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34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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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계셨네요? 낚시라…. 아직 여유가 좀 있나봐요?”
“아, 자네인가? 어떻게, 몸은 좀 괜찮나?”
“음, 보시는 바와 같이? 저 노툼이라는 트롤의 치료는 상식의 선을 벗어났답니다?”
락샤샤는 고양이처럼 가볍게 오트만이 있는 난간에 뛰어오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락샤샤는 암살자 집단의 수장이었고, 그런만큼 다칠 일도 많아 부상에 대한 지식도 꽤나 해박한 편이었으며, 그런 지식에 입각하여 봤을 때 그녀의 상처는 생명이 위태로운 수준이라 봐도 좋았다.
노툼이 손을 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건, 치료라기 보다는…. 수리를 맡기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었답니다? 그런 방식의 치료는 감히 상상도 해본 적도 없어요?”
“허허허허. 애초에 숲 트롤의 치유 주술을 경험해본 인간이 거의 없으니 당연한게지.”
니그미의 팔에서 자라난 뱀들에게 포박당하고, 인간의 몸에서 가장 단단한 뼈 중 하나인 대퇴골이 부러질 정도로 온 몸이 으스러진 상황. 목숨의 위기는 물론이거니와 살아남는다 해도 치명적인 후유증이 남을 게 분명한 상처였다.
끔찍한 고통과 강인한 의지력 덕분에 간신히 의식을 붙잡고만 있던 그때.
점차 희미해져가는 감각 속에, 락샤샤는 별안간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손아귀의 감각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더는 못간다. 여기서 기다려라.’
아직도 그게 꿈인지 환상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기억 하나 만큼은 선명했다.
그러니까, 이 트롤 주술사는 막 몸에서 떠나가는 영혼을 아예 제 영혼항아리에 붙잡아 둔 다음, 혼이 나가버린 몸을 쓱쓱 치료해선 그 안에 도로 집어넣은 것이다.
“옆에서 보고있던 나도 혼이 나가버릴 것 같은 광경이었지. 도대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이냐고 물어보니, 죽은 사람은 영과 육의 연결이 끊겨서 도로 집어넣어도 금방 튕겨나온다고 하더군.”
“그럼…. 반대로 말하면, 죽지만 않으면 살릴 수 있다는 얘기 아니에요?”
“노툼은 원래 재능이 대단한 녀석이었다네. 정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재능이었지….”
어찌나 대단한지 그린 스킨의 고향, 남부 숲에 있던 트롤 선조령들이 내륙 한복판의 로드릭까지 우르르 몰려나와 가르치겠다고 아우성 칠 지경이었다.
하늘에 닿은 재능. 타고난 지능. 거기에, 그 훌륭한 재료들을 두들겨 연마할 만큼의 충분한 시련과 훌륭한 스승까지.
노툼 또한 영혼술사였다. 그 말은, 제국의 다른 이들이 흉성을 떨구는 교수와 그것을 갈라 하늘을 여는 가이낙스를 보며 감탄할 때 노툼은 영혼술사의 눈으로 텔드마이어 일가의 세 가족.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방향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노툼의 재능이 제 갈길을 정하는 순간이었다. 숲 트롤의 자연 주술을 다루는 영혼술사로.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가슴 깊숙이 새긴 선한 존재로 말이다.
“께르륵!”
“끼륵! 끼르륵!”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갑판 언저리에서 해츨링 남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락샤샤의 회복과 함께 선실에서 나온 노툼이 도마뱀처럼 달라붙은 남매를 몸에 달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분들과 사이가 좋아보이시네요?”
“그우우. 새끼, 귀엽다. 어린 생물, 옆에 붙어서 보호한다.”
“아무래도 제국에서의 일 이후로 모성애가 싹튼 모양이야. 노툼은 이번 일이 끝나면, 그러니까 뮤트가 정리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가정을 이룰 생각이라더군.”
“….다행이네요. 만약 제가 잘못되면 저분들은 어쩌나, 했는데. 듬직한걸요?”
락샤샤는 흉악한 외모의 노툼이 무섭지도 않은지 그녀의 어깨며 허리며 가릴 것 없이 기어다니는 두 남매를 보고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했다.
