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53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4)
****
“남작님, 햇볕이 뜨겁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허허. 텔드랏의 영주로서 뜨거운 햇볕을 싫어해서야 되겠는가? 저 햇살이야말로 밀을 영글게 하는 일등 공신인 것을. 올해도 밀이 풍년이겠어. 왕실에서 전쟁 지원 명목으로 밀 수확량에 대한 세율을 많이 올렸다지?”
“걱정 마십시오. 토지별로 군데군데 일찍 심어둔 밀이 있으니 감사관이 오기 전에 남작님의 창고를 그득하게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관이 올 때쯤에는 다른 밀들이 고개를 숙여 빈자리를 가려줄 테지요. 예년과 같습니다.”
“내가 이래서 총관을 참 좋아해. 셋째 아들은 잘 크는가?”
“남작님의 관심 덕분입니다. 보내주신 선물 덕분에 셋째 앞으로도 땅을 조금 구입해놨습니다.”
“잘했네, 잘했어. 이곳 텔드랏에서는 금은보화보다 땅이야 땅. 혹시 안 팔겠다고 어깃장 놓는 놈들이 있으면 말만 하게. 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관을 위해 그 정도 힘도 못 써주겠나?”
“하하하하하하 역시 남작님은 모시는 보람이 하하하하하하.”
“허허허허허허 자네 같은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수도에 내 자리가 허허허허허허.”
텔드랏 외곽, 칼라샨 영지. 뜨거운 햇볕 아래 익어가는 밀과 함께 영주와 총관의 뒷주머니도 두둑하게 영글어가는 중이었다.
칼라샨의 영주는 요즘 하는 일마다 썩 잘 풀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듣도 보도 못한 종족과의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했고, 반년도 안 돼서 로드릭이 멸망했다는 소식에 이제 다음 차례구나, 하고 비밀통로에 마차 한 대 분량의 금은보화를 그득히 쌓아둔 적도 있으나.
전선은 로드릭 끝자락에서 고착되었고, 텔드랏은 군량 거래로 로드릭 왕실의 재산부터 국보, 심지어 토지 일부까지 박박 긁어와 크게 이득을 봤으며, 당연히 곡물을 재배하는 그의 영지도 한 재산 두둑이 챙긴 것은 물론이었다.
그뿐인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동의 아에드란, 황금 가문이 상단을 모두 정리하고 휘청이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상인들의 경쟁도 치열해지며 곡물의 생산자인 그에게 들어오는 ‘성의’도 훌쩍 늘어났다. 심지어, 최근에는 그 ‘광명의 성자’, 텔드랏에서 ‘엠페리스 메이커’라 불리는 그자가 방문해 성심성의껏 대접하고 제국에 잘 말해주겠다는 확언까지 듣지 않았던가?
오늘 아침에는 최근에 허둥지둥 그의 영지를 지나 사막으로 향한 성기사들이 반쯤 박살난 사막 배를 타고 복귀하는 일도 있었다. 혹시나 그의 인맥이 되어줄 성자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표정이 그리 어둡지 않은 것을 보니 줄어든 인원수와는 별개로 일이 잘 풀린 것 같았다.
“그레고리우스였나? 그 성기사의 부탁은 들어주었겠지?”
“예. 텔드랏에서 벽화로 유명한 자를 찾아 달라기에 따로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뭔가 횡설수설하길래 술을 좀 주고 내빈관에 머물게 했습니다. 떠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성자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 그래. 성자와 연결고리가 생겼으니 교단 쪽 인맥도 잘 관리해야 할 것이네. 돈의 흐름도, 권력의 흐름도 모두 나에게로 오고 있음이야. 흐으음…. 총관?”
“예, 남작님.”
“흔히들 인생에 딱 세 번의 큰 기회가 찾아온다고들 하지. 아무래도, 올해가 바로 그 순간인 것 같군. 성자가 허언을 입에 담을 리 없으니 우리 딸애는 제국으로 시집을 갈 것이네. 제국 귀족과 혈연이 생기면 그쪽으로 향하는 상로를 구축하기도 쉽겠지.”
“상단을…. 만드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지금까지는 골드 가이저가 거의 모든 상권을 틀어쥐고 있어서 어림도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지. 그들이 쓰러진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네. 이번 기회에 우리도 텔드랏 변방의 그저 그런 영지가 아니라, 텔드랏의 황금 가문들 중 하나로 우뚝 서는 것이야! 텔드랏의 중심은 언제나 가장 돈이 많은 가문이니!”
영주로서 그리 야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큼지막한 기회가 눈앞에서 살랑거리는데 손을 뻗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병신이 아닌가?
