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24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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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 투둥- 투웅!
쐐애액!
쐐애애액!
“적, 접근합니다!”
“그 정도는 보고하지 않아도 눈에 보인다.”
카울라디의 선단, 그중 일부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선단장 팔게르는 괴물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한 제 1열 선단의 잔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란, 상대를 알고 있을수록 대비하기 쉬워지는 법이지.”
팔게르는 저 멀리서 쏘아진 작은 점들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차분하게 응대했다.
눌락의 선단이 즐겨 쓰는 방식. ‘악식가’ 눌락이 주술로 사역하는 괴물이 진형을 무너뜨리고, 그 위로 고위 전사들을 투입해 혼란을 야기, 그동안 접근한 눌락의 선단이 진형이 무너진 적의 선단을 뭉개버린다. 이를테면 주술 사역마의 돌파력과 정예 전사단의 침투력을 이용한 기습 총력전 같은 방식.
지금껏 눌락의 수많은 적들이 저 방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복속되었지만, 팔게르는 저들의 성명절기와도 같은 전략을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카울라디의 전사장들은 그들의 숙적인 눌락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왔고, 덕분에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도 충분히 되어있었다. 그들의 병력, 정예, 주의할만한 전사와 주술사들의 목록까지. 충실한 카울라디의 노예들은 그 이름 한 글자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덕분에 적의 전력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대 주술사, 악식가 눌락과 그의 주술사역마. 저것은 한때 [배를 삼키는 입]이라 불리며 금기와 비슷한 취급을 받던 생물이었으나, 당시 10대였던 눌락에게 사로잡혀 그의 종복이 된 괴물이다. 비록 눌락 또한 그 대단한 재능으로도 완전히 복속시키지 못하고 그것에 융화되어 끝없는 허기에 시달리게 되었으나, 그것만 해도 눌락이 얼마나 대단한 주술사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일화였다.
저것의 난동은 막을 수 없고, 주술사들을 투입해 막는다 하여도 주술 인력의 체력 손실이 너무 커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 괴물도 약점은 있지.’
몇백 년은 더 살았을 영물에 가까운 생물인 주제에, 끝없는 허기에 허덕이며 짐승처럼 행동한다는 것. 저것은 쉽게 통제할 수 없다. 그저 가장 가까운 적의 앞에 밀어 넣어 허기를 채울 뿐. 그렇기에, 오직 전열밖에 공격하지 못하는 용도가 한정된 병기.
“전열은 애초에 운용 병력만 간신히 채워둔 가짜 군선이다. 놈이 배를 불리고 마음껏 박살 내도록 내어 줘.”
그렇기에 크기만 큰 싸구려 전함에 노예, 징집병만 가득 채워 앞으로 보냈다. 한 번의 출항을 간신히 버틸 정도로 허술해 빠진 군선을 주술로 대충 엮어 서있게만 만든 것 따위 얼마든지 먹어치우라지.
이것으로 눌락의 가장 큰 전력은 허무하게 소모되었지만, 놈들은 적의 전열을 무너뜨렸다고 생각할 터.
전열이 무너진 사이. 다음으로 이어질 공격은-
쐐애애액!
‘요리사들이로군.’
선두. 눌락이 가장 총애하는 전사단. 강적임에 틀림없는 그들을 마주함에 그의 칼도 울음을 토했다.
검의 울음. 전사로서 가장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도는 시간이다.
웅웅웅웅-
팔게르는 낮게 우는 그의 애병을 쓰다듬으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 파셀리마. 적의 피를 마신 지 오래되긴 했지….”
저 멀리 하늘로 내던져진 인영 여럿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곧 그들이 즐겨 쓰는 연을 펼치고, 낙엽처럼 떨어지며 배를 향해 엉겨 붙겠지. 늘 하던 것처럼. 그들이 조사한 것처럼.
그래서, 저 훌륭한 전사들이 허무하게 죽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아서. 항상 그들에게 예정된 승리해 취해 있어서.
