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70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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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식. 신자들이 성자로 추대한 이를 그들의 신 앞에 공식적으로 보이며 ‘이자가 당신의 뜻에 어울리는 자 인지 확인해주소서-‘ 하는 자리라고 볼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이걸 한 다음에야 교단이 이 사람이 성자다, 라고 공표하는 것이니, 내 경우에는 순서가 거꾸로 됐다고 볼 수 있겠다.
예상은 했지만, 5대 교단의 공식적인 시성이라는 것은 꽤나 복잡한 일이었다.
‘교단의 초대 성자, 성 하라우드께서는 악명 높은 산적이셨습니다. 광명의 부름을 받은 그분께서는 이곳 고해실에서 모든 죄를 토로하신 뒤, 앞으로는 평생 세상에 사죄하며 살아야겠다고, 이제 그분께 필요한 것은 기도하기 위한 두 손밖에 없다며 스스로 제 발목을 자르신 다음, 그 상태로 고해실에서 성상 앞까지 걸어가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시성의 시작은 본단 시설의 가장 외곽. 입구 바로 옆 고해실에서 시작된다.
고해실에서 본관 계단까지 이어지는 맨발 행진은 초대 성자의 참회를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동시에-
『와아아아아아아!!』
본관 앞, 석재 기둥에 둘러싸인 둥근 광장에 모여든 일반 신도들에게 그들이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존재가 실존함을 증명하는 자리다. 성자는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며 그들 하나하나와 인사를 나누고, 신도들은 이곳에서 로 하람의 손길이 닿은 성체를 직접 만져보고 그분께 직접 인사드리며 소란에 신경 쓰지 않고 로 하람과 성자의 앞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물론, 누구보다 깊이 존경하기에 성체와 법복을 상하게 할 정도의 접촉은 일어나지 않는다.
타박. 타박. 타박.
스르륵- 펄럭!
‘성자님께서 지나가시면 걸어가신 그 길은 커다란 천으로 덮어 그늘 속에 잠길 것입니다. 이는 어둠 속을 걸어온 우리 교단의 오랜 역사를 상징하나…. 역시 가장 큰 의미는 70년 전 세상을 덮친 끔찍한 어둠과, 그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불살라 세상을 지킨 형제님들을 기리는 의미입니다.’
‘….어두워서 길이 안 보이면 어쩝니까? 나 여기 잘 모르는데.’
‘성자님께는 보일 테니 헛소리하지 말고 교전이나 마저 외우시지요.’
석재 기둥으로 이루어진 길은 성자가 지나감에 따라 두터운 하얀 천으로 가려지며. 그렇게 그늘에 들어간 성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환호성을 멈추고 엄중한 침묵에 들어간다. 그렇게 그림자와 침묵이 성자의 뒤를 밟아 본관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도착하는 순간. 본단의 모든 시설 위를 두터운 천이 덮으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이곳에 모여든 모두 위로 내려앉고.
….반짝-
“오오오오…. 라투라…. 광명 낡은 도구, 아셀리아 티렉이 감히 광명의 새 빛이 되실 분께…. 오래된 빛의 흔적을 바치나이다….”
본단의 성수 수호사제 중 가장 나이 많은 이가 성수의 근원이 담긴 잔을 내밀면, 시성받는 이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신성한 빛을 발하는 그것을 경건하게 받아 마신다.
로 하람이 직접 내렸다는 이 액체는 본단의 신성한 샘물 중심에 자리 잡고 성수를 무한정 만들어내는 신의 선물이며, 감히 인간은 그것을 흡수할 수가 없어 그동안 시성식에 따라 이것을 마셔왔던 성자들은 모두 눈물로 그것을 환원하여 돌려주었다고 한다.
꿀꺽-
‘쿨럭! 끄으으윽!’
….너무 강대한 신성력에 내 블러드아머와 함께 체조직이 터져나가고, 흘러나온 성스러운 눈물과 함께 성자님의 각혈이 섞여서 황금 성수잔으로 되돌아가는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으나.
