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63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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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그덕, 쿵.
덜그덕 덜그덕- 쿵!
“토드! 조심해서 들라고 몇 번을 말했잖나! 시체들 중에는 무기나 발톱이 박혀있는 것도 많다고! 재수 없게 긁혀서 가죽옷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예예, 뮤트 피가 들어와서 오지도 않는 사제님들 기다리다가 살처분 당한다지요! 오늘만 그 얘기를 스무 번도 더 넘게 들었습니다요, 백인장님! 근데 이 시체들이, 엄청, 무거운 걸 어쩝….니끄아!”
“자네가, 들다가, 놔버리면…. 같이 드는 나 까지 다치니까 그렇지! 끄응-차!”
휘익-
쿵!
기름먹인 가죽옷으로 몸을 꼼꼼히 감싼 병사 둘이 시체를 수레에 싣고 있었다. 헤델른 성벽 앞 평원에는 그들 말고도 비슷한 옷을 입은 병사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모두 간신이 생겨난 틈을 타 조금이라도 전장 정리를 하기위해 내보내진 헤델른의 병사들이었다.
“이만하면 이 근처 전상자는 다 실은 거죠?”
“끄으응,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나머지는 뮤트 시체거나, 너무 조각나서 당장 장례를 치르기 힘든 것들 뿐이야. 그리고 나 백인장 아니야 임마. 밑에 남아있는 애들이 여덟 명인데 뭔 백인장이냐.”
“하긴. 오물 밭에 구르면서 전장정리하는 백인장님이 세상에 어딨겠습니까.”
백인장 찰스와 그의 부하 토드는 썩어가는 아군의 사체로 가득한 수레를 보며 아픈 허리를 폈다.
힘든 일이다. 온 사방이 물컹물컹한 시체로 덮여 한 걸음 옮기는 것조차 고역이지, 개때처럼 몰려오는 저급 뮤트는 이상할 만큼 빨리 부패해서 눈이 따가울 정도로 악취를 뿜어내지, 그들 사이에 묻힌 전우들의 시체는 갑옷에 투구까지 쓰고 있어 둘이 들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심지어 반쯤 부패한 시체들은 베인 상처와 그 무게 때문에 조심히 들지 않으면 터져나가기 일쑤였다. 그야말로 더럽고, 힘들고, 고된 노동.
그런 일을 하고 있음에도 두 사람의 얼굴에 여유가 묻어나는 이유는,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평소 이 시간에 하는 일에 비하면 전장정리 정도는 휴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엔 시간이 좀 나서 엿같은 꼴은 좀 덜 봤지 말입니다. 원래 같으면 지금쯤 목숨 걸고 그 살덩어리 파도 같은 놈들을 막아내고, 그러는 동안 여기 실려있는 친구들이 비칠비칠 일어나서 물어뜯겠다고 달려오는걸 보고 있을 텐데.”
“운이 좋았지. 나오는길에 마법사님이 그러는데, 오늘 몰려왔어야 할 뮤트 군대가 피 안개 지대 인근에서 죄다 죽어있었다고 하시더라고.”
“오. 근처에 남는 영웅님이 있었습니까? 그 엿 같은 명령 이후로 죄다 어디 산골짝 성에 처박혀서 한 명도 여유가 없다고 들었는데.”
“우리 같은 병사들이 뭘 알겠나. 그냥 적이 안왔으면 안왔구나~ 하고 기뻐하기만 하면 되는거지. 슬슬 가자고. 더 체웠다간 수레를 끌고 가지도 못하겠어.”
“여기, 이 사람까지만 싣고 갑시다요. 이건 내버려두면 큰일 나겠네.”
“응? 아아, 그렇군. 아주 듬직한게 뮤트로 일어나면 골치 아프겠어. 셋에 들어 올리지. 하나, 둘, 세에-”
터억.
셋을 외치고 두 사람이 힘을 주려는 순간. 썩은 사체 아래 파묻혀있던 덩치 큰 사체의 손이 백인장의 팔목을 붙잡았다.
“으아악! 이, 일어났다! 백부장님! 그것 놔, 이 쓰레기 같은 자식아-”
“잠깐, 잠깐만 토드! 이, 이 사람 따듯해! 아직 살아있어! 뮤트화 끝난 사체가 아니야! 부상병이다!”
“끄으으으…. 사, 살려….주….”
토드와 찰스는 허겁지겁 썩은 시체들 사이에 파묻힌 남자를 꺼냈다. 오른쪽 다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으며 전신에 꽤 심각한 상처를 입은 남자였다.
