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09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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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욱. 푸슉! 서걱-
“유사(流沙)?”
“그렇게도 부르더군. 가장 부드러운 죽음. 뒤쫓아 가라앉히는 모래…. 금기의 집행자는 이 모래 위를 사는 그 어떠한 이도 피할 수 없는 심판자. 사막 그 자체요. 이 사막에 발을 붙인 자는 가라앉는 모래의 추적을 피할 수 없지. 이미 사막 밖에 있다면 모를까, 사막 안에서 금기를 범했다면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뿐이오. 평생을 단단한 바위 위에서 사는 것. 금기를 범하고 모래 위를 거닌다면, 어느 순간 그를 쫓아온 유사에 발목을 붙잡혀 모래 안으로 빨려들고 말지. 그래서 사막 어딘가에 금기를 범한 이들이 모여드는 큰 바위가 있다고도 들었소. 물론, 이제는 내가 그곳을 찾아가야 할 처지이지만…..”
서걱. 스아악- 터억.
“유사. 유사라…. 그게 움직일 수 있는 겁니까? 금기를 범하면, 유사가 그걸 알고 그 사람을 쫓아온다고?”
“원래 사막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곳이오. 모래알갱이 하나조차 가만히 있는 법이 없지. 사막 전체가 그리할진대 유사라고 다를까.”
“….그럼, 이 배도 지금 위험한 거 아닙니까? 스케일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심판자라고 할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이 배도 가라앉을 것 같은데?”
“당장은 괜찮소. 금기의 추적은 사막 밖에서부터 안으로 쫓아온다고 들었으니. 배를 돌리지 않은 것도 그것 때문이오. 만약, 이 항사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유사의 추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땐 내가 배에서 뛰어 내려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는 모두가 배와 함께 모래 속으로 가라앉을 테니까.”
“흠. 그렇단 말이지요….”
교수는 막 해체 중이던 모래 상어에 잠시 칼을 걸어둔 뒤 선장이 설명해준 금기의 추적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선, 말투. 직접 봤다기보단 그렇다 카더라, 정도의 불확실함이 있었다. 선장이 겪은 사건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누군가 말해준 것을 전하는 느낌.
사실 성직자 배척이라는 풍토가 되게 어색한 게, 원래 이런 말라붙은 동네에서는 성직자를 좋아하다 못해 납치, 감금하는 풍토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거든? 그런데 성직자와 얽히면 안 된다는 금기라니.
생각해봐라. 우리가 사막에 들어온 지 하루 만에 저런 집채만 한 모래 상어 두 마리와 만났다. 내가 지금 타고 있는 배, 드라이 오아시스호는 건조될 때부터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한 배이며, 선원들도 보통 숙련된 것이 아니다 보니 별 피해 없이 상황을 넘겼지만, 이런 일이 매일같이 벌어진다면. 여기 사는 사람들은 스치면 중상인 저런 몬스터들과 한두 번 조우한 게 아닐 텐데 다칠 일이 없을까? 다치면. 치료나 제대로 할 수 있나? 이 말라붙은 땅에서 약용식물이 그 많은 부상자를 다 커버할 만큼 나오냔 말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요소 때문에 곤궁한 지역일수록 만능 치료제인 성직자를 대단히 반기는 풍토를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다. 아무리 마을 어른들이 ‘외신의 종자와 얽히지 마라, 저주받는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당장 눈앞의 부모 형제가 부러진 다리가 곪아서 죽어가고, 평생 그렇게 쌓여온 무덤을 보면서 살았을 텐데. 사람은 눈앞의 현실을 살아가기 때문에 구전으로만 이어진 금기라면 세월에 따라 옅어지는 게 정상인 것이다.
하지-만.
“으음…. 좀 더 작은 칼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이~ 누구 단검 가진 사람 없습니까~”
“흐이이익! 서, 성자랑 눈이 마주쳤다!”
“겔람, 빨리 나가 이 자식아! 넌 외신의 피와 접촉했으니 어차피 금기 대상이잖아!”
