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17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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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횃불과 사방을 둘러싼 사암의 벽. 신단수에 걸린 천처럼 오색의 천이 어지러이 나부끼는 아래. 폭포수처럼 끊임없이 쏟아지는 모래를 배경으로 한 카울라디의 왕좌는 의식에 사용하는 제단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오아시스 인근의 젖은 모래가 사막의 모래 바다에 비해 응집력이 높다고 해도, 사막의 지하에 이런 구조물을 지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 흔한 아치 구조는커녕, 기둥조차 없어 건축물이라 부르는 것이 무례하다 느껴질 정도의 공간.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힘이 깃든 이곳에서, 교수는 느슨해진 감각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여차하면 암습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미적지근한 사암 바닥에 고개를 조아린 교수는, 그 상태로 주변을 살폈다.
카울라디에게 향하는 중앙의 길. 그 양옆으로 모래 폭포에서 쏟아져 내린 모래가 흘러내려 오는 작은 수로….가 있었고, 그것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주술사로 보이는 이들이. 오른쪽에는 전사로 보이는 이들이 정렬해 있었다.
엄폐물 없음. 적 다수. ‘미지의 힘’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장애물이 설치된 적진. 창문 하나 없는 지하에 입구는 들어온 곳 하나.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군.’
감각을 집중하자, 주술사들의 숨소리와 전사들의 기이한 맥박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몇몇이 더 드러났다.
벽과 벽 사이. 혹은 발밑. 암중에 그들의 왕을 경호하는 자들. 그리고….
‘찾았다.’
카울라디의 왕좌 뒤. 쏟아지는 모래폭포 너머에 느껴지는 인기척 넷. 둘은 잘 통제된 전사의 숨소리였고, 둘은 민간인처럼 불규칙하고 작은 것이, 락샤샤가 말하던 ‘사막의 심장’ 남매와 그들을 감시하는 전사들로 보였다.
인질의 위치도 최악. 제 2 목표물이라 할 수 있는 카울라디의 위치도 최악. 적부터 환경까지 뭐 하나 최악이 아닌 게 없었지만, 딱 하나 믿을만한 구석이 있었다.
바로, 저들이 나를 완전히 세뇌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고 있는 것.
‘암살 위협이 0에 가까운 이곳인 만큼, 카울라디 본인의 경계심은 누그러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주술사는 나를 카울라디의 바로 앞으로 데려가 내게 걸린 주술의 통제권 같은 것을 넘겨야 하는 처지니. 공격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하는 것도 가능해.’
“종들은 앞으로 세 걸음 다가오라.”
대머리 전사의 구령에 교수와 그를 데려온 주술사, 야긴은 세 걸음 앞으로 걸어가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의 발끝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머리 위로, 세틴같은 부드러운 모래가 뿌려졌다.
교수는,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종들은, 다섯 걸음 앞으로 다가오라.”
다음 구령과 부복. 향유를 섞은 물이 둘의 몸 위로 쏟아져, 길 양옆의 모래 수로로 흘러들어 갔다.
교수는 엎드렸다가 일어서는 자세에서, 긴 도낏자루가 오른팔에 스칠 정도로 다가오는 것을 인지했다.
“종들은, 위대한 사막의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어느세 제법 다가온 둘. 주술사가 감격에 차 숨을 헐떡이는 동안 교수의 호흡도 짧고, 불규칙하게 이어졌다.
킁킁. 킁-
스읍. 후읍.
‘역시, 모르겠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가장 곤두세워둔 감각, 후각.
희미하지만, 뮤트와 공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발견된 지금. 카울라디의 전당에서 뮤트의 흔적이 발견되는 즉시 이곳을 뮤테이션 블러드 점령지로 가정하고 행동할 생각이었는데.
….알 수 없었다. 후각은 물론 전신의 모든 감각이 뮤트 감지기나 다름없는 그의 감각이, 방황하는 것이다.
