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14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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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군.’
교수는 굴비처럼 줄줄이 묶여있는 그와 노툼, 이드라실과는 달리 아무런 제재없이 안내받는 오트만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동을 일으킨 것은 좋았지만, 긴장한 오트만이 조금 과하게 행동한 것이 살짝 문제가 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오아시스의 물을 건드린 것은 그 어떤 사막 도시에서도 중죄에 해당하는 것.
가뜩이나 전쟁 준비로 곤두서있던 전사단은 요동치는 오아시스를 보곤 쏜살같이 달려들었으며, 미쳐 준비한 대사를 다 내뱉기도 전에 ‘노예 마법사 일행’을 포위해버렸다.
다행인점은, 이곳에서 지배자 카울라디의 이름이 우리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위대한 물의 진리를 탐구하는 자, 정신과 의식의 흐름에 극한을 보고자 하는 자! 나 아우트만 발리아르가 위대한 사막의 지배자께 호의를 구하고자 이곳에 당도했다!”
일단 팔다리 힘줄을 끊어놓고 생각하겠다는 듯 달려드는 전사들의 귀에 틀어박히는 오트만의 다급한 외침에, 뜨거운 공기를 가르던 시미터가 아슬아슬하게 멈추며 전사단은 그 즉시 안내인을 자청하며 오트만을 인도하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에요. 이곳에서 카울라디의 이름은 절대적. 진위를 떠나 그분을 뵈러 왔다면 일단 카울라디의 확인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법이죠. 물론, 별것 없는자가 카울라디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오아시스 난동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거운 죄가 하나 더 추가되긴 하지만.]락샤샤의 전언에 앞서 나가던 오트만이 살짝 뒤를 돌아보았지만, 묶여있던 교수가 인상을 팍 쓰는 것을 보고는 다시 오만하고 무례한 마법사의 얼굴로 되돌아갔다.
전사단이 일행과 오트만을 끌고간 것은 카울라디의 거처가 아닌, 이상야릇한 냄새가 가득한 천막 안이었다.
“수계 마법사라…. 대단히 귀한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일로 뵙게된 것이 아니라면, 귀빈으로 대접했을 것을….”
“이런 일이라. 혹시, 귀인을 알아볼 눈도, 제 수준을 이해할 머리도 타고나지 못한 벌레들에게 친히 가르침을 줬던 일을 말한다면 따로 고맙다 하지 않아도 되네. 대사막의 지배자께 인사를 하러온 김에 작은 친절을 배풀었을 뿐이니.”
“그건, 평화로운 도시에 소란을 일으키고, 귀한 물에 함부로 마법을 걸었던 일을 말하시면…. 친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조금 어긋남이 있지는 않은지?”
“단 한치의 어긋남도 없지. 아랫것들을 보면 윗사람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거늘. 위세가 저 하늘의 태양에 닿을 카울라디님의 수하라기엔 지나치게 멍청하고, 모자란 놈들이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작은 소동으로 마무리 해줬으니 친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멍청한 것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해야 머리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저런…. 대단히 훌륭한…. 사상을 지니고 계시는군요.”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라기엔 지나치게 좁고, 심문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화려한 천막. 심지어, 그 좁은 천막안에 칼을 뽑아든 건장한 전사단이 주변을 둘러싸 물 셀틈 없이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
의자와 테이블이 아니라 바닥을 높이고 방석을 깔아둔 자리에 앉은 오트만은 당황하지 않고 충분히 제 역할을 잘 연기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마법사님이 연기를 잘 해주시네요?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 이정도 압박감속에 그려뒀던 상황을 풀어나가는 것은 보통일이 아닌데?]‘….그야, 지금까지 이런 일이 많았으니까.’
주술에 걸릴까봐 메시지 마법을 통한 대화는 불가. 락샤샤의 주술을 통한 일방적인 어드바이스만으로 오트만이 이렇게까지 제 역할을 잘해주는 이유는, 그간 그의 간과 심장이 지나치게 혹사당한 나머지 이정도 위기에는 떨리지도 않을 정도가 되어버린 탓이리라.
