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62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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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다 그렇게 늦었어? 또 저 그레고리우스, 광신도 스토커 새끼가 그러디? 성자님 옆에 죽어도 붙어가야겠다고?”
“아…. 뭐. 그렇….습니다. 예, 꼭 그렇게 말하더군요.”
“에라이, 퉤! 내가 저 새끼 그럴 줄 알았어. 진드기 같은 자식. 킹스랜드 정화할때도 치어리더 마냥 뒤에 따라붙어서 ‘의식을 잃으시면 안됩니다!’, ‘숭고한 희생의 끝까지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같은 소리나 하더니.”
어쩐지 평소 같으면 어디 높은 데 붙어서 목탄이나 끄적거리고 있을 애가 안 보인다 했더니, 그레고리우스한테 잡혀있었나 보다.
아무튼, 이제는 다 떼어놓고 왔으니 한동안 안 봐도 되겠지.
“저, 음….”
“뭐. 너 아까부터 좀 이상한데, 할 말 있어?”
“….아닙니다. 그냥, 성기사들과 같이 오는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야…. 그렇지. 능력 하나는 출중한 놈들이니까. 그러니까 더 킹스랜드에 남겨둬야 했던거고.”
내가 별 쌩쑈를 다해서 킹스랜드를 어느 정도 정상화 시켜놓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이다. 당장 이렇게 비공정 타고 유유히 떠나는 동안에도 챔버메이드는 저급 뮤트를 펑펑 뽑아내고 있을 테니, 뮤트 혈액의 제거하고 내 피를 뿌려놨다곤 해도 며칠 지나면 또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성기사들이 남아있으면 내성 안까지 피가 튀는 건 좀 막을 수 있지, 싶어서 애처럼 졸라대는 성기사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들의 빛은, 나와 다른 곳을 비추라-’ 라고. 이렇게 말하니까 좀 알아듣더라고. 덕분에 성기사들이 좀 풀이 죽긴 했지만.
부우우우우우-
『상승! 상승합니다! 목적지는- 어…. 테, 텔드랏 아에드란 영지! 보급선 복귀합니다!』
이드라실과 얘기하는 사이에 준비가 끝났는지, 약간 망설임 같은게 섞인 선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복귀선? 제가 알기론 우리 목적지가-”
“배는 아에드란 영지로 가는게 맞지. 여기만 보급하고 끝내면 다른 고립된 도시들은 말라 죽으라고?”
왕복에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보급은 계속 띄워야지. 배는 아에드란 영지로 돌아간다. 배는.
“다만, 약간 경유지를 거쳐 돌아가게 되는거야.”
“….경유지에 내리겠다는 말이군요. 아에드란에서 로드릭으로 오는 길이 사흘 정도 걸렸으니 왕복에 6일. 사람들은 그 6일간 교수가 비공정을 타고 움직이는 것으로 알게 되는 겁니까.”
이드라실도 슬슬 노툼이나 오트만이 말하는 ‘감’이라는게 뭔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비공정의 선원 중 3할 정도는 대사막에서 고용된 항사꾼들로, 사막에서 교수와 생사고락을 같이 한 사람들이다.
이륙 전 교수는 유난히 바쁘게 비공정위를 돌아다니며 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아, 이거 그거로구만.’
‘그거다 그거. 그우억. 뭔가, 뭔가 한다. 교수.’
‘들어가서 잠이나 자지. 바빠질 것 같으니.’
오트만과 노툼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교수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일찌감치 선실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이제는 그들이 느낀 것의 정체가, 어렴풋이나마 느껴지는 이드라실이었다.
….뭔가 한다. 뭔지는 몰라도, 또 도시를 배회하는 분신자살 성자에 버금가는 일 같은 것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비어있는 6일간, 저희가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음? 이야아, 너 진짜 많이 배웠구나? 이런 눈치도 늘고.”
