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29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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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드러난 드래곤의 거체와 마주한 순간, 교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거, 싸우라고 만들어 놓은 놈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봐라. 누가 당신에게 ‘이종격투기 선수랑 맞다이 뜨면 누가 이김?’ 이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상대와 싸우는 자신을 상상한 뒤, 나름의 답변을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전차랑 싸우면 누가 이김?’ 이라 물으면 육중한 강철 궤도에 깔려 다진 고기가 된 자신을 상상하며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왕성이랑 싸우면 누가 이김?’
질문이 이따위면 대답에 앞서 질문이 성립하는지를 생각해야 된단 말이다.
직접 마주한 드래곤이란 그런 느낌이었다.
항거 불가의 절대자.
저걸 상대로 승산을 계산하는 것은 산맥에 주먹을 날리고 바다에 발차기를 날리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소리이며. 그것은 무턱대고 달려들어선 죽어나갈 뿐이라는 뜻이었다.
여기가 데드엔드가 아니라면 무언가 다른 방법이 있을 터.
해답은 완전무결해 보이던 드래곤이 휘청거리는 순간에 떠올랐다.
드래곤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이고, 심지어 무릎을 꿇고 머리를 흔들기까지 하다니.
카울라디의 영혼이 들어갔으니 그럴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드래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카울라디가 불러낸 저것은 이 대사막 전역을 다스리던 드래곤 로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재림, 세상에 다시 불러낸 형태인 이상 불완전할 수 없는 존재야.’
말 한마디로 세상을 바꾸는 존재의 전정기관이 제 기능을 못 할 리가 있나.
드래곤의 생성 과정에 어딘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사막에서 만난 드래곤과 관련 있는 존재. 그리고 카울라디의 의식에 들어간 재료들을 떠올리면 뭐가 문제인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빼돌린 드래곤 남매. 알다르와 세니카 또한 저 의식에 들어갔어야 할 제물이었던 거야.’
쌓여있던 부패한 사체들. 스치듯 본 것이지만 꽤 충격적이라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뼈를 발라내 약품에 절인 용의 후계들은 엄청나게 오래된 것부터 부패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까지 나이와 크기, 연령대가 다양했었지.
그 많은 왕혈이 전부 카울라디 밑에서 죽었을 리는 없으니 필요에 의해 수집한 것이 되겠다.
물리적으로 따지면 제아무리 왕혈의 고기를 긁어모은다 해도 드래곤 앞발 하나 다 채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주술의 상징적인 요소로 모아진 것이고.
그저 상징이라 하기엔 그 숫자가 대단하며, 락샤샤의 말대로 왕혈은 사막에서 가장 강한 부족을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녔으니 그 시체들의 원주인 또한 꽤 대단한 지배자였을 것이다. 사막 지배자의 상징인 왕혈인 만큼 그 시체를 쉽사리 내어주지도 않았을 터.
유혈사태를 포함한 적잖은 노력이 들어갔음에도 저만큼이나 되는 왕혈을 모았다는 것은, 저 양이 아니라 그 노력에 의미가 담겼다는 뜻이다.
‘카울라디의 손이 닿는 곳에 존재하는, 모든 왕혈의 육신. 그게 주술의 한 축이었겠지.’
적어도 그의 관점에서 ‘모든 왕혈의 육신을 모았다.’ 라는 확고한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그의 시야와 권위가 닿는 모든 곳에 사람을 풀어 ‘더는 사막에 남은 왕혈의 육신이 없다.’ 라는 말을 들어야 했겠지. 어디까지나 술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술자의 이미지니까.
그런데, 거기서 죽은 시체도 아니고 살아있는 해츨링 남매가 사라져버렸으니….
카울라디의 주술에는 ‘불완전함’에 대한 인식이 스며들었고, 차례로 군선을 박살내며 돌파한 누구누구 때문에 미완의 의식을 끝낸 결과가….
『쿠우우우우우우-!!!』
저렇게, 제 몸도 가누지 못해 휘청이는 미완성 드래곤이라는 소리다.
이쯤 되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게 보였다.
찰팍-
드래곤-카울라디는 미완의 육체를 완성시키려 할 것이다. 그의 마지막 조각은 눌락의 기함에 있으니 가서 되찾으려 하겠지. 뮤트 군단이 그쪽에 전부 달라붙은 이유에는 왕혈의 납치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우득.
