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51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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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드로이츠가 만든 인공지능은 소름 돋을 정도로 인간과 유사하다.
배우고 모방하게 만들어진 간단한 구조의 인공지능인 코듀로만 봐도 내 성격을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은 끝에 기계답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으며, 세계수와 아틀라헤바는 오류로 망가진 GG에서 창조주의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스스로 사고하고 궁리하며 해법을 찾았다.
그러므로, GG는 우리가 접속하면 돌아가는 세계가 아니라 조금 더 능동적인 세계로 봐도 좋을 것이다.
‘천류제. 레빗. 그리고 나. 그들이 고토록 갈망하던 완성자 후보다. 셀 수 없이 많은 세계의 시뮬레이션 중 일곱 개를 골라냈다는 것은 현실처럼 생생한 GG의 세계, 그 흥망성쇠를 셀 수없이 많이 관측하며 검토했다는 뜻이야. 3월드는 몇 년이지? 4년 정도? 표본을 천 개만 돌렸어도 4천 년. 데이터가 썩어 문드러질 정도의 세월을 기다렸는데, 그 기다림 끝에 만난 완성자 후보들을 그냥 방치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이안의 말에 따르면 천류제는 내가 나올 때까지 돔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는 인물이지만 허언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기다릴 것이다. 그게 얼마나 걸리든.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다는 뜻이다.
‘외부에서도 완성자 후보와 접촉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드론을 이용해도 되고, 접속기에 개인 메시지 하나 띄우는 게 어려울 것도 없고. 시스템이 나에 대해서 천류제에게 이야기한 걸까? 천류제는 사실상 세계를 멸망에 가깝게 몰아넣으며 3월드를 클리어했는데, 놈들의 엄격한 기준에 들어맞았을까?’
[그럴 리가 있나. 시스템도, 세계수도, 아주 단호하기가 쇳덩어리 같은 놈들이던데.]상념 사이로, 퉁명스럽게 툭 하고 던지는 듯한 하이드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그래? 난 그렇게 못 느꼈는데.’
[그거야 껍데기 너는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완성자니까. 시스템의 제재만 아니었으면 제 살이라도 베어서 먹일 기세였잖아. 그렇게 안달복달하면서도 끝내 결론은 ‘일단 클리어하고 와라.’로 끝난 거 보면 몰라? 인간성을 획득했어도 그 뿌리에는 기계적 단호함이 남아있다고.]‘그런 면모가 있긴 했지만, 딱히 그 정도까지는….. 아, 그러고 보니 너 제국에서 세계수한테 잡혀갔었지? 꽤 오래 둘이 붙어 있었고?’
[….명심해. 네 앞에서야 흐물흐물 녹아버리지만, 그들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세계의 멸망을 눈에 담았어. 세계 단위 멸망을 관측하는 존재의 시선이 우리와 같을 거라 생각하면 안 돼.]‘….갑자기?’
하이드의 말은 명백히 경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제국에서 나와 떨어졌을 때 내가 보지 못한 뭔가를 봤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니, 그때를 기점으로 말수도 좀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
녀석과 대화에 집중하자 이제는 내 집 안방처럼 편안한 검은 의식 공간이 펼쳐졌다. 은하수를 본딴 모빌처럼 매달려있는 기억 아래에, 낡은 소파. 그 소파에 맞춰 몸을 욱여넣은 괴물의 모습. 현실의 내 몸을 본딴 하이드였다.
‘야.’
[….]‘….혹시 세계수가 너한테 따로 이야기한 거 있냐?’
[없어.]없기는. 아예 등 돌리고 소파에 얼굴을 묻는 꼴이 누가 봐도 ‘나 뭐 있어요~’ 하고 시인하는 수준이다.
‘나랑 떨어져 있을 때, 세계수랑 뭐 하고 있었는지 좀 보여줘 봐.’
[….못해. 그건 네 뇌에 저장된 기억이 아니라 여기서 못 띄워.]‘개소리 하지 말고. 숨기면 내가 못 찾을 것 같냐? 너랑 내가 기억 공유한 지가 언제부턴데. 까봐 빨리. 아니면 진짜 뒤져서 찾는다? 저기 저 안에 있지?’
의식 공간인 만큼 무한히 뻗어 나간 검은 공간. 거기서 머물 자리라고 부를 만한 곳을 만든 것은 어디까지나 이 안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하이드의 취미였다. 내게 제일 익숙한 낡은 소파를 가져다 놓은 것도, 제가 보기에 괜찮은 기억들을 반짝반짝하게 닦아서 허공에 매달아 놓은 것도, 어지럽게 쌓여있는 기억의 구슬들을 차곡차곡 분류해놓은 것도 그런 녀석의 취미의 일환.