그래서 평소에는 오지도 않는 영지 시찰을 나선 참이었다. 사막의 모래 바람을 막기 위해 높게 지어진 성벽에 오르니 그의 영지가 한눈에 보이는 게, 중년의 웅심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휘우우웅-
사막의 뜨거운 바람이 땀에 젖은 그의 머리칼을 넘겼다.
“바람이 부는구나. 황금의 바람이.”
“예. 남작님.”
평소에는 싫어하던 모래 냄새 섞인 바람이었지만, 지금은 그의 머리칼과 옷을 휘날리는 이 바람마저 장대한 서사시의 시작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아주 잠깐은.
휘우우우우웅-!
“크음….”
“오늘따라 바람이 유난히 거세군요.”
“그러게 말일세. 이 계절에 모래 폭풍이 영지까지 넘어오지는 않는데….”
후우우웅!
“내, 내려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태풍이라도 부는 건가? 분명 이렇게 햇볕이 쨍쨍한….?”
부우우우우우-
선선하게 머리를 젖히던 바람은 곧 모래 섞인 바람으로, 몸이 휘청일 정도의 사나운 바람으로 바뀌었으며, 이상하게 고막을 울리는 진동음과 함께 그의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위를 올려다본 총관과 영주는 성벽에 매달린 상태 그대로 쩍 하고 굳어버렸다.
부우우우우우우우-!!!!
콰아아아아아!
저 먼 하늘에서 내려오며 천천히 그 몸집을 불려가는 거대한 배. 보랏빛 서광과 푸른 인공 조명에 휩싸인 신비한 모습과, 그 황금빛 배의 밑바닥에 새겨져 우러러보는 이들 모두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골드 가이저 상단의 직인.
“배, 배가…. 하늘을 날아?”
텔드랏 왕실과 고위 귀족들은 이미 아에드란 가문에서 비공정이 나왔을 때부터 난리가 나 있었지만, 아직 모습을 선보인 지 24시간이 채 안 된 터라 변방인 칼라샨의 영주에게까지는 소문이 퍼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영주와 총관이 하늘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두두두두두두두두-
콰가가가가가가각!
배가 가로지른 경로를 따라 모래 바다에 자욱한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이 빠져 영지를 가로지르는 비공정을 올려다보던 두 사람은 그 먼지가 칼라샨 영지 지척에 왔을 때야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 영주님! 뭔가 또…. 또 옵니다!”
“무, 무슨…. 설마 저런 게 한 대 더 있다고?”
“아닙니다! 이, 일단은 사막 배 같은데….”
총관의 말에 영주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먼지가 자욱한 사막을 내려다보았다.
충격적인 비공정의 외관과 달리 아담한, 사막 배 중에서도 큰 배의 구명정이나 선적용으로 쓰이는 돛 하나짜리 작은 배의 모습. 사막에 인접한 영지를 가진 영주로서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긴 한데, 그래서 더 생소했다.
작은 배, 심지어 돛이 부러진 작은 구명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
배 위에 앉은 남자가 노를 저을 때마다 구름처럼 자욱하게 휘날리는 모래.
그리고, 먼발치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인간의 비명 소리. 배가 앞으로 쭉쭉 나갈 때마다 모래 바다 위로 튕겨져 오르는, 배 뒤쪽에 매달린 수십 개의 검은 덩어리.
앞선 비행체가 충격이었다면, 이쪽은 명백한 공포다.
“겨, 경종을 울려라, 다, 당장!”
“늦었습니다, 영주님! 벌써 ‘저것’이 모래 바다와 내지의 접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마차! 피신용 마차는 아직 그 자리에 있겠지!”
영주는 성벽 아래의 경비대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총관과 함께 서둘러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 충성스러운 경비대가 빨리 대처한 덕분에 성문은 닫혀있었다.
….꿀꺽.
영주도, 경비대도 움직임을 멈춘 채 굳게 닫힌 성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약간 저는 듯, 절뚝이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시체를 끌 듯 무언가 묵직한 것을 질질 끌고 오는 소리. 그리고,
쿵쿵쿵!
문에 가로막힌 그것이, 문 너머의 존재를 부르는 소리.
“계십…. 크악, 카앍, 퉤! 니까….”
“누, 누구냐! 이이이이곳은 카,칼라샨 영지이며…. 위, 위대한 용기의 신 데카즈께서 가호하시는….”
“서…. 캑, 캐핵, 성자….”
“으아아악! 사막의 악마가 성자를 찾아서 우리 영지에 쳐들어왔다!”
“성자님은 여기 없어! 이미 사막으로 가신 지 오래라고!”
“성기사들을 저렇게 만든 게 저거였나 봐!”
“히이이익!”
성벽을 두드리는 그것의 목소리는, 유부에서 올라온 듯 메마르고 거칠기 짝이 없었다.