“….죽여주는 게 맞지 않습니까? 이건 이미 시체나 다름 없는 것 같은데, 차라리 고통이라도 덜어주는게….”
“그렇지. 자네 말이 맞아.”
….철컥
백인장 토드는 자유로운 손으로 등에 매고 있던 창을 뽑아 들었다. 오른쪽 허벅지 어림에서의 절단. 전신에 심한 화상에 뮤트 시체들 사이에 파묻혀 있기까지. 살 가능성도 희박하고 살아도 이미 골수까지 뮤트의 피에 감염됐을테니 적어도 고통없이 보내주자는 마음에 그의 창끝이 부상병의 심장을 노리던 찰나.
꽈아악-
“사, 살아있어…. 살아…. 있어…. 살려….줘….”
“….아직 힘이 있군. 목소리도 제법 선명하고.”
“그럼, 데려갑니까?”
“데려가지. 적어도 하룻밤은 저 사이에 파묻혀 있었을텐데 저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저런 친구를 내 손으로 죽이면 꿈자리가 뒤숭숭해질게 뻔해.”
녹아내린 눈꺼풀 사이로 형형하게 빛나는 눈과 그의 팔목을 부여잡는 강한 힘에 창날을 거두고 말았다. 같은 병사로서, 이 지옥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살기 위해 발악하는 이 남자의 모습이 도저히 남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쩝. 하긴, 저 상태로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죠. 뭐, 평소에 여신님한테 기도 열심히 한 친구가 아니겠습니까?”
“음? 자네 신도였나? 여신이면…. 풍요의 교단?”
“자비 쪽입니다. 어렸을 때 가난하게 커서 그쪽 신세를 좀 많이 졌거든요. 허구 헌날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에 있다 보니 그 뭐시냐, 운명이나 기적 같은 것에 좀 관심이 생기기도 하고. 보아하니 이 친구, 진짜 운이 좋았습니다. 화상이 잘린 다리의 출혈을 막은 것 같은데, 이거야 말로 여신님의 인도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얼굴은 마누라가 와도 못 알아볼 정도로 얽었습니다만.”
“운이 좋은 친구라…. 그래, 이 전장에서 제일 필요한 걸 한가득 가지고 있는 놈이로군. 이 친구가 살아남으면, 목숨 값으로 좀만 나눠 달라고 하자고.”
“흐흐흐흐. 잘린 다리로 뮤트 시체더미 속에서 하룻밤이 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대운이라…. 그 정도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 둘이 나눠야 할테니 그 정도는 아니지. 시체로 돌아가는 정도는 되려나.”
덜그덕. 삐거억!
덜컹 덜컹-
묘한 감상에 빠진 두 사람은 그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부상병을 수레에 싣고 도시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전투도 없었고, 사체도 한 수레 정도 치웠으니 오늘 오후 정도는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그렇게, 수십 구의 시체와 한 명의 부상병을 실은 수레가 헤델른의 성문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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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지.’
그리고 그 부상병은 지금 헤델른의 영주성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
– Jokass : 진짜 쉽게 들어왔네. 솔직히 중년 병사가 창 들이대는 순간 조졌다, 싶었는데.
– professor : 전장에 떠도는 미신은 절대 무시할 게 아니거든. 특히나 아군이 많이 죽어 나가는 전장에서는 부상병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떠돌아. 버리고 온 동료가 내장을 질질 흘리며 기어 와서는 등에 칼을 꼽았다던가, 등에 업고 온 동료가 성문을 넘는 순간까지 ‘살 수 있다! 조금만 더 달려!’ 같은 응원을 해줬는데, 성문을 넘은 다음에 보니 이미 업혀있던 동료가 화살에 맞고 죽어있었다던가. 금기시 된 행동에 겁을 주고, 이타적인 행동을 응원하는 류의 미신이 많지.
– 흥안만두 : 원래 동료한테 못할 짓 하는게 진짜 오래 기억에 남으니까.
– professor : 그렇지. 그렇다보니 그런 미신들이 하나 둘 만들어지는 것이고.
– 홀리 : 와아아아…. 그럼 일부러 저런 상황을 연출한 거에요?
– professor : 대충은? 몰려오던 뮤트 무리는 내가 미리 정리했으니 시간이 남은 헤델른 측에서는 적어도 성벽이 기능할 정도로는 시체를 치워두고 싶어질 테고. 그렇게 시체들 사이에 얌전히 파묻혀 있다가 팔을 덥썩 붙잡으며 어떻게든 명줄을 붙잡고 버틴 부상병인 척 하면- 전장정리에 동원된 병사들이 도의로라도 날 병동으로 보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지.