절차상 [성수의 근원을 마신 성자가 되돌려준 모든 액체]가 새 성수의 근원으로 자리 잡기에 성수 수호사제는 불안한 눈길로 흘끔거리며 핏물이 된 성수의 근원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성수 계승식이 끝나면, 성자는 그제서야 광명교단 본단의 중심, 로 하람의 성상이 있는 신전 건물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탁-
새로 받아온 성수의 근원, 황금 잔이 성상 앞에 놓이고.
신도를 헤치고 또 교단의 높은 계단을 오르며 지쳤을(지금까지는 노인, 혹은 가녀린 여성이었다) 성체를 부축해 성상 앞으로 인도하고, 성유 그릇에 작은 심지만 달아둔 호롱불만이 어둑한 신전의 빛으로 자리 잡으면.
“라투라. 여기까지 험하고 고단한 길을 헤쳐오신 광명의 인도자시여 이제, 고행의 종착점이며 새로운 출발점에 서셨으니…. 그 분 앞에 서소서.”
“어…. 대주교님? 분명 여기까지 오면 끝이라고….?”
“저희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다음은, 오직 두 분께서 진행하셔야 하옵니다.”
“….두 분?”
나의 의문에, 노먼 대주교는 흐릿하게 타오르는 호롱불과 그것에 비친 성상을 번갈아 가리켰다.
-달칵.
이윽고, 어둠에 잠긴 드넓은 신전에 성자와 성상만 남게 되는 순간.
모든 준비과정을 끝낸 ‘시성’ 이 시작된다…..
고 하는데.
“어…. 이제 기도하면 되나? 끝인가?”
노먼 대주교가 가르쳐준 과정은 계단을 올라 본단 신전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까지였고. 신성한 의식이라곤 어렸을 적 교회에서 피자빵 준다고 참석해본 예배가 전부인 내가 이 다음 과정을 알 턱이 있나?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적막한 어둠 속. 괜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의자도 건드려보고, 내가 피를 토하는 바람에 새빨갛게 물들어버린 성수잔도 한번 흔들어보고 할 무렵-
화르륵!
“어휴.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거기 앉으라고?”
대주교가 성상 앞에 놓고 간 호롱불이 당장 여기 꿇어앉으라는 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로 하람이라. 신은 어떤 존재일까?]‘글쎄? 보면 알겠지?’
데이터 소울 수백만, 어쩌면 수천만 이상의 믿음이 한데 집합한 존재인 만큼 보통 놈은 아닐 것 같은데.
얼추 세계수와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며 나름 경건하게 성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스으으읍- 후우우우. 좋아, 나도 신세 진 게 좀 많고 하니.”
.
.
.
.
.
.
“ㄹ-”
투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번쩌억-!
“오오오오….”
“라투라….! 빛이, 빛의 기둥이…. 신전으로!”
본단 광장에 모여있던 신도들은 그들을 가린 두터운 천막을 단번에 날려버리며 신전 위로 내리꽂힌 빛의 기둥에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고 신전을 향해 기도를 올렸으며.
“대주교님…. 으극, 흑! 보고…. 계십니까, 대주교님!”
“보고 있네…. 눈먼 이에게도 모일 만큼 아주 밝고, 강한 빛이 아닌가.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야….”
대주교와 성기사단장을 비롯한 성기사들, 사제들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성녀를 잃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지상에 닿지 않았던 로 하람의 빛.
그저 당신께서 빛이라, 그분의 뜻이 닿은 게 틀림없다고 말로만, 확신으로만 전하던 세월은 이제 끝났다.
이곳에 모인 모든 광명의 도구 앞에서, 로 하람은 저 안에 있는 존재가 그분의 손길이 닿은 이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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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쩌억-!
“-ㅏ투라-아우으아악!”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어…. 얻…. 어…. 으어….어?”
