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52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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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웅-
“전 선원 위치로!”
“마법사, 성직자, 주술사, 기타 근처 대기 중의 마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들은 지정된 좌석으로 움직여 주십시오! 곧 공마석 노출도가 올라갑니다!”
“어이쿠쿠.”
“오트만님, 여기 계셨습니까?”
“아, 자네인가? 그래. 정리는 잘 했고?”
“예, 뭐. 전쟁통에 사람 잃은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일세. 특히, 자네처럼 객관화가 지나친 사람은.”
“새겨듣죠. 어디, 이쪽으로 가면 됩니까?”
“이쪽일세. 귀족 객실이 공마석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쪽에 모아둔다고 하더군.”
“….마법사님들이 말을 참 잘 듣네요? 뭐 약점이라도 잡았답니까?”
“으음…. 굳이 따지자면 이 비공정이겠지. 이게 마법사들 마음에 어지간히 들었는데, 저 사람들이 날뛰면 추락할 수 있다는 얘기에 얌전해지더군. 저들도 바람마법사가 다녀가면 온갖 물건이 부서지고 뒤죽박죽이 된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더군. 덕분에 알아서 조심하고 있지.”
“그것 참 다행이네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걸어가는 갈류드 노인이 ‘오옴…. 펠릭스님이 이걸 보셨어야 하거늘….’ 하면서 어린아이같이 흥분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들긴 한 모양이다.
선원의 인도를 따라 착착 움직인 마법사들이 각자 정해진 객실에 들어가고, 우리 객실에 먼저 와 있던 이드라실과 노툼이 창문가에 바싹 붙어 들뜬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을 무렵.
“전 인원 정위치 완료 확인했습니다! 비공정 ‘황금 들판’ 호, 상승! 상승! 상승!”
““상승!!!””
선장인지 기장인지 모를 누군가의 말과 비공정을 울리는 선원들의 말에, 비행기 처음 타는 애들처럼 창문에 붙어있던 노툼과 이드라실은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바닥에 최대한 몸을 붙이며 뭔가 고정될 만한 것, 그러니까 내 다리를 붙잡았다.
드드득, 드드드득! 덜컹 덜컹!
“그우우우, 으어어! 우어어어어어!”
“에히이, 노툼. 괜찮아 괜찮아.”
“교수, 당신의 관찰자인 제가 확신하건대 당신도 비공정에 타는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처음입니다. 그러므로, 방금 당신의 ‘괜찮다’는 언행에는 신빙성이 없습니다.”
“어, 어떻게…. 물이라도 조금 끌어모아 두는 게….?”
“안 떨어진다니까요. 지금 마법 쓰면 공마석 회로랑 오트만님의 마나랑 상충돼서 떨어질 확률이 높아질 겁니다.”
“그, 으으음…. 이, 이렇게 떨리는 게 맞나? 아무리 봐도 배가 부서질 것 같은데….”
“아마도? 저도 비공정은 처음 타보는 거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게 정상적인 과정이라는 것은 대충 객실을 보고 짐작하고 있었다.
바닥에 못 박아 둔 테이블과 의자. 마찬가지로 조금 투박해 보일 정도로 단단히 고정된 가구들도 그렇고. 귀족 객실이라고 했는데 벽에 딱 붙어있는 작은 그림을 제외하고는 찻잔도, 화병도, 기타 움직일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는 게 이 정도 진동은 상정하고 만든 것 같았거든.
‘148호라고 했지? 그 정도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보완할 만하지.’
역시 텔드랏의 황금가문. 비공정 잘 뽑았다. 비공정 선원들 말로는 아에드란의 집사가 120년 만에 처음 드러난 가문 창고의 바닥을 보고 목놓아 울었다고 수군거리던데, 과연 돈을 허투루 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부우우웅-
점차 심해지는 진동과 함께 공마석 특유의 보랏빛 발광이 선체를 휘감고, 선체에 내장된 최상급 마정석의 마력이 마도공학 회로를 따라 비공정 위를 푸른 그물처럼 내달렸다.
보랏빛 서광에 휩싸인 황금의 동체 위에 푸른 마나의 길이 거미줄처럼 내달리는 엄청난 광경.