“아, 아냐! 고, 고작 피 한 방울로 금기라곤….!”
빙글빙글. 주섬주섬. 카악-퉷!
….저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금기가 옅어지긴커녕 세월을 따라 아주 골수까지 파고들었다는 것이 명확했다.
일반적으로 쇠퇴해야 했을 불편한 고대의 금기. 그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강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금기가 단순히 말뿐인 금기가 아니라, 그것을 증명해 사실이라 보여줄 만한 사건이 있었다는 뜻.
즉, 선장은 아직 겪어본 적 없지만. 누군가 금기를 범하고 그를 추적하는 유사에 쫓기는 모습이 관측됐다는 뜻이겠지. 그것도, 오랜 세월 금기를 선명하게 유지할 만큼 꽤나 자주.
‘….그냥 미신은 아니라는 소리군. 움직이는 유사. 특정 대상, 금기라는 행위에 대응해 환경 단위로 반응하는 힘이라….’
….니미럴. 제국은 은근하게 불타는 느낌이라도 있었지, 사막은 초장부터 아주 대놓고 ‘여기 무지막지한 뭐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사막과 금기. 옛 신의 분노로 멸망한 고대 왕국과 고대 인간. 제법 서사가 있군그래.”
슬슬 나도 3월드 짬이 있으니, 이 정도는 예상했다. 당장 입구부터 튀어나오는 몬스터 수준부터 발만 헛디뎌도 사람을 모래 튀김으로 만드는 극한의 환경까지, 이 동네가 극후반 스펙에 맞춰진 지역이라는 것은 진작에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락샤샤의 꼬드김에 홀랑 넘어간 과거의 박교수를 탓해야지 뭐.
하지만, 여기에 뮤트가 얽혀있다. 제국에서 좀 잠잠하다 싶었던 놈들이 어디서 뭘 하나 했더니, 뜬금없이 사막에서 그 꼬리를 드러냈다라….
덜컥.
교수는 피와 지방에 뒤덮인 시미터를 뱃전에 내려놓은 뒤, 나름 괜찮게 해체된 모래 상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뮤트의 흔적이 분명한 피 냄새. 누가 전염병 같은 놈들 아니랄까 봐 어느새 대사막까지 손을 뻗친 3월드의 주적.
‘그런데 이거, 여왕이 만든 거 맞나?’
일단 뮤트의 피 냄새가 확실하긴 했는데, 향이 너무 옅었다.
처음에야 오랜만에 맡는 피냄새에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었지만, 제법 오래 굶은 것치고도 ‘어? 뮤트 냄새인데?’ 정도의 반응밖에 안 왔다는 게 좀 이상했다. 이 정도라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리.
내가 데이터 소울의 백업으로 반쯤 NPC화 되고 GG의 세계에 한층 더 가까워지며 마법이나 이런 감각에 예민해진 것을 생각하면 저 모래상어의 피에 감염인자가 정말 극미량만 포함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침 두 마리 중 먼저 잡았던 한 마리는 뮤트 냄새 없는 깔끔한 모래상어인 것을 확인하고, 도대체 이 뮤트가 한번 핥고 간 것 같은 요상한 모래상어의 정체가 뭔지 파악하기 위해, 두 마리를 모두 뱃전의 갈고리에 걸어놓고 직접 해부를 시작한 참이었다.
여왕이 만든 놈이면 다른 생물의 장점을 덕지덕지 붙였을 테니. 뭐라도 다른 점이 있겠거니 싶어서 시작한 행동이었다.
———
– Jokass : 어, 거기. 거기 그 주머니. 원래 부레 같은 게 있어야 할 자리이긴 한데…. 물주머니인가?
– professor : 그런 것 같은…. 아, 터졌다. 진짜 물이네. 50리터 정도는 되겠는데? 선원들이 좋아할 만했어. 고기도 한 점 먹어봤는데 살이 차지고 감칠맛이 있더라고.
