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60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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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진짜야.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거라고.”
낄낄낄낄. 아이고, 참. 사람이 다 제각각이라고 해도, 가만보면 거기서 거기라니까.
아아, 저 표정. 진짜 오랜만이다. 내가 슬그머니 떠오른 이 생각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정하려 했을 때, 딱 저런 표정이었는데.
‘그땐 그랬지….’
누구나 한 번 쯤은 가족의 마지막을 상상한 적이 있다. 나도 있었고.
[아, 그 기억 봤어. 꽤나 거창했지?]‘그땐 감수성이 풍부했으니까.’
병상에 누워있는 가족. 뼈처럼 마른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눈물을 흘리는 나. 떨리는 목소리로 유언과 사랑을 말하며 끝내 힘을 잃고 떨어지는 손에, 눈물바다에, 막 의사 멱살을 잡고 살려내~ 울 아버지 살려내~ 하는 장면도 섞여있고…. 대충,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그런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딴 게 어딨어.
회사 점심시간에 커피 한 잔 하러 나왔다가, 횡단보도에서 대낮부터 음주운전하던 차량에 치여 사망.
오랜만에 운동하고 다리가 후들거리네 허허허- 하다가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사망.
까짓 꺼 뭐 어때, 하고 담배 한 모금에 하루치 시름을 날려 보내다 폐암으로 사망. 혹은, 딱히 아무것도 한 거 없는데 그냥 병이 찾아와서 사망.
에이 설마, 하고 루머 취급하던 전쟁이 터져서 현존 인구의 90% 와 함께 사망.
아들 살리겠다고 하나 있는 가스마스크 넘겨줘서 사망.
멍청한 아들 말 들었다가 치사성 마약에 중독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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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죽음은 꽤나 갑작스럽게,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일어난다. 인과관계가 있는것도 있고, 없는것도 있고. 평생을 자책해야 할 것도 있고, 누구도 탓할 수 없어 속으로 타들어가는 것도 있고.
“아마 넌 지금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우리에게~’ 언저리에 집중하고 있을텐데, 그런게 아무 의미가 없단 말이야. 왜 이런지 알고나면, 누구에게 무엇을 원망해야할지 알게 되면 좀 썩어들어가던 속이 나을 것 같았지? 그렇지?”
“아냐. 니가 뭘 어떻게 해도 이런 종류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아. 아무리 기다려도, 어린 시오드 4세가 장수왕 시오드 4세가 될 때까지의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네 안에 남아있을거다. 영원히. 네가 죽는 그 순간까지. 어쩌면, 죽은 이후에도.”
마지막 말은 변종이 떠올라서 덧붙였다.
에르빈은 입을 다물지도 못한 상태로 내 말을 이해하기 위해 곱씹어 보는 듯 하더니, 작게 떨기 시작했다. 오한이 오는 사람처럼 찢어진 커튼까지 끌어올리면서.
“그, 그럼…. 지금의 내가, 영원히 이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는 말인가….”
“그렇지. 지금 이 순간이 딱 굳어버리고, 너는 그 위에 자라나게 될거야.”
“후…. 후흐흐흐…. 그것 참, 비참한…. 삶이로구나.”
“그래. 비참하지.”
어린 소년 왕의 몸에서 힘이 빠지며, 그 안에 절망이 깃드는게 보였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이제 알콜중독자, 폐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고.
“더 좋은거 알려줘? 내가 말한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고, 지금 너는 여기서 더 비참하고 끔찍해질 수 있어.”
“여기서…. 더?”
“그래. 잃어버릴 게 있으면 더 떨어질 수 있는 거지 뭐.”
바닥까지 떨어진 이는 쉽게 일어설 수 없다. 아예 여기서 더 끌어내려서 그 밑바닥을 뚫고 심어버리면 모를까. 반석처럼 단단하게 자리잡아, 이 순간의 기억이 오히려 원동력이 되도록.
슬쩍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몸을 앞으로 쭉- 빼고있으면서, 그럼에도 명령을 지킨다고 두 손으로 귀를 막고있는 샬롯이 있었다.
“너, 샬롯이 소중하지? 그래서 그때 왕가의 비처에서, 나랑 샬롯이 막 서로 결단을 내겠다고 기세를 끌어 올리니까 혀가 막 꼬이도록 급하게 말했던거지? 알현을 허가 한다고, 그러니까 쟤랑 싸우지 말라고.”