누구라도, 이 모습을 보면 한 세대의 교체를 알리는 효시로서 가히 부족함이 없음에 동의할 것이다.
드드드드드드드드-
“떠, 떨어진다! 떨어지고 있네!”
“그우우오오오오오! 배, 배 간지럽다! 내장이 아래로 쏠린다!”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올라가는 겁니다.”
창밖에 펼쳐진 사막이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마력 엔진 특유의 둔탁한 울림과 함께 선체에 진동이 잦아들 무렵. 잠깐의 정적 속에 산발적으로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트만과 노툼, 심지어 이드라실마저 감격한 얼굴로 이륙에 성공한 비공정의 모습에 박수를 치고 있었다.
———
– 흥안만두 : 씨발 하느님!
– Jokass : 뜨…. 뜬다. 진짜 떴어.
– 뉴트리아지나 : 기능을 떠나서 좆간지다 진짜. 나도 어렸을 때 비행기 타는거 좋아했는데.
– 흥안만두 : 꿈이…. 꿈이 이루어졌어! 이제 저 비공정이 4월드로 넘어가기만 하면, 난 평생 발전기 거지로 살면서 GG만 하고 살 수도 있을거야! 박교수님이 남은 내 인생을 책임져주셨어어어어어!!!!
– DOOMgay : 진동만 보면 제법 탈 맛 나겠군.
– 간장게이바 : 이안 형님! 잠깐 나와봐! 벡스 형이 교수 비행기 탔다니까 거품물고 발작해!
– DOOMgay : 천류제한테 던져놔. 걔 사람 안 다치게 잘 재우더라.
———
우리 대화방은 말할 것도 없고, 커뮤니티에도 [결국 띄웠다.] , [특이점은 왔다.] 따위의 게시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기술 세대의 교체. 마도공학의 효시이며, 그 진가를 전 세계만방에 알릴 수 있는 전쟁이라는 무대까지.
텅텅텅!
“내빈분들은 지정된 위치에 대기하여 주십시오! 아직 비공정이 상승 중입니다!”
객실 밖에 울리는 선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교수는 달라붙은 두 이종족을 훌훌 털어버리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잠깐의 휴식.
이제 상승이 끝나면 기체가 안정될 것이고, 약간의 마나나 신성력 정도는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성 통신을 이용해 교단에 연락할 생각이었다.
‘현재 전선. 아군의 작전 진행 상황. 적의 규모와 동향. 새로 발견된 네임드, 혹은 에데오르나에 대한 관측 정보. 보급은 아에드란 가문에 들러서 확인하고. 제국에서 올 지원군의 통수권 문제로 설득해야 할 귀족들, 그들 중 광명이나 자비의 신도가 있는지도 확인하고, 육로 교통이랑 별개로 항공로가 열렸으니까…. 기름 마법사로 영구동토를 녹여서…. 번영의 신위를 차지했다면 전쟁이 소모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정리해줘?]‘아서라. 이건 넓게 흩뿌려놓고 잡히는 것부터 하나씩 다 처리해야 돼. 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사고 나는 거라.’
잠깐 떠올린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 생각해둬야 할 게 산더미였다.
전쟁에서 지휘관의 머리는 밥 먹고 똥 싸는 시간에도 한계까지 돌아가니,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둬야 하는 법.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라.”
“그웍?”
“그냥. 어디서 들었던 게 생각나서.”
교수는 창밖에 멀어져가는 사막을 보며 눈을 감았다. 이제 눈을 뜨면, 당분간은 딴생각할 여유도 없이 바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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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탄다.”
“예?”
“우리는 대지의 정(精)과 생을 나누는 이들이다. 살라딘 그대는 전사라서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출렁!
“나 마법삽니다. 수계. 물박이. 나도 저거 타고 아무 일 없었다니까? 우리 수계 마법사들도 다~ 타고, 바람 마법사들은 아예 평생 저기 살고 싶다고 했다니까? 왜 안됩니까, 왜?”
“크흐음, 전사의 육체에 지식의 정(精)을 담다니, 과연 로드께서 인정하신 초인이로고….”
