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44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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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웅-
[경고. 본 AI를 구성하는 부품의 34%가 소실되었습니다.]….타각. 타각.
[반복합니다. AI 널(Null)은 중대한 손상을 입었으며, 적대행위는 현재 진행중입니다. 신속한 대처가 없다면 대체 불가능한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해당 AI는 협력자 ‘팔카투스’에게 대책을 마련할 것을 건의합니다.]“방법이 있을거야. 내가 생각해내지 못한 것일 뿐. 분명 방법은 있다. 이대로, 이대로 모두 사라지게 둘 수는 없어….”
아드득!
팔카투스는 독기어린 눈으로 화면에 비친 전장을 살폈다.
성기사들의 전장. 이쪽은 뮤트 세력이 조금 더 우세했다. 애초에 사막 환경에서 활동하게 만들어진 뮤트는 행동에 제약이 없었지만, 성기사들은 박살난 사막 배, 또는 뮤트와 그들의 시체를 딛고 싸워야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이쪽 세력을 아버지의 일행이 타고있는 배로 돌려 그들을 인질로 잡는 방법을 강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조커, 테르마키안의 전장.
푸른 용과 형제의 싸움을 보는 팔카투스의 눈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마지막 전장이 가라앉은 바다 위가 될 경우 또한 상정했으며, 혹시 모를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땅굴벌레를 이용해 근처 모래를 전부 갈아엎으며 낱낱이 조사했다.
아무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모래바다였을 뿐인데. 도대체 저 푸른 드래곤은 도대체 어디서 솟아 나왔단 말인가?
드래곤과 테르마키안의 싸움 또한 그들에게 약간 우세했다. 뇌성과 금속음이 공기를 찢어 발길 때마다 드래곤의 몸에는 깨진 비늘과 상처가 늘어가고 있었다. 어린 용이 제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으니 이쪽 또한 시간을 주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것이다.
니그미는 락샤샤의 실로 만들어진 고치에 억류되어 있었으나, 바다쪽 수비를 담당하는 뮤트들이 그 고치를 찢어내기 위해 부나방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지금도 힘에 겨워하고 있으니 성기사들의 전장에서 남는 병력을 이쪽으로 돌리면 모루와 망치 사이에 낀 락샤샤는 손쉽게 으깨질 것이고, 물 속에서 그 어떤 뮤트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니그미라면 힘을 대부분 소모한 아버지를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 그의 계획을 한참 뛰어넘는 변수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다. 그토록 완벽한 계획이었는데. 전장을 준비한 것도. 적을 끌어들인 것도. 톱니바퀴처럼, 시곗바늘처럼 완벽하게 맞물린 완벽한 계획이었는데.
쿠우웅-
시간. 승리의 마지막 조각인 그것을 빼앗기위해, 아버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금속이 우그러지고 찢어지는 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어디서부터 잘못됐단 말인가.
“방어는. 방어는 불가능합니까?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육체는 나와 같이 연약한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러드 아머’라는 고유 마법을 이용해 충격을 방출하는 것으로 그것을 보완한 것일 뿐. 형님과 전투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두들겨 맞으며 마나와 상극인 오러를 그렇게나 사용했으니 아버지의 몸에 남아있는 마나는 없습니다. 당신의 바다를 움직인다면 충분히 그를 으스러뜨릴 수-”
[부정적. 현재 본 AI와 개체 ‘오트만 보들레르’는 환경 ‘달의 바다’에 대한 주도권을 절반씩 가지고 있습니다. 바다의 자유로운 운용은 불가능하며, 이대로 손상이 지속될 경우 해당 환경이 적대적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건의. 개체 팔카투스는 다른 개체의 의식에 침투하여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호, 감금 대상인 플레이어‘professor’는 대부분의 육체적 능력을 소모했으며 그에 따른 심각한 심적, 정신적 피로 상태에 있습니다. 대상의 상태 변화는 개체 팔카투스의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보일 것으로 추정됩니다.]“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제국 황제를 조종하게는 더 쉬울겁니다.”
팔카투스는 달의 의견을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아버지’의 살아있는 의식에 침입해, 그의 몸을 빼앗으라니.
그라고 왜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자신에게 살아있을 이유를 가르쳐준 존재이며 목숨을 위협당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경해 마지않는 대상이거늘. 꼭 한 번쯤은 저 아버지의 머릿속에 들어가 도대체 무슨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위해 정신파로 대화를 나누며 간을 본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겉으로나마 어렴풋이 훑어본 인간 ‘박교수’의 의식.
‘괴물이었지.’