“무슨 도서관처럼 만들어놨네. 한참 말 없더니, 이거 만들고 있었냐?”
[전투 중에는 사고가 너무 첨예하게 가속돼서 말을 걸 수가 없더라고. 발끝의 미세한 움직임, 상대의 근육 한 올까지 눈여겨보는 와중에 머릿속에서 누가 말 걸면 그대로 칼 맞고 데드엔드 아니겠어.]“그렇긴 하지. 어디 보자, 제국, 제국…. 아, 이쪽이네.”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아예 라벨까지 붙여가며 정리해놓은 덕분에 기억을 더듬기가 훨씬 쉬웠다. 떡하니 ‘제국’이라고 이름 붙은 선반에 떡하니, 하나만 색이 다른 기억이 있었다.
“나 참. 대놓고 봐달라는 듯 이렇게 올려놓았는데 없기는 무슨.”
[아이씨! 그…. 우리도 슬슬 개인 프라이버시를 좀 존중할 때가 된 거 아냐! 같이 살아도 그…. 그런 거 있잖아! 매너!]“이미 내가 탯줄 달고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싹 다 읽은 놈이 하는 말이라기엔 양심이 좀 많이 없으시네. 사춘기냐?”
나는 하이드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해준 뒤, 녀석의 기억을 띄웠다. 음…. 거기로군. 기계 세계수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거기서 녀석은 울먹이면서 내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당황해서 날뛰기도 하고….
“부끄러울 만하군. 무서웠냐? 그러고 보니 이 몸이랑 완전히 분리된 건 저 때가 처음이지?”
[으, 제발.]그리고, 세계수가 하이드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차분하게 말을 거는 세계수와 함께….
픽!
필름을 뚝 잘라낸 것처럼, 하이드의 기억이 사라졌다.
“어? 이거 왜 이래? 야, 기억 꺼졌어!”
[그러니까 말했잖아. 볼 필요 없다니까.]“….기억 소거?”
중간중간 소리 없는 흑백 영상 같은 게 떠오르긴 했다. 괴물의 모습으로 팔까지 휘저어가며 언성을 높이는 하이드. 벤치를 집어 던지며 난동을 피우는 모습에서 멍한 눈으로 언덕에 주저앉은 모습으로.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이는 세계수가 녀석에게 조곤조곤 무언가 일러주는 모습으로. 그리고 끝. 정말 가위로 잘라낸 것처럼 기억이 뚝 끊겨 있었다.
[세계수가 너랑 기억 공유하는 거 다 알더라고. 거기서 한 얘기가 아직 완전한 ‘완성자’가 되지 못한 네게 허가되지 않은 내용이었나 봐. 그래서 나도 기억 안 나.]“….진짜 하나도 기억 안 나?”
“진짜로?”
[아익, 진짜라니까! 시스템이 막 삑삑대면서 너 협박했던 그거! 그거라고!]“흠….그래?”
하이드는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훤히 드러나는 편이다. 비단 얼굴뿐만 아니라 말투나 분위기가 평소와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리고, 스스로 꾸몄다고는 하나 여기는 의식 공간. 말 그대로 의식 안쪽의 공간이다. 내면이 표출되는 공간이란 말이다.
그딴 거 모른다는 하이드의 말과 달리 떡하니 선반에, 그것도 저 혼자 색이 달라서는 훤히 눈에 띄던 녀석의 개인 기억. 여상스러운 녀석의 태도와 달리 제발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는듯한 모습이 아닌가?
‘내심 내가 봐줬으면 했다는 거지.’
기억을 직접 확인했으니 기억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진짜로 기억이 잘려있었으니까.
하지만…. 뭔가 감추는 게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거, 나가면 심리학 논문이라도 좀 찾아보던가 해야겠군. 아니면 육아 쪽 전자책이라던가.’
더 쪼아봤자 얘기할 것 같지도 않고. 하이드가 내 속을 읽어내는 것과 달리 내겐 그런 재주가 없었다. 가뜩이나 녀석은 태생부터가 의식 생명체라 작정하고 감추면 읽어낼 도리가 없다.
‘….간다.’
[그래. 필요하면 부르고.]하이드는 소파 위에서 내게 등 돌린 그 상태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잠에서 깨듯 사위가 밝아져 오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의미심장했던 아틀라헤바와의 마지막.
천년의 기억을 간직한 주제에 깜빡했다는 듯, 마지막 순간에 일방적으로 내게 주입했던 이야기.
