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30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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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트들이 사라졌군…. 우리가, 우리가 이긴건가….? 다들, 다친 사람은 없나?”
힘겹게 의식을 부여잡고 있던 오트만은, 어느 순간 용오름에 걸리는 저항감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금속과 발톱이 마찰하는 날카로운 소리도, 비명과 고함소리도 잦아든 사이.
전투의 소음이 사라지고 낮은 신음소리만 감도는 가운데, 흐릿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오트만은 그의 옆에 있어야할 일행이 전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들 어디갔나…. 노툼, 이드라실….”
“위쪽에 있습니다.”
“아아, 거긴가….”
피와 전투의 흔적이 가득한 주변의 모습에 끔찍한 상상을 하던 오트만은 위에서 들려오는 차분한 목소리에 겨우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몸을 일으키는데, 체력이 바닥났는지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조금, 도와줬으면 하는데….”
“죄송합니다. 지금 도와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다쳤나? 얼마나, 얼마나 다친겐가? 노툼이 치유 주술을 조금 할줄 아는데, 락샤샤도 외과적 수술에 나름 조예가 있는 것 같았고….”
힘 없는 노인의 목소리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트만은 그의 발밑에 떨어진 주인없는 칼을 지팡이 삼아 기어가듯 갑판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가까스로 계단을 기어올라 밖을 내다보았을 때, 오트만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었다.
간신히, 정말 간신히 배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눌락의 기함은 인간의 파편과 피로 빈틈없이 물들어있었다.
가마에서 굴러 떨어진 눌락은 한 손으로 찢어진 뱃가죽을, 다른 손으로는 허벅지 어림에서 없어진 다리의 출혈을 막고 있었으며.
그러한 참상의 중심에, 이질적으로 생명력 넘치는 작은 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끌고 있었다.
이드라실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 나무에 올라타 가지를 잡아당기고 있었으며. 노툼은 충혈된 눈으로 숨을 헐떡이며, 나무의 뿌리 어림에 양손을 붙이고 있었다.
“이, 이건 도대체….”
“잠시. 방해하지 말아주시겠습니까.”
이드라실은 힘겨운 노인의 목소리를 가로막으며 양 손에 틀어쥔 얇은 가지를 더욱 잡아당겼다.
자세히 보니, 나무의 형태를 한 거대한 활과 같은 나무였다. 이드라실의 두 발은 활대 역할을 하는 줄기를 단단히 딛고 있었으며, 두 손은 시위로 보이는 얇은 줄기를 당기고 있었다.
“후우, 그우우, 우우우우!”
“노툼, 침착하게. 장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빗나갈 수 있습니다.”
“그우우우…. 놈들이, 놈들이 여자를 잡아갔다….! 뱀여자, 뱀여자가 사막여자를-”
“냉정하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후욱, 후욱!”
이드라실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에 화를 가라앉힌 노툼이 주술에 집중하고, 흥건한 피를 양분으로 자라난 자연의 활은 더욱 그 생기를 뽐내기 시작했다.
꽈아아아악-!
양 손으로 시위를 당긴 엘프의 눈이 날카롭게 적을 살폈다.
쓰러진 드래곤과 두 팔을 잃은 교수.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낸 불길한 생명체와 뱀을 닮은 여자와, 그것에게 제압된 락샤샤의 모습.
평범한 사격은 저들의 괴물같은 지각력에 쉽게 감지될 것이다. 직접 겪어본 적의 전투력과 잔혹성을 생각하면, 실패는 곧 인질의 죽음으로 돌아올 터.
이드라실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가 교수라는 인간에 대해 탐구한 바에 의하면 저런 상황에 가장 극명하게 날뛰어야 할 인간이 바로 그였다.
그는 표정이 풍부한 인간이다. 말을 하면, 곧잘 표정이 따라가곤 했다. 정체불명의 적과 대화를 나누는 그의 눈은 상대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뜻 이겠지.
이드라실은 뭉근하게 차오르는 조바심을 억누르며 숨을 골랐다.
“….후우우우.”
