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64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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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 났다. 보통 난리가 아니라, 사령관 떼몰살급 난리가.
“가만 생각해보면 이게 보통 큰 문제가 아니라니까? 당장 헤델른 성에 모여있는 병력만 해도 텔드랏과 자유무역연합에서 온 타국의 병력이며, 그마저도 보레아스, 퀼튼, 치아리, 머서트…. 12개? 13개쯤 되는 다른 영지에서 제각각 몰려든 병력이 아닌가? 각자 나라도 다르고 모시는 귀족도 다른데, 그놈들을 통제할 귀족들이 싹 사라졌단 말이지!”
“아이고, 백부장님! 목소리 좀 낮추십쇼! 병동에는 기사들도 많아서 다 듣는단 말입니다! 이러다 우리 셋 다 잡혀 간다구요!”
“그, 그래도 헤데른의 주권이 다시 로드릭에 돌아온다지 않는가! 지금이야 제일 큰 병력을 지휘하는 텔드랏의 기사단장이 임시 영주직을 맡는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왕성에서 성주 대리를 할 로드릭의 귀족을 보내준다고 하더라고!”
“로…드릭 귀족이라…. 명분…. 때문입니까?”
“크하하하! 행운아 자네 좀 아는구만! 아무리 원정군이라 한들 이렇게 소속이 다른 병력이 뭉쳐있는데, 대가리가 붕 떠버린 상황에서 누가 나서도 상중에 밥그릇 들이민다고 욕밖에 더 먹겠나? 전쟁의 당사자인 우리, 로드릭 출신의 귀족만 빼고! ‘어쩔 수 없이’, ‘지휘할 귀족을 잃어버린’ 헤델른에 새로 부임할 명분이 있는 게 로드릭밖에 없다! 해서, 졸지에 연합군의 이름으로 이 다국적 군의 사령관이 로드릭 출신 귀족으로 결정 됐다는 거야! 이거야말로 돌부리에 걸려 화살 피한 격이 아닌가!”
“아이고오오, 백부장님! 어이, 행운아! 너도 좀 말려봐! 겨우 살아난 목숨 처형장의 이슬로 끝마치기 싫으면!”
“하…. 하하….”
그리고 나는, 헤델른 병동의 눅눅한 병상에 누워 이 말 많은 백인장, 십인장 콤비의 수다를 듣고 있었다.
알리바이 확실해, ‘크고 붉고 흉악한 괴물’을 똑똑히 본 목격자도 둘이나 남겨놨어, 시간도 많아, 성에서 신성력에 제일 많이 노출되는 ‘부상병’이라는 확실한 신원도 있어.
굳이 밖으로 도망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괜히 사라지면 궁수나 패스파인더 계열 영웅한테 추적이나 당하지. 그날의 암살 이후로 벌써 나흘이 지났으며, 병상에 누워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는 동안 뻔질나게 찾아온 이 유쾌한 병사 둘, 백인장 찰스와 십인장 토드와는 제법 친해져 있었다.
“저는 좀 불안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뮤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데다 이런 암살이라니. 뮤트 새끼들이 뭔가 하는 것 같지 않슴까?”
아, 이건 나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 빈자의 기둥? 피안개 발생기가 일종의 레이더 같은 역할도 하는 모양. 정예가 포함되지 않은 물량 공세는 내게 포션 덤핑이나 다름없는 것을 저쪽도 아는 모양이다. 내가 이곳에 오자마자 습격이 딱 멈춘 것을 보면.
물론 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야 ‘운이 좋다.’ 거나 ‘뮤트가 다른 곳으로 공세를 집중한다.’ 정도의 추측만 하고 있지만 말이다.
“토드. 우리 같은 말단 병사는 그런 것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냐? 그냥 어제도 쉬고, 오늘도 쉬고. 지난 나흘 동안 사령관 열둘과 버티지 못한 부상병 빼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것 하나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야.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이 친구 복덩이라고. 우리 행운아 친구가 헤델른에 오고 나서부터 좋은 일만 생겼잖아! 나름 증명이라면 증명인 셈이지!”
“….확실히, 이 친구가 보통이 아니긴 하죠. 그때 마법사 말에 그…. 뭐랬더라?”