[읏,어….으…. 으어? 어으….어?]….뭐지? 내가 뭘 본거지?
단단한 청석이 닳도록 누군가 무릎을 꿇어왔던 자리. 성유를 태워 피어오른 호롱불이 밝혀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하면 되겠거니 하는 생각에 입을 벌린 순간-!
‘라’까지 튀어나오기도 전에 어딘가로 끌려갔다가, 그게 뭔지 뇌가 인식하기도 전에 되돌려 보내졌다.
타닥, 타닥….!
몸에서 불꽃 튀는 소리가 들려 내려다보니 오늘 새로 맞춘 예복이 홀라당 타서 재가 되어있었다. 막 몸에서 연기로 피어오르고, 쓰라리기도 한데 또 다치거나 상한 곳은 보이지 않고.
‘….신전 천장이 이렇게 높았나?’
갑자기 높아진 천장에 주위를 둘러보니 의자, 성상을 비롯한 주변 모든 것들이 두 뼘씩은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바르르르….
“아니…. 내 짱짱한 몸은 어디 가고, 웬 뼈가지가….”
신전이 커진 게 아니라 내가 작아진 것이었다. 터질듯한 근육과 구렁이 같던 힘줄은 어디로 갔는지 앙상한 뼈와 가죽만 남은 내 몸.
몸만 그런 게 아니라, 머리도 기절하기 직전의 그것처럼 몽롱했다.
‘빈혈. 거의 뒈지기 직전 수준의 빈혈….!’
아, 로 하람. 망할 신성력 같으니라고.
———
– 흥안만두 : 교수야! 너 뭐 본거 있냐! 우린 아무것도 못봤는데!
– professor : 얻, 어, 으어…. 어….
– takealook : 너 지금 말 잘해야돼! 아니, 하지마! 이게 다들 일할 시간에 방송한거라 막 전부 다 보고 그런건 아닌데, 지금 구시대 종교인들부터 황무지에 새로 생긴 사이비 종교 집단까지 저게 뭔지 각자 입맛대로 해석한다고 난리라고!
– professor : 어…. 이게…. 신?
– Jokass : 말 하지마! 진짜 아무 말도 하지마! 지금 나 작업하는 곳 쉼터에서 벌써 싸움 붙었어! 집단의 순수한 믿음이 응집한 저것을 신이라고 부르는게 맞느냐, 아니냐 하면서 업자 둘이 멱살 잡았다고! 난민촌이나 다른 곳도 비슷할 거야! 입도 뻥끗하지마!
———
밖에도 뭐, 소소하게 난리가 났다고 입 닥치라고들 난리인데. 뭘 봤어야 말을 하든가 말든가 하지.
번쩍! 하고, 지대공 장비용 야간 서치라이트가 내 눈 바로 앞에서 비추는 듯하더니, 뭔가 어어어어엄청난 게 투화아아아악- 하고 지나가다가….
뚝, 하고 현실로 내팽개쳐진 것. 내가 기억하는 건 이게 전부다.
만능 기억장치 하이드도 게게겍- 하는 소리나 내면서 의식공간 바닥에 굴러다닐 뿐.
달칵-
웅성웅성
저벅 저벅
그렇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몽롱한 상태이다 보니 누군가 조심스럽게 신전 문을 열고, 다급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것도 바로 옆에 와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밖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기다리던 노먼 대주교와 성기사 그레고리우스, 그 외 성직자 30명 정도.
“대주교님! 성자님이, 성자님의 태산같이 강건한 육체가….!”
“동요하지 마시오! 형제께서는 하늘과 땅을 이은 빛의 기둥을 보지 못하시었소! 필멸자의 몸으로 신과 마주했으니 살아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일 터!”
성장한 뼈는 그대로라 자벌레처럼 홀쭉해진 내 모습에 성직자 몇이 숨을 집어삼켰지만, 대주교는 그런 그들을 질책하며 바닥에 쓰러진 나를 부축했다.
