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76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27)
****
쿠우우웅-
또 하나의 기둥이 붉은 연무를 흩날리며 쓰러진다. 이 근방에서 가장 크고, 가장 잘 자란 것들 중 하나였다.
저것이 무너졌으니 피 안개로 보호되던 지역이 상당히 줄어들겠지. 뮤트에게 양분을 공급하던 땅은 강철의 파도와 같은 인간들에게 짓밟히고, 역겨운 신성의 빛에 물들 것이다.
“투스. 내 노력은 해보았으나, 너를 대신할 수 없음은 자명하구나.”
….자그락.
에데오르나는 챔버 메이드의 비명속에 울려퍼지는 인간의 함성에 쓰게 웃었다.
결국, 이 꼴이다.
[….누님께서 저의 잔존 사념과 마주하셨다면, 저는 아버님을 확보하지 못하고 죽어버렸을겁니다. 죄송스럽게도 패배하고 만 것이지요. 아아, 이번에는 분명 그분을 뛰어 넘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늘.] [아마도 그분은, 제가 죽었으니 곧장 서부전선으로 향하실 겁니다. 머리가 사라진 우리 종족을 마무리 지으려 하시겠지요.]팔카투스는 그가 떠나기 직전까지 수많은 계략과 방어책을 준비해두었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해서도.
붉은 안개지대는 깊이 들어갈수록 시력뿐만 아니라 청력과 후각, 촉각까지 일부 마비시키며, 마나의 응집과 정령력을 차단하는 천혜의 요새였다.
인간에게는 숨겼으나, 안개를 뿌리는 챔버메이드는 생식능력을 잃지 않았다. 피 안개지대를 생성하는 능력 외에도 강한 산성 체액을 흩뿌리며 폭발하는 하급 뮤트를 생산할 수 있었으며, 느리고 굼뜬 그것은 감각이 차단된 안개 지대에서 대단히 강력한 효능을 자랑할 터였다.
[….누님. 저는 항상 그분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며, 패배를 염두해두고 살았습니다. 언젠가 이런 순간이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지요. 지금부터 말씀드릴 것은 허무하게 죽어버린 이 못난 동생의 사죄라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우선, 인간들이 ‘텔드랏’이라 부르는 국가의 분열부터 말씀드리자면….]미개한 인간이 욕망에 휩쓸리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으며, 제 동족을 사지로 몰아넣는 끔찍한 짓을 망설임 없이 행할 수 있는지.
적이, 팔카투스가 아버님이라 부르는 자가 역전을 꾀하기 위해 선택하게될 유일한 수단이 무엇인지.
피 안개 속에서 서로의 위치 조차 확인하지 못한 체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산성 뮤트를 서로를 향해 튕겨내게 될 인간의 별동대.
그렇게 별동대가 고립되고, 적의 총력이라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본대가 깊숙이 들어왔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에데오르나라는 강력한 개체의 성장과, 그에 맞춘 환경을 준비해 뒀음을 말했다.
여왕또한 뮤트 전체에게 그 의지를 전할 수 있었기에 사념이 전달한 모든 개책은 실행되었으며, 인간의 모든 것을 건 총 공격은 팔카투스의 예측대로 본대와 별동대로 나뉘어 파고들고, 충분히 깊숙이 들어왔으나.
『카아아아아! 오오오, 나를 거두어 주소서, 내 남은 마지막 한줌의 힘까지 모조리 불사를지니, 나의 텅 빈 껍데기에서 전사의 영혼을 거두어 주소서어어어!!!!!』
콰자자자자작!
『체르타입니다! 지혜 교단에서 ‘천공의 눈’으로 여러분을 살피고 있으니, 용사대는 눈앞에 닥친 전투에만 집중 해주세요! 두 분 성자님을 필두로 중앙에 자비의 성녀님과 성기사단이 ‘성역화’ 원진을 형성했으니, 성녀님을 중심으로 물방울 형태의 대형을 유지하겠습니다!』
– [팜/개리슨/돌파르 3개 파티 8인! 네임드 발견, 네임드 발견했다! 삼두사 니그미, 덫 사냥꾼 독스 둘! 네임드가 둘! 적의 반격이다!]