“불꽃의 인도가 닿은 자. 크으으, 좋겠어? 무려 ‘번지는 불의 아바로스’님이 직접 말씀하신 마법사의 재능이니 말이야! 행운아, 혹시 진짜 마법사가 되어서 전용 가드를 뽑게 되면…. 생명의 은인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나랑 이놈이 지금은 이렇게 일반 병으로 구르고 있지만 이래 봬도 기사의 종자 출신이라고. 모시던 기사님이 돌아가셔서 이렇게 끈 떨어진 연이 된 거지. 꼭, 꼬옥 좀 부탁해! 나도 저 오물더미에서 악쓰는 보병 말고 마법사랑 같이 성벽 위에서 방패나 들고 있게!”
중년의 백인장은 넉살 좋은 미소와 함께 붕대에 감긴 내 손을 꼬옥 잡으며 강하게 어필했다.
이들이 왜 이렇게 호들갑이며, 이 귀한 휴식시간에 왜 부상자 병동까지 찾아와 연고도 없는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바깥 얘기를 떠들어대고 있느냐.
그것은, 막 암살을 성공하고 헐레벌떡 병동으로 복귀했을 때,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인가. 나의 불꽃에 당하고도 살아남은 병사가 있는 곳이?’
‘예, 예 마법사님! 저와 토드라는 병사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확실한가? 팔이나 다리를 그슬린 정도가 아니라, 전신이 녹아내릴 정도로 화상을 입었고, 그럼에도 살아 있었다?’
‘틀림없습니다. 피부가 녹아 잘린 다리의 출혈을 막을 정도였지요.’
‘흐음…. 알겠다. 이제 가보거라. 내가 직접 확인할 테니.’
암살을 마치고 재잠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찾는 목소리. 내 쪽으로 다가오는 강대한 마나의 기운. 처음에는 ‘시바, 걸렸다!’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아바로스라는 5위계 불마법사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죽은 듯 누워있는 내게 다가온 마법사는 허락도 없이 내 몸에 감긴 붕대를 풀어냈고, 흉하게 일그러진 내 피부를 보며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로군.’
‘이 정도라면 뼛속까지 그을었을 열기였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이자에게 재능이 있다는 뜻이겠지. 더 높은 불을 향해 다가갈, 요즘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압도적인 재능이.’
‘신관. 이자가 병동에 도착했을 때, 따로 신성 치료 같은 것을 행했나?’
‘그 화상 환자라면…. 일반적인 화상 응급처치로 끝냈어요. 출혈도 없고, 이상하게도 피의 감염이 없어서.’
‘그럴 수밖에. 화상으로 죽은 피부가 전신을 뒤덮었으니 그 살아 움직이는 핏덩이들이 시체인 줄 알고 다가가지 않은 것이야. 전장에서 활동 중인 불꽃의 마법사들 중 이런 경우가 종종 발견되곤 했지.’
‘이 자는 불의 사랑을 받은 자다. 분재처럼 곱게 키워진 요즘 마법사들, 죽지 않을 만큼의 열기 속에서 깨달음을 떠먹여주는 요즘 것들과는 달리 생사의 간극에서 나 아바로스의 불꽃을 받아 타올랐으니, 더욱 순수한 불을 품었을 것이야. 살아남음으로써 재능을 증명했다. 정신을 차리는 대로 나를 찾아오라 일러두도록.’
‘이, 이 몸으로는 아직 움직이는 것조차….’
‘그 상태가 가장 좋다. 나의 불꽃이 피워냈으니 내 제자로 받는 것이 맞겠지. 다소 물비린내가 나는 것이 흠이지만, 희미한 잔향 정도는 불구덩이에 끓여내면 그만이니.’
헤델른에서 활동하는 화염계 마법사는 그가 유일하다고 하니, 나를 이렇게 만든 불꽃이 자신의 마법이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나름 오러로 마나를 똘똘 싸맨 덕분에 수계 마법사인 것은 들키지 않았지만, 그때는 진짜 암살 걸린 줄 알고 목격자를 전부 피떡으로 만든 다음 도주할 생각까지 했었다. 진짜 그 불 마법사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아무튼, 그렇게 마법사 아바로스는 제 할 말만 다 하고 횡하니 가버렸으며. 병동 밖에서 그걸 엿듣고 있던 예의 ‘생명의 은인’ 둘은 ‘….마법사! 아직 수행 인원도, 전용 가드도 없는 신품 마법사!’ 같은 소리를 하며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이렇게 내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바깥 소식도 알려주고, 간병 비스무리한 것도 해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마법사의 가드는 일반 병사보다 생존 확률이 높으니까.
