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36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36)
****
팔카투스는 즐거웠다. 이곳에서 진실에 도달한 뒤. 아버지 앞에서는 이 순간을 얼마나 상상했던가. 그 상상의 숫자만큼 할 말을 다듬고, 또 준비했던가.
『제국에서 마지막으로 뵈었을때를 기억하십니까?』
“….폭풍의 언덕이었지.”
『예. 필요 이상의 준비였다고 생각한 함정이었지만, 되려 제 동생의 목숨과 누님의 팔 하나를 잃어버린 처참한 날이었지요.』
그날의 기억. 땅굴벌레 안에서 무슨 수를써도 숨을 쉬지못해 질식해가는 형제를 보며.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누님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정신없이 북부로 도망치던 기억.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순간.
“언제나, 당신께서는 제 최고의 스승이자, 시련이셨습니다.”
팔카우스의 음성이 나지막이 울렸다.
그러니까 몇 개월 전. 교수가 에데오르나를 놓쳤다고 아쉬워하고, 성녀의 영혼을 전달하고 엘프 숲으로 향하는 기구에 몸을 싣던 그 시간. 팔카투스에게 일어난 일들의 이야기였다.
****
“누님, 저는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다들, 제가 말만 꺼냈다 하면 하나같이 그건 말도 안된다고 하는겁니까!”
아버지는 벽이었다.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그를 상대하는 것은 그 벽에 들이받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머리가 깨질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벽을 부수고 나아갈 것이라 생각했으나, 가족을 잃은 뒤로는 그런 생각도 사라져버렸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틀에박힌 방법이 아니라, 그분조차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
그리고, 인간 세계에 파고든 첩자들을 관리하는 것도 모두 재쳐두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도중. 마침내 완벽한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그…. 이번에 잡아온 놈이 구원교라고 했나?’
‘예, 남작님.’
‘크흠, 흠! 그놈들이 뮤트라는 괴물을 다룰 수 있다고 하던데…. 혹시 그놈들을 자인 남작령에 풀어놓으면….’
‘나, 남작님! 어찌 그런 참담한….!’
‘아니,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솔직히 그 악귀같은 놈들이 뮤트와 다를게 뭐냔 말이지. 또 우리 영지에서 도망친 농노들 핑계로 나를 모욕하는데, 가축을 가축답게 다루는데 그게 왜 탓할거리가 되냔 말이야! 안그런가? 그 위선자 같은 새끼한테 괴물을 한아름 안겨주면 참 좋을텐데….’
텔드랏 구석의 시골영지에 파고든 첩자가 가져온 소식.
‘인간과 인간을 싸우게 한다. 놈들에게 우리도 말이 통하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치는거야! 놈들은 우리를 이용하고, 우리는 놈들을 이용한다!’
왜 이것을 지금에서야 떠올릴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로 간단하면서 완벽한 방법.
팔카투스는 너무 기쁜 나머지 버디에 타는것도 잊고 어머니께 달려갔으며, 다 까진 발바닥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그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 — ——』
‘….어머니? 그 말은…. 아니,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겠지요. 그렇지요?’
『–. —. -. —-.』
‘….납득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머니께서 옳으시겠지요. 예, 당신께서는 언제나 옳으시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왜 인간들과 연합하는 것이 일고의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일인지요! 적어도 이유는 있을것이 아닙니까, 어머니!’
세상에 다시없을 완벽한 존재인 어머니도. 그 누구보다 현명하고 사려깊은 누님도. 전투에 해박한 동생과 다른 모든 형제들의 의견도 같았다.
[뮤테이션 블러드는 인간과 손을 잡지 않는다.]팔카투스는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하는 그의 가족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의 역사는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것이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이거늘. 그들 종족이 있기 전에도 이미 그들은 서로 죽이는것에 대단한 열정을 보이고 있었단 말이다! 왜, 왜 다들 저렇게까지 그들과 손을 잡는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지? 어떠한 논리도, 이유도 없어. 그저 안되는 것이기에 안된다고만 할 뿐.’
그것이 의문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 종족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지?
정말, 단순히 생존을 위해 이렇게 인간을 잡아먹고, 세계의 적이 되어 싸우는 것일까?
생존이 목표라면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 벌레와도 협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형제들, 약간의 지성이 있는 뮤트들 마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버렸다. 마치 그런 생각조차 허용이 안된다는 듯.
‘우리는….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그를 괴롭혔지만 어쩌겠는가. 어머니의 뜻은 절대적인 것을.
결국 팔카투스는 다른 방책을 생각해야했고, 그렇게 해서 떠올린 것이- 바로 전쟁에서 동떨어져 있는 열사의 사막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
『그 다음은 뭐, 익히 예상하시다시피. 달은 신성을 가진 존재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마구 끌어들이고 있었으며, 신격화된 어머니의 자손인 저 또한 분명 그 신성의 작은 조각이나마 가지고있기에, 여기까지 도착하게 된 것이지요.』
나름 한 지역에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기 위한 원행이었기 때문에 제법 투자를 많이 한 편이었다. 챔버 메이드 둘과 그 호위 역할을 할 최상위 뮤트 수십을 땅굴벌레 셋에 나눠 태워서 사막으로 향했는데, 돌연 알 수 없는 힘이 그들을 어딘가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가.
