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8
Chapter.4 눈꺼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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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그락, 잘그락
“이것도 다 깨졌고, 흠. 이쪽은 좀 멀쩡해 보이는데…. 아, 하나 있네.”
세상일이 다 그렇듯, 항상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제대로 실행해보면 문제가 하나씩 튀어나오곤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냥 죽으라고 운동만 해야 하는 건데….’
처음에는 계획대로 잘 돌아갔다. 50개 정도 들어 올리고, 재생의 고통에 바닥에서 게거품 물고 굴러다니다가, 회복해서 일어나면 들어 올리던 운동기구가 훨씬 가볍게 느껴져서 무게를 추가하곤 했으니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면, 이 감염 인자라는 녀석들이 생각보다 근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여섯 시간 정도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데, 똑같이 재생의 고통은 있는데 다 회복되고 나서도 기구를 들어 올릴 힘이 없는 것이다.
‘스테미너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 사람이 힘이 세다고 해서 계속 같은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감염 인자와 뮤테이션 블러드 특유의 체력, 뮤트 혈액의 도움까지 받아도 이 정도가 한계인가 보군. 근성장도 생각만큼 엄청나게 빠르게 올라가는 느낌은 아니야.’
내구도 120고정에 따라 운동 부하의 증가가 필요 없다면, 막말로 3kg짜리 핑크 덤벨만 열심히 들어도 유의미한 근육 성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다 보니 저절로 느끼게 됐는데, 갈수록 무게를 늘려주지 않으니 몸에 무리가 오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뭔가의 메커니즘이 있겠지. 이런 버그성 플레이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거나, 음…. 유리몸은 당기고 잡아 늘이는 힘에 강하니까, 그런 부분이 근세포의 파괴를 막아줬을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시간이 남아버린 지금, 교수는 만달리우스 저택을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교수는 식당에서 구한 여러 종류의 생선과 말린 생선, 해조류, 아직 신선해 보이는 조개와 밀가루가 약간 든 병을 뜯어낸 커튼에 전부 담아 어깨에 들쳐멨다.
‘황무지 초반에 파밍 하러 다닐 때 생각나는군.’
먹을 것은 이미 다 털리고 없었지만, 창문, 건축자재, 가구 나 차량 부품 등 생산이 힘들어진 것은 전부 챙기러 다니던 시절. 그때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많아서 어디를 가나 2형 변종들이 돌아다녔었다. 지금도 밖에는 뮤트가 돌아다니고, 어쩌면 이 저택 안에도 몇 마리가 있을지 모르니 상황이 매우 흡사했다.
‘가만 보면 이 게임 자체가 우리 현실이랑 매우 비슷해. 월드 1의 검은 반점 썩음병. 이 병에 걸린 이들은 다른 부족에게 공격적으로 변했지. 월드 2의 언데드 대란. 언데드한테 죽으면 언데드가 됐으니, 이것도 전염병이라 봐도 좋고. 그리고 월드 3의 뮤테이션 블러드. 이건 병원균의 작용 기재만 빼면 거의 같은 질병이라고 볼 수 있어.’
과연 이 모든 게 우연일까? 심지어 세상이 이렇게 되고 유일하게 살아남아 세상의 연결고리가 된 게임 내용이 이런 식인데?
[올 클리어를 하면, 본사에 초대해주겠다.]왠지, 수많은 집단이 돈을 물처럼 쏟아부으며 랭커를 지원하는 이유를 엿본 것 같았다.
생각하면서도, 교수는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며 살금살금 저택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 노루Drug해요 : 아이고, 우리 교수, 소리 하나 안 내고 잘 털어먹네~
– Jokass : 내가 뭐랬냐. 황무지에서 혼자 사는 놈들은 다 미친놈 아니면 미친놈 두들겨 팰 만큼 한가락 하는 놈이라고 했잖아. 쟤 게임하는 것만 봐도 각이 나오지않냐? 손 빨라, 눈치 빨라, 머리 회전 빨라. 저거 보통 놈 아니라니까?
– takealook : 식당 들어가서 찬장 전부 확인하고 필요한 거 챙겨 나오는데 2분도 안 걸림. 심지어 바닥에 온갖 나무 쪼가리랑 대리석 파편 같은 게 널려있는데 소리하나 안 내고.
– 간장게이바 : 아, 말끔하게 털어가는 것 봐. 존나 편안하네. 이게 힐링이지.
평소와 변함없는 커뮤니티 사람들. 내가 모르는 것은 대부분 알고있는 지식의 창구.
“음…. 스피드 웨건?”
– 스피드 웨건 : 왜.
“….아니다.”
– 스피드 웨건 : 싱겁긴.
교수는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질문을, 가슴속에 잘 갈무리해 넣었다.
‘이런 비밀을 나 혼자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지. 리얼리스틱 모드를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이런 일을 분명히 겪었을 거야.’