숨과 함께 속에 담긴 잡념또한 비워버렸다. 활과 목표, 목표와 활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사이.
발밑을 울리는 진동에, 기회를 잡은 저격수의 감각이 확장되었다.
기울어가는 드래곤. 그것과 같이 기우는 드래곤 위의 적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발 끝에 걸린 드래곤의 비늘을 차 올리며 앞으로 뛰어나가는 교수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잔인한 미소를 띄워올리는 뱀 여자.
그리고, 그러한 장면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녹색 액체 안의 작은 괴물.
이드라실은 찰나에 생겨난 틈 속에서 화살 끝이 향해야 할 곳을 정확히 찾았다.
‘….여기!’
-파앙!
마침내, 팽팽하게 당겨진 활 시위가 놓아지고.
바람의 정령이 깃든 화살은 아무런 저항없이, 소리하나 없이 공간을 가르듯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이글거리는 공기를 가르고, 어지러이 기울어진 군선의 돛대 사이를 지나, 기울어진 드래곤의 몸이 있는 곳으로.
여왕의 직계조차 눈치채지 못할 뻔 했던 속도의 화살이 형편없이 빗나감에 비웃던 니그미의 웃음기 어린 얼굴이 당황으로, 경악으로 물드는 사이.
쐐에에에엑-
콰직!
나무 뿌리를 잡아늘인듯한 화살은, 니그미의 손등과 팔카투스의 보호벽을 꿰뚫고, 그의 코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섰다.
“….쯧.”
엘프가 아쉽게 멈춰선 화살에 혀를차고, 트롤 주술사는 손끝에서 다음 화살이 될 가지를 피워올렸다.
‘목표물에 닿지는 못했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그녀의 저격에 놀란 뱀 여자가 목표물을 가로막는 사이, 교수가 그것의 오른팔에서 자라난 뱀들을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뱀여자가 서둘러 다시 손을 뻗었지만 이미 주술의 실을 있는대로 뿌려 제 몸을 숨긴 락샤샤를 전과 같이 압박할 수는 없는 노릇.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은게로군! 상황은,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상황을 눈치챈 오트만의 물음에, 이드라실은 활시위를 당기며 대답했다.
“적이 인질을 잡았습니다.”
“….락샤샤. 이미 마나를 다 써버렸는데 이를 어쩐다….”
“이제 괜찮습니다.”
이드라실은 첫 사격때 완전히 벗겨져버린 그녀의 손바닥을 가늠하며 다시 한번 목표물을 조준했다. 손의 신경이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두 발 정도는 더 쏘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희도 인질을 잡았으니. 지금껏 저희가 느끼던 감정들을 이제 적들도 느낄 수 있겠지요.”
사수란 언제나 적의 약점을 노려야 하는 법.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물이다.
실시간으로 으스러지는 락샤샤와, 그녀를 보며 생겨난 감정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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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린 것은 하나.
‘니그미는 리자드맨, 나가 혼혈. 종족 특성으로 상대의 생각을 읽는다.’
유사가 다가오기 직전에 내 의도를 비웃듯 아래를 가리키던 팔카투스의 손가락도. 드래곤의 몸이 기우는 순간에 맞춘 내 기습도 니그미의 특성에 읽혀 간파될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팔카투스가 나를 상대하는데 있어 단 한톨의 방심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상대의 생각을 읽으면서 하는 수 싸움이라. 저쪽이 질 리가 없지.’
그러니, 읽으라고 던져준 것이다.
상대가 내 생각을 읽고 있다. 그것은 상대가 내 생각에 맞춰 행동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몸 곳곳이 터지고 부러지며 눈에 핏발이 선 락샤샤의 손 끝에 그녀가 애용하는 실이 잡혀있는 것을 본 교수는 그 순간 생각 하는 것을 멈춰버렸다.
유사의 생성에 맞춰 기울어진 드래곤에 자세가 흐트러지고, 그것을 노린 것처럼 발악하듯 달려들고, 이미 알고있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한 니그미가 비웃듯 락샤샤를 터트리려던 순간.