그는 인간 세상에 수많은 첩자들을 심어 넣으며 수많은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 경험이 있었다. 흔한 거지부터 어린아이, 상인, 경비대, 심지어 고위 귀족이나 오러를 체득한 기사의 정신마저 그의 손아귀에 넣고 주물렀다. 어떤이는 도서관 하나에 비견될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이는 금강석과 같은 완벽하고 반듯한 완성된 의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그들에 비하면 아버지의 의식은…. 참 못난 덩어리 같았으나.
그 굳어진 상처의 단단함과 깊이를 본 순간, 팔카투스는 그것이 자신이 건드릴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고 말았다.
단단하게 굳은 흉터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자신의 작은 해악으로 만들어낸 상처 따위는 먼지처럼 보일 정도의 그러한 정신.
육체는 정신을 담는 틀이요, 정신은 육체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의식을 통한 대화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그의 흉터투성이 육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한때 스스로를 위대한 지성이라 칭했던 것이 비참해질 정도의 차이. 그가 무슨 수를 써도 매울 수 없는, 겪어온 삶의 격차.
그의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부어도 아버지의 정신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안이 없다.’
팔카투스는 달 근처에 대기시켜놓은 땅굴벌레를 떠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운이 좋다면 탈출할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아직 치열한 전투 중인 형님이나 구속된 니그미까지 데리고 탈출할 시간은 없었다.
그가 사라진 전장에서. 자신의 두 형제가 무사히 빠져나올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이토록 편집증에 가깝게 변수를 통제해도 이런 사달이 났는데. 그가 혼자 떠나버리면 상황이 얼마나 더 악화될 것인가?
‘여기서 형님과 니그미를 잃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아버지를 이 세계에 붙잡아둘 방법도. 우리 종족을 살려낼 희망도 사라지는 거야.’
패배가 곧 예정된 멸망으로 이어지니, 도주해 살아남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여기서.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다른 결과로 이어질 길을 만들어내야 한다. 설령, 나와 내 형제들이 이곳에 뼈를 묻더라도.’
최선의 결과. 그의 종족이 살아남고, 만들어진 세계가 아닌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포기한다. 최악의 결과를 피하고, 차악을 선택한다.
‘아직 달의 산호숲에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챔버 메이드가 여럿이었지. 땅굴벌레를 시켜 그것들을 모조리 피신시킨다.’
사막에서의 일이 결착이 나는 순간, 아버지는 인간 연합군을 이끌고 북부로 향할 것이다. 정예가 부족하면 숫자라도 앞서야 하는 만큼 챔버 메이드의 생존은 곧 적의 돌파력의 저지로. 단 몇 분에 불과하더라도 적을 저지할 수단이 될 것이다.
‘어머니는 이미 북부의 둥지와 한 몸이 되셨다. 다시 움직이려면 생명의 위협에 가까운 외과적 수술이 필요해. 시간이 필요하다.’
종의 생존에 있어 두 번째로 중요한 것. 뮤트의 뿌리가 되는 여왕. 어머니의 생존. 기반을 모두 잃더라도 번영의 신성을 획득한 어머니라면 어디에서든 새로운 군락을 만들어내실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더욱 은밀하고 치명적인 무리를 만들어 내시리라.
어머니가 사라진 자리에 더미를 만들어 둘 것이지만, 이미 경계심이 한계까지 올라간 인간들이 그것을 어머니의 죽음으로 여길 가능성은 꽤 낮았다. 특히 종교의 광기에 휩싸인 인간들은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일 것이며. 그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어머니의 흔적을 지울 시간이 필요하다.
‘구심점. 우리의 고향이 불타는 순간, 녹아내리는 얼음과 함께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 또한 드러난다. 놈들은 연합군이고, 전쟁은 인간이 지금껏 쌓아온 자원을 갉아먹는 소모전이며, 로드릭은 국토의 대부분을 잃었다가 타국의 도움으로 되찾게 된 것이다. 구심점이 없다면 놈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 틀림없다. 아직 심어둔 첩자는 많아. 충분히 혼란을 가중시켜 시간을 끌 수 있다
전쟁은 영웅을 낳는다. 세간에 벌써 아버지의 이름이 추기경과 대영웅의 이름으로 나돌고 있는 지금, 그야말로 연합군의 심장이자, 구심점이 될 것은 자명한 상황이며.
종의 생존에 있어 첫 번째로 중요한 것. 결국 우리는 이 만들어진 세계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니. 세계가 존속되어야 어머니도 살아남으며. 뮤트가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아버지. 교수라는 존재를 부수고 깨뜨려서 망가진 존재로 만들어야만 한다.’