하지만 커뮤니티에 GG가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거나, 뭔가 수상하다는 글이 올라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둘 중의 하나겠지. GG에서 그런 글을 걸러내거나, 아니면…. 뭔가 눈치를 챈 집단에서 그런 글들이 올라오는 즉시 조처를 하고 있거나.’
24시간 GG만 연구하는 전담 팀까지 있는 돔에서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GG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돔의 연구팀이, 이것 하나만 숨기고 있다는 말은….
교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을 털어냈다.
‘이런 건 내가 신경 쓸게 아니다. 멸망의 흑막 같은 거라니. 내가 그런 걸 알아서 뭐해? 괜히 이런 거 알고 있다고 흘렸다간 표적만 되기 십상이지.
정황으로 보나, 유난히 높은 GG 방송인의 사망률로 보나 이런 정보는 그냥 잊어버리는 게 답이었다.
“우우, 우우우….”
쿵, 쿵, 쿵.
‘뮤트! 1층 중앙계단 방향!’
사사삭!
생각과 동시에 몸이 반응했다. 챙긴 물건을 싸맨 보따리가 흔들리지 않게 몸에 단단히 묶어 둔 다음, 최대한 몸을 낮추고 조용히 움직였다.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발바닥이 까질까 봐 살살 다녔더니,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이제 거의 도가 텄다. 근력이 늘어나서 그런지 늘어난 체중으로도 소리하나 없이 저택을 배회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고양잇과 맹수도 체중이 250kg이 넘으니까. 요점은 무게중심이 많이 움직이지 않게, 자세를 낮추고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자신의 체중을 지탱할 만큼의 근력이 있느냐는 것이지.’
현실에서도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일이 많은 교수는 은밀 기동이 얼마나 체력을 많이 요구하는 일인지를 상기하며, 다시 한번 근력의 효용을 체감하였다.
– 하이웨이나초맨 : 교수, 근데 지금 뭐 찾고 있는 거야? 둘러보지 않는 방도 있는 거 보니까 목표가 있나 본데?
“있지. 대충 둘러보니까 뮤트놈들이 거의 다 박살 내고 가서 크게 건질 건 없는데, 그래도 백작의 방에는 한번 들러봐야 되지 않겠어?”
사실 위로 올라오면서 내심 기대를 하긴 했다. 45구역 방공호처럼, 백작가 저택이면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집어 가도 전부 귀중품이니까. 네 칸 밖에 없는 인벤토리에 하나씩 넣어만 가도 제법 짭짤하게 챙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막상 올라와 보니, 이건 뭐 저택이 거의 박살난 수준이 아닌가? 1, 2층은 외벽이 거의 다 날아가서 밖이 훤히 보일 정도였고, 저택 내부 복도도 그 커다란 놈이 죄다 긁고 다녀서 그런지 값나가는 물건 하나 없이 전부 박살 나 있었다. 심지어 군데군데 그을음이 있는 게, 화재도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3층은 제법 형태가 남아있네. 음, 여기 같은데?”
딱 봐도 다른 문들과는 다르게 양쪽으로 열게 되어있는, 화려한 부조가 새겨진 문.
철컥 철컥!
“이런….. 잠겨있나?”
잠시 주변에 뮤트가 없나 살펴본 교수는, 잠긴 손잡이를 힘껏 비틀었다.
콰직!
“아하! 열렸구만!”
부서진 손잡이를 옆에 떨어트린 교수는, 문을 열고 백작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백작의 방은 그야말로…. 교수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와아아….
– 간장게이바 : 우와아아…
– Jokass : 이야아아아….
– 남바쓰리 : 허어어어….
– 스피드 웨건 : ….개털이네.
깔끔하다. 바닥에 빈틈없이 깔린 푹신한 카펫만 아니라면, 백작의 방이 아니라 수도승의 거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뭐 하나 남아있는 게 없는 방이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은 아닌지, 여기저기에 뜯어낸 흔적이나 무언가가 걸려있던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난리 통에 그걸 다 챙겨나간 거야?”
어이가 없어서 진짜. 로만의 다급한 어조로 봤을 때, 마법사들도 대단히 긴박한 상황이었을 텐데. 그렇다면 다른 마법사들이 뮤트들과 전투를 치르는 동안, 하인들을 끌고 올라와 귀중품을 모조리 챙겼다는 말이 된다.
“이게…. 품위가 없어 보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참 귀족적이라고 해야할지….”
마음속에서 더는 내려갈 곳 없이 바닥을 치고 있는 백작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번 꾹꾹 눌러준 교수는, 허탈한 마음으로 텅 빈 방을 뒤졌다. 혹시나 해서 샅샅이 뒤졌지만, 정말 돈이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것은, 살짝 그을은 흔적이 있는 연구기록들 뿐.