-스각!
콰직!
락샤샤의 줄이 그녀를 구속한 뱀을 잘라내고.
돌진하던 속도 그대로 땅을 박찬 내가 추락하는 락샤샤를 품에 안으며.
니그미가 분노할 새도 없이 그녀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팔카투스의 앞을 가로막는 것.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났다.
‘저격? ….이드라실!’
생각지도 못한 지원. 몸이 약한 팔카투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공격인 동시에, 상대의 생각을 읽고 예지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공격을 원천 차단하는 니그미에게 있어 카운터나 다름없는 원거리에서의 저격!
저쪽도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는지, 2격째 날아오는 화살에 다급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드라실 덕분에 생겨난 잠깐의 틈 동안, 교수는 그의 품에 안긴 락샤샤를 살폈다.
희미하게 눈꺼풀을 떨다가, 축 늘어지는 그녀.
‘위험하다.’
사지가 멀쩡한 곳이 없었다. 죄다 부러지고, 비틀리고, 빈틈없는 압력에 뼈가 부러질 정도였으니 그것을 감싼 근육과 그 안의 내장이 어떻게 됐을지는 불보듯 뻔하고.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움직였나 했더니, 이 미친 여자가 제 몸에 실을 박아서 당겨대고 있었다.
쿠우우우우우-
유사는 빠르게 몸집을 키워가며 사막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
품에 안긴 락샤샤와 그의 앞에 나타난 적의 사령관. 절호의 기회이지만, 락샤샤는 전투의 여파를 버틸 상태가 아니다.
실시간으로 가라앉는 발판. 적들은 모래 속을 이동할 수단이 있으며, 우린 없다.
전투로 얻을 것도, 잃을 것도 너무나도 많은 상황.
교수는 그를 바라보는 팔카투스의 시선을 느꼈다.
“….”
[…..]히죽거리는 놈의 눈빛은 교수의 눈에서 무언가 읽어낸 모양이었다.
한쪽은 제안과 수긍을. 다른 한쪽은 분노와 체념을.
말 없는 합의가 오고간 뒤, 의미없는 대치를 먼저 끊어낸 것은 교수였다.
“….가라.”
[오. 보내주시는 겁니까? 이대로 달려드시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는데?]“깐죽거리지 말고 가라고. 뒈지기 싫어서 벌벌 떠는 주제에 허세 부리기는.”
[으으음…. 나름 감춘다고 감췄는데. 저도 살아있는 생명인 만큼 생리적 공포는 어쩔 수가 없지 뭡니까. 저격수라…. 지휘관이 가장 주의해야할 요인인데, 역시 현장 경험이 일천하다보니 이런 부분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설마 당신의 머릿속에도 없는 저격수가 준비되어 있을 줄이야. 탄복했습니다, 아버지.]씹새끼가 진짜.
이빨을 부득부득 가는 교수를 보며 박수를 딱딱 치던 놈은, 아쉬운 눈빛으로 입을 달싹였다. 그 음성에 니그미의 세로로 찢어진 눈이 카악! 치떠졌다.
“….간다고? 이렇게? 여기서. 저놈들을. 놓아줄거란 말이야?! 내 손에 나무뿌리 같은 것을 박아넣은 저 벌레같은 인간들을!!!”
[그 나무뿌리가 몸에 박히면 난 죽는단다. 네가 저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까지 읽어낼 수 있다면, 그럼 마음대로 하려무나, 니그미.]“샤악! 샤아아아악!”
코브라 같은 비막을 활짝 펼치고 혀를 날름거리던 니그미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사납게 째려본 다음, 팔카투스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제 몸으로 감싸며 모래속으로 뛰어들었다.
‘끝까지 저격을 경계하는군.’
기다리고 있던 땅굴벌레가 둘을 삼키고, 그렇게 전장에 남아있던 마지막 뮤트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놈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팔카투스의 의념이 아직 그의 뇌리에 닿아있음을 느낀 교수가 말했다.
[….도대체. 너희들은 뭘 하고싶은거냐. 뮤트.].