우락부락한 전사단의 위협따위에 흔들리기엔, 박교수란 인물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거, 뇌가 말라붙은 것들에게나 하는 설명은 집어치우시게. 시끄럽고, 무의미하며, 기분나쁘군.”
“….지금 당장은 죄인의 신분으로 잡혀온 당신이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무례? 무례라는 것은, 추악할 정도의 무지를 드러내 제 주인의 이름을 더럽힌 그 경비대 놈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카울라딘님의 위명이 저 태양에 닿을 지경이거늘 아랫것들은 아직도 바닥을 기고 있으니. 무례라면 그게 무례겠지. 쓸데없는 사견은 다 필요없네.”
그렇게 저도 모르게 이상한 방면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버린 오트만은 [마탑 붕괴, 폭풍의 언덕 파괴, 흉성의 도래] 따위와 비교하면 ‘기분 좋은 긴장감’ 수준의 압박감 속에 오히려 활기를 띄며, 신들린 열연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나는 연구를 위해 사막을 찾았으며, 사막에서 가장 위대한 지배자의 호의를 얻기 위해 끔찍한 열기와 갈증을 이겨내고 사막을 건너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 나는 그분께서 귀히 여길 선물을. 그분은 이 마법사를 위한 작은 호의와 머물 곳을. 이 간단한 거래가 그리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아둔한 이라면 더 이상 내 입을 열어 공기를 낭비하고 싶지 않군.”
선민의식으로 가득찬 전형적인 마법사를 연기해 앞뒤 사정을 대충 뭉뚱그리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주술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시중을 드는 노예 몇만 남긴 채 전사들을 물리는 것으로 그들의 관계가 진전되었음을 표했다.
“이미 다 이해하신다면, 저도 말을 줄이지요…. 그럼. 우선 그 선물이라는 것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살라딘. 이리 오너라.”
‘내 차례군.’
투둑, 툭!
교수는 오트만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그를 묶었던 줄을 힘으로 끊어버린 뒤, 절도있는 걸음으로 둘이 앉아있는 단상 앞에 부복했다.
“호오. 이것은….”
“전사 노예를 수집한다고 들어서. 어떤가. 내 역작이라 자부하는 노예가?”
“이런 선물이라면…. 나쁘지 않군요. 확실히, 카울라디님의 위명을 들으신 분 임에는 틀림이 없으신가 보군요. 그분의 호의를 사는 법을 이렇게 잘 알고 계시니….”
주술사는 흥미가 동했는지, 단상에서 내려와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손길로 눈꺼풀을 들어보고, 잇몸에 손가락을 넣어 치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관절과 근육, 뼈 이곳 저곳을 눌러보며 감탄을 표하기를 몇 분.
노예가 가져다준 천에 손을 닦는 그의 눈은 조금전보다 몇배는 더 되는 감탄을 담고있었다.
“나름 주술사로 십 수년이 넘게 전사 노예들의 품질을 검사해왔습니다만…. 대단하군요. 참으로 물건입니다. 카울라디님의 명예에 누가 될만한 물건은 아닌 것 같군요. 육체적인 면은 완벽에 가깝습니다…. 만.”
스릉-
“노예로서의 마음가짐이 궁금하군요. 주술에 사로잡힌 흔적은 없는듯한데…. 이 완벽한 육체를 지닌 노예가, 돌연 암살자가 되지 않으리란 확신을 저희에게 심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충성심이라…. 이미 저 둘을 통해 내 마법의 지배력은 확인시켜줬을 터인데. 부족한가?”
오트만은 그의 명령에 따라 갓 구운 고기를 집어먹는 엘프 이드라실과 복잡한 수를 셈하며 카울라디 전대기를 필사하는 트롤을 가리켰지만, 주술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종의 본능, 태생적 한계조차 뛰어넘는 지배력에는 같은 지배술을 연마하는 자로서 감탄을 금할수 없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조금 더 본질적인 모습을 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카울라디의 수족이 될 선물인데.”
“흐음….”
