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07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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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돈 잡아먹는 괴물이 된 친구는 머리 한 켠에 쑤셔 박아 외면하고, 칼라샨의 영주와 그 딸들과 화기애애한 티 타임을 보낸 다음 날.
“….남작.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우리가 지금 대사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맞소?”
“하하하하. 사막을 경험해보지 못한 분이시군요. 예, 맞습니다, 성자님. 동부 대사막은 배를 타고 건너갑니다.”
지난밤 티 타임에서 주고받은 대화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아침 식사에 초대한 남작은 돼지고기가 식기도 전에 내가 부탁했던 것을 입에 담았다.
“대사막의 모래는 비단처럼 부드럽고 용암처럼 뜨겁지요. 말과 마차를 끌고 갔다간 달궈진 편자가 말발굽에 지글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보통 10명 이하의 소규모 상행의 경우 사막 딱정벌레라는 특이한 생물을 길들여 이동하고, 그 이상이면 모래 배를 타고 모래 위를 미끄러져 이동하지요.”
“사막 딱정벌레에 모래 배라….”
막연히 사막 하면 낙타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내게 있어 남작이 설명한 이동 수단은 꽤 색다르게 다가왔다.
사정을 들어보니 여기 사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주 극악할 정도로 뜨거운 동네라 살과 피부로 이루어진 생물이 밟고 다닐 만한 동네가 아니라고 한다. 특히나 사막의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모래가 내뿜는 복사열은 바닥을 내려다보는 사람의 안구를 익혀버릴 정도라고 하니.
이것을 막기 위해 몸 안에 여러 겹의 공기층을 쌓아두고, 걸어 다닐 때도 커다란 날개를 펴 그늘로 몸을 식히는 사막 딱정벌레를 길들여 타고 다니거나. 아니면 아예 바람을 타고 모래 위를 흐르듯 항해하는 배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성자님의 위신도 위신이지만, 사막 딱정벌레는 특수한 훈련 외에도 마법적인 조치도 취해져 있어 마법과 상극인 성직자분이 타실 게 못 됩니다. 또 대사막에는 위험한 생물도 많으니 배를 타고 건너는 쪽이 쾌적함, 이동속도, 안전 세 가지 면에서 모두 월등하지요. 배와 선원은 모두 저희 가문에서 구해 드릴 테니, 성자님 일행은 그저 편안히 앉아서 다녀오시면 될 겁니다.”
“흐으음. 내 첫인상에 남작을 속물적인 사람이라 오해했는데, 지금이라도 사과해야겠군. 대단히 친절하고 감사한 호의요.”
“하하하하!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셀마이어 가문의 다플린 경이라면 텔드랏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훌륭한 기사가 아닙니까? 좋은 가문의 헌앙한 영식을 소개해주셨는데, 대접이 박해서야 칼라샨의 이름이 아깝지요.”
“하하하. 제국에서 작은 인연이 이렇게 텔드랏까지 이어질 줄은 나도 몰랐소. 부디, 오늘의 인연이 또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웃음으로 이어졌으면 좋겠구려.”
아무래도 티 타임에서 알콜 타임으로 넘어가는 사이 남작 앞에서 써준 편지가 대단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폭풍의 언덕에서 만난 기사들 정도면 나름 이름있는 기사단의 젊은 기사고. 이번에 ‘자비의 성녀 수호단’으로 성녀의 영혼을 옮기며 그 맨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들이기도 하고. 심지어 수도의 변고로 기사단 여럿이 갈려 나갔으니 변방의 기사단이 중앙에 진출할 기회도 충분히 늘었다. 나도 나름대로 비전 있는 친구들을 소개해줬단 말이지.
우리는 사막을 건널 이동 수단과 보급, 선원 20여 명을.
남작은 소문의 엠페리스 메이커이자 제국의 개국공신에 가까운 지위를 가진, 광명 성자님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소개 편지를.
‘이 정도면 썩 괜찮은 거래지. 남작이나 그의 세 딸이 얼간이였으면 내 쪽에 들이댔을 수도 있는데, 그런 선도 넘지 않고. 눈치도 빠르고 상황파악도 잘하는 귀족이군. 소개하는 나로서도 상대에게 미안하지 않겠어.’
건배를 외치는 남작과, 마주 잔을 들어 올리는 교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째앵-!
사막에서의 항해라. 솔직히, 기대가 되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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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라. 남작의 앞날에 광명이 있기를.”
“하하하하. 성자님도 하시는 일 모두 잘되길 빌겠습니다! 라투라!”
남작에게 감사의 인사를 마친 뒤, 교수는 일행과 함께 집사를 따라 배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남작의 마차를 타고 드넓은 칼라샨 영지를 지나며, 로드릭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풍광이 점차 모래 냄새 섞인 뜨거운 바람으로 변해갈 무렵.
