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27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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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울라디. 3열 방책화 및 후퇴.”
탁.
“눌락 선단. 수준 높은 항사꾼이 다수 포함된 전력. 주술 통제되는 카울라디 군의 명령 전달체계와 연합군의 통일되지 못한 명령체계가 맞물려, 동수.”
탁.
“형님과 니그미. 눌락 기함과 대치 중…. 이건 놀랍군. 그렇지 않니, 버디? 눌락이라는 주술사가 형님과 동수를 이룬다니. 적의 독특한 방어체계가 한몫을 했어. 같이 간 아군이 생각만큼 죽어주질 않아서, 계산보다 형님의 힘이 조금 덜 발휘되는 모양이야.”
부그르륵-
“음? 아니…. 아니야. 역시 아버지가 이렇게 될 것을 꿰뚫어 보고, 나의 형제들을 죽이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막아낼 전력을 뒤에 남겨두셨다고 보는 게 맞겠지. 넌 언제나 그분을 나쁘게만 표현하는구나, 버디.”
딱,딱!
따각! 딱딱딱!
작고 연약한 손이 조약돌을 움직이며 하는 말에, 버디는 불안한 듯 연신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팔카투스가 태어나고, 북부의 추위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연약한 그 모습에 여왕이 특별히 만들어준 그의 보호자. 살아있는 외피, 버디.
팔카투스의 태반에서 태어난 뮤트는 달칵거리는 발소리로 이 장소에 대한 불만과 그의 성난 마음을 대변했다.
버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는 떠나왔나? 북부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위험한, 여왕보다 더 약한 몸을 지닌 그가 어째서 안전한 북부를 떠나 이런 험지까지 왔단 말인가? 심지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신의 속에 들어가는 것조차 거부하면서 자해 행위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는가?
“몇 번을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하긴, 나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지금껏 아버지가 남긴 발자국이나 쫓는 신세였던 것이겠지.”
탁.
“내겐, 언제나 여유가 있었어. 어머니가 내게 주신 힘. 많은 형제들의 몸과 눈을 빌어 현장을 돌아볼 수 있었던 탓에, 순수하게 머리를 쓰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지. 죽는다 한들, 나는 여전히 안전한 북부의 둥지 속에 있으니. 잠시 죽음의 감각을 흩어버리고 다른 몸에 들어가면 되니까.”
탁.
“영혼술사의 손에 내 진정한 목숨이 떨어질 뻔했던 그 날, 하녀의 종탑에서 가까스로 도망쳤을 때 깨달았단다. 아, 생각으로만 움직일 수 없는 게 있구나, 하고. 그땐 정말 겁에 질려서 아무 생각도 안 들었거든. 생의 의지, 생명체로서 살고자 하는 본능이 내 몸을 움직여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러니, 나의 여유는 그만큼의 방심이었던 셈이야. 아버지가 항상 위험천만한 현장을 누비며 온몸으로 받아들이던 그 감각을 나는 방치하고 사용하지 않고 있던 셈이지. ”
탁. 탁. 탁. 탁.
팔카투스의 연약한 팔이 조약돌을 늘어놓을수록, 뇌리에 새겨진 전장이 한 걸음씩 움직였다.
“각오. 아버지가 언제나 등에 이고 싸워나갔으며, 내게 부족했던 것. 그런 각오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수밖에 없었어.”
….딱, 딱딱!
“….그래. 내 보호자인 너에겐 미안한 일이지.”
쿠웅- 쿠우웅-
저 멀리, 메아리처럼 전장의 소음이 들려온다. 다른 형제의 귀를 거치지 않고 그의 고막을 직접 두드리는 소리. 몸에 맞지 않는 환경에 붓고 갈라지는 몸.
마른 논처럼 갈라진 피부가 고통을 호소할수록, 타고난 감지력이 다가오는 위기에 경종을 울릴수록.
그리하여 마침내. 쫓아오는 생의 감각이 선연하게 느껴질수록.
탁. 탁.
타들어가는 생명에 각오가. 말을 움직이는 손끝에 확신이 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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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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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몰랐다면 모르겠으나. 알아버린 이상 절대로 질 수 없었으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다.
처절하게. 발버둥 치듯, 간절하게.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탁.
“….앞으로, 한 수.”
팔카투스는 앉은 채로 무너져가는 그의 몸과 피 웅덩이 속에서 말을 움직였다.
