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78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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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하던 전장이 기울어짐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후방에서 전장 전체를 아우르는 물결을 만들어내며 적의 진군을 저지하던 오트만이었다.
“저것이, 저것이 대체 왜….”
타닥!
“오트만! 보셨습니까! 교수와 함께 사라진 그것이….!”
“내가 잘못 본 것이기를 바랬건만….”
후방에서 저격으로 영웅들의 전투를 돕던 이드라실과 노툼 또한 전장의 이변을 눈치채고 다가왔다.
전장의 중심에서 일어난 대폭발.
이어져 생겨난 하얀 구체와 무너진 성벽.
그리고, 그와 함께 쏟아지는 적의 대군.
그리고.
– [파엘/드라드 2개 파티 3인! 하얀 놈이다! 하얀 놈이 이쪽으로 왔어! 우리쪽 후열은 이미 전부 죽었다! 적어도, 놈을 붙잡을 지원이 없으면- 크아아악!]
– [재수가 없으려니. 다 죽고 혼자 남았는데 하얀놈이 이쪽에 붙었어. 커다란 도끼를 들었군. 흐흐흐흐, 적어도 같은 도끼를 쓰는 놈에게 죽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 [천인대장 슈라우스입니다! 하, 하얀 죽음이 속수무책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창을 쓴다는 기록과 달리, 대낫을 든 놈- 촤악!]
– [뭔 소리야! 방금 내 머리위로도 그 사냥개가- 제기랄, 피해라 하인리히! 놈이 마법사를 노린다!]
통신을 타고 연이어 전해져오는 비보. 각 전선, 아슬아슬하게 균형이 유지되는 곳으로 돌파하며 차례로 전선을 무너뜨리는 하얀 뮤트.
아니, 따로 통신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깔아놓은 물을 세차게 가르는 발걸음.
“크아아악!”
“물러나! 놈은 방패째로 사람을-끄륵!”
“놈의 창이 닿은 땅을 피해! 가시에 당한 부분은 절단하는 수밖에- 아아악!”
빠르게 다가오는 혼란과 비명소리. 기사들이 튕겨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날아드는 수십 발의 단창은 떨어진 자리에 폭발하듯 가시넝쿨을 피워냈으며, 하얗게 돋아난 그것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며 길을 열어내고 있었다.
“….이대로면 전부 무너진다.”
오트만과 이드라실, 노툼 모두 전투를 지원하는 역할인 만큼 상당히 후방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 그들의 코앞까지 적이 당도했다는 것은, 그들을 넘어서면 전투 이외의 임무를 맡은 이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연이은 전투를 거치며 산더미처럼 쌓인 부상병.
그들을 보살피는 치유 사제.
이미 성역화를 사용하여 움직일 수 없는 자비와 풍요의 성녀, 그리고 전장 전체를 살피며 어떻게든 최악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남은 병력에게 이동을 지시하는 지혜의 성녀까지.
이곳이 뚫리면 아군은 회생 불가의 타격을 입는 것이 자명했으며, 이미 모든 전투인원이 사력을 다하고 있기에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트만은 퇴로를 살피는 대신 무수한 투창 세례의 너머에 집중했다.
….찰팍.
찰팍….. 찰팍.
눈으로도, 마력으로도 쫓을 수 없는 빠르고 변칙적인 움직임. 허나, 그의 마법으로 축축하게 젖은 땅을 밟는 순간의 위치만큼은 오트만에게 분명히 전해졌다.
“….여기!”
우득, 툭, 뚜둑!
촤아악!
“한데 고여 영원히 맴돌지어다, 워터 쉘!”
도약의 순간 튀어오른 물방울이 산산히 부서지는 방향.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린 오트만의 마법에 호리호리한 하얀 형체를 붙잡았다.
투웅-
“크으으윽!”
….아니, 붙잡았다는 착각이 들었다. 물의 감옥 속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 그것이 가볍게 휘두른 창에 마나가 썰물처럼 빨려나가며, 물의 감옥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 출렁거렸다.
‘단 몇 초라도. 기습에 무너진 아군의 편제가 일부라도 회복될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수계 마법사들이 전장에 온통 물을 깔아놓은 덕분에 느낄 수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뚫려 뮤트의 발톱이 내달리는 열두 갈래의 길. 그리고, 성벽과 하얀 구체를 상대하기 위해 대열을 이탈했던 기사들이 다시 대열의 안쪽으로 돌아오기 위해 축축한 땅을 박차는 소리.
마법이 강제로 깨지는 충격 속에 연이어 수인이 맺어졌다. 역류와 청수. 고요한 연못과 그의 심상속 모든 물의 형태가 적의 위로 겹겹이 내려앉았으며, 고속 이동을 멈추고 물과 함께 노출된 그것의 모습에 이드라실이 정령 화살을, 노툼이 영혼 항아리를 꺼내드는 순간.