락샤샤가 둘을 데리고 도주한다면, 나는 여기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 날개를 펼치는 것만으로 전장의 절반에 그늘을 드리우는 이 괴물이라면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군선의 최고 속도를 가뿐히 상회할 테니까.
“진짜 드래곤님이라면 자살행위겠지만. 용언도 없고, 천년 묵은 지혜도 없고, 무식한 육체마저 반푼이라면 해볼 만하지.”
저쪽이 용이면 이쪽은 신살자에 세계수의 인정을 받은 성자님이다. 나름 체급이 맞다는 소리.
찰팍-
[교수. 그들이…. 뱀을 닮은 뮤트가 두 분을 납치해 갔어요. 오트만을 지키기 위해 그쪽을 잠시 비웠더니….]역시나.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 흐름을 미리 내다본 것은 호재다. 흐릿하기만 하던 상대의 그림을 내가 따라잡았다는 소리니까.
[이쪽으로 오고 있어?] [아니요, 전장의 반대 방향으로, 드래곤에게서 멀어지는 쪽으로 도주하고 있어요. 두 분은 제가 챙길 테니, 당신은…. 당신의 할 일을 하세요.] [….뭐?]아니라고? 남매를 납치해서, 오히려 카울라디와 멀어지고 있다고? 뮤트가?
[락샤샤. 잠깐만, 락샤샤!]찰팍-
아슬아슬하게 닿아있던 메시지 마법의 범위를 벗어났는지 락샤샤와의 연결은 끊겨버렸다.
생각의 흐름 또한 그것과 같이 끊겼다.
‘팔카투스와 카울라디는 동맹이 아니었나? 니그미가 해츨링 남매를 납치했는데, 카울라디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멀어지는 방향으로 도주했다고?’
판단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이미 그 대부분을 사용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듯 비틀거리는 용이 지척까지 다가온 가운데.
뭔가, 가슴속에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턱, 하고 걸리는 부분이 생겼다.
‘카울라디의 협력자라면, 이곳에서 뮤트는 무엇을 얻으려 협력하고 있지?’
그 걸려 넘어진 곳에서 불길한 추측이 자라난다.
미완의 드래곤은 이미 넘어질 듯,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진동만으로도 군선이 부력을 잃고 가라앉을 수준. 발판이 될 군선이 사라지고 있으며, 어지러운 듯 고개를 흔들며 다가오는 그것의 턱은 적대자에게 있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비늘이 얇아보이는 드래곤의 턱. 일찍이 전설에 의하면, 역린이 있는 곳이라 알려진 부위. 이미 선택의 갈림길을 한참 전에 지나쳤다.
-투화아악!
발을 디딜 곳이 사라지기 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압축된 교수의 다리가 군선의 갑판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선택의 여지가 없음에도, 이미 몸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음에도 생각은 이미 지나온 판단을 되짚어 돌아간다.
‘놈들의 목적. 뮤트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사막에 무엇을 얻으러 왔지?’
‘왜 카울라디에게 협력했을까?’
‘아무리 의식에 실패했다 해도, 드래곤이 이렇게나 무방비해질 수 있나?’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어느새 비늘의 무늬가 눈에 보일 정도로 적의 거체가 다가왔다.
드래곤은 적이다. 어딘가 헛디뎠다 해도, 놈을 제거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놈은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으며, 놈에게 치명타를 입힐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찰나의 순간. 교수는 피가 불타오르듯 오른팔에 선연한 오러를 피워내고, 도약의 속도와 함께 그대로 틀어박힌 주먹이 드래곤의 얇은 턱을 강타하는 순간까지 불안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왜일까. 어째서 이렇게까지 불안한 것일까.
『콰우우우우우-』
알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드래곤이 뇌를 관통하는 충격에 쓰러진다. 눈빛이 흐릿한 용의 정수리를 향해, 텅 빈 두 팔에 신성을 가득 담아 내리친다.
콰아아아아앙-!
묵직한 손맛. 악신의 흉성조차 추락시킨 일격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느낌과 함께, 심장을 옥죄던 드래곤의 존재감이 서서히 옅어져가는 게 느껴졌다.
타닥.