“상어잡이용 발리스타를 올려라!”
철컥! 드르르륵!
적의 선단은 위대하신 주군의 힘에 지연되고, 간신히 도착해도 사역마가 완전히 박살 낸 전열의 잔해에 또 한번 지연될 것이다. 본디 혼란을 틈타 빠르게 배를 붙여야 할 눌락의 선단은 요리사들의 뒤를 봐주지 못하고, 혼란을 위해 투입된 고위 전사들은 고립되어 비참하게 죽어간다. 그렇게 눌락이 회수됐어야 할 귀한 백병전 전력을 잃고, 우세했던 전력을 야금야금 잃어가며 무너져가는 사이….
‘우리의 왕께서, 왕을 알아볼 눈조차 가지지 못한 불우한 사막의 백성들을 모래로 되돌려보내시는 거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진짜 왕의 은총이란 무엇인지 보여주시면서 말이야.’
정보의 격차가 만들어낸 전술적 차이. 적을 알고 대비하는 자와, 오랫동안 잘 먹히던 전술 하나에 안주한 자에게 준비된 당연한 결말.
쐐애애액-!
팔게르는 누구보다 앞서 떨어져 내리는 전사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적을 모르는 자는 죽는 게 당연한 것이다. 자, 떨어져 곤죽이 되고 싶지 않다면 연을 펼쳐라, 눌락의 요리사들아!”
쐐애애액-!
거무튀튀한 전사는, 약 200보 거리까지 다가와서도 감속하지 않고 떨어져 내렸다.
“후후후후. 아직도 늦추지 않다니, 담이 좋은 전사로군! 직접 검을 맞대어보고 싶을 정도로….”
쐐애애애액!!!!
100보.
“….아직도?”
그의 예상과 달리, 속도를 늦추기는커녕 멋들어진 포물선을 그리며 가까워져가는 점. 그 모습은 침투하는 전사라기보단, 검은 포탄에 가까워 보였다.
50보.
웅-! 웅웅웅웅웅웅-!!!
그의 애병은 단순히 우는 것을 넘어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모습에, 팔게르는 슬슬 뭔가 잘못되어감을 느꼈다.
“부관, 부관!!! 저, 저 전사는 누구인가!”
“모, 모르겠습니다! 기록에 없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가! 전신을 검게 물들이는 주술이라니! 저렇게까지 특색있는 전사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돼!”
이미 발리스타의 사격 각 안쪽까지 날아든 전사. 형체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모습에 팔게르는 시미터를 뽑아 들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있던 그것이 팔다리를 펼치는 모습이 보였다.
“전사단 앞으로! 선원들은 충격에 대비하라! 인간 포탄이다!”
“충격에 대비하라! 방패 앞으로!”
철컥! 철컥!
훈련된 전사들답게 착탄지점에 정확히 서서 자세를 낮추며 방패를 들어 올리는 전사들.
충돌이 가까워지자, 생각보다 더 커다란 몸집의 전사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흐우우오오오올리이이이—-』
“노, 놈이 손을 들었습니다!”
“뭔가 주문을 외운다! 주술 방호를 끌어올려!”
적이지만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단련된 육체. 무슨 주술을 사용했는지 검은 광택이 번들거리는 몸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런 대단한 전사를 일개 포탄처럼 소모하다니. 악식가는 도대체 어디까지 미쳐버린 것인가….’
팔게르는 훌륭한 전사의 비참한 최후를 예상하며 칼을 뽑아들었다. 충돌하기 전, 그의 병기술로 머리를 베어줄 참이었다. 비록 적이지만 초계와 같이 목숨을 버린 전사에 대한 예우로서.
그와 영혼이 연결된 시미터, 파셀리마가 허공으로 떠올라 날아드는 검은 전사의 목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푸욱!
워낙 목이 굵어 잘라내지 못하고 반쯤 베어내는 데 그친 그의 칼날을 보며 팔게르는 탄식했다. 결국, 수급을 남기지도 못하고 뭉개지겠구나, 싶어서.
