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41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41)
****
솨아아악-
쿵! 우지끈!
“제기랄! 박았다! 들러붙었어!”
“라투라아아아!”
“앞으로, 주저하지말고 앞으로 가시오! 빛은 뒤돌아보지 않-”
와작! 우드득.
무심해져야 한다.
“사, 살라딘! 저기 앞에 내지에서 온 기사들이 포위되어있소! 당신의 힘이라면-”
“….우회합니다.”
“이보시오!”
“애초에 작정하고 뛰어든겁니다! 저쪽에서 1초라도 더 시간을 끌어줄 때 우회하라고! 못하겠으면 키에서 떨어져! 내가 할테니까!”
….전쟁이라는 것은, 죽은 사람을 이름이 아니라 숫자로 먼저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광명의 성기사들은 특유의 돌파력과 공격적인 신성 마법으로 길을 뚫고, 풍요의 성기사와 사제들은 5대 교단 중 가장 튼튼하고 안정적인 그들의 신성력으로 만들어낸 길을 굳힌다.
2월드. 언데드 군주의 준동은 5대 교단을 괴멸시킬 뻔 했지만, 그 경험은 살아남은 이들을 통해 고스란히 후대로 전해져 더욱 강하고 체계적인 성기사를 키워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성기사들은 온갖 흑마법사와 이단, 뮤트가 만들어낸 전선을 거쳐 이들을 완벽한 전투 성기사로 단련시켰다.
스스로의 목숨을 신앙을 위한 불꽃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이들은 제 목숨을 돌보지 않기에, 그 누구보다 전장에서 전략적이고 헌신적으로 움직인다.
“라투라아아!”
“나의 주께서 바라시니, 나는 봉분 없는 핏덩이 위에 내려앉는 한 줌의 새벽 빛으로 화하리라!!”
사석(死席). 그들이 앞다투어 달려간 자리는 이 전장에서 가장 죽음에 가까운 자리였으며, 동시에 적의 허리를 끊고, 길을 열어내는데 가장 필요한 자리였다.
사마귀를 닮은 앞발에 몸이 두 동강난 성기사와 내 눈이 마주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틈을 뚫고 나아가는 배를 보며, 성기사의 입가에 핏물 섞인 미소가 드리워졌다.
선장 또한 그 미소와 마주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마디 굵은 손으로 키를 부서져라 움켜 쥘 수밖에 없었다.
“속도를…. 속도를 올려라!”
“서, 선장님?”
“아직 얼타고 싶은 놈 있으면 무기 쥐고 내려! 그게 싫으면 목숨 걸고 배를 몰아라! 손 남는 놈들은 내려가서 노라도 잡아!”
“우측 조향날개! 조향 날개가 당했다! 회피 기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몰튼! 나루카! 가서 뭐라도 좋으니 바람 탈 만한 걸 가져다 붙여! 갑판 쪼가리든, 선실 문짝이든 좋으니 어떻게든 고치라고!”
사방에 가득한 악의에 깎여나가듯 드라이 오아시스 호는 만신창이가 되어가며 전선을 돌파하기를 거듭하여, 마침내.
어느 순간. 장막이 걷히듯 피와 살로 뒤엉킨 장벽이 사라지는 지점에 도달했다.
뮤트도, 성기사도 모조리 피떡이 되어버린 전장.
부와아악-!
“꼬, 꼬리다! 드래곤의 꼬리가 다가온다!”
“틀어! 죽어라고 틀어어!”
돛을 잡던 선원 몇이 몰려와 선장의 키에 붙어 쓰러지듯 용을 쓰는 사이.
콰앙!
뱃머리에서 그것을 마주하던 교수가 뛰어오름과 동시에.
배는 걷어 차인 듯 뒤로 밀려나고,
세상을 찍어누를 듯 떨어지던 황금의 기둥이 옆으로 튕겨나가고 있었다.
찰팍.
교수는 반쯤 뭉개진 뱃머리에 착지하는 대신, 달의 바다와 모래 바다가 마주하는 경계에 내려앉았다.
놈이 나를 보고 있었다. 파충류의 세로로 갈라진 차가운 눈동자.
마찬가지로 무겁게 가라앉은 인간의 두 눈.
“오트만.”
