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35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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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 부스럭….
바각!
나무처럼 자라 울창한 수림을 이룬 산호초의 숲은 그 자연적인 빽빽함으로 나를 가로막았고, 덕분에 부득이하게 가라앉는 것을 멈추고 직접 움직여 그 사이를 해쳐나가야 했다.
해파리처럼 투명한 촉수를 사방에 뻗어 몸을 고정한 챔버 메이드 들. 그것들을 향해 일개미처럼 쉼 없이 먹을 것을 가져다 바치는 저급 뮤트들.
일종의 생산 공장과도 같은 활발함의 사이를 지나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가면, 마침내 수상한 냄새만 풍기던 가라앉은 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예쁘네.’
[그러게. 누가봐도 신성한 존재 그 자체로군.]산호숲을 뚫고 마침내 가라앉은 달의 실체를 눈에 담았을 때,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감정은 ‘안타까움’ 이었다.
은은하게 푸른 빛을 발하는 새하얀 구체. 그 주변에 반딧불이처럼 떠다니며 각기 다른 신성력을 발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성물들.
‘성물 전시회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군. 목걸이에, 장갑에, 성상에 성전에….’
[익숙한 물건들이 제법 되는데? 저거랑 저거, 저것도 다 광명쪽에서 쓰는 물건이지? 유난히 광명 교단 성물이 많은 것 같은데?]‘그야 뭐, 광명 교단은 성녀를 잃고 난 뒤로, 로하람이 새 성녀를 내려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온 세상 구석구석까지 성직자들을 보냈으니까. 가는 족족 성직자를 잡아먹는 이곳 동부 대사막인 만큼 마지막까지 성직자의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땅이 되어버렸고, [아직 확인하지 못한 지역]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성녀를 잃은 교단의 신도들에게 마지막 희망처럼 느껴졌겠지. 교단에서 말려도 달려든 이들이 꽤 될거다 아마.’
[과연. 광명 교단 사람들 물건이 많을만 하네.]‘다른 교단에 비해 절박함이 남달랐으니까. 풍요 교단 물건이 그 다음으로 많은건, 주요 활동지역인 텔드랏과 인접한 탓도 있고. 풍요가 교단의 신조인 만큼 열사의 땅에 종교적 이념을 전파하러 온 성직자들이 많은 탓도 있겠지.’
그렇게 사막을 찾아온 성직자를 잡아먹고, 잡아먹기를 수백년. 달은 자신만의 작은 바다를 만들어 성물이라는 별로 가짜 하늘을 수놓았다. 그것은 그 누구라도 마주한 순간 감탄사를 토할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나. 심해와 신성의 빛이 어우러진 인공 우주의 아름다움에서 눈을 돌리면, 그 화려한 빛 사이에 감춰진 균열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눈에 들어왔다.
‘떨궜다곤 해도, 나름 고대 신답게 좀 우아하게 내려 앉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아주 냅다 집어 던졌나본데?]아름다운 광원에 둘러싸인 달. 그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굵은 균열들.
마치 어린아이가 깨진 도자기를 붙여놓은 것처럼 불규칙하게 갈라진 달의 모습은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쇠락하게 되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으며, 갈라진 균열에서 세어나온 빛이 바다 위로 곧게 뻗어나가는 모습은 마치 달에게서 뻗어나온 거미줄이 바다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쿠르르르륵-
‘역시…. 닮았어.’
[너도 그 생각했냐?]‘어. 생긴게 아니라, 풍기는 아우라 같은게 닮았다고 해야하나.’
태어나 단 한번도 본적 없는,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에서나 볼법한 광경. 하지만 내게도, 하이드에게도 익숙하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아마 저것과 같은 ‘존재’를 마주한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 Jokass : 어, 어어? 이거, 이거 왜이래 또?
– 흥안만두 : 박교수씨! 방송이 또 나갔어!
– 노루Drug해요 : 습관성 방종이냐! 아님 행정부 새끼들이 또 병신 짓거리를 하는거냐!
– takealook : 아니 이거 왜 이러는건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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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욱.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묘한 기시감과 함께 고장이라도 난 듯 사라져버리는 대화창.
교수는 지금껏 존재감 하나 없던 세계수의 인장이 옆구리에서 녹색 빛을 발하는 것을 보았다.
“역시…. 가라앉은 달도 그쪽 계열이셨구만.”
“그야 뭐. 그럴 필요가 없거나. 혹은….”