쓰러진 드래곤의 머리 위에 내려앉은 교수는, 축 늘어진 놈에게서 어떠한 생명의 징후도 없음에 기함했다.
“….죽었어? 겨우 이 정도에?”
전력을 다했다 한들, 드래곤의 비늘 몇 장이나 부러뜨린 수준의 공격이었다. 돌진을 멈추는 수준이 최선이라 생각했던 공격에 드래곤은 목숨을 잃다니.
‘뭔가 잘못됐다. 누군가 그려낸 그림 위에 얽혀든 거야!’
가라앉는 모래 먼지와 함께 싸늘하게 가슴을 채워나가는 감각.
그래, 매복에 당했음을 눈치챘을 때의 그 감각이다. 눈앞의 목표가 미끼였음을 깨닫고, 적의 차가운 총구를 마주했을 때의 그 감각.
솨아아아아악-
불길함은, 익숙한 소리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저 소리. 뮤트의 이동수단이 모래를 헤치는 소리.
퍽.
표면에 도착한 놈이 모래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소리와, 기침하듯 뭔가 토해내는 소리.
그리고. 단단한 각질 같은 것이 용의 거체 위를 걸어오는 소리.
따각. 따각따각따각따각.
그 소리의 끝자락에, 소라게와 같은 생물이 용의 비늘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송곳과 같은 다리에 있는지도 모를 만큼 작은 머리. 그리고, 투명한 녹색 액체가 가득 든 무언가를 짊어진 생물.
살아있는 이동수단이라도 되는듯한 그것 위에 자리 잡은 누군가와 마주한 교수는 처음 봤음에도 그것이 누구인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팔카투스.”
[마주하고 인사를 드리는 것은 처음이지요. 앉아서 뵙는 것은 용서해주시길. 당신과 달리, 아직 타고난 천형을 극복하지 못한 터라.]뇌리에 울리는 목소리. 놈이 맞았다. 뮤테이션 블러드 전체를 총괄하는 총사령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어쩌면 여왕보다 더 중요한 목표물일 지도 모르는 놈.
나의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뮤트, 팔카투스.
‘팔은 죽었지만, 다리는 쓸 수 있다.’
드래곤을 공격하는 데 있어 양팔을 오러로 태우고 신성으로 완전히 날려 먹었지만, 아직 두 다리는 건재했다. 더욱이 지금은 용의 콧잔등에 내려앉아 무릎을 꿇은 상태.
‘놈은 천형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동조차 다른 생물에 맡겨야 하는 저 모습은, 극단적으로 연약해지는 특성, 유리 몸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야!’
일격. 아니 일격의 여파만으로도 놈은 산산조각 나리라. 팔카투스를 짊어진 저 개체가 얼마나 대단한 전투력을 가졌을지는 몰라도, 유리몸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지금의 내 일격을 피할 정도의 고속이동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그 위에 있는 팔카투스에게 치명상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절호의 기회. 꿇은 다리에 슬그머니 힘을 주는 그 순간.
[전투의 열기에 취하신듯하니 조금 진정시켜드릴 필요가 있겠군요.]쿨럭.
뒤쪽의 땅굴벌레가 추가로 뭔가를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작고 유연한 녹색 비늘에 뒤덮인 뮤트. 니그미와 그녀의 손끝에서 자라난 뱀들에게 포박된 인물.
“락샤샤!”
[하하하하.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일종의, 테이블이라고 할까요. 대화를 하려면 두 사람이 차분하게 마주할 자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꽈아아악-!
“….윽, 큭!”
[지금 그 자리에서 먼지만큼이라도 발을 움직인다면, 이 암컷을 죽이겠습니다. 제가 알아보기로는 당신의 짝이 될 인간이라고 하는데…. 이런, 제 계모 되시는 분이군요? 하하하하.]교수는 너스레를 떠는 팔카투스의 옆에서 겹겹이 둘러싸인 뱀에게 조여지는 락샤샤를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숨죽인 신음 사이로 작게 들려오는 파열음은 어깨 관절이 엇나가는 소리일 것이다.
[흐음…. 조금 더 극적인 장면을 예상했는데. 니그미? 그 암컷이 조금 더 비명을 지르게 해주지 않으련? 죽지만 않으면 상관없단다.]“살살한 거 아냐. 독한 년이란 말이지. 이것 봐. 이년이 내 가죽에 박아넣은 실이 이렇게나 많다니까? 이년이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비늘도 상하고, 같이 있던 그 저주받은 도마뱀들도 놓치고, 솔직히, 부끄러웠어.”