“바다는 내가 어떻게 해봄세. 마법사라는 게 원래 순리 위에 제 뜻을 얹어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가. 달이라는 놈이 다루는 것이 순리의 힘이라면, 마법사가 상대하는 것이 맞겠지.”
『달이여. 카울라디와 눌락의 전쟁에서 저 마법사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저 마법사를 막아주시겠습니까.』
[대상 – 마법사. 기존 데이터 위에 개인 데이터를 덮어씌우는 존재. 프로젝트의 변수를 억제하기위해 제압합니다.]“이드라실, 노툼.”
“알고 있습니다. 숲 트롤 주술과 제 정령술은 발을 묶고 시야를 가리는데 적합하니, 완력으로 상대하기 힘든 이를 막아서는데 주효하겠지요.”
“그웍. 여섯 팔. 장님 귀머거리 만든다.”
『형님.』
“나는 네가 그토록 목놓아 찾던 저 ‘아버지’라는 놈과 싸우고 싶다만.”
『….형님.』
“알았다, 알았어. 종의 운명이 어쩌니, 어머니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 어쩌니 하는건 백번도 더 넘게 들었다. 저기 저 비쩍마른 막대기랑 퉁퉁한 살덩이 암컷 둘을 찢어발기고 그 다음에 아버지란 놈을 죽이면 되겠지.
“락샤샤.”
“원한을 갚을 기회도 안 주면 화낼 거랍니다?”
“….당신은-”
“사막에서 복수는 미덕이고, 저 뱀 여자는 당신 앞에서 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으니 그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어요. 혹여나 나를 빼놓을 생각 하지 말아요?”
“….그래.”
상성에 따른 최선의 인선. 파워 벨런스로는 우리쪽이 꽤나 불리한 대결.
‘전투가 길어지면 질 수밖에 없다. 니그미 쪽은 어떻게 된다고 해도, 테르마키안은 시간을 더 주면 아무도 못 막아.’
성기사들이 있는 바깥쪽 전장의 치열함과 죽어나가는 뮤트의 수준으로 봤을 때, 10분 정도만 지나도 놈은 맨주먹으로 사막에 크레이터를 만들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된다. 문자 그대로 눈 먼 주먹을 휘둘러 노툼과 이드라실을 때려잡을 수준이 되는 것.
교수는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아슬아슬하던 전투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아버지는 내 목표를 알고 계시니. 최악의 경우 자결을 선택하실 수도 있겠지요.』
팔카투스는 생각했다. 제 사람을 목숨처럼 아끼는 아버지인 만큼, 저 ‘바깥’쪽 위협이 될 그가 아버지의 몸을 차지하기 전에 아버지가 최악의 결심을 하리라고. 그의 목숨과 함께 이 ‘월드’를 제거할 수도 있을거라고.
그러니, 그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그러니, 그런 결심을 하기 전에.
“어떻게든 내가, 팔카투스를 죽이고 전투를 끝낸다.”
『어떻게든 내가, 아버지를 확보하고 변수를 차단하겠습니다.』
교수가 앞으로 나서고, 달을 휘감은 드래곤이 몸을 일으켰다.
마치 거울을 마주하듯 호명하는 두 사람 앞에, 각자의 으뜸패가 하나씩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이곳이 전장의 중심이자 끝이며. 정점일지니.
승리도. 패배도. 누군가에겐 삶의, 누군가에겐 종의 운명을 가르는 분수령인 만큼.
-투화악!
“여기서 지면…. 먼저 뒤진 성기사들 볼 면목이 없단 말이다!!!”
『우리 또한 인간이다! 절대로, 절대로 이렇게 사라지게 두지 않겠다!』
쩌어어엉-!
검붉은 주먹과 황금의 발톱이 마주하며 충격의 동심원이 퍼져나갔다.
서로 짊어진 무게만큼 그들은 질 수 없었다.
****
퍼엉!
절대적인 질량의 차이. 힘은 동수를 이루어도 용과 인간의 체격을 뛰어넘을 순 없기에, 팔카투스의 공격을 빗겨낸 교수는 포탄처럼 수면을 향해 날아갔다.
달의 렌즈가 번쩍이며 착지 지점의 수면이 날카로운 칼날의 숲이 되어 그를 기다리고.
“오트만 보들레르의 [워터 플레이트]!”