“불행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인간 세상에 섞여들기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을 배운거지. 이번엔 별거 없어. 내가 자리를 좀 비울건데, 그때 사람들 눈에 띄게 바쁘게만 움직여주면 돼. 아에드란 영지에서 사교 모임에도 참석하고, 보급관리도 하고. 오트만한테는 대충 얘기해뒀으니까 아마 알려주실거야.”
역시나, 중간에 셀 생각이었다.
“혹여, 교수의 행방을 뭍는 이들이 있다면 뭐라 하면 되겠습니까.”
“이단으로 돌려버려. 이 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의 행적을 캐묻는 게 수상하다고. 알고싶으면 교단을 통해 공식적인 정보를 얻어라고 해.”
이미 일행의 변명거리까지 생각해놓은 그 모습에 이드라실은 고개를 내둘렀다. 물론, 그러면서도 손은 그의 조언을 열심히 기록하고 있었다.
“합류는?”
“비공정 타고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될거다. 연합군의 척추인 킹스랜드에 보급을 줬으니, 다음으로 보급을 보낼 곳은 하나밖에 없거든.”
로드릭 서부전선. 최초에 연합군이 모여 항전한 대(代) 뮤트전의 중심이며 광명의 교단 본단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 그리고 지금은, 이 개똥같은 작전에 입안한 사령관님들이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곳.
“아, 올 때 거기 신전에 말해서 교단 법복 중에 내 사이즈에 맞는 거 하나만 가져와라. 아마 있을거야.”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상승하기 시작하는 비공정의 난간, 그 너머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아마 다음번에 만날땐 꽤나 예의를 차려야 할 장소에서 만나가 될 것이다. 엄숙하고 장엄한, 좀 예의를 갖춘 복장이 필요한 그런 장소가 되리라. 고위 귀족의 합동 장례식은 꽤나 거창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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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유우우우우우-
“우아아아아아아악!”
콰지직! 콰작! 콰자자작-
쿠웅!
미사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추락한 검은 물체. 부러지는 나무와, 지진이라도 난 듯 진동하는 숲.
“아으으으…. 삭신이야. 무사히 착탄지점…. 아, 착륙지점에 떨어진 건가? 숲은 맞는 것 같은데….”
비공정은 구름 위를 나는 터라 밑을 확인할 수 없어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에이버리 선장을 수시로 닦달해서 가늠한 위치였다.
나와 생사를 함께한 동료. 항사꾼들은 별 길잡이 역할을 빼면 아직 비공정의 견습 선원으로 일을 배우고 있는 처지였으며, 다시 말하면 이들은 잉여 인력이라는 뜻이다.
하늘 위의 항해는 평화롭고, 단순 작업 정도는 베테랑 항사꾼답게 척척하는 잉여인력이 많다보니 비행이 안정권에 들면 자연스레 이들만 일하고 골드 가이저의 정식 선원들은 쉬는 순간이 생긴다.
그때를 노려, 골드가이저쪽 사람들의 눈을 피해 비공정에서 뛰어내렸다.
미리 준비된 6일간의 알리바이.
내부자 포섭을 통해 아군도 모르게 잠입!
“어디보자. 사막에서 배운 별자리 보는 법으로 대충 가늠하면…. 쪼끔 빗나가긴 했지만 얼추 맞게 온 것 같은데? 야, 솔직히 이 정도면 어디가서 14 특작대 출신이라고 부담없이 말할 수 있는 공수 작전 아니냐?”
내가 생각해도 스무스한 진행상황에 대화방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했으나….
———
– Jokass : 우우우우, 계집애 같은 놈. 비행기나 타고 오고.
– takealook : 우우우우, 시청자의 니즈를 모르는 방송인 따위 뒈져버려라-
– 홀리 : 그때 불타는 모습으로 싸우는게 좀 멋있긴 했어요!
– 뉴트리아지나 : 아아아, 드디어 물불 가리지않는 성자로 완성되는줄 알았는데….
———
정작 대부분의 반응은 실망한 눈치였다. 왜 저러나 했더니, 불타는 상태 그대로 킹스랜드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가는 곳마다 불바다로 만드는 게 보고싶었다나.