꾸아아아악-!
“….음?”
팔게르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충돌 직전. 목이 반쯤 잘린 전사의 팔과 어깨가 더욱 부풀어 오르며 깍지낀 두 손이 휘둘러지는 순간이었다.
『메테오오오오-!!!!』
쑤아아아악-!
쩌걱-
훈련된 전사 팔게르의 눈에는 보였다. 목이 반쯤 잘린 검은 전사의 입꼬리가 움직이는 것이.
악마처럼 웃는 그것의 주먹이 그의 앞을 막아선 전사의 방패와 맞부딪치고, 방패와 함께 그것을 든 전사가 치즈처럼 뭉개지며.
그 뒤를 받친 전사들이 포탄처럼 튕겨져 날아가고, 아무런 저항도 없었던 것처럼 마저 휘둘러진 두 주먹이 마침내, 갑판에 닿는 순간.
쿠아아아앙!!!
엄청난 충격이 폭발하며, 거대한 전함의 뱃머리가 통째로 터져나가는 모습이.
비산하는 나무 파편과 여력에 터져버린 모래 속에, 그들보다 배는 커다란 기함이 일격에 폭발하는 것을 본 선원들이 혼란에 빠졌다.
“으아아아악!”
“기함이! 기함이 당했다!”
“투석 공격에 대한 주술 방호는 완벽할 텐데! 어째서!”
“닻을 풀어라! 배가 넘어간다!!!!”
….챙강.
“이럴 수가. 나의 무기, 파셀리마가. 으으으으….”
뱃머리에서 튕겨 나가 메인 마스트와 충돌한 팔게르는 힘없이 부러지는 그의 애병, 파셀리마를 보며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핏물을 삼켰다.
맨손으로 군함을 쪼개는 전사라니. 도대체, 도대체….!
….쿨럭!
“….누구냐. 도대체 어디서, 어디서 너와 같은 전사가….!”
저‘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대단한 재생 주술각인을 새겼다 한들, 목의 반이 넘게 잘리고도 저런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충격과 함께 피어오른 먼지 속에서 거대한 체구의 인형이 그를 향해 걸어왔다.
보통 사막 사람들이 입는 주름지고 하얀 옷에, 치수가 작은지 밖으로 많이 드러난 광택 있는 검은 팔과 다리. 갈고리처럼 날카롭게 선 손끝. 그리고-
“아우우우, 삭신이야. 온몸의 관절이 역으로 뒤틀리는 건 또 참신한 경험이구만.”
“….뭐? 피막 같은 걸 만들어서 활강하면 아니었냐고? 아니 나는 하이드 너랑 달리 그딴 걸…. 어… 이제 할 줄 아나? 쩝. 한번 해볼걸.”
….그리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목소리.
덜컥-
“크으으으-”
“어디보자…. 다른 애들보다 옷이 좀 화려한 것이…. 지휘관인가? 잠깐 실례.”
“으으으, 으어으으….”
“억울해하지 마쇼. 루팅은 승자의 권한이요, 의무다 임마.”
팔게르는, 도대체 무슨 주술을 써야 저렇게 인간 같지 않은 모습이 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 떠오르는 것은 하나.
‘눌락이 엄청난 것을 감춰두고 있었다. 전하께, 전하께 알려야….’
그가 말했던 것처럼, 모르는 이는 당할 수밖에 없는 전장의 공식과,
그들이 전혀 모르고 있던 적의 존재. 마지막으로, 그의 영원한 주군. 카울라디님을 위한 충정.
팔게르는 허리가 부러져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부러진 팔을 억지로 움직여 그의 허리춤에 걸려있을 뿔피리를 더듬었다.
더듬. 더듬더듬.
‘이….런….’
없었다. 지휘관용 뿔피리가. 그것뿐만 아니라 그의 인장, 모자, 외투부터 겉옷까지 어느새 속옷 한 장 남기고 모조리 검은 전사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어, 어느새….!”