촤악!
순식간에 칼날은 다시 반발력을 가득 담은 물의 원판으로 변해 교수의 몸을 부드럽게 받아내 다시 위로 밀어올렸다.
오트만과 달의 전투는 전장의 환경을 주도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눈과 귀가 막힌 테르마키안이 할버드와 메이스로 제 주변을 통째로 초토화시키는 동안,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노툼과 이드라실 주변으로 사나운 해일이 몰아치고, 그 파도가 닿기 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해지길 반복하였다.
쐐애액!
허공에 뜬 틈을 타 드래곤의 꼬리가 다시한번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찌르기?’
파괴력. 신체적 능력은 드래곤의 육체를 가진 팔카투스가 압도적이지만. 놈의 약점이 있다면, 그 대단한 육체를 차지한지 이제 고작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치 빙하의 첨단처럼 찔러들어오는 용의 꼬리는 오래전 팔카투스와 첫 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에데오르나의 창술. 그걸 배웠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어댔지.’
규모만 다를뿐, 투로가 동일했다. 닿으면 파고드는 그 가시 투성이 창 덕분에 목과 심장등 치명상을 노리는 게 아니라 피하기 힘든 외곽부터 스치듯 다가오는, 속도 위주의 연격.
‘스쳐도 치명상이라는 것 까지는 동일하지만…. 그래도 그걸 드래곤의 꼬리같은 물건으로 쓰다니. 전투 경험이 부족하다고 광고하는 수준이군.’
맞으면 그대로 사망인 드래곤의 꼬리로 굳이 몸의 중심을 벗어난 창술을 쓸 필요가 어디있을까. 놈은 나름대로 전투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파고들 틈이 생겼다.
‘팔꿈치. 무릎 관절. 경동맥을 페이크로 어깨. 그 다음은…. 발목!’
콰과과과과곽!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비늘로 덮인 근육덩어리를 쳐낼 때마다 검은 외피가 뭉텅이로 깎여나갔지만, 다음 공격이 닿을 때 쯤에는 이미 재생과 강화가 끝난 뒤였다.
뮤트의 피가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이곳에서 불사에 가까운 그를 죽이는 방법은 두가지. 일격에 몸이 산산조각날 정도의 공격으로 즉사시키거나, 혹은 고통이 그의 모든 정신력을 마모시켜 쓰러질때까지 몸을 갈아내는 것 뿐이다.
‘내가 살아서 이 세계에 남아있는 것이 놈의 목표인 만큼, 즉사당할 걱정은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콰과과과과곽!
‘내가, 버티는 것…. 뿐!’
쩌거억!
턱과 광대를 포함한 얼굴의 삼분지 일이 날아갔지만 아드레날린에 취한 의식은 칼날처럼 날을 세울 뿐이었다.
반쯤 갈려나간 시야속에 놈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읽힌다. 공세는 여전하지만, 놈의 몸이 다시 원래 자리로. 처음 달을 휘감은 그 자세로 돌아가고 있었다.
패턴이다.
‘놈은 완전한 드래곤이 아냐. 언령도. 마법도 사역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용이 아니라 이무기에 가까운 존재다.’
육체는 주술과 왕혈의 살점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말 한마디에 세계를 조율할 정도로 강대한 존재감을 가진 용의 영혼이 아니라 팔카투스라는 뮤트의 영혼만 들어있을 뿐이다.
힘의 핵이 된 것은 팔카투스가 카울라디에게 건넸다는 태양의 힘. 두 개의 창조 AI중 하나, 그 유해로 들끓는 모래 바다를 만들었다는 태양의 힘이 드래곤 하트를 대신했을 것이다. 아마도, ‘죽었다’고 표현된 만큼 달처럼 일그러진게 아니라 완전히 산산조각난 태양의 부품 중 그 핵이 되는 것. 원래 하나였던 사막 전체와 공조할 수 있는 부품이 심장을 대신했겠지.
‘반쪽짜리 드래곤에 불과한 놈이 드래곤 고유의 기술, 브레스를 쓸 수 있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세계를 조율하는 드래곤의 힘을 채워넣기 위해 한때 세계의 창조주였던 해와 달의 권능을 이용하는거야!’