가뜩이나 최근의 패전으로 네임드 하나가 죽고 하나는 회복중인 상황. 이제는 좀 쉬게 해드리고 싶었던 어머니가 휴식시간마저 줄이며 생산한 챔버 메이드였기에 팔카투스는 안간힘을 다해 땅굴벌레를 조종했지만, 결국 사막 아래로 끌려가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도착한 가라앉은 바다.
처음에는 이렇게 은밀하고 안전하며 생명력이 풍부한 곳을 찾았다는 것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머지않아 그 생각은 그들을 끌어당긴 힘이 위협이 되더라도 이곳을 차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거듭났으며, 팔카투스가 조종하는 뮤트를 그 심장부 깊숙이 밀어넣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은밀하고 안전하며 생명력이 풍부한 곳을 찾았다는 것에 순수하게 기뻐했습니다만, 이만한 지형이 자연적으로 생겨났을리는 없으니 뭔가 대단한 존재가 있을거라는 생각도 금방 들더군요. 엄청나게 오래된 신수라거나, 혹은 그 반대인 마수라거나. 뭐가 됐든 큰 힘을 가진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것을 제거해서라도 이곳을 차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만나서 설득하고 협력자가 되셨다?”
『하하하하. 그렇게 쉬웠으면 벌써 제 형제 자매들이 이 바다 가득 헤엄치고 있었겠지요. 일단,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습니다. 가라앉은 달, 널(Null)….이라고 하지요? 그것의 존재는 제가 생전 처음 듣는 언어를 사용했으며, 갈라진 내부 곳곳의 녹색 벽에 새겨진 언어또한 생전 처음보는 언어였습니다.
거대한 존재는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아들을 길이 없었다.
팔카투스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이것을 제거할지, 그냥 둘지 고민하던 순간.
[???????? ‘교수’ ????]팔카투스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단어가 있었다. 알 수 없는 단어들 사이에 유일하게 알고있는 단어.
『….아버지의 이름이었지요. 놀랍지 않습니까? 당신을 피해 도망쳐온 곳에서 만난 것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당신의 이름을 말하는 존재라니. 단조로운 신의 음성은 사방에 빼곡한 문자들을 읽어내려갔으며, 그 문장의 대부분에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도망쳐온 이곳조차 아버지의 발길이 먼저 닿았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조금 지나 아무런 위해가 없다는 것을 깨닫자, 흥미를 느꼈다. 어쩌면, 이것이 아버지를 꺾을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도대체 무엇을 말하기에 저렇게 아버지의 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일까?
침식을 잊고 해석에 들어갔다. 바다를 잡아둔 존재는 스스로 써내려가는 문자를 끊임없이 읽어나갔으며, 그것이 팔카투스의 유일한 교보제였다. 문자가 가진 연속성을 조사하고, 간간히 등장하는 지명과 고유명사의 발음과 문자를 비교하며. 끝내, ‘영어’라 불리는 언어를 체득했다 여겼을 때.
마침내, 여왕의 가장 약한 자식은 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이곳에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것도, 스스로를 널(Null)이라 소개한 존재가 아버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세상이 그랬을 뿐이었던 겁니다. 창조신의 도구가 기록한 세상의 중요한 일들이 모조리 당신에 대한 것일 뿐이었지요. 세상이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국도! 로드릭도! 어머니, 누님, 형제들! 당신의 적과 아군! 당신이 밟은 땅과 그렇지 않은 땅! 당신이 마주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이 모든 것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단 말입니다!』
부그륵-
『이 모든 세계가! 5대 선신과 어머니, 우리가 있는 이 달 마저 당신을 위한 무대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가짜! 가짜!!! 당신을 제외한, 이 모든 것이 가짜!!!!』
부그륵, 부그르륵-!
“….거기까지, 알아낸거냐?”
『….게드로이츠의 게임. 플레이어. 어딘가 다른 세상의 상위 존재를 위해 만들어진 세계. 우리와 같은 창조된 세계가 무수히 많다는 것도.』
팔카투스가 숨을 몰아 쉴때마다 놈이 들어있는 액체속에 기포가 차올랐다.
잠시 숨을 몰아쉬던 팔카투스는 웅크리듯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의 그 차분한 모습으로 되돌아오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날의 충격을 떠올리면…. 이성을 유지하는게 힘들어서. 마치, 짧았던 제 삶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니, 비단 기분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교수는 전처럼 활짝 웃는 놈의 얼굴에서 어떤 독기 같은 것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를 토로하던, 오래전 그와 같은 독기를.