“이, 이 감사를 어찌 표현해야 할지….”
“어으…. 솔직히 아직…. 뭐가 뭔지도 잘….”
“더는 겸손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이렇게 선명하게 성흔이 새겨졌으니 이제 당신께서는 살아있는 그분의 증표요, 교단 그 자체이십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필멸자보다 존귀하신 존재로서 당신과 마주하는 모든 인간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하며, 그렇게 명하실 권리 또한 부여받으신 겁니다!”
노먼 대주교가 세상 그 어떠한 사람보다 행복한 얼굴로 손짓하자 나를 일으키고 등에 성유를 발라주던 사제 둘이 조심스럽게, 아주 경건하게 거울을 내밀었다.
거울에 비춰진 등. 여러 굵직한 흉터들 속에서도, 뼈에 달라붙은 가죽 위로도 선명하게 보이는 하얀 흉터.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형상화한듯한 그 방사형 흉터는, 모르는 내가 봐도 광명 교단과 연관 있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 뒤로도 그들은 내 주변에서 뭔가를 한참 했다. 뭘 바르고, 입히고, 다듬고, 조용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다 펜이 부러져라 열심히 적어대고….
“저어…. 성자님?”
“어으으…. 예….?”
“혹여, 무엇을 봤는지…. 이 미욱한 신도들에게 조금이라도 말씀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
그렇게 뭔가 남은 과정이 진행되던 중,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깃펜을 놀리던 사제 중 하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성녀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광명의 빛이 직접 지상에 닿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 만큼, 그것이 어떠한 뜻으로 다가왔는지 알고 이행하는 것이 우리 광명의 도구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이 미욱한 도구의 질문을 불경이라 여기지 않으신다면, 조금이라도 좋으니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아니, 뭘 가르쳐달라고 해도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성자님! 신언이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시옵니다! 그저 성자님께서 받아들인 대로, 어떤 느낌이었다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옵니다!”
필기하던 사제의 말에 동참하며 같이 고개를 조아리는 여사제. 어느덧 손을 멈춘 사제와 성기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신성한 뜻을 경청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대주교님과 그레고리우스도 그걸 기대했는지, 날 바라보는 눈에서 광채가 뿜어나올 지경.
어…. 근데 이걸 진짜로 뭐라고 해야 하냐.
그게…. 그러니까….?
“….핵폭풍 직격으로 맞으면서 상환 및 재임대 계약서 작성한 느낌?”
“….성자님?”
“그게…. 무슨?”
“그…. 블랙홀 한가운데서 얼차려 받은 느낌? 몸을 실로 뽑아서 변기에 흘려보낸 느낌?”
“대, 대주교님! 성자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알아들을 수가….!”
“우, 우선 기록하시게! 들리는 발음만이라도! 아무래도, 듣고 오신 것을 그대로 전하시는 듯하온데….!”
“….신언!”
“아뿔싸, 이럴 줄 알았다면 더 많은 형제들을 들여 이것을 듣게 하는 것인데….!”
신언은 무슨. 그냥 바깥쪽에 얽힌 말이라 저들이 이해할 수 없게 뭉그러진 것뿐이겠지.
게임 속 존재인 교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이었지만, 내 표현력으로는 이것 말고는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진짜 뭔지 모르겠는데 어쩌라고.’
존재와 비존재 사이, 그 언저리에 위치한 무언가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인데 거기에 뭘 했고 뭘 만났는지가 끼어들 틈이 어디 있겠어. 그냥 ‘어어어…. 뭔가 했다! 뭔가 만났다!’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지.
그나마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경험이 ‘괜찮았다’ 정도의 감각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데이터소울 몇백만 개가 ‘광명의 신’이라 믿는 집단 지성님은 성자 교수가 꽤나 마음에 드셨나 보다.
휘청-
“이, 이런! 피로하실 성자님을 두고 이런 질문이나 할 때가 아니었거늘. 그레고리우스경! 성자님을 안으로 뫼시게, 얼른!”