『데이터 소울은 납치된 부역자가 아니란다. 자의로 선택해, 플레이어의 지지자로 이곳에 남은 것이다.』
『천류제와 레빗이 그러했듯, ‘교수’ 또한 선택을 해야겠지.』
“….선택이라.”
세계수는 이대로 클리어하면 게드로이츠의 ‘서버룸’으로 가는 길이 열리느냐는 내 물음에, 선택에 달려있다고 답했다.
하이드는 앞선 두 완성자가 그들의 엄격한 기준에 들었냐는 물음에 ‘그럴 리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모든 관리자들이 ‘마침내’ 완성자 후보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마침내.
‘그건, 앞선 두 사람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
그리고. 밖에 있는 천류제는 이 시점에서, 시스템마저 나의 클리어를 확정시 한 이 시점에서 나를 만나고자 하고 있었다.
레빗은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와 같은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뭐가 됐든, 세계는 다음 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의로 이곳에 남아, 바깥 세계를 위한 시험장의 부품이 되는 것을 선택한 이 세계의 주민들.
이레귤러라 볼 수 있는 하이드의 위치.
그리고…. 지워진 기억 사이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하이드의 기억.
은빛 거수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 주저앉은 녀석의 귀에 세계수는 무언가 속삭였으며, 하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의 일도, 안쪽의 일도. 마지막의 마지막은 내 선택에 달려있다는 뜻인가.’
그건 아마도, 클리어 너머에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겠지. 진짜 완성자와 완성자 후보를 가르는 선택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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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악-
덜컥!
“어어이- 살라딘-! 취했으며어언- 내려오시오오-”
발이 닿는 느낌과 함께 사막과 밤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망루 위에서 휘청이는 내 모습이 걱정됐는지, 아래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모래 냄새와 함께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가 멍했던 정신을 일깨웠다.
손에 들린 술병의 존재에, 반쯤 남은 그것을 냅다 비워버린 뒤 술병을 사막 너머로 던져버리며 외쳤다.
“크으으으….! 갑니다! 뭐 할 일 있습니까!”
잘린 기억 사이. 흐려진 것은 화면이 아니라 하이드의 시야였다. 다정한 듯 냉정한 기계 지능의 의견에 동의하며 물기로 흐려진 시야.
하이드는 동의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확인하는 방법은 끝에 도달하는 것뿐이다. 한시라도 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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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버리 선장님, 은퇴 안하십니까?”
“‘드라이 오아시스호’ 는 은퇴하겠지. 하지만 우린 아니야.”
다들 왜 이렇게 바쁜가 했더니 드라이 오아시스호에 남아있는 짐을 비공정으로 옮겨 싣는다고 그런 것이었다.
비공정의 정비를 담당하는 대장장이와 목수, 마법사가 한목소리로 말하길, 드라이 오아시스호는 수명을 다했단다. 하긴. 그토록 뮤트에게 처박히고 물어 뜯기면서 전속 항해를, 그것도 달 주위를 빙빙 돌면서 선체에 무리가 많이 가는 곡선 주행만 죽어라 했으니 회생 불가능 판정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지.
이상한 건 선원들의 태도였다. 지금쯤 ‘고향에 있는 소꿉친구에게 청혼할거 야’ 같은 진부한 대사에 취해있을 줄 알았던 선원들은 새로운 ‘배’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있었다.
“퇴직금 모자라면 저 밑에 있는 구멍에 내려가서 좀 더 건져다 줄 수 있는데.”
“무서운 소리 마시오. 벼락과 구름을 다스리던 푸른 드래곤께서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소? ‘내가 나고 자란 이 모래바다의 중심에 둥지를 틀겠다.’ 라고. 가라앉은 바다는 이제 두 분 드래곤 남매 님의 영역인데 누가 들어가서 보물을 훔쳐 오겠소? 우리가 들고나온 물건의 소유권을 허락받은 것도 기적이지. 아마, 왕혈 시절에 우리와 인연을 귀히 여겨주신 덕분일 것이오.”
“….그 새끼가?”
그러니까, 알다르샥스 그 꼬맹이가 앞에서는 맹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깠다는 말이 아닌가? 그냥 보물도 아니고 수백 년 묵은 보물선 창고를 말 한마디로 홀랑 쳐먹었네?
