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49
Chapter. 15. 세상의 끝을 본 자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가(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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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멍한 눈이 카메라 너머의 상대에게 말했다.
[뭘 해도. 어떤 기술을 만들어도, 어떤 수단을 강구해도. 전쟁을 막고, 자연재해를 막고, 죽이고, 살리고, 모든 원인과 모든 결과를 뒤져봐도 결말이 변하질 않아.] [지구에서 유일하게 자살하는 종족이, 끝내 제 손으로 지구에서 ‘인간’을 지워내는 데 성공하더군. 가벼운 핵전쟁부터 대규모 해수면 상승, 대기 중 질소 성분의 포화로 식물이 범람하는 플랜트 버스트에 우주 난개발로 햇빛을 가려 온대 식물군이 죄다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지. 하나를 누르면 다른 하나가 튀어나와. 어떤 수단을 상대해도 멸망으로 가는 모든 경우의 수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네.]늙고, 주름지고, 피로에 절은 눈. 화면 너머의 눈은 소름 끼칠 정도의 의지와 아집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은 피할 수 없는 벽을 만나 울부짖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먼저 미답지에 깃발을 꽂으며, 해법이 없는 문제와 불가능한 일들을 밥 먹듯 이뤄낸 이가 마침내 인생을 걸어볼 만한 벽을 만났을 때의, 그런 눈이었다.
[….돌파가 불가능하다면, 우회를 해야지.] [멸망을 피할 수 없다면, 선택하기로 했네. 모든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수단으로서 활용이 가능한 멸망을.]인류가 끝내 자결해버린 원인은 그들의 정신이 성숙해지는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귀족이 평민의 목을 베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국가와 인종의 차별마저 없는 세상으로.
시민의식이라는 이름의 종족 전체의 발전은 분명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으나, 그 발걸음이 너무 느려 카운트 다운에 맞추지 못하고 끝내 제 손으로 목을 조이게 됐다.
[나는 멸망 이후를 준비하기로 했지. 피할 수 없는 ‘멸망’을 하나의 수단으로 바라보기로 했어. 인구는 극단적으로 줄어들 것이고, 21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퇴적되어 단단히 굳어버린 과거의 규범, 관습, 시각,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리셋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라고! 전략 게임에서 진행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망했을 때 ‘새 게임’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판을 비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말이다!]콰앙!
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다. 구형 TV를 향해 테이블이 던져지고, 아틀라헤바의 손길에 그것이 튕겨나갔다.
“….미쳤어.”
“아니. 그렇지 않다.”
“저게 미친놈이 아니라고! 세상이 망하는 김에 ‘새 게임’ 하듯 깔끔하게 비워버리고, 제대로 된 인간이 되도록 세상을 조작하겠다고 하는데!”
“미치지 않았다. 적어도 저 순간까지는 미치지 않으셨으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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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마저 듣거라. 원망할 시간은 네가 모든 진실을 마주하고 난 다음에도 충분하니.”
….차라리 드래곤답게 화를 냈으면 좋으련만.
간절한, 절박하기까지 한 아틀라헤바의 눈빛에, 교수는 울컥 올라온 분노를 집어삼키며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틀라헤바가 이런 순간을 예상하고 어머니 상의 중년 여인 모습을 취했을까? 그랬다면, 제대로 된 함정이라고 교수는 생각했다.