– Jokass : 그냥 도박 아냐? 거기서 그 병사가 눈 딱감고 창을 찔렀으면?
– professor : 뭐, 거기서 창이 심장을 꿰뚫었으면 병동 대신 화장터로 잠입하게 되는 거고. 어느 쪽이든 성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변함 없지 않겠어? 기왕이면 병동쪽이 좋지만. 화장터는 좀 후미진 곳에 만들어지지만 병동은 가장 안전한 후방, 영주성 근처에 있거든.
———
재생력으로 뭘 만드는 것은 못하지만, 재생력을 억제하는 정도는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무리 내 덩치가 희귀한 편이라고는 해도, 누가 머리는 다 타서 대머리에 화상으로 눈꺼풀과 입술이 녹아서 인체 모형같은 얼굴을 하고 한 쪽 다리마저 없는 부상병에게서 ‘구세의 성자’님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장담하건데, 내 입으로 ‘나 성자요~!’ 하고 다녀도 믿는 사람하나 없을 것이다. 미친 사람 취급이나 받지.
그렇게 부상병으로 병동까지 실려오고 보니- 눈앞에 영주성이 따악.
병동은 도시 내에서 신성력이 제일 많이 도는 곳이라 뮤트 첩자에 대한 경계도 가장 옅고.
그나마 주변 시선이라고 할만한 사제들은 밤이 되면 바닥까지 쥐어짠 신성력을 보충하기 위해 병동 구석의 작은 기도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골아떨어져 있었다.
그 다음이야 뭐. 내 손으로 뜯어낸 오른 다리를 재생시킨 다음, 바퀴벌레처럼 영주성 벽을 기어오르고 있게 된 것이다.
1초 수 십 번씩 찔러 들어오는 네임드의 공격과 마주하는 시력은 작게 띄워올린 물방울이 비추는 내부조차 명확하게 구별해낼 수 있었고, 마법사의 감각은 영주성의 외벽 곳곳에 걸려있는 침입자 격퇴용 마법의 존재를 훤히 읽어낼 수 있게 해주었다.
[….스무스한데?]‘그럼. 스무스하지. 전설적인 게릴라 특수부대 출신에, 이전 캐릭터는 본의 아니게 암습만 죽어라 파게 된 암살 전문 도끼 살인마 아니었냐. 침투-암살-도주에는 나름 소양이 있다는 말씀.’
더욱이, 대화방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지금은 2월드의 도끼 암살자와 가지고 있는 자원 자체가 다르다.
눈이 좋은 덕분에 맵핵에 가깝게 입체적으로 내부 구조를 투사할 수 있는 물방울-감시 콤보.
가장 성가신 마법 함정을 간파할 수 있는 마법사로서의 능력.
고양이처럼…. 은 아니고, 고양잇과 맹수처럼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탄력있는 근육. 그리고-
파삭!
마법 수식따위는 몰라도 설치형 알람, 방호 마법 정도는 그냥 박살내버리는 만능 지우개. 오러.
———
– Jokass : 이 캐릭터가 떠밀리듯 성자 태크를 탔는데, 그냥 뒀으면 원래 잘하던 암살자 쪽으로 키워서 대성하지 않았을까?
– 노루Drug해요 : 신도 때려잡는 무지막지한 힘을 담은 도끼가, 머리에 닿기 직전에나 느낄 정도로 은밀하게 다가온다? 이거 못막습니다.
– takealook : 애초에 성력, 오러, 마나라는 세 개의 신비를 다 다루는게 말이 안 됨. 같이 쓰면 그 순간 혈관이고 마나로드고 다 터져나가면서 병신이 될 수밖에 없는데….
– Jokass : 예는 그게 다 터져도 ‘어, 씨발.’ 하면서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이지.
– 흥안만두 : 재생력이다, 애송아!
———
사실상 은신, 잠입, 침투에 필요한 만능키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영주성 내부에 침투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건, 전…. …국의 움…. 심상치가….”
“….건 말도 안 돼는….! …., …..!”
야심한 새벽, 신실한 성직자들마저 지쳐 골아떨어진 시간에도 불을 환히 켜놓고 열띈 대화를 이어나가는 여러 귀족들의 모습에 교수는 속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속이 아주 썩어나가시겠지. 어차피 이길 전쟁이니까- 라고 생각해서 움직였는데, 생각보다 더 피해가 커지고 있거든.’