기이할 정도로 눈을 크게 뜬 주술사가 기다란 시미터를 여자 노예에게 건네주며 가슴을 톡톡 두드리자, 그의 뜻을 눈치챈 오트만이 고개를 끄덕이자 교수가 그 노예 앞으로 다가갔다.
“살라딘.”
“예.”
“명령이다. 지금부터 저 여인이 네 심장을 도려내는 동안 미동도 하지 말도록.”
“예.”
오트만의 명령과 함께 노예 앞에 멈춰서는 교수.
“엘리아. 시험을 부탁하마.”
“예, 주술사님.”
그 맞은편의 노예도 주술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가 건넨 칼을 받아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으음, 끄으읏-”
단순한 시중 노예인지, 칼을 드는것조차 버거워보이는 가녀린 여성이 한껏 용을 쓴 끝에 겨우 시미터를 들어올리고. 휘청거리던 칼끝이 가슴을 펴고 선 교수의 심장을 가리키더니-
파박-
푸슉!
가느다란 다리가 비호처럼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시미터가 섬전처럼 오트만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교수가 잠깐만 늦었더라면, 그녀의 칼이 오트만의 목을 베어냈을 것이다.
“오호라.”
명령을 어기고, 그의 호위 노예인 엘리아의 기습을 따라잡은 교수를 보며 주술사는 더욱 흥미가 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외지 사람들은 노예라 하면 말 잘듣는 인형을 만들어와서 조금 걱정했습니다만…. 명령을 어길줄도 알게 만드셨군요?”
“그런 어중이떠중이랑 비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세뇌가 아니라 기억을 바꾸는 것이다. 정신의 흐름을 틀어쥐고, 그 안에 고인 기억을 섬세하게 조작해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오직 주인을 위해 움직이는 뿌리부터 종속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 아우트만의 종속마법이니. 나를 지키라는 명령은 굳이 할 필요도 없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좋습니다. 정말, 좋군요. 마법사님이 저희 열두 걸음의 영역에 머물며 서로 배워나갈것이 아-주 많은 것 같아 기쁩니다.”
“….물건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군. 그럼, 받아주는 것인가?”
“그야 물론. 우선, 카울라디 님에게 진상하기에 앞서 몇 가지 절차가 있으니…. 노예의 지배권을 넘겨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잠시 어지러울 수도 있을테니 당황하지 말도록….”
오트만이 가짜 지팡이를 휘둘러 주문을 준비하는 동안, 볼수록 마음에 든다는 듯 미동도 없는 교수를 살펴보던 주술사가 히죽거렸다.
“대단한 전사로 타고난 듯 하니, 종자 노예로 쓰는 것을 건의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군요. 정말 대단한 명예가 될 것입니다. 저도 훌륭한 여자 노예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카울라디 님께 진상하기 전에 쓸만한 다음 세대를 많이 만들어 두면 어떨는지-”
“으음….그럴 일은 없을게야. [브레인 스톰]!”
“그게 무슨….어걱!”
주술사가 미쳐 반응하지 못하도록 지배마법의 인계를 위장하여 스며든 마법. 주술사의 머릿속에 가득한 뇌수가 작게 흔들리고, 경계하는게 우스울 정도록 미약한, 1위계에 채 미치지도 못할 마나에 골이 흔들린 주술사는 그대로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주술사의 호위노예는 그대로 교수의 손아귀가 바이스처럼 그녀의 목을 잡아 숨통을 조이고, 쓰러지는 주술사의 몸은 바닥에서 튀어나온 손이 받아서 부드럽게 땅에 뉘었다.
단 한순간에 주술사의 천막은 온전히 교수 일행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숨이 막혀 기절한 노예를 집어던지고 이드라실과 노툼의 발목에 묶인 것을 풀어주는 교수와, 땅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며 흔적을 정리하는 달그림자 사람들, 그리고 락샤샤.
그 모든 것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던 오트만은, 그대로 천천히 로브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냉엄하게 유리병의 마개를 뽑은 다음-
벌컥 벌컥 벌컥 벌컥!