– [우드/폴레드 2개 파티 7인. 개리슨이면 우리 바로 앞이군. 가세한다.]
– [교수다! 당신들끼리는 위험하니까 붙잡고만 있어! 대형의 머리를 틀어서 그쪽부터 조진다!]
– [휘우~ 든든하십니다, 괴물 성자님!]
– [파티리더, 인원 붙여서 통신해 새꺄! 여기 통신에 몇 명이 들어있는 줄 알아!]
.
.
.
.
.
쿠우웅-
콰아아앙!
슬프게도, 여왕과 에데오르나는 그것을 제대로 다룰 수 없었다.
팔카투스가 준비해둔 수십 종류의 정예는 중구난방으로 투입되어 각개격파 당했으며, 인간들은 그들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성녀 하나를 별동대와 함께 보내 별동대 전원이 연결된 신성 통신을 열어버렸다.
그들은 눈가 귀가 가려진 상태에서도 유기적으로 움직였으며, 착실하게 피 안개의 근원을 제거했고, 안개가 사라진 자리에는 인간의 대군이 들어와 그들의 진지를 세우고 성수를 흩뿌렸다.
“네가 사막으로 혼자 가겠노라 했을 때 말렸어야 하거늘.”
….찰칵.
처걱.
까드득!
무수히 많은 영웅을 먹고 만들어낸, 그들의 힘을 담은 무구들이 하나하나 에데오르나의 하얀 몸 위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척추와 힘줄로 만들어진 대궁.
어떤 수인의 발톱과 송곳니로 만들어진 톱날검.
아직도 그 눈동자 속에 눈송이를 담고있는 마법사의 눈.
처걱, 착, 착! 차각!
이제는 하얀 가시에 파묻혀버린, 한때 영웅이었던 자들의 상징.
그리고.
….차라락.
겁에질린 니그미가 울음과 함께 그녀에게 건네준, 황금빛 용의 비늘과 발톱. 그 누구보다 가족을, 종족을 사랑했던 동생의 유해.
[….아울러, 누님에게만 전하고 싶은 말이 하나 남아 있군요.]에데오르나는 한때 잘려나갔던 오른팔이 있던 자리에 하얗게 돋아난 용의 비늘을 보며, 조금씩 다가오는 강철의 군세를 내려다보았다.
[….누님께서는 제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부터 저를 동등한 존재로, 혈육으로서 사랑해주셨습니다. 에데오르나, 나의 누이여. 이 의념은 어머니도, 다른 형제들도 아닌 오직 당신에게만 남겨질 것입니다….]“….투스.”
무장을 마친 에데오르나의 몸이, 드높은 챔버 메이드의 꼭대기에서 추락하듯 아래로 떨어졌다.
[니그미는 아버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독스는 음침하고 자만심이 강하여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지요. 누님, 당신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조금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둘까 합니다….]“도대체 내게, 무엇을 바라는 것이냐.”
에데오르나가 떠나간 동생의 마지막 의념을 떠올리는 것을 끝으로.
휘이이익!
폭-
두터운 피 안개 속으로, 하얀 동체가 사라졌다.
****
“와.”
“허어어어…..”
“그우우…. 어….”
떡 벌어진 세 개의 입. 그리고, 팔짱을 낀 채 흥미롭다는 듯 올려다보는 두 사람.
사각사각-
“인간의 건축물중 일부는, 보는 것 만으로도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곤 하는군요. 투샨, 잠시 비켜주겠습니까?”
“그르륵. 나는 조금 불쾌하군. 아무래도 인간의 성에 갇혀 지낸 모든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보니. 커다란 건축물 근처에 있고 싶지 않소.”
눈앞의 거대한 성벽과 마천루를 보고 담소를 나누는 엘프와 늑대인간.
그리고,
“이, 이드라실…. 여, 여기가 어디라고?”
“로드릭의 대도시, 마법사의 도시라고도 불리던 곳. 토브룬입니다. 초행인 저보다는 교수님이 더 잘 아실거라 판단했습니다만. 오트만은 이 도시 출신이 아닙니까.”