“그래! 초인! 위버맨쉬! 댁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 창조주도 인정한 구세의 초인이라니까? 그러니까 고집들 피우지 말고, 싸게 타고 갑시다! 예?”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하늘에는 비바람이 불지 않나? 원래 당신들의 영역이지. 하지만 우리는 평생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할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다. 지지대도, 받침도, 털끝 하나 대지와 닿아있지 않은 저 불경한 배 위에 오르는 순간 우리는 대지와의 연결을 잃고 시름시름 앓다 모래처럼 부서지겠지.”
“아이고, 답답해서 진짜! 눌락! 이봐! 이 사람들 당신 부하 아냐? 어떻게 좀…. 해볼 수 없나?”
“우움, 쩝, 글쎄요…. 이봐, 게르마탈. 이 눌락이 부탁해도 안 되겠나? 이 교수라는 친구가 사정이 급해서 빨리 가야 한다는데.”
“….당신에게는 우리 일족 전체의 목숨을 구함받은 적이 있으니 명령이라면 따르겠다. 허나, 그 명령이 당신이 구한 모두를 죽이는 명령이라는 것은 알고 내려야 할 것이다.”
오독, 오독, 쩝! 쫘압!
“그렇다는군? 어떻게, 저들의 시체라도 좋으면 승선하라고 명령해드릴까? 미리 말하는데, 사람은 죽으면 고기야. 먹지도 못하는.”
“아오, 진짜!”
이곳은 눌락이 다스리는 곳. 그의 부족이 위치한 곳이었다.
비공정은 내 생각보다 빨랐고, 나는 내 생각보다 피곤했으며. 덕분에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자버린 나는 깨자마자 신성 통신을 하겠다는 기존의 계획을 취소해야 했다. 당장 밖에 그 투실투실한 살덩어리 재주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거든.
‘카-하하하하! 이거 미안하게 됐네, 살라딘! 자네도 남들 위에 서는 사람인 만큼 이해하겠지? 사지에 빠진 아군을 구하겠다고 남은 전부를 유사 아가리에 쳐넣는 일은 이끄는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니까 말이야!’
‘….이해 못 한다면?’
쿠당탕탕-
넙죽!
‘죽을 죄를 지었소. 나름 사막을 읽는 주술사 나부랭이로서 당신께서 어떤 일을 하고, 무엇과 싸웠으며, 어떤 존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는지 별빛을 통해 모두 지켜보았소. 아랫것들을 귀히 여기는 이 눌락의 목 하나로 만족해주시오.’
뭐랄까…. 진짜 난놈은 난놈이다 싶었다. 지난번과 같이 호탕하게 우릴 맞이하는 놈의 모습에서 괜히 락샤샤와 같이 놈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 좀 퉁명스럽게 받아쳤더니, 바로 투실투실한 몸을 던져 내 앞에 납작 엎드렸는데, 흐물흐물한 몸이 바닥에 푹 퍼지는 게 쌀주머니를 굴려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도 이해는 한다. 당시 상황은 누가 봐도 양패구상, 카울라디를 쓰러트렸지만 그 대가로 사상 최대규모의 금기가 나를 목표로 했으니 지도자로서는 거기 얽힌 나와 내 일행을 냉큼 던져놓고 유사의 범위에서 빠져나가는 게 옳은 선택이지.
하지만…. 그 유사에서 저 많은 함대를 데리고 빠져나갔다는 것은 눌락이 가진 주술의 힘이 그와 함께한 연합선단 전체를 움직일 만큼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만약 눌락이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해주었다면. 그 대단한 주술의 힘을 보태 주었다면 지금과 다른 미래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가시처럼 불쾌한 감정이 비죽 튀어나왔지만.
“로드!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전부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아아아!!! 여기서, 교수 님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티끌만큼이라도 반응한다면 맹세컨대 이 눌락의 이름으로 삼족을 갈기갈기 찢어 도마뱀 밥으로 던져줄 것이야! 눈 감고 귀 닫아!! 명령이다아악!!!!”
“로드….”
“너 사형! 끌고 가!”
“안됩니다! 이, 이것 놔라! 로드께서, 우리 위대한 사막의 눌락께서어어어–”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지고도 내 앞에 목을 쭉 빼놓고는 자기 하나로 용서해 달라는 눌락의 모습이나, 부하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일체 반응하지 말 것을 명령하는 저 단호한 태도나, 무엇보다 그렇게 장렬하게 제 목숨을 내놓은 주제에 살에 묻힌 투실투실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사, 살려주시옵소서 전하….’ 같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내보내는 점이나.
