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79
Chapter. 16. 성자와 완성자(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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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참 묘합니다.”
저 멀리, 바다가 휩쓸고 간 자리에 마지막 회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토브룬의 성벽이 무너지고 몇몇 영웅의 희생 덕분에 뮤트쪽도 충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저 전투의 끝이, 곧 승패를 가를 것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렇게 방관자가 되어본 적이 없었는데.”
하얀 감옥 속 검은 괴물 하나. 말동무는 둘.
“….오트만. 듣고 있어요?”
쏴아아아-
철썩.
“….어이, 에데오르나. 듣고 있나? 응?”
툭툭.
“….죽었나.”
쓰레기처럼 파도를따라 너울거리는 하얀 덩어리 같은 것은 건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써보았다.
제 육신을 공양하고 남은 힘을 모두 감옥을 만드는데 써버린 에데오르나는,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발악하는 놈을 부수고, 찢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될 정도로 무수한 공격을 퍼부었지만, 가시 울타리의 감옥은 끝없이 자라날 뿐이었다. 신성, 오러, 마법, 그 어떠한 것으로도 나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오트만이 내 곁을 떠나고.
나의 감옥안에도 마법사의 기적이 흘러들었으며.
노툼의 주문이 전장에 내려앉았다.
“왜 몰랐을까요. 이렇게 이질적인데.”
어째서 아르갈리안 소드는 ‘길을 잃었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어째서, ‘플레이어’의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가. 지금껏 모든 사건을 플레이어가 이끌어가도록 만들었던 세계가, 지금 이 순간 나를 완벽한 방관자로 만들었는가.
세계와 동일하게 만들어져 모든 사건이 인과관계가 명확한 GG에서, 왜 최종 시나리오 만큼은 모든 플레이어에게 동일하게 일어나는가.
[우리는 플레이어의 지지자이며, 교육자이며, 시험관입니다.]세계수와 아틀라헤바의 말이 떠올랐다.
[GG는 나와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위대한 선지자를, ‘완성자’를 선별하고, 키워내기 위한 프로그램이지.]안드레이 게드로이츠의 광기와 열의가 뒤섞인 눈동자도 떠올랐다.
최종 시나리오.
완성자.
시험관.
플레이어.
.
.
.
.
철썩-
“오트만. 저거 보이십니까?”
철써억-
“내가 없는 전장이에요.”
쏴아아-
“사람들이, 이기고 있어요.”
종아리를 스치는 바닷물에 떨리는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지금껏, 이 최종 시나리오야 말로 시스템이 완성자의 자격을 구분짓는 최후의 시험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끌어모은, 마지막 전투. 이번에야 말로, 성취해내야 하는 것.
하지만 나는 격리되었고, 결과에서 배제되어, 방관자로서 이 자리에 있었다.
최종 시나리오는 시험이 아니었다.
“지금 까지의 모든 결과를, 채점하는 자리였어.”
이미 충분히 치뤄진 시험의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일 뿐.
“이걸…. 이걸 가르치고 싶었나? 모든 월드가, 이러한 순간을 위해?”
[….완성자여.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군.]영상 속 게드로이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게드로이츠의 게임. 나의 GG는 그런 미래의 위인들을 만드는 것은 물론, 그들 중 옥석을 가려 초인에 가까운 ‘완성자’를 선별하기 위한 장치라네.]선별 과정이며 학습 장치인 프로그램. 세상을 뒤바꾼 천재가 미래를 수정하기 위해 완성한 그의 역작.
이것은 그의 실패에서 얻은 깨달음이 집대성 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그는 인류 역사상 누구보다 뛰어난 ‘개인’임을 자부했으며, 비참하게 실패했다.
[일어날 일들은…. 결국 일어나는 법이지.]위대한 영웅도, 선지자도, 인류 최고의 과학자에게조차, 어느순간 손에서 벗어난 결과들이 몰아치는 것을 그저 바라 만 볼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어떤 뛰어난 개인도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게드로이츠는 그가 찾아낸 완성자들은 그와 다르길 바랬던 것이리라.
완성자가 세상을 홀로 구하는 개인이 아닌, 세상을 바꾸는 개인이길 바랬기에.
그래서 나를 격리했다. 플레이어라는 개인이 이끌어 구해지는 세계가 아니라, 플레이어라는 개인에 이끌려 ‘변화한 세계’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시스템이 고집하던 ‘자격’은, 이 순간에 판단되는 것이었어.”
