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31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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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것.
“브브그그극! 달랍브븝ㅂ!!! 부브브븥!”
“부브브븝, 불! 횃부브브븝!”
흔히들 사람이 말을 함에 있어 주가 되는 기관은 혀라고 알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혀는 발음을 교정하는 기관일뿐, 소리를 내는 울림통은 허파와 복강이 되시겠다.
들이마신 공기를 내뱉으며 성대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게 그 원리인데, 그렇기 때문에 강한 바람을 정면에서 맞고있는 사람은 평소처럼 말할 수 없게 된다….
“-는 소리지. 어떻게, 의문이 조금 풀렸는가?”
“흐음….”
사각, 사각사각-
추락하는 드라이 오아시스호. 교수 일행의 객실안.
바깥 사정과 달리 평온하기 짝이없는 오트만의 목소리에, 마찬가지로 평온하기 짝이 없는 이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광증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네. 노툼과 이드라실 자네가 밖에 있는 우리 친구들이 미친게 아닌가 걱정하던데…. 우리는 추락하는 중이고, 선원들은 그 추락하는 배 위에서 강한 바람을 맞는 중이니까.”
“브브브브브븝-! 바브바밧주브브브븝!”
“주그브브븝, 그극, 으브베베벱!”
“브와아아아아브븝!”
“말이 저따위로 나올 수 밖에 없는거라네.”
“음. 과연.”
사각사각, 사각-
이드라실이 새로운 지식에 감탄하며 기록하는 사이.
덜컥!
쿠당탕탕!
“어이쿠!”
한없이 추락하던 배가 요동치며, 뭔가에 걸린 것처럼 덜컥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 아래 배의 창고에서 굴러다닐 수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모조리 쓰러지며 난리법썩이 난 가운데, 오트만은 노툼과 이드라실이 만들어낸 나무덩쿨을 헤치며 선실 밖으로 향했다.
“좀 늦춰지긴 했으나 여전히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으니 주술은 풀지 말게나. 다친 사람에겐 작은 충격도 치명적이니 말이야.”
“그우우. 알았다.”
“나가실겁니까, 오트만? 당신도 그리 몸상태가 좋진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그야, 마나를 다 써버린 마법사는 그냥 성미 고약한 노인이니. 하지만 나는…. 역시 나가봐야겠군.”
“그렇다면야. 몸조심 하시길.”
이드라실의 배웅과 함께 오트만은 그들의 선실 가득 자라난 빽빽한 넝쿨을 헤치며 밖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밧줄이나 알 수 없는 덩어리, 굴러다니는 나무통 같은 것이 발에 걸리는 바람에 겨우 벽을 더듬거려가며 갑판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자, 희미하게 일렁이는 불빛이 그의 발치를 비춰주었다.
덜컥!
닫힌 갑판 덮개를 힘겹게 밀고 올라온 오트만.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배 난간에 주르륵 세워진 횃불들이었다.
위로 긴 꼬리를 남기며 위태롭게 타오르는 스무개 가량의 횃불들.
온 사방이 칠흑같은 어둠에 잠긴 가운데, 갑판에 주저앉은 선원들의 넋이 나간 얼굴이 횃불의 일렁이는 불빛에 희미하게 비쳐보였다.
“아직 좀 위험한데 안에 계시지 그럽니까.”
그 그늘진 얼굴들 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오트만은 그쪽을 향해 더듬더듬 나아갔다.
“심장이, 심장이 떨려서 안에 가만히 있을수가 있어야지….”
“댁도 그럽디까? 나도 그런데.”
꽈아악-!
교수는 배 곳곳에 마구잡이로 묶어둔 밧줄이 위로 부풀어오른 커다란 돛과 잘 연결됐는지 당겨보며, 그제서야 숨을 돌리고 있었다.
“폭풍의 언덕에서 빌려탔던 기구, 그걸 탔었던 기억에 꽤나 도움이 됐죠.”
“하긴…. 형태가 비슷하긴 하군그래?”
