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85
Chapter. 17. 여행 준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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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옛날에 악력 측정하던 것 기억나시죠? 꽉 쥐어보시고~”
꽈아아악- 뚝!
“네에 좋습니다~ 다음은, 시력 한 번 재보실까요? 여기?”
“삼.”
“여기는?”
“칠.”
“그 아래는?”
“비행기.”
“그 옆은?”
“구…. 아니, 같은 사이즈는 왜 계속 측정합니까?”
“그야, 하나는 일반 시력, 하나는 적외선 투영 영상이니까요. 안 보였어야 하는데, 잘 보이시네요?”
“….엥?”
군용 창고 같은 실험실에서 일어나 바깥 사람들과 잠깐의 해후를 나눈 뒤.
나를 기다리던 것은 길었던 고생길을 털어놓을 술자리와 귀환파티가 아니라, 길고 지루한 테스트였다.
일단 의학적으로는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깨어난 것이며, 데이터 소울을 이용한 뇌 신경계 회복이라는 전례 없는 치료를 받은 환자이기 때문에 전신의 모든 활동이 완벽하게 통제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과거 왼손이 변이됐을 때 실험했던 유압 프레스 같은 악력계도 한 번 더 잡아보고,
운동장 같은 실험실(군데군데 지워진 핏자국 같은 게 있다)에서 걷고, 뛰고, 체조 선수 같은 복잡한 동작도 해보고,
시력검사에 청력, 촉각, 미각, 온도 반응에 기타 온갖 검사까지 빼놓지 않고 확인한 결과-
“축하드려요! 아무래도, 더는 호모사피엔스라고 부를 수 없는 무언가가 되셨네요?”
….라는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망할. 그러고 보니 이 의사, 막 통속의 뇌 됐을 때 처음 만났던 그 사람이잖아? 사이코패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막말하는 사람이었는데. 뭐랬더라? 심장이 두 개니까 축구 잘할 것 같다고 그랬나?
“이름이 그…. 첼시였나?”
“체이샤. 체이샤 루터페르그에요. 과거 유전자 공조 진화론을 연구했고, 지금은 변종 진화 계통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당신의 주치의이기도 하죠.”
“주치의라…. 그럼 내가 뭣 좀 물어봐도 되죠? 제 몸이 지금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좀 알 수 있겠습니까?”
“궁금해할 줄 알았죠.”
그녀가 실험실 구석의 컴퓨터를 만지작거리자, 한쪽 벽면에 커다란 화면이 세 종류의 인형을 비추었다.
“첫 번째는 익숙한 모습이죠?”
“그렇죠. 저 몸으로 꽤나 오래 살았으니까. 익숙해질 만큼 활동하기도 했고.”
첫 번째는, 돔-렙터 전쟁부터 38구역 사태까지의 시절. 왼팔만 변이했던 그때의 모습.
“보시는 바와 같이, 한쪽 팔만 완벽하게 3형 변종의 형태로 변이한 상태였어요. 죽음과 관련된 어떠한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박교수’라는 의식이 왼팔에 대한 통제권을 부의식 ‘하이드’에게 넘겨주게 되면서, 변종 바이러스가 왼팔을 사망한 상태로 인식하게 되어 일어난 변화였어요. 아, 하이드 씨는 잘 있나요?”
“….놓고 왔습니다. 안쪽에.”
“어머. 그럼 심리 상담은 대부분 취소해도 되겠네요. 아무튼, 저 변이된 형태의 특징 중 대부분이 부의식 ‘하이드’가 선망하는 형태를 따랐다고 들었어요. 초경 합금에 버금가는 경도, 공격성이 도드라진 갈고리 발톱의 형태, 강인한 근력 등. 게임 내부의 육체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그만큼 본체에 부담이 되는 부분도 있었죠. 아마, 저대로 오래 살았으면 팔은 더욱 튼튼해지고 몸은 말라비틀어져 갔을 거예요.”
“….식사량이 유난히 늘었던 것은 기억이 납니다만, 그것 말고는 딱히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기록에는 식사량 증가, 혈압 상승, 체지방률 감소에 간 수치도 기록적으로 상승했으며, 여러 호르몬 계통에 미세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적혀있네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팔만 변종인 상태로 살았으면 장수는 힘들었을 거예요.”
“얼마나?”
“수치의 증가 추이로 계산했을 때…. 기록일로부터 8년? 9년 정도면 고혈압이나 영양실조로 죽었겠네요. 그 전에 따로 왼팔을 잘라내는 시술을 받았겠지만?”