– Jokass : 공기층이 많은 모래라곤 해도 그 사이를 저런 속도로 유영하려면 온통 근육질일 테니, 당연히 씹는 맛이 있겠지. 그러면…. 그 밑에 있는 게 간이겠군. 슬쩍 아래로 비집고 들어가서…. 그렇지. 간 한번 째보자. 생물 입장에서 뮤트 감염인자도 병균 비슷한 거니까, 굳이 농도를 따지자면 간에 몰려있을 가능성이 높아.
– professor : 음…. 확실히. 그냥 느낌만 있었던 뮤트 냄새가 좀 진하긴 하네. 말만 전문가는 아니었나 봐? 내가 살면서 네 덕을 보게 될 줄이야. 전쟁 전에 횟집이라도 했어?
———
시작할 때는 별 생각 없었다. 그냥 여왕이 만들어낸 뮤트라면 분명 다른 여러 가지 생물의 장점을 덕지덕지 붙였을 것이고, 이게 진짜 뮤트면 분명 일반 모래상어와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겉으로 차이가 안 보이니까 속이라도 확인해 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조카스 저 인간이 칼 잡을 때부터 꼬치꼬치 훈수질을 하더니, 또 그게 전부 그럴듯한 게 아닌가.
———
– Jokass : 나 지금 부산물 처리꾼 하고 있잖아. 설치류 짬뽕 같은 놈들부터 이게 생물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해괴한 놈들까지, 다종다양한 변종의 속을 구석구석 파헤치며 어디가 쓸만하고, 어디가 귀하고, 뮤테이션 스미스가 뭘 어떻게 쓰고 어떻게 팔아먹을지를 매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처음보는 놈도 대충 이쯤에서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이 오더라고. 나름 전문직이야 이거. 최근에 감찰부 대원처럼 자격증 시험도 생겼다니까?
– professor : 오. 땄냐?
– Jokass : 내가 출제 위원이다 새꺄. 나름 선구자라고.
– takealook : 지금이야 떠오르는 직종이지. 예전에는 자살지망생이나 하는 위험한 일이라 소문나고, 또 그게 불법이라 암시장을 전전해야만 했던 일의 선구자라니…. 그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뭐라도 했다가 얻어걸린 럭키 부랑자1 아님?
– Jokass : 凸
– Jokass : 아무튼, 이 전문가님의 눈으로 봤을 때 특별히 해부학적으로 다른 건 모르겠다. 유전자 조합 생물인 뮤트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
– professor : 하긴, 여왕이 만든 신종 뮤트라기엔 피가 옅어도 너무 옅었지. 피에 노출된 선원이 별다른 증상을 못 느낄 정도로. 물론 그냥 뒀으면 언젠간 뮤트 변이가 시작됐겠지만.
– Jokass : 두 번째 놈은 첫 번째에 비해 속에 든 이물질이 좀 많았던 걸로 봐서 배를 덮치기 전에 뭘 먹었을 거야. 그게 뮤트였고,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감염인자가 막 모래상어를 침식하던 중이라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 Jokass : 일단 당장 모래상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난 생물은 아니라는 소리겠지.
———
예상치 못한 도움으로 꽤나 확신할 만할 증거를 얻은 셈.
일단, 우려할 정도로 뮤트가 사막을 전부 잠식하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급 뮤트라도 됐으면 의심하겠는데 이건 그냥 돌아다니는 8, 9급 이하 환경생물급 뮤트를 잡아먹은 야생 사막생물일 뿐이니까.
물론 사막에 오자마자 처음 만난 몬스터가 아주 우연히, 사막 근처에 어슬렁거리던 뮤트를 잡아먹은 것뿐이라 낙관하는 건 말이 안 되고. 조금 더 표본이 축적돼야 확신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사막 언저리에 뮤트가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고 보는 게 좋겠지.
북부 영구동토가 뮤트 세력 100이라면, 사막은…. 피가 진한 전투 개체 말고 자원 수집용 저급 뷰트까지 돌아다닐 정도니까….. 30? 너무 부정적인가? 20? 15?
