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13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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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드라이 오아시스 칼라샨 영지와 사막을 오가는 배라. 내지를 왕래한다면, 목적은 무역인가?”
“그렇소. 그쪽 영주와 약간의 면식이 있어서. 자잘한 물건과 함께 내지 사람 몇을 데리고 왔지.”
“내지 심부름이라….팍팍하게 사는군. 잠시 승선 인원을 좀 확인하겠다.”
“얼마든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우리 배를 가로막은 배에서 내린 이들은 상당히 꼼꼼하게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선적 물자부터 인원, 배의 수명, 선장의 항사 일지에 나온 평상시 항사 경로를 확인하곤 왜 평소에 다니지 않던 길을 통해 이곳에 도착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고, 선장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막힘없이 그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좋다. 이상없군. 표면적인 확인은 여기까지 하고…. 보따리 장사는 어느정도로 계획하고 왔나? 내지에 갔다왔으니 몰래 들여온게 적지 않을텐데.”
“이번 항사는 조금 일찍 끝낼 생각이라. 목록은 여기 있소. 화살촉, 창날, 작살, 질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가공되지 않은 철도 좀 들고왔지.”
“흐흐흐흐. 그러면 그렇지. 선저가 이상할만큼 모래 밑에 가라앉아 있을때부터 알아 봤다니까? 여기 있는 것 전부랑, 저기 저 노예까지 합쳐서 우리 경비대 측에서 구입하겠다.”
“노예?”
“그래. 귀 큰년은 필요없고, 튼실해 보이는 트롤이랑, 저기 저놈. 내가 뱃일 하면서 노예를 한 두명 써본게 아닌데, 저놈처럼 실한 놈은 처음 보는군.”
누런 이빨을 드러낸 경비대는 히죽거리며 내가 있는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사막에서도 유난히 햇볕을 볼일이 많은 항사꾼.
그중에서도 제일 햇볕에 노출되는 망루 감시원 만큼이나 피부가 진하게 탔으며,
허름한 속옷만 입고있어 터질 듯 건장한 몸을 드러낸 구릿빛 피부의 흉터 투성이 남자.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눈앞에 거울이 있으면 땡볕아래 채찍을 맞으며 노동으로 단련중인 건장한 노예같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딱히 사람을 사고 팔지는 않소만?”
“아, 팔려고 데려온게 아니라 배에서 쓰는 노예인가? 그러지 말고 우리한테 파는게 어때? 가뜩이나 요즘 손이 달리는데 저런 건장한 노예라면 두손들고 환영할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란 말이지. 내 시가의 2할 정도 더 쳐주지.”
“크흠. 일 없소.”
“3할.”
“아니 이보시오, 받을 것 다 받았으면 길을 좀-”
“제기랄! 5할! 1.5배는 쳐준다니까! 내 사정 알 것 아닌가! 위에서 정예병을 못키우면 어떻게든 대가리 수라도 채우라고 닦달하는데! 이미 배 위에 서있을 수 있는놈은 다 땡겨왔다고! 저놈은 족히 5인분은 할테니 두배! 두배로 쳐주지! 이만하면 충분하니 그냥 넘기고 들어가!”
뭔가 사정이 있는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덕분에, 결국 교수가 나와 용병패를 눈앞에 들이밀고서야 경비대는 가로막았던 앞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면서도 왜 왔냐. 이곳이 고향이냐. 어디서 얼마나 묵을거냐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을 보니 안에 들어오면 설득을 하든 납치를 하든가 해서 기어이 군에 편입시킬 생각으로 보였다.
“군수물자? 정련된 쇠나 화살촉, 창날이나 갑옷 같은건 나라에서 관리하지 않습니까?”
“텔드랏은 부유한 나라지만, 사막과 인접한 영지는 특히 더 부유하지. 과연 그 부가, 정말 질 좋은 밀만으로 이룩한 것이라 믿는다면 멍청한 일이오.”
“….밀매?”
“사막은 전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니 수요가 넘치지 않소?”
“이런 거래가 자주 있나봐요?”
“늘 있지. 물론, 저렇게 길을 막고 어깃장을 놓는 놈들은 어떻게든 값을 깎으려 난리를 피우는 것이 일반적이지, 이렇게 얼마든 줄테니 다 내놓으라는 경우는 흔치 않소.”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군.”