“마법사라는 놈이 제일 중요한 연구기록은 내버려 두고, 돈이 되는 것만 챙겼다니. 아이작 마법사님, 어째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십니까.”
대충 훑어보니 연구기록이라기보단, 백작의 개인 기록처럼 보였다.
그냥 지하에 있는 연구기록과 비슷한 내용이겠거니, 하고 훑어보던 교수의 눈에, 낯익은 이름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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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체 15호, 교수. 몰락 귀족 출신. 감염이 전신으로 퍼져 신성력의 힘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상황. 독특한 특징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이용하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도 없고, 소속도 거의 와해된 용병조합의 하급 용병이라니. 연구하다 죽어도 굳이 다른 처리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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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진짜 만나면 내 손에 죽었다.”
조금 열받지만 여기까지의 내용 자체는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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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샤를롯 데 아가트와 친분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로 세 번째 방문. 치료를 핑계로 거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무래도 탑에 연락해서, 조처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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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생각보다 리드플로우 학파가 정치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모양인데? 왕국 제1기사의 임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라···.”
이건 기억해 둘만 한 정보다. 리드 플로우 학파가 로드릭 왕국의 정치 귀족에게 끈을 대고 있다는 것.
내게 한 실험으로 유추해보건대, 리드플로우 학파는 사람들이 알면 그리 좋아하지 않을 종류의 실험에 대단히 열정적인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치부를 은폐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있는 이들과 손을 잡는 편이 좋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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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밖에 나가 있는 정찰대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뮤트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을 끝으로 수정구의 신호가 끊어진 것을 보니,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접근한 것으로 보였다.
이건 기회다. 이 급박한 순간에도 수도의 귀족 놈들은 연구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여야 한다느니, 리드 플로우 학파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줬다느니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만약, 투란까지 함락된다면? 뮤트의 위협이 목전까지 쫓아와도 그딴 소리를 지껄일 수 있을까?
그 돼지들은 조금 더 위협을 느껴야 한다. 몰루딕 캐슬과 펠라스가 함락되었을 때 우리 학파의 영향력이 커진 것처럼, 놈들에게 충격을 좀 더 주면 리드 플로우가 이 로드릭 왕국의 정치적, 마법학적 중심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 병력이 모두 빠진 투란 정도는 그 대가로 넘겨줄 수 있다. 귀족 놈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 값어치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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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심각한 내용인데.
“로드릭 왕국의 귀족들도 썩을대로 썩었네. 지금 같은 상황에 뮤트 연구비용을 줄이자는 놈이나, 그 연구비용 좀 늘려보려고 도시 하나 단위 민간인을 뮤트 먹이로 던져주는 놈이나. 로드릭이 좀 버텨줘야 나중에 훨씬 편한데. 이래가지고 최종 시나리오 시작 전까지나 버틸까 모르겠네.”
만달리우스 백작이 나쁜 놈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로 쓰레기일 줄이야. 경각심이니 뭐니 하는 말로 포장했지만, 결국 리드 플로우 학파의 권력을 더 늘리기 위해서 도시 하나를 날려버린 것 아닌가.
“안 봐도 상상이 가는군. 탑에서 조용히 연구나 하고 있던 별 볼일 없는 마법사였는데, 앞에 두 도시가 날아가며 갑자기 엄청 중요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귀족 작위도 얻고 하니까 눈이 돌아가셨겠지.”
교수는 그 뒤에 있는 기록들도 읽어봤다. 그 자신에 대한 연구기록, 미리 귀중품을 정리해둔 것, 너무 안전하게 나가면 티가 날 수도 있으니 극적으로 탈출할 것 하며, 남은 저택에는 불을 질러 증거를 없애버릴 계획까지.
‘로만이 없었으면 나도 죽었겠지.’
불이 번지지 않은 이유는 뻔했다. 물에 환장하는 수계마법사의 저택이니, 여기저기 물 천지였겠지. 복도에 화병마다 물을 꽉꽉 채워놓고, 공기도 습하고. 그런 집에 불을 붙인다고 그냥 홀라당 탈 리가 있나.
교수는 만달리우스 백작의 기록을 조심스럽게 접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생각하고 있던 귀중품 같은 것은 못 찾았지만, 그보다 더 쓸만한 물건을 찾은 것 같았다.
***
툭.
“좋아. 이 정도는 아무 문제 없고.”
교수는 팔을 뒤로 당겼다가, 약간 빠른 속도로 벽을 향해 내밀었다.
탁!
살짝 저릿한 느낌. 하지만 기능적으로 이상은 없었다.
“좋아. 아직은 버티는군. 그럼 조금만 더….”
다시 한번 팔을 당긴 교수는, 누군가를 때린다는 느낌으로 벽을 향해 주먹을 질렀다.
퍼억!
오독!
“아윽! 이런. 이 정도는 안되나.”