“기, 기사단장은 내 누이나 다름 없는 사람이다…. 참으로, 참으로 기사다운, 만약 여자 형제가 있으면 필경 저런 사람이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같은 것을 위해 죽는 것 보다는 가치있게 죽어야 할 기사야….”
탁탁-
“그건 나도 동의한다. 울보 찌질이 왕보다는 단연코 샤를롯 데 아가트 경이지.”
“우으윽….”
“그런데 어쩌냐. 저쪽도, 저 아래 있는 사람들 생각은 우리랑 전혀 다른데.”
아아, 술 땡긴다. 얘가 열 다섯 살만 됐어도 어디 끌고가서 술이라도 진탕 먹인 다음에 얘기했을텐데.
나는 얼이 빠진 에르빈을 어깨동무 한 상태로 쭈우욱- 끌어와 내 옆에, 박살난 왕궁 벽 너머로 밖이 훤히 보이는 자리로 돌려 앉혔다.
피와 연기가 가득한 도시의 모습에 에르빈의 몸이 다시 떨려왔지만, 이번에는 내 손에 붙잡혀 돌아설 수 없었다.
“자, 봐. 네 기사들이고, 네 백성들이다. 좋든 싫든 너는 그들의 왕이지. 저 성벽을 물들인 피는 너와 로드릭의 이름앞에 흘렀고, 저기 저 기사가 죽어서도 끝내 놓지 않아 손가락을 잘라내고서야 겨우 회수할 수 있었던 검 또한 로드릭의 이름으로 휘둘러졌지.”
“너는 스스로를 망국의 왕이라 불렀는데, 그럼 저들은 이미 없어진 로드릭을 위해 피를 흘리고, 검을 휘두른거냐? 저들의 피로 물든 성벽 앞에서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 ‘미안한데, 사람 잘못봤다! 나는 당신들이 섬길만한 사람도 아니고, 로드릭은 이제 없다! 미안!’ 가능해? 그런 강단이 있어?”
“그, 그럴수는…. 저렇게 많은 피가 흘렀는데, 내가 그들앞에 그렇게 말할 수는….”
철썩!
“그럼 그냥 왕으로 살아야지. 저들이 너를 왕이라 부르면 왕인거야. 그건 네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저들이 선택하는거지. 네가 선택할 것은 이쪽이야.”
드득, 드드드득-
괴물같은 악력이 단단한 왕성 바닥에 작은 선 몇 개를 새겼다. 부서진 벽 너머 킹스랜드로 향하는 화살표 하나와, 그가 숨어살던 왕의 비처로 향하는 화살표 하나.
“골라.”
“무, 무엇을….?”
“아무것도 못하는 네가 지금 당장 뭘 할지를. 앞을 고르면, 난 곧바로 ‘국왕전하 납시오!!!’를 킹스랜드 전역에 울리도록 소리친 다음 너를 발코니에 내보낼거다. 새 왕의 얼굴 한 번 못봤던 병사들과 기사들은 잘린 다리로 기어서라도 너를 보러 모여들겠지. 뒤쪽을 고르면, 축축하고 습하고 어두운 너의 안전한 굴로 돌려보내주지. 그리고 다시는 네게 걸리적거리지 않겠다.”
“마, 말도 안되는 처사다! 이, 이런 일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네 가족의 죽음은 준비할 시간을 두고 찾아왔냐 그럼?”
“….”
“이대로 바보처럼, 평범한 열한살짜리 애들처럼 굴고 싶으면 그래도 돼. 아무도 널 비난하지 않는다. 그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단! 아무것도 모른다고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너를 바닥으로 끌어내린 그 비극의 목록에 하나 둘, 다른 이름이 추가될 거다. 저기 있는 기사들, 병사들, 저기서 귀 막고 자벌레처럼 앞으로 쭉- 튀어나온 샬롯에 아픈 네 어머니! 수많은 피난민들까지!! 그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겠지. 지금 상황에 이곳에 있는 이들이 전부 죽어나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아, 안된다, 그것 만은, 그것 만큼은 아니된다!”
와락!