“예. 위로 뜨는데 필요한 바람 풍선들만 없지, 사막 배도 바람 타고 다니는 배니까요. 아무리 모래 바다가 배를 띄워낼 만큼 부드럽다곤 해도 바다처럼 강한 해류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모래 배는 일반 범선보다 돛도 30% 정도 더 크고, 선저에 키가 달려있는 일반 배와 달리 저렇게 커다란 조향 날개로 방향을 잡는 것 아닙니까.”
“배도 배지만, 저 선원들이 제 몫을 해준 덕분도 있지 않겠나?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도 이렇게 넋이 나갔는데, 평생 배만 타던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제 몫을 해주다니. 모래 바다가 저들을 강하게 단련시켜 준 것이 우리에겐 천운이었던 샘이야.”
“그렇죠 뭐. 저들이 제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지금쯤 저런 꼴이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교수는 오트만의 말에 맞장구치며 배 옆의 어두운 공간으로 눈을 돌렸다.
일렁이는 횃불의 조명속에, 끝없이 쏟아져내리는 모래의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콰아아아아-
바로 옆에서 쏟아져내리는 수천 톤의 모래. 조금 눈에 힘을 주면 그 사이로 언뜻 드러났다 사라지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드라이 오아시스호와 함께 추락했던 수 많은 군선들이다.
어떻게든 키를 잡고 조향날개로 상승기류를 타며 저 모래폭포에 닿지 않기위해 발악했던 그들의 작은 배와 달리 커다란 군선은 그런 재주를 펼칠 수 없었으며, 군선은 모래 폭포에 닿는 순간 그 쏟아져내리는 힘에 의해 순식간에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버렸다.
덕분에 머리위로 유성우처럼 떨어지던 군선의 파편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모래 사이로 유령처럼 스르륵 나타났다 사라지는 선수상이나 돛대, 반쯤 녹아내린 시체들은 자칫 그들이 저 사이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는 상상을 떠올리게 하곤 했다.
———
– 흥안만두 : 웃긴게, 저 선원들 저들끼리 막 브왁브왁 거리는데 다 의사소통이 되더라?
– Jokass : 대충 상황이랑 어조로 알아듣더만. 너도 누가 크리스마스에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산타복 입고 ‘에이 으이으아으’ 하면 대충 뭔소린지 알아듣잖아. 망루에 제 몸을 묶어놓은 선원이 브왁! 브왁! 거리면서 오른손을 흔들면 키를 잡은 항해사가 우현 위로 추락하는 파편 피하고. 그러다 항해사가 또 브억 브억 거리면서 손발을 마구 흔들면 후미에 기다리던 선원들이 날이 긴 장대로 배 뒤쪽의 조향날개에 얽힌 밧줄 같은걸 풀어내고.
– takealook : 참…. 저 선원들은 뭔 죄를 저질러서 이 고생을 하는지.
– 노루Drug해요 : 왜긴. 누구누구랑 같은 배에 탔잖아. 오트만은 이제 신경이 닳다 못해 득도 직전인 것 같은데.
– 흥안만두 : 역시 사람은 가려 사겨야지. 저 선원들 죽으면 그건 전적으로 니 책임이다, 박교수.
– professor : 알아 임마. 그래서 다 살렸잖아.
———
솔직히, 나도 좀 억울한 감이 있긴 했다.
나도 답도 없이 빨려들어가는 배 위에 있을 때 ‘나만 뛰어들면 이거 끝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만약 그래도 이게 안끝나면? 나야 모래 바다에 튀겨지든 삶아지든 어떻게든 살아남지만, 아무 대책없이 추락한 드라이 오아시스호는 그 안에 선원 및 우리 일행 전부와 함께 침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기이할 만큼 유능하고 눈치빠른 돼지가 순식간에 드라이 오아시스호를 손절하고 튀었잖아.
‘대 주술사에 사막 토박이인 그놈이라면 얽힌 사람들 중 어디까지가 위험 범위인지 잘 알고 있었겠지. 그런 녀석이 중상을 입고 그 바쁜 와중에 따로 명령을 해서 자기 배 위에 있던 일행을 따로 방출했다면, 아마 우리 일행이랑 선원들까지 이 유사의 목표가 됐을 가능성이 높을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배랑 같이 떨어졌다. 어차피 다 빨려들어가야 한다면 같이 남아있는 쪽이 살아남는데 훨씬 유리하니까.