칼라샨 영주의 가슴을 울리던 사나이의 웅심은 깡그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망한 줄 알았던 황금 가문의 인장이 떡하니 찍힌 하늘을 나는 배.
그리고, 사막에서 기어 올라온 무시무시한 악마.
‘여, 영지 밖은 위험해. 나, 나 따위가 나설 세상이 아니야….!’
영주는, 조상님들이 왜 이렇게 외진 영지에 터를 잡고 수십 년이나 쥐죽은 듯 살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
케헥, 콜록콜록!
“아우, 먼지야. 마스크 같은 거라도 좀 쓰고 운전할걸. 그나저나 얘들은 왜 대낮에 성문을 닫아 놓은 거야? 비공정 때문에 놀랐나?”
푸르르륵!
세차게 얼굴을 흔들었더니 코와 귀에서 모래가 한 주먹은 쏟아져나왔다. 눌락 영지부터 칼라샨 영지까지는 가까워서 물도 안 챙겨왔는데, 사막처럼 바싹 말라붙은 목 상태를 보니 영 후회가 되었다.
물론, 내 작은 배의 ‘승객’ 들에 비하면 몇 배는 상태가 좋았지만.
그들은 칠공으로 모래를 쏟아내고 있었다.
“어이, 승객분들? 좀 괜찮으신가?”
“으으으으…. 과연 한 신앙의 첨단에 오른 전사의 고련은 궤를 달리 하는…. 콜록!”
“사, 살려달라! 우, 우리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겠다!”
“마학에 처음 입문하던 때가 떠오르는구나….”
“이야, 진짜 하나도 안 다치셨네. 멀미야 뭐, 텔드랏은 땅이 좋다니까. 푹푹 파묻어두면 다 낫겠지 뭐.”
내가 선택한 방법. 일정은 바쁘고, 비공정은 못 타고, 저들끼리 보냈다간 전쟁 끝날 때까지 로드릭에 도착하지 못할 기름 법사들을 로드릭에 데려다 놓는 방법은 별 게 아니었다.
‘말보다 더 빠르고, 성자를 넘어 추기경이라는 하이패스를 휘두를 수 있는 내가 끌고 다니면 되는 거 아닌가?’
정말, 지극히 단순한 방법.
사실 제일 처음 생각한 방법이긴 한데, 마차도 못 탄다는 말에 접어버린 생각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인간들은 저렇게 발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 말보다 빨리 달린다는데, 그럼에도 발 가죽이 다 벗겨지지 않고 멀쩡하다는 것은 분명 마법적인 작용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나?
마침 배경도 사막이고, 끌고 가는 이미지에서 구시대 서부 영화가 떠오른 터라 당장 실험해봤다.
그 호탕한 눌락마저 충격에 식사를 멈출만한 광경을 연출한 끝에 대지 마법사들이 ‘땅에 긁히는 것으로는 그 어떤 상처도 입지 않는다.’ 라는 놀라운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고.
그렇게, 비공정을 먼저 보낸 뒤 폭풍처럼 노를 저어 처음 텔드랏에서 방문했던 칼라샨 영지로 돌아온 참이었다.
“꼭…. 꼭 이런 식이어야만 했나.”
“아니 뭐. 게르마탈 당신이나 다른 부족민들 중에 이것보다 더 빨리 이동할 수 있는 방법 있으면, 적극 채용하고요.”
“그…. 이것보다는 조금 느리겠지만, 조금 더 인간적인 방법이….”
“교단도, 로드릭도 지금 전쟁 중입니다. 누군가의 체면과 지금 이 순간에도 허무하게 뮤트의 발톱과 이빨에 찢겨나가는 목숨. 그 둘을 저울추에 올렸을 때 어느 쪽으로 기우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부족 전원의 목숨 빚을 갚기 위함이니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하셨는데…. 사막의 대지 마법사들이 남의 목숨보다 제 체면을 귀하게 여기는 그런 인간이라면 눌락이 사람을 잘못 소개해줬군요.”
“….내가 실언을 했다.”
살짝 튀어오르던 마법사들의 반발심은 내 진지한 말투에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어딜 빠져나가려고.
“그 사과는,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이동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아들어도 되겠지요?”
“….사막은 모래뿐이었으나, 내지는 집과 건물, 나무가 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대지의 일부로서 그것과 적대할 수 없는 존재일 뿐.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이동하나 나무 둥치에 충돌하기라도 한다면-”
“하하. 제가 그것도 생각 안 했겠습니까.”
“역시, 지혜로운-”
“땅에 묻어서 쟁기처럼 끌고 갈 겁니다. 안전하게.”
“….대지여 맙소사.”
게르마탈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의 끔찍한 상상력에 그의 바위 같은 부동심이 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
– 노루Drug해요 : 로 하람 맙소사. 쟤가 원래 저런 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 흥안만두 : 도대체 GG는 무슨 괴물을 만들어 버린 것인가.