‘확실히 헤델른의 병력은 킹스랜드보다 질이 좋네. 극단적인 상황에 익숙하기도 하고, 멘탈도 단단하고, 무엇보다 생존 의지가 강해. 이런 놈들은 재수 좋으면 진짜 살아나가지.’
나를 헤델른에 들인 두 병사, 찰스와 토드만 봐도 전체적인 헤델른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전쟁 초기부터 지금까지 단련된 베테랑 숙련병. 뮤트 쪽에 정예가 많았으면 이런 일반 병사가 아무리 숙련되어도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만, 뮤트의 정예는 나를 쫓다가 죽고, 사막에 몰려가서 죽고, 이래저래 많이 소모된 상황이었다. 덕분에 전선은 주로 물량 공세와 드물게 이어지는 정예 뮤트의 돌파가 주를 이루었고, 이렇게 잔뼈가 굵은 베테랑 병사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 것이다.
‘킹스랜드는 왕의 부제로 사기가 바닥나서 좀비처럼 움직이고 있었지. 앞으로는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전쟁 초기부터 아득바득 살아남은 서부전선 병력이랑은 좀 차이가 날 거다. 그쪽은 나라 지키겠다고 막 입대한 민간인 신병도 많이 있었으니까. 제대로 된 병사들이 고련을 거듭한 이쪽 병력이랑 차이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지.’
병력의 질도 좋고,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던 헤델른 사령부도 새로 부임한 로드릭 귀족 한 명으로 단일화되어 명령체계도 깔끔해질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지. 심지어 연합군 사령관 놈들은 노 저을 생각도 없는 가라 사공들이었고.’
연합군 최대의 문제는 로드릭이 급해도 너무 급했다는 것이다. 국가 단위 지원군부터 영지 단위 지원군까지, 단 한 명의 지원군도 가리지 않고 받는 바람에 생겨버린 많은 지휘관.
크게는 만 명 단위 지원군부터 적게는 영지 사병 50인, 어디 도시국가인지 부족인지 모를 놈이 끌고 온 잡병 20인, 어디서 온 아무개의 병력, 누구네 경비병 등등…. 앞뒤 가리지 않고 모조리 받아버리면서 병력 풀이 아주 개판이 되어버렸다.
만약 이런 중구난방의 지원군을 받은 게 제국이었다면 상황이 달랐겠지. 제국은 이들 전체를 합친 힘이 있는 만큼, 이들이 입고 온 각양각색의 갑옷이며, 투구, 무기 같은 걸 싹 벗겨버린 다음 ‘너는 지금부터 제국군이다!’ 하고 제국 제식갑옷 풀세트 입혀서 마음대로 굴렸을 것이다.
하지만 무근본 지원군 덤핑을 받아낸 것은 제국이 아니라 로드릭이었으며, 당시 이미 국토의 절반 이상을 빼앗긴 로드릭은 병력의 질도, 숫자도 떨어져 제대로 그들을 이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상황을 주도해야 할 전쟁 당사자는 부족한 세력 덕분에 발언권이 작살났고, 그 덕에 구심점을 잃은 지원군은 연합군이 되어 사령관 회의 따위로 전쟁의 향방을 결정하는 개판이 되었다는 게- 지금까지 서부전선의 상황이었다.
해결 방법? 있지.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간대. 그럼 배가 다시 제 갈 길 갈 수 있을 때까지 사공을 덜어내면 되는 것 아냐?
마침 헤델른에 있는 사령관들은 킹스랜드 방향, 서부 전선을 좌익으로 보면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길목을 뮤트가 가로막아 이곳에 발이 묶인 자들로서, 쓸모도 없이 넓게 펼쳐선 우익 방면의 사령관들이다.