텔드랏이 부유한 이유중 하나를 엿본 기분이다. 사람이 없는 곳에선 몬스터와 싸우고, 사람이 살만한 곳에서는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사막에서 금속 자원이 흔한 것도 아니니 대부분의 군수물자가 수입이고, 그걸 담당하는게 작지만 부유한 국가, 텔드랏이었다는 소리다.
이거, 오아시스에서 피 맛 나는거 아닌가 몰라.
“슬슬 배를 대야 하는데. 어디 갈곳은 있소? 우리는 물건을 모두 내렸으니 대금을 받고, 향신료와 사치품을 좀 구입하러 가야하는데.”
“따로 접선 장소는 받아놨습니다. 좀 헤매기야 하겠지만,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보다는 따로 움직이는 편이 좋겠죠.”
“잘 알고있으니 다행이오. 이런 시기의 경비대는 어떻게든 건수를 잡아 쳐넣으려고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말이오.”
그리고, 그 감옥은 쇠창살이 아니라 징집병 막사겠지.
전투중인 도시의 흔한 모습이다. 같이 몰려다니면 보나마나 외부인이 수상하게 집단 행동을 한다며 조사하겠다고 들 것이고, 털어서 먼지 않나는 사람 없으니 일단 잡아다 강제 노역이나 강제 징집병으로 써먹겠지.
대충 분위기만 봐도 그려지는 모습에 교수는 옷을 단단히 여미고, 터번과 망토를 합쳐놓은 듯한 하얀 사막옷을 뒤집어썼다.
“별일 없으면 서둘러 배로 돌아오시오. 우리도 도시에 숙소를 잡지 않고 배에 머물 생각이니.”
“예. 그럼, 이따 봅시다.”
“으음. 혹시나 죽을 것 같으면, 여기서 좀 알아볼 수 있게 죽어주시오. 당신이 죽으면 우리끼리 떠나도 금기에 위배될게 없으니.”
“거 정이 넘치십니다 그려.”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죽으면 마음 편히 놓고 튀겠다고 말하는데, 반대로 말하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기 전까지는 배에서 출발 준비 해놓고 기다리겠다는 뜻이니까.
오랜 항사 생활의 여독을 생각하면 꽤 큰 희생이다. 저 사람들이라고 편안하고 시원한 여관에 누워 술독에 진탕 빠지고 싶은 생각이 없을까. 그저, 락샤샤와 달그림자에 대한 이야기까진 하지 못하고 ‘열 두 발걸음 지역 분쟁에 끼어들게 됐다’는 내 말만 듣고, 위험하겠거니 하면서 맞춰주는 것 뿐이지.
‘한 배에 탔다. 말은 물 배타는 놈들이 만들었지만, 제대로 쓰는건 우리 항사꾼들이외다!’
‘사막은 뭐가 됐든 항상 밖에서 두드리는게 있는 동네거든! 몬스터가 됐든, 토호인지 강도인지 모를 쓰레기들이 됐든. 모래 알갱이 마냥 흩어지지 않으려면 단단히 뭉쳐야지. 그래서 같은 배를 탔으면 일단 가족이라고들 합디다. 마음에 안드는 놈은- 도박이나 일삼다 가족을 풍비박산 내버린 사촌동생 취급. 마음에 드는놈은- 친형제 자매 급. 거리감의 차이는 있지만 죽어도 가족의 경계 안에는 들어간다는 소리지.’
‘끄으으-’
‘음? 댁은…. 20년정도 소식을 못 들었다가 고향에 돌아온 이종사촌 정도라고 해야하나? 애가 훤칠해져서 돌아왔는데, 뭐하는 놈인지는 모를. 딱 그정도지. 보통 손님은 그렇게 취급 안해주는데, 같이 밧줄도 땡기고 모래도 퍼먹고 했으니,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서 그러는 거요. 흐헤헤헤! 이게 좋기만 한건 아니라고? 우리가 댁 때문에 발목이 붙잡힌 것처럼, 댁도 우리 때문에 발목이 붙잡힐 일이 있을테니까!’
‘살라딘, 살라딘? 듣고있수? 아직 안 죽었지?’
‘말…. 시키지 마….’