오트만은 마치 부모와 같은 눈으로 남매를 바라보는 락샤샤를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혹여, 저들과 인연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나?”“….그 말씀은?”
“아니,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말일세. 저들의 세수가 족히 내 다섯배가 넘는데, 단순히 달그림자의 수장 직위를 이어받아 생긴 의무로 돌본다고 보기에는…. 음….”
“애정이 과하다? 지나치게 헌신적이다?”
“뭐….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지 않나?”
찰팍!
오트만은 겸연쩍은 듯 떨리는 낚싯대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눌락의 기함 위에서는 오트만 자신도 워낙 경황이 없어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선원들의 말에 따르면 피투성이의 락샤샤가 뱀 여자에게 붙잡혀 가면서도 악착같이 두 남매를 드라이 오아시스호에 던져넣어 지켜냈다고 했다.
단순한 의무감의 발로라고 하기엔 과한 감이 있지 않은가?
“음, 조금 설명하기 어렵네요?”
“감추고 싶은 이야기라면 굳이 이야기할 것은 없네. 어디까지나 그냥 이야깃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니 말이야.”
“아니, 그런게 아니라 정말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래요.”
배의 난간에 기댄 락샤샤는 커다란 트롤의 몸을 타고 놀며 서로의 꼬리를 쫓아다니는 헤츨링 남매를 바라보았다.
“….오트만? 당신은 바다를 좋아하죠?”
“사랑하지. 내 모든 삶을 그 단어에 묶어둘 만큼.”
“그럼, 당신께서 그것을 왜 사랑하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나요?”
“그건….”
“네, 어려워요. 제겐 저분들의 존재가 그렇답니다.”
대대로 달그림자의 일원으로 지내온 혈통의 영향일지도, 아니면 다른 사막의 어떤 것이 그리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락샤샤가 달그림자의 일원이 된 순간, 말로만 듣던 왕혈의 모습을 두 눈으로 봤을 때. 그들의 역사와 달그림자의 존재의의 같은 것은 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보는 순간 깨달아 버렸어요. 아, 저분들이 이 사막의 심장이시구나. 모래위를 기는 모든 생물의 근간이 내 눈앞에 살아 숨 쉬고 계시는구나. 내가, 이 분들을 지켜야 하는구나. 그냥 그렇게 느껴버렸답니다?”
“….혈족의 계약인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그럴지도 몰라요? 전해듣기로는 제 조상님은 오래전 사막 왕국의 왕들을 모시는 영광된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달그림자가 왕혈을 수호하는 것은 그 임무의 연장이라고 하니까. 다만, 이제는 단순히 그런 것으로 치부하기엔…. 저분들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버렸죠.”
오트만은 두 해츨링 남매를 바라보는 락샤샤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평소의 뇌쇄적이면서 반달같은 웃음으로 제 속내를 감추지 않는, 어떤 종류의 순수한 평화가 깃든 눈.
“….해츨링에게는 여성의 모성을 자극하는 어떤 기제가 있는지도 모르겠군. 자네는 스스로를 저들의 어미로 여기고 있어.”
“그럴지도요. 음…. 혹시, 교수가 애 딸린 여자라고 싫어하진 않을까요? 마음이 넓은 남자인 것은 알고있지만…. 경우가 경우인지라?”
“허허허허! 이런 상황에서 하는 걱정 치고는 사소하지 않은가?”
“제 일생에 가장 깊게 고민할 만큼 사소한걸요?”
“이런, 내 앞에 한 말은 취소하지. 음, 중요하군. 중요한 문제야…. 허허허허.”
락샤샤의 진심어린 걱정에 오트만은 그만 너털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른 놈 같았으면 생각을 좀 해봐야겠으나…. 교수 그놈이면 생각할 필요도 없지.”
“….역시 힘들까요?”
“아니, 그 반댈세. 예의 그 툴툴거리는 얼굴로 ‘도마뱀은 몸을 차게 해줘야 하나, 따듯하게 해줘야 하나? 락샤샤, 얘들 뭐 먹어?’ 이런 말이나 할 게 틀림없네.”