끄그그극-
수 겹의 흐름속에 구속되어있던 놈의 고개가, 정확히 오트만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그것과 눈이 마주친 오트만의 수인이 이드라실과 노툼을 그의 곁에서 밀어내는 사이.
-파앙.
가볍게 휘둘러진 단창은 일격에 물의 구속과 함께 달려드는 보병들을 양단했으며.
퉁-
잘려나간 상반신들이 땅에 닿기도 전에 쏘아진 단창은.
퍼억.
그것을 귀찮게한 마법사의 가슴을, 정확히 꿰뚫었다.
“커어어….”
누군가 비명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나가, 조금만 더 남아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싱크홀과 같은 대단위 구속마법을 펼칠 수 있었더라면. 몇 초 정도는 더 붙들어 둘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마법을 조금만 아꼈더라면. 전투의 시작과 동시에 해일같은 대단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가슴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린 마법사의 몸은 한없이 가벼이 나가떨어졌다.
후두둑.
뻥뚫린 가슴에서 피가 강물처럼 쏟아졌다.
투둑, 쨍그랑!
형편없이 찢어진 로브에서 그의 물건들이 떨어졌다.
작은 동전 주머니.
목탄으로 그린 늙은 마법사의 초상.
손톱만한 광명 교단의 성표.
깨진 유리병과 흙갈색 액체.
그것은, 빠르게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들 중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였다.
벌써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늘그막에 만난 친우와의 마지막 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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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드리치. 아무래도 나는 자네를 한번은 더 만나지 않겠나?’
‘음?’
‘그렇지 않은가. 교단에서 마법사는 공식적으로 이단이니, 나는 그내들이 말하는 내세의 입장권이 없지 않은가. 그럼, 내가 죽으면 자네의 그 요상한 인도를 따르지 않겠나?’
‘원, 별 실없는 소리를…. 헤어지기 아쉬우면 그냥 아쉽다고 하시게. 헛소리 하지 말고.’
‘아니, 솔직히 우리 나이면 슬슬 무덤에 누운 다음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만 하지! 안 그런가?’
‘….나 참. 그럴일 없으니,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인사 하시게. 산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있는데, 죽음은 삶이라는 무대에서의 퇴장일 뿐 모든 것의 마침표 같은게 아니야.’
‘….언데드 말인가?’
‘순환! 순환말일세 이 사람아! 애초에 신도 그렇고, 나같은 버려진자의 목자가 없어도 죽은자는 알아서 갈 곳으로 잘~ 간단 말이야!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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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그래, 끝이라…. 이건가….”
오트만은 차가운 늪처럼, 시린 기운이 그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끝이라. 강물의 마법사 오트만의 끝이, 이곳이라.
“그래…. 마침내, 끝에 도달한게로군….”
마법사의 생애. 오트만의 기억은 사막을 비추었다.
한때 바다였던 열사의 땅. 정신없이 이어진 모험 중에 그를 괴롭힌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어째서 만족스럽지 않은가?
가장 순수한 바다라 할 수 있는 태고의 바다, 가라앉은 바다에 직접 뛰어들었음에도, 어째서 청년 시절 그에게 그토록 깊은 감정과 깨달음을 주었던 그 바다의 만족감이 찾아오지 않았나?
나는, 나의 바다를 찾고 있던 것이 아니었나?
“허…. 허흐흐흐…. 쿨럭! 답을 손에 쥐고도…. 고개를 들어 답을 찾고 있었다니….”
사막을 떠나는 순간까지 혼자 끙끙 앓으며 찾아 헤맸던 답이, 지금 그를 찾아와 있었다.
어렴풋이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마법에 밀려난 두 이종족 동료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성녀님이 있는 곳까지 밀어낼 생각이었는데. 역시 마나가 부족했겠지.
손 끝에 피가 맺히도록 쏘아낸 엘프의 화살이 투창을 튕겨내자, 하얀 괴물의 고개가 그들을 향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흐름. 흐름이라….”
피가 모조리 빠져나간 듯한 그의 몸은 얼음장 같은 수렁 속으로 잠겨드는 듯 하였으나.
“수계 마법사가 어찌 가라앉음을 두려워하리….”
감각이 사라진 그의 두 손은, 뻥 뚫린 가슴 위로 힘겹게 들어올려졌다.
문득, 하얀 구체속에 홀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을 제자가 떠올랐으나.
’유언은 필요없으리라.‘
그 또한 물을 이해하는 마법사인 만큼. 따로 말을 남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것을, 제 눈으로 보게 될테니.
힘겹게 들어올려진 오트만의 손이. 마지막 수인을 맺은 그대로 한껏 구부려진 손 부드럽게 펴졌다.
마치, 두 손을 모아 물을 받아내듯. 둥글고, 부드럽게.