“….친구들? 다시 말하지만 그때 그 불붙은 상태는~ 천하에 쓰잘대기 없는 하자 투성이란 말이다! 신경이 다 녹아서 걷는 것도 뒤뚱거리지, 근육은 미디움 레어로 익어서 출력이 근력도 절반 가까이 떨어지지, 기분은 또 얼마나 더러운 줄 알아? 다리 저릴 때 걸으면 그 찡- 하면서도 근질근질한 감각 알지? 전신이 그런 상태로 전투에 임한다고 생각해봐라! 어으, 다시는 안해, 그거!”
———
– takealook : 글쎄. 넓은 전선 대부분이 저런 물량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면 가는 곳마다 ‘화염의 성사’ 한 번씩은 해줘야 좀 사람 사는 동네 같아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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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서부 전선에는 나 같은 짜바리 말고 진짜 성녀님들이 계신다면서! 성녀님이 알아서 하셨겠지!”
짜악!
잡설은 여기까지. 추락의 충격으로 어질어질한 머리도 어느정도 회복됐으니 이젠 움직일 시간이다.
착륙 지점으로 고른 곳은 서부전선 전초기지에서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숲, 그러니까 적진 언저리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도시와 거리가 있어서 도시에 주둔 중인 영웅들, 궁수계열 영웅들이나 원견 마법으로 상시 근무중인 수계 마법사들에게 걸릴 위험이 적은 것도 있지만.
“어우, 찐득해. 진짜 피 안개로 지역 하나를 덮어버렸네.”
이 지역을 점령한 뮤트들의 수작 덕분에 아군 진형으로 잠입하기 쉽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
– Jokass : 이게 그거냐? 챔버 메이드 진화체라는 거?
– takealook : ㅇㅇ 맞음. 보통 뮤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3~4년은 질질 끌어야 진화하는 놈들인데, 교수네는 거의 1년만에 튀어나왔네.
– 홀리 : 어…. 저는 처음 보는데요? 나름 커뮤니티 생활 열심히 했는데….
– Jokass : 그럴 수밖에 없음. 인게임 4년이면 48개월, 현실 시간으로도 10개월 가까운 게임타임이 필요한데, 그만큼 한 캐릭터로 진득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사례가 딱 3명 뿐인데, 그중 둘은 그나마 랭커도 아니라 잘 알려지지도 않았음. 심지어 여기 이 안개 같은 건 커뮤니티에도 정보가 없는 능력이라고. 원래 알려진 진화체 말고도 신종이 하나 더 나왔다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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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방 사람들 말처럼, 이런 식의 변형된 챔버 메이드는 그리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애초에 챔버 메이드에게 다른 기능을 탑재해야 할 상황부터가 그리 많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챔버 메이드는 생산 기지로서의 역할만 잘 하면 될 뿐, 상대에 대한 대응은 거기서 나오는 뮤트의 종류를 바꿔가며 하면 되니까.
하지만. 내 월드의 경우 팔카투스라는 고지능 사령관이 존재했으며.
팔카투스는 고급 개체 생산에 특화된 여왕의 생산기관을 본따 만든 챔버 메이드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더욱이, 번영의 신위를 획득한 여왕님까지 있으니 필요와 조건 모두 갖춰진 샘이 아닌가.
대주교님이 알려준 개화(開花) 챔버 메이드는 두 종류였다.
첫째, 지금 로드릭 전역을 피와 시체로 묻어버릴 듯 쏟아내는 물량의 원천. 노먼 대주교님의 말에 의하면 ‘넓은 뿌리’라 불리고 있는 개체. 커뮤니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개체는 이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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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kass : 이름 더럽게 성의없네. 커뮤니티에서는 저거 뭐라고 불렀더라?
– takealook : 저글링 블러드.
– Jokass : 여기 사람들 이름 잘 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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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뿌리를 아주 얕고 넓게 뻗는 종류의 챔버 메이드다. 물량에 특화된 개체로서 4급을 넘어가는 개체는 생산하지 못하지만 그 이하는 한배에 40, 50마리씩 마구 쏟아내는 정신나간 생산력을 자랑한다. 여기까지는 뭐, 일반 챔버 메이드가 많아지면 그럴 수 있겠다, 하는 수준이지만.
