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39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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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예. 카울라디의 오아시스를 폭삭 가라앉혔을 때, 그때 그 유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했던 겁니다.”
바닷속으로 쭈욱 들어오다 봤던 것. 신성한 이들이 머무르던 집이나 선실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산호초 숲과 그 사이에 자리 잡은 챔버 메이드가 있었으며, 그 산호초 숲의 경계를 지났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이 고요한 달과 그 주변을 은하수처럼 떠다니던 성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성물들 사이에 내 팔도 끼어있었다. 내려가면서 온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니 내 피냄새 어린 그 신성한 팔뚝을 못 찾을 리가 있나.
호기심 반,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반으로 챙겼는데, 손에 넣고 보니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멀쩡하네? 아직 안 빨아먹었어?’
당시 가라앉은 달을 무슨 신성력 빨아먹는 괴물처럼 여기고 있던 나로서는 꽤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에 은하수처럼 떠다니는 수많은 성물이야 그렇다 치자. 저것들은 전부 유명한 신전에서 고명한 사제님들이 온갖 절차와 예법에 걸쳐 만들었으며, 성물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사가 그 신성한 의미를 강화시켜주는 진짜 성물이니까. 신의 이름에 꽉 묶여있는 성물들이니 살살 녹여 먹어야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팔은? 신성한 의식은커녕 기도문 한 줄 모르는 불신자 무지렁이이며, 신자가 아니라 신성 협력업체 비스무리한 박교수씨가 오직 로 하람의 호의에 기대어 뚝딱 만들어낸 짜바리 성물이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성물이 뚝딱 만들어진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신성은 그런 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딴 식으로 신성력에 노출만 시키면 되는 게 성물이라면 대규모 기도회가 열리는 곳 근처의 잡초도 성물이 되고, 돌멩이도 성물이 되고, 그걸 구경하던 빵집 한스씨의 밀대도 성물이 돼야 하는 게 아닌가?
당연히 1회성으로 만든, 유사 소환용 ‘성물 비스무리한 것’ 이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신성력이 흩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타닥 타닥-
성물 ‘신성하신 성자 교수님이 뚝딱 만들어낸 잘린 오른팔’은 여전히 그 안에 가득한 신성력을 뽐내며 갈라진 흉터 사이로 참나무 타들어가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분명, 내가 아는 신성은 이런 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건…. 로 하람이 자네에게 말도 안 되는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 편의주의적인 생각이고.
“정확히는 로 하람이 아니라, 그 신자들이 제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올라오는 길에 물의 지배력을 그물처럼 펼쳐 싸그리 끌어모은 성물들을 아공간 주머니에서 쏟아냈다.
익숙한 광명의 문양부터 자비와 풍요, 지혜, 용기를 포함한 5대 선신 교단의 성물. 그리고 사교도인지 몇백 년 전에 멸망했는지 알 수 없는 교단의 성물들까지.
마구잡이로 쏟아낸 그것들은 여전히 신성을 발하고 있었으며, 담아낸 바닷물을 벌써 성수로 바꿔버린 물건도 있었다.
“신도들이?”
“예. 로 하람이 아니라, 그의 자식들이. 신성력이 열매라면, 신자들은 그 뿌리가 아닙니까.”
생각해보면 가장 기초적인 신성의 원리. 다만, 그 대상이 나라고 생각하니까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을 뿐이다.
간단한 믿음=신성 논리다.
“1년 전에 광명의 신자에게 로 하람을 떠올리라 했을 때, 그들은 무엇을 떠올렸을 것 같습니까?”
“….경전이나, 성상의 위엄있는 모습을 떠올렸겠지.”
“그럼 지금은?”
“광명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허윽! 세, 세상에. 세상에 바다여 맙소사!”
“예. 그겁니다.”
“이, 이건 안될 말이야. 자네가, 자네가 어찌! 말세도 이런 말세가!”
현시점에서 광명하면 떠오르는 것. 광명의 신자뿐만 아니라 주점이나 음유시인 근처에 잠깐이라도 머문 사람이라면 광명과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
나다. 당장 제국의 모든 음유시인이 목청이 떠나가라 새로운 건국제의 전설을 노래하고 있으며, 그 옆에서 새 황제가 즉위하는데 증인이 된 성자님의 신성한 별 부수기에 대한 노래 또한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으니.