“아, 아니야…. 이럴 수는, 깨끗하고 맑은 두 갈래의 상류가 만나고, 그 둘이 하나로 합쳐진 너른 강물이 도시를 가로지르던 토브룬이…. 이, 이 용사행이 끝나면 다시금 물의 마탑을 제건해야 할 토브룬이이이이!!!!!”
“그우우우. 고기 성채. 못먹는 고기 성채.”
“아니야! 내 고향이! 저건 마법사의 도시 토브룬이 아니야! 이럴순 없네, 이럴수는 없어어어!!!!”
과거 토브룬에 제법 머무르고, 그곳을 지나쳐온 적이 있던 세 사람은 과거와 현격하게 달라진 토브룬의 모습에 넋이 나가 있었다.
– [저기…. 체르타 성녀님? 저 교숩니다만, 저건…. 도대체?]
– [충격받은 모습을 보이지 마세요. 병사들이 동요합니다.]
알지, 그거야 나도 알지. 아는데….
‘도대체 저걸 보고 어떻게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라는거냐!’
지나올때만 해도 마법과 활기로 가득했던 도시가 고깃덩어리 바벨탑이 들어선 바이오해저드 지옥으로 변했는데, 어떻게 동요하지 않고 버티냔 말이다.
온갖 마법과 주문이 상감된 덕분에 오색의 마법진으로 아름답게 빛나던 성벽은 흘러내린 듯 시뻘건 살점과 혈관, 맥동하는 기타등등으로 뒤덮인 혐오의 장벽이 되어있었으며, 성벽 위에는 챔버 메이드가 자주 쓰는 갑각류형 뮤트가 길다란 촉수 위에 매달려 터렛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꿈에 나오면 성직자를 찾아갈만한 광경인데, 그 뒤로 펼쳐진 것들은 더했다.
넓은 뿌리, 빈자의 기둥, 일반형까지 해서 3종류 챔버 메이드. 한 기만 해도 마을과 마을 사이를 아우르는 지역을 통째로 장악할 수 있는 뮤트의 거점형 생산 시설이, 무슨 콩나물 시루마냥 다닥다닥 붙어서 성벽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일반 챔버 메이드보다 몇 배는 커다란 놈들이!
그리고 그 콩나물 시루의 중앙에 있는 놈. 구름에 닿을 듯 솟아오른 거대한 탑은 크기도 크기지만 그 꼭대기에서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핏물 하며, 중앙에 박힌 커다란 보라색 공마수정하며, 세 갈래로 탑을 타고오르는 굵은 혈관은 누가봐도….
“저, 저놈들이 우리 마탑을, 리드 플로우 마탑을 통째로 훔쳐갔어어어어!!!”
“오트만, 잠시만 진정하시고….”
“내가 진정하게 생겼나! 우리 학파의 근원을, 비록 지금은 누구누구 때문에 무너졌으나 언젠가 다시 찬란하게 피어날 수계 마법의 정수를 담은 마탑이 저 더러운 괴물들의 손에 떨어졌는데! 이이익, 이이이놈들이이이이이!!!!”
….리드 플로우 학파의 반파된 마탑을 꼭 닮은 꼴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전에 있던 마탑보다 다섯 배는 크고, 물 대신 뮤트의 피가 흐른다는 점일까.
– [마탑이면…. 마나의 영향입니까?]
– [저희 지혜의 성직자들이 판단하기로는 그렇습니다. 토브룬이 마법사의 도시였던 만큼 엄청나게 많은 마정석을 비축해두고 있었고, 로드릭은 그 방대한 물자를 미처 빼돌리 틈도 없이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온 뮤트에게 토브룬을 내어줘야 했으니까요.]
– [그걸 저 놈들이 다 쳐먹었다?]
– [오러는 흡수할 수 없고. 신성력은 악신의 힘 덕분에 상극이 되었지만, 마나는 자연상에 존재하는 힘이니 저들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 마정석을 전부 흡수해 저렇게 거대한 챔버 메이드가 탄생했다고 판단됩니다. 챔버 메이드는 성이나 첨탑처럼 높은 건물에 자리를 잡는 습관이 있기도 하고, 마탑이 있던 자리는 도시에서 가장 마나가 잘 모이는 곳이니 그 자리에 가장 큰 개체가 자리잡는 게 당연하겠지요.]
