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40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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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라아아아!”
솨아아악!
타닷-!
다가오던 성기사 선단이 속도를 줄여갈 무렵, 선두의 뱃머리에서 뛰어오르는 커다란 쇳덩어리가 보였다.
쿠우웅!
와직!
제법 먼 거리를 뛰어넘은 쇳덩어리는 그대로 내 앞에 안착하더니, 착지하는 자세 그대로 갑판을 박살내며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광명의 손길이 닿은 분이시여어어어!!!!”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간….만입니다, 그레고리우스경?”
“감히 저 같은 것에게 말을 높이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당신께서는그분의뜻을사역하는빛이며저는한낱그분의도구에불과하니제게말을높이는것은이불경한도구가 로-하람(오오 찬미할지어다) 의순리를거스르게하시는것일진저, 부디이미욱한것을죄책감의구렁텅이에빠뜨리지마시옵고-”
“아이고, 알았습니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수염 성성한 성기사 아저씨가 눈물을 좔좔 흘리면서 갑판에 아예 구멍을 내겠다는 듯 이마로 쾅쾅 들이받는데, 말 안 놓아주면 아주 목을 맬 기세다. 흑마법으로 세뇌시킨 광신도도 이정도는 아닐 텐데.
“라투라, 로-하람.”
“라투라, 로-하람. 이렇게 빨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누구보다 빛에 가까운 분이시니, 저희보다 발걸음이 빠른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제대로 모시지 못해 또 이렇게 오지에서 혼자 애쓰게 만들었으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솨아아악-
쿵.
그레고리우스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성기사들이 탄 배가 우리 배의 옆에 정박하며 한 무리의 쇳덩이가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무릎을 꿇고 있던 그레고리우스는 자세를 바로 하더니 무기 끝을 땅에 대고 다시 한번 무릎을 꿇었다.
철컥, 철컥철컥!
“광명의 도구, 그레고리우스 가르니에르를 비롯한 광명 성기사단. 지금 광명의 빛에 합류하였습니다.”
그레고리우스를 따라 차례로 무기를 앞에 세우며 무릎을 꿇는 성기사들. 그리고 그들만큼의 예법은 아니지만, 충분히 존경을 담은 몸짓으로 내게 다가오는 또 다른 성스러운 무리가 있었다.
“후어, 후어! 소개가, 조금, 늦었군요… 후우!”
거의 눌락에 필적하는 뚱뚱한 체구. 뜨거운 사막의 태양 아래 땀이 아니라 기름을 짜내듯 연신 손수건을 훔치는 사제와, 그의 뒤를 따르는 또 다른 성기사들의 선단.
“풍요의 여신 테네브리에 님을 모시는 사제, 돌파르라고 합니다.”
“풍요의 교단에서…. 지원을 와주신 겁니까?”
“아무래도 저희 본단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신성이 느껴지다 보니. 조사차 나와 있었습니다.”
“조사치고는 병력이 조금 많은 것 같습니다만.”
“흠흠! 그게…. 광명에서 오신 분들이 어찌나 텔드랏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시는지…. 저희도 다른 교단의 성기사들이 저렇게 난폭- 크흠! 과격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있어서 같이 움직이고 있었지요.”
아. 텔드랏. 그러고 보니 이 곡창지대 천지인 나라는 풍요 교단 본단이 있는 나라였지.
어째 목숨 걸고 달려온 광명 성기사들보다 더 숫자가 많다 했더니, 그레고리우스 이 양반이 어지간히 텔드랏을 들쑤시고 다닌 모양이었다. 타지에서 온 성기사들이 ‘성자님!’을 부르짖으며 귀족 영지 왕실 직할령이고 들쑤시고 다니는데, 같은 종교계 인사로서 나와보지 않을 수 없었겠지.
그렇게 광명 성기사단 따라다니던 풍요의 성기사단도 내가 소환한 ‘빛이 있으라’를 제 눈으로 봐버렸으니. 그대로 울부짖으며 사막으로 향하는 광명의 성기사단을 따라오게 된 것이다.
뭔 일이 있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니까.
“기적급 신성 주문을 보고 무슨 일이 있으리라 짐작은 했습니다만. 저것은…. 설마 드래곤입니까?”
“악신의 세 번째 자손, 팔카투스가 사막의 지도자를 속여 주술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 있는 것은…. 전설로만 여겨지던 사막의 두 고대 신중 하나이지요.”
“….광명의 성자께선 언제나 이단이 있는 곳의 선봉에 계신다더니. 소문이 과장된 것이 아니었군요?”
사제는 체구만큼이나 묵직한 부동심을 가지고 있는지, 눈에 작은 이채만 띄우며 말을 이었다.
“테네브리에의 이삭들, 풍요의 성기사단도 이단을 구축하는 성자님의 행보에 함께하겠습니다.”