부서져 가라앉은 달. 눈에 선명한 손상의 흔적. 불안정한 모습.
“….그럴 능력이 없거나.”
방송이 꺼졌다는 것은 지금 이 상황 또한 외부에 나가선 안되는 장면이라는 뜻.
즉, GG가 숨기고 있는 무언가가 드러나는 순간이란 말이겠지.
묘한 기시감의 정체는 회전하는 달이 커다란 균열을 내보이는 순간 드러났다.
[예쁜 외관과 달리 속은 아주 엉망진창이네.]‘그렇지. 같은 기계라도 세계수의 정돈된 모습이랑은 아주 딴판이군.’
[왜 굳이 저렇게 기계로 만들어진 모습을 가지게 됐을까? 저게 세계수와 같은 존재라면 게드로이츠가 저런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뜻이잖아. 굳이 저런 아름다운 외형 속에 흉한 내면을 만들어둔 이유가 뭐지? 그냥 달처럼 만들거나, 아니면 세계수의 아바타처럼 달의 여신, 뭐 그런 모습으로 만들어서 권한만 부여했으면 되는거 아냐?]‘….상징이겠지. 시뮬레이션을 따라 완벽하게 창조된 또 하나의 세계 속에, 인공물로서 외부 개입의 창구가 되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상징.’
마치 여기까지 도착한 플레이어에게 기계 장치 달의 흉한 속내를 드러내보이며 ‘결국 이것은 만들어진 게임이다.’ 라는 것을 공표하듯.
한때 창세의 두 신이라 불리던 달은, 그렇게 가라앉은 달이 되어 흉한 금속 몸체를 밖으로 내보이고 있었다.
갈라진 균열 사이로 복잡한 기어 장치와 전선, 얕은 지식으론 구조조차 이해할 수 없는 메커니즘이 얽힌 내부.
분명 차가운 쇳덩어리의 집합에 불과했으나, 쩍 갈라진 달의 드러난 내부를 보고있으면 어째서인지 갈라진 뱃가죽 사이로 맥동하는 생명체의 내장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띠링-!
[….!]‘….역시나.’
수집된 신성의 은하 사이를 파고든 교수가 마침내 그 달의 내부에 도착했을 때. 귓가를 파고든 울림은 희미한 의심에 쐐기를 박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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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professor’ 접근 확인.] [부정적. 플레이어 권한으로 데이터 접근 불허.] [.-.-.-.—- 대기. 대리 권한의 존재 확인됨. 하위 관리자 ‘Worldtree’의 권한이 일부 양도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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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뉴얼 데이터 손상됨. 기존 데이터 접근 경로 차단됨. 부정적. 부정적. 부정적. 부정적….] [‘불완전 자율사고체계’ 적용.] [1. 대상은 현 인공지능의 치명적 오류의 수정에 적합한가 – 부정적] [2. 대상은 자율사고체계의 완성을 위한 수집 데이터로서 적합한가 – 긍정적] [3. 대상이 현 인공지능과 데이터 교류를 위한 일반 관리자급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있는가? 있는가.]=========
틱.
틱.
틱.
틱.
나를 시험하듯 울리는 달의 목소리와 함께 옆구리에 새겨진 세계수의 인장이 불에 달군 듯 뜨거워지고 있었다. 나무를 닮은 녹색 인장이 희미한 빛을 발할 때 마다 그것에 동조하듯 기계장치 달의 내부에서도 작은 불빛 수십 개가 깜박이고 있었다.
세계수와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졌지만, 당장 수준을 보면 같은 급은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스템처럼 완전히 기계적인 사고를 장착한 것 같지도 않고. 손상된 기계적 판단력의 대체제로 자율 사고체계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틱.
틱.
틱.
틱.
작은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시계의 초침과 같이 정적을 채우는 가운데.
띠링-!
[하위 관리자 ‘WorldTree’의 권한 대리 확인. 완성자 후보.] [….보류. 본AI의 관리자 권한을 부여 하기에 적합하지 않음.] [단, 본 AI의 관리 프로세스 손상율이 40% 이상임을 감안할 때 판단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 비상시임을 감안하여 손상된 체계 복구를 위한 ‘수리 기사’급 데이터 접근 권한을 허가함. 대상이 관리체계 수복에 적절한 허가 값을 가지고 있다 판단될 시 임시 관리자 권한을 부여하겠음.]‘….세계수? 세계수가 하위 관리자라면 그보다 더 상위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데이터 접근 권한이라니. 플레이어가 요구하지도 않은 권한을 부여해?’