[하하하하. 반성했으면 됐다. 원래 대어를 낚으면 미끼 정도는 내어 줘야지.]“뭐, 딱히 반성이랄 것까지야. 그냥, 오빠는 신나게 날뛰고 죽인 끝에 피범벅이 되어서 자러 갔는데, 나는 이따위 인간 하나밖에 가지고 놀 수 없어서 짜증난 것…. 뿐이라고!”
꽈아아악! 우득, 우드득!
“으극, 윽, 으으으으윽!”
….견갑골. 하악골. 경골, 치아 일부
….아드득!
참아야, 참아야 한다…. 락샤샤는 지금, 완전히 적의 손에 제압되어있다. 여기서 내가 이성을 잃고 날뛰는 순간, 대화는 물거품이 되고. 인질의 가치를 잃어버린 락샤샤는 죽는다.
교수는 이를 악물다 못해 부서진 어금니를 혀 위로 굴리며, 그 날카로운 감각에 집중하려 애썼다. 어떻게든, 눈앞의 참상에서 사고를 분리하고 싶었다.
“인질이라. 꽤나 인간적인 수단을 쓰는군그래….”
[단순하고 효과적이며 안전하지요. 특히나, 당신 같은 분을 상대로는 말입니다. 제가 태어나 가장 많이 탐구한 존재가 당신이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침묵. 팔카투스는 그 침묵마저 음미하듯 눈을 감더니,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요?]“….양동. 분할. 교란, 그리고…. 집중.”
위협하고, 나눠서, 눈을 흐리고, 목표에 손을 뻗는다.
놈이,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것을 배웠을까.
[정답입니다.]팔카투스는 기뻤다. 참으로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아시다시피, 몇 번의 패전 이후로 깨달은 게 제법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라는 것. 군대도, 암습도 의미가 없었지요. 심지어 누님과 바즈유르라는 가장 귀한 전력을 무리해서 준비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끔찍한 부상과 참담한 손실이었습니다. 정말 저희 종에 있어 재앙이 아닐 수가 없지요.]따각 따각 따각 따각
[그래서, 당신을 피하기로 했습니다. 재앙은 피해야지, 맞서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녹색 체액 안에서 빙그레 웃으며, 팔카투스는 서로 아는 사실을 하나하나 복기해나갔다.
[제국으로 간 당신을 피해 사막에 온 것처럼, 이 전장에서도 당신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당신이 있으면 아무래도 실패할 것 같았단 말이죠.]“그래서…. 저런 반푼이 드래곤을 준비했나 겨우 나 하나 끌어내자고?”
[원래 계획은 저 완성되지 못한 드래곤의 사체를 확보하는 것이었지만…. 당신이 이 사막에 발을 들였다는 것을 듣고, 조금 더 요긴하게 썼을 뿐입니다. 드래곤 정도면 당신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말이겠거니, 싶어. 당신을 움직이는 것은 위기감이 아닙니까.]계획을 세우는 자는 치밀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즉흥적인 면모도 있어야 한다.
상황이라는 게 언제나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 우연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니.
팔카투스는 사막에 흘러들어온 뒤 우연히 마주한 그것. 기연(奇緣)이라 불러도 좋을 그 조우를 떠올렸다.
[당신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정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반드시 스스로 선택하게 만들어야 했고, 도박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실패할 확률도 분명히 있었지요. 하지만 당신은 카울라디를 향해 나아갔고,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당신의 약점에 접근할 수 있었지요.]눌락과 카울라디? 사막의 패권? 드래곤?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상대가 그들의 퀸을 알 듯, 팔카투스도 어떤 킹을 잡아야 이 게임이 끝나는지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참…. 다정하기도 하시지. 모자란 것들을 그리도 아끼시다니.]일행 중 누구를 납치해도 상관없었지만, 만전을 기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약하고, 쉬운 대상을 골랐다.
늙은 마법사는 그 점에서 탈락이었다. 도대체 무슨 술수를 벌였는지 대단한 주문을 휘두르는 그 노인은 전투력이 부족한 니그미가 쉽게 접근할 만큼 약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엘프도 탈락. 같이한 시간이 제일 짧은 일행이라 우선도가 낮은 것도 있었다.