.
.
.
[하하하하.]꾸밈없는 웃음. 놈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성실하게 대답했다.
[당신께서 그렇게 발버둥치는 것과 같은 이유겠지요.] [나와…. 같은 이유?]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professor. 박교수. 나의 아버지. 당신은 참으로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계를 대하는 데 있어, 어쩌면 세계수 그년보다 더.]아무렇지 않은 듯, 현실의 이야기를. 관리자와 세계수의 이야기를 입에 담는 팔카투스.
[어디까지…. 아니, 어떻게 알아냈지?] [질문은 하나씩 하셔야지요. 저희가 뭘 하고 싶냐 물으셨지요? 그냥, 평범한 이유입니다. 살고싶어서.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저희도 살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머지는…. 아버지를 위한 선물로. 탐구하는 즐거움을 위해 남겨드리겠습니다. 정 어려우시면 다음에 선물이라도 들고 찾아 오시지요. 음…. 과일은 안먹으니, 그 저격수 머리 정도면 괜찮겠군요. 니그미가 원한이 대단한 것 같은데.] [….다음에 만나면 죽인다.] [하하하하. 저는 또 살려드릴 생각입니다만.] [아, 저희 갔다고 해서 너무 여유있으신 것 같은데, 빨리 탈출하시는게 좋으실 겁니다.] [….탈출?] [유사 말입니다, 유사. 지나오면서 봤는데, 자칫 저희도 빨려들어갈뻔 했거든요. 하하하하.]희미하게 울리는 놈의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팔카투스의 의념이 사라졌다.
그제서야, 교수는 락샤샤를 구출하는데 정신이 팔려 머리 한켠에 묻어두었던 것을 떠올렸다.
내가, 신성력이 담긴 공격을 쓰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더라?
우지끈, 쿵!
대답은, 급류에 휘말린 통나무처럼 저들끼리 충돌하며 박살난 카울라디의 군함들이 대신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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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아-!
[교수! 교수 자네 아직 거기 있나! 서두르게! 금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어!] [알아요! 아는데…. 빠져나갈 수가 없어! 그쪽은 좀 괜찮습니까!] [안 괜찮네! 금기 한가운데 뻥 뚫린 구멍으로 바람까지 빨려들어가면서 바람도 그쪽으로 불고 있어! 배가 앞으로 나아가질 않네!] [군선이면 노잡이 있을 것 아닙니까! 어떻게든 나가 볼테니까, 야전 의료에 필요한 것 좀 준비해 주세요! 포션! 붕대! 부목! 있는 것 다!] [그…. 지금 우린 드라이 오아시스 호에 있다네! 눌락의 기함이 아니라!] [아니 왜!]적은 사라졌지만 위기는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도대체 이 금기의 유사는 또 정체가 뭔지, 유사를 넘어 아예 가운데 검은 구멍이 뻥 뚫린게 무슨 무저갱 블랙홀이라도 되는지 엄청난 속도로 모래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쪽은 발판이 될 군선들이 우르르 내려오고 있었고, 우리 일행이 탄 작은 사막 배는 순식간에 유사의 중심을 향해 끌려 들어오고 있었으니.
교수가 오트만 일행과 합류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아니, 왜 여기 타고 계십니까! 눌락 애들 안보이는 것 보니까 외곽에 있언 걔들은 벌써 탈출한 것 같은데!”
“버려졌네! 중상을 입은 눌락이 주술을 이용해 우릴 던져버렸어! ‘당신들도 금기를 잘 알 것 아니냐.’ 고 하면서!”
“그….으으으으! 망할 돼지새끼가!”
눌락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유능하고 영리한 돼지새끼였다.
눌락도 사막 사람인 만큼 금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고, 영민한 머리는 이 금기의 중심에 있는 이가 누군지 순식간에 파악한 것이다.
드래곤을 후드려 패던 하얀 성광. 그 중심으로 나아간 전사 살라딘.
금기가 어디까지 도매급으로 싸잡았을 모르니, 그의 일행 전부 다.