철컥, 구우웅-
촤아아악!
내가 달의 대답을 곱씹어보기도 전에 부서진 달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수함의 감압실에서 물이 빠지듯 달 주변을 둘러싼 바닷물이 쏟아져나오더니 금새 마른 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마치 기계 부품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듯한 과정 끝에 제 몸의 30% 가량을 안으로 끌어들인 달의 갈라진 표면에 나타난 것은….
“….화면? 아니, 관제실인가?”
회로기판과 금속 부품으로 만들어진 테이블 하나. 의자 하나. 그리고, 그것을 제외한 모든 드러난 표면을 빼곡하게 뒤덮은 것은 푸른 빛의 전자 화면이었다.
[Welcome. professor. 안녕. 하. 십니까. 본. 인공지.능은. 게드로이츠 컴퍼니의 실험적 인공지능. 프로토 타입 완성형 미완성 의식체. ‘Null’ 입니다.] [프로젝트 대상 시뮬레.이션 내부에서는 ‘달’로 불리고 있으니, 명칭을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시스템과 같이 음운의 고저 하나없는 기계적 음성. 하지만 그것은 분명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기계와 완성된 인공지능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플레이어 ‘professor’. 본 관리체계는- 치명적 손.상을 입었으며. 반복된 시도를 통해 자체적.인 수복이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획득했습-습습-다.] [데이터를 공유합니다. 최초 입력값. ‘Subject-Key finder’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관리체계 수복에 협조해주시길.]틱. 틱. 틱. 틱. 틱-
“자, 잠깐만,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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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르르르르르륵!
당황한 내가 과정의 중단을 요청했지만 달은 들은척도 하지않고 제 멋대로 주변에 산재한 화면위로 데이터를 띄워 올리기 시작했다.
깨알같은 글씨로 녹색 화면의 끝에서 끝까지 차오르는 문자들. 슬쩍 훑어보니 대분류 항목의 가짓수만 네 자리가 넘어가고, 소분류로 넘어오면 그게 또 수백만으로 불어났다.
말 그대로 정보의 바다. 달이라는 이름의 AI가 수백년 가까이 관측하고 수집한 정보들이었다.
‘혼동하지 말자. 목표. 처음 이곳에 온 목표. 팔카투스와 놈의 비밀. 필요하다면, 파괴공작.’
놈은 NPC에게 허용되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나와 나눌 수 있었다. 이는 NPC에게 피자와 햄버거, 코카콜라 따위를 아무리 말해도 시스템의 차단에 의해 그들이 흘려듣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팔카투스도 그렇게 말했지. 금단의 지식을 가지고있는데, 형제들 중 그 누구와도 나눌수 없고 알아듣지 못해 답답해 죽는줄 알았다고.’
그렇다면 놈은 NPC에게 부여된 제한을 넘어섰다는 의미가 되겠지.
‘….가능할까? 그게? 한낱 데이터 덩어리에게?’
….부정하고싶지만, 내 머리는 절대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데이터 소울을 기반으로 박교수의 의식이 옮겨진 캐릭터니까.
데이터 소울이 전자화된 영혼이라고 해도, 그 이름처럼 수정, 편집이 가능한 데이터에 불과하다.
놈은 내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롯이 나의 복제와도 같은 뮤트다.
만약, 팔카투스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불완전한 AI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면? 그리하여, 지금 내가 겪고있는 과정과 동일한 과정으로 AI의 사고를 유도하는데 성공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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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이 내 복제라면. 내 데이터 소울의 변형된 모습이라면…. 지금의 내가 ‘플레이어’로 불리는 것처럼, 놈 또한 데이터 소울로서 플레이어 권한을 일부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놈에게도 나와 같은 ‘수리 기사’로서 데이터 접근 권한이 부여됐을수도 있으며.
『참으로. 참으로 장엄하지 않습니까? 아버지.』
타각. 타각타각타각타각.
지금 다가오는 저놈이 내 정보를 전부 알고있는 것도 전부 설명할 수 있었다.
타각타각. 타각.
화면으로 이루어진 기계장치의 일부가 안으로 말려들어가더니, 달의 내부에 이어진 통로를 타고 걸어들어오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버디라 부르는 탑승물 위에, 녹색 체액안을 부유하고있는 녀석.