남의 전쟁에서 땅따먹기 한 것도 괘씸한데 가장 치열한 전장인 서부전선과 중앙의 킹스랜드에서 한-참 떨어진 로드릭 동부에 자기 휘하의 부대를 보내 알박기나 해대는 놈들. 거래가 있었겠지. 전쟁이 끝나면 길-다란 전선뿐만 아니라 지금 뮤트에게 점령된 로드릭 북부까지 전부 매물로 나올 테니, 위험한 전장에 남은 쪽 사령관들에겐 이쪽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좀 한적하고 안전한, 쓸모없는 우익에 자리 잡은 사령관들은 고만고만한 크기의 땅에 만족하고.
그래도 서부전선 언저리에 남은 놈들은 ‘싸워 이겨서 처먹겠다’ 라는 의지라도 있지, 동부로 발 뻗은 놈들은 그저 꿀 빨다 부스러기나 주워 먹겠다는 병신 집단이다. 설득해봤자 쓸모도 없을 테니 모조리 쳐죽이는 게 옳다.
‘그리고,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라도 태우면 모닥불 정도는 피울 수 있는 것처럼, 이놈들을 죽여서 발생하는 효과도 있거든.’
쓸모없는 사령관을 쳐내고 혼란을 틈타 지휘권을 로드릭이 스리슬쩍 가져가는 게 일단 기본 목표. 거기에, 여봐라는 듯 피웅덩이에 잠긴 귀족들의 시체가 또 부가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가령, 지금 병동 구석에서 소곤거리는 저 사제 둘처럼 말이다.
“아, 베르델 사제님. 성에 가셨던 일은 잘 끝나셨나요?”
“….참상이었습니다. 악신의 혈액도, 사이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머리 잃은 몸을 전부 제 자리에 앉혀놓은 것도 그렇고, 그렇게 자른 목을 가지런히 전시해놓았다는 것은 악신의 자손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사령관의 자리에 앉은 사체들과, 떨어져 가지런히 바닥에 정리된 머리라니….”
“쉬잇! 목소리를 낮추세요. 환자들이 들으면 불안해할 거예요.”
“으으음, 라투라. 죄송합니다. 동요하고 말았군요….”
“그래서, 흉수에 대한 단서는?”
“성기사들에게 붙잡혀간 기사 둘이 전부입니다. 형제님도 그…. ‘붉은 뮤트’에 대해서는 들어 보셨겠지요?”
“아아아, 라투라 엘-사미아. 저주받을 이름을 귀에 담은 것을 용서하시길. 설마…. 그것이?”
“….기록된 목격담과 외형이 일치하는 듯합니다. 일전에도 아무도 모르게 침입하여 마탑을 붕괴시킨 전적이 있었지요. 놈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 듯합니다.”
“이럴 수가. ‘하얀 죽음’에 이어 ‘붉은 뮤트’까지 이곳 서부전선에….”
“….사령부에서는 각 사령관들에게 안전한 곳에 정예 호위와 함께 머물 것을 지시했으며, 각 교단의 본단에서도 사제들에게 성기사와 함께 행동할 것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적의 암살자 둘이 날뛰기 시작했다는 것은, 물량 공세로 고착화된 전선을 암살로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보이니까요.”
두 사제는 각자 성호를 그으며, 그들에게 지정된 성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음, 좋아. 소문이 잘 버무려지고 있군.
필요 없는 사령관들을 죽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 그것은 암살이라는 수단에 기본적으로 따라붙는 ‘공포’였다.
사령관 자리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아니라, 적의 최고위 뮤트가 기를 쓰고 죽이려 드는 전쟁의 첨단에 위치한 자리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
귀족은 언제나 자기 보신이 최우선인 족속이다. 본격적으로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순간 그들의 활동은 움츠러들고, 그만큼 발언권은 약화된다.
‘아마 연합군이 전체적으로 몸 사리는 시간이 어느 정도 이어지겠지. 소문만 들으면 붉은 뮤트는 침투, 테러에 있어 에데오르나 이상 가는 네임드로 알려져 있으니까. 보통 병력으로 막기 힘든 만큼, 아군은 그 빌어먹을 포위망을 완성하기 위해 안 그래도 얇은 양익을 더 뻗어나가는 것을 멈추고, 거북이처럼 웅크리게 된다.’