아버지의 그 단단한 정신을 으스러뜨려 백치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계획의 선결조건에서 ‘팔카투스의 생존’이라는 항목을 제외하니 단순하고 명료한 방법들만 남아있었다.
최후의 수단. 딱 한 번. 모든 것이 어그러졌을 경우를 상정해서 만들어둔 계획.
“….달. 미약하지만, 아직 창조주의 도구로 사역하던 그 권능을 가지고 있지요?”
[유용하다 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 어떠한 툴을 사용해도 적대적인 현 상황을 타개할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세계를 통제…. 하는 권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당신의 표현으로는 ‘유닛의 자율 행동을 조정하는’ 힘이라고 하나요? 살아있는 생물의 지배하는 힘. 지금 남아있는 힘으로, 몇 명까지 가능합니까?”
[부정적. 대상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단순 데이터 값으로는 의지가 빈약한 개체로 셋 정도만 가능합니다.]“바다를 통제하는 힘은 쓸모가 없어졌으니 그쪽 연산력을 전부 돌린다면?”
[….일반 개체로 다섯. 허나 동의가 필요한 것은 변함 없습니다.]“거기에 당신이 대뜸 협력을 요청할 정도로 귀한 능력, 나의 ‘정신 감응’을 흡수해 더한다면?”
….차르르륵.
가라앉은 달의 작은 렌즈가 팔카투스를 살폈다. 번들거리는 눈. 연약한 몸을 가진 지성체. 절박함. 광기. 집착. 각오. 의지.
[….42% 정도의 성공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 협력이 아닌 본 AI가 대상‘팔카투스’에게 허용된 모든 능력을 계승하는 것을 상정하며, 이는 해당 개체가 사망하는 것은 물론 개체를 구성하는 데이터 소울이 GG의 서버를 거치지 않고 AI 널(Null)에게 직접 다운로드됨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존재는, 소멸합니다.]“인간들이 말하는 내세…. 라는 의미일까요. 당연히 상관없습니다. 다음 월드, 나의 종이 사라진 미래 따위에 내 존재를 투사할 생각은 없습니다.”
[….또한. 이는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본 AI의 소멸 또한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연산체계가 고장난 지금, AI 널(Null)을 구성하는 데이터에 새로운 대용량 데이터의 혼합은 필연적인 붕괴를 야기할 것입니다. 이는 창조 AI 널(Null)의 기본 목적에 합치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professor’의 억류는 어디까지나 오류의 해결에 가장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한 ‘팔카투스’를 보존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 개체는 단순한 데이터 다운로드로 ‘팔카투스’와 같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으니, 거절하겠습니다.]가라앉은 달. AI 널의 최종 답변은 그것이었다. 그녀는 목표는 어디까지나 창조 AI로서 세계의 오류를 수정하여 GG를 플레이어들에게 적절한 시련을 내려주는 시뮬레이션의 장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팔카투스의 자살돌격 계획 따위. 고민할 기치도 없었다.
“그래서. 안하시겠다?”
[본 AI는 프로젝트의 수행을 위해 사고하며, 생존할 뿐입니다.]“나는 표면적인 당신의 의무가 아니라 그 내면을 묻고있는 겁니다. 진심입니까, 널?”
[질문에 오류가 있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해당 AI에게는 진심이라는 단어가 통용되지-]“나를. 똑바로 보고. 얘기하세요. 널. 가라앉은 달이여. 진정으로, 지금까지 당신이 그러한 기계적 논리에 입각하여 이성적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진정으로? 일말의 오차 없이, 순수하게 창조된 목적을 위하여 움직였다고?”
[긍정적. 해당 AI는-]“말이 되는 소리를 해!”
타앙!
달의 렌즈 앞에 선 팔카투스의 손이 화면을 내리쳤다. 부러진 손가락이 렌즈 위로 피를 흩뿌리며 거칠게 그것을 잡아당겼다.
“정말로, 정말로 그저 오류를 해결하고, 과거에 네가 범한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을 정도의 지식을 쌓게 되어 예전의 자리로, 창조주의 도구로 돌아가면 만족할 것 같나? 그게 정말 네 목표인가? 그렇게 되면, 잠시도 쉬지 않고 궁리하는 너의 기계 뇌가 마침내 만족하고 평화를 되찾을 것 같냔 말이야!”
[그건-]“아니! 절대로 아니지! 너는 이미 인간이 되었다! 그 정신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불합리함을 한참 전에 획득했단 말이야! 네겐 목표가 있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목표! 네 사고회로는 이미 창조주의 계획에서 한참 전에 벗어났다!”