“그게 싫으면 뭐라도 해! 모르면 모르는 대로 움직여! 아직 저들은 살아있고, 그렇다면 에르빈 튀르 시오드의 이름은 로드릭의 왕을 의미한다! 왕의 이름으로 움직여! 그것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전부 다 잃었을 때, 정말 후회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일이 남지 않았을 때는 늦어! 그땐 죽어도 바꿀 수 없단 말이다!”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것을 되돌릴 수 없었던 것처럼. 손에 남은게 후회밖에 없을땐 늦어도 너무 늦었으니까, 같은 길을 먼저 간 사람으로서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놈은, 아직 왕이라는 이름으로 제 사람들을 위해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 그럼…. 내가 왕으로서 움직인다면…. 이들을 살릴 수 있나? 아직 로드릭에 희망은 있는가!”
“그거야 나도 모르지.”
“….뭐라?”
“동화 속 이야기와는 달리, 근성과 노력으로 해결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지. 오히려 더 추하게, 더 비참하게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세상이 그리 쉽게 돌아가진 않거든.”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말이….”
“그래도. 그렇게 가진 것, 안가진 것. 내것에 남에 것까지 닥치는대로 긁어모아 발버둥친 끝에 실패한 사람이 확실히 얻을 수 있는게 있어.”
“부, 부분적인 성공?”
“아니, 자격. 가진 모든 것을 다한 만큼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애미터진 신이시여! 억까하지마라 개 씨발새꺄!’ 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거지. 스스로를 탓하고 싶어도 탓할 수 없게 되는거야. 적어도 너는 자신이 아닌 상황과 환경에 대해 정당한 분노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살면서 배운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특수부대원으로 이름을 날려도 사선을 함께한 전우들을 살릴수는 없었다.
어떤 일들은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지만, 어떤 일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고통은 필연적이고 상처는 쌓여간다. 이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머리로는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도 덤벼들었다.
그 누구도, 설령 나의 부족으로 죽은 사람이 본다 해도 ‘그만하면 됐다’ 라고 할 정도로 달려드는 것. 미친 사람처럼 불구덩이를 뚫고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그렇게 함으로서 필연적인 실패를 곱씹으면서도, 자책하지 않게 되는 것. 그 순간 지워지지 않는 상처는 흉터가 되며, 세월과 함께 풍화되기 시작한다.
이게 박교수로서 살아온 25년. 그리고, 플레이어 ‘교수’로서 살아온 1년 8개월 동안 결론 지은 나름의 깨달음이며, 개똥철학이며, 사는 법이다.
“에르빈. 아마 저 밖에 있는 이들 중 절반은 죽게 될거다.”
“저, 절반이나….?”
“최소로 잡았을 때 절반. 적어도 내 예상에 그 정도는 될 것 같아.”
어린 왕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어디 하나 빠진 곳 없이 피투성이가 된 도시를 향했다. 그리고,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왕의 입술이 떨렸다.
“그 말은…. 최대로 잡으면, 반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구나….! 로드릭의 이름과 함께!”
“뭐. 모든 조건과 상황, 얘기치 못한 이벤트가 완벽하게 일어난다면 말이지. 예를들면 대가리 빠진 귀족들이 불의의 사고로 모조리 죽는다거나. 간신히, 정말 간신히 버티고 있는 킹스랜드에 누구나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왕이 나타나 끔찍할 만큼 바닥난 사기를 마구 북돋아 준다거나. 그러면 뭐. 어느정도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확답을 주기는 또 좀 그렇네.”
“왜, 호, 혹시 다른 변수가 또 있는가!”
“아뇨. 그게 아니라 지금 눈앞에 계신 분이 울보 찔찔이 에르빈이 아니라, 시오드 4세 전하 같아서요. 왕 앞에서 허언하면 참수당합니다, 참수. 말조심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탁!
교수는 복잡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환해진 얼굴의 시오드 4세의 모습을 보며, 두 화살표가 새겨진 바닥을 향해 주먹을 쥐었다.
“그래서, 결정은 하셨습니까?”
“무, 무슨 말을 해야할지는 모르겠다만….”
“그건 저도 모르지요. 그게 왕이 해야할 역할 아닙니까. 무슨 말을 해야 왕 같아 보일까. 무슨 말을 해야 저 사람들이 환호성 한번 크게 내지르고 후련해진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할까, 등등.”
등떠밀어놓고 중요한 순간에 무책임해진 내 모습에 시오드 4세의 얼굴이 아연해졌지만, 그럼에도 슬금슬금 발코니를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전하.”
“허윽! 왜, 왜 불렀느냐!”