그래서, 놈은 브레스를 뿜을 때 만큼은 반드시 달의 곁으로 돌아간다. 놈이 성기사들과 뮤트의 전장에서 직접 날뛰지 못하는 것도, 저 달의 바다속에 떠오른 금속 구체와 한 몸인 것 마냥 붙어있는 것도 그 이유.
제 본체가 있는 곳을 지키며, 동시에 드래곤의 육체라는, 힘의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힘이 필요한 그 몸을 움직이기 위해 반드시 해와 달이라는 창조 AI의 권능을 빌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몸을 만든 주술사 카울라디라면 그러한 용의 존재감을 채울 수단을 마련해놨겠지만, 그 껍데기만 강탈한 팔카투스에게는 그런 수단이 없으니까.
‘브레스를 쏘는 순간, 반드시 달로 되돌아간다.’
예측가능한 적의 행동이 있다면, 그것을 토대로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터엉!
지금껏 몸을 내어주며 받아낸 공격. 파상공세 속에 생겨난 리듬을 끊고, 어깨를 노리는 용의 꼬리를 오른손으로 강하게 쳐낸다.
촤악!
배를 타고 이동하며 전장을 주시하던 오트만이 정확히 필요한 자리에 발판을 만들어내고, 꼬리를 튕겨낸 반동으로 날아가기 직전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받아낸다.
브레스를 담기 위해 열린 드래곤의 입. 잠깐이지만, 분명하게 열린 가드. 안정된 자세.
촤좌좌좌좍!
퍼버버버벙!
어떻게든 나를 돕기위해 발판을 만들어내는 오트만과 그것을 저지하는 달의 권능에 무수한 물방울이 터져나가며 안개처럼 흩뿌려졌다.
발판은 생기지 않았다. 놈의 가드는 열렸으나 품으로 뛰어들 지지대가 없었고, 드래곤의 단검같은 이빨 사이에는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저쯤되면, 취소하지 못하겠지!’
그것만. 내가 완벽하게 걸려들었다 여겨 놈이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오트만의 지원은 저지당한 상태.
하지만, 겨우 발판을 만들 뿐인 간단한 2위계 마법이 아닌가?
“[워터 플레이트]!”
파앙!
처음부터 알고있던 놈들의 약점. 마법에 대한 무지!
오트만의 지원을 막아냈지만, 설마 내가 직접 마법을 사역하리라 생각하지 못한 놈들의 의표를 찌르는 일격.
우드드득!
가죽이 터져나간 오른손에서 피가 흘러나와 단단한 형상을 이룬다. 평소와 같으면 재생력의 소모로 엄두조차 못낼 묘기지만, 지금은 뮤트의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전장.
몸의 재생은 물론, 내 외피와 같은 재질의 대부(大斧)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재질이 내 몸과 같다는 것은.
“오러를 마구잡이로 몸에 때려박는 것밖에 할줄 모르는 나라도, 무기에 오러를 담을 수 있다는 뜻이다!”
푸화악!
쩍 벌려진 용의 입을 향해 탄환처럼 쏘아지는 몸. 도끼의 긴 손잡이를 잡은 몸이 활처럼 휘고, 터질 듯 부푼 괴수의 외피 사이로 타오르는 하얀 불꽃이 손잡이를 타고 검은 도끼의 날 끝까지 순식간에 옮겨붙었다.
타격에 강한 드래곤의 비늘갑옷. 한 점에 집중된 공격을 위해 도끼를 들었지만, 내게 있어 도끼라는 무기를 다루는 방법은 딱 한가지 뿐이었다.
적이 알아채기 전에. 놈의 등뒤로 접근하여,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단숨에 끌어모아-
“일격에, 대가리를 쳐내는거다!!!!”
촤아아악-
한계까지 뒤로 젖혀진 몸이, 도끼와 함께 원을 그리며 찍어내리는 순간.
타는 듯 고조된 전투감각속에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비산하는 물방울이 내 몸과 얼굴을 스치며 산산조각이 나고.
찢어질 듯 커진 드래곤의 눈동자와,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드래곤의 앞발이 느릿하게 다가오며.
콰삭!
눈이 아플만큼 튀어오르는 불똥과 함께 하얀 불꽃이 일렁이는 검은 대부가 비늘을 가르고, 뼈를 끊어내고.