“커허어! 허어! 후우우! 이제 말해도 되는 게 맞나? 맞지?”
그대로, 커다란 진정제 한병을 목구멍에 털어넣었다.
“네에~ 주술사들은 보통 자신의 천막에서 은~밀한 취미를 즐기기 때문에, 내부의 기척을 차단하는 여러 가지 주술이 걸려있답니다? 특히나 이자는, 제 주인에게 올라가는 노예들에게 손을 대서…. 훌륭한 노예 2세를 양산하는 듯 했으니, 카울라디에 눈에 띄면 큰일나겠죠? 아마 밖으로 내보낸 전사들이 오히려 이곳에 들어오려는 이들을 막아주지 않을까요?”
“흐으, 흐어어! 이, 이건…. 늙은 심장이 감당하기엔 지나친 긴장이 아닌가 싶네만!”
“그런 것 치곤 되게 잘하시던데. 진짜 재수없는 귀족 마법사 같더라구요. 혹시, 따로 참고한 인물이 있습니까?”
“흐으, 후우! 아이작 그 인간을 몇 년이나 봐왔으니, 흉내 낼 정도는 되지않겠나!”
“아이작…. 하긴. 그 인간이 딱 그런 상이긴 했지. 아무튼 잘 하셨습니다. 덕분에 여기까진 계획대로 들어왔네요.”
“그래…. 나는 이제 여기서 전사들의 인도를 받아 손님방으로 넘어가면 되겠지?”
“예. 이 다음부터는 이제 저희끼리 해야죠. 락샤샤, 준비됐어?”
“잠시만요? 옷을 좀 갈아입을테니…. 돌아봐주시면 고마워요?”
능숙한 솜씨로 주술사의 옷을 벗겨낸 락샤샤가 겉옷을 헤치며 윙크하자, 교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락- 사라락-
잠시, 듣는 것 만으로도 상상을 자극하는 소리와 함께.
우득, 우드득! 뿌각, 뚝- 뚜둑!
마찬가지로 상상하고싶지 않은 상상을 자극하는 소리가 지나가고.
“짜잔! 어때보여요?”
락샤샤의 준비가 끝났다는 말과 함께 돌아보니, 건강미 넘치는 요염한 아가씨는 어디로 갔는지 우생학에 미친 주술사가 반달같은 웃음을 보이며 팔을 벌려보이고 있었다.
한쪽에는 벗어둔 락샤샤의 암행복. 다른쪽에는, 달그림자의 대원이 나온 구멍으로 슬그머니 끌려들어가는 진짜 주술사의 다리와, 제법 섬뜩한 핏자국…. 핏자국?
“어머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면…. 가죽이 타버려요?”
“가죽이라면 설마….”
“교수, 이곳 주술사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저분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랍니다? 특히 저런 노예마법사는 사람을 물건취급할 정도로 낯이 두꺼워서, 이렇게 한겹 정도는 벗겨내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목 뒷부분의 핏자국을 정돈하는 락샤샤.
“자, 지금부터 저는, 제 노예가 된 살라딘과 단 둘이, 작전을 진행할테니. 마법사님 일행은 사막 최고의 대접을 즐기고 있어주세요?”
“아, 알겠네. 으음…. 교수. 몸조심하게.”
“예…. 어….”
[오트만, 나,나좀 무서운데….] [괜히 나한테 불똥튀기지 말게. 자네 여자이니, 자네가 알아서 해!]“자, 살라딘? 주인님을 모시고 다음 작전 지역으로 이동할까요~? 후후후후!”
대머리 문신투성이 주술사의 몸으로 기분좋은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듯 교태어린 목소리를 뽐내는 락샤샤.
펄럭-
“주술사님. 협상은 어떻게.”
“마법사 일행은 최고의 대우를 해주도록. 우리는 노예 가공을 위해 카울라디님의 거처로 간다.”
“옛.”
천막을 나서며 완벽하게 주술사의 목소리를 흉내낸 락샤샤는, 그대로 교수와 함께 전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카울라디의 거처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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