화아악!
영지의 끝자락, 성벽치고는 얇고 높은 성벽의 문을 지나는 순간, 교수는 갑자기 밝아진 시야에 눈을 가늘게 떠야 했다.
성벽의 그늘을 벗어나자마자 내리쬐는 태양과 이글거리는 사막의 열기. 그리고, 살아 움직이듯 구불거리며 끝없이 뻗어 나가는 붉은 모래의 향연.
“대사막이라는 이름이 그냥 붙은 건 아니었군….”
“이토록 말라붙은 땅이라니. 뭔가, 뭔가 기분이 묘하구만….”
“우우우. 덥다.”
사각사각-
교수와 오트만, 노툼이 그 열기와 광활함에 압도당하고, 이드라실이 수첩을 들어 사막과 마주한 일행을 스케치하는 사이. 우리가 감탄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집사가 흰 로브 같은 것을 일행의 숫자에 맞게 꺼내 들었다.
“잠시. 맨눈으로 오래 보시면 눈이 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일반 여행자들의 로브보다 사막에서 유용한 것이니 이것으로 갈아입으시지요.”
“으음. 고맙구려.”
교수는 미리 입고 온 여행복에서 집사가 건네준 옷으로 갈아입으며 일렁이는 사막을 눈에 담았다.
기이한 일이다. 칼라샨 영지는 밀 농사가 풍년일 정도로 선선한 곡창지대인데, 그 맞은편으로 넘어오면 이런 열사의 사막이 시작된다니. 높은 성벽으로 그늘을 만들었다 해도 자연스러운 환경은 아니다.
“혹시 저 성벽에 대단한 마법이라도 깃든 것이오? 아니면 영지 전체에 풍요의 축복이 내려 있다거나….”
“둘 다입니다. 성벽은 서풍의 가호를 받고 있고, 풍요의 사제들에게 축성을 받은 땅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를 포함해, 대다수의 주민들은 칼라샨이 오래된 신의 분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 여기고 있지요.”
“신의…. 분노?”
‘이거, 꽤나 중요한 정보 같지?’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교수는 흘리듯 지나가는 집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아쉽게도, 집사도 그리 많이 아는 것은 없는 듯했다.
“그리 대단한 얘기는 아닙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작은 이야기일 뿐이지요. 대사막은 아주 오래전, 역사에 기록조차 남지 않은 과거에 이미 사라진 신의 분노로 말라붙은 땅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바로 이 칼라샨 바로 앞까지가 그 분노를 감당해야 했던 이들의 영역이라는 게,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지요.”
“신의 분노라….”
기억해두자. 그러고 보니 대사막 원주민을 고대 인간이니, 하는 것으로 불렀던 것 같은데. 뭔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 성자님께서 보고 계신 것은 대사막이 아니라, 사막에서 날려온 모래가 두텁게 깔린 땅일 뿐입니다. 사막은 이렇게 평평하지도, 덥구나 하고 넘길 정도로 시원하지도 않습니다. 아마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사구를 넘어가면, 그땐 성자님도 대사막의 진정한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것 참. 여러모로 기대가 되는군.”
“사막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즐길 기회를 쉬이 주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해두시길. 얘기를 나누는 사이 도착했군요. 여기서부터는 마차가 갈 수 없어 잠시 걸으셔야 합니다. 자, 이쪽으로.”
집사는 사막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게 익숙한지 얼이 빠진 오트만과 이드라실의 머리 위에 터번과 망토를 합쳐놓은 듯한 옷을 씌워주고, 언제 준비했는지 거의 천막 사이즈에 가까운 노툼을 위한 망토도 제법 능숙하게 씌워주었다.
푹.
“어이쿠.”
“갈아 신을 신발은 배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모래 위를 걸어야 할 일이 생기신다면, 걷는 게 아니라 미끄러지듯, 얕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서 움직인다 생각하시며 걷는 게 좋습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두 다리에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과 신발을 파고드는 뜨거운 모래.
사막이라길래 현실의 황무지와 비슷하겠거니 했는데, 전혀 달랐다.
‘모래가 좀 가볍고 미끄러운 느낌이군.’
입자에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하나, 모래가 좀 성기게 쌓여있다고 해야 하나.
황무지의 모래는 밟으면 조금 빠져들다가 저들끼리 뭉쳐 발을 떠받치는 단단함 같은 게 느껴지는데, 여기 모래는 그런 감각이 훨씬 덜했다.
그나마 연약한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다니는 데 익숙한 이드라실만이 모래 위를 걸어 다니고 나머지 셋은 뒤뚱거리며 부드러운 모래에 적응하는 사이.