‘흐헤헤헤! 그건 안되겠는데! 망루에서 멍하니 사막만 쳐다보면 심심하잖수? 가뜩이나 댁이 성자인가 뭐시깽이인가 해서 언제 금기가 쫓아올지 몰라서 올라와있는 시간도 늘었는데 말동무라도 해줘야지! 아, 부담스러워 하진 마쇼! 저어-기, 저 아래 죽어라 갑판 닦는 놈. 재작년에 새로 들어온 놈인데, 질 나쁜 놈들이랑 짜고 우리 배를 팔아넘겼던 돼지 오줌보 같은 놈이거든! 어찌어찌 선원들 쌈짓돈 모으고, 칼들고 설쳐서 배는 되찾았다만…. 보다시피 금기 덩어리 같은 댁을 태우는 일도 거절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지. 그래도 저놈, 다시 태워줬잖아. 매일 뒷통수를 쳐맞아서 뒷머리가 다 빠질 정도지만 그래도 저놈은 아직 우리 선원이라 이거요. 우린 그렇게 삽디다. 흐헤헤헤!’
‘아, 이거 선장이 티내지 말라고 했는데. 못들은 걸로 하쇼!’
‘끄어어어-’
나루카였나? 나를 이렇게까지 구워버린 망루 선원. 내가 돛대에 매달려 극악무도한 직사광선 태닝을 하는동안 녀석은 쉴새없이 떠들어댔는데, 덕분에 사막 배에 대한 것들을 여러모로 알 수 있었다.
배가 가라앉고, 선원이 모두 죽기 전까지는 함께 한다는 사막의 뱃사람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한 것처럼, 사막 배를 중심으로 모여든 그들은 하나의 마을이며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개인 사정으로 모든 인원이 매번 같이 항사에 나설 수는 없지만, 남겨진 인원은 매일 밤 물 떠놓고 항사에 안전이 깃들기를 기원할 정도로 끈끈하게 이어져있는 사람들.
‘사막 사람들이 유난히 독하고 잔인한 것도, 사실 자기네 이너서클, 공동체를 극단적으로 챙기는 경향 때문에 오히려 그 울타리 밖의 사람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경향이 생겼다고들 하지.’
고맙게도, 며칠 사이에 내가 모르는 곳에서 쑥덕거리더니 그 기묘한 공동체의 울타리에 한 발 걸치게 해준 모양이었다.
“그럼, 죽을 때 도시가 떠나가라 소리칠 테니 그땐 뒤도 안보고 도망가시는 겁니다?”
“….여차하면, 그걸 하시오.”
“그거라니?”
“기도 말이오, 기도. 신성력. 아마 당신이 깜짝 놀랄 정도로 소란이 일어날테니, 몸 하나 빼낼 틈은 생기겠지.”
그렇게 기겁하는 금기까지 범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만 나오면 같이 도망쳐주겠다고 하니. 내가 이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고 배길수가 있나.
교수는 배를 정박시키며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정말 금기 때문에 저들이 잘못되면 억지로라도 배랑 같이 사막 밖으로 들고 날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참에 개종이나 시키지 뭐.’
실로, 성자다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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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 발자국 오아시스. 거인의 열두 걸음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그 이름답게 거인이 밟고 지나간 듯 규칙적으로 늘어선 오아시스가 있는 곳이었다.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까지의 거리는 대략 반나절 거리 정도. 이렇게 오아시스가 이어져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사막의 지하수가 흐르는 수맥이 있다는 뜻이고. 수맥이 지표면에 가까워 이렇게 오아시스 여러개를 연달아 만들어낼 정도라는 것은-
“모래가 충분한 습기를 머금은 덕분에, 오아시스와 오아시스 사이를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카울라디는 사막에 몇 안되는 육로 교통이 가능한 이 지역을 일통하는데 성공하고, 열두 오아시스 사이에 유기적인 내수 라인을 만드는데 성공하면서 사막의 1인자로 우뚝서게 된거에요?”
….그녀가 말하는대로, 지역간 자원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며 카울라디라는 놈이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것을 토대로 세력을 넓히는데 성공했다는 뜻이겠지.
작전을 수행하려는 지역의 역사. 배경. 지역 성장 원동력과 지형에 대한 고찰. 좋지. 정말 유용한 지식이고, 사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가뭄에 단비같은 지식이지.
좋다. 다 좋다고. 그런데….
“후후후후.”
“그…. 락샤샤? 정말…. 이게 맞는걸까? 내가 나름 전략가에 머리좋다고 소문난 사람으로서 의견을 피력하자면, 이런 말도 안되는 작전은 절대로 성공할 리가-”
“있어요. 당신도 속으로는 이게 괜찮은 작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경비대 한테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서요? 제 말을 믿으세요. 당신은, 최고의 ‘노예’로서 대접받을 테니까.”