“아, 좀 빌립시다. 막 날뛰기엔 힘을 좀 아낄 필요가 있어서.”
“끄으으으….!”
‘제압하자마자 소지품을 모두 압수하다니….’
지휘관에게 주어진 연락용 뿔피리도. 비상 신호용 봉화도 모두 쓸 수 없게 된 것을 본 팔게르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저 강인함. 제압된 적을 상대로 방심하지 않고 연락을 원천차단하는 치밀함. 강인함과 냉정함을 두루 갖춘 완성된 살육자의 모습일지니. 아아, 나의 왕이시여….’
“주의….하소서….”
털썩.
팔게르는 원통하다는 듯 눈을 부릅뜬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의 마지막 시선에는 만족을 모르는 살육자가 아직 부족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만이 잔상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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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그런 그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그래도 적인데 주머니 털린 게 그렇게 억울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냥 죽어서 억울한 것 치고는 사연이 많은 눈빛인데. 역시 옷은 놔둘걸 그랬나.”
[주변에 전부 자기 부하였던 사람들 뿐인데, 명예에 죽고 사는 전사가 속옷바람으로 맞아 죽었으니 억울할 만하지. 봐, 죽어가면서도 막 뭐라 하잖아.]“주….흐라? 시발 뭐 저주같은 거 걸린 거 아냐?”
[잘린 목 단면 한번 살펴봐. 저 새끼들 뇌에 뭐 쳐넣는 거 보니까 공격에 저주 같은 거 심어서 쑤셔 넣었을 수도 있겠어.]“으, 징그러운 새끼.”
물론 팔게르의 그런 충정 따위 알 바 아닌 교수는,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털어내며 죽은 그의 시체를 걷어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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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던져져 얼떨결에 배 한 척을 박살내버린 교수.
전쟁의 시작치곤 참으로 얼떨떨한 스타트였지만, 가만히 숨을 돌리며 전황을 살펴보니 그렇게 마구잡이로 진행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눌락 녀석, 아주 생각 없이 던지고 본 것은 아니군.”
떨어진 위치도 위치지만, 그를 던져올릴 때 염력으로 허리춤에 걸어준 장비 또한 그가 꽤 많은 것을 생각하고 교수를 내던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죽과 단단한 뼈 같은 것을 연결해 둘둘 말아놓은 물건.
비록 교수는 그냥 맨몸으로 때웠지만, 원래의 용도는 그의 뒤쪽, 뒤따라 던져진 이들과 같이 사용하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휘우우웅-
펄럭-!
“위대한 사막의 로드를 위하여!”
“전사 살라딘이 기함을 침몰시켰다! 우리는 양익으로 갈라져, 혼란을 가중시킨다!”
“카무트 클랜의 전사들이여! 강하한다!”
쐐애액!
쐐애애액!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다, 돌연 제비 떼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둘로 갈라지는 전사 무리.
“….졸라 멋있네.”
[우린 왜 저렇게 못했을까?]“그러게.”
잘못들은 게 아니다. 무려 강하부대다 강하부대. 비행기도 낙하산도, 하다못해 높은 언덕도 없는 사막의 전장에서 강하 부대를 운용하다니.
주술, 투석기, 발리스타 기둥 따위에 묶여 내 뒤를 따라 날아든 눌락의 전사들은, 내게 지급된 장비와 비슷한 가죽덩어리를 확 펼치더니 그대로 유유히 속도를 늦춰 적선에 착착 내려앉았다.
낙하산은 아니고…. 굳이 비교하자면 연과 행글라이더를 합쳐놓은 형태와 유사한 장비였다. 카이트 서핑할 때 쓰는 그런 연과 같은 형태라고 해야하나.
사막의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연. 그것만 해도 대단한데, 단순한 착지용 장비가 아닌 듯 전사들은 떨어져내리며 그 연의 길쭉한 손잡이를 적선의 조향 날개와 돛에 쑤셔 박았다. 높은 하늘의 강한 바람을 탄 연이 둥글게 부푼 돛을 잡아당겨 마구 흐트러뜨리고, 조향 날개가 제 역할을 못하게 에어 브레이크의 역할을 한 결과.