분명 특유의 코를 찌르는, 역겨울 만큼 단 향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특정 감각을 넘어 본능의 영역에 가까워진 뮤트에 대한 그의 감이, 의미 모를 울림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일대를 감싼 주술의 영향인지, 또 다른 무엇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그 모호함이 교수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였다. 정말 뮤트와 공조한 주술의 흔적인지, 오히려 뮤트의 침투를 막아낸 주술의 흔적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마침내 카울라디가 있는 왕좌, 그 아래 계단에 엎드린 두 사람이었다.
“위대하신 사막의 지배자! 옛 사막의 정통한 후계자이시며 새로이 태양이 되질분! 카울라디님을 뵙습니다!!!”
진심으로 감격한 듯 울먹이며 머리로 바닥을 찍는 주술사.
긴 왕좌에 모로 누운 왕은, 피가 날 정도의 예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살라딘. 살라딘이라…. 너를 길들인 자가 좋은 이름을 지어줬구나.”
“예, 옛! 내지에서 온 수계 마법사이온데, 물을 다루는 능력도 출중하며 마법으로 엘프, 트롤등을 길들인 능력을 높이 사, 예외적으로 외부인이 길들인 노예를 전하의 어전에 진상했사옵니다! 비록 시작은 마법사가 했으나 그 끝은 이 야긴이 심혈을 기울여 매듭지었으니 이자가 전하의 성심을 어지럽힐 일은 모래알갱이 한 알 만큼도 없음을- 으읍, 으웨엑, 쿨럭!”
왕의 말에 성실하게 대답하던 주술사. 갑자기 그가 기침을 토하더니 코와 입에서 모래를 토하며 뒹굴기 시작했다.
“야긴. 그대의 말이 길다고 말한게 오늘로 세번째로구나. 내 앞에 선 자들에게 늘 같은 말을 들어야 하는 내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 그렇지 않느냐?”
“읍, 으으읍!”
“아직도 말을 하는구나. 내 귀에 거슬린다 했거늘.”
“컥, 쿨럭! 커…..”
….사락. 사라락. 사락….
공포에 휩싸인 주술사가 제 목을 조르고, 질식의 고통을 참은 주술사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모래소리만이 왕좌로 향하는 계단을 오가는 사이.
“그래. 잘 했다.”
“커헉! 헥! 흐억! 헉!”
“오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도록.”
“허으으, 가, 감사! 감사합니다!”
카울라디가 손을 휘젓자 주술사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침에 젖은 모래가 몇 덩어리씩 아직도 떨어지고 있었다.
야긴이 물러가고, 어디선가 나타난 노예들이 그가 남긴 흔적을 순식간에 치워버린 뒤.
여전히 나른 한 눈으로 왕좌에 누워있던 카울라디는 그제야 준비가 됐다는 듯 반쪽만 드러난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아, 그래. 네가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전사로구나. 검은 전갈을 일격에 쪼개버렸다지?”
“예….”
“핫핫핫핫. 그거 대단한 용력이로군. 사막을 다니며 제 손으로 침몰시킨 배들의 잔해를 모아 둥지를 만드는 게 검은 전갈인데. 그래…. 묻고 싶은 것도 많고, 내지에서 왔다는 네 사연도 듣고 싶으나. 먼저 네가 만나봐야 할 이가 있구나.”
교수는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는 감각에 의지해 주변 인물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카울라디. 전신에 섬세하게 수놓아진 주술각인과 그 위로 일렁이는 대기만 봐도 보통 인물은 아니지만, 이자는 아니었다.
주술사들. 방금 그들의 상위권자가 아무 이유없이 고초를 당했건만 미동도 없는 자들. 이들도 아니었다.
전사들? 숨소리조차 발을 맞춘 듯 규칙적인 이들. 전신에 새겨진 상흔과 단련된 몸이 한눈에 대단한 강적임을 드러냈지만, 이들도 아니었다.