-카각.
마침내, 움직일 수 없는 드래곤의 긴 목위에 내려앉았다.
스거억-
.
.
.
.
.
.
그 소리는, 어째서인지 비명과 고성이 난무하는 전장속에서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불굴. 불가능을 거부하는 이질적인 오러는, 그 응축된 파괴력을 예기로 바꿔 단숨에 드래곤의 목을 떨어뜨렸으며.
『끄으으윽….! 이렇….게, 된 이상….!』
“3류 악당 같은 소리나 하지 말고, 고개나 돌려.”
퍼억-
미쳐 완성되지 못한 열기의 브레스가 응축된 드래곤의 입은, 그 힘을 담아내지 못하고 잘린 머리를 걷어찬 누군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열기를 쏟아내고 말았다.
뮤트가 잔뜩 몰려있는 곳. 그 중에서도 땅굴벌레가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그곳으로.
드래곤이라는 비대칭 전력의 제거. 그 다음은, 제 1 목표인 팔카투스의 제거를 위해 퇴로를 차단하는 것.
놈의 상태도 정상은 아닐 것이다. 의식이 연결된 몸의 목을 날려버렸으니, 아마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놈의 본체는 달 안에 있다.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끝까지…. 당신 만큼은 이해 해주리라 생각했는데…. 세계의 목표를 위해 죽어야만 하는 우리 종족이라도…. 살아있는 지성체임을 안다면 당신이 이해해주리라고….』
“….네게도 사정이 있듯, 나도 사정이 있어. 살아나가고 싶거든.”
『당신은…. 분명…. 선한 사람이 아닙니까…. 이 모든, 셀 수 없이 많은 인격체를…. 개인의 영달을 위해…. 버릴수…는…』
“세상이 그래. 선인과 악인의 싸움같지만, 멀리서 보면 같은 선인끼리 서로 죽이고, 원망할 뿐이거든. 상대가 나쁜놈이면 죄책감이 좀 덜하니까 그렇게 포장할 뿐이지.”
대충 들어도 중태에 빠진듯한 팔카투스의 목소리.
그래. 놈의 뜻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저들 모두가 억울하게 끌려온 노역자나 마찬가지고, 그들중 유난히 가혹하게 굴려져 미쳐버린 더 불쌍한 이들의 데이터 소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가족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녀석이라면, 그들 모두의 비극을 안 이상 어떻게든 구해주고 싶겠지.
내게 그토록 대화를 종용하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나를 관찰해온 녀석으로서, 성자라 불릴만큼 선행을 쌓아온 나라면 제 뜻을 이해해주리라고. 어쩌면,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용인해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미안하다, 팔카투스. 그런 호구는 황무지에서 다 죽고 없어.”
하지만, 나는 내 사람들이 다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구하는 취미는 없었다. 더욱이, 팔카투스가 3월드 전체의 사람들이 아닌 제 종족만 데리고 나가려 한다는 것. 살려낼 인원을 선별했다는 것이 시사하는 의미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뮤트의 숫자가…. 대충 몇 십 만은 훨씬 넘지?”
『….쿨럭, 크….』
“너는 나가서 방법을 찾겠다고 했고, 나처럼…. 의식 불명의 몸을 접속시켜 그들 하나하나의 인격에 새 몸을, 자유를 찾아주는 방법도 생각했다고 했지. 바깥 사정을 아는 네가 볼 때 아무리 봐도 그걸 다 쑤셔넣을 ‘인간’이 부족해보였던거야. 도둑질할 몸이 부족하니까, 딱히 내 애정의 범위 밖에 있는 인격체들, 3월드의 다른 종족들은 구조 대상에서 배제된거지. 창조주에게 불행히 납치당한 인격들이 불쌍하고 어쩌고 해도, 너는 결국 선택을 한거다. 네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다른 선한 이들을 제거하는 것을 말이야.”
『….』
“말했잖아. 넌 나랑 같다고. 네 손을 잡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결국…. 이렇게 되는겁니까.』
녀석의 꺼져가는 목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락샤샤는 니그미를 상대로 승리한 것 같았다.
오트만은 배 위에서 선원들 사이에 주저 앉아 있었으며, 노툼과 이드라실 팀은 금속처럼 광택이 번뜩이는 나무뿌리와 정령이 깃든 넝쿨로 커다란 덩어리를 완전히 싸메고 있었다.