“야야, 저기 저거….”
“으.”
“….일하러 갑시다, 일하러. 저 꼴나기 싫으면.”
교수가 낙하하는 배 위에서 멍하니 횃불을 바라보는 사이, 선원들도 바깥의 모래 폭포에서 유령처럼 떠오르는 것들을 봤는지 몸서리를 치며 제 위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배는, 정말 끝도 없이 검은 구멍 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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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내려왔을까.
횃불에 비친 모래 폭포속에 군선의 파편이 새카맣게 그을린 옛 사막 배로 변하고, 나무 끝이 닳아 둥글게 된 파편과 과거의 흔적들이 뱃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디로 들어온 것인지 다시금 되새겨주는 사이.
휘우우웅-
화륵, 화르륵!
‘찬바람이다.’
뜨거운 모래폭포로 둘러쌓인 찜통같은 공동속에 부는 찬바람은 배 위에 타고있는 모두의 정신이 번쩍들게 만들었다.
긴장이 풀려 나른해진 선원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고, 잠시 조용해졌단 배 위에 다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눈이 좋은 망루 선원은 배 주변에 밝혀둔 횃불의 주황색 불빛이 아닌 다른 조명이 섞여든 것을 눈치챘다.
“비, 빛이다.”
땡땡땡땡땡땡-!
“빛이다! 빛이 보입니다! 아래쪽에서 빛이 보인다!”
“출구다아아아!”
마침내 끝에 다다랐음을 알리듯 빛 한점 없는 공동의 끝에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작은 빛.
점차 그 크기를 키워오는 빛의 모습에 불안에 떨던 선원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갑판 위에서 지금까지의 정보를 복기하던 교수도, 부정맥이라도 온 듯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은 오트만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비린내 아닙니까? 아닌가? 좀 다른데요?”
“….내가 알던 바다의 냄새와는 많이 차이가 있지만, 확실하네. 이건 바다의 감각이야.”
‘소금기 어린 바람. 바다 냄새….인가? 바다 근처에 가본지가 좀 오래 됐어야지.’
바람속에 섞여온 것은 생전 한번도 맡아본적 없는 냄새였지만, 오히려 그 낯선 감각이 교수의 불안을 덜어주고 있었다.
지금 저 위에서 코가 마비될 정도로 뮤트의 피냄새를 맡고 왔는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낯설다는 것은 적어도 저 아래가 뮤트가 빼곡하게 들어찬 사지는 아니라는 소리니까.
‘일단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는 소리겠지.’
물론, 어디까지나 당장 발밑이 그렇다는 얘기고. 가라앉은 바다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어떤 환경인지 미지수인 지금으로선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점처럼 보이던 빛이 손톱만한 구멍으로, 점차 크기를 넓혀가며 다가온 끝에.
.
.
.
.
후아아악!
퍼어어엉-!
빠른 속도로 떨어진 드라이 오아시스호가 해수면에 닿으며, 짧지만 길었던 추락이 마침내 끝을 맞이했다.
떨어지는 배 위에서 일렁이는 물을 보고 ‘오아시스다!’라며 땀을 훔치던 젊은 선원도.
어떻게든 살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늙은 선원도.
배가 내려앉는 순간 그 어떠한 단어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평생 사막에서 살아온 그들이 단 한번도 보지 못한, 큰 마을 하나 먹여 살릴 정도의 오아시스를 대단히 큰 물의 보고라 여겨왔던 이들에겐 가히 문화적 충격에 가까운 모습.
“가, 갑판장님? 저도 제가 이런 부탁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뺨 한 대 후려쳐주시지 않겠습니까?”
“어, 나야말로, 하극상으로 취급하지 않을테니 한 대 때려주면 좋겠는데….”
“이….상하다…. 분명 유사로 굴러 떨어져서, 막 정신없이 빙빙 돌고, 살라딘이 돛을 위로 펼치고…. 그… 어….계속 떨어졌는데….”
넋을 잃은 선원들 앞에 펼쳐진 것은, 그들이 단 한번도 본적 없던 것. 어쩌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 중 그 누구보 보지 못했을 것.
햇빛 한점 들지 않는 사막아래, 스스로 은은한 푸른 빛을 발하는 가라앉은 바다가 있었다.