“정말요?”
눈을 반짝이는 락샤샤에게 오트만은 크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내 장담하는데, 그놈 성격상 자네에게 잘했다고 칭찬하면 칭찬했지 뭐라 하진 않을걸세. 저놈 성격상 지나치지 못한 애들 한둘쯤 거둬뒀을 수도 있고. 어쩌면 어디 한적한 시골에 교수 저 친구를 아버지라 부르는 양자, 양녀가 잔뜩 있을수도 있지 않겠나?”
“역시 그렇죠?”
“역시 그렇지. 천생연분이야 천생연분. 허허허허.”
찰팍. 찰팍 찰팍!
오트만은 연신 요동치는 낚싯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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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툼! 저쪽으로 가자꾸나! 물 마법사가 또 신기한 것을 하고있구나!”
“그웍. 저건 낚시다. 낚시. 생선을 낚는다.”
“으음? 생선은 그물로 잡는 것이 아니었나?”
“여기, 바다. 오아시스 같이 얕은 곳 아니다.”
락샤샤와 오트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끝내 몸에 달라붙은 도마뱀 둘을 떼어내는 것을 포기한 노툼은 세니카와 알다르를 몸에 매단채로 둘이 있는 난간에 다가왔다.
“그웍. 물 늙은이, 우리 밥 많다. 낚시할 필요 없다.”
“음? 아까 선창에 물이 다 들어와서 죄다 못쓰게 된 것으로 알았는데…. 따로 실어놓은 식량이 있었나?”
“있다. 돼지 인간이 주고 도망간 것.”
“돼지인간? 아, 눌락? 눌락이 주고 갔다면…. 노툼, 혹시 그거, 붉은 수실이 달린 상자에요?”
“맞다. 돼지 인간, 자기가 먹는 기준으로 넣었다. 아껴먹으면 한달. 배불리 먹으면 일주일.”
오트만이 둘만 아는 얘기를 나누는 락샤샤와 노툼에게 의문 섞인 헛기침을 보내자, 락샤샤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배마다 하나씩은 준비해두는 상자가 있어요. 붉게 염색한 천을 감아놓은 상자인데, 예기치 못한 사고로 금기를 어겨, 금기가 추적해오는 대상이 확정됐을 경우 사용하는 상자죠.”
“혹여, 그 안에 넣어서 던져버리나?”
“그러는 경우도 꽤 있다고는 들었지만. 보통은 연안 선착용 나룻배를 띄워 그 위에 금기의 대상을 띄워 보낼 때 사용한답니다? 배에서 가장 좋은 음식과 술을 상자 가득 담은, 홀로 모래바다 위에서 죽음을 기다려야할 동료를 위한 만찬 같은 거죠.”
“오호라. 그럼…?”
“네. 아마도, 그때 전투에서 금기의 대상이 드라이 오아시스호 전원이라 단정지은 눌락이 기함 위에 있던 사람들을 추방할 때 놓고 간 것 같아요. 동맹으로서 마지막 의리다, 이거 먹고 너희들끼리 죽어라, 이런 의미겠죠?”
“눌락 그 양반 기준으로 가장 좋은 음식을 만찬 급으로 보냈으면…. 과연 우리 전부를 먹여 살릴 법 하군.”
“그우우. 그러니까 아직은 밥 걱정 할 필요 없다. 늙은이 먹는 생선도 많이 있으니까 그건 애들 줘라. 가지고 놀게.”
“음? 아아, 이건 안되네.”
“그우웍. 치사한 물늙은이.”
“그런 뜻이 아니라…. 이건 물고기를 낚으려고 드리운 낚싯대가 아니라서 말이야.”
찰팍 찰팍-
오트만은 갈수록 더 요동치는 낚싯대에 파문을 드리우는 수면을 보며 손을 내저었다.
“흠흠, 그대 마법사여. 내 견문이 짧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힘들구려 생선을 낚는 도구로 생선을 낚지 않는다면, 무엇을 한단 말인가?”
“허허허. 이런 이런…. 작은 전하, 제 말은….”