다른 모든 말과 떨어져 앞으로 나아가는 말. 무수한 조약돌 속 유일하게 인간의 형태로 깎아낸 그것을 내려다보는 팔카투스의 눈은 심연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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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콰드드드드득!
“이게….!”
쩌걱!
왼손이 전사의 방진을 무너뜨리고, 오른손은 제비처럼 선회하는 무구를 잡아 제 주인의 몸통에 쑤셔 박는다.
단기 돌파. 그것도 적이 시간을 끌겠다고 작정한 게 한눈에 보이는 상황인 만큼 교수는 힘을 아끼지 않고 발휘하고 있었으며, 그 여파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군선과 인간의 파편으로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재앙과도 같은 진격의 주인공인 교수는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팔카투스 그 자식, 역시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해도 엿같아지도록 판을 짜놓은 거였어!’
전사처럼 싸우되, 머리는 특수전을 지휘하던 지휘관의 냉철한 계산을 담고 있었다.
돌파 속도와 적의 단단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순식간에 소모되는 교수 개인의 자원, 재생력.
마치 피가 말라가는 듯한 재생력의 소모에 교수의 목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팔카투스의 양자택일은 어느 쪽을 밟아도 지뢰인 전장이었다.
그저, 뮤트를 개미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눌락의 기함 쪽에 쏟아부은 것뿐이지만.
덕분에 나는 뮤트가 참여한 전장에서 강력할 수밖에 없는 나의 전투 유지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뮤트가 넘치는 눌락 진영으로 되돌아갔다? 그럼 그쪽 전황은 유리하게 이끌며 뮤트의 군세를 소모시킬 순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주 대놓고 ‘우린 시간 끌 거에요~’ 하고 있는 적에게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시간을 넘겨주는 꼴이 된다.
되돌아가면, 갔다 오는 시간이 적에게 넘어가고.
그냥 돌파를 선택하면, 내 전투력 소모로 혼자밖에 없는 전장에서 별 볼 일 없는 놈으로 전락하고.
분명, 내가 뮤트의 피로 회복한다는 것을 아는 놈이 만든 전장이다. 단순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며, 단순하기에 쉽게 어그러질 틈이 없는 전략.
우지직-
투화아악!
반파된 군선에서 돛대를 뽑아 옆에 있던 군선의 옆구리를 쑤셔버린 뒤, 그 여파로 잠시 숨돌릴 틈을 얻은 교수는 지금도 등이 따끔할 정도로 느껴지는 눌락 진영의 전투를 살펴보았다.
눈을 돌리지 않아도 느껴지는 위압감. 마치 공간을 억지로 비틀어 쪼개는 듯한 전투음이 눌락의 기함에서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두 개의 거대한 물기둥이 사납게 휘몰아치는 속에서 쉼 없이 몰아치는 붉은 번개는 테르마키안의 힘과 눌락의 주술이 반발하며 만들어진 힘의 파편일 것이다. 그 파편만으로도 군선의 돛대가 부러지고 전사들이 찢겨나가는 모습.
이미 눌락의 선단은 저 자리에 발이 묶였으며, 지금은 잘 버텨주고 있지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쩌어엉!
“카울라디 님을 위하여!”
“다시 돌아올 진정한 사막 왕국을 위하여!”
그런 교수의 급한 마음에도 적의 진영을 파고드는 속도는 갈수록 느려질 뿐이었다.
꽈아아앙!
지이이이익- 우뚝!
“….막아?”
“아무리 너의 용력이 대단하다 할지라도, 전사의 신념을 모조리 꺾진 못한다!”
카울라디의 선단, 다섯 번째 열부터는 그 유명하신 노예 전사단이 교수를 맞아주었다.
온갖 신체 강화주술을 떡칠하고 왕궁 대문만 한 철제 방패를 들고 있는 전사들.
볼링핀처럼 와르르 무너진 전사들이 눈을 빛내는 순간 철새 무리처럼 비행하던 그들의 단짝, 영혼 무구들이 끔찍한 파공성과 함께 교수의 등뒤로 날아들었다.
그대로 뒀다간 척추가 발라질 수준이라 잠시 막아내기 위해 손을 쓰면 순식간에 회복한 전사들이 일어나 또다시 그 망할 방진을 짜고 무구를 날려대고 있었다. 훌륭한 방어력에 상대가 공세에 집중하지 못하게 다각도에서 찔러 들어오는 예리한 공격까지.