트롤 암컷은 둔해 보이는 주제에 무슨 감이 그리도 좋은지, 주변과 완전히 동화된 니그미의 접근을 순식간에 눈치채는 바람에 애를 먹을 것 같았고, 그건 락샤샤라는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일행을 납치하는 단계에서 꼬인 계획.
[좋은 미끼가 같이 있어서 다행이었지요.]하지만 그 배에는 락샤샤가 목숨처럼 아끼는 존재, 해츨링 남매가 타고 있었다.
니그미는 기함의 깊숙한 창고에 숨겨둔 그 둘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 밖으로 탈출했으며. 해츨링 특유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 락샤샤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납치범을 쫓아 달려 나온 것이다.
[뭐, 그렇게 된 겁니다. 미끼로 작은 물고기를 낚고, 그 작은 물고기로 당신이라는 대어를 낚고. 쉽지요?]….꿀꺽.
쉼 없이 나불거리는 놈의 목소리를 들으며 교수는 끊임없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용의 대가리를 처박을 만큼의 신성력을 사용했다. 언젠간 온다. 반드시…. 반드시!’
시간을 끌어야 했다. 다행히, 적이 그를 아는 만큼. 교수도 저 팔카투스라는 놈이 어떤 놈인지 충분히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다.
“일이 여기까지 왔으니, 딱히 네놈이 말해주지 않아도 다 알겠는데…. 한 가지, 전혀 모르겠는 게 하나 있다.”
모르는 것. 그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 놈이 저도 모르게 움찔하는 것을 교수의 눈은 놓치지 않았다.
‘날 아버지라 부른다. 강한 인정욕구를 내비치고 있어. 육체적 열등감을 정신적 우위를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열등감의 원인은 초창기 절박했던 그들의 종족 사이에 유리몸으로 태어난 팔카투스와 다른 네임드들의 차이에서 비롯됐겠지. 과거 놈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위대한 지성’은 그런 팔카투스의 열등감을 잘 나타내며, 동시에 나를 향한 경쟁심 또한 보여주었다.
그런 놈에게, 내가 모르고 놈이 아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부그르륵-
저렇게 좋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얼마든지 대답해 줄 것이다.
[모르는 것이라…. 이것 참, 거부할 수 없는 질문인데. 질문이라. 아버지가 내게 질문을…. 새삼, 살아있는 보람 같은 게 느껴지는 순간이로군요. 그래서, 무엇을?]“왜. 왜 그렇게까지 내게 집착하는 거지? 나보다 강한 이들도 존재하고, 나보다 지혜로운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는데?”
[아하…. 그건, 지금껏 받았던 질문 중 가장 좋은 질문이로군요….]틱. 틱.
교수가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는 동안, 팔카투스는 꾸욱 참아왔던 비밀을 털어내듯 후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진실이란 참담하며, 지식이란 고독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진실에 대한 지식은, 참으로…. 가슴에 담고 있기엔 너무 날카롭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그 날선 고통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고 할까요.]‘조금만 더. 조금만 더….’
카울라디의 오아시스를 집어삼킨 금기의 유사. 배의 망루에서 저 멀리 보일 정도로 접근했던 그것은 신성력을 사용하자마자 발밑에 나타났다.
적어도 몇 킬로미터의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할 속도는 된다는 것이다.
[참…. 말해도 다들 알아듣지를 못하니. 솔직히, 당신께서 물어 봐주지 않으셨다면 울화로 죽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지식이 제게만 허가된 것인지를 원망할 정도였지요.]교수가 기회를 노리는 사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던 팔카투스의 의념이 은밀하게, 속삭이듯 말해왔다.
[새로운 세계에서의 삶은 어떠십니까, professor.]“….뭐?”
[하. 하. 하.] [어째, 질문에 답이 되셨는지?]경악한 교수의 눈과 팔카투스의 투명한 눈이 마주했다. 빙그레 웃고 있던 팔카투스의 손가락이 아래를 가리키고.
쿠우우우우우-
마치, 거대한 지하수가 사막의 아래를 꿰뚫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쩌어억-
거대한 유사가 입을 벌리며, 주변의 모든 것이 삽시간에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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