“존대할 필요 없다. 왕혈이라곤 하나 허울뿐인 무능한 자이니.”
“무슨 말씀을. 나이로 봐도 저보다 한참 손 윗분이 아니십니까. 당연히 존대해드려야지요. 그건 그렇고, 이해하기 어렵다라…. 잠시, 주변을 좀 둘러보시겠습니까?”
알다르는 마법사 늙은이가 저 낚시대라는 것을 넘기기 싫어 말을 돌린다고 생각하며, 불퉁한 얼굴로 락샤샤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능하다면 저것을 하나 더 구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끼륵?”
무슨 소리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그와 세니카 와는 달리, 노툼과 락샤샤, 오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흘려듣던 선원들 마저 뭔가 감이 잡힌다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게 아닌가?
“어…. 세니카와 내가 멍청해서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다들 뭔가 알고있는 눈치인데….”
“허허허허. 그렇다기보단,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다들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겁니다. 왕혈들께서도 저희와 같이 움직이시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그런 것이지요.”
오트만의 여유롭기 짝이 없는 말투에 락샤샤의 미간에 주름이 어렸다. 그러고보니, 배 위에서 가장 시끄러워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선원들과 같이 난파선쪽으로 간게 아니었나요?”
“그랬다면 그쪽이 시끄러워졌겠지. 뭐가 날아다니고, 부러지고.”
“그럼…. 설마?”
락샤샤의 날카로운 눈빛이 오트만을 훑었다. 마치 잔잔한 수면처럼 가라앉은 웃음. 그런 평온한 모습을 모방하듯 마찬가지로 고요하게 마법사의 주변에 내려앉은 마나.
낚싯줄처럼 보이던 것은 낚싯대 끝에서 이어진 가느다란 물줄기였다.
“그 사람을 설마 저 아래로 혼자 보냈다는 말씀은-!”
“락샤샤. 교수 그 친구를 얼마나 아는가?”
교수가 어디로 갔는지 눈치챈 락샤샤가 언성을 높이던 찰나, 오트만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놈과 같이 다닌지 일년 반이 조금 넘었군. 대단한 친구지. 유쾌하고.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입에 농담 한자락 담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달변가란 말이야. 생긴 것 답지않게 치밀하고 지혜로우며, 생긴 것 답게 저돌적이고 막무가내이기도 하지.”
“그런데 말이야…. 자네, 그 친구가 한번 화내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화. 교수가 화를 내는 모습이라?
‘아익! 진짜 저 개같은 놈이!’
‘엿같은! 빌어먹을!’
‘아오!! 진짜 뭘 하나를 챙기면 하나가 또….!’
있다….고 대답하려던 락샤샤는 오트만의 가라앉은 눈빛에 말을 주워삼켰다.
“없….네요?”
“그렇지? 뭔가 울컥 하면 바로 밖으로 뱉어내는데, 그게 진정으로 속이 끓어올라 내뱉는다고 보기엔 너무 가볍지. 나도 그 친구가 울분을 토로하는 것은 딱 한번밖에 못봤네.”
변경백령에서 교수가 이성을 잃었을 때. 뭔가 대단히 겁에 질린 듯 스스로를 붙잡지 못한 교수는 정신을 놓고 스승인 그를 죽이려고 들기까지 했다.
그때를 제외하곤, 진정으로 자신을 놓아버렸을 때를 제외하곤 교수는 밖으로 분노를 표한 적이 없었다.
“쉽게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어서? 아니, 그때 보여준 광기와 난폭함이야 말로 그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었지. 울분, 두려움, 한없이 두껍게 쌓인 그것들 속에서 몸을 일으키기 위해 자라난 난폭함…. 아직 우리가 모르는 과거가 한참 쌓여있는 친구야. 화가 아주 많은 친구라네, 교수는.”
“그럼 왜….”
“모기가 많은 지방의 사람들이 모기 한두마리를 신경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
평소 모기에 시달릴 일이 없는 사람들은 작은 모기 한 마리에도 짜증을 내지만, 모기 떼가 눈에 보일 정도로 몰려다니는 곳의 사람들은 그것에 달관해버리는 것처럼.