하긴. 팔만 변종인 그런 불규칙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죠?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38구역의 그 사건이 없었으면 멋진 전성기를 끝낸 뒤 젊은 나이에 요절했을 거예요. 아, 물론 그 사건 이후 의학적으로 이미 요절하긴 했지만.”
화면이 두 번째 형태로 넘어갔다.
3층 건물만 한 체고.
왼팔의 변이가 전신으로 퍼져나간 듯 경질화된 외피에 둘러싸인 몸.
GG 안에서의 모습이 근육질의 인간형에 가까웠다면, 이쪽은 괴수가 인간을 흉내 낸듯한 모습이다. 두 발로 걷기보다는 네발로 기는 것이 어울리는 근육질의 긴 팔다리.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검붉은 색 육체.
떠나기 전까지 하이드가 사용하던 그 모습.
순수 3형 변종 박교수.
“이 모습은 저번에 제가 보여드린 자료 말고는 처음이죠?”
“….나름 간접적으로 접할 기회는 있었습니다만.”
“장담하는데, 아시는 것보다 훨씬 놀라울 거예요.”
화면이 바뀌고, 내가 일어났던 그 실험실에 누워있는 괴물의 모습이 비춰졌다.
실험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몸은 그에 걸맞는 커다란 금속 틀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거대한 정맥 같은 전선이 몸 구석구석에 박혀있고, 그때 봤던 것처럼 가슴은 뻥 뚫려서 내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때요?”
“어떻냐고 물으시면….”
“아름답지 않나요? 이 예술작품에 가까운 완성도! 감히 인간의 공학 따위로는 따라갈 수 없는 기적 같은 밸런스! 스위스 시계보다 더 복잡한 인간의 육체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면서도 완벽하게 조율해낸 이 기적과 같은 모습을!”
….아, 이런 사람이구나.
‘저 모습’을 보여주며 눈을 반짝이는 의사의 모습에, 나는 왜 그녀가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 봐요. 왼팔의 근력을 유지하기 위한 혈압이 본신을 압박하고 있었죠? 그 대책으로 심장이 두 개가 됐어요. 두 심장은 동시에 뛰지 않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자연스럽게 거대한 신체 구석구석에 피를 내보내고 있어요. 사지는 강하고 유연하며, 전차탄의 충격에도 쉽게 쇠하지 않을 정도로 완성됐어요.”
“예, 뭐…. 멋있기도-”
“아직 안 끝났어요! 무엇보다 머리! 머리를 보면 저 모든 변이가 완벽한 합목적성을 띠고 있음이 여실하게 드러나거든요!”
‘….그때 내가 따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변했었나?’
그냥 오르페우스 빔에 두들겨 맞고 구아아악- 하면서 기어 올라갔던 것 같은데.
체이샤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가며 컴퓨터를 조작했다.
냉장고만 한 산소 마스크를 쓴 괴수의 머리를 급하게 개조한듯한 MRI로 투영하는 모습.
“자, 두피와 두개골 사이에 얇은 층이 몇 개 있죠?”
“아, 보인다. 있네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어…. 안에 검은 음영 덩어리 같은 게 있긴 합니다만.”
타악!
체이샤는 들고있 던 서류철로 화면을 세게 내리쳤다.
“그것 말고는 안 보인다는 게- 포인트! MRI를 돌렸는데 두피랑 두개골까지만 보이고, 정작 뇌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 그건 두피와 두개골 사이, 지방과 전해질로 이루어진 저 층들이 외부의 초음파, 파장의 간섭을 강력하게 차단한다는 뜻이거든요! 박교수 씨! ‘돔의 영웅’이라 불리는 박교수 씨? 저렇게 변하기 직전, 38구역 전투에서 어떤 생각을 하셨죠?”
“어…. 오르페우스를 막아야겠다?”
덥썩!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체이샤의 두 손이 내 오른손을 잡아 마구 흔들었다.
“바로- 그거예요! 일반적으로 과거의 가장 깊숙한 경험을 기반으로 변이하는 변종 바이러스가, 박교수 씨의 경우 현재의 기억과 사고를 기반으로 변이했다는 것! 이건 정말 중요한 차이점이거든요! ‘적응자’라 불리는 이형의 변종과, 또 다른 형태의 변이가 발생했다는 증거니까!”
“아 예….”
“현시점의 상황과 비교하면 ‘완성자’라 불리는 어떠한 정신적 특질을 가진 사람은 변종 바이러스의 변이를 유! 도! 할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답니다! 만약 그 형질과 변이의 교차점을 찾을 수 있다면, 먼 미래의 인류는 변종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이용하는 게 가능할지도 몰라요!”