두꺼운 문 너머에서 두런두런 들리는 목소리와 이따금 이어지는 고성을 들으며, 교수는 약간의 신성력을 이용해 통신 마법을 걸었다.
[라투라, 로-하람! 성자님께서 이 새벽에 제게 연락을 주시다니! 혹여, 여정중에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바쁘니까 짧게. 교리좀 물어보려고 연락했다. 일단, 우리가 지금 성전 중인거 맞지?] [로 하람 맙소사! 성자님께서 교리에 관심을…. 아, 물론입니다. 뮤트 여왕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악신이며, 악신의 자손들과 인류의 명운을 걸고 이루어지는 이 전쟁은 5대 교단이 모두 인정한 성전입니다.] [좋아. 그럼, 성전을 방해하는 놈들은 이단이네?] [그것에 대해서는 고의성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겠으나, 교단의 권고에도 성전에 방해가되는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면, 예.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이단입니다.] [그래…. 그렇구만. 그럼 마지막으로. 이단은, 죽어 마땅하지?] [깨달음의 전당에 가두어 정신을 파괴하고, 육신은 화형대에 매달아 재로 만들며, 남은 재는 교단의 땅에 뭍어 평생 성도들의 발밑에 짓밟히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음. 고오-맙소이다. 그레고리우스 형제님.] [성자님, 혹시 이단을 발견하셨다면 당장 성기사단을-]피싯!
“오케이. 준비 끝!”
———
– Jokass : 뭔 준비?
– professor : 변명거리. 일종의 살인 전 준비운동이지. 이게 전쟁 상황에서 같은 우발적 살인이랑, 생판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누군가에 대한 계획 살인이랑은 좀 무게가 다르거든.
– 흥안만두 : 나쁜 새끼들 몇 죽이는데 그런 준비까지 할게 있나.
– professor : 아가, 여기 사람 한명도 안죽여본 사람이 없단다. 나,너,우리 모두 누군가에겐 나쁜새끼란 뜻이지. 반복되고 강조된 살인으로 단련된 전문 살인마 박교수씨가 하는 말이니 새겨들으렴.
– 노루Drug해요 : 어머 씨발.
———
이렇게 미리 마음을 다잡아야, 작전중에 손발이 멈칫거리다 일 그르치지 않는다는 말씀. 다 경험에서 우러난 행동이다. 군인일때야 ‘명령이다-’ 한마디로 만사 오케이였지만, 지금은 다소 개인의 이익도 어느정도 고려한 상황이니. 마음 다잡아야지.
“스으으으읍- 후우우우. 그럼. 시작해 볼까.”
마지막 심호흡으로 약간 남아있던 죄책감 언저리를 털어낸 교수는, 힘찬 걸음으로 사령관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문앞으로 걸어갔다.
우드드득, 우득! 우직, 뚜두둑!
일렁이는 횃불에 비친 그림자가 마구 요동치며 더 크고, 흉악해진 무언가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사령관들이 있는 방문 앞을 지키던 기사들은 갑자기 드리운 그림자에 직감적으로 검을 향해 손을 뻗었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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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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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똑.
“마로우 백작! 디셀로우 남작! 그럼 이 사태를 어찌 할 것인지 말해 보란 말이요!”
“허허허허. 골슨 백작이 아무래도 잠이 부족한 듯 하군. 내 아들도 다섯 살 무렵에는 잠이 깨면 저렇게 시끄럽곤 했지.”
“아아, 저도 그런 경험이 있지요. 유모들이 원체 힘들어했는데….”
“무, 뭐라? 팔로메 당신! 당신네 텔드랏은 어차피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좋으니까 그렇게 속편한 소리나 하는게지! 어차피 썩어나갔을 보리며 밀이며 싹 다 팔아넘길 수 있으니까! 눈앞에 돈이 아니라 미래를 보란 말이요! 땅! 영지! 그에 따른 새 작위!”
“당신? 이 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누가 저 괴물놈들이 저렇게 맹공을 펼칠 줄 알았소 그럼? 쾨른에서 다 같이 서명해놓고 이제와서 작전을 물리니, 하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뭐라도 남아야 처먹지, 이대로면 확전이-”
“그런 텔드랏에서의 연락을 기다려야-”
“이렇게 우리끼리 싸울게 아니라 대책을-”
똑똑똑똑똑똑똑똑똑-
“….누구야? 이 시간에, 감히 인류 연합군의 사령관님들이 담소를 나누시는데!”