– 남바쓰리 : 슬슬 형님이 출소하시는 것을 응원하는 게 우리 세상에 바람직한 일인지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은뎁쇼.
– 골드만SUCKS : 나는 저놈이 저대로 안에 남아있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본다.
– Jokass : 아니, 아재요! 안 죽었어?
– 흥안만두 : 비공정 떴을 때 이미 홧병으로 뒈진 줄 알았는데!
– 골드만SUCKS : 아주 뒈지라고 고사를 지내라 이놈들아. 밖에 완전히 새 시장이 열렸는데 바쁜 게 당연하지 않나. 변종 부산물 시장 때문에 바깥 관리한다고 잠도 쪼개서 자다가 겨우 좀 쉬는 거다. 암시장 주인이 나랑 동년배라 그런지 말이 좀 통하더군.
– Jokass : 아, 우진 영감님? 그 인간 개빡쎄지 않음?
– 골드만SUCKS : 말도 마라. 슬슬 간이나 좀 보려고 했더니 ‘가격을 후려치는 것도 어쨌든 후려치는 것이니, 폭력에 대한 정당방위로 네놈을 쏴죽이겠다.’ 같은 소리를 하던데?
– Jokass : 그거 진담일걸. 전에 암시장 먹겠다고 양아치 몇이 몰려왔을 때 영감님 휠체어가 막 철컥철컥 하더니 기관 단총이랑 미니 로켓 같은 게 튀어나오더라고.
– 골드만SUCKS : 내 진즉에 알아봤지. 눈이 맛이 가 있더만. 아무튼, 간만에 들어왔는데 그…. 저걸 진짜로 띄워버렸군.
– 노루Drug해요 : 흐흐흐흐, 영감님도 가챠 중독에 빠져서 수십억 쏟아붓지 않았어? 소감이 어때?
– 골드만SUCKS : 씨발 좆같네.
– 홀리 : 이야.
– 흥안만두 : 역시 배운 사람답게 소감도 명문이네.
– 노루Drug해요 : ‘씨발 좆같네’ 다섯 글자로 현판 하나 만들어서 장사하는데 앞에 걸어 놓아도 될 듯.
– 골드만SUCKS : 퇴직금으로 복권 수천만 원어치 샀는데, 같이 가서 한 장만 산 놈이 1등 당첨되는 걸 보는 기분이군. 허탈하고 열 받다가도, 저기 저 미친놈 지랄하는 걸 보면 ‘아, 저렇게까지 안 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젠 수긍이 되기도 하고, 그런다.
– Jokass : 득도하셨네.
– 골드만SUCKS :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나도 돈은 저만큼 있었어. 저 돈잡아먹는 귀신이 성공할 때까지 밀어붙일 배짱과 믿음이 없었을 뿐이지. 황금빛 배 밑에 골드가이저 인장이 떡- 하고 박혀있는걸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졌다 씨발.’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 염병할.
– Jokass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노루Drug해요 : 이상, 패배자의 변명이었습니다.
– 골드만SUCKS : 애미
– 흥안만두 :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커뮤니티에 대한 배움이 날로 일취월장이십니다 노인장.
———
“골드만 저 인간 이번에는 진짜 쓰러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해탈 해버렸네.”
역시 제 손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답게 범속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늦은 나이에 젊은이들이랑 잘 어울리는 것도 참 보기 좋고. 우진 영감님은 이런 거 낯설어서 힘들다고 하시던데.
“그나저나 이놈들은 왜 이렇게 문을 안 여는 거야?”
“….문제가 있는 듯한데. 가서 보고와도 되겠나.”
“아, 게르마탈? 그게 가능합니까?”
“성문이 땅 속으로 깊어봐야 얼마나 깊을까.”
어디까지나 구속이 아니라 안전벨트, 좌석과 같은 역할을 하던 밧줄을 훌훌 풀어버린 대지 마법사의 수장은 스르륵 땅속으로 가라앉더니, 성문 안쪽의 광경을 슥 둘러보고 돌아왔다.
“….역시 범죄자였군?”
“예?”
게르마탈은 성문 안쪽에 잔뜩 모여든 병사들과 실시간으로 세워지는 뾰족한 목책을 보고 역시 짐작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살라딘은 광명의 그 어떤 주교들보다도 위대한 성자다-]에서
[살라딘은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영지 병력이 총출동할 정도의 범죄자다-]라는 명제로 넘어오니,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던 괴리감에서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더, 더 이상 영지에 위협을 가, 가하면…. 성기사들을 불러오겠다! 그, 그러니 네가 태어난 구멍으로 되돌아가라, 사막의 악마여!”
화룡점정처럼, 겁에 질린 경비대의 목소리가 성문 사이로 흘러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