추락한 배의 여파로 옅은 잔물결이 치는 가운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모래 바다의 천장은 그들이 어떤 알 수 없는 곳으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저 모래를 뚫고 내려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다. 사방이 가로막힌 모래 속에 미지의 공간이라 두려울 법도 하건만. 그들이 그저 감탄할 수 있는 이유는,
“저것이…. 내가 아는 그게, 어…. 그분이 맞소?”
“아마도? 제가 알기로는…. 맞을걸요?”
빛 한점 들지 않는 지저의 바다를 은은하게 밝히는 빛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사막의 모래 바다 아래. 신비한 푸른 빛이 넘실거리는 바다.
“그래. 이제야 이야기가 좀 진행이 되는 느낌이네.”
사막이 잃어버린 달과 바다.
사라진 고대의 신비가 그들의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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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뚝딱!
쿵! 꽈아아악!
“거기! 거기 산호에 묶어! 그거 말고 큰거! 더 큰거! 아잇, 나와 이 자식아!”
“선인장 술…. 남아있던 게 스무 통, 떨어지면서 깨진 게 아홉. 모래 상어포, 작은 자루로 다섯 개….”
“선장님. 이런 생선 보신 적 있습니까?”
“으음…. 모르겠군. 오아시스에 살던 생선이랑은 전혀 생긴게 다르니….”
“일단, 포를떠서 독한 술에 절여놓게. 나중에 따로 시험해봐야겠으니.”
촤아악!
눈 앞에 펼쳐진 신비에 취한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선장의 명령으로 선원들은 배를 정박하고 남은 물자를 정리하며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배를 댈 곳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떨어진 구멍. 그 주변은 쏟아지는 모래의 여파로 물이 드러나 있었지만 거기서 시선을 조금 멀리 하는 순간, 아름다운 바다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부유물의 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어어, 저 깃발. 나 저 배 아는데.”
“뭐요, 갑판장님 지인중에 금기에 잡아먹힌 사람 있수?”
“지인….까지는 아니지. ‘마에갈 리자드호’ 라고,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오아시스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상선이었어. 어느 순간 소식이 딱 끊겼더라니. 십수년만에 이 금기 밑바닥에서 다시 보는군.”
“그럼…. 여기있는게 다 금기에 잡아먹힌 배들이라는 겁니까?”
“아니면 내려오면서 봤던 그 모래폭포에 잡아먹힌 배들이 다 어디로 갔겠냐? 모래랑 같이 여기로 떨어졌겠지.”
갑판장이 가리킨 곳에는 모래폭포의 막바지인지, 점차 작아져가는 유사의 구멍과 함께 쏟아지는 카울라디의 군선들이 있었다. 수백년동안 금기의 유사에 잡아먹힌 배들이며, 집이며, 기타등등이 쌓여 가라앉은 바다의 표면에 하나의 퇴적층을 이룬 것.
“어…. 가만. 아까 십수년 전에 봤던 배라고 했는데, 그럼 물 먹은지 십년도 넘은 나무쪼가리가 물에 떠있는건데? 그게 가능합니까?”
“낸들 아냐? 애초에 이 사막 아래 이런 물덩이가 있는 것부터가 비정상인데. 이게 모래랑 뒤섞이지 않고 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부터가 비정상 아니냐. 뭐, 이 바다만큼이나 신비하고 이상한 힘이 작용했겠지 뭐.”
갑판장은 유사 아래로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부터 이미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런 그들의 의문은 또다른 난파선을 향한 선원들의 목소리에 깔끔하게 사라졌다.
“금이다! 금 장신구다!”
“갑판장님! 여기 자물쇠 걸린 상자도 있슴다!”
들뜬 목소리와 함께, 반쯤 기울어진 난파선 위에서 누렇고 번쩍이는 것을 흔들어보이는 선원들.
“상자…. 가라앉은 상선에 자물쇠 달린 상자! 야! 거기 꼼짝말고 기다리고 있어! 누가 가서 부술만한 것 가져와!”
“오지말고 그쪽도 좀 뒤져보십쇼! 여기 돈될만한게 한두개가 아닙니다!”