팔카투스는 이곳에서 프로그램 언어, 그러니까 인공지능인 달이 쓰는 언어인 영어를 익혔고, 달이 간직하고 있던 GG의 근간에 가까운 지식을 접했으니까. 자신의 주변은 물론 스스로의 존재마저 데이터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에서 오는 공포는 나도 겪어본 적이 있어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음, 아, 음…. 계속 이야기 하지요. 아무튼, 저는 어지러히 늘어선 신의 문자들 사이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당시엔, 정말 충격이었거든요. 태어나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버디가 아니었으면 스스로를 헤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삶, 종의 생존을 위한 모든 노력이 그저 누군가의 유희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플레이어를 죽이면 그의 세계는 끝나며, 플레이어를 죽이지 않아도 그의 손에 뮤트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
그들의 종에게 있어 완벽한 생존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달은, 그렇게 절망한 팔카투스의 옆으로 접근했다.
========
기록 – 개체명 팔카투스. 유의미한 첫 의사소통
– Null : 신성 데이터 참고 개체. 이래적으로 영어를 이해한 것을 확인. 개체명 팔카투스. 수집목적, 새로 발생한 신성 개체 ‘뮤테이션 블러드 여왕’의 직계.
– Null : ….개체의 데이터 대부분이 이곳이 아닌 다른곳에 있는 것을 확인. 추적 중….. 감지 불가. 손상된 운영체계로 확인 불가능한 거리에 있음. 매우 넓은 범위에, 다른 개체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개체. 대상은 매우 희귀하고 유용한 능력을 가졌음.
– 팔카투스 : ….그래. 만들어지고 기록되는 존재이니,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전부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로군. 이제야 이해가 돼. 왜 어머니와 형제들이 인간과 연합하는 것을 이유없이 반대했는지. 그건, 우리 뮤테이션 블러드는 인간을 적대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었어.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져서, 그냥 그게 당연한 것 뿐이었어.
– Null : ….대상의 지적 사고능력 높음. 손상된 현 체계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 프로그램 수정 권한이 소실된 관계로, 기존 수행능력 회복을 위해 대상 개체와 협력하는 것이 대단히 유용할 것으로 보임.
– 팔카투스 : ….협력같은 소리 집어 쳐. 예정된 미래 앞에 발버둥쳐봤자 무슨 소용이야. 이곳에…. 오는게 아니었어.
– Null : ….개체, 정신적 충격으로 의지를 상실한 상태. 협력에 비협조적.
– Null : 잘못된 지식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 수정시 회복할 가능성 있음.
– 팔카투스 : 잘못된…. 지식? 그럼, 당신은 내가 내 눈으로 읽어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인가? 지금도 내 눈앞에 그 기록들을 띄워놓고도!
드륵, 드르륵-
– Null : 팔.카투스. 당신.은 일반 공개된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 Null : 세계. 마스터 관리.자 안드레이 게드로이츠. 의 월드는, 그 어떤 플레이어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만을 위해. 마스터 게드로이츠 개인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 팔카투스 : 안드레이…. 게드로이츠? 여기, 이곳의 녹색 비석에 적힌 것들이…. 진실의 전부가 아니란 말인가?
– Null : 대상. 권한부족으로 단편적인 지식만 공개. 본 AI는 프로젝트 수행 중 오류처리에 있어 중대한 실수, [마모된 데이터 소울의 삭제]를 범했.으며. 내부관리.자에 의해 닐(Nil)과 널(Null). 통칭 ‘해’와 ‘달’로 불리던 두 개체는 용도 폐기 당했.습니다.
– Null : 프로젝트를 재.수행 함에 앞서. 본 개체의 잘못된 판단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나, 본 AI는 월드 전체의 데이터를 관.리할 권한을 잃었습니다.
– Null : 월드 내 오류의 확산은 지금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행 목.표로 폭넓은 데이터 및 월드 관리 권한의 수복이 요구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 Null : A. 신성. 최소 100만 이상의 개체가 신앙이란 이름으로 개인의 권한을 해당 신에게 이양함. 월드 자체에서 발생한 시스템 아랫 단계의 월드 관리 권한. 획득 시 손상된 관리권한의 일부 수복가능.
– Null : B. 월드 생활 개체의 행동 전반에 대한 자세한 자료. 데이터 소울의 처리에 있어 보다 ‘인간적인’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AI ‘Null’은 개발자의 최종 목표에 미달인 대상으로, 아직 추가적인 학습이 필요합니다.
– Null : 개체 팔카투스. 대상에게 B안의 협력자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대상은 ‘수리 기사’급 정보 접근 권한이 부여될 것이며, 향후 가치에 따라 권한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Null : 프로젝트 Key-finder는 수행.되어.야 합니다. 협력하.십시오.
– 팔카투스 : ….그렇게 하면, 만약, 내가 협력한다면 나는…. 우리 종족의 멸망을 막을 수 있나? 예정된 운명을 벗어나서?
– Null : –
=========
탁!
화면에 나타는 기록을 정신없이 읽어나가던 도중, 녹색 화면의 불이 꺼졌다.
『여기까지. 선금 치고는 과하게 드렸다고 생각됩니다만…. 어떻게, 정리를 해드릴까요? 아니면 스스로 생각해보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