반쯤 모래에 파묻힌 길을 따라가자, 마찬가지로 반쯤 모래에 파묻힌 작업장 같은 것을 만날 수 있었다.
“둘- 셋! 당겨!”
“당겨어어어어!!!!”
꽈악! 지이이익!
“그늘받이 조여놓은 놈 누구야! 어떤 모지리가 배 넘기려고 작정했어!”
뚱땅 뚱땅!
빠아악!
나무망치가 목재를 두드리는 소리. 타르 칠한 굵은 밧줄에 사내 여럿이 매달려 악을 쓰며 잡아당기는 소리와 거침없이 날아드는 폭력의 소리.
배라고 해도 윈드 서핑 정도를 상상했는데, 이건…. 정말 예상 밖이다.
“영주에게…. 내가 정말로 고마워했다고 전달해줬으면 좋겠군.”
집사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배다. 진짜 커다란 목조 함선.
먼저 도착한 이드라실이 사암 언덕 위에 세워진 작업장을 살펴보는 사이, 천천히 올라온 오트만과 노툼의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
“배….로군.”
“그러게요. 우리가 아는 그 배.”
“물 한 방울 없는 곳에서 배라길래, 나는 뭔가 같은 발음의 다른 단어인가 했지…. 정말 그냥 배로군.”
“평범한 배랑 여기저기 좀 다른 것 같지만, 예. 진짜 배 타고 가는 것 같습니다.”
오트만은 갑자기 생긴 그늘과 그 그늘의 원인이 되는 큼지막한 목재 건조물을 올려다보았다.
높다란 사암 언덕과, 그 아래로 스키 슬로프처럼 이어진 모래언덕. 그리고, 그 언덕 위에서 광명 교단의 깃발을 펄럭이며 거친 사내들이 악을 쓰고 있는 배.
큼지막한 돛이 세 개나 달린, 꽤 크고 넓적한 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칼라샨 영지의 자랑이자, 바람을 안고 사막을 항사(航砂: 모래 위로 배를 몰다)하는 위대한 배. 드라이 오아시스호입니다.”
정말 놀랍게도, 남작이 우리 일행에게 사막을 건너갈 운송수단으로 내어준 것은 대항해시대에나 볼법한 진짜 범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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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 그래서, 그쪽이 우리 배를 타겠다는 광명의 성자요?”
집사가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떠난 뒤, 집사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조금 전까지 배 위에서 악을 쓰던 사내가 내려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거, 일단 반가운 척은 해드리지. 갑판장 갤라드요.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선장이랍시고 뱃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까 봐 내 미리 몇 마디 해드리지.”
“아니….”
“대사막은 당신네가 걸어 다니던 단단한 땅과도, 진짜 바다와도 전혀 다른 곳이오. 물에 빠지면 헤엄쳐 나올 수 있지만 사막의 모래에 빠지면 살짝 데친 도마뱀처럼 가죽이 홀랑 벗겨지는 게 이곳이오. 우린 마을과 마을 사이를 항사(航砂)하고, 그동안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것은 바다와 같소.”
“자, 잠깐. 이보게….”
“또한, 대사막에서 몬스터라 불리는 놈들은 죄다 몸집이 집채만 하기 때문에 배 위에서 수시로 전투가 벌어지지. 무슨 말인 줄 아시오? 좁은 공간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수시로 전투를 벌이며 불타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게 바로 사막 배를 타는 이들의 생활이란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사막의 배는 바다 놈들보다 더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지. 괜히 아무것도 모르면서 돈을 줬으니 우리 말을 들어라, 높으신 분이 어쩌고 귀족이 어쩌고 하면서 우릴 가르치려 든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막의 모래알로 생을 마감하는 수가….”
“그러니까! 성자는 이 늙은이가 아니라 저기 있는 저 덩치란 말일세!”
“….뭐요?”
오트만은 대뜸 그에게 다가와 으르렁거리던 선원이 지금까지 만나온 이들과 똑같은 착각을 한 것을 눈치채고, 그가 원래 향했어야 할 사람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 보였다.
꾸아아악!!
“오, 올라간다! 빅슨! 밧줄 잡아! 돛 올라간다아아!”
펄럭- 꽈아악!
“이야아! 돛을 한 번에 올렸어!”
“우하하하! 어이, 평지 사람! 당신 진지하게 배 한번 타볼 생각 없나? 머저리 30명보다 일 잘하는군!”
집사가 떠나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배에 다가가더니, 수선이 끝난 돛 하나를 혼자 들어 올려 돛대에 걸어버린 남자.