가장 가시적인 특징은, 이 놈이 생산하는 개체가 처음부터 재활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보통 챔버 메이드가 ‘으어어, 만든다. 으어어, 여왕님…’ 같은 수준의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일반 공장이라면, 이쪽은 효율이라는 것을 생각할 줄 아는 스마트 공장이란 말씀.
6급 뮤트만 해도 전신에 갑옷과 견줄만한 단단한 키틴질 갑각을 걸치고 다니는데, 이놈이 만드는 개체는 죄다 물렁살이다. 기껏해야 이빨과 발톱, 들이박는 머리 정도나 좀 단단하지.
당연히 일반 병사도 손쉽게 상대할 정도로 약한데, 중요한 것은 이 물렁살 뮤트를 죽인 다음에 있다.
‘….킹스랜드 내부에서도 이놈 뿌리가 보였지, 아마?’
한 15cm 정도? 대충 손으로 쓱쓱 훑으면 눈에 보일 정도로 온 사방에 뿌리를 뻗어놨는데, 예의 ‘불타는 성자님’ 수준으로 그 지역 뮤트 혈액을 싹 다 빨아내지 않으면 아무리~ 이 뿌리를 태우고 잘라내도 여름 잡초마냥 끝없이 자라난다고 한다.
자라난 뿌리는 흡수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저급 뮤트의 시체를 호로록 빨아먹고, 그 양분은 거의 손실 없이 새로운 저급 뮤트로 탄생한다. 말이 흡수와 생산이지 사실상 무한히 부활시켜 내보내는 것과 같은 수준이란 말이다.
‘심지어 필요에 따라 흡수할 시체와 흡수하지 않을 시체를 구분하는 지능도 지녔다. 킹스랜드 인근에는 썩어가는 뮤트 시체가 쌓여 있었지만, 성의 권역을 벗어나면 뮤트 피 냄새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알뜰하게 다 빨아먹고 있었지. 쌓인 시체가 인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일부러 흡수하지 않고 내버려둔거야. 심지어 킹스랜드 내부에 뻗은 뿌리는 다른 곳에서 흡수한 피를 성 내부의 땅속에 뱉어내기까지 하고 있었어.’
내가 괜히 대화방 사람들한테 ‘파X어 펀치!’ 니 ‘분신자살 성자님!’ 이니 하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킹스랜드 내부 청소에 힘을 쓴게 아니란 말이다. 실상을 파헤쳐보니 소문 이상의 전략병기더라고. 일단 킹스랜드 성벽 주변까지는 싹 다 태워내고 빨아내긴 했는데, 아마 며칠 지나면 또 슬금슬금 뿌리를 뻗어댈 것이다. 그 사이에 만들어낸 뮤트의 피가 땅에 뿌려질 테니까.
저 ‘넓은 뿌리’ 까지만 해도 물량전의 혁신에 가까운 0티어 뮤트, 여왕님에게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의 진정한 정수인데, 내 월드에는 내 손으로 지옥에 보내버린 팔카투스씨의 오더메이드 빅엿이 존재했다.
이곳 사람들이 부르길 ‘빈자의 기둥’ 이라.
이름부터 남다른 힘이 팍팍 느껴지는 이 진화된 챔버 메이드의 경우, 챔버 메이드라는 개체의 본질에서 벗어난 수준으로 변형된 놈이다.
이놈은 생식능력을 거의 잃었다. 대신, 챔버 메이드의 가장 기초적인 기능인 ‘양분을 흡수하고 가공하는 능력’이 극대화된 개체라고 들었다.
그 효능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시뻘건 안개.
능력 자체는 진짜 단순하다. ‘빈자의 기둥’은 놈의 권역을 안개화된 뮤트 혈액으로 뒤덮는다. 이건 바람이 불어도 안 날아가고, 비가 와도 섞이지 않으며, 불로 태워도 잠시만 주춤할 뿐, 순식간에 복구되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피 안개로 그것의 권역에 들어온 모든 생물을 뒤덮는다.
