된 희귀금속, 마력을 다 털어낸 마정석더미 사이에서!
– 골드만SUCKS : 자아아, 박교수! 어서 아에드란 영지로 가거라! 가서, 한 개 수천만 실링을 호가하는 최고급 대형 마석의 빈 껍데기가 산처럼 쌓여있고! 운석이니 지저의 심장이니 하는 보석에 가까운 광물을 트럭을 때려부어서 만든 장난감을 허망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아에드란의 가주를 내 눈앞에 대령하란 말이다! 당장! 으하하하하하!!!!!
———
로만 가치아 맨슨. 일명, 로망가챠맨.
한 시대의 기술 특이점을 가져오는 발명가 클래스이며, 수많은 영지 플레이어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낸 악명높은 NPC로 유명한 히어로 유닛.
‘핫핫핫! 핫핫핫핫핫핫! 성공이야! 결국, 성공하고야 말았어!’
고장 난 사람처럼 웃어대며 [프로토타입 비공정 1호]를 들어 올리던 그를 떠올린 교수는, 진심으로 아에드란 영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실패와 성공 사이에서 반신반의하며 개발할 때도 골드만 영감급 대형 영지를 말아먹은 놈인데. 필생의 역작을 만들기 위해, 성공을 확신하며 달려든 녀석은 도대체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렸을까?’
가문에서 쫓겨나 도박장을 전전할 때도 공마석 같은 비싼 마법 금속을 포기하지 못해 도둑질에까지 손을 댔던 녀석이다. 놈은, 그 분야에 대해서는 브레이크 같은 게 없다.
교수는 실시간으로 무너져가는 아에드란 영지와 그걸 지켜보는 아에드란 가의 가주를 떠올리며, 걱정과 기대가 가득한 얼굴의 남작에게 말했다.
“아에드란 영지에 가는 것은…. 다음을 기약해야겠군.”
“잘 생각하셨습니다. 자칫 궁지에 몰린 아에드란 백작이 교단의 지원을 빌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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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만SUCKS : 안돼! 아에드란가에 가지 않겠다니! 나는 그놈이 망하는 꼴을 꼭 내 눈으로 봐야겠어! 어, 얼마면 되겠나. 얼마나 주면 그놈의 면전에 은화를 던져주며 비웃어 줄 수 있겠나!
– professor : 얼마를 줘도 거긴 안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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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아에드란 영주성에 도착했을 때, 전에 그랬던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친구!’를 연발할 맨슨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피폐해진 얼굴로 원수의 ‘친구’를 죽일 듯 노려보는 아에드란의 가주도.
‘난 몰라. 루실라가 어떻게든 하겠지 뭐. 그 황금 상단인데. 신 제국의 황후님인데. 어련히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아마? 도?’
교수는 제 손으로 낳은 재앙을 외면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을 선택했다.
루실라와 아에드란 가문에겐 미안하지만, 그는 하루라도 빨리 클리어하고 현실로 나가기 위해, 길을 서둘러야 하는 사람이라.
근처에만 가도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을 맨슨을 생각하니 그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에드란이 그렇다면. 사막으로 가는 길을 알고 싶소만.”
“사막이라. 열사의 태양과 신비가 흐르는 곳이지요. 성자님께서 저를 조금만 도와주시면, 저도 성자님의 행보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음. 남작은 참 말이 잘 통하는 위인이시오. 으으음….라투라. 이것도 광명의 인도가 분명하니.”
“하하하하. 라투라. 지당하신 말씀이지요! 이럴 게 아니라,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얘기하실까요?”
“그거 반가운 소리로군. 그러고 보니 제국 수도의 변고와 함께 가주 자리가 비면서, 후계자의 성혼을 서두르는 가문을 몇 알고 있는데….”
“오오오!”
마치 더러운 것에서 고개를 돌리듯, ‘아에드란 가문’이라는 주제에서 눈을 돌린 성자와 남작 사이에 더없이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루실라가 제국에 남아 일행에 없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실라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영락없이 끌려가서 휘말렸을 테니까.
맨슨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훌륭한 친구이며, 능력 있는 사람이지만….
그런 방면에서 신용하기엔 기록된 전과가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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