“인류가 변종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이용한다라….”
의사의 말에 그녀가 추구하는 미래를 떠올려보았다. 변종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이 원하는 형태로 변할 수 있다. 앞집에 슬라임 닮은 아주머니가 팔을 2미터 가까이 늘려서 빨래를 널고, 절연체 전기공이 고무색 몸으로 고압전선에 매달려 전선을 수리하고, 거인 같은 인부가 철근 콘크리트를 다지고….
‘….아무리 봐도 인류의 미래라고 부르긴 좀 그렇지 않나?’
대충 떠올려봐도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그림인데, 저쪽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다.
“아무튼, 박교수 씨의 변이는 대단히 현실적인 부분과 밀접하다는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현재의 모습이 그 특징을 다시 한번 증명했어요.”
다시 한번 넘어가는 화면.
길고 지루한 옛 모습의 설명을 지나, 비로소 지금의 모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때요. 조금 크긴 하지만, 2번 형태의 비인간적인 크기와는 분명 차이가 있죠?”
“….지금 제 키가 얼마나 됩니까?”
“198cm 정도. 크긴 해도,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죠.”
원래 내 키가 175cm 정도였으니까, 몇 개월 만에 23cm가 컸다.
감사합니다, 변종 바이러스님.
“플레이 영상과 비교했을 때, 변경백 영지 있죠? 그때 교수씨가 혼자서 쌩난리를 피운 이후로 뇌파도 급격하게 안정되고, 몸도 급격히 평균 체격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정신과 육체 사이의 괴리감이 줄어들면서 그런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뒤로는 부교감 신경이 어떻고 변종 바이러스 심리학이 어떻고 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이 쭈욱- 이어졌다.
설명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는 사이, 환자복 사이로 비치는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우선, 왼팔이 다시 사람의 형태로 돌아왔다.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검붉은 갑피도 없고. 오른팔보다 조금 근육질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과거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도 볼 수 있을 정도.
“왼팔은 언제부터 돌아왔습니까?”
“….한 시간 전? 원래 1번 형태, 왼팔만 변이했을 때의 그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외피가 우수수 떨어지더니 그 모습으로 돌아오더라구요. 덕분에 훌륭한 재료를 얻었다고 공학부에서 좋아했어요.”
“한 시간 전이라….”
인 게임, GG 시간으로 5시간 전. 대충 여왕 목 따러 북부 둥지에 혼자 들어갔을 때쯤이다. 하이드가 이때부터 클리어를 예감하고 홀로 떠나갈 마음의 준비를 했다는 뜻이겠지. 그 왼팔은 하이드의 영역이었으니까.
체격은 정상이지만 아직 몸 곳곳에 검붉은 갑피가 남아있긴 했다. 옛날처럼 몸을 완전히 감싸는 형태가 아니라, 군데군데 몸에 박혀있는 듯한 형태로.
“이건….”
“일종의 퇴화 흔적 같은 거죠. 이전 형태의 외피가 하나의 매끈한 덩어리가 아닌 몇 개의 갑피가 이어 붙은 형태였잖아요? 그것들 중 제일 뿌리가 되는 쪽이 남아있는 거죠. 벌레의 흔적날개나, 사람의 꼬리뼈처럼.”
“적출은 안 됩니까? 좀 보기 흉한데.”
“피부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 뼈에서부터 자라서 튀어나온 거라 어려워요. 뼈를 통째로 들어내면 모를까.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이 몸은 재생력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으니까 저 안에서처럼 무리하면 죽는 것 명심하시고.”
그 외에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 많았다.
탈인간 급 근력. 특히 악력. 공업용 자동화 로봇보다는 못한 정도. 대충 렙터의 사이보그 언저리나 그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란다. 힘 조절은 게임 안에서 내내 해왔던 거라 충분히 익숙했다.
외피와 비슷하게 경질화된 골격. 전차에 깔리면 부러지긴 할 거라고 들었다.
눈. 시력은 좀 좋은 정도인데 파충류처럼 눈꺼풀이 하나 더 있단다. 아까 시력 테스트에서 적외선 숫자를 알아본 게 그거 같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걸 왜 자기한테 묻냐는 듯 쳐다봤다.
피부도 야생 동물처럼 약간 질겨진 편이고, 신경이 예민해서 통각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기도 하고. 무슨 복잡한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처럼 각 부위의 변화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듣다 보니, 마침내 제일 이상한 부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가슴.