———
– 홀리 : 병신같지만 멋있어요…
– 하이웨이나초맨 : 병신같지만 멋있어.
– 노루Drug해요 : 여러모로 푸짐한게 인품까지 10인분이네.
– Jokass : 쟤도 따로 퀘스트라인 있을 것 같지 않냐? 여러모로 캐릭터 확실한데?
———
….그래. 딱 저 느낌이다. 밉상인데 묘하게 호감 가는 새끼.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악의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게 잘못된 선택도 아닌 데다가 내가 탓하기 전에 미리 책임을 무는 자세까지.
‘….죽여서 뭐하겠어.’
벌떡!
‘으하하하! 그렇지요! 이 눌락이 말로는 죽을 죄를 지었다고 했지만 진짜 죽을만한 일은 아니었지요! 어이! 아까 끌고 간 놈 도로 데려와서 술이나 한잔 먹여라! 가족들도 잡으러 갔을 테니 그쪽도 도로 불러오고! 가장 빠른 도마뱀으로 출발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너 진짜….’
‘위대한 존재의 말에는 무게가 실리는 법! 자각 못 하고 계신 듯한데, 한번 내뱉은 말을 무르는 게 쉽지 않으실 겁니다! 애초에 그런 분도 아니신 것 같고! 잘, 아주 자알 선택하셨습니다! 이 눌락은 죽으면 비곗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살면 사막의 황제 아닙니까? 으하하하하하하하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연회를 준비했으니 가서 식사부터 하시지요! 저도 간만에 땀을 좀 흘렸더니 배가 고파서!’
‘아니, 야-’
‘여봐라! 늘 그렇듯, 가장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라! 너희들은 오늘 두 손으로 사막의 금기를 종결시킨 분을 모시게 될 것이다! 카하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
얘 죽여봐야 뭐가 나오겠나, 싶어서 살려줬더니 벼룩처럼 제 가마 위로 튀어 오르더니 그대로 잔치를 열어버렸다.
그 뒤로는 뭐. 진수성찬에 금은보화, 여리여리한 사막의 무희들이 몰려나와 선원들과 상인들을 녹여버렸고. 사막에 들어온 뒤로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한 우리 일행도 긴장을 놓고 여유를 즐겼으며.
‘카-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 네가 저 하늘을 나는 배를 만든 사람이라지?’
‘핫핫핫핫핫핫핫핫! 아주 특이한 체계를 가진 힘을 다루던데, 그 배 위에 새겨진 게 주술인가? 만져봐도 되나?’
‘으하하하하하! 그럼 그럼! 나와 내 적들의 가죽으로 만든 [기아의 북]은 이 눌락의 가장 큰 힘이자 자랑거리이지!’
‘핫핫핫핫핫핫! 이거 굉장하군! 구조가 어떻게 되는 건지 배워보고 싶은데!’
‘여기 살면서 나도 저거 한 대 만들어주면 가르쳐주지!’
‘핫핫핫핫핫핫! 도둑놈이군!’
‘으하하하하하하하하! 교수님만 아니면 지금 목을 쳤을 텐데!!’
몰래 기어 나온 로만과 눌락은 죽이 맞아서 놀고 있었다. 그 사이에 끼어 기존의 계약 대금인 기름 마법사들은 물론 목숨값으로 비공정을 가득 채워달라고 하기도 하고, 호탕하게 그러겠다고 호언장담한 눌락이 비공정의 실제 선적량을 확인하고 웃는 얼굴 그대로 쩍 하고 굳어버리는 것도 보고.
즐겁고, 유쾌하고, 짭짤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기름법사, 대지의 정(精)을 사용하는 사막의 대지 마법사들과 만나서 이제 떠나려는데…. 이놈들이 못 가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죽어도 비공정 못 타겠단다.
“갑시다!”
“걸어가겠다!”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뛰어가겠다!”
“아니, 높은 데가 왜 싫은데! 등산 정도는 한다면서! 거기도 높잖아!”