참으로 지도자다운 빠르고 지혜로운 결단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우린 다 죽게 생겼지만.
교수가 조심스럽게 넘긴 락샤샤를 노툼이 치유 주술로 돌보는 사이, 유사의 중심. 검은 구멍은 속절없이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오트만, 물 좀 남았습니까? 아까 뮤트 날려보내던 마법, 그거 정도면 배를 들어올려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물은 충분하네만…. 내 마나가 하나도 남지 않아서 말이야.”
“….물이, 충분해요?”
교수는 바싹 말라붙은 그의 목구멍을 떠올리며, 잠시 오트만이 정신을 놓아버린게 아닌가 생각했다. 락샤샤 하나 챙기기에도 버거운데, 오트만 마저 쓰러져버리면 그땐 정말 포기하고 싶어질 것 같아서.
“그래. 이곳은 헤아릴 수 없이 오래 전, 바다였던 곳이란 말일세!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서 그 푸른 바다가 모조리 사라져 열사의 땅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사막이 품은 물이 끝도 없는 것은 분명해. 물은 변하지만, 사라지진 않으니.”
“여기가…. 바다라고?”
꽈앙!
우지끈, 끄그으으윽-
유사의 중심으로 모여든 군선들이 충돌하며 쪼개지는 소음속에, [바다]라는 키워드가 교수의 눈가에 맴돌았다.
‘이상할 만큼 몸이 큰 사막 생물들. 육지 생물은 제 몸무게 때문에 그렇게 까지 큰 몸집을 가진 종족으로 진화하기 힘들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다. 그럴듯해. 여기가 바다였다면 이 모래바다의 환경도, 아다리가 맞지 않는 생태계도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처음 그 모래상어. 어디선가 뮤트를 처먹고 왔지. 잡아올린 모래 바다의 생물들 중 그런 녀석들이 꽤나 있었고. 사막 어딘가에 뮤트가 있는데, 사막 전역에 퍼져있는 달그림자는 뮤트의 흔적을 못봤다고 락샤샤가 말했어.’
‘전설. 전설….!’
벌떡!
“그 전설! 처음부터 얘기했잖아! 달은 가라앉고, 태양은 추락했다! 가라앉고! 가라앉고! 그 어디에도 태양이 뒈졌다는 말만 나오지 달이 어떻게 됐다는 얘기는 안 써있었는데!”
전설이 말하길, 사막 왕이 달을 탐하여 ‘달은 수면아래 가라앉아, 영원히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달과 바다. 달과 바다! 달, 바다!!!!
‘카울라디와 첫 만남에서, 분명 그놈이 [태양의 힘]이라고 하면서 모래를 제 마음대로 주물렀지!’
추락해, 그 유해를 드래곤의 왕국에 내던진 태양. 유해가 추락했다면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라락-
교수는 드라이 오아시스 호의 갑판에 쌓인 모래를 손에 담았다.
‘여기있다.’
고대의 드래곤들에 의해 추락한 달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천천히, 달에 이끌린 바다가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내듯, 함께 가라앉아 마른 해저면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리고, 그 위로 태양이 떨어졌다. 산산이 부서진 불덩어리는 먼지같은 작은 알갱이가 되어, 지금 대사막이라 부르는 지역을 뒤덮었다.
그것이 이 대사막의 창세. 두 신의 추락과 함께 만들어진 지역.
만약, 흐르는 모래 바다가 태양의 유해라면…..
“교수! 앞에! 앞에 군선이!”
“….이크!”
콰아앙!
자칫 배와 충돌할뻔한 군선을 쳐날린 교수는 곧바로 갑판 아래로 달려갔다.
선원들부터 항해사, 갑판장, 선장까지 전부 노에 달라붙어 어떻게든 유사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항사꾼들.
“선장님! 에이버리 선장님!”
“빌어먹을! 살라딘! 자네도 빨리 와서 여기 붙게! 어떻게든, 금기가 끝날 때 까지만 버티면 살 수 있어!”
“되도 않는거 다 때려치우고 뱃머리나 돌려요!”