“….여신의 품으로 돌아가실 각오가 필요할 겁니다.”
“허허허허. 그건, 성직자답지 않은 경고로군요? 이 난세를 살아가는 모든 종교인이 매일 아침기도를 할 때마다 다짐하는 것이 그런 각오인 것을. 사막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저희 풍요 교단의 숙원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저기 있는 것이 그 고대의 두 신중 하나라면…. 넘치는 열의를 참지 못해 홀로 사막에 나섰다가, 명을 달리한 여신의 이삭들을 위한 천도제를 치르기에 충분한 제물이 아니겠습니까?”
말려도 소용없다는 얘기. 이미 각오를 마친 풍요와 광명의 성직자들은 타고 온 배의 선원들에게 돛을 펴고 키를 고정하라고 한 뒤, 그들을 모두 구명정에 태워 돌려보내는 것이 보였다.
“당신의 길을. 그 누구보다 밝은 빛의 길을 가소서. 우리는 그 찬란한 빛의 그림자 속에 남겨지는 것으로 만족하나이다.”
“….라투라.”
“라투라. 로 하람.”
교수는 말리는 대신, 찬미를 입에 담았다.
드라이 오아시스호를 지나쳐, 돌아올 생각 없는 성기사들의 배가 뮤트의 군단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바다와 함께 떠오른 달. 그것을 휘감은 골드 드래곤.
그리고, 떠오른 달 주변에 커다란 오아시스처럼 자리 잡은 바다와 셀 수 없이 많은 뮤트들.
[항상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건데.]‘뭐가.’
[너 말이야, 껍데기. 이런 대규모 전장에 서면, 감정이 꼭 롤러코스터 탄 것처럼 요동친단 말이지. 꼭 조울증이라도 있는 것처럼.]‘….멀미라도 나냐.’
[안에 있는 입장으로선…. 어느 정도?]하이드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싶었다. 목숨을 건 전투란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뇌를 혹사해야 하는 찰나의 사고 노동이며, 그렇게 혹사당할 뇌를 잘 굴리고 싶으면 최대한 ‘즐거움’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으니까.
우울감 따위에 빠져있었다간 그 늪처럼 축축한 감정처럼 팔다리가 축 늘어지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히트업 시켜놔야 한다는 뜻이다.
….눈앞의, 저런 광경을 눈에 담으면서도 우울감에 빠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앞으로, 선원을 모두 피신시키고 오직 앞으로만 나아가는 성기사들의 배. 풍요와 광명의 성기사들을 합쳐 물경 그 숫자가 천에 가까운 성기사들의 돌격.
그 반대편에는 땅굴벌레의 아가리들이 모래 바다 위로 마구 솟아올라 뮤트들을 뱉어내고, 바닷물과 함께 올라온 수생형 뮤트들이 달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성기사단의 저력이야 익히 알고 있으며, 3급 이하 고위 뮤트들의 터프한 전투력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대군과 대군. 정예와 정예.
호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투에서 상대와 아군이 호각이라는 것이 뜻하는 것은.
‘….많이들 죽겠지.’
어느 쪽이 상대를 다 죽여 없애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며, 이긴 쪽은 승리의 함성에 앞서 아군의 시체를 수습하는 데만 하루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걸 알면서도 불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신성한 기적을 일으키면 저들이 달려와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질 것을 알기에 불렀다.
적과 아군을 가치로 계산하는 전장에서, 팔카투스라는 목표물의 가치가 그들의 목숨보다 귀하다는 판단이 섰다는 이유다. 놈이 현실 세계로의 야욕을 드러낸 순간부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이 더 성장하기 전에 제거해야만 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우리의 등대요, 그분의 손길이 닿은 참된 빛이여! 광명의 보잘것없는 도구들이 당신을 뵈러 가나이다!”
“그분께서 저 별 사이에 내 자리를 점지해두셨으니!”
“나를 밟고, 형제의 시신을 밟아 당신의 길에 오르소서!”
“이단을! 이단을 불태워 길을 열어라!!!”
그들을 이용했다.
『….모두. 어머니께 보낼 고기로 만들어라.』
“키아아악!”
“과우우우우!”
각각의 개체가 히어로 유닛에 준하는 2급 전투형 뮤트가 여럿. 땅굴벌레의 입에서 파도처럼 쏟아져나오는 3급, 4급 개체들. 그 너머에 물의 구체 속을 유영하며 달을 수호하는 수생형 뮤트들.
운전자를 잃은 사막 배들이 뮤트의 대군과 충돌하고, 성광에 휩싸인 성기사들이 그들의 신을 연호하며 발톱과 송곳니 사이로 몸을 던지며.
퍼억-
피가 튄다. 인간과 뮤트, 어느 쪽이 더 진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진득한 향기가 흩어진다. 돛을 부풀리는 바람에 피 냄새가 섞여든다.