“기다려봐요. 내가 내려가서 그놈 발톱이라도 뽑아올 테니까. 누가 누구 덕분에 짤뚱한 목도리 도마뱀에서 신수 폈는데 그걸 선을 그어? 아틀라헤바한테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금기의 저주 다음에는 드래곤의 원한이라도 씌울 참이오? 절대로 돈이 모자라서 은퇴 못하는 게 아니니 걱정마시오. 돈이라면 썩어날 정도로 벌었으니. 내가 배움이 부족한 사람은 아닌데, 골드가이저 상단에서 보물의 값으로 내민 전표에 얼마를 적어놨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벌었소.”
“그럼, 왜 은퇴 안 한다는 겁니까?”
“하하하하. 말하지 않았소? 배 타고 싶어서 그렇다고. 평생 배만 탄 놈들한테도 꿈이라는 게 있다, 이 말이오.”
에이버리는 손가락을 들어 비공정을 가리켰다. 선적을 위해 낮게 내려온 비공정은 예술품의 섬세함과 기계장치의 투박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며, 난간에 매달린 선원들은 그것을 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26년을 모래바다 위에서 지냈지. 어제와 오늘, 용과 신이 얽힌 신비의 바다도 갈라보았소. 모래와 물, 뱃놈으로서 양대 바다를 모두 갈랐다는 것도 평생 자랑할 만한 일인데, 이제 또 다른 바다가, 하늘바다가 우리 앞에 펼쳐지지 않았소? 그것도 떡하니 우리에게 손을 내밀면서.”
에이버리는 금박으로 장식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골드 가이저에서 온 채용 문서로 보였는데, 지형에 구애받지 않고 별자리를 보며 배를 모는 그들의 능력이 비공정에 꼭 필요하다 여긴 모양이었다.
‘하긴. 골드가이저는 내륙 운송에 치중한 상단이라 숙련된 선원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겠지. 더욱이 뮤트 수십 마리를 매달고도 꾸역꾸역 배를 몰아 떨쳐내는 것을 저 위에서 지켜봤으니 더욱 욕심이 날 수밖에.’
결국, 서로 뜻이 맞아서 이직했다는 뜻이다. 항사꾼에서 비공정 선원으로.
“당장은 길잡이 역할 뿐이지만 차차 배워나가야지. 새로운 배를 모는 법도, 하늘 바다를 가르는 법도.”
“잘됐네요.”
“잘되다마다. 뱃사람 중 처음으로 삼해(三海)위에서 운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오? 감히 뱃놈들 역사에 남을 인물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배는 어쩌실 겁니까.”
“….먼저 간 선원들은 걷는 것보다 배 위에서 줄 타는 게 더 익숙한 놈들이오. 걸어가면 남들보다 뒤쳐질 테니, 배도 같이 보내줘야지.”
에이버리 선장이 기울어진 사막 배의 키를 쓰다듬는 가운데, 짐을 싣던 선원 중 한 명이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선적이 끝났으니 옮겨 타라는 소리였다. 올려다보니 난간에 매달려 이쪽을 내려다보는 오트만과 노툼, 새것으로 보이는 수첩에 뭔가를 기록하는 이드라실이 보였다. 성기사들은 타고 온 배 중 멀쩡한 것에 올라 이미 내지를 향해 뱃머리를 돌린 뒤였다.
“닻 좀 올려주겠소? 돛은 내가 펴도록 하지.”
“혼자 되겠습니까?”
“선장이 설마 배 하나 못 다룰까. 보조 돛까지 펼칠 일도 없어서 별일 없소.”
드르르르륵-
펄럭!
-솨아아아
닻이 올라가고, 빈 배의 돛이 펼쳐지며 목재 선저가 모래 바다를 스치는 소리가 천천히 귓가에 내려앉았다.
바람 마법사들이 만들 길에 오른 선장이, 미리 기름을 뿌려둔 배 위에 횃불을 던졌다.
화르륵-
배는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혼자 할 수 있다더니. 돛 반도 안 펴셨는데요. 선원들 보기 안 부끄러우십니까?”
“보조 돛은 필요 없소. 이제 저 배는 앞으로만 나아가면 되니.”
잠시 떠나가는 배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선장은 이내 미련 없이 비공정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별이 밝아서 길 찾기 좋은 날이군. 어디로 가면 되겠소?”
“로드릭으로…. 아니, 눌락의 부족이 있는 곳으로 갑시다.”
“눌락이라.”
“받을 건 받아야죠.”
“아아. 거래를 했었지. 그쪽이야 얼마 안 걸릴 테고. 그 다음은?”
교수는 활활 타오르며 멀어져가는 배를 잠시 응시하고는, 몸을 돌렸다.
“북부로. 영구 동토의 땅으로 갈 겁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3월드의 끝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적도. 아군도. 떠나간 이들과 마지막 진실도.
모두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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