심지어 쳐날린 방패마저 허공을 선회하여 전사들의 손으로 돌아가는 게 저 방패들 또한 전사 개인의 혼이 깃든 무구인 모양이다.
며칠 전 카울라디의 노예로 잠입할 때 그의 뇌리에 강제로 주입된 기억 속 ‘고대 사막전사 상식’에 따르면, 저건 완전히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전사에게 있어 무구란 그 배우자 이상 가는 평생의 동반자이며, 두 개 이상의 무구에 혼을 담는 것은 양쪽 모두에 대한 외도에 가까웠다. 그런 짓을 했다간 사막 전사로서 이능을 모두 잃고 평범한 노예병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식적으로는.
“이…. 쥐며느리 같은 새끼들이….!”
교수의 눈이 허공을 휙휙 날아 되돌아오는 방패에 꽂혔다.
저 방패. 구불구불한 테두리에 커다란 해 모양의 양각이 새겨진 물건. 처음 보는 물건이지만 대단히 낯이 익었다.
‘저거 기억 속에 그거지?’
[어. 조작된 고대전사가 잘 때도 등에 메고 자던 그거.]전사 노예를 만들 때 주입하는 조작된 기억. 그 기억 속 전사가 쓰는 애병이 바로 저 방패였다. 세뇌되지 않고 하이드가 따로 긁어모은 기억으로만 봤는데도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리는 익숙함.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만들어진 방패는 고대 전사의 기억이 심어진 전사 노예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들의 기억 속에선 전생의 그들이 다루던 애병이 바로 저 방패니까.
현생에서 다루던 그들의 애병 외에도, 저 방패를 다루는 것이 저들에게 있어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 까닭이었다. 도대체 사막 전사들이 다루는 신비의 정체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그것도 정신적인 것에 연관이 있는 기술이었으니까.
떠엉-!
촤아아악!
교수는 다시 한번 그의 일격을 막아내고 뒤로 밀려나는 전사단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의 엿같은 수비력도 수비력이지만, 그것보다 저들의 존재 자체가 의미하는 것이 불쾌할 만큼 사납게 뇌리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사막 전역에서 긁어모은 최고의 전사들. 그들에게 충성심을 심어 넣고, 그에 더하여 주술적 세뇌로 다른 무구에 전사로서 이능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기까지.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것이 군선을 쳐날리는 괴물의 발목마저 붙잡을 수 있는 수비적인 군대라니.
카울라디가 사막을 일통하기 위한 전쟁을 준비했다면 이것보다 훨씬 좋은 형태로 키워낼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사막의 전투는 배를 잃으면 제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가라앉는 해전이며, 그렇기에 이렇게 자리를 지키는데 특화된 전사들은 미친 듯이 돌격하는 괴수 하나를 막아내는 데는 주요해도, 저들끼리 주도적으로 전황을 이끌기 힘들다.
그러므로, 이들은 철저히 무언가에 다가가는 강자를 막아서기 위해 만들어진 전사들이다.
마치 이런 순간을 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애초에 침략전쟁이 목표가 아니었다.’
오래도록 준비해왔을 것이다. 아무리 세뇌라고는 해도 이 정도 수준의 전사들을, 이렇게 만들어내는 것이 하루 이틀 안에 되는 것이 아니니.
뭔가 부족한 것이 있었고, 카울라디는 뮤트 세력으로부터 그것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큰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소문이라도 내듯 왕성하게 전쟁 준비를 했다.
‘총력전에 어울리는 대규모 선단의 이동.’
‘공들여 키워낸 침략 전쟁에 어울리지 않는 병력. 듣도 보도 못한 정체불명의 살라딘을 막아내려 만든 것은 아닐 테니 누가 됐든 그들의 중심에 다가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든 노예 전사단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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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핑? 전쟁이라는 수단을, 겨우 연막으로 활용했다고?’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의 이유를 만들자면 그것밖에 없었다.
뭔가 대규모로 벌여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과 주술사라는 고급 인력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사막에 널린 눈과 귀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사막은 늘상 전투가 일어나는 곳이고, 누구 하나가 일을 벌리면 그걸 방해하는 게 당연한 동네다.
그러니, 요란한 전쟁을 일으켜.
가진 모든 병력을 이끌고.
접근하는 자도, 도망치는 자도 한눈에 들어오는 너른 사막으로 나와.
저렇게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인의 장벽으로 그 어떤 방해도 파고들지 못하는 그만의 성역을 만든 것이다.
‘애초에 전쟁의 승패에 관심이 없다.’