“조타가, 조타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러다 충돌하겠어! 연을 끊어라! 줄을 잘라!”
“제기랄, 뭐가 이렇게 질겨!”
“눌락의 전사들이 연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자식들, 보통 놈들이- 으아악!”
“[요리사]다! 눌락의 정예부대가 침투했다! 노예 전사단을 불러와!!”
한쪽으로 쏠린 조향날개에 배가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섬세하게 조정돼야 할 돛이 엉뚱한 방향으로 부풀어 지들끼리 충돌하고 아주 난리가 나셨다.
사막 밖에서 온 나로서는 짐작도 하지 못한 대형 가죽연의 용도. 사막에 살며, 그 환경에 어울리는 전략과 지혜를 짜내어 만들어진 공격법.
“사막의 전투라…. 나름 보는 맛이 있구만.”
교수는 아직 풀리지도 않은 그의 연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아마 눌락이 기대한 것도 저들과 같은 역할이었겠지.
물론, 장비 사용법 따위 숙지하지도 못하고 던져진 교수의 공격은 사나이의 웅심을 자극하는 리프-어택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말이다.
———
– Jokass : 우우. 내지 전사 살라딘은 그런 세련된 전투 같은 거 모른다. 살라딘, 때려부순다. 우우.
– takealook : 보통 성자가 기적을 내릴 때, 광명의 성자님은 그 한몸을 바쳐 두 손으로 운석을 내리신다!
– 흥안만두 : 장비는 나약한 자들이나 쓰는 것!
– 홀리 : 홀리- 메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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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방 사람들의 놀림에 교수는 반투명한 활자 창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건 조건반사였단 말이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롤러코스터 내리막에서 눈썹이랑 볼살이 부르르 떨리고, 입 벌리면 폐에 바람이 훅 들어오면서 저도 모르게 ‘우아아아!’ 하고 탄성이 나오는 그런 거.
[그렇담 더 문제로군. 네 공격 이미지에 ‘홀리’가 기본 장착되다니. 대주교가 들었으면 물구나무서서 발로 박수를 치겠어.]‘윽. 최근에 로 하람한테 좀 도움받은 게 있어서 그런가.’
교수는 투덜거리며 그의 손에 작살 난 배와, 속옷바람으로 널브러진 전사를 둘러보았다.
보통 군선보다 조금 더 크고, 외장도 조금 더 두터운 배.
보통 전사보다 더 화려한 옷과 터번을 쓰고, 딱 봐도 연락책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들고 있던 놈.
배가 으스러지며 피어난 먼지가 가라앉자, 안 그래도 혼란한 가운데 더 혼란해 보이는 주변의 적선들.
‘유능한 돼지 친구가 제구력도 수준급이군. 꽤 중요한 배를 떨궜나 본데?’
덕분에 아주 한 축이 무너져버린 적 선단과 신호용 뿔피리를 보며 교수는 아주 흡족하다는 듯 웃었다.
보아하니, 침투조의 임무는 테러와 파괴 공작을 통한 혼란. 단단한 적의 전선에 틈을 만드는 것.
“그런 것 하면 또 내가 전문 아니겠어?”
교수는 그의 손에 들어온 뿔피리를 만지작거리며 메시지 마법의 수인을 맺었다.
-찰팍.
“아아. 락샤샤 들립니까. 락샤샤씨-”
[교수? 갑자기 기척이 사라져서 어디 갔나 했는데…. 지금 어디 실까요?]“어…. 어쩌다 보니 적진 한가운데 들어와 버렸어.”
[….적진의 중심이라는 곳이 ‘어쩌다가’ 들어가고 그런 장소는 아닐 텐데요? 분명, 여기서 적을 대기하실 계획이라고 들었는데.]“음….”