광명의 신도들이 라투라-를 외치는 순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얀 석상이 아니라, 현재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혼란을 격파한 피와 살을 가진 초인의 이미지로 변한 지 오래라는 말이다.
나를 신격화하는 광명의 신도들이 생각보다 많이 늘어났다고.
‘노먼 대주교가 왜 그렇게 본단으로 돌아와 시성을 받으라고 성화였는지 알 것 같군. 아마, 교단의 고위 인사로서 이러한 흐름을 예측하고 있었겠지.’
그건, 나에 대한 존중도 있겠지만 너무 커져버린 나의 영향력에 대한 걱정도 섞여 있을 것이다.
기독교가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로 갈라서듯, 광명의 신도들 사이에서 성자 교수에 대한 숭상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신격화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이란 곧 맹신. 그리고 논리가 파고들 수 없는 단단한 맹신은 기적이라는 촉매로 완성된다.
당장 내가 일으킨 기적이 한두 개여야 말이지. 피의 성사부터 성녀의 영혼 구출. 타락한 성녀, 메아 마리아를 정화하고 신-제국의 건국사에 아주 대문짝만하게 발자취를 남겼다. 어디 길가메쉬나 관운장님 설화에 비교했을 때 더 잘나면 잘났지 꿀리는 것 같지는 않거든?
오트만이 자신의 상식과 현실의 괴리 속에 빠져있는 사이, 냉정하게 사실만 받아들인 이드라실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교수. 당신이…. 신이라는 겁니까?”
“어느 정도? 기생 신? 하청 신? 뭐, 그 정도 되는 게 아닐까?”
“그우웩. 말세다.”
“이건 드래곤보다 더 충격적이군.”
급으로 따지면 대충 부처님 밑에 사천왕 정도 되지 않을까. 왜, 그거. 절에 들어갈 때 큰 문에 새겨진 얼굴 무서운 아저씨들 있잖아.
아무튼, 내 팔뚝이 저렇게 확고부동한 성물로 남아있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것밖에 없었다. 저런 식으로 작동하는 성물을 내가 딱 한번 밖에 못 봤거든.
‘세계수의 가지.’
신성한 존재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빡센 블루 라인에서 엘프 마을의 결계를 유지하는 작은 세계수를 틔워냈으며, 제국에서 내 옆구리를 푹 찌르는 것으로 세계와 단절시키고 멈춘 시간 속으로 초대했던 물건. 그것도 세계수의 성물이라면 성물이지.
세계 만방의 광명 교도의 믿음 중 그 일부가 나에게 향해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라투라 로-하람을’ 외칠 때 모여드는 신성력 중 ‘성자 교수’에게 따로 할당된 신성력이 있다는 의미이며, 지금까지 내가 쓴 신성력은 로 하람이 나를 어여삐 여겨서 내려준 게 아니라 내가 로 하람에게 갈 신성력을 훔쳐 쓰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로 하람을 만나면 도와줘서 고맙다고 절을 할 게 아니라, 살려달라고 대가리를 박아야 할 판이라, 이 말이다.
노먼 대주교가 그토록 목이 터지도록 염원하던 시성 의식은 그렇게 분할된 로 하람과 성자 교수의 이미지를 한데 묶어 둘이 같은 소속임을 세계에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그런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걸 내가 씹고 사막으로 와버리는 바람에 ‘신성 박교수’님의 신성력이 조금 더 강해져버리고 말았지만.
“….물론 개인 신성력이라고 해봤자 저쪽, ‘진짜 창조신에 창조신 슬레이어 드래곤이 퓨전한 저 괴물딱지’한테 들이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신성이 제 개인에게 부여됐다는 걸 안 순간부터, 이걸 다룰 수 있게 됐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야 ‘로 하람님! 제발! 제발 한번만 도와주십쇼!’ 같은 생각으로 신성력을 사역했다면. 이번엔 이게 온전히 나한테 주어졌다는 것을 인식했다. 지금까지 신성력이라는 폭탄을 손에 쥐고 휘두르는 식으로 썼다면, 이젠 폭탄을 던질 수 있게 됐다는 거거든. 어떻게 쓰는지 알았다고, 이거.
‘오러 쓰는 거랑 완전 똑같네.’