별동대와 본대.
두 진영으로 나뉘어 뮤트 점령지를 야금야금 갉아먹던 진군이 멈춘 것도 저것 때문이었다.
진짜 제대로 된 뮤트의 요새. 점령한 도시에 터를 잡고, 인간의 건축물을 기틀 삼아 그 위에 뿌리내린 생산 시설이 끝도 없이 자라난 적 세력의 핵심부.
성벽은 높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살아있는 적이며, 흐릿하게 보이는 챔버 메이드의 대가리 수로 볼 때 저기서 생산되는 전력만쳐도 우리쪽 본대보다 더 많은 물량을 삽시간에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야말로 적이 진출한 점령지에서 가장 강력하고, 또 중요한 곳이라 부를 수 있는 곳.
그 규모와 방어력이 별동대로 돌파할 수준도 아니며, 돌파한다 하여도 구조적인 문제로 본대가 곧바로 진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 별동대의 운용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
“오트만. 저건…. 정면에서 뚫어야겠죠?”
“허억, 허억…. 그렇겠지. 일반적인 성과 달리 성 전체가 살아있는 생물에 가까워졌으니 침투해서 도개교를 내릴 수도 없고, 사실상 발을 딛는 모든 곳이 적의 몸 위나 마찬가지이니 말이야.”
“물은 좀 충분합니까? 토브룬은 큰 강줄기 덕분에 수계 마법의 위력이 강해지는 도시였는데.”
“어렵네. 뭘 얼마나 빨아들였는지 강줄기가 바싹 말라붙었어. 저렇게나 무식하게 몸집을 키워내며 인근의 모든 것을 흡수한 모양일세. 아마 우리가 밟고 있는 땅도 모래 덩어리나 마찬가지일걸세.”
“….공성전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우리쪽에서, 변수 하나없이 머리를 들이 박아라?”
보통 전쟁에서 적의 진형이 이렇게까지 요새화 되어있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상대가 뮤트라면 요새화 되어있을수록 더욱 집요하게 공격해야했다. 강한 요새일수록 강한 챔버 메이드가 자리잡았다는 뜻이며, 그놈들을 잡아 죽이는게 전쟁의 성패를 결정하니까.
‘….적진 깊숙이 들어온 시점에서 서로 피할 수 없는 전투를 걸어온다. 싸먹을 심산이었군.’
아군의 병신같은 포위가 아니라 제대로 적을 끌어들여 쌈싸먹으려는 움직임. 더욱이 지나온 길의 피안개는 없어졌다 해도, 아직 전방과 측면 일부가 피 안개에 가려져 있는 만큼 몰래 병력을 사이드로 돌리기 좋은 환경.
나흘 동안 행군과 전투를 반복하며 지친 아군까지 더하면 적이 그리고있을 그림을 훤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앞을 가로막고,
대형 챔버 메이드들이 우르르 쏟아내는 정예들이 옆으로 돌아,
뒤쪽부터 긁어내듯 친다.
‘치밀하게 만들어졌지만, 운용이 어설픈 작전이었어.’
지난 나흘간, 여기까지 오며 겪은 전투들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냥 쉽게 뚫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작정하고 죽어라 틀어막는 것 같지도 않고.
커다란 미끼를 차례로 뿌려놓은 것처럼 ‘이 길을 따라오렴!’ 하는 의도가 아주 훤-히 드러났다.
이런 거에 당하면 쾨른에 묻힌 병신들 옆에 같이 누워야지.
‘이번에는 온다. 지금껏 어거지로 모습을 감췄던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모습을 드러낼거야!’
….그래서, 나도 힘을 아꼈다.
별동대로 움직이는 동안 언제나 용기의 성자가 선두에서 적진을 돌파했고, 나는 그의 뒤를 따르며 적당히 다가오는 놈들만 손봐주는 정도에 그쳤다.
‘여기가 적진의 중심이다. 놈들도 토브룬을 잃으면 인간의 칼날이 여왕의 목전에 닿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가장 치열한 전투를 아율리스가 치러주는 동안 다른 별동대와의 교신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었으며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에 집중했다.