공포를 이용해 그 개똥 같은 작전의 진행을 막는다.
‘뮤트의 피에 면역인 내가 있으면 적의 챔버 메이드 라인을 돌파할 수 있어. 아군이 웅크려있는 동안, 로드릭 정규군과 함께 전공을 올린다. 목표는, 대가리를 잃고 동떨어져 있는 잉여 병력, 동부 주둔군.’
아군이 움츠러든 동안 로드릭은 왕의 이름으로 전공을 올리고, 영토를 수복하며 전쟁의 중심으로서 발언권을 회복한다.
‘그리고, 시오드 4세가 작전을 주도할 수 있게 한 다음, 제국의 지원군이 도착하면. 상대의 끝없는 물량에 맞설 수 있는 막대한 보병전력이 도착하면-’
그때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전쟁을 치를 수 있게 되리라.
시오드 4세, 에르빈에게는 미안하지만 녀석을 이용하게 될 것은 물론이다. 비록 의지도 있고, 싹수도 괜찮다 한들 녀석은 이제 막 왕위에 오른 11살 소년이며, 온갖 도시국가와 나라가 뒤얽힌 전쟁 외교의 장에서 그들을 휘어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소년왕은 나와의 대담에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으니. 녀석을 움직여 사령관 회의를 주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겠지. 광명 교단의 지원사격까지 들어가면 거의 확정적으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연합군 사령관들을 압박하고, 로드릭의 발언권을 키워, 결과적으로 이 전쟁을 내가 주도하는 판으로 만든다. 이게, 뮤트와 최종 결전을 치르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병상에 누워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노라니, 머릿속에서 큭큭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이드다.
[아군 지휘관을 암살하고, 왕을 뒤에서 조종하고, 그러면서 사람들에게는 성자로 칭송받는다니. 아무리 봐도 악의 수괴 아니야?]‘음…. 맞지? 거의 클리셰에 가까운 악역이지? 계획을 세워 목적성을 가지고 사람을 죽였으니 특수 살인, 죽인 사람들을 멋들어지게 전시했으니 사체 손괴, 혹은 유기. 아주 흉악범이로군.’
이유야 어떻게 됐든 장난처럼 사람 열댓 명의 목을 썰었다. 사람을 맨손으로 토막 냈는데 나쁜 일이 아닐 리가 있나.
‘….어쩌겠어. 필요한 일인데. 해야지.’
[덜 죽여서 더 많은 사람을 살린다…. 이거 네가 되게 싫어하던 거 아냐? 사람 머릿수로 계산하는 거.]‘그렇긴 한데, 내가 높은 지위에 선 사람의 시선으로 보게 되니까…. 다소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 있긴 하구나, 하는 걸 느껴버렸어.’
쓰레기들에 대한 처벌이라, 그리 생각하면 막 불편하고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로드릭의 발언권 수복’을 위해 ‘사령관 12명의 목숨’을 교환 조건으로 내건 것은 변치 않았다.
‘교육적인 게임이라더니. 씁쓸하긴 하군.’
[게드로이츠, 그 늙은이가 말했던 것 말이야?]하이드의 물음에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저저저 인면수심의 나쁜 새끼네!’ 했던 사람들의 사정이. 돔의 총장과 같은 위치에 선 사람들이 왜 술독에 빠져 사는지 그 편린 정도는 이해한 기분이다.
‘….~를 살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했다! – 하는 말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그걸 변명 삼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아마, 다른 사령관들도 사람을 무슨 장난감 병정처럼 보는 그런 사람이 되기 전에는 다들 너랑 같은 각오를 했을걸.]‘에이, 난 다르지.’
[달라? 어디가?]부스럭!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이곳을 떠날 때가 다 된 것 같았다. 병상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그 백인장이 센스 있게 구해놓은 목발을 보고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완성자잖아 완성자. 인류 최고의 과학자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이 [그게 너야!]라고 점찍어놓은 초인. 뭐가 다르겠지. 그게 뭐가 됐든.’
[….다르길 원한다는 점에서는 다르군.]바깥의 소란 사이로 부우우우- 하는 마력 엔진의 진동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며칠 헤델른 동태 살핀다고 잘 쉬었으니. 이제 다시 성자님이 할 일을 하러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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