왜, 그 귀한 지식이 ‘고급 노예의 소양’이라는 양피지 다발에 적혀있냔 말이다.
———
– 노루Drug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akealook : 사막 1빠따 정도 되는 분의 권세는ㅋㅋㅋㅋㅋ 내지 사람이랑 비교가 안되넼ㅋㅋㅋㅋㅋㅋㅋ
– 흥안만두 : 댁이 성자고 나발이고 그건 내지에서나 그런거고ㅋㅋㅋㅋㅋㅋ 여기선 몸좋고 힘좋은 노예 1호라고ㅋㅋㅋㅋㅋㅋ
– professor : 다 씨발 차단하고 방송끄기전에 닥쳐.
———
[어이 껍데기. 나말이야, 여성체로서가 아니라 락샤샤라는 인간이 정말, 진심으로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너도 닥쳐 이 자식아.’
락샤샤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도시에 가까운 오아시스 마을, ‘세번째 걸음’이라 불리는 곳의 이국적인 풍경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딱 봐도 얼치기 같은 우리 일행에게 소매치기가 따라붙고, 내 품에서 지갑을 가져가는 대신 쪽지를 놓고간 소년은 쫓아오는 경비대를 피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은밀한 안내를 따라가다보니 희미하게 달그림자의 표식이 있는 건물을 만날 수 있었고. 더 빠른 배로 먼저 와있던 락샤샤는 새된 환호성을 지르는 것으로 바뀐 내 외양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너무 잘 어울린다고. 너무 잘 어울리는 나머지, 선택의 폭이 넓어질 정도라고.
그때부터, 락샤샤와 달그림자의 사람들이 나를 가지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나를 카울라디에게 노예로 팔아넘긴다는 생각을.
사건의 발단은 락샤샤가 모시는 사막의 심장, 왕혈 나레아 셉수트와 카말라호 셉수트 남매가 카울라디의 거처 바로 옆에 수감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감? 분명, 힘은 없지만 사막에서 제일 귀한 존재라 여겨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그래서, 이런 위험한 시기에 안전한 곳에 두어야 한다며 카울라디의 전사들이 지키는 그의 거처로 옮겨지셨죠. 좋은 방에서 훌륭한 식사와 대접을 받고 계시지만, 아름다운 비단으로 묶었다 하여 그것이 구속이 아니라 할 수는 없겠죠? 그쪽에서 모셔가는 것을 거부했다간 우리가 이곳을 떠나겠다 광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눈뜨고 보내드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녀답지않게 분한 듯 입술을 깨물던 락샤샤는, 그대로 나를 보더니 순식간에 화사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래도, 아예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랍니다? 우리가 틈을 만들면, 당신의 힘을 빌려서 그분들을 빼낼 생각이었는데…. 그런 위험한 방법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 생겼지 뭐에요?”
“….그게, 나를 노예로 팔아넘기는 거다?”
아니, 아무리 여기서 안먹힌다고는 해도 구국의 영웅에 하나밖에 없는 성자님인데.
교수는 기름야자를 문질러 보디빌더처럼 번들번들해진 몸에 허름한 노예 의상을 걸치고, 완전히 뒤로 넘긴 머리를 단단히 굳혀낸 자신의 모습을 보며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진짜 기도같은거 하면 안되겠다. 로 하람이 이 장면의 편린이라도 노먼 대주교라던가, 그레고리우스 같은 놈들에게 전파하면 그대로 성난 광명의 기사들이 성전을 외치며 사막에 뛰어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락샤샤는 그녀의 나긋한 손길로 정성스럽게 내 머리를 뒤로 넘겨준 뒤, 어떤 금귀고리가 노예전사에게 어울릴까 고심하며 얼이 빠진 내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노예라고 해서 밖에서 생각하는 그런 노예를 생각하면 안돼요? 사막의 노예는 내지 사람들처럼 쓰고 버리는 인종이 아니라, 주술로 충성심을 각인시켜 항상 옆에 두는, 가장 충실한 신하보다도 더 가까이에 두고 쓰는 최후의 보루라는 느낌이에요? 제국에 근위 기사단이 있다면, 사막에는 강제된 충성심으로 무장한 전사 노예단이 있답니다?”
“전투노예를…. 그렇게까지 가까이 둔다고?”