“그래서 높은 땅을 오를 때는 네발로 기어 올라가지!”
———
– Jokass : 포기해라. 대지 법사는 전부 중증 고소공포증 환자라더라. 저렇게 말해도 진짜 중요한 일 아니면 산에도 잘 안 올라갈걸?
– 뉴트리아지나 : 알아봤는데 쟤들은 건물 2층에도 안올라간대. 그거 못봤어? 대지 마법사의 마탑.
– Jokass : 아, 그 원판?
– 뉴트리아지나 : ㅇㅇ
– professor : 원판? 나도 보여줘봐.
– 뉴트리아지나 : [첨부 : ‘지렁이들이 꼴에 탑이라고 부르는 거.’] 보면 너도 바로 이해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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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설득할 방법이 없나 해서 커뮤니티 쪽에 지원사격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것은 절대 설득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뿐이었다.
뉴트리아가 보내준 사진. 대지 마법사들이 그들의 ‘마탑’ 이라고 부르는 것의 이미지는 여러 다른 지역에서 찍은 스크린샷 같았는데,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저게 마탑?’
외딴 암벽지대 같은 곳이 돌로 지어진 건물. 별명처럼 둥근 원판 형태로 아주 널찍- 하게 지어진 1층짜리 원형 건물이었다. 땅에서 발을 떼기 싫어서 아예 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건물을 지어놓고 저들끼리 ‘마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걸음걸이도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게 발을 끌 듯 이동하고 있었다. 이 검정 대머리의 모든 행동이 그가 대지와 한 몸이라는 것을 공표하고 있는 듯했다.
‘….돌겠네, 진짜.’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기름 마법사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꺼지지 않는 불’을 이용한 광역 제압? 그거야 원조 불박이 화염 마법사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저들의 진짜 가치는 북부, 영구동토로 향하는 길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압도적인 ‘비전투 손실’을 줄여주는 데 있었다.
‘사실상 두 발 달린 원전인 동시에 정유 공장이나 마찬가지니까. 기름 뽑고, 정제해서 뱉어내는 인간. 그게 기름 법사의 진짜 가치지.’
북부는 춥다. 침을 뱉으면 얼어붙은 침이 데굴데굴 굴러가고, 소변을 볼 때도 힘주어 빠르게 끊지 않으면 얼어붙은 소변이 타고 올라와 다소 끔찍한 일을 당하기 십상인 동네다. 괜히 영구동토의 대지라 부르는 게 아니란 말이다.
하물며 인간 연합군의 주력은 기사와 보병. 전부 쇳덩어리 갑옷을 입고 쇳덩어리 무기를 휘두르는 사람들인데 그 상태 그대로 북부에 간다?
취성이 높아져서 무기고 갑옷이고 잘 깨지는 것은 둘째치고, 꽝꽝 얼어붙은 체인 메일이 그대로 피부를 찢어발기는 톱니가 되어 야들야들한 맨살을 반겨줄 것이다.
금속 위주의 무장. 이게 북부 정벌 최대의 난관이고, 비축된 갑옷을 전량 녹여서 솜과 비단, 기타 질긴 소재로 만든 북부용 갑옷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당연히, 기존 보급체계를 싹 갈아엎어야 하는 만큼 안 그래도 바짝 말라붙은 숨통을 더욱 쥐어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기름법사 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런 과정을 대폭 완화시켜 줄 수 있다. 저 기름은 그래도 마법의 정수라, 저들의 의지로 컨트롤 되기 때문이다.
꺼지지 않는 불로 따듯한 길과 숙영지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사람한테 끼얹고 불을 붙여도 사람은 타지 않고 기름만 탄다.
‘문자 그대로 불타는 기사단의 돌격을 볼 수 있는 것이지. 따로 새 장비를 지급하지 않고 기존 갑옷을 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덕분에 보급은 안정되고, 그것은 소모전과 장기전으로 이어질 북부 정벌에 있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니까, 이 새끼들은 꼭 데려가야 한다. 전장으로, 대가리가 굳은 기사가 가득한 지휘관 막사로. 제 눈으로 보지 않으면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 기사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려면 적어도 한 명 정도는 나랑 같이 로드릭으로 날아가야 한다. 가서 내 몸에 기름 끼얹고 불붙여줄 놈이 필요하다고.