[혹시, 당신은 발성 기관과 의사 전달기관이 별개인 걸까요? 어떻게 입으로 내뱉은 말마다 다 어기실까….?]“으음….미안.”
할 말 없군. 내가 생각해도 ‘같이 이 자리를 지키자!’ -고 먼저 말했던 놈이 갑자기 사라져선 ‘어쩌다 보니 적진 한가운데 와버렸어.’ 라고 하면 어이가 없을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저쪽에서 전투 소음이 안 들린다는 것이다. 아직 뮤트의 습격은 없는 모양.
“그쪽 전황은 어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배들이 전부 모래톱에 걸린 것처럼 기우뚱거려서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에요. 조금 전에 침몰한 배들도 전속으로 전진하던 중 제동이 걸리며 제 힘을 이기지 못해 부서진 것 같아요.]“그건….좋지 않군.”
눌락의 선단이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나는 몰라도, 다른 침투조 전사들은 전멸할 것이다. 원래 전사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동안 원거리 견제 없이 접근한 눌락의 선단이 배를 붙여 대치중인 ‘요리사’들의 뒤를 열어주는 그림이었을 테니까. 선단의 속도가 늦춰지면 결국 혼란은 회복되고, 고립된 전사들은 죽고, 회수됐어야 할 고급전력을 허무하게 날려버린 아군의 백병전 능력은 현저히 감소한다.
“….락샤샤. 혹시 카울라디 쪽 신호체계 좀 알아놓은 것 있어? 기함에서 좀 쓸 법한 걸로.”
[선상 지휘관 신호? 그야, 기초적인 명령 정도는 첩로를 통해 알아뒀지만. 따로 제작된 주술이 걸린 뿔피리를 이용하는 거라, 소리를 통한 혼선은 어려울 거예요? 지휘관들도 공격을 당하면 그것부터 제 손으로 부숴버리는 터라 입수하기도 쉽지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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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났어요?]”
역시 우리 아가씨는 눈치도 빠르셔라.
“어…. 이것도, 어쩌다 보니?”
[방금 그 말은, 달그림자 최정예 요원들이 갖은 수를 써도 박살난 조각만 획득할 수 있었던 작전들이 ‘어쩌다 보니’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말일까요?]진짜 어쩌다 보니 얻은 걸 어쩌라고.
[운이 좋아서 무능한 지휘관의 배를 습격한 걸까요? 아니…. 카울라디가 그런 사람을 쓸 리가 없는데. 혹시 내가 모르는 카울라디 세력 속 낙하산 무리가….]“아니, 그건 아닐 거야. 아마도.”
마지막까지 원통하다는 눈빛을 하던 속옷바람의 지휘관을 떠올린 교수는 그를 위해 잠시 묵념해주었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명장이라도, 설마 ‘목이 6할 정도 잘려나간 검은 인간 덩어리가 살아 움직여 일격에 거대한 군선을 박살낸다-’ 는 정신 나간 가정은 할 수 없었을 테니까.
[확실히 전투력이 성장한 것은 느껴지네.]‘그렇지. 원래대로라면, 이런 키 아이템은 정신 나갈 정도로 복잡한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거니까.’
힘. 전투력. 가장 단순한 능력이자, 클리어를 향하는 제일 단순한 왕도.
이 뿔피리는 투란에서 무능력했던 교수가 온갖 쌩쑈를 하며 전황 짜깁기를 한 끝에 샬롯이 던져준 그것과 비슷한 느낌의 아이템이었다.
물론 배경 레벨의 차원이 다르니 여기서 이걸 얻는 방법은 온갖 첩보와 협잡, 거래와 납치가 판치는 무시무시한 난이도의 퀘스트가 되셨겠지만.
보다시피, 전투력이 일정 선을 넘어가면 그냥 이렇게 손에 굴러떨어지기도 한다.
덕분에 천류제의 막가파 플레이가 아슬아슬하게 굴러갔던 것이고.
“아무튼 손에 넣었으니 써야지. 신호체계 불러줘 봐. 바로 익혀서 쓸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걸로.”