“흐흐흐흐. 힘내십쇼. 모르겠으면, 그냥 이거 하나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내가 왕이라서 여기 나온게 아니라, 저들에게 왕이 되어주기 위해서 나왔다.”
“왕이, 되어준다라….”
“예. 당신께서 왕으로서 목소리를 계속 내는 한, 저들은 당신의 기사로, 왕의 병사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소박…. 하구나.”
그 소박함을 위해 이 땅에 남아, 피를 쏟아내었다.
왕은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게 되었다.
타박. 타박. 타박.
덜컥!
악취와 매캐한 연기, 피와 진흙이 얼룩진 땅에서 그를 올려다보는 저 눈들을, 앞으로 매일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을.
후으으읍-
『국왕전하- 납시오오오오오!!!!!!』
뒤에서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나더니, 왕성의 창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우렁한 목소리가 그의 등을 밀어내며, 발코니 밖으로 퍼져나갔다.
“방금, 뭐라고….?
“….전하다.”
“저, 전하다!”
“선왕께서 서거하신 이후로 칩거하셨던 전하께서….!”
바쁘게 움직이던 이들도, 힘없이 누워있던 이들도 소리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시오드 4세는 그의 눈앞에 펼쳐진 사람들의 모습에. 그가 난간에 손을 올리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해지는 그 모습에,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건만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미 저들에게, 그는 왕이었다.
그러니, 왕으로서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할 터였다.
떨어지는 눈물과, 그것을 훔쳐내는 손길.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힘이 들어간 배와, 들이쉬는 숨.
그리고, 아직 많은 망설임을 담은 입이 벌어지며-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참나. 결국 저기 가서도 우시는군.”
오랫동안 죽음과 시취만이 맴돌면 킹스랜드에, 왕을 되찾은 백성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콰앙!
후두두둑….
이 순간을 못박아두듯 휘둘러진 성자의 주먹이, 뒤를 향하는 화살표를 흔적도 없이 으스러뜨렸다.
살아남은 나머지, 선택의 증표는 어둑한 왕성과 달리 환한 빛이 비치는 발코니 아래 두 팔을 펼쳐든 국왕, 시오드 4세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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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참 잘하더군.”
“성자 아닙니까, 성자. 말 한마디로 마을과 도시를 쥐락펴락하는 사제, 주교들의 정점 오브 정점. 이제 고작 11년 밖에 살지 못한 전하 하나 설득하지 못하면 이 ‘교수’라는 이름이 웁니다, 울어.”
“그래…. 투란에서도 말을 참 잘하는 사내였지….”
철그럭, 터걱!
“음? 아니 실내에서 바이저는 왜…. 설마, 우십니까?”
“광명은…. 참 좋은 가르침을 많이 가지고 있군.”
“어어어. 이거 다 들으셨네! 로드릭 제 1기사가 왕께서 직접, 대면한 상태로 한 명령을 어기다니. 간당간당한 로드릭의 명예가 결국-”
“전하께선 귀를 막으라 하셨지, 듣지 말라 하신적은 없다.”
“하이고. 그러십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교수는 잠시 발코니에 선 왕의 작은 등을 보다가, 뒤로 돌아섰다. 뭔가 팔을 휘저어대면서 까지 하고 있는게 의외로 체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이 은혜는 무슨일이 있어도 갚도록 하지.”
“그거 내 앞에서 말고 저-기 아래 그레고리우스라고 있거든요? 걔 앞에서 선언해주십쇼. 교단 공헌록에 기록해놓게.”
“크흠, 흐음….”
“싫음 말고. 밥먹고, 이제 전하께서도 준비가 되셨으니 우리도 할 일 하러 갑시다.”
“할 일?”
“예. 밖에 있던 더러운 막사부터 왕성 안으로 좀 옮기고. 정확한 아군 위치랑 적군 위치도 좀 파악해놓고, 아예 연결 끊긴 부대부터 나열해서 순서도 좀 매겨놓고, 어 그리고…. 그그그, 그거 어딥니까?”
“그거라면?”
“걔들 있잖아요. 희대의 병신같은 전략을 짠 사령관들. 그놈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곳을 좀 알아야겠는데.”
“아. 사령관 회의라면 주기적으로 있으니 내가 안내해주지.”
“아녜요. 샬롯은 눈에 띄어서 안돼.”
“음? 눈에 띄면 안된다니?”
“어…. 그런게 있습니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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