‘그러고 보니 뮤트 놈들. 제국에서는 잠잠했고. 네임드 쪽 피해가 있었다지만 여왕이 놀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로드릭 서부 전선은 조금씩 밀리고 있었지.’
일단 지금까지 확인된 네임드는 에데오르나, 팔카투스, 바즈유르 셋. 바즈유르는 죽거나, 최악의 경우 간신히 살아남았다 쳐도 시즌 아웃은 기정사실.
에데오르나는 회복기가 좀 남았으리라…. 추정하는 중이고.
팔카투스. 이 독하고 집요한 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한 썅놈이 다친 형제들을 보고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으니, 뭔가 또 저질러 놓은 게 틀림없다.
가뜩이나 초반에 자원을 말려놔서 소수정예에 집중하던 여왕이 네임드를 고작 세 명만 낳았을 리는 없다. 시간도, 자원도 충분한 지금 상황이면 네임드가 여섯, 못해도 다섯은 되어야 말이 되는 법.
….역시, 병력이 빈다. 아무리 계산을 때려도 갑자기 없어진 병력이 한 무더기란 말이지.
‘어떻게든 로드릭을 장악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동부 3국을 빠르게 점령하는 게 지금까지 뮤트 전략의 골조로 보였고, 그래서 로드릭이 숨도 못 쉬고 죽기 살기로 막자를 시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유가 생겼어. 이상할 만큼 편해졌다고.’
뭔가 다른 곳에 병력을 돌렸다는 얘기다. 그게 아니면 악신의 신위를 통해 가뜩이나 많은 물량을 더 많이 뽑아내는 여왕이 여유를 줄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보면, 정황상 동부~중앙 언저리인 로드릭 인근 3국. 중앙~서쪽 전체인 제국의 영역을 제외하면 비는 곳이 사막밖에 없다. 너무나도 가혹한 환경으로 내지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진 지역.
좋아. 사실 하나. 뮤트는 병력을 돌려 사막으로 왔다.
자아, 그럼 여기서 생각할 문제가 한 줄기 더 생긴다.
왜.
왜 왔을까?
내가 서쪽의 제국으로 향할 때 뮤트는 정 반대, 동부 대사막을 향해 병력을 이동했다. 여러 가지 기생뮤트로 인간 사회에 스파이를 심어놓은 놈들을 생각하면 내 행선지를 놈들이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고. 내가 서쪽으로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 병력을 동쪽에 투자했다. 마찰을 피하고 싶었다는 뜻이고, 그건 마찰이 있으면 뭔가 계획했던 것이 어그러질 만큼 꽤나 섬세한 상황이라는 소리겠지.
단순히 뮤트의 영역을 넓히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챔버 메이드를 대량으로 투입했다거나?
글쎄. 물론 챔버 메이드는 자원에 상관없이 여왕이 직접 생산해야 하니 막 뽑을 수 없는 중요한 유닛이라지만. 마나, 지력(地力), 유기물 등 종류에 상관없이 다 처먹고 뮤트를 뽑아내며 지역을 통째로 황폐화시키는 챔버 메이드라고 해도 이미 황폐한 사막에서 뭘 어떻게 더 빨아먹느냔 말이다. 여기에 투자하느니 동부 3국의 다른 지역을 찔러서 숲 한 조각이라도 더 먹는 게 놈들에게 도움이 되겠지.
단순 자원확보를 위해 사막 지역에 들어온 것이 아닌 다른 목표가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으으으음….. 굴러라, 굴러라 머리야…. 팔카투스 이 새끼가 또 무슨 개짓거리를 꾸미고 있을까…. 내 복제 뮤트면, 나처럼 생각할 테니까….’
어우, 머리 터지겠네 진짜.
‘야, 하이드. 지금까지 캐낸 단서가 뭐뭐 있었지?’