‘….기우였나.’
아무리 둘러봐도 의심스러운 이를 찾아내지 못해 카울라디에게 집중하려는 찰나. 솜털에 스치듯 가볍게. 하지만 바늘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처럼 명확하게 그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카울라디의 뒤편, 주술사 셋 중 하나. 사막 사람들이 그렇듯 흰 옷으로 전신을 가린 이.
그 어떤 힘도, 향도, 징후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와 마주한 눈빛이 낯익었다.
그의 기억 속에 남은, 기이한 존재의 시선. 열정적인 동시에 외면하는. 친근한 듯, 증오가 섞인 눈빛.
지금은, 증오의 비율이 한층 늘어난 눈빛.
주술사와 마주한 살라딘을 보며 히죽 웃은 카울라디는 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술사를 앞으로 데려왔다.
“이번에도 네가 맞았군.”
“….”
“미래와 세상을 읽는다는 너의 말을 이제는 부정하기가 힘들구나. 그렇지 않은가? 응? 결국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내어주게 되었으니 말이야. 내게는…. 드넓은 사막을 다스릴 힘과, 그것을 넘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단을. 너에게는….”
“저분을 주기로 했지.”
“그래. 결국, 네 말대로 그가 이곳에 찾아왔군.”
생각에 앞서 반응한 몸이 먼저 교수를 일으켜 세웠다. 저 눈. 처음에는 자신만만했으며, 그다음에는 겁에 질렸고. 세 번째 조우에서는 감탄을, 지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깨달음을 얻은듯한 눈.
“나의 친우, 팔카투스여.”
‘이런…..!’
투화악!
생각보다 먼저 움직인 몸이 땅을 박차고, 순간 확- 하고 피어오른 뮤트의 기척을 가른 도끼가 팔카투스라 불린 주술사의 인형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래. 카울라디. 약속이 지켜졌군. 정말 그를 이곳으로 인도했어.”
“말하지 않았나. 사막이, 내 발아래 있노라고.”
팔카투스도, 카울라디도 막을 생각조차 없는 듯 했다.
터번을 가르고,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직선을 그리며, 그 여파로 왕좌의 계단과 바닥의 사암 판석까지 쪼개놓은 필살의 일격.
퍼석!
‘….모래?’
허나, 깔끔하게 반으로 잘린 주술사의 옷 안에 든 것은 모래뿐. 그를 노려보던 눈빛은 이제 다른 주술사의 옷 안에 깃들어 카울라디에게 향하고 있었다.
여전히 팔카투스의 기척은 흐릿하기만 했다. 기생형이라도 피를 가진 이상 그의 감각에 걸리지 않을 리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팔카투스의 의식은 분명 이곳에 존재하나, 뮤트의 육체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원리를 알 수는 없지만, 결과는 명확한 법.
‘실패다.’
충격을 수습하고 추격타를 날려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카울라디의 맨발이 바닥을 찍는 것이 보였다. 단단하게 뭉친 모래가 흩어지는 소리. 순식간에 만들어진 싱크홀. 그리고, 그 안을 내달리는 사막 생물에 가장 흡사한 뮤트의 소리.
쿠화아아아악-!
.
.
.
.
쩌엉!!!
빠가악-!
곧바로 회수한 2격째의 도끼날은 목표에 닿기 전에 누군가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바닥을 뚫고 나온 땅굴 벌레. 그것의 안면부가 열리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폭발하듯 터트리며 뛰쳐나온 인간형 뮤트 두 기.
하나는 여섯 개의 팔에 각기 다른 무기를 휘두르며 직립보행하는 근육질의 인간형 뮤트.
다른 하나는 리자드 맨 같은 외형에 날카로운 비늘이 특징적이며, 나머지 특징은 월드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뮤트.
꾸드득, 꾸우우욱-
“네임드 테르마키안, 니그미!!”