“내가 우리 왕혈분들만큼 오래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만큼 살다보니 제법 보고 들은게 많지. 전쟁이 났을 때, 병사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아는가? ‘물 주머니를 허리춤이 아니라 배에 달아놓으면, 아침에 먹은 물이 갈라진 뱃가죽 사이로 흘러나와 가득찰테니 보급 받을 필요가 없다.’ 며 웃는다네. 사람이 그렇게 자조적이야. 교수 그 친구의 농담에는 그런 것들이 뭍어난다네. 나보다 한참 젊은 녀석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울분과 억울함을 토로하고 토로하다 못해 달관해버린 그런 사람의 유쾌함이 몸에 베어버렸단 말일세. 그놈은 늘상 활기차고 유쾌하기만 해. 슬퍼도 히죽거리고, 화가나도 히죽거리고. 뭘 얼마나 버텼는지 그 히죽거리는 모습이 아주 얼굴에 박혀버린게야.”
변경백 영지에서 이성을 잃은 교수의 진심을 마주한 오트만은, 그날 이후로 교수의 행동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교수는, 이미 인간으로서 어떤 완성된 단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락샤샤 자네가 정신차리기 전에, 노툼이 치료할 때 교수가 보고갔던 것 아는가?”
“….”
“자네 참 처참했다네. 사람이 부러진 인형처럼 사지가 꺾이고 입에서 선지피가 울컥 세어나오는데, 교수 그놈이 그걸 보고와서는 대뜸 내려가 봐야겠다고 하지 뭔가. 같이 가겠다고 했더니 ‘댁은 바닷속에서 헬렐레 할꺼라 안된다-’ 같은 소리를 하더군. 노상 그렇듯 히죽거리면서 아주 유쾌하기 짝이 없어. 눈은 사람 몇을 생으로 토막낼 것 같이 해서는 말이야.”
그래서 말리지 않았다. 말려도 들어먹을 것 같지가 않아서.
“저놈은 뭐든 다 제 탓으로 돌려버린다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누가 안좋은 꼴이라도 난다면, 별일 아닌 듯 투덜거리며 훌쩍 나가버리지.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 듯이. 혼자 박살내고 터트리고 한바탕 난리를 처버려.”
찰팍, 찰팍찰팍!
오트만은 아득한 눈으로 그의 낚싯대 끝에서 뻗어나온 물줄기가 흔들리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물줄기의 끝은 저 깊은 바다 아래까지 뻗어있었다.
제 아무리 교수가 민감하다고는 해도 아직 스승인 오트만을 뛰어넘을 수는 없으니.
내려가기 직전 그가 살짝 붙여둔 물줄기 한자락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가 교수 그놈을 막을 수는 없으니…. 그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녀석이 찾고있는 놈을 위로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지 않나?”
보나마나 또 혼자서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 생각일테니, 이번엔 그렇게 두지 않을 샘이었다.
“그 팔카투스라는 놈이 그렇게 교수놈만 보고있다는데, 시야가 좁으면 낭패를 본다는 것을 알려줘야지.”
찰팍 찰팍-
가는 물줄기가 요동치는 것을 보며 오트만은 흐뭇하게 웃었다.
반응이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사달이 난 모양.
‘물어라. 교수 그놈도 수계 마법사인 만큼 쉬이 걸리진 않을테니, 아마 은밀함을 포기하고 공격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제대로된 적을 마주한 순간일 터.’
출렁이는 바다 위,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 바다위에 낚싯줄을 드리운 오트만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적이 미끼를. 교수라는 싱싱한 미끼를 무는 순간, 교수와 적을 포함한 주변 바다를 통째로 낚아올릴 순간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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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그르륵-!
‘걸렸다!’
으드득, 으득, 으적!
곰치를 수백, 수천배로 키워놓으면 저런 모습일까?
눈을 희번득 거리는 놈은 자신의 이빨 사이에 갈려나갔어야 할 고깃덩어리가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연신 두리번거리며 수염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수염, 저 수염으로 눈치를 깐거야!’