[어디 보자…. 뭔 생각을 이따구로 꼬아놔서는. 잠깐만….]초장부터 뭐가 우르르 쏟아지는 바람에 마구 떠올린 단서가 한가득이라,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지 하이드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머리를 식히며 모래 상어를 썰어대는 사이 하이드가 정리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성자 교수는 여러 번 뮤트의 행사를 방해한 강적이다.
그건 맞지. 투란부터 로드릭을 거쳐 폭풍의 언덕까지. 뭔가 좀 할라치면 어김없이 튀어나와서 훼방 놓은 게 나니까. 와일드 카드인 네임드까지 써놓고도 패퇴했으니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둘. 팔카투스는 내 정보를 기반으로 만든 뮤트다. 나처럼 생각하며, 지금 나처럼 아주 박 터지게 머리를 굴리는 중이겠지. 심지어 내 손에 직접 처맞아가며 교수라는 인간에 대한 공포를 아주 뼈에 새기셨으니 방심하거나 얕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서쪽에서 노는 동안 놈들이 극동부에 투자를 한 것은 다분히 나를 의식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다.
즉, 방해받지 않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얘기. 이건 양자택일. 제국 행을 선택한 이상 대사막에서 패널티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소리군. 망할 게임.
셋. 아-주 중요한 일. 거의 다 잡은 로드릭의 숨통을 풀어줄 만큼 병력을 덜어서 투자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강적이 자리를 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있나 보다. 뭘까? 그게 뭐지? 팔카투스 이 새끼가 사막에서 뭘 찾은 거지?
톡. 톡. 톡. 톡.
멍하니 생각에 빠져 손을 놀리는 사이 뼈만 남은 상어 앞에서, 칼끝으로 뼈를 두드리던 교수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설마…. 사막의 그 대단하신 뭐시기?”
그러고 보니 제국에서 신위에 가까운 힘이라도 특별한 과정을 통해 강탈할 수 있음이 증명됐지.
만약, 사막을 이렇게 만들고 유사를 움직이는 뭔가를 뮤트가 노리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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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니, 제국보다 과정 자체는 더 간단할 수도 있겠군. 옛 신이라 불릴 만큼 잊혔다는 것. 신자의 맹목 = 갓 파워인 이 동네에서 그건 영락한 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생이라곤 해도, 뮤트 여왕님은 쌩쌩한 진짜 악신이다. 둘 다 신이라 격의 차이도 없고, 파워의 우위도 분명하고.
무엇보다, 번영과 관련된 악신인 뮤트 여왕님은 원래….
‘뭔가를 처먹고 재생산하는 데 특화된 분이셨지.’
이러한 작업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신이라는 말씀.
스극, 특- 까득 까드득!
“아.”
생각에 너무 빠져있었나.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의 모래상어를 거의 저며놓고 뼈를 긁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적의 실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불안감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어째, 파면 팔수록 많이 늦은 느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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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선장님. 혹시 목표 지점까지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오. 당신이 가르쳐준 별자리 지시는 방향만 일러줄 뿐,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혹, 그걸 알려준 이가 대사막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는 인물이오?”
“어…. 아마도? 한 단체의 수장이라고 했으니까?”
“그럼 더더욱 알 수 없겠군. 대사막은 그리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 쉬이 자신의 위치를 가르쳐주는 법이 없소. 아마, 가다 보면 그쪽에서 찾아오겠지.”
“으으음….”
“모래를 퍼낸다 하여 사막을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오. 비록 금기 그 자체라고는 하나, 당신도 사막에 발을 붙인 이상 사막의 법도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오. 인내야말로 최고의 미덕이지. 몹시 바빠 보이는데,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하시오. 이 사막의 모래알갱이 하나도 멈춰있지 않으니, 그게 진정으로 당신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다 때가 있는 법이오.”
“인내. 인내라…. ”
바빠 죽겠는 사람한테 복장 터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지만. 선원들을 위해 기꺼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금기를 범한 선장님의 말이라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교수는 근질근질한 마음을 억누르며, 어설프게 해체한 모래 상어의 사체 두 구를 대충 그러모았다.