버려진 150척의 군선과 그 위에 타고 있던 병력들. 지금 내 손에 스러져가는 정예 병력들. 전쟁은 양쪽 모두를 말려 죽이는 소모전이며, 그 무시무시한 소모 값을 메꾸는 것은 승전으로 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는 수밖에 없다.
승전이 목표가 아니라면, 지금까지 소모한 모든 것을 그저 소모품으로 날렸다는 뜻이다.
사막 최고의 자리에 앉은 자가 그야말로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준비하는 것. 카울라디도, 그의 수하들도 입버릇처럼 말하던 진정한 사막의 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쯤 되니 짜증을 넘어 두려울 정도였다.
사라진 해와 달. 그들과 공멸한 고대 용 왕국의 용들.
사막을 흐르는 모래로 만든 기이한 힘.
카울라디가 금기의 유사 한가운데서 저 많은 병력을 털끝 하나 다치치 않고 빼내게 만들었으며, 일격에 눌락 선단의 절반을 가라앉힌 그의 힘.
슬슬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사막은, 그 안에 품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두려움은 박차가 되어 교수의 행보를 재촉했다.
‘야, 하이드. 재생력 잔량 얼마나 남았냐.’
[나름 아껴 썼으니까…. 6할? 7할 정도?]‘….위로 아주 높이 뛰어서 선단 위를 건너가면…. 뒤지게 쳐맞겠지?’
[아서라. 저 날아다니는 수백 개의 칼날이 널 믹서기처럼 갈아버릴걸. 여기서 한 3할쯤 날아가려나?]‘크게 한방 갈기면?’
[오러? 확실히 별도 쪼개는 똥파워면 싹 밀고 지나갈 순 있겠지만…. 본말전도아냐? 저번에 보니까 오러 쓰면서 타들어간 육체는 단순히 다치는 거랑 차원이 다르던데. 목표는 어디까지나 접근해서 ‘겁나 수상한 놈들의 무언가’를 방해하는 거잖아. 거기까지 가는데 그런 힘을 남발했다간 숨겨둔 것을 마주할 때쯤엔 기어 다니고 있을거야.]‘그럼…. 결국, 이렇게 천천히 밀고 나가야 한다는 건가.’
[4급, 아니 5급짜리 뮤트 하나만 있었어도 이렇게 전전긍긍할 이유는 없었을 텐데.]‘그래. 뮤트 한 마리만 있었어도, 어떻게 골수까지 쪽쪽 아껴 먹으면….’
무슨 식인귀 둘의 대화 같지만, 정말 아쉬워서 하는 소리였다.
팔카투스가 짜놓은 전장은 마치 끈적한 거미줄처럼 그의 발을 옭아매고 있었으며, 두 번의 격돌로 눈앞의 전사단은 반쯤 병신을 만들어 놨지만 그 뒤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전사들과 그들을 보조하는 주술사들이 막아서고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오러를 쓰지 않는 선에서 육탄 돌격으로 뚫어내는 수밖에….’
우득, 우드득!
교수는 허벅지를 부풀리며 다시 한번 돌진할 준비를 했다. 머리 뒤편으로 무언가 묵직한 것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눌락의 선단에서 투석기나 발리스타로 지원 공격을 시작한 모양이다.
군선을 쪼개는 주먹도 막아내는 놈들에게 그게 먹힐까 싶지마는,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충돌 시점에 맞춰 돌진을 준비하는 그때.
퍽!
퍼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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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르륵.
떨어진 것이 무언가 단단하고 날카로운 정물이 아니라, 어지러운 듯 버둥거리는 생물인 것을 본 교수의 눈에 의문이, 감탄이, 곧이어 환희가 솟아올랐다.
저 먼 거리를 날아와 추락했는데 별다른 외적 손상 없이 감각의 혼란에 허우적거리는 놈.
단단한 외피, 제법 비범해 보이는 골제, 키틴질 혼합 소재의 창.
그리고, 그 강해 보이는 모습만큼이나 진한, 달콤하면서도 비릿한 놈들 특유의 혈향.
벼락처럼 고개를 돌린 교수의 눈에 두 마리 용 같은 물기둥에 휩쓸려 빨려 들어가서는 그 정점에서 마구 튕겨져 나오는 뮤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튕겨 나가지만, 대부분 이쪽을 향해 날아오다 추락하는 뮤트들. 그리고 흐름을 잘 타고 튕겨 나온 몇몇이 이곳 외에도 다른 군선 위로 날아오고 있었다.