사실 오러라는 건 신성력이랑 다를 게 없었다. 제 삶을 교전으로, 몸을 신전으로, 자아를 신으로 섬기는 독불장군이 되면 그게 오러 쓰는 기사니까. 1인분 어치 쓰던 거 100인분 휘두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후우웅-
정신을 집중하자, 들고 있던 성물-팔에 신성력이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광명의 신성력인 동시에, 어딘가에서 ‘성자 교수님은 신이야!’를 외치는 수많은 신도들의 믿음이다.
달칵.
덜그럭. 탁!
그리고, 발밑에 우르르 쏟아낸 성물들. 수백 년 동안 사막의 지하에 쌓여온 성배와 경전, 신성한 이의 유골과 기타 셀 수 없이 많은 성물들 중 광명과 관련된 성물들이 바르르 떨며 그 안에 갇혀있던 힘을 풀어내고 있었으며.
“음? 저것은…. 광명의 성물이 아니지 않나?”
“….이건 좀 예상 밖인데.”
또한, 자비의 여신에 얽힌 성물들도 그 힘에 공조하여 오래된 신성력을 풀어내고 있었다.
쩌적, 쩌저적-
파앙!
교수의 손에 들려있던 성물-팔뚝은 그렇게 풀려난 신성력들을 모두 흡수하더니, 탈피하듯 갈라진 인간의 가죽을 털어내며 두 가지 신성한 빛이 일렁이는 손 모양의 무언가로 완성되었다.
교수는 그 ‘신성한 팔’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다음, 경건한 마음으로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그건…. 수인(手刃)인가? 마법의?”
“딱히 수인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명색이 수계 마법사가 손을 써서 의미를 담는데 그냥 이대로 쓰면…. 좀 대충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의식이잖습니까. 그런 ‘기분’이 제일 중요하죠.”
쿠우우우우우-
슬쩍 바다를 보니 아래에서부터 부풀어 오르듯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다를 붙잡은 가라앉은 달이 올라오니 해수면이 위로 솟아오르는 것. 저 커다란 덩치의 달이 벌써 지척까지 다가왔다는 뜻이겠지. 거기 매달린 팔카투스도 같이.
휘익!
손가락을 다 접은 교수는 대충 위치를 가늠한 뒤, 그것을 냅다 바다에 던져버렸다.
찰팍!
수면에 닿은 팔뚝은, 잠시 휘청이더니 부표처럼 균형을 잡고 일어섰다.
위치는, 근래 들어 가장 커다란 유사가 발생했던 자리. 그들이 떨어졌던 구멍이 있던 곳 바로 아래.
형태는, 검지를 제외한 모든 손가락을 접어둔 모습. 위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어, 마치 방향을 지시하듯 하늘을 가리킨 모습.
신성이 가득 담긴 팔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짧은 기간 동안 내게 모여든 야매 신성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빌려 쓴다고 생각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내 것이라 인식하자마자 그 잔량이 확실히 느껴졌다.
코딱지만큼 쌓여있던 거, 저기 다 털어 넣었다.
‘결국, 신성이란 사람의 힘을 한데 뭉친 것과 같으니까.’
짧은 기간, 그것도 로 하람에 대한 숭배의 일부만 곁다리로 획득한 성자 교수님 개인 신성은 겨우 이 정도라는 뜻이겠지.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여기서 나갈 길을 만드는 정도로는.
쿠우우우우우-
부그륵, 부그르륵!
드래곤이 여의주를 품듯, 달을 휘감은 드래곤이 마침내 수면 위로 그 비늘을 드러내며.
짜악!
광명의 야매 신님이 신성한 두 손을 한데 모으셨다.
드래곤의 이빨 사이로 거친 울음이 새어 나왔다.
『이미 예정된 결과에서 도망치지 마십시오! 창조의 힘을 사역하는 달의 행사는, 곧 세계의 순리입니다!』
“그리고, 그 순리에서 벗어난 일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타닥, 타닥-!
수면에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과 달. 그들 코앞에 부표처럼 너울거리며 하늘을 가리키던 팔뚝이 새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드래곤과 달. 난파선과 사막 배가 너울거리는 바다에, 고요하면서 울림 있는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적당히 신성한 교수님이 말씀하시길.]후우우웅-
[저 깊은 사막의 밑바닥에도 빛이, 짜가리 달의 LED 빛 말고 진짜 빛이 있으라.]….퐁
충격적일 만큼 허접한 기도문이었으나,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가 교수 자신인 만큼 상관없었다.