“어머나. 우릴 아나 봐? 만나서 반갑고, 미안해요? 이렇게 거친 인사를 하게 돼서….”
“셋째 녀석의 본판이라니, 우리가 모르는 수단으로 알아냈겠지. 우리 귀여운 셋째가 죽고 못 산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니까…. 말이야!”
꽈아아악-
터어엉!
순식간에 뛰쳐나온 네임드 둘의 합공에, 도끼와 함께 튕겨 나간 교수의 부릅떠진 눈이 순식간에 좌우를 오갔다.
‘싱크홀. 모래를 다루는듯한 카울라디가 만든 것.’
‘땅굴벌레 사체. 내 감지범위 밖에서 대기하다가, 순식간에 등장. 원래 모래지형에서는 빠르지만, 아예 굴이 파여 있어서 그것보다 더 빠르게 접근함.’
‘소재가 불분명했던 네임드 둘. 대기하고 있었음.’
‘무엇보다, 카울라디는 팔카투스를 [친우]라고 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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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생각은 교수가 벽에 틀어박히며 끝났지만, 이 정도만 가지고도 상황을 파악하긴 충분했다.
뮤트와 카울라디 진형이 손을 잡았다. 무언가 주고받았고, 뮤트쪽이 받기로 한 것은…. 나다.
후두둑-
교수는 박살 난 사암과 모래 사이에서 몸을 일으키며 왕혈이 있는 곳과 그의 거리를 가늠했다.
전면전으로 네임드 둘. 테르마키안은 근접전 특화, 니그미는 직접 겪어보진 못했지만, 알려진 바로는 여러 특수한 전투에 특화된 네임드. 이 둘만 해도 버겁다.
팔카투스는 이 상황을 관조하는 중이고, 그에게 우호적이며 전투 환경 자체를 주무르는 카울라디도 있다.
반면,
내가 가진 무기는 본신의 능력. 도끼 한 자루. 그리고….
….찰팍.
[오트만. 확인됐습니까?] [음? 자네가 마법을 썼다는 것은…. 벌써 일이 잘못 풀렸다는 소식이군. 그래, 확인됐네. 오아시스에 수분이 충분한 덕분에 여기저기 줄기를 뻗을 수 있었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다네.] [알겠습니다. 락샤샤와 달그림자에게 탈출 준비를 서둘러 달라고 해주십쇼. 드라이 오아시스 호는 미리 준비해뒀을 겁니다.] [알겠네. 나와서 봅세.]찰팍.
….익숙한 지원군과, 익숙하지 않은 지원.
교수가 느긋하게 다가오는 두 네임드를 앞두고 하얀 오러를 피워올릴 무렵, 차가운 눈으로 그를 관찰하던 팔카투스가 발을 돌렸다.
“도착한 것을 확인했으니 됐다. 나는, 약속의 땅에 먼저 가 있도록 하지.”
“벌써 가는가? 자네는 사막의 지배자가 건네는 선물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군. 나는 저 ‘교수’라는 자를 제압한 다음, 잘 포장해 자네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내가 받은 게 있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
“….잡아, 저분을?”
쿠르르르르-
쩌억!
팔카투스가 깃든 주술사는, 그런 카울라디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방금 도착한 땅굴벌레의 입에 발을 올렸다.
“할 수 있으면 해봐.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지.”
팔카투스는 달려드는 노예전사들과 주술사들 사이에 분투하는 교수를 잠시 눈에 담은 뒤, 땅굴벌레와 함께 카울라디의 거처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머지않았다.”
팔카투스는 그의 가슴속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쉼 없이 그의 계획을 검토하고, 수정했다.
뮤테이션 블러드. 어머니. 형제들. 이 세상과, 그가 발견한 것.
그리고, 아버지. 당신.
종의 생사가 달린 문제. 그 열쇠가 도착했으니.
상대가 상대인 만큼, 단 한 치의 허점도 보여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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