새벽까지 이어진 영양가없는 회의에 씩씩거리던 귀족들은, 그제서야 낮은 소리로 두드려지는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귀족님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
“에잉…. 나가 있거라! 밖이 소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적습도 아닌데, 급할게 뭐 있다고….!”
“그보다 더…. 급한 이야기인데….”
전장에서 목이 쉬었는지 말라붙은 대지처럼 쩍쩍 갈라지는 듣기싫은 목소리에, 장내에 모여있던 귀족들중 몇몇이 눈살을 찌푸렸다.
“쯧쯧. 밖에 문지키는 놈들은 이럴 때 일하라고 세워둔 것인데.”
“어쩌겠소? 평생 칼이나 휘두르던 놈들이니 눈치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지. 내 기사들이 남아있었으면 저런 무례한놈 쯤은-”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
드르륵- 드드드득!
“이이이익….! 오냐, 열어주마! 이 몸이 직접 가서 열어드리지! 내 감히 귀족의 축객령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그 권세높은 기사님의 얼굴을 좀 봐야겠으니!”
분명 나가라 했음에도 집요하게 이어지는 노크소리에, 안그래도 화가 올라있던 골슨 백작이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문 앞으로 다가갔다. 누군가는 귀족이 체통없이 직접 문을 연다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의 기사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비난하고 직접 체벌할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하면, 그것을 통해 이들 중 누군가의 발언권을 약화시킬 수도 있을테니
‘마로우 그놈의 기사였으면 좋겠군. 어차피 내 기사들중 저런 목소리를 가진 놈은 없으니까.’
철컥!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두 팔이 축 늘어진 기사의 갑옷이 올슨 백작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래, 어디 그렇게나 급한 소식이 뭔지나 들어보자꾸나!”
“예…. 말씀드려야지요…. 안타깝게도, 부고입니다. 부고.”
스르륵-
쿵!
올슨 백작의 명령에 갑옷입은 기사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고, 기사의 목덜미를 쥐고있던 괴물의 손 만이 그림자 속에 둥둥 떠 있었다.
“무, 무슨-”
서걱!
골슨 백작의 입이 미처 끝마치지 못한 비명과 함께 위 아래로 분리되며, 그림자 속에 감춰져있던 괴물의 모습이 천천히 회의장의 불빛 아래로 드러났다.
단검처럼 가지런히 늘어선 날카로운 이빨.
온통 피처럼 검붉은 외피에 둘러싸인 흉악한 몸.
그리고, 상악 위쪽으로 잘려나간 골슨 백작의 머리를 들고있는 놈의 날카로운 발톱과, 큼지막한 손아귀.
“부고. 이 환란속에 제 배를 채우기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우리 귀족님들 부고를 전하러 왔다, 이 말입니다요.”
“괴물….! 밖에 누구 없-”
퍼어억!
“….이 야심한 밤에 소리를 질러서야 쓰나.”
모두가 충격으로 굳어있는 사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귀족이 소리지르려던 순간.
두 동강난 올슨 백작의 머리가 포탄처럼 던져져 그의 머리를 산산조각내었다.
끼이이익- 탁. 철컥!
양쪽으로 열어젖힌 문 안으로 붉은 뮤트가 들어서며, 흉악한 괴물은 문명을 이해하기라도 하듯 열린 문을 조용히 닫아 걸었다.
“하루 종일 고생한 사제님들이 밖에 주무시니까, 조용하게. 빨리 끝냅시다?”
“우, 우와아악-!”
.
.
.
.
.
.
툭. 투둑.
털썩. 털썩 털썩.
죽어나간 사람에 비해 이상할만큼 조용한 방이었다.
살을 베어내는 소리를 제외하면 분리된 머리와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 정도. 그마저도 최고급 모피 카펫의 푹신한 털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미안하게 됐수다. 설득이 필요한 쪽도 있는데, 그러려면 당신들 숫자가 좀 줄어줘야 되거든. 꽤 많이.”
….끼이이익, 탁.
참았던 숨을 토해낸 괴물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참사의 현장을 뒤로했다.
다음 날. 헤델른의 기사들은 아침부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야 할 연합군 사령관들이 유난히 조용한 것에 의문을 느꼈으며.
“….이 냄새는? 제기랄, 전원 무장을 갖추고 따라와라! 위쪽이다!”
땡땡땡땡땡땡-
뒤늦게 울리는 비상종소리와 함께, 닫힌 회의실 문 아래로 번져나오는 피와 기절한 두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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