감염인자가 깃든 피는 이미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전부 흡수했으니, 이 고기와 가죽은 사용해도 되는 것들이다.
“에휴. 염천에 이거 다 상하기 전에 빨리 밥이나 먹읍시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속에 담고 있어봤자 답답하기만 하니.
교수는 차곡차곡 쌓여가는 불안감을 머리 한 켠에 밀어둔 채, 회와 고기의 중간 언저리에 위치한 모래 상어 고기를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에 대한 기대로 가슴을 채웠다.
실험결과, 잘 부스러지는 육회랑 비슷한 맛이 났다.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줄에 매달아 뜨거운 모래에 살짝 내려 익혀 먹으니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독특한 향과 맛이 있었다.
금기 때문에 위축되어있던 선원들도 지난번 항사 이후 오랜만에 맛보는 진미에 슬그머니 마음을 놓았으며, 선원들의 동요가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알고 있던 선장은 싣고 왔던 술을 아낌없이 풀어 선원들의 이성을 날려버렸다.
맛있는 음식에 술. 해가 지며 살 만해진 기온과 아무리 봐도 종교랑 연관이 없는 것 같은 성자의 행동.
결국, 교수는 술에 취한 선원들을 팔씨름으로 모조리 꺾으며 ‘이놈이 성직자 같은 고리타분한 인간일 리 없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다들 웃고 취해있는 동안, 몬스터 외에도 다가오는 유사를 찾기 위해 추가로 망루에 올라간 선원들이 눈을 부릅뜨고 사막을 살피는 사이.
쏟아질 듯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 사막의 밤을 가르는 배를 지켜보던 그림자는 뱃머리가 가리키는 방향과 별의 움직임을 손가락으로 가늠한 다음 조용히 사막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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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사 생활. 4일 차.
“성자. 외신을 섬기는 이로서 불편하실 것은 알지만-”
“아유, 알았어요, 알았어! 기도 금지! 신성력 금지!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의식 같은 것을 거부하지 말 것! 이것만 지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일단, 그걸 지키지 않으면 우리 모두 마을에 금기를 끌어들인 이가 되어 몰매를 맞게 죽게 될 것이오. 그게 기본이고, 다음으로 오아시스의 법도에 대한 것인데….”
그래. 마을이다. 사막에 들어온 지 삼 일 만에, 이 황량한 곳에서 그나마 사람이 살 만한 곳에 도착했다.
첫 사막의 밤을 지새운 후. 그 뒤로 삼 일 동안 세 마리의 모래상어와 배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샌드웜 하나, 너무 익숙하게 생겨서 소리 지를 뻔한 사막전갈 15마리 정도와 조우했다.
늪처럼 모래가 퍽퍽 터져나가며 솟구치는 지역에서는 모래를 뒤집어써 피부가 홀랑 벗겨졌고, 사막의 모래에 반쯤 잠겨 이동하는(!) 암초에 박아 선창에 불같이 뜨거운 모래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봤으며, 선원들과 모래 상어 가죽을 뒤집어쓰고 죽자고 구멍을 막아보기도 했다.
내가 모래를 대신 뒤집어써 준 선원을 필두로, 선원들은 성자가 아닌 인간 교수에게 차츰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갑판장 말로는 ‘몸에 모래 얽은 흉터가 있으니 이제 사막 사람 같아 보여서.’ 그렇다고 했다.
도대체 이 배가 어떻게 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래에 몸을 던졌다가 밧줄이 타서 진짜 죽을 뻔하기도 하고, 대화방 사람들에게 극한의 하드코어 마조히스트 소리도 듣고, 어디에나 유사가 생길 만큼 대사막의 모래가 공기층이 넓은 특이한 모래층으로 덮여있다는 것도 알아냈으며, 이 미친 사막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대사막이니까~’ 할 정도로 그럭저럭 적응도 했다.
그리고. 사로잡은 20마리의 전갈 중 7마리의 전갈이 첫날 봤던 모래상어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저급 뮤트를 잡아먹어 감염인자에 침식되어가는 모습.