락샤샤는 대수롭지 않은 듯 평온한 교수의 어조에 어이가 없다 못해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옆에서 대화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던 오트만과 노툼, 이드라실은 현실과 상식의 괴리감에 발버둥 치는 락샤샤를 보며 흐뭇한 눈빛을 나누었다.
[….좋아요. 우선, 긴 음과 짧은 음으로 나누고, 앞부분은 대상을, 뒤는 명령을 나타내는데….]그렇게, 싱글벙글한 일행들 사이에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락샤샤가 교수에게 신호체계를 일러주고.
잠시 후, 모래 속에 처박혀 위로 떠버린 배의 후미에서 힘찬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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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우- 부우- 부우우우우-』
전장의 소음 속에서도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뿔피리의 울림. 그리고,
솨아아아아-
그 명령에 맞춰, 자로 잰듯한 전열을 벗어나 앞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일부 선단들.
보통 배라면 이 정도로 빠르게 대응하지 않겠지만. 카울라디의 병단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어디 보자…. 카울라디 선단은 지휘관, 전사, 주술사계통 빼고는 싸그리 징집병에 노예병이었지?”
정예 전력은 충분하나, 단일 세력이다 보니 연합군에 비해 일반 병과의 물량이 상대적으로 빈약할 수밖에 없었고, 카울라디는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다수의 민간인을 착출해 징집병으로, 노예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건 ‘두 번째 걸음’ 오아시스 도시에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항이다.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그들이 이렇게 완벽하게 정렬할 수 있는 것은, 분명 놈들이 즐겨 쓰는 주술에 의한 통제가 사용되었기 때문이겠지. 사람은 말을 안 들어도, 체스 말로 만들어버리면 들어다 놔버리면 되니까.
사실상 노동력을 가진 꼭두각시나 다름없게 만들어져 명령에 복종하는 징집병들.
그런 그들에게, 개인 사고라곤 못하는 인형들에게 각인된 주술 방식으로 명령의 혼선을 부여하면 어떻게 될까?
『부우우- 부우우우-!』
“서, 선장님! 전방에서 진군 명령이….!”
“웃기지 마라! 이 상황에 갑자기 왜 우리에게만 진군 명령이 내려진단 말이냐! 배를 멈춰!”
“노예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기함의 명령권은 저희가 가진 것보다 상위에 있습니다!”
“제기랄! 뿔피리 이리 내놔!”
『부우우우! 부우! 부우우-!(전열 이탈 금지, 돛을 접고 노를 멈출 것)』
『부우우- 부우우우-!(전속전진. 최고속도로)』
“으극, 으그그그…”
“으, 으어어…”
“이 빌어먹을 노예 자식들!! 노를 멈춰! 멈추라니까!”
“으,으으으으….”
“전진…. 전진….”
“제기랄! 노예들이 망가졌다! 주술사를 불러와! 주술사!!!”
도무지 말을 들어 먹지 않는 노예들의 모습에 선장은 분통을 터트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저, 전면전까지 조금 시간을 벌어두었다 하여, 주술사들은 카울라디님의 의식에 차출되어 본선 주변으로….”
“이런…. 망할 쓰레기 같은 일이!”
서걱!
선장은 명령의 혼선 속에 고장 난 기계처럼 노를 젓는 노예를 노려보다, 칼을 뽑아 그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노예의 목이 떨어지고, 모래를 젓던 노 하나가 멈췄다.
“전부 죽여! 이대로 가면 전속력으로 전열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희 배의 운용 인력이!”
“방법이 없다! 선장 명령이다! 전부 사살해!”
서걱!
스걱, 서걱!
갓 들어온 징집병도 정예병과 같이 완벽하게 움직이게 만들어준 체계. 주술을 통해 철저히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만들어진 징집병들.
소모품 하나하나에 섬세한 주술을 세길 필요가 없어 단순한 복종각인만 새겨진 그들은, 그렇게 뒤섞인 명령 속에 앞으로 나아가다 상관의 손에 허무하게 죽어갔다.