백작가 지하에서 훈련을 시작한 지 8일째. 오늘치 운동을 조금 일찍 끝낸 교수는 이 몸의 강도가 정확히 어느 정도나 되는지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뚜둑, 으득!
부러진 뼈를 제자리에 맞추며, 교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힘을 100이라고 했을 때, 6~7 정도? 그 정도의 충격까지만 버틸 수 있는 것 같아.”
– 하이웨이나초맨 : 감이 안 오는데? 그게 어느 정도야?
“으음…. 굳이 비유하자면, 70대 골다공증 노인의 몸 정도라고 할까?”
감염 덕분에 늘어난 30 내구도는 확실히 체감되고 있었다. 이제 조심히 다니면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내구도는 됐고. 다음은 근력인데….”
음. 이걸 실험해봐도 되려나?
지난 8일동안 교수의 몸에는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어느덧 키는 20cm 가량이 더 커서 210cm는 족히 넘었고, 전신에 근육이 붙어 전보다 덩치가 훨씬 더 커져 있었다. 근력의 성장은 어느 순간부터 정체되기 시작한 터라, 지금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강해졌는지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자해하는 습관은 여전하구나? 키득키득. 그렇게 살살 쳐도 문제가 생기는데, 전력으로 치면 엄청나게 아프지 않을까? 혹시 고통을 즐겨?]역겨운 향기. 더 역겨운 목소리.
‘….분명 내가 이기면 닥쳐준다고 약속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지난 5일 동안 얌전히 있었잖아? 약속의 기한을 정한 적은 없다고?]또 다른 변화는, 바로 이놈이었다. 잠시 쥐 죽은 듯 지내던 녀석은, 며칠 전부터 슬그머니 튀어나와선 교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굳이 그런 식으로 힘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나중에 적이 나타나면 알아봐도 되잖아.]‘그랬는데 그 적이 나보다 강하면? 스스로의 전투력을 파악해야 적과 우연히 만났을 때 대응할지, 물러설지를 판단할 수 있을 거 아냐.’
[음, 전문가! 역시 알고만 있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다르군!]정신쇠약이 나았더니, 이번에는 이놈이 사람 신경을 박박 긁고 있었다.
‘무시하자. 없다고 생각해. 어차피 저놈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내 몸은, 완전히 내 통제하에 있어.’
“흐으읍!”
호흡을 가다듬은 교수는, 앞에 있는 벽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크아아아악!”
지하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 타격 직후 끔찍한 고통에 나가떨어진 교수는,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완전히 박살 나버린 벽과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저 뒤쪽으로 뜯겨져 날아간 팔을 번갈아 보았다. 어께죽지 어림에서 뜯겨나간게, 반작용의 충격이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쎈데?”
– 간장게이바 : 장난 아닌데?
[끝내주는데!]‘아, 제발 좀.’
교수의 눈앞에,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흥분해서 손을 마구 흔들어대는 놈의 환상이 보였다.
‘어이 기생충, 남에 몸에 얹혀살면, 좀 가만히라도 있으면 안 될까?’
[하지만 재미있는걸! 한방 때릴 때마다 팔이 날아가는 사람이라니! 네 기억 속에도 이런 특이한 존재는 없었다고! 즐거워! 네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도, 네가 애를쓰는 것도, 네가 느끼는 모든 감각, 경험이 나한테는 전부 새롭단 말이지! 아아, 나도 움직이고 싶다. 껍데기, 딱 하루만 몸을 빌려주면 안 될까? 제발! 곱게 쓰고 돌려줄게! 어차피 너도 지금 막쓰고 있잖아!]‘….징그러운 자식.’
친한척 굴고있지만, 역시 녀석은 아직 포기한게 아니었다.
“이녀석을 어떻게든 떼어내야 되는데…. 악령들린 거랑 비슷하다고 봐야하나? 신전가서 성사나 한번 받아볼까?”
뒤쪽에 널부러진 팔을 들어 몇 번 살펴본 교수는, 이걸 붙이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에 팔을 버리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으윽, 비린내.”
욕조 안에는 이곳에 온 첫날처럼 신선한 뮤트의 혈액이 가득 차 있었다. 이틀 전 용액에서 썩은 내가 나기 시작해서 다 버린 후, 밤에 몰래 나가서 혼자 배회하고 있는 8급 뮤트 두 마리를 납치해와 뽑은 것이었다.
“실험 결과도 그렇고, 이 뮤트 잡아 올 때 느꼈던 것도 그렇고. 한 가지는 확실하네.”
기생충의 질문에, 교수는 인상을 잠시 찌푸렸다가 말했다.
“이 몸은, 그래플러로 키우는 수밖에 없어.”
교수는, 지난밤 뮤트를 우연히 만났을 때 준비해둔 무기를 휘두르는 대신 반사적으로 목을 꺾어버렸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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