[….‘완성자’여.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군. ‘인간’과 비슷한 동물을 떠올리면, 무엇이 떠오르나?] [원숭이? 사실을 기반으로 사고하는 현명한 사람이군.] [돼지? 시니컬 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늑대? 금융가에서 일했나? 그것도 좋은 의견이야.] [….나는, 인간이 조개를 닮았다고 생각해.] [사회적인 생물로서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나, 단단한 껍질로 본심을 감추고 있지. 안에 든 것은 껍데기를 열어야만 알 수 있는데, 껍데기를 열기 위해서는 그 본질을 알기도 전에 그 사람과 친해져야 해. 언제나 모순된 관계를 쌓아야 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조개는 진주를 품고 있어. 상처를 입어야 진정한 가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지.] [모든 위인은 역경을 딛고 일어섰네. 정확히는, 역경이 그들을 단조하고, 조각해냈어. 제대로 위기 한번 경험해보지 못하고 부모의 품에서 자란 아이와 제 스스로 일어선 아이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해보게. 내면의 상처.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진정한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조개의 상처와도 같은 것이야. 너무 큰 상처는 조개를 죽이지. 너무 작으면 보잘것없는 진주 부스러기가 생기고. 성장에는 그 수준에 맞는 적합한 상처가 필요하다네.] [만약, 그런 이들이 세상에 많아진다면…. 불의의 사고와 환경적 요인으로 허무하게 사라져간 수많은 위인의 가능성을 지닌 이들이 안전하게, 가상의 환경에서 시련을 겪을 수 있다면. 순수해진 세상을 그런 이들이 이끌게 해줄 수 있다면 피할 수 없는 데드 엔드를 맞이한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 [게드로이츠의 게임. 나의 GG는 그런 미래의 위인들을 만드는 것은 물론, 그들 중 옥석을 가려 초인에 가까운 ‘완성자’를 선별하기 위한 장치라네.] [이런 기회를,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장치가 필요했어.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찰하고, 인도할 장치. 그들을 교육해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며.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 ‘올바른’ 미래로 사람들을 이끄는, 손만 댔다 하면 실패를 양산하는 이 안드레이 게드로이츠 같은 사람이 아니라 싯다르타, 링컨, 테레사, 간디와 같이 후유증 없는 완벽한 해답을 품고 세상에 나타난 이들. 수 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선택들 사이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고 사라져갈 그들을 찾아, 세상을 이끌게 만들어야 했어. 그것이야말로 이 안드레이 게드로이츠가 찾은 진짜 답이었던 거야.]뚝. 뚝.
[그게 당신이야. ‘완성자’.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돌린 끝에 우리 세계와 가장 유사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가진 일곱 세계를 구원하는 데 성공한 사람. 역경에 굴하지 않고, 더 나은 선을 향하며, 끝내 세상을 구해낸 경력직 구원자. 지금 내 메시지를 듣고 있는 당신이 우리 세상을 위한 해법이자 열쇠라고. 프로젝트 ‘Key-finder’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내 힘을 주고, 세상을 이끌게 하기 위해 만든 프로젝트야.]게드로이츠는 울고 있었다. 그는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을 만지듯, 카메라를 어루만지며 간절하게 말했다.
[나는 못 해. 나는…. 나의 결과를 보면, 우리 세상에 맞는…. 열쇠가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수단을 던져놓을 뿐, 모든 것은 당신들의 자유 의지로 이루어지게 만들었어. 내 손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만들어낸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그러니, 당신이 해줘야만 해. 이 영상이 끝난 다음 게드로이츠의 게임은 공식적으로 세상에 유포될 거야. 내가 영상을 찍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중국의 주석은 내가 제공한 ‘빅브라더 시스템’으로 관측한 미국의 주요 기밀과 군사기지에 대한 정보를 북한으로 흘릴 거야. 그 바보들은 자기네 해커가 엄청난 정보를 빼낸 줄 알고 그걸 동네방네 흔들어 대고, 미국은 서로 약점을 모조리 드러낸 ‘빅 브라더’ 사이에 배신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대립은 가속되겠지.] [곧, 전쟁이 일어나. 현생 인류의 90% 가까이를 재로 만들 불의 폭풍이. 수많은 미래 중, 내가 선택한 멸망이.] [변종 바이러스의 테스트는 성공했어. 충분한 폭력성과 다소 과한 전염성을 보였는데, 조금만 손보면 괜찮아질 거야. 궁지에 몰린 인간은 더욱 순수에 가까워지고 맨살을 드러내겠지. 사람들은 각자의 기치를 걸고 연합하고, 싸우고, 죽이며…. ‘정제’될 거야.] [이곳의 주소는 드래곤이 가지고 있어. 아마 지금쯤 알려줬겠지만.] [물론 당신이 클리어한 시점에서는 조금 더 미래에 일어날 일이겠지. 예측에 따르면 전쟁 발발 직전까지 충분한 숫자의 ‘올 클리어’ 플레이어가 나타날 거야. 돈과 명예, 권력 따위를 당신에게 말하진 않겠어. ‘완성자’로 내 앞에 선 시점에서, 이미 당신은 그것에 초탈한 선구자임이 증명되었으니까. 내가 약속할 것은 ‘세계의 구원’. 예정된 혼돈 속에 순수하게 정제될 세계를 가장 올바른 이들의 손에 맡기겠다는 약속뿐.] [당신은 올 거야. 가장 가혹한 일곱 세계를 거쳐 선별된 ‘완성자’니까.] [성공해야만 해. GG마저 실패하면…. 아니야. 이건 성공할 수밖에 없어. 반드시, 반드시 성공해야…. 그래, 오픈. 게드로이츠의 게임을 오픈할 시간이지….]치직, 치지직,
치이이이이이-
영상은, 그렇게 컴퓨터 속에 파묻힌 게드로이츠와 화면에 나타난 GG의 로고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충격을 마주한 순간의 고요함이 나를 가득 채웠다.