그을려가는 피부처럼 내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갈 무렵, 드디어 변화라 할 만한 것이 찾아온 것이다.
쿠웅-
오아시스 인근이라 그런가, 밀도가 다른 모래에 뱃머리가 박히는 소리와 함께 거짓말처럼 배가 멈춰 섰다. 사흘 동안 꾸준히 움직이던 배가 멈추니 오히려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시이레는 제법 큰 오아시스에 속해 모이는 사람도 많은 편이오. 모쪼록, 눈에 띄지 않게-”
“그우어…. 육지…. 육지다….”
“나무…. 앙상하고 잎이 적지만, 저 푸르름은 분명…. 아아, 어머니 나무시여…. 우으읍!”
“….크흠! 눈에 띄지 않게, 부탁하오.”
선장이 마지막 당부를 입에 담을 무렵. 선창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노툼과 이드라실은 배가 멈춰 서자마자 좀비처럼 기어 나와 멋들어진 야자수에 매달렸다.
트롤과 엘프가 매달려 요동치는 나무 아래. 그늘에 쉬고 있던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그중 보라색 베일 속에 눈만 내놓은 여인이 그들이 매달린 곳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선장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보라색은 귀한 이의 상징이다. 빛이 산란하는 저 독특한 비단은 사막의 태양을 충분히 막아주면서도 얇고 바람이 통하는 대단히 비싼 물건이고, 걸음걸이가 단정한 것으로 보아 충분히 교육받은, 이곳 오아시스의 높으신 분으로 보이는 여인.
그런 여인의 서두르는 듯한 발놀림에 오아시스에 도착하자마자 이곳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생각한 선장은 선원들에게 재빨리 보급을 받고, 출항할 준비를 해두라 일렀다.
여인의 행선지가 나무에 매달린 두 이종족이 아닌 교수인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 선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귀한 나무에 손을 대시면 안 돼요? 외지에서는 수십 그루씩 자라나는 나무이지만, 오아시스에서는 이 몇 그루 없는 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맺으며, 방황하는 이의 이정표가 되어주니까?”
“아이고, 예. 죄송합니다. 저희가 항사는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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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잠깐만. 저 말투, 어디서 많이 듣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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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스륵-
“그간, 강녕하셨는지?”
“!!!!!!!!!!!!!!!!!!!!!!!!!!!!!!!!!!!”
교수가 다가오는 이의 목소리에 경악하기도 전에, 소리 없이 그의 앞으로 걸어온 여인의 손이 교수의 옷 속으로 파고들어 쇄골을 더듬었다.
따끔, 하는 느낌과 함께 흉터 속에서 피부 위로 올라오는 주술 각인. 전에 봤던 것보다 형태가 달라진, 하지만 여전히 붉은 표식.
“그, 아-”
“인내는 사막의 미덕이요, 사막의 여인에게 기약 없는 기다림은 당연하다지만. 님의 위명이 끊이지 않고 귓가를 간질여 정숙한 여인의 마음을 뒤흔들었으니. 기다림이 얕다고 탓하시면 안 돼요?”
다른 손으로 베일을 걷어 보이는 여인의 눈웃음에 교수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아, 아나-”
“쉬잇. 환한 대낮에, 여인의 속살보다 비밀스러운 정인의 이름을 남들 앞에 부르시면 부끄럽답니다?”
락샤샤. 본명, 아나야 타므 샨데아.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나타났으며, 여전히 그를 당황하게 했다.
“….누구일까요?”
“어, 예? 저기…. 락샤샤?”
“누가,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 낭군님의 마음을, 몰래 훔쳐 갔을까?”
반달처럼 휘어진 락샤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눈빛만큼이나 날카로운 손톱이 쇄골을 타고 경동맥을 훑으며 반가운 연인의 몸을 쓸어올렸다.
그녀가 교수에게 건 주술 각인의 용도는 단 한 가지였으니.
그녀에겐 슬프게도, 주술은 그 용도를 매우 충실히 이행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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