.
.
.
.
.
.
.
이겼다고. 노툼이랑 이드라실이, 그 테르마키안을 상대로, 제압을 해? 아군이 죽은만큼 그 육체적 능력을 온전히 흡수하는 괴물을? 겨우 저따위 식물 쪼가리로?
“….끝까지 잔대가리를 굴리시겠다. 이거냐?”
『하…하하…. 이겼다고 좋아하실 때, 한명쯤 죽여 없애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궁금했….는데….』
끝까지 수작 부리기는.
이드라실쪽을 향해 눈을 고정한 체, 몸 상태를 점검했다.
오러의 불꽃에 아직까지 잔불이 타들어가는 몸.
많이 상했지만, 근처에 뮤트의 피가 넘쳐나니 충분히 전투를 속행할 수 있는 상태였다. 드래곤과 싸웠다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피해였지만.
‘결국 이놈은 전투를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타입이 아니라, 이거지.’
팔카투스는 결국 모사꾼이다. 에데오르나의 창술 좀 배웠다곤 해도 지금 이 전장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초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뜻을 나누려 했습니다. 드래곤을 잃은 것은 뜻밖이지만, 덕분에 하나 더 배울 수 있었으니. 작은 손해라고 봐도 되겠지요.』
졸린 듯. 드래곤의 머리가 힘겹게 눈꺼풀을 떨었다.
『제 작은 선의를 무시하셨으니. 당신의 말대로…. 이젠, 서로의 선의를 위해 싸우면 되겠지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상대를 악으로 정의하고?』
마침내, 드래곤의 육체가 숨을 거두고.
벌떡 일어난 내가 노툼과 이드라실이 있는 곳으로 달려듦과 동시에,
콰드드득!
여섯 개의 팔에 각기 다른 뮤트 제 생체무구를 쥔 테르마키안이 줄기를 부수고나와 노툼을 향해 할버드를 휘두르고 있었다.
까아앙!
‘밀….린다!’
도끼와 할버드를 마주한 놈의 눈속에 샛노란 파충류의 동공이 보였다.
드래곤의 육체적 능력. 근력, 초감각, 정신계 주문 내성, 심지어 비늘까지.
인간형 뮤트에서 용인에 가까워진 놈은 힘으로 나를 찍어누르며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리 귀여운 꾀주머니한테 무슨 짓이냐. 배다른 아버지. 당신 때문에 안그래도 병신인 팔카투스는 더 골골대고, 나는….”
콰아아악!
“그만, 괴물이 되어버렸잖아!”
“그것 참, 엿같은 능력이로군….!”
퍼엉!
틈을 봐서 놈을 걷어찬 나는, 저 말도 안되는 육체적 능력에 온갖 무기의 달인이 합쳐진 괴물을 상대할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2페이즈가 국룰이라지만. 용의 힘을 다루는 웨폰마스터라니. 정도를 넘어섰군.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나?”
『천만에…. 당신께서 늘 준비하시는 ‘플랜B’라는 것을 모방한 것…. 쿨럭! 뿐입니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연신 숨을 헐떡이며 답하는 팔카투스.
교수는, 손에 쥔 검은 대부를 물끄러미 보다가 몸속으로 되돌려넣었다.
‘기습이나 할줄 알지, 이런 정면 대결에서는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니까.’
대신, 주먹을 쥐고 자세를 낮췄다.
그의 뇌리에 각인된 신성 무투술의 자세. 그리고 지금껏 수많은 강적을 꺾으며 몸에 익은 박투술.
“….팔카투스 그놈이 노래를 부르고 다닐만 하군.”
그런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 여섯 무기의 첨단이 나를 향했다.
찰팍!
마치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는듯한 분위기 속에.
‘어떻게, 어떻게좀 해봐요 좀!’
‘나라고 별 수가 있나! 당장 달과 이 곳 지배권을 다투는데만 해도 10년은 더 늙겠다네!’
‘나 저거 못이겨! 절대 못이긴다고! 나 죽으면 여기서 다 죽는거야!’
교수와 오트만의 귓가에 자리잡은 메시지 마법의 물방울은 속사포같은 대화속에 바르르 떨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