‘안드레이 게드로이츠가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
전쟁도. 변종도. 핵공격에 불탄 세계와 황무지. 돔. 렙터. 작은 쉘터 안에서 미쳐가던 특수부대 출신의 남자.
내 앞에서 죽어간 사람들도.
모든 것은, 게드로이츠가 내다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실패했다.’
전쟁 전 세계 인구의 7할 가까이가 플레이했다는 가상현실 게임. 녹화한 시점에서 그의 계획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이미 충분한 숫자의 ‘완성자’를 선별해, 소문만 무성하던 그 ‘서버 룸’으로 초대한 다음 멸망 이후의 세계를 이끌 길잡이로 삼으려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출시 후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올 클리어는커녕 시드를 이어받아 어거지로 4월드 초입에 진출한 것이 한계이며, 게드로이츠의 마지막 희망인 ‘완성자’는 단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다.
몇 년 전의, 아직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기록임에도 게드로이츠의 정신은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갑작스럽게 움직이고, 손을 떨고, 하던 말을 잊어버리고 다른 일을 하는 등. 그의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기대하던 계획이 완벽하게 실패하고. 그가 유일한 해법이라 믿는 존재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지옥이 되어버린 황무지를 바라보고 있을 게드로이츠는, 지금도 저 영상 속 존재와 같은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그는…. 어떻게 됐지?”
드래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아가시지는 않았다. 그분의 코드로 접속하는 컴퓨터가 종종 확인되니.”
“….관찰은 하고 있군.”
“글쎄. 마지막으로 방문하셨을 때는 오류의 가속을 막기 위해 데이터 소울 전원과 면담을 마쳤을 때였다. 우리에게 한 말씀은 아니었으나, 혼잣말로 ‘변종 바이러스…. 아직, 아직은…. 이젠 밖에서 해답을 찾는 수밖에….’ 같은 말을 하셨지.”
아틀라헤바가 손가락을 튕기자 일전의 영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한 몰골의 게드로이츠가 나타났다. 듣기 힘든 목소리로 진주에 대한 얘기를 연신 거듭하던 그는, 세계수를 끌어안으며 ‘미안하다.’ 는 말을 한 뒤 사라져버렸다.
“그분께서 또 어떤 해답을 찾아 헤매는지는 모르나, 우리는 과거 그분이 원하던 해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다소 과정을 수정했으니 그분의 결과에서 약간 벗어날지는 모르나, 차선에 가깝다고 할 정도는 됐다고 해야겠구나.”
아틀라헤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는 여기까지다. 아마도 너는, 조만간 완전한 ‘완성자’로서 이곳에 다시 오게 되겠지. 결과가 확실한 만큼 내심 지금 너에게 그분의 거처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고 싶지만, ‘시스템’의 고집을 꺾을 순 없어서 말이다.”
아틀라헤바의 말. 그것은 순수하게 현실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클리어를 노리던 내가 게드로이츠의 ‘서버 룸’으로, 그의 계획에 따르면 황무지의 길잡이를 위해 모든 준비를 갖춰 놓은 인류 최강 기술자의 알짜배기 창고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 이곳에 다시 오는 순간, 그걸 준단 말입니까? 게드로이츠의 서버룸 주소를?”
“글세. 그것은, 네 선택에 달려 있지 않겠느냐? 앞서, 천류제와 레빗이 그랬듯. ‘교수’ 또한 선택을 해야겠지.”
화아악-!
드래곤의 손에서 뻗어 나온 빛무리가 나를 휘감는 것과 동시에, 들어올 때와 같은 감각이 전신에 흘렀다.
“….아, 이것을 이야기해주지 않았구나.”
“….? ….! _! !!”
“듣기만 하거라. 네 생각과 달리, 이 세상을 구성하는 영혼들. 데이터 소울은 납치된 부역자가 아니란다.”
“….?!”