“예, 대주교님!”
부축을 받아 일어난 내가 휘청거리자, 대주교는 성물 항아리라도 깨진 듯 비명을 지르며 그레고리우스에게 나를 업을 것을 명했다.
“노먼…. 그….”
“하찮은 인간사에 관련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성자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보중하는 것에만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아니…. 프…. ㅍ-”
“편히 휴식하며 회복하실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일 기울일 테니, 잠시 눈을 붙이시지요. 찾아온 신도들과 손님은 저희가 알아서 물리겠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가서 뮤트 피좀 구해다 달라는 말이었는데!’
아무래도 신급 신성력에 직빵으로 샤워 당하다 보니 몸에 뮤트 혈액이 죄다 날아간 것 같아서 아무 뮤트나 한 마리 잡아 와달라는 부탁이었는데, 너무 피로하고 무력해서 그 말을 다 끝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신성력 세례에 근육이 다 녹아버린 나는 봉인 당한 흡혈귀마냥 ‘피, 피를….’ 같은 소리를 속으로 되네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까무룩한 의식 언저리에서, 신전 밖으로 나간 대주교의 목소리와 신도들의 함성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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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대주교는 교단이 마침내 공식적으로 로 하람의 뜻과 연결됐음을 공표했다.
시성식에 참여한 이들은 물론 참여하지 못한 이들도 그것이 사실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광명의 신성을 다루는 이들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새로운 권능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자비의 교단 사제들이 고유의 지속 회복주문을 가지거나, 지혜 교단의 폭넓은 사고력 증진, 풍요 교단의 성장 촉진주문, 용기교단이 신성력을 뭉쳐 오러 만큼 강한 힘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찌지익!
“으음? 갑자기 법복이 좀 끼는 것 같은데?”
“형제님도 그러십니까? 저도 좀 옷이 작아진 느낌이….”
“아니, 말푸스형제? 언제 그렇게 몸을 단련했는가?”
푹 푸욱 푹 푹!
“아니, 갑자기 왜 이렇게 삽질이 가뿐하지?”
“자네, 농기구 손잡이에 파인 자국이…. 설마 손자국인가?”
….광명의 성녀가 살아있을 적, 광원에 신성주문을 담아 그 빛이 닿는 모든 곳에 신성한 효과를 부여하던 ‘신언 광역화’의 권능과는 대-단히 거리가 먼 권능이긴 했으나.
“오오오! 힘이 넘친다! 라투라!”
“정말로, 정말로 성자님이 탄생하신 것이로구나! 흐으음!”
….중요한 것은 성녀를 잃고 그저 믿음 하나로 뭉친 그들의 신성력에 다시 한번 교단의 특색이 어린 신성력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 으으음…. 그레고리우스 형제. 뭔가, 교전에 나온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
“라투라. 믿어 의심치 마시옵소서, 대주교님. 성자님의 몸이 저렇게 된 것은, 어쩌면 그분의 강대한 힘을 형제와 나누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으으음…. 라투라, 로-하람. 내가 실언을 하였군. 나도 아직 믿음이 부족했던 게야….”
노먼 대주교는 가녀린 성수의 여사제들이 실수로 박살 낸 ‘성수의 샘터’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나, 갑자기 커버린 키에 문지방을 들이받아 그것을 부숴버리는 초로의 사제들의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교단 본단에서 로 하람을 모시는 만큼 강한 신성력을 가졌으며, 그만큼 강력한 은총이 주어지는 바람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심지어 그레고리우스를 비롯한 성자를 모시는 성기사들은 갑옷 이음매가 삐걱거릴 정도로 몸이 불어나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라투라. 광명이시여…. 은총을 내려주신 것에는 더 기쁠 수 없을 정도로 감읍드리오나,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시옵니까….?’
대주교는 성자가 실려간 방향을 쳐다보며, 알 수 없는 신의 뜻을 해석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의 기도는 새벽까지 이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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