솨아아악-
그 바람을 타고, 전장을 크게 도는 배 위에서 교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찌릿.
‘왔다!’
우리가 올라왔던 구멍을 중심으로 생겨난 오아시스와 그 위에 떠오른 달. 그것을 둘러싼 둥근 전장에 질적으로 다른 힘을 가진 두 존재가 걸어 들어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네임드. 테르마키안과 니그미. 근접 전투형, 수생형 특수 작전형.
목표는 놈들이 아니라, 놈들에 대한 팔카투스의 애정이다.
‘팔카투스와 달리 이 두 놈은 그리 머리가 좋지 않아. 즉흥적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전장에서 떨어뜨려 위기에 빠뜨리면 팔카투스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놈의 냉정을 부수기 위해서, 저 네임드 뮤트들을 초주검으로 만들 힘이 필요했다. 혼잡한 전장 속에서 저들과 손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오트만, 락샤샤, 노툼, 이드라실.”
일행의 이름을 연호하며, 다시 한번 감정이 파도를 타듯 울렁인다. 내 부름에 누군가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 이미 수십 번도 더 겪어본 경험이 말하는 가능성이 속을 뒤집어놓고.
“….우리 사이에, 속 터놓고 말하죠? 죽기 싫은 사람 있으면 딱 지금이 타이밍인데. 내가 교단에 말해서 연금을 종족 단위로 타 먹게 해줄게.”
척추를 서늘하게 만드는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아무도 농담인 척하는 진담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말. 끝에 ‘제발’이라는 단어가 지휘관의 차가운 감정에 걸려 나오지 못한 말.
“됐네, 이사람아.”
“진짠데요? 아까 쓰고 남은 신성력 코딱지만큼 있는데, 그거로 교단에 통신해준다니까?”
제발.
“헛소리 하지 말고 길이나 잘 뚫으시게. 성기사님들이 잘 막아주고 있다지만, 저놈들 앞에 도착하려면 아무래도 살덩이로 된 벽 한두 개쯤은 더 뚫어야 할 것 같으니.”
제발, 아무나 살고 싶다며 뒤로 되돌아가 줬으면.
“이드라실? 그 수첩, 집에 가져다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
“장생종인 제가 겨우 1년도 안 되는 기록을 수집하겠다고 숲을 떠난 줄 아십니까.”
“노툼?”
“그우. 엿 먹어라.”
“락샤샤?”
“이번에도 날 두고 혼자 갈 생각이면, 다음엔 침대에 묶어놓을 거랍니다?”
제발. 이 소중한 이들의 모습이, 피와 내장이 흘러나온 차가운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눈앞에서 성기사들을 사지에 던져넣고,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역겨울 정도로 이기적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전장의 저울추 위에 이들의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으면.
‘신이시여.’
성자의 죄책감 어린 기도 속에 일행의 목소리는 가볍기만 했다.
‘노툼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는가?’ ‘그우우. 선원들이 가르쳐줬다.’ ‘어머, 저희 왕혈분들 앞에서는 조심해주셔야 하는 거, 아시죠?’ ‘그웍. 가슴 큰 사막여자. 미안.’ ‘허허허허. 이거 고귀한 분들이 쌍욕하는 꼴을 볼 수 있겠구만 그래!’
각자 무기를 치켜들고, 가진 힘을 정돈하며 나누는 농담.
분위기라는 게 전염되는 것이라 그런지. 항상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항사꾼들이라 그런 것인지, 배를 모는 선원들 사이에도 차차 긴장 섞인 일그러진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키야악!”
“카아아아-”
콰득-
순식간에 몇 미터를 도약해 배로 뛰어든 뮤트 하나가 교수의 손아귀에 잡혀 으스러졌다.
“카악, 컥! 크익, 키이이, 키이이이….”
머리부터 으스러진 채, 바싹 말라 재처럼 부서지는 뮤트의 시체.
“거, 바보가 옮으셨나 봅니다, 다들.”
“자네 죽기 전에 어떻게든 따라다니면서 청구할 테니 걱정 놓으시게.”
….피식.
“말을 말아야지.”
그것을 신호로 성기사들이 미처 막지 못한 뮤트들이 파도처럼 우리 배 위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어떻게든 살려 보내고 싶다면 내가 먼저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는.
“오늘, 여기서. 끝을 보자고, 아들.”
『그리 해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아버지.』
다시 한번 벌려지는 드래곤의 입과, 모여드는 열기에 맞서, 성자의 손끝에 붉게 물든 바다가 모여들었다.
임계점에 달한 두 힘이 해방되는 순간.
한쪽 팔이 사라진 성자와 저를 둘러싼 대형 뮤트들이 모조리 터져버린 드래곤 사이로, 곧게 뻗은 길이 만들어졌다.
죽은 이들의 사체를 발판삼아 뛰어다니는 성기사들과 그들 사이로 나아가는 배.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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