“15년 전에 사라졌던 베울락 부족의 깃발도 있습니다! 살아남은 딸래미가 부족 승계용 발목장신구 찾아오는 사람이랑 결혼한다고 공표했었는데!”
“서, 선장님! 선장님 모셔와!”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해있던 선원들은 그들 주변에 가득한 희생자들의 파편을 뛰어다니며 조금 더 현실적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있었다.
첨벙!
“푸우우우! 으아아, 살 것 같다!”
“오오오오. 이이, 참으로 청명하기가…. 인간의 조악한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는….”
물론, 한쪽에는 여전히 바다 자체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수계 마법사, 교수와 오트만이었다.
“정말 자네 말대로 바다가 있을 줄이야.”
“오트만님이 주신 힌트가 컸죠 뭐. 아주 오래전에는 저 사막이 바다였다면서요.”
“그렇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이렇게 바다가 가라앉았다는 근거가 안되지 않나? 정말 어차피 죽을 거, 희미한 가능성에 도박을 걸어본겐가?”
“음….막 그렇게까지 도박이었던 것은 아니고, 나름 생각이 있긴 했습니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렇게 될 것이다!]를 확신할 순 없지만, [이러이러 했다면 지금 이게 말이 되지 않을까?] 같은 식으로 접근해봤다고나 할까.”
아예 물 위에 드러누워 입만 밖으로 내놓은 오트만의 말에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입만 내놓은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배가 다닐 정도로 흐르는 모래 바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지형이잖아요? 그런데 저 깊은 지저에, 지금 우리가 있는 곳과 같이 끓어오르는 사막의 열기를 식힐 물 덩어리가 있다면 말이 되죠. 차가운 바다에 식은 찬 모래와 사막의 뜨거운 모래가 만나, 그 사이에 공기층이 생길테니까. 배가 지나다닐 만큼 성긴 모래층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라 이겁니다.”
“으음…. 말 되는군.”
“오트만이 이상할만큼 컨디션이 좋았던 것은 본인이 직접 증명하셨고.”
“사막 특유의 생태계에 대한 것도 설명이 얼추 들어맞죠.”
“생태계?”
“모래바다 생물들, 몸집이 엄-청나게 컸잖아요.”
교수는 1.5m 전후의 크기로 배를 물어뜯던 조개, 락쉘이나 직접 배를 들이받아 침몰시킬 정도의 모래상어, 또 군선을 홀랑 집어 삼킬 정도로 거대했던 카울라디가 소환한 생물을 떠올리며 말했다.
“보통 육지 생물은 바다 생물에 비해 몸집이 작습니다. 그렇게 까지 커지려면 그만한 제 몸무게를 감당해야 하거든요. 여건상 크게 자라기 힘들죠. 그런데 여기 생물들은 모래 상어며, 락 쉘이며 어느놈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죄다 무지막지한 크기를 자랑하는데, 원래 사막이었던 곳에서 세대를 거쳐 저렇게 변했다면 저렇게까지 크게 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힘들단 말이죠? 뭐, 희귀한 케이스가 있을 순 있겠지만, 저렇게 하나같이 다 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좀 설명하기 어렵죠. 하지만, 원래 바다에 살던 놈들이 이런 환경에 적응했다면….”
“으음…. 그럴 듯 하군. 그럴 듯 해.”
“뭐, 대충 그렇게 살펴보니. ‘이 사막아래 가라앉은 바다가 있다면 전부 말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든겁니다.”
물론, 지금 당장 우리가 둥둥 떠있는 이 바다부터가 말이 안되긴 하지만.
교수는 그대로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
그저 소금물만 가득한 것이 아닌, 수 많은 생명과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진짜 바다.
오래된 배와 난파선이 쌓여 바다를 뒤덮은 퇴적층 아래에는 다양한 색의 산호가 달라붙어 그 흉한 모습을 가리고 있었으며, 그 사이로 작은 물고기 떼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촤악!
물속에 잠긴 교수의 시야에 이곳을 둘러싼 모래 바다에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첨벙!
촤아악!