“….뛰어오면, 얼마나 걸릴지….?”
“걱정말라. 평생을 대지와 함께하는 우리의 걸음은 범인의 그것과 다르니. 지금 당장 출발하면….”
“출발하면?”
“당신이 표시한 내지의 국가까지, 20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죽여버리고 싶다 진짜.
비공정으로는 5일이면 도착할 거리를 20일로 늘려놓고는 자랑스럽다는 듯 웃는 저 면상을 부숴버리고 싶다.
그래, 그래도 20일이면 어떻게 하지. 나도 쟤들 말고 할 일 많으니까, 조금 준비를 느긋하고 섬세하게 한다 치면 기다리면서 다른 일 다- 정리하고, 그딴 계획 못 믿겠다고 뻗대는 지휘관 놈들은 성자님의 신성하고 강맹한 포교 활동으로 설득하면 어떻게 될 수 있으니까. 20일 정도면 기다려줄 만하지.
하지만. 장담하건대 저 빡빡이 마법사들끼리는 절대 20일 안에 로드릭 근처에도 못 간다.
왜냐? 저놈들은 사막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막 토착민들이거든. 보나 마나 사막처럼 목적지를 향해 쭈욱- 직선으로 걷는 것만 계산했겠지. 사막은 장애물 같은 게 별로 없고, 적대적인 부족 지역은 약간 돌아가면 되니까.
하지만 내지는 다르단 말이다. 국가가 있고, 국경이 빈틈없이 펼쳐져 있고, 그 안에서 또 무수히 많은 영지가 나뉘어 있으며 각자 다른 목소리로 꽥꽥 떠들어대는 게 우리 내지 사람들이다.
시커먼 빡빡이 마법사들이 축지법 쓰면서 자기 영지 가로지르는 데 관심 가지지 않을 영주가 어디 있을까. 보나 마나 털어먹을 거 없나, 위험한 놈들은 아닌가 기웃거리며 간 보겠지. 바위처럼 대쪽같은 빡빡이 들은 귀족이고 나발이고 우리 길 간다- 할 것이고. 그러다 꼴받은 귀족이랑 싸우고. 마법 쓰고. 외교 문제로 번지고. 감금, 납치, 원한, 흑화, 도착 지연됨, 도착 지연됨, 도착 지연됨, 도착 지연됨, 도착 지연됨….
20일? 저놈들끼리 오라고 해놓고 로드릭 가서 일 보고 있으면 10년이 걸려도 도착 못 할 거다.
‘절대 저놈들끼리 보내선 안 돼. 어떻게 한다. 어떻게 하면, 한시가 바쁜 일정을 지연시키지 않으면서 저 빡빡이 기름쟁이들을 로드릭으로 납치해갈 수 있을까….’
“말은?”
“우리가 말보다 빠르다.”
“마차는?”
“두 다리가 땅에 붙어있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불가하다.”
“그럼, 땅에 붙어있기만 하면 되는 거지?”
“음.”
문득, 다소 거칠게 저들을 재워서 납치할 생각으로 넘어갈 즈음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땅을 스치듯 발을 떼지 않는 움직임.
말보다 빠르다 자부하는 질주 속도.
마법사는 해당 속성과 물아일체가 되는 존재이며, 그것을 증명하듯 물 속에서 쉬이 질식하지 않는 수계 마법사.
‘그럼, 대지 마법사도 비슷하지 않을까?’
“오….”
그럴듯해. 매우 그럴듯해.
“당신…. 게르마탈이라고 했나?”
“그렇다. 내가 우리 대지의 부족을 대표한다.”
“좋아. 내가 방금 우리 둘 모두가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거든? 여행이 조금, 어…. 거칠어져도, 괜찮지?”
“우리의 계율만 지켜진다면, 물론. 눌락 님에게 진 부족 전원의 목숨 빚을 갚는 일이다. 전쟁터로 향하는 마당에 여행이 고되다고 탓할 일은 아니지.”
“그으래~?”
교수는 기름 마법사들의 수장, 게르마탈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환히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광명 교단의 성기사들이 언제 어디서나 이단을 포박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튼튼한 밧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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