“네! 매일 암살 시도가 수십 번씩 일어나는 곳이라 지배자들이 아무도 못 믿게 됐거든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뇌리에 주술을 새겨 어떤 일이 있어도 배신하지 못하게 만들어진 전사 노예단이에요? 전사 노예는 절대로 주인을 배신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어떠한 나쁜 효과도 없기 때문에 가정도 꾸리고, 대우도 훌륭하고, 그 주인의 가족처럼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그래서 뛰어난 전사 중에는 충성 맹세와 함께 노예 각인을 받고 진정한 주인의 수족으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답니다?”
그러니까,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믿음을 주는 대신 확고하게 주술을 통해 배신할 가능성을 차단한 노예 전사단을 만들어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는게- 사막 지배자들의 트렌드라는 소리였다.
이것도 제법 오래된 전통이라, 지금은 강한 전사 노예를 수집하는 것이야 말로 사막의 패자에게 어울리는 취미라며 과할 정도로 전사 노예를 만드는 풍조마저 생겼고, 카울라디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수집욕을 불태우는 지배자라, 이 말이다.
“자아. 어디, 그림을 한번 그려볼까요? 내지 사람은 사막에 여러 가지를 팔아넘겨요. 무기, 식량, 귀금속, 그리고 사람까지. 여기 신비한 마법사 노인, 사막에서 제일 반기는 사람 중 하나인 물의 마법사 오트만은 사막 최고의 지배자라고 해도 쉽게 볼 수 없는 엘프와 트롤을 거느리고 사막을 찾아왔어요. 이 신비한 노인은 자신이 개발한 세뇌마법으로 노예를 잡아 파는 마법 노예상이고, 그 증거라며 야성 하나 없는 말하는 트롤과 사막에 절대 올리없는 엘프를 선보이죠. 음, 제법 믿을 만 하네요? 그렇게 믿음을 준 마법 노예상 오트만은 마법 연구를 위해 사막을 찾았으며, 쾌적하고 편안한 연구를 위해 이곳의 가장 강력한 주인인 카울라디에게 자신이 사로잡은 대전사 노예를 선물하기로 했다며 그의 가장 훌륭한 역작, 노예 살라딘을 카울라디에게 선물해요. 어때요? 괜찮죠?”
“으으으음….”
진짜. 진짜 부정하고 싶은데.
그림이…. 그려진다. 절대 사막에 들어오지 않을 생물 1위라 해도 무방한 엘프와, 마찬가지로 희귀한 트롤. 심지어 말하고 머리좋은 트롤을 대동하고 나타난 수염 성성한 물 마법사. 제정신 박힌 엘프나 트롤이 제 의지로 여기에 올일은 없으니 뭔가에 붙잡혀 강제로 끌려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드라실과 노툼이 조금만 양념을 쳐주면 누구라도 속아넘어가겠지.
박교수씨는 그렇게 이국에서 온 신비한 마법 노예상의 선물로, 카울라디에게 바쳐진다. 사막 주술이 마법과 궤를 달리해서 우리가 알아볼 수 없는 것처럼, 이쪽 사람들도 마법을 쉽게 알아보진 못 할테니 오트만이 자신만의 특별한 세뇌마법으로 길들였다고 하면 기본적인 경계는 넘어설 수 있겠지. 애초에 나는 정신적인 마법이나 작용에 거의 면역에 가깝기도 하고. 락샤샤도 사막 주술에 일가견이 있으니 노예 낙인 부분도 패스.
그렇게, 누구보다 가까이서 주인을 모시는 노예 전사가 되어 기회를 보다가- 잘 모셔져있는 왕혈 남매를 업고 도주. 대기중이던 드라이 오아시스호를 타고 새로 이들을 모시기로 한 다른 지배자의 영역으로 튄다.
으으음…..된다. 이 망할 작전은 먹힐 것같아. 으으음….
심지어 처음 본 경비대마저 ‘노예인가?’ 할 정도로 외관까지 완벽했다.
험상궂은 얼굴에, 고문에 가까운 훈련을 극복해야만 얻을 수 있는 조각같은 몸.
커다란 덩치와 그 넓은 면적에 빼곡이 새겨진 가혹한 흉터.
거기에 더해, 무지막지하게 쌓인 히어로 포인트가 특성인 [박색]을 커버하며 선이 굵고 눈이 우묵한, 전통적인 미의 기준과는 다르지만 충분히 사연있는 매력이 깃든 구릿빛 얼굴까지.