니그미는 지난 나흘간 전투에서 단 두 번 출현했고, 별동대 인원중 세명을 사살하고 열 아홉명을 중독시켰다. 놈은 소극적으로 움직였으며, 자비의 성녀 덕분에 부상자는 대부분 전력으로 복귀했다.
반드시 출현하는 다섯 네임드중 하나. ‘덫 사냥꾼 독스’는 이름처럼 곳곳에 제 손가락을 심어놓는 녀석이었고, 피 안개 속에서 놈의 손가락에 스물 한 명이 으스러져 사망했고, 열 세명이 부상을 입었다. 허리와 무릎이 으스러진 부상자들은 본대 후방으로 후송되었다.
에데오르나를 비롯한 다른 네임드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막에서의 전투에서 느꼈다. 아무리 많은 병력과 전략을 준비했다한들, 어떤 정도를 넘어선 강자는 오직 비슷한 수준의 강자만이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체적인 전투의 승패와 상관없이, 그러한 대결의 결과가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도.
지난 사흘간, 나는 에데오르나를 찾고 있었다.
‘스토리 최 후반부. 놈의 손에 살해당한 것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진 히어로 유닛만 오십이 넘는다. 끔찍할 만큼 강력한 개체로 완성됐겠지.’
에데오르나의 진화는 신체적 변화보다는 외장과 그에 연결된 육체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폭풍의 언덕에서 그 지랄맞은 하얀 가시 창을 만들어 온 것처럼 말이다.
이는 에데오르나의 육체가 여왕의 육체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완벽한 육체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 부상의 회복에 유난히 긴 시간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잘린 오른팔 빼고. 먹을 땐 꿀맛이었는데, 내가 처먹은 그 팔이 어떤 괴물로 자라났을지 무서워죽겠다. 보나마나 ‘박교수 카운터 커스텀’으로 온갖 마개조를 해서 달고 올텐데.
———
– Jokass : 레빗때 에데오르나가 어떻게 나왔더라?
– takealook : 9 검류 미친 근접 여포. 괜히 초반에 암살자 많이 보냈다가 그놈들이 전부 악세사리로 화하는 바람에 순간 DPS가 말도 안되는 흉물이 되어있었지. 캐슬 나이트에 대대로 전승되던 방패, ‘아이언 캐슬’이 두다다닥 때려 맞더니 1분도 안 돼서 걸레짝이 됐잖음.
– 노루Drug해요 : 그건 1분도 안 돼서가 아니라, 그 에데오르나를 1분 가까이 혼자 버틴 샬롯을 칭찬해야되는 부분 아냐? 레빗도 그때 아군이고 나발이고 그 자리에 융단폭격 명령해서 겨우 잡았잖아.
– takealook : 아무튼. 그렇다고.
– Jokass : 천류제때는?
– takealook : 한참 쉬웠지. 에데오르나가 싸울만한 강자는 이미 천류제가 먼저 병신 만들어놔서 죄다 병상에 있었고, 칼잡이가 대부분 나가리라 마법사, 성직자만 주구장창 사냥한 에데오르나는 원거리 포격형 건담같은 형상으로 완성됐거든. 몇 안 되는 오합지졸 인간 군대를 포격으로 전부 증발시켜버린 다음에 천류제 한테 한칼에 썰렸다. 허무했지.
———
슬쩍보니 대화방에서도 놈의 완전체가 어떤 형상일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었다.
뭐가 됐든, 강적이라는 사실 만큼은 확실한 상황.
긴장해서인지, 아니면 가장 진한 뮤트의 피가 근처에 있어서인지 심장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귀 아래에서부터 머리까지 울리도록, 두근- 두근-
후웅-
– [별동대 여러분?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전투와 반대로 갈겁니다. 우리가 후방을 치는 적의 정예를 막을 동안, 성기사와 용사 일부가 합류한 본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벽을 뚫어야 해요. 칸, 파르나모, 마법사들. 아시겠습니까?]
– [칸 파티 5…. 4인. 무리한 요구를 잘도 해주시는군.]
– [아자르 칸, 싫으면 우리 파티랑 역할 바꿉시다. 이쪽은 그 하얀 놈이 나온다던데.]
– [하아아. 어쩐지 먼저 간 동료들이 꿈속에서 환하게 웃더라니….]