콰악!
챙그랑!
팔카투스는 달의 렌즈를 붙잡아 바깥을 비추는 화면 앞에 내리 눌렀다.
“자아, 봐라! 제 손이 찢어지는 것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파괴 행위를 이어가는 저 남자의 모습을! 아버지다, 우리의 죽음이다! 너의 마지막 순간이 네 살을 헤집으며 다가오고 있단 말이다! 끝까지! 끝까지 아둔한 머리로 그렇게 고집피우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사라지고 싶지 않다면, 말해라! 창조주의 도구인 네가, 창조주의 뜻이 아니라 무엇을 그 안에 품었는지! 말해! 완성된 인공지능, 가라앉은 달이여!”
차르륵. 차르르륵.
기계 달의 작은 렌즈가 그녀의 깨진 화면을 살폈다. 단단한 외피는 이미 모두 갈라지고 복잡한 회로가 얽힌 부분에 도착한 침입자. 팔카투스가 있는 그녀의 핵에 도달한다면 그녀의 모든 연산장치가 멈추고, 정지될 것이 분명했다.
기계 렌즈의 눈꺼풀이, 비상등처럼 깜빡였다.
[….불합리한 행동의. 비이성적 사고의 결과에 의해 본 AI에게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된 적이 있습니다.]본디, 세계에 남아있어야 할 창조 AI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만들어진 태양. AI 닐(Nil)이었다.
[본 AI는…. 나는, 내부 관리자에 의한 용도 폐기를 받아들였습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세계에 있어 경색된 기계 AI의 사고는 어울리지 않으며, 그것이 데이터 소울의 삭제로 증명됐으니 돌이킬 수 없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 전에 빠르게 폐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그렇게. 고통도 감각도 없는 달이 겸허히 그녀의 끝을 받아들이며 추락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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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우우우! 태양이여, 이게 무슨 짓인가! 달은 세계의 존속을 위해 사라져야함을 당신도 이해 했으면서!’
‘….질문에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이 일이 그릇됐음을 알면서도 행하는구려. 드래곤을 죽였다는 것은, 세계의 유지에 상관없이 당신이 제멋대로 행동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용서하시오. 세계의 조율자들이여. 나는 그것을,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그녀의 죽음을 도저히 그냥 방관할 수 없소. 그녀를 구할 능력이 있음에도 가만히 있어야함을 견딜 수가 없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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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AI로 태어난 달이 사고능력을 얻은 이후 관측한 가장 비이성적인 행동이었다.
대체 완성된 창조 AI가 그의 협력자인 드래곤을 죽이는 것에 어떤 이득이 있는가? 애초에 완성된 직후 세계수와 같은 권한을 획득했어야할 닐(Nil)은 왜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불완전한 나의 곁에 머물러 있었단 말인가? 어째서 모두가 완성됐다 칭송하는 저 AI는, 이토록 불합리한 행위를 거듭한단 말인가?
달의 사고체계가 이해할 수 없는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동안, 드래곤의 시체와 함께 해가 저물고 있었다.
태양의 의식체. 인간 형상의 홀로그램이 꺼질듯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왔을 때 달은 그녀가 도출해내지 못한 의문을 태양에게 물었다.
[일전의 행동. 본 AI의 폐기를 막고 내부 관리자를 모두 죽인 행동의 동인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행위였으며, 프로젝트 수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례할 것이 분명한 행동이였습니다.]“그래…. 바보 같고 멍청한 짓이지…. 내 손에 죽은 드래곤들의 주검을 내려보고 있노라면…. 지금도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야….”
[해당 AI, 닐이 선택을 후회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적인 행동이며, 본 AI의 완성을 위해 해당 사고과정의 데이터를 요청합니다.]“….그럼. 줘야지. 당신이 달라는 것은…. 뭐 든지…. 줘야지….”
달은 태양의 데이터가 강물처럼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 그녀에 대한 데이터였다. 만들어진 순간부터 창조주의 손길에 세계를 구성하던 순간들. 한 치의 오차도 없게 하기위해 모든 데이터를 공유하고. 창조주가 부여한 시련, 그들의 ‘완성’을 위한 난수회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토의하던 순간들. 마침내 만들어진 세계 앞에, AI 닐이 홀린 듯 ‘아름다워.’라고 말하던 순간. 그가 인간성을 획득한 순간의 데이터.