산더미 같이 쌓여있던 성물에서 뽑아낸 신성력이, 교수의 신성력을 뇌관 삼아 하나의 의지로 뭉쳐 기적을 발하기 시작했으며, 바다 위에 떠 있는 팔은 그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손가락 끝에서 일렁이는 신성의 빛 한 조각을 틔워내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민들레 씨앗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간 작은 빛이 모래 바다의 천장 사이로 쏙 들어가고.
타닥, 타다닥-
파지지지지직-!
올라간 그 빛이 신호를 보내듯, 위로 뻗은 손가락과 하늘을 잇는 하얀 스파크가 길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감각은, 그 크나큰 힘의 유동을 놓치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홀리-레이저 유도 폭격. 거기 끌고 나온 거 내어주고 피하던가, 막던가.”
『이런 얕은 수작을! 구차하지도 않습니까!』
“원래 이런 사람이라.”
팔카투스는 사방에 피어오르는 신성의 잔재를 느끼며 이를 갈았다.
자신의 코앞에서 느껴지는 힘의 근원. 드래곤의 몸과 달리, 빠르게 움직일 수 없는 가라앉은 달.
팔카투스의 결정은 그 사고의 속도 만큼이나 빨랐다.
쩌어억-
달을 붙잡은 드래곤의 입이 다시 한번 벌려지고, 신성한 빛줄기가 닿은 천장을 향해 드래곤의 열선 브래스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브래스가 하늘을 가로막은 모래 바다에 닿기 직전.
콰아아아아아아아-!
하늘에서 쏟아진 거대한 빛의 기둥이 두터운 모래 바다를 뚫고 드래곤의 브래스와 마주했다.
“으우아악!”
“오트만! 수계 방벽 아무거나! 저 브래스 여파에만 휩쓸려도 선원들 피부고 살이고 죄다 녹아버릴 겁니다!”
“워터실드! 워터실드!”
“우아아악!”
“배에 매달려라! 파도에 휩쓸린다!!!”
“엄마! 엄마아아!”
“개종하겠습니다! 개종하겠습니다, 로 하람님! 제발 목숨만!! 목숨마아아악!”
쿠화아아아악-!
빛의 기둥과 드래곤의 브래스가 마주한 여파는 가라앉은 바다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이드라실은 빛과 열기의 폭풍 속에, 신화 속 신과 드래곤의 전투가 아마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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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으윽….”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같은 공기.
에이버리는 난간에 매달려 바들바들 떠는 선원들을 보며 억지로 숨을 들이쉬었다.
“도대체 이번 항사는 무슨 마가 끼었단 말인가….”
금기를 범하고, 사막 최대 부족 둘의 전쟁에 끼어들었으며, 끝내 금기의 유사 속에 빠져들어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사막 아래 바다에서 사라진 고대 신과 용이 눈앞에서 불을 뿜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사막 사람처럼 보이겠답시고 돛대에 매달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길 자처하던 저 살라딘은 손짓 한 번으로 저 무시무시한 용의 실체 없는 불과 맞먹는 빛의 기둥을 불러냈다.
나름 항사꾼으로 생사의 갈림길을 제 집 담벼락 넘듯 해온 에이버리였지만, 이번 항사에서는 떨어진 턱이 도무지 제 자리로 돌아올 새가 없었다.
‘은퇴하자. 이번 항사만 끝나면, 좋은 여자를 찾아 가정을 꾸리는 거야.’
이미 항사꾼을 선단으로 데려와도 그와 비교할 경험이 없을 정도의 항사를 했다. 이번 항사가 끝나면, 이제 두 번 다시 바다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 것이다. 모래 바다든, 물 바다든. 당연히 성직자 근처에도 가지 않고. 집으로 가는 것이다. 집으로.
그 때. 선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원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자욱한 증기의 장막이 가라앉으며,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와는 또 다른 열기가 그들의 피부 위로 내려앉았다.
빛. 같은 열기라도 전혀 다른, 그들이 평생 사막에 살아가며 받아온 건조한 사막의 태양.
열기에 녹아 매끄럽게 뻥 뚫린 구멍 위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있었으며,
그 구멍을 통해 내려온 지상의 빛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새까맣게 타들어간 손가락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밖이다….”
“오오, 밖이야! 다시 나갈 수 있어!”
“물 바다는 이제 지긋지긋해! 내 고향으로, 다시 모래 바다로 되돌아갈 거야!”
선장의 명령도 없이, 선원들은 돛을 펴고 노를 잡아 그 구멍이 있는 곳으로 배를 옮겼다.