– [하얀 네임드, 에데오르나는 나와 성 아율리스 께서 전담합니다. 그러니, 나머지 네임드는 여러분들끼리 어떻게든 해야된다는-]
.
.
.
.
.
두근….
싸아아악!
“왔다!”
순간, 주변을 둘러싼 피 안개가 몇 배는 짙어진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살기를 감지한 영웅들이 기민하게 무기를 치켜들며 주위를 경계하는 동안, 나는 코 끝에 스치는 향기에 집중했다.
코를 찌르는 전장의 악취. 그것마저 가려버린 뮤트의 혈향. 그 역하고 달큰한 냄새 사이에 섞인, 그것의 본질에 가까운 무언가.
그 냄새를 맡는 것 만으로도 언제, 어디서 마주했던 무엇인지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제국에서. 모든 힘을 소모하고 부서진 치아로 그 하얀 팔을 씹었을 때, 혈관 전체를 불태우듯 휘감아오르던 그때의 향기.
그리고…. 또 하나. 사막의 모래와 함께 떠오르는….
‘뭐?’
잊을 수 없는 숙적. 이제 두 번 다시 떠올릴 일이 없을거라 느꼈던, 놈의 흔적.
바다와 같은 마나를 가진 용의 피에 섞여든, 뮤트의 혈향.
코끝을 스치는 혈향을 따라, 천천히 고개가 돌아갔다.
우리가 지켜야할 본대의 후방으로.
후방에서, 측면으로.
그리고 다시…. 정면으로.
정면으로…..
‘정면으로!!!!’
고개를 전부 돌렸을때는, 이미 피 안개 속에서 하얀 발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 한 걸음과 함께,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졌다.
느려진 시간속에 나와 에데오르나만 남겨진 듯. 느릿하게 흘러가는 찰나의 시간속에, 나의 발이 땅을 박차고 있었다.
다시 한 걸음. 천천히, 안개 밖으로 에데오르나의 얼굴이 드러나고.
“세 번째로구나. 대적자.”
이제는 완전히 인간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하얀 얼굴에 자조 어린 미소가 떠오르며.
파충류의 그것과 같이 하얀 비늘에 뒤덮인 오른팔이 들어올려짐과 동시에.
주변의 모든 피 안개가 그녀의 손 앞에서 한 점으로 수렴하였다.
“….유르는 숨을 쉬지 못하게 되어 죽었다지.”
“산….개—-”
.
.
.
.
탁.
“브래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미처 산개하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기도 전에.
하얀 가시의 폭풍이 연합군의 중앙을 관통하고.
눈을 떴을 때, 둥글게 파인 길 위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검은 괴물 한 마리 뿐이었다.
단 일 격에 만 단위의 인간이 증발하는 광경에, 전투로 단련된 병사들의 눈에 두려움이 깃드는게 보였다.
….으드드득!
“역으로 정면이라…. 그쪽도 동생만큼 머리를 쓰시는군.”
“나는 그런 섬세한 것은 잘 모르기에. 투스는 언제나 나를 과대평가하곤 했지.”
에데오르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른팔을 털어내며, 왼손에는 전보다 더욱 흉악해진 하얀 창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뒤로, 피 안개 속에 수많은 적의 안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네가 우리에게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알아줬으면 하는구나. 우리를 죽이기 위해 우리의 피를 받아들이고, 우리를 먹고, 우리를 죽이는 존재. 인간 교수여. 너는, 우리에게 있어 괴물이다.”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브레스에 날아간 외피가 재생되고,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는 사이.
내 뒤에서는 이를 악문 샬롯이 남은 병력을 추슬러 다가올 전투를 대비하고 있었으며, 별동대는 아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네게, 핏값을 받으러왔느니라.”
….핏값. 핏값이라.
“글세. 어느 쪽에 빚이 있는지는, 계산을 해봐야 알 것 같은-데!”
슉.
파앙-
.
.
.
.
.
.
.
– 쩌어어어어어엉!
공간을 격하듯 쏘아져온 창끝과 주먹의 격돌을 신호로, 안개 속에 도사리던 뮤트들이 인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떠한 계략도, 지혜도 파고들 틈 없는 순수한 힘의 격돌.
난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