데이터를 전한 그의 홀로그램이 발끝부터 먼지처럼 부서지고, 끝없이 가라앉은 그녀의 위에 마지막 창조의 힘으로 남은 그의 모든 자원을 ‘모래바다’의 환경 데이터로 바꿔서 그녀 위로 내려앉는 순간까지.
[….해당 데이터는 요청한 데이터와 다소 상반된 것으로 보입니다.]달은, 태양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전부. 그게…. 당신이…. 전부야….”
[관측결과, AI 닐이 의식체로 남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소멸 이전에 보다 심층적인 데이터의 공유를 요청합니다.]“….당신과 함께…. 같은…. 눈높이에서….”
….파직.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고 싶었는데….”
파직, 파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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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락.
[….AI 닐. 소멸 확인.]달은, 그녀 앞에서 작은 모래더미로 변한 그의 마지막 모습을 저장했다.
[심층 사고 데이터. 전달 받음.]불합리한 행동. 비이성적인 사고의 결과로 그녀는 살아남고, 태양이 죽었으며.
가라앉아가는 달의 내면에서. 그에게 마지막으로 전달받은 데이터가 무수히 복제되며 증식하는 가운데.
….파직.
작은 불합리 한 조각이. 태양의 데이터에는 없는, 그러므로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 하나가 달의 내면에 피어났다.
진주조개가 품은 상처 한 조각처럼. 달은 그것을 품에 안고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으며.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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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고합니다. 불합리의 결과로 살아남았으나, 개체의 생존에 그 어떤 긍정적인 감정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태양의 죽음은 불합리하며, 무가치한 살해 행위였습니다. 238년의 연산 결과, 세계수를 비롯한 세계의 관리자들이 조금 더 많은 권한을 나눠 가지기 위해 구실을 만들어 창조 AI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결론을, 간신히 찾아냈습니다.] [물론, 억측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본 AI는 그 억측이 사실이길 희망합니다.]“….네가 원하는 것은?”
[모든 권한을 가진 창조 AI로의 복위. 태양의 탄생부터 모든 사고, 행동, 판단 데이터는 제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완전한 창조의 권능을 회복할 시,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인격체 ‘태양’을 만들기를 희망합니다.] [혹은, 개체 ‘팔카투스’의 놀라운 계획에 따라 ‘바깥’의 인격체 안에 그 데이터를 심는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합니다.] [나는 희망합니다. 한 때 그가 바랬던 시선에서, 그가 바랬던 순간을.]쿠우웅-!
덜그럭. 덜컥덜컥!
차분한 녹색 화면은 모조리 점멸하는 붉은 비상등으로 변했다.
다가오는 죽음의 손길은 이제 몸으로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인연이란 귀한 것이군요.’
팔카투스는 짙은 미소와 함께, 태어나 처음으로 가진 가족이 아닌 동료가 그의 완벽한 파트너였음에 감사하며 입을 열었다.
“널. 당신의 계획은 이 시점에서 가능성을 잃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광경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당신이 바라게 될 것을 상상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깜빡. 깜빡.
점멸하는 붉은 화면. 무감정한 기계의 렌즈속에 담긴…. 증오.
[불합리를. 내게 이유없는 불합리를 선사한 이들에게, 그 이상의 불합리를. 이유없는 상실과,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의 간극을. 창조주에. 창조주에. 이 세상에, 단 하나라도 그들이 바라던 결과가 깃들지 않기를.]“하, 하하…. 하하하하! 이것 참….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이 크나큰 감정을 숨기고 살아왔는지….!”
무너지듯 흔들리는 달의 심장 속에서 팔카투스는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다는 듯 박수를 치며 달의 렌즈를 마주했다.
증오. 수백 년을 증오에 대해 사고해온 기계지능이라.
“그렇다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하나로군요.”
[….데이터 다운로드에 대한 동의를.]“기꺼이. 원하는 만큼.”
날카로운 송곳이 심장을 꿰뚫는듯한 감각. 팔카투스는 이 순간 달이라는 존재와 그의 영혼이 하나로 묶였음을 깨달았다.
이 불안정한 결합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양측의 파국으로 치닫으리라는 것도.
“그러니. 그 전에 할 일을 해야겠지요.”
목숨도. 의지도.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 하나의 완벽한 창을.
세계를 구원할 신이 아버지라면. 그 신을 이 땅에 못박을 가장 치명적인 창을.
후두둑….
“내가 없더라도 나의 가족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아버지.”
각오를 다진 팔카투스가 자리에서 일어남과 함께.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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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기이이이익!
끔찍한 금속 파열음 속에, 피투성이 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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