교수가 위치한 기함. 두 쪽이 되어버린 배의 후열 곳곳에서 이러한 참상이 반복되고 있었으며.
전열의 소란을 눈치챈 인근 다른 기함에서 제대로 된 명령을 통해 노예들의 이런 소동을 멈췄을 때는 이미 군선의 열 한줄 전체가 운용 인력을 대부분 잃은 움직이지 못하는 배로 전락한 뒤였다.
카울라디의 선단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은 전열에서 날아든 비보에 그의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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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노예와 잡병으로 채운 선단, 눌락의 사역마에 의하여 돌파.
2열. 기함 완파. ‘요리사’라 불리는 적의 정예 병력의 파괴 공작에 조타와 돛의 통제권을 잃고 저들끼리 엉켜 기동력 상실. 치열한 백병전 중.
3열. 운용 노예를 모두 잃고 그대로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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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도무지…. 전하께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 고개를!”
“아, 아직 그리 치명적인 피해는 아닙니다! 전열은 버리는 패였으며, 2열은 조금 뼈아픈 손실이나… 사, 삼 열은 다시 노예를 채우면 충분히 운용 가능합니다! 의식에 방해될 요소도, 적들의 진군을 막을 수단도 충분합-”
서걱!
부관은 그의 말을 끝맺지 못했다. 물론 총 여섯 열, 각 열에 50대의 군선으로 이루어졌으며 뒤로 갈수록 강한 전사와 주술사가 포진한 카울라디의 선단에 있어 앞서 말한 피해는 전쟁에 있어 충분히 예상 가능한 피해였으나.
“담벼락 하나 놓고 수성전을 하는 꼴이 되어버렸군….”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열이 피해 하나 없이 모두 정지해 버렸다는 데 있었다.
유기적인 기동이 중요한 사막의 전투에서, 정지한 아군으로 이루어진 벽이 만들어졌다는 것.
그것은 당장 전투 중인 두 번째 열로 지원 갈 아군의 길이 막혔으며, 적들은 우세한 물량을 토대로 수월하게 밀고 들어올 길을 얻었다는 뜻이다.
만약 이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라면….
“눌락. 너무나도 뛰어난 재능을 시기한 사막의 저주에 걸렸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참담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로구나.”
초전의 패배치고는 너무나도 뼈아픈 손실.
같은 지휘관으로서 어디까지 내다봤는지 상상도 못 할 수준에 적장을 향한 존경심이 절로 솟아났다.
그리고, 동시에 아쉬움이 떠올랐다.
그 대단한 전략가가, 오늘 이 전장에서 비참하게 죽을 테니. 그들이 놀란 것의 몇 곱절을 해도 모자랄 경악과 함께.
“….공세를 포기한다. 전 병력에게 하달하라. 공세를 포기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시간을 끌도록.”
전사로서, 카울라디의 믿음을 한몸에 받아 총사령관의 위치에 오른 이로서 최악의 불명예였지만 사령관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명예 따위. 주군을 위해서라면 개먹이로 던져줄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주군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
“의식이 다가온다. 아무래도 사막은…. 주군께서 그분의 손으로 직접 승리를 거머쥐시길 원하는 듯하구나.”
결국, 모든 것은 하나의 뜻으로 이어질지니.
인간의 작은 다툼에서 벗어난 위대한 뜻을 떠올리며 사령관은 눈을 감았다.
“….지혜가 하늘에 닿은 적장이여. 애닲구나. 너희는 전쟁을 하러 왔으나, 우린 전쟁 따위를 바라보고 있지 않으니.”
인간의 지혜. 무력. 주술과 그 모든 것이 다 무가치해지는 진짜 권위.
참된 사막의 힘을 목도한 사령관의 눈은 맹신자의 그것처럼 음울하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왕을 알아보지 못한 자들은 그 끝에 가서야 진실을 마주하며. 끝내 가라앉아, 그렇게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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