세상에. 세상에 오트만! 이런 센스쟁이!
우득,
“팀워크 만세!”
푸화악!
환희에 찬 교수의 정권이 추락한 뮤트의 머리통을 쳐날리고, 머리를 잃은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분수처럼 군선 위로 흩뿌려졌다.
방패를 들어 빈틈없이 그 피 세례를 막아낸 전사단은 한 손으로 머리 잃은 뮤트의 사체를 들고 있는 전사의 모습에 그만 기가 질려버렸다.
사방으로 흩어진 피가, 살아 움직이듯 그의 발치로 모여들고 있었다.
피가 스며들수록 전사의 몸에 생기가 돌며,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심장이 사납게 날뛰고, 치솟는 혈압에 혈관이 툭 불거져 나왔다.
파스슥-
전사의 손에서 떨어진 시체가 힘없이 바스라지고, 그것을 보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피에 물든 전사는 그야말로 설화 속 악마, 악귀와 같은 모습이었다.
교수는, 그들이 잔뜩 움츠러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위, 위다!”
“요격해라! 저 부정한 생물이 의식에 접근해선 안 된다!”
몸이 굳었던 전사들의 한발 늦은 공격이 군선을 박차고 오른 교수를 매섭게 쫓았지만, 겨우 발목 언저리 썰어대는 정도는 충분히 소모해줘도 될 만큼의 재생력을 보급받아서 상관없었다.
그렇게 몇 겹의 군선을 뛰어넘고, 간혹 갈고리 같은 무기를 쓰는 놈을 떼어내며 도약하기를 몇 번.
“보인다!”
마침내, 무수한 군선의 장벽에 가려 보이지 않던 카울라디의 기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의 수많은 방어선으로도 부족했는지 배의 그늘막으로 갑판을 완전히 뒤덮은 거대한 기함.
겹겹이 둘러싼 군선의 돛과 그 가림막에 가려 완전히 보이진 않았지만 교수의 날카로운 시력은 그 끄트머리에 살짝 드러난 것들을 잡아내었다.
아주 오래된 생물의 유해로 보이는 상아색 골격의 일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생물의 유해로 보이는 부패한 더미와 그것에서 풀어낸 붕대 약간.
백여 명의 주술사가 동시에 외는 주문의 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서 주술의 축이 되어 진언을 외우는 카울라디.
제향의 연무 속에 두 손을 들어 올리는 그의 눈빛에 무언가 이루어낸 자의 희열이 담겨있음에 돛대를 박찬 교수가 가려진 기함 위로 날아들고.
『우리의 아비이며, 어미이며, 사막을 낳은 위대한 존재에게 고하니. 내게 가장 큰 영광을. 그대의 굴레를 벗어 내 목에 걸고, 짐을 덜어 내 위에 얹으며.』
의식의 끝자락에, 날선 흑요석 단검을 높이 들어 올린 카울라디가 비명처럼 외쳤다.
『그리하여, 창세의 힘을. 거짓된 세계에 무너져내린 그대들의 세계를 다시 사역할 힘을!』
쫘아악!
뼈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가림막이 찢어지고, 백색 불꽃이 이글거리는 주먹이 그 중심을 향해 날아드는 순간.
푸욱!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질러진 흑요석 단검이 카울라디의 심장을 찔러, 그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퍼석!
뒤이어 날아든 교수의 주먹이 카울라디의 머리를 부수고 식은땀에 젖은 주술사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부서진 그의 머리도, 몸도. 모두 모래가 되어 허물어진 뒤였다.
“오오오오! 경배하라! 왕께서, 진정한 사막의 왕으로 거듭나셨노라!”
“경배하라! 경배하라!”
“사막이 돌아온다! 사막이, 다시 고대의 영광을 되찾으리라!”
“우리 모두가 있어야 할 모습으로 되돌아가리라!!!”
울며 경배하는 주술사들과, 뒤늦게 따라 들어와 엎드리는 전사들.
‘늦었다.’
발밑의 사막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떨림은 전율로.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 등골을 훑는 서늘함으로. 마치, 저 멀리 핵구름을 바라보는 시민과 같은 감정으로 자라나며.
무언가 벌어지고 있음을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알리고 있었다.
솨아아아-
배가 가라앉는다.
아니, 배는 모래 위에 떠 있으나. 주변의 모든 것이 아래로 내려앉고 있었다.
교수의 눈앞에, 사막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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