“팔카투스.”
『노크도 없이 찾아오셔서 조금 늦었지 뭡니까. 참…. 북부에서부터 감지능력이 뛰어난 해양 생물형 개체를 만들어 여기까지 옮겨오고. 거기에 물속에서는 아무도 제 눈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큰소리치던 니그미까지 눈에 불을켜고 있었는데. 수고한 보람이 없게 해주시는군요.』
쿠드드드득!
팔카투스가 완전히 빠져나오자 화면들 사이에 뻥뚫린 구멍이 즉시 사라지며, 다시 정보가 가득한 녹색 화면이 나타났다. 적어도 놈이 이 달 내부의 기계장치를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획득한 것은 확실해보였다.
“….이번에는 인질도 없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내 앞에 선거지?”
『워,워. 무섭기도 하셔라. 언성을 높이지 않는게 좋을겁니다. 나름 여기 계신 이분과 헌신적인 관계를 유지한 결과, 우리 달님께서 ‘우호적인 독립 인격체’라고 해주셨거든요? 으으음…. 그 주먹 계속 쥐고계시면 아마 좋은 꼴은 못보실텐데.』
역시나. 항상 빠져나갈 구멍부터 마련하는 놈 다웠다.
『하하하하. 너무 그렇게 실망하지 마시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저도 정보 접근권한을 가진 아버지께 위해를 가할 경우 달님 차원에서 제게 제재를 가할테니까요. 이곳에서는 살고싶으면 둘다 사이좋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게 네놈이 준비한 함정이냐?”
『함정이 있을 것 정도는 뻔히 아시면서 들어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기랄. 이래서 이놈이랑 머리싸움 하기 싫었는데.
마치 서로의 생각을 낱낱이 공개해놓고 전략을 짜는 것 같았다.
『지금껏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아무래도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 진정성있게 들리진 않지 싶습니다. 아버지, 저는 정말 대화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평화가 강제된 이곳에서, 허심탄회하게. 몬스터와 플레이어로서가 아니라, 팔카투스와 박교수로서 마주하고 말입니다.』
“….내가 듣기 싫다면?”
『완성자.』
상황이 놈의 페이스에 말려들고있는 것은 분명했다. 거기에 끌려가다보면 쉬이 빠져나오지 못할 것도.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완성자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professor.]‘제기랄…. 제기랄!’
놈은, 지금 내가 억지로 가슴에 담아둔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 세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왜 만들어졌는지. 당신이 아끼는 이들. 락샤샤, 오트만, 알드리치, 루실라, 노툼…. 이 세계를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들에게 있어 당신이 어떤 존재이며, 당신에게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하여, 이 세계가 당신에게. 아니, ‘밖에서 온 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틱. 틱. 틱. 틱. 틱. 틱.
….드르륵.
『감사합니다, 아버지.』
결국, 놈의 수작에 휘말리는 것을 알면서도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수작이 아니라 정말로, 정말로 그저 알리고 싶을 뿐인지도 모르니까.
게임 내부에서 만들어진 존재가, 게임 외부에 전하고 싶은 진실이 있는 것 뿐인지도 몰랐으니까.
무엇보다, 어느순간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려 내 눈밖으로 나가버린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타각. 타각 타각.
내가 자리에 앉자, 팔카투스를 태운 버디도 테이블 앞으로 다가와 다리를 구부렸다. 결국 놈이 그토록 원하던 ‘평화적인 대화’가 성사된 것이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완성자의 의미부터.”
『하하하하. 저는 뱃삯을 전부 주고 배를 타는 멍청이가 아닙니다. 제겐 하고싶은 얘기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듣고싶은 얘기만 듣고 훌쩍 도망가버리면 안되거든요. 으음…. 역시, 이 세계 안의 존재에 불과한 제가 어떻게 당신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었는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게 수순이겠지요.』
팔카우스는 마치 숙원을 이룬 사람처럼 감정적으로 북받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신 연결로 직접 대화하는 주제에 놈이 숨까지 고른 다음에서야, 놈은 말을 이어나갔다.
『시작은…. 정말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아니, 당시에는 기회가 아니라 재난이었지요. 당신을 피해 도망친 곳에, 당신보다 더한 존재가 있었으니.』
신성의 존재. 그리고 유사. 우연이라 부르기엔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그날을 떠올리는 팔카투스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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