“라스트…. 스펠….”
흐름이라. 나의 삶을 강물이라 한다면. 삶과 함께 흘러간 그 강물은.
“모든 흐르는 것들의 꿈이라….”
그 끝에 이르러 바다에 도달하리라.
마법사의 가슴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리없이 흘러나온 물은 순식간에 작은 실개울이 되어 전장의 흉터 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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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
철썩,
쏴아아아-
노툼은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오트만의 마법이 그녀와 이드라실을 향해, 그들을 밀어낸 것도.
겨우 그의 물결에서 빠져나왔으나, 이미 창에 꿰뚫린 늙은 마법사의 영혼이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육신을 떠나가는 것도.
그 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거대한 흐름에 합류하여 전장에 내려앉는 광경도.
그리고, 물 밖으로 뛰어오른 하얀 뮤트가 쏘아낸 수십발의 단창이 작게 튀어오른 물방울에 막혀 허무하게 힘을 잃어가는 과정도.
그 어느것도 노툼의 상식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사라져 없어진 마법사가 있던 자리에 손을 뻗은 상태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쏴아아아-
창칼과 피가 난무하는 전장에, 내륙의 중심에 깊은 소금기를 머금은 파도가 치고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피를 멎고 감염을 제거하는 정화의 파도가.
그 반대로는 뮤트와 적을 휩쓸어 밀어내며, 성벽을 넘고 도시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해일이 되는 파도가.
수많은 사선을 넘어오면서도 끝내 물이 누군가를 해할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답게, 마법사 오트만 보들레르의 정수는 그저 밀어내고 휘감을 뿐 그 누구도 죽여 없앨 만큼의 살상력은 가지지 못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쏴아아아-
에데오르나의 기습으로 시작되어 엉망으로 뒤엉킨 아군과 적군을 분리하고, 난전이 아닌 인간의 싸움을 펼칠 시간.
영웅과 네임드를 제외한 모든 전투를 중지시켜 버린 해일은 인간들에게 필요했던 단 몇 분의 공백을 충분히 만들어주고도 남음이었다.
….철썩.
오트만이 있던 자리에 그대로 굳어있던 노툼은 밀물과 함께 밀려온 그의 찢어진 로브자락을 주워들었다.
텅 빈 로브 속에는 가장 맑은 바다처럼 푸른 빛깔의 물방울 모양의 보석만이 남아있었다.
어떤 대마법사의 마지막 주문과는 비교되는 소소한 기적.
수백 명이 머무를 수 있는 건물의 형태로 남겨진 대마법사의 유해와, 일곱 구멍이 뚫린 지팡이의 형태로 남겨진 스승이며 아버지였던 누군가의 흔적보다도 작게, 손톱보다 작은 보석으로 남겨진 오트만의 유해.
“….오트만답다.”
노툼은 그의 삶과 같이 푸르게 빛나는 보석을 손에 담으며 생각했다.
이정도면 충분하리라 믿었을 것이다.
적을 찢어발기는 태풍이 아닌, 새 물길의 시작을 위한 작은 종잣물이면 충분하리라. 그렇게 믿었기에, 마법사의 영혼은 사나운 바다가 아닌 평화로운 바다의 형태로, 부드러운 소금기 어린 바닷 바람으로 코를 찌르는 피냄새를 밀어내며, 뒷일을 맡긴 것이다.
쏴아아아-
짧았던 기적이 잦아들고, 마법사의 삶과 함께 흘러든 바다는 차츰 가라앉아 사라지고 있었다.
“어떤 영혼은. 이토록 경이롭게 순수하고, 선할 수도 있었다.”
노툼의 홀린듯한 눈에 오트만의 보석이 담겼다.
그것은, 60년 이상을 세파에 시달려왔음에도, 어떠한 선의 경계를 지켜낸 영혼에 대한 경의.
한 조각의 영혼이, 이토록 기적과 같은 가능성을 지닐 수 있음에 대한 깨달음.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며, 눈앞에서 사라져간 동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지금. 그의 앞에 도달한 그의 마지막 조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찾아왔다.
또각.
노툼은 영혼항아리를 열어 스승과 그녀의 조각 옆에 떠나간 동료의 마지막 조각을 내려놓았다.
파도가 잦아들고, 마법사의 기적이 갈라놓은 두 진형에 적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영혼항아리를 손에 쥔 주술사의 눈에 무수한 영혼이 보였다.
파도와 함께 피를 씻어냈음에도 전장을 떠도는 영혼들.
딸그락!
순식간에 자라난 주술목이 그녀의 영혼 항아리를 휘감고, 선조의 영령 셋이 그녀의 곁에서 속삭였다.