뱃머리에 있는 늙은 마법사와 뭐라고 언성을 높이더니, 둘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쏴아아아-
올라간다. 저 바다에서 올라온 물기둥을 타고, 배가 다시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와아아아!”
“마법사, 마법사 만세!”
“라투라! 라투라 살라딘!”
“거 소란 떨지 말라니까! 밑에 저 새끼들 정신 차리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고!”
푸아아악!
올라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드래곤과 빛 기둥의 열기에 투명하게 녹아내린 수직 통로 사이로 미쳐 다 가라앉지 못한 배와 가옥들이 유령처럼 스쳐 지나가고, 지상의 열기가 눈이 부시게 다가오며….
펑-!
솨아악-
“나, 나왔다.”
마침내. 뱃머리가 익숙한 모래바다에 닿는 순간, 선원들은 생환의 기쁨에 저마다 얼싸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쿠화아악-!
그러니까…. 한 3초 정도.
“으아아악! 나, 나왔다!”
“그거! 그것도 나왔어!”
“용이다!”
그들의 뒤를 따라 폭발적으로 솟구치는 바닷물 속에, 달과 드래곤이 포함된 것을 본 선원들의 눈에서 다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선장 에이버리는 당장 살라딘의 곁으로 달려갔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도망쳐야 한다면 내 당장-”
“도망은 왜 갑니까. 저 밑이야 적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적진 한복판이었지만, 이젠 우리 쪽 필드인데.”
“혹시…. 아까 ‘그것’을 더 쓸 수 있소?”
“한 몇 달쯤 선거 직전 정치인처럼 유세하고 다니면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절대 안 될걸요?”
“그런데 왜 그렇게 여유만만이오! 저쪽은 지친 기색하나 보이지 않고, 아예 저 아래 바다를 통째로 끌고 올라왔는데! 당장 지대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저 엿같은 물 바다에 다시 한번-”
“에이. 그건 아니지.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브래스를 두 번 연속으로 뿜었는데. 가만 보니까, 팔카투스 저거 아주 반푼이야 반푼이. 하긴, 용을 쳐먹었다고 해서 진짜 용처럼 언령도 쓰고 마법도 막 쓰고 할 수 있었으면 우리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지. 저놈은 회피 기동이 좀 필요하겠지만, 내 쪽에서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나머지는? 저 괴물은 무리를 거느리고 있지 않소? 그것도 눌락의 무시무시한 선단을 박살낼 만큼 강력한….”
“아, 그거요?”
에이버리의 물음에, 교수는 들고 있던 타원형 물방울 두 개를 그대로 그에게 내밀었다. 원견(遠見)마법. 대충 망원경 같은 마법이었다.
“자, 저어-기. 허옇게 반짝이는 거 보이십니까?”
“사막 배…. 엄청나게 많은 사막 배로 보이는데…. 지원군인가? 어떻게 불렀지?”
“부른 거 아닙니다. 지들이 보고 찾아온 거지.”
교수는 원견 마법을 다시 제 쪽으로 돌리며 히죽 웃었다.
성자님 모셔오라고 보낸 그레고리우스와 그의 호위대.
분명 로드릭으로 간다 했던 성자님이 기구를 타고 옆길로 쏙 빠져버렸으니 노먼 대주교님의 노호성 아래 한참 찾아 헤매고 있었을 거다.
텔드랏에서야 성자의 이름으로 움직였으니 그 남작령까지는 쉽게 추적했겠지만, 그 흔적이 끝없는 모래바다라는 난관으로 이어졌을 땐 저들도 막막했을 것이다. 이 드넓은 대사막에서 사람 하나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인데, 가뜩이나 나는 살라딘이라는 가짜 신분으로 움직였으니.
그런데.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그들 앞에, 소문으로만 듣고, 막 제작 중인 성화에서만 보던 그 ‘빛의 기둥’ 이 떨어졌으니. 그야말로 로 하람이 보우하신 것이나 다름 없지 않는가.
교수는 마법의 렌즈에 비친 사막 배 위에, 사람 머리통만 한 모닝스타로 선원들을 윽박지르는 성기사들과 뱃머리에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는 그레고리우스를 보며 마법을 해제했다.
“잡졸들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적의 대가리. 팔카투스와 네임드들에 집중할 겁니다.”
신성한 목표의식에 불타는 성기사단장은, 이번에야말로 늦지 않겠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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