세계수와 드래곤. 두 관리자의 고집에도 의견을 꺾지 않고, 내가 자격을 얻어야만 나머지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못박아두던 시스템.
놈이 말하던 자격은, 이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게임을 진행해도, 모든 플레이어들이 마주하게 되는 마지막 시나리오. 최후의 전투.
그것은 메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관리자. ‘시스템’이 완성자의 자격을 선별하는 자리였다.
채애앵!
카칵!
서걱-
털썩.
뮤트와 인간. 양쪽의 카드를 하나씩 뒤집어 지워나가듯, 나의 선택이 만들어온 결과들이 하나둘 맞물려 사라지고 있었다.
제국을 성공적으로 구했기에 도착한 보병과 기사단. 서부전선에 신경쓰지 못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뮤트와 맞물려 사라지고.
선한 기치를 내걸었기에 모여든 영웅들. 5대 교단을 모두 이끌었기에 모여든 성직자들과 성인. 정예뮤트와 네임드, 하얀 뮤트와 마주하며, 사라져가고.
적의 기습에 완전히 흐트러진 인간의 진영과, 오트만 보들레르의 목숨이 맞물려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라진 끝에.
부우우우우우-
“이 소리는…. 비공정이다!”
“말도 안돼! 출발 할 때 텔드랏으로 되돌아가던 비공정이, 벌써 두 나라를 왕복하고 여기까지 돌아왔다고?”
“지원군이다! 마법 포격이 떨어진다!!!”
촤아악!
“적이 줄어든다….!”
“….축복받으실 종교쟁이들이 끝내 성공했나보군. 뮤트 새끼들이 충원되지 않고있다! 결사대가 무너진 성벽 너머의 망할 기둥들을 죄다 꺾은거야! 이것만 죽이면, 끝이다!”
“이쪽은 이놈이 마지막이야! 여력이 남은 사람은, 저 빌어먹을 하얀 것에게 붙어!”
“염병할! 나 혼자 먼저 간 놈들 전부 보내줘야 하게 생겼군! 미리 뒈질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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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울리는 승전보와 함께 더 많은 카드가 남은 쪽으로, 승기가 기울어간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남은 이들이, 세계의 끝을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쏴아아-
철썩.
파도. 가슴에 닿던 물결이, 어느새 발목.
“….오트만. 언제부터 알았어요?”
나는 그 경이로운 광경을 눈에 담으며, 사라져가는 바다를 향해 물었다.
“이게 이렇게 끝나리 라는 것을, 그런 ‘흐름’인 것을 어느 정도 아셔서 그렇게 가신거 아닙니까?”
오트만의 바다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그는, 어쩌면 나와 함께하는 모든 여정 속에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떤 흐름을. 나의 발걸음. 나의 손길. 나의 선택이 만들어낸 일련의 흐름이 모여, 하나의 끝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무엇인지 알지는 못해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그렇게 말한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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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만님? 솔직히, 오트만은 이 위험한 파티에 계속 함께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리드 플로우 학파의 오명은 진작에 벗었으니, 이제 로드릭에서 기다리고있을 제자들과 마탑을 재건할 일만 남으셨는데. 아, 돈 필요해요? 교단에서 좀 융통해드려? 헌금함 몇 개 훔쳐 올까?’
‘벼락맞을 소리 하지 마시게. 그저…. 그런 흐름일 뿐이니.’
‘흐름? 뭔 흐름? 나도 흐름의 깨달음은 가지고 있거든요? 안보이는데?’
‘그야, 교수 자네가 수양이 부족해서 그런게지! 지금부터라도 흙과 불에 닿은 음식을 삼가고, 정한 해산물 위주로 차근차근 식단을 바꿔나가면….’
‘으으! 마법같은 이단의 삿된 의식을 성자에게 들이밀지 말라!’
‘흐허허허! 아무튼, 나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게 있다네. 그냥 그런 흐름인게야. 강물처럼, 그렇게 흐르다 갈라지면 갈라지는 것이고. 끝까지 함께 흐르면, 언젠가…. 그 끝에 도달했을 때. 왜 이렇게 흘러야만 했는지 알게 되겠지.’
‘흐음…..’
‘그래서, 생선 안 먹을텐가? 응?’
‘카아악! 삿된 이단의 의식을 물려라! 마법사!’
‘4위계 씩이나 된 주제에 수식을 멀리하지 마시게! 애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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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다였던 겁니까? 고작 파도 몇 번으로 끝날 조촐한 바다? 마법사의 기적이, 오트만 보들레르의 인생을 담은 최후의 스펠이, 고작….?”