[주술은 상징과 역사로 이루어진 것. 네가 하려는 주술은, 주술의 경계를 넘어섰느니라.] [아우타룸의 딸, 노툼아. 너의 존재는 종의 역사와 함께할 가장 귀한 것이니, 섣불리 강을 넘어서선 안될 것이다.] [Xua tAuk! 네게 주술을 가르치고, 선사한 것이 숲과 트롤임을 잊었는가! 숲을 뛰는 자의 주술이 인간의 영혼을 다루지 않음을 왜 모르는가! 그만두지 않으면, 이어질 역사를 위해서라도 네게 넘겨진 힘을 거둬갈 것이다!]걱정과 충고. 역정이 섞인 세 선조의 조언.
죽는 순간까지 숲 주술을 연마한 그들의 말이니, 그들의 말이 옳을 것이다.
콰악!
하지만 노툼은 술을 멈추는 대신, 주술목과 이어져 지팡이가된 그녀의 영혼 항아리를 두 손으로 땅에 꽂았다.
“….선조, 틀렸다.”
트롤의 주술은 오직 트롤의 영만을 다루며, 그렇기에 대를 이어 전승되어온 선조령은 모두 선대 트롤 주술사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의 영혼은, 진정으로 저들과 같은 숲을 뛰는 자의 것인가?
녹색 피부와 강인한 육체를 타고났으나, 숲이 아닌 인간의 땅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언어 대신 귀동냥으로 인간의 언어를 배웠으며, 때문에 지금도 말이 짧았다.
그녀의 지난 무던하고 외로웠던 평생보다, 지난 2년의 삶이 훨씬 밀도있고 다채로웠다.
그녀는 인간과 함께 여행했다.
그녀를 그려준 엘프에게 말고기를 선물했으며.
늑대인간과 이별에 눈물을 흘렸고.
지금은, 그 모두가 섞인 이들을 아군이라 불렀다.
그녀의 삶에 있어 인간, 트롤, 엘프, 수인족, 이 모든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저 사람. 사람으로서 그 모두를 만나왔고, 그들에게 그렇게 대해졌기에.
“노툼은, 저들을 나와 다른 종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직도 전장을 맴돌며 살아남은 이를 걱정하고, 그들의 방패와 칼, 어깨 위에 내려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는 영혼들에게 손을 뻗은 것이다.
딸그락!
그녀의 뒤에 서린 트롤 선조령들과 같은 생령으로. 트롤 선조령이 생령이 되어 산자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인간과 엘프, 수인족 모두 그들과 같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에.
“배움. 나랑 같이 다니는 엘프가 좋아하는 말이다.”
[주술사가 뜻을 세웠다면, 말리기엔 늦었겠지.] [역사가 되거나, 역사가 끝나리라.] [기세가 마음에 드는구나. 어린 암컷아.]세 선조령의 힘을 모두 흡수한 노툼은, 그것을 전장의 모든 영혼에게 뻗었다.
『푸른 들과 바람. 강물과 햇살. 네가 원하는 그 어떠한 것도 손에 쥐지 못한다.』
주술사의 입에서, 트롤 주술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로 이루어진 주문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돌아오길 소원한다면, 그리하라. 주술사 노툼의 이름으로, 감히 너희에게 두 번째 기회를 부여하니!』
….딸그락!
『일어나! 고별의 춤사위를 출지어다!』
힘을 담은 언어와 함께, 전장의 하늘에서 희끄무래한 무언가가 주술사의 항아리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안개처럼 희미한 영이 하나 둘.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처럼 몰려든 수많은 영혼들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영혼항아리 속으로.
그리고 다시, 밖으로.
쏟아져나온 영혼들은, 저마다 그들의 희미한 온기가 남은 곳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진형을 갖춘 인간의 군대와 달려드는 뮤트의 군세가 거리를 좁혀올 무렵.
….달칵.
주인 잃은 검이, 조금씩 뒤척이기 시작했다.
달칵, 달칵달칵!
철그럭, 척! 철컥!
전장의 모든 곳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일었다. 죽은 육신은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그들의 한이 남은 갑옷과 무기만이 되돌아온 영과 함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라, 라투라!”
화아악!
….철그럭. 철그럭.
철컥, 철컥.
“어, 언데드가 아닌가?”
“어찌, 신이시여….”
그들의 앞에 늘어선 텅빈 갑옷 수십반에 압도된 사제들중 하나가 무심코 신성 마법을 그들 위에 떨어트렸으나, 살아 움직이는 갑옷은 그저 차례로 일어나 대열을 갖출 뿐이었다.
“….그우우. 가서, 남은 미련 알아서 풀고, 알아서 가라.”
힘을 다 써버린 노툼이 파랗게 빛나는 영혼 항아리를 거두고. 비틀거리는 그녀를 이드라실이 부축할 즈음.
철컹!
카아앙!
푸른 안광을 뿜는 살아있는 갑옷들이, 뮤트와 부딪혀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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