[생긴건 결전 병기처럼 만들어놓은 주제에 뭔 감지기관 같은 섬세한걸 갖다 붙여놓은거야!]‘낸들아냐! 여왕 눈에는 그게 좋아보여서 섞었나보지!’
여왕의 뮤트 생산 체계가 어찌됐건, 지금 중요한 것은 저 대왕 수염 곰치가 감으로 때려맞춰서 내가 있던 곳을 아가리에 쳐넣은게 아니라, 분명히 감각적 근거를 대상으로 위치를 파악해 공격했다는 것이다.
길고 탄력있는 용수염은 작은 물결에도 파르르 떨리는 유연함을 보여주었다.
‘집안에 들어가고 나서는 외부 시야가 차단됐다는 생각에 좀 경솔하게 움직이긴 했지. 놀라기도 했고. 그런 움직임을 생물로 특정하고 공격한거야.’
놈은 민감한 수염을 가진 대신 눈이라고 할만한 기관이 없는 것 같았다. 그 말은, 이렇게 쥐죽은 듯 있으면 충분히…. 피해갈 수 있는 상대라는 뜻이다.
‘….아마?’
[틀리면 아까 그 집에 다시 들어가게 될거야. 돌가루랑 고깃조각으로 뒤섞여서.]으드득, 으득! 후욱!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는 내 앞으로 놈의 기다란 근육덩어리 몸이 스쳐지나갔다. 커다란 아가미가 돌가루가 되어버린 집을 흩뿌리며, 놈은 집이 있던 자리를 한참 맴돌았다.
[….간다. 진짜 모르고 간다!]‘다행히 아예 들키는 것은 면했군.’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내가 있던 자리를 한참 맴돌던 수염 곰치는 흥미를 잃었는지, 이내 유유히 헤엄쳐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멀어지려고 했다.
구우우웅-
.
.
.
.
.
우그득-
‘….! …! …..!!! .!!!!’
[찌, 찍소리도 내지마! 입 틀어막아!]‘주, 죽었어! 갑자기 저게 죽었어!’
군선 세대 정도를 일렬로 붙여놓은 크기의 수염 곰치가, 갑자기 훅- 하고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게 아니다. 갑자기 엄청난 힘이 놈을 압착해 눌러버린 것이다. 눈앞에서 살아있는 생물이 평면이 되어버렸다고. 3D였던 놈이 별안간 2D가 되어버렸다고!
[야, 저거…. 뭐가 나오는데?]‘….집이다. 놈의 뱃속에 들어간 집이야.’
그렇게 순식간에 피와 오물이 섞인 어포가 된 수염 곰치의 몸에서 돌부스러기들이 줄지어 나오더니, 가라앉은 다른 돌조각들과 함께 순식간에 다시 원래 제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산호와 따개비가 사라진 것만 제외하면, 처음의 신성문자가 새겨진 사막 가옥의 모습 그대로.
‘….우리, 저 안에 있을 때 뭐 건드린거 없지?’
[달은 건드리지 말자. 싸울 생각도, 뭘 해볼 생각도 하지 말자고.]수염 곰치를 저렇게 만든 힘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는 안봐도 뻔했다. 가라앉은 달님께서 제 수집품을 박살낸 누군가가 대단히 언짢으셨단 뜻이겠지.
‘다른 사람들 대리고 오지 않길 잘했다.’
[그치? 우린 아마 저렇게 납작해져도….살겠지?]‘옛날 오락기에 나오는 장면 같겠군.’
다소 무시무시한 장면이 연출되긴 했지만, 제대로 찾아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가는 교수의 발밑으로, 산호 숲 사이를 뚫고 나오는 가라앉은 달의 빛이 닿았다.
신성력이다. 다만,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십가지 다른 종류의 신성력이 섞여있었다.
[….우리 달님이 방문 판매도 받아 주실라나 모르겠네.]‘팔카투스도 그렇고, 저 집도 보니까 우릴 죽이진않겠지.’
[아니면, 산산조각낸 다음 다시 재조립해서 전시하거나.]‘재수없는 생각 하지 마라.’
쿠르르륵-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가라앉는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저 아래에 모든 답이 있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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