“뭐?”
교수는 땀에 흠뻑 젖은 선장을 노잡이 의자에서 쑥 뽑아 올린다음, 그대로 옆구리에 끼고 갑판으로 나왔다.
“저거 보이십니까, 저거!”
“그, 금기의 집행자…. 네 항사꾼 인생에 저렇게 큰 유사는….”
“우리, 저 안으로 갈겁니다!”
“미, 미쳤나?”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다 죽어요! 나만 뒤지면 상관없는데, 금기라는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르니 당신들까지 쳐먹어야 끝나는거면 개죽음 되는 거잖아!”
희미한. 정말 희미한 가능성이지만, 이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태양과 달. 고대의 두 신.
금기의 유사는 신성력에 미친 듯이 반응했다.
만약, 태양이 사막이 되어 이렇게 남았다면.
달은 어디로가서, 뭘 하고 있을까?
“모, 못하네…. 나는….”
“항사꾼이라는 사람이 뭔 약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이대로 그냥 빨려들어가면 군선들 사이에 낑겨서 배 박살나요! 저기 피해가는건 당신들 밖에 못한다고!”
어차피 빠져나갈 수 없다.
나 혼자라면 모래 바다에 몸을 다 녹여먹어가면서 나갈 수 있지만, 나머지 일행은 이대로 빨려들어가면 끝이다.
‘그럴 바에야, 도박이라도 해야지!’
선장과 교수의 눈이 마주했다. 확신에 찬 눈빛. 이글거리는 생의 의지.
에이버리의 눈에 손때묻은 타륜이 들어왔다.
그래. 어차피 마지막이라면, 비좁은 선창의 노잡이가 아니라 항사꾼으로, 선장으로 마지막 항해를 하는것도 좋지 않겠는가!
드라이 오아시스호의 선장 에이버리는 모래 섞인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 쉬었다.
『세일-호오오오!!』
출항을 알리는 구령. 군선과 군선이 휘말려드는 소음속에서도 분명하게 울려퍼지는 그 소리는 지칠대로 지친 선원들의 귀에도 분명히 들렸다.
“꾸물거리지 말고 튀어나와! 암초보다 더한 것들이 눈앞에 쌓여있다! 돛 찢어먹어도 좋으니까 장력 최대로! 그늘막까지 다 펴서 어떻게든 선회력 올려! 파드! 굴레인! 장대 가져와서 조향날개 수동으로 당겨!”
“어, 어어어….”
“움직여!”
“예, 옛!”
선원들은 이게 무슨일인지, 왜 선장이 갑자기 미쳤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배 위에서 선장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몸에 익은 명령은 얼떨떨한 손길이 배의 구석 구석에 닿게 했다.
급류를 타듯 휘청이는 작은 사막 배가 커다란 군선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치고.
그렇게, 뱃머리가 점점 아래로 기울어 갈 때 쯤.
밧줄과 난간에 매달린 선원들을 둘러보던 오트만은 눈을 희번뜩 거리며 예비 돛을 밧줄에 엮는 교수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저 아래 뭐가 있길래 저리로 가는- 그아아악!”
끄그으윽-
이윽고, 검은 심연같은 유사의 중심에 도착한 배가 앞으로, 앞으로 기울고.
아비규환이 된 배 위에서, 밧줄에 매달린 교수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바다. 오트만, 당신이 말했던 고대의 바다! 달과 함께, 가라앉은 바다로 가는겁니다!”
“무어, 우, 왜? 왜 굳이!”
“그냥 두면 어차피 다 죽고! 무엇보다…”
끄그윽, 끼이이익-
“….그 새끼들이, 저기 있는 것 같으니까!”
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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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으아아아악!”
“으아악!”
“선장님! 선장니이이임!!!”
“우아아아아아아아!!!!”
“어머니이이이!!!‘
이윽고, 배 밑에 아무것도 남게 되지 않은 드라이 오아시스호는 끝없는 지저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부서진 군선들의 잔해 속에서, 한없이, 한없이 깊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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