아주 잘 팔릴 것 같은 노예상이야. 음. 제기랄.
“음. 이게 좋겠다. 자아~ 따끔~”
차각!
락샤샤가 심사숙고한 끝에 고른 커다란 황금 귀고리에 짙은 눈화장까지 더하고나니, 거울속에 성자 교수님은 어디로 갔는지 영락없는 사막의 전사노예가 자리잡아 있었다.
“그럼, 동의하는거죠? 물론, 당신이 싫으면 절-대로 강제할 생각은 없어요. 카울라디의 전사들이 사막 각지에서 모여든 대단한 강자들이고, 틈을 만든다고 해도 정면 돌파에 가까운 원래 작전으로 되돌아간다면 암살과 첩보가 주력인 우리 사람들이 많이 다치기야 하겠지만…. 그거야, 우리 사정이니까?”
“….알았어. 하면 되잖아, 하면.”
“고마워요!”
와락!
교수의 한숨섞인 수긍에, 그의 옷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낡아보이도록 매만지던 락샤샤가 그대로 품에 뛰어들었다.
“그냥은 미안하니까…. 딱, 한번. 당신이 원하는게 있으면, 뭐든지 들어드리는 걸로?”
“뭐, 뭐든지?”
“네에~ 당신이 상상하는 무엇이든. 당신이, 원하는만큼.”
[허으윽!]쿠당탕탕-
교수의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것과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 낄낄거리던 누구누구가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품에 안기듯 교수의 목에 팔을 두르고, 커다란 사막풍 금장식 목걸이를 그의 목에 걸어준 락샤샤는 신기루처럼 교수의 품에서 빠져나와, 읽고 있던 양피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외형은 이 정도면 태양신께서도 완벽하다 할 정도이니. 소양을 조금 더 다듬도록 할까요? 문학, 군사, 미술, 음악. 뭐든 하나라도 더 알면 그만큼 훌륭한 노예가 될 수 있답니다? 아, 마법사님도 같이 들으셔요. 신비감을 주려면 모르는쪽이 괜찮지만, 무례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만큼 이쪽을 알고있는것도 좋으니까?”
“으으음. 부탁하지.”
“아, 혹시 마법 지팡이 같은 것 없나요? 마법사 하면 그런 이미지가 강한데.”
“으음…. 우리 학파는 딱히 지팡이는….”
“그럼 만들어 드릴게요? 적당한 것으로?”
“그, 그러시게….”
그렇게. 락샤샤의 적극적인 지도편달 하에 ‘광명의 용사 파티’는 빠른 속도로 ‘내지에서 온 마법사 노예상 일행’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쿵- 쿵-
“저, 정지! 이 이상 몬스터와 함께 도시를 활보하는 것을 금하겠다! 신분을 밝히고 경비대의 인도에 따라라!”
“으음…. 이, 이런 벌레같은…. 예의도 모르면 주제라도 아, 알아야지….!”
출렁-!
“우와악! 오, 오아시스가 일어났다!”
“말로만 듣던 마법사…. 주술사! 주술사를 불러라!”
“으아아악!”
거인의 열두 걸음중 세 번째 걸음. 카울라디가 직접 다스리는 가장 큰 오아시스는 트롤의 어깨위에서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는 마법사를 맞이했다.
“오트만, 조금만 더 박력있게! 천한 벌레를 짓밟듯이! 할거면 제대로 합시다!”
“이, 이보게 교수. 나, 나는 이런 것까지 해야 할 줄은-”
“쉬이잇! 누군 등짝에 리드플로우 학파 낙인까지 찍었는데, 이런 것 가지고 그러깁니까!”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오트만. 엘프로서 인간사를 배우고자 왔으나, 이런 일을 두 번 하고싶진 않습니다.”
“아아아. 차마 대모님을 뵐 면목이 없구나….”
“그우우. 그건 진작에 없어진지 오래다. 그러려니 해라.”
[음….여러분? 생각보다 충격이 덜한데. 노툼이 한번 포효라도 질러주겠어요?]“그, 그워어어어어!”
“으아아악!”
“몬스터가 날뛴다!”
“경비대가 당했다! 전사단! 전사단을 불러와!!!”
[네에~ 아주 좋아요?]“그우우우….”
물론. 그들의 정체는 밤새 사막의 역사부터 연기지도까지 받고 나온 ‘오트만 마법 노예상단’과 주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그들을 지원하는 밤그림자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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