펠릭스 드릭시엘의 스펠은 제국의 역사를 바꾸고 모든 바람 마법사의 빈 자리를 채웠다.
가우만 델허스트의 스펠은 계곡의 모든 바람에게 속삭였으며, 한 마법사의 인생을 바꿨다.
오트만 보들레르의 스펠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물길을 조금 틀어줬을 뿐.
모든 것이, 이 순간을 향해 흘러왔음을 알았기에.
여정의 시작에서부터 그들과 함께한 흐름이, 충분히 준비되었음을 알기에.
약간의 시간. 숨 돌릴 틈. 그저, 이곳까지 가지고 온 것들을, 온당히 발휘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된다는 것을, 그 끝에 느꼈기에.
“세상에 오트만. 당신이란 사람은 대체….!”
참으로 한결 같은 사람이 아닌가.
이 여정을 가장 오래 함께했으며.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사람.
말을 나눌때보다 조용히 옆에 앉아있을 때 더 깊은 대화를 하던 사람.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의, 가족이 되어줄 줄 알았던, 스승님.
그는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이다.
게임 속 존재이기에 시스템과 완성자, 게드로이츠와 세계에 얽힌 그 어느것 하나 알 수 없지만.
다만, 여정과 함께 시작된 일련의 거대한 흐름이 이곳에 모여들었으며, 그것이 충분히 준비되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바다.
고작,
결국,
기어이,
마침내.
바다.
….피식.
그 모습이 너무 기가차서. 다가오는 밀물은 역정을 내던 오트만을, 잡아당기는 썰물은 또 사고를 쳤다며 머리를 싸맨 오트만을 닮아서.
홀로 떨어져 지켜만 봐야하는 누군가에게 전하듯. 기적으로 찾아와, 아무런 위협도, 세찬 흐름도 없이 그저 천연덕스럽게 발목을 적시는 푸른 바다가 너무 기가차서.
“푸흐흐흑, 정말로…. 끝까지 오트만 다우셨습니다.”
끓어오르는 숨이, 바람빠진 웃음으로 세어나왔다. 터질 듯 끓어오르던 무언가는 작은 그을음과 함께 실없는 연기로 피어올랐다.
한참을.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물이 가슴으로, 허리로, 종아리로, 발목으로 가라앉으며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웃어버리고 말았다.
서걱-
저 멀리, 어느 이름 없는 기사의 검이 마지막 남은 하얀 뮤트의 목을 베어내는 것이 보였다.
『와아아아아아-!!!!』
승리의 함성이다.
사람들은 플레이어가 없는 전장에서 그와 함께했던 이들이 멸망을 극복했음을, 승리했음을 소리 높여 외쳤다.
“기적 같은건, 필요 없었다 이겁니까?”
그저 전장을 한 차례 스쳐 지나갔을 뿐인 어느 마법사의 기적.
그의 라스트 스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증명했다.
이 흐름이. 이미 이곳까지 흘러온 여정이, 오트만 보들레르라는 마법사가 나고 자라, 우리와 함께 거쳐온 삶이. 이곳에 도달한 그의 삶이 이미 기적과 같음을.
그 기적 같았던 삶의 끝에, 그가 도달했음을.
….찰팍.
“언제나처럼, 말 없이 참 많이도 이야기 하십니다, 오트만….”
강물의 끝에 도달한 마법사는, 그렇게 내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파스스슥-
힘을 다한 나의 감옥이 마침내 바스라지며, 발디딜 틈 하나 없이 시체로 가득찬 전장을 드러내었다.
출발할때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해진 사람들이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지치고 절뚝거리는 몸으로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오트만의 바다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성자님!”
“성자님!!!”
“교수!”
성기사들. 이드라실. 노툼. 투샨. 그 외 사람들.
문득, 알드리치라는 위대한 흑마법사이자 연금술사에게서 만들어져, 마법사 오트만 보들레르에게 전수된 비약. ‘마법사용 진정제’로 불리는 흙갈색의 포션 제조법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음이 떠올랐다.
숙소를 잡으면 우물부터 확인하고 보던 사람.
물 한잔 주면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
모든 여정의 기억 속에 내 옆자리를 차지했으며, 지금도 ‘교수 용사 성자 파티’라는 이름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띠링-
[Player ‘professor’, 자격 검증 종료.]“이런….끄흑, 씹새끼가….”
아르갈리안 소드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바다가 마른 자리에 두 줄기 비가 내렸다.
합격이었다. 빌어먹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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