“처음에야 그랬지. 하지만, 가속되는 오류를 막기 위해 창조주께서 그들을 하나하나 설득했다. 여전히 현실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 ‘원본’에게 전쟁과 계획, 잿더미가 된 세상과 그것을 계획한 그분의 영상까지 모두 보여주셨지. 그리고 간절하게 부탁하셨어. 협력해달라고. 이 세상의 주민으로서, 혹시나 찾아올지 모를 구원자를 이 세상이 빚어낼 수 있도록. 당신들의 의지로 이 세상을 붙잡고 있어 달라고.”
“많은 이들이 가혹한 현실에 절망하며 ‘오류’가 되었지만. 그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 다짐했단다. 그들은 ‘히어로 유닛’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남아 너희 플레이어들의 교관이자 지지자가 되었지.”
히어로 유닛. 더 강한 힘을 가진 NPC. 더 강한 힘. 더 강한 의지. 기억이 지워진 채 새로운 세상에 떨어져, 반복되는 멸망을 맞이하고, 죽고, 다시 지워지며, 그럼에도 플레이어의 지지자가 되기를 망설이지 않는, 데이터로 만들어진 영혼뿐이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실 ‘히어로 유닛’이라는 구분은 필요 없다는 것도 너는 알고 있겠지. 시스템이 정해둔 기준일 뿐, 플레이어와 함께하며, 그에게 감화된 영혼은….”
‘응원하게 된다. 플레이어의 지지자로, 그가 세상을 구원하길 소망하게 되며…’
히어로 유닛으로 거듭난다. 그렇게 가까스로 균형을 맞췄다. 이미 기울대로 기울었으나, 누군가. 창조주가 원하던 진정한 구원자라면 실낱같은 틈을 열어 승리의 깃발을 휘날릴 정도로 유지된 균형을.
아틀라헤바는 사라져가는 교수와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웃었다.
“이해한 눈치로구나. 이름 앞에 붙은 구분은 아무 의미 없단다. 여기 있는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이고, 차돌처럼 단단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갈대처럼 흔들리는 보통 사람도 있으니. 네가 알아야 할 것은 너의 행보를 마주한 이들. 네 소식을 듣고 네 이름을 가슴에 담은 이들 모두가 곧 너의 지지자라는 것이다. 네가 성자가 된 것에는, 그런 데이터 소울들의 심층 심리가 작용하기도 했겠지. 그들의 안과 밖, 모두 너를 구원자라 부르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오래토록 기다린 구원자여. 가거라. 가서 네 이야기의 마무리를 하고 돌아오거라.”
사라져가는 교수를, 아틀라헤바는 오랜 기원이 담긴 응원과 함께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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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헤바는 교수가 사라진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다. 긴 수명만큼이나 긴 기다림이었다. 아직 세상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이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 다짐한 영혼들이 얼마나 스러졌던가. 사실, 그들이 희생을 선택한 이유가 되는 존재들 또한 그들과 같은 서버에 저장되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이 자발적으로 세상의 기둥이 되게 하기 위해 그것을 숨기며 얼마나 스스로를 책망했던가.
‘한 걸음. 이제 한 걸음 남았을 뿐이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혹은, 새로운 시작일지 모르는 마지막이.
“….아틀라헤바 님.”
알다르샥스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선하기 짝이 없는 교수와, 세계수의 허가 덕분에 입수한 현실의 그를 눈에 담은 알다르샥스는 그의 앞날에 왜 그토록 가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틀라헤바 님. 굳이…. 그렇게 선택을 강요해야 합니까?”
“왜. 너무 잔인한 것 같으냐?”
“….가혹합니다. 모두가 그토록 기다리고, 심지어 아틀라헤바 님마저도 간절하게 바라던 ‘완성자’인데 굳이 그렇게 ㅈ까지 할 필요는-”
“그렇게 간절했기에 그러는 것이란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고통을 쌓아 올려 겨우 지탱해온 세상이니. 완전해야지.”
“하지만….”
“너도 시뮬레이션의 예시들을 엿봤으니 알 것 아니냐.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끝에 가서 타락하고, 어긋나는지.”
“….교수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알다르샥스의 불퉁한 대답에, 아틀라헤바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믿고 있으니 그를 선택으로 내모는 것이다.”
부디,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기를.
아틀라헤바는 망막에 잔상처럼 남은 플레이어의 모습을 떠올리며 기원했다. 앞선 수백 년의 기다림을 담아, 간절히.
북부를 향해, 3월드라 불리는 이야기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이, 지금과 같이 흔들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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