이게 박힌 지역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방법은 딱 하나, 신성 정화마법을 대단위로, 그것도 지속적으로 펼칠 수 있는 자비와 풍요의 대사제들 뿐. 광명이나 용기, 지혜의 신성마법은 지속성이 떨어져서 불가능하단다.
그래서 ‘빈자의 기둥’ 이란다. 빈민가 사람들이 그들의 구휼을 위해 자주 찾아오는 자비와 풍요의 사제에게 기를 쓰고 매달리는 것처럼, 이 두 교단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하는 난공불락의 독소 지대를 만들어냈다고 해서.
효과 범위는 작은 것은 마을 두어 개 커버할 정도의 것도 있지만…. 뮤트 공세의 중심, 챔버 메이드 군립지에 박힌 제일 큰 놈의 경우 대도시 다섯 개를 일렬로 세워놓은 크기의 직경을 자랑한다고 한다. 비공정 위에서 보니까 멀리서도 크고 시뻘건 안개지대가 로드릭 곳곳에 자리잡은 게 보이더라고.
‘넓은 뿌리의 끝없는 물량 공세로 전선을 밀고 피로를 높인 다음, 몇 없는 정예 부대를 투입해 지역 점령. 한번 점령한 지역은 빈자의 기둥을 박아 완전히 제 땅으로 만들어버리고, 다시 물량 투입으로 밀기를 반복. 따로 팔카투스의 명령이 없어도 잘 굴러갈 만큼 단순한 시스템이군.’
둘 다 피와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능력인 것만 봐도 누구 작품인지가 훤히 드러났다. 팔카투스가 살아서 이 전장에서 나를 만났다면 희희낙락하면서 자랑했겠지. 오, 아버지! 당신의 피 마법을 보고 배웠습니다! 이번에도 가르침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죄다 뮤트 피와 관련된 것이라 전부다 내가 카운터 칠 수 있다는 것. 넓은 뿌리는 그 ‘불꽃 성자님’ 한번 해주면 일시적이나마 해결 가능하고, 뮤트 피안개 지대는 나한테 있어 힐 장판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나 빼고 다른 사람은 못한다는 것. 로드릭 전역에 걸친 전선을 비공정타고 다니면서 아무리 정리한다 한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복구되는 양이 훨씬 많다는게 제일 큰 문제였다.
‘이건 의도적으로 나만 바빠지게 만들어놓은 판이지. 나 밖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것은 놈이 내가 갈 방향을 특정할 수 있다는 뜻이고, 사실상 혼자서 하는 체스처럼 아군과 상대의 말을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게임이 된다는 뜻이니까. 음, 역시 팔카투스를 죽이길 잘했어. 잘 죽었다, 개 같은 놈!’
이 상황을 살아있는 팔카투스와 함께 맞이했다면? 클리어고 생환이고 때려치고 ‘남은 여생이나 즐길까-’ 하고 돌아섰을지도 모른다. 내가 제국에서 돌아다니는 동안 팔카투스가 자유시간을 아주 알차게 썼더라고.
….아무튼! 기둥을 뽑든 뿌리를 태우든 일단 나중에, 좀 제대로된 총 공세를 진행할 상황이 됐을 때 생각할 일이고.
지금 당장은 이 안개가 내게 영양가 높은 뮤트 피를 무한정 제공하며, 아군 관측병의 눈에서 나를 감춰줄 훌륭한 은폐지대라는게 중요하겠지.
피 안개에 물든 숲을 헤치고 나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를 죄다 겉어낸 개활지와 반쯤 넝마가 된 커다란 성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헤델른.”
서부 전선의 중심이된 도시는 세 곳이다.
대도시 쾨른과 그 보다 조금 작은 헤델른과 올페아.