모래상어. 일전에 모래 바다에서 배를 공격하던 그것은 점프하듯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지더니, 잽싸게 큼지막한 물고기 하나를 입에 물고는 세찬 꼬리힘으로 튀어올라 다시 천장의 모래 바다 속으로 파고들었다. 허겁지겁 돌아가는 것을 보니 아예 바다에서 살 수는 없는 몸인 것 같았다.
‘놈들의 몸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뮤트의 피. 아마 그것도 저런 식의 먹이 사냥 과정에서 뱃속에 들어갔겠지.’
분명 이 가라앉은 바다 어딘가에 뮤트가 있다. 그저, 내 생각보다 훨씬 넓어서 찾지 못하고 있는 것 뿐.
바닥을 향해 가라앉는 것이 아닌, 그 중심을 향해 가라앉는 바다.
‘팔카투스 그놈이 현실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면. 그 창구가 될만한 것은 하나뿐이다.’
교수는, 이 둥근 바다를 붙잡고 가라앉은, 저 깊은 곳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평범하게 알려진 ‘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 신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광명이나 자비, 풍요와 같은 5대 신과 달리 실체또한 저렇게 버젓이 존재하는 신.
‘GG의 신이라는 개념과는 다른 존재다. 달. 창세의 두 신. GG의 세계 자체를 조율하는 드래곤들에 의해 그들이 끌어내려졌다면….’
교수는 세계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끝없이 자라난 은빛의 거목. 전선과 회로로 만들어진 가지 하나 하나에 세계를 짊어진 그 모습.
만약 이 고대신이라는 존재가 세계수와 같은 존재라면? 그에게 알려준 것처럼, 팔카투스에게 세계의 진실을 속삭인 것일까? 그래서 팔카투스는 ‘형제들 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지식이 그에게만 허가된 것이 답답했다.’ 라고 말한 것일까?
….부그르륵.
가라앉는 교수의 몸처럼 그의 사고가 진실을 향해 가라앉는 사이.
턱.
‘….음?’
그의 옷가지에 갈고리같은 것이 걸리며, 순식간에 물 밖으로 끌어올려졌다.
“살라딘! 염병할 몇 번을 불렀는데 감감 무소식이다 싶더라니! 우린 댁들이 물에 빠져 죽은줄 알았잖수!”
“아니, 수계 마법사가 어떻게 물에 빠져 죽냐고-”
“됐고, 일단 와서 좀 봐야 할게 있으니 정신차리고 빨리 올라오슈! 선장님이 아-까 전부터 부르고 있으니께!”
교수는 표류물 건지듯 들어올려진 그의 옆에서 똑같이 건져져서는 ‘내려주게! 나오고 싶지 않아! 나를, 나를 내버려둬어어!!’ 라며 발버둥치는 오트만의 모습에 얌전히 배 위로 올라갔다.
아까 신이 난 표정으로 표류선의 퇴적층 위로 올라간 선원들이 사색이 되어서는 돌아와 있었으며, 그중 하나는 진짜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덜덜 떨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선원들 앞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선장은 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오는 교수의 모습에 반색했다.
“아, 살라딘. 잘왔네. 아무래도 자네랑 같이 봐야할 것 같아서 말이야.”
“….적입니까? 아니면, 바다생물?”
킁킁킁.
딱히 선원들에게서 뮤트 냄새가 나진 않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뭘 봤는지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뭘 본게 아니라…. 아무것도 못봤어….”
“….예? 못봤다고?”
“어, 없다고! 저렇게 많은 난파선에, 저렇게 많은 집과 천막이 쌓여있는데….! 심지어 밥 해먹고 살았던 흔적도 있는데! 시체가…. 시체가 한 개도 없어!! 뼈 쪼가리 하나, 핏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았단 말이야! 뭔가, 사람을 끌고 간 것이 틀림없어. 오직 사람만! 작은 흔적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알았네. 그만 들어가서 쉬도록. 밑에 통이 벌어진 술통을 뒀으니 필요한 만큼 퍼마셔도-”
와락!
“제, 제 말 못들으셨어요? 우, 우린 괴물 아가리 속으로 들어온거라고! 거기에 분명 그렇게 적혀있었단 말이야!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우리 전부 다…. 으으으으!”
“이 자식! 오냐오냐했더니 선장님한테 뭐하는 짓이야!”