조각 같은 근육질 몸에, 거친 선원보다 더욱 거칠게 시달린 흉터를 한가득 안고 벌써부터 선원들과 모래 위에 엉켜든 남자.
“….성직자?”
끄덕끄덕.
외지 사람답지 않게 모래 섞인 바람을 가슴 깊이 들이쉬는 모습을 보며 내심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던 갑판장은, 노인의 설명을 잘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의 배와 함께 살아온 그의 40 평생에 성직자란 꺼림칙하거나,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으면서 설교를 해대는 고리타분한 이였을 뿐인데.
“거, 빨리빨리 좀 합시다! 선원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굼떠서야! 해 올라가면 더 더워지니까 그 전에 출발하자고!”
“크하하하! 이거, 천상 선원이구만!”
“물자 다 실어놨으니 가서 댁네 높으신 분이나 모셔오쇼!”
“여기서 내가 제일 높으신 분이야 임마!”
“크학학학! 이 친구, 농담도 수준급인데! 암! 배에서 일 잘하고, 술 잘 먹는 놈이 왕이지! 크하하하하!”
힘 좋고, 몸 좋고, 호탕한 성직자라니. 그냥 성직자도 아니고, 모래 위에서 배나 몰고 다니는 그들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고 성스러운 분이라니.
“선원보다 더 선원 같은 성자에, 말하는 트롤에,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까지 나온 엘프라니. 당신네 일행은…. 도대체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거요?”
“으으음…. 세상을 구하러 온 모양일세. 일단은.”
40 평생에 이런 기이한 일당을 처음 본 갤라드는, 눈앞에 저 기이한 이들의 사정을 설명해주는 이도 어딜 가나 기피 대상으로 취급받는 마법사라는 것을 떠올렸다.
마법사가 제일 정상적으로 보이는 일행이라니. 세상에.
툭툭.
“다 이해하네. 내, 그 혼란한 마음을 절대 모르지 않지.”
“그…. 마법사 양반. 내가 종교에 문외한이라서 그런데….”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아무것도 판단하려 들지 말게. 결국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또 잔뜩 몰고 올 녀석이니까. 이해하지 말고, 적응하는 걸세.”
혼란에 빠진 선원의 얼굴을 보며 지난 세월을 추억한 오트만은, 저런 것에 적응한 스스로에게 약간의 대견함을 느끼며 품에서 회갈색 물약 한 병을 꺼내 들었다.
“때가 되면 알게야, 때가 되면. 혹시 술로 부족한 순간이 오면 이걸 마시게.”
오트만은 멍하니 그가 넘겨주는 물약을 받아든 갑판장을 보며, 다 안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그를 지나쳐 배를 향했다.
“승선! 승선하라! 정오가 되기 전에 최대한 바람을 받는다!”
오늘 해가 떨어질 즈음에야 끝날 줄 알았던 출항 준비가 벌써 끝났다는 소식에 갤라드도 불안감을 삼키며 배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출항이다!”
선장의 명령과 함께 배를 묶어둔 줄이 끊어지고, 모래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 드라이 오아시스호가 경사면의 속도를 충분히 받은 순간.
주우우욱! 펄럭!
기다렸다는 듯 세 개의 돛이 펼쳐지며 사막의 바람을 받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배가 출발하고, 항로를 확인한 선장이 귀한 손님을 애타게 찾는 사이.
“그렇지! 그렇지이이이!”
“내가 뭐라 그랬나? 이 친구 힘만 좋은 게 아니라 일머리가 있다니까! 이봐 오우거! 이제 그 밧줄은 다른 녀석들한테 넘기고 잠깐 이리 내려와서 우리 좀 보지!”
“호위기사야? 성기사 같지는 않고…. 용병? 용병 같은데? 자자, 별건 아니고, 당분간 계속 얼굴 볼 사이니까 인사나 좀 해둘까 해서 불렀어! 술은 좀 하나? 이게 대사막에서만 자라는 민머리 선인장으로 담근 술인데….”
“당신 항사꾼 체질이라니까! 내가 당신 모래바람 앞에서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것 보고 바로 알았지! 폐부에 모래가 한주먹씩 들락거리는 그 감각을 즐기는 얼굴이라니! 어이, 이번 호위 임무 끝나고 할 일 없으면 우리랑 계속 배나 타자고!”
벌써 선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오우거’라는 별명까지 붙은 교수는 갑판 아래에서 선원들의 열렬한 인사와 영입 권유를 받고 있었다.
매일같이 뱃일에 시달리고, 뜨거운 태양과 수시로 찾아오는 대형 사막 몬스터에게 위협받는 항사 생활에서 교수같이 힘 좋고 듬직한 인물이 많을수록 그들의 생존 확률도 늘어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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