원래 희대의 개 멍청한 사령관 회의 이후 사령관들은 넓게 펼쳐선 전장에서 각자 맡은 도시로 이동해야 했으나, 익히 알다시피 전선을 펼치자마자 곳곳에서 연락이 두절된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막 말타고 이동하던 연합군 사령관들은 헐레벌떡 돌아와 책임 추궁과 대책 마련에 돌입. 그 사이 장사진처럼 늘어진 전선 곳곳이 끊어져 이동하지도 못하고 서부전선에 죄다 남게 되었으며, 그들 중 대다수는 쾨른에 남아 머리가 터지도록 회의중이지만 일부는 돌아갈 각 본다고 그나마 동쪽에 가까운 이곳 헤델른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똥싸고 그걸 치울 생각도 없이 튈 생각만 가득한 놈들이 이곳 헤델른에 모여있다는 말이다.
———
– 홀리 : 그래도, 기왕이면 사령관이 제일 많은 쾨른을 습격하는게 좋지 않아요? 성이 세 개니까, 그중 하나가 습격받았다는 연락이 돌면 나머지는 경계심이 높아질텐데.
– Jokass : 아가씨, 우리가 아무리 교수 놀려먹는 맛에 산다고 해도 그건 아니지.
– 노루Drug해요 : 그럼 그럼. 그렇게까지 비참하게 죽어야 할 정도로 교수가 나쁜놈은 아니잖아.
– 홀리 : ?????
———
“….쾨른에 비해 방어병력도 허술하고, 죽여도 마음 상할 일 없는 쓰레기들만 모여있기도 하고, 기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걸 제쳐두고서라도 쾨른은 절대로, 절대로! 건드리면 안돼.”
나 살겠다고 쏴죽인 무고한 사람이 몇 인데, 대책회의좀 했다고 남의 땅 갈라먹기에 조인한 귀족들을 살려줄 리가 있나. 습격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볼 쾨른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었다.
“아르갈리안 소드가 거기 있어.”
———
– 홀리 : ?!
– Jokass : 오오, 갓갓 소드맨. 아무리 온갖 역경을 이겨낸 붉은 뮤트라도 아갈맨은 너무 큰 역경이지.
– takealook : 사실상 히어로 유닛 다른 전선에 다 떠나보내고 혼자서 서부 전선 틀어막았음. 일반 히어로 유닛이 황건적, 오트만 같은 동료가 장료쯤 된다면 아르갈리안 소드는 여포라고 보면 됨.
– 흥안만두 : 사실 헤델른 들어가는 것도 목숨 걸어야지. 헤델른에 비상종 땡- 치는 순간 다음 ‘땡’이 울리기도 전에 쾨른 성 첨탑에서 헤델른을 향해 미사일처럼 날아올걸?
———
그 아르갈리안 소드가, 나한테? 그것도 맨투 맨이 아니라 붉은 뮤트 상태의 나랑 마주하면?
“으으으으으! 절대 안되지. 이번에는 깽판이 아니라 정말 신중하게, 차분하고 조용하게 요인 암살만 하고 빠져나올거야.”
영상으로 봤던 천류제와 아르갈리안 소드의 결투를 떠올리니, 마음껏 날뛰겠다는 생각이 티끌만큼도 남지않고 싹 사라졌다.
다행히, 암습이라면 어느정도 일가견이 있기도 하고.
“지금은 가진 재주가 그때보다 많거든.”
———
– Jokass : 오, 혹시 변신 가능함? 여자로 변신 가능?
———
“아쉽게도, 내가 가진건 ‘재생’력이라 내 몸이랑 다른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얼마 못 버텨. 그때 봤잖아, 외피로 만들어낸 도끼가 한 5초인가 10초 쓰고 사라지는거.”
“그럼 그 몸뚱이를 어떻게 숨기게?”
“….이렇게?”
탁!
대화방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떨어질 때 부러진 나뭇가지위에 미리 챙겨온 부싯돌을 튕겼다.
———
– takealook : ….파X어 펀치?
———
“….딱 한번, 한번만 더 하자고.”
작게 피어오르는 불꽃에 다가가는 나를 보며 사람들이 환호한 것은 물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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