“뜯어내! 목구멍에 술통 꽂아놓고 선창에 가둬버려!”
결국, 겁에 질려 발버둥치던 선원이 다른 선원들의 손에 갑판 아래로 끌려갔다.
그런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옷 매무세를 가다듬던 선장이 입을 열었다.
“추한 꼴을 보였군.”
“뭘 새삼스럽게. 그런데, 뭡니까? 저건.”
“뱃사람 답게 미신에 약한 것 뿐일세. 다만…. 적어도 그냥 헛소리가 아닌 것은 확인했네. 정말 사람의 흔적은 있는데, 시체는 하나도 남아있지를 않아. 보통, 세월이 흘러도 유골 정도는 남아있기 마련인데 말이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은, 저겁니까?”
“그래. 음…. 저 친구가 가져온 상자 안에 들어있던 거야.”
아닌척 했지만, 선장도 손대고 싶지 않은지 칼끝으로 그것을 덮은 천을 들어내며 말했다. 은화 몇 개. 어떻게 쓰는지는 모르지만 사막 배에서 ‘별 길잡이’라 부르는 관측도구. 그리고….
“항사일지?”
“아마, 우리 의문을 풀어줄만한 이야기가 적혀있겠지. 저 친구를 저렇게 겁에 질리게 만든 이유도.”
그렇게 말하면서 슬슬 눈치를 보는게, 말은 같이 봐야할 것 같아서 불렀다지만 내가 봐주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드러난 모습에 선원들이 숨을 집어삼키곤,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면서 사방으로 침을 뱉는 사이.
성큼성큼 다가간 교수는 냅다 그것을 펼쳐보였다.
“들었다!”
“게일이 저 꼴이 된 것을 보고도 직접 저걸 만졌어! 저걸 보고 미쳐버렸는데!”
“사, 살라딘. 자네는 그게…. 무섭지도 않나?”
“음? 아아. 다들 잊으셨나본데, 저 성직잡니다. 이단 무서우면 광명 교단 가입하십쇼.~ 악신도 때려잡은 성자가 직접 보증합니다~”
“오오오….”
“성직자…. 하긴, 금기의 크기가 살면서 본 것중 제일 커다랬었지….”
“금기에 잡아먹히고도 살아남았으니, 어쩌면 금기보다 저쪽 가호가 더 쎈거 아닐까?”
“그…. 항사꾼도 받아주나?”
순식간에 화색이 되는 선원들의 모습에 교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선원으로서 유능한 모습은 차고 넘치게 검증이 됐으며, 당장 발 아래 펼쳐진 무대가 바다인 이상 이들이 꼭 필요했다. 겁에 질려 위축되어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손해라서 적당히 분위기나 좀 풀어주려고 했는데.
“이참에 다들 개종하십시다. 어차피 금기의 유사 밑바닥까지 온 마당에 거리낄게 어딨습니까?”
교수는 그 사나운 뱃사람 답지않게 초롱초롱해진 선원들의 눈을 보며 오래된 항사일지의 첫장을 넘겼다.
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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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ㅁ년 4월 ㅁㅁ일. 골라딘과 우트림의 별 사이, 우로 5도 방향.
새로들어온 선원이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 오아시스에서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고 도박으로 다 날려버리기까지 한 녀석이, 자길 도와준 친절한 사람의 부탁이랍시고 배에 밀항을 시켜준 것이다. 선원은 매달고 밀항자는 갑판으로 끌어냈는데….
세상에 사막이여! 내지 사람이다!
그놈이 눈을 감고 기도를 읊는 순간 선원 여덟이 구명정을 향해 달려들었다.
1등 항해사와 갑판장이 도망가고, 이미 출항을 외친 뒤였다.
망할! 우린 이 빌어먹을 풍요의 떨거지와 항사를 시작해버린 것이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
설사 배를 통째로 버린다 해도, 출항을 외친 당사자, 선장인 나는 무조건 얽혔다!
사막이여! 금기여! 이런 도마뱀 똥같은 일이!
이젠, 금기를 어긴 자들의 마을로 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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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남일 같지가 않군.”
“크흠, 흠!”
일지는, 오래전 제법 큰 사막 배를 몰던 선장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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