웬 나사랑 철판 같은 게 붙어있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은 직경이 한 뼘 정도지만, 나사가 박힌 부분을 보면 피부 안쪽에는 꽤나 넓게 자리 잡은 것 같고.
뭣보다, 이 철판. 가장자리에 손톱이 들어갈 만한 자리가 있었다.
철판.
홈.
거대한 형태일 때, 유난히 뻥 뚫려있던 가슴.
‘에이 설마. 나름 영웅에, 생사의 경계를 오락가락했던 사람인데.’
아무리 미친 사람이라도 그렇지. 전에 농담처럼 개조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설마 사람 몸을 가지고 그러겠어.
달칵.
‘….설마.’
끄드드득.
.
.
.
.
.
끼이익-
“으아아악!!!!”
느껴졌다. 분명히 느껴졌어!
철판이 살짝 들어 올려지면서, 묘하게 가슴 안쪽이 시원해지는 느낌!
추상적으로 시원한 게 아니라, 진짜로 축축한 내장에 바람이 들어가서 선선해지는 느낌이라고! 심장 박동 소리가 몸이 아니라 귀로 들렸단 말이다!
철판의 홈을 당기자, 가슴에 덧대어 놓은 철판이 열렸다.
금고 문 열 듯이, 묵직하게.
“내, 내 몸에 뭔 짓을 한 겁니까?”
“미안해요. 가슴에 코어는 구현이 좀 힘들더라구요?”
“아니 이게 농담할 일입니까? 사람 동의도 없이 이런 개조를 했다고?”
식겁해서 다시 한번 온몸을 구석구석 둘러봤다.
없다. 가슴을 제외한 어디에도 이런 기계적 시술의 흔적은 없었다.
당황한 내 눈빛에 슬며시 분노가 스며들 무렵, 체이샤는 아무런 동요의 흔적도 없이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에이, 설마 동의도 없이 했을까.”
“응?”
“수술 대상이 의식이 없을 경우. 일반적으로 수술 동의는 보호자한테 받게 되어있잖아요.”
보호자라는 말과 함께 실험실 밖을 가리키는 체이샤.
“….누구?”
“다나 엘리샤 히아신스양. 가장 가까운 친구 둘. 총장님의 재가까지 받아서 진행했어요. 나름 꽤 거창한 작전이었다고요? 몸에 맞는 재료 구한다고 BDSM 전원을 저 멀리 떨어진 45구역 너머까지 보내기도 하고. 변종 부산물 처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업자란 업자는 죄다 불러서 밤새 토의하고, 어떻게 수술할지 설계하고.”
“가슴의 구멍. 그 부위만큼은 아물지가 않아서 내린 결정이에요. 영상으로 확인해보니 당신이 오르페우스를 파괴할 때, 그것의 집중된 빛에 가장 많이 노출된 부위가 바로 거기였거든요.”
“아, 그거.”
“38구역 돔의 행정총장. 기억하죠? 그 인간은 당신이 파괴한 오르페우스의 찌꺼기를 회수한 다음, 라디오 타워에 연결해 끝내 그 에너지를 퍼트렸어요. 파괴된 오르페우스의 에너지만으로도 중앙아시아 대륙 전역에 2.5형이 들끓게 만들어버렸는데, 그게 온전히 발휘되기 직전에 그걸 품 안에서 박살냈으니 이 정도로 끝난 게 기적이 아닐까, 싶은데.”
솔직히 그때 일은 기억에 없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오르페우스의 코어 에너지에 노출된 당신의 가슴은 ‘절대로’ 회복이 불가능해요. 아예 그 상태로 고정이 되어버렸으니까. 가슴이 뻥 뚫린 상태로 둘 수는 없으니, 메꾸기로 한 거예요. 망할 자살용 사이보그처럼 합병증 덩어리로 만드는 게 아니라, 제대로 살 수 있는 그런 재료로 확실하게 치료하는 방향으로.”
피부와 갈비뼈. 가슴 근육 일부가 녹아내렸다.
처음에는 구시대 의료기술을 최대한 동원하여 어떻게든 수복하려 했지만, 의료용 합금과 기타 소재가 변이된 몸과 거부반응을 일으켜 떨어지고 곪아갈 뿐.
변종 부산물 기술을 사용하자는 것은 이안의 의견이었다.
“이제 막 태동하는 기술이지만 확실히 매력적이었어요. 기본적으로 현대 인류는 모두 잠복기의 변종 바이러스를 몸에 품고 있고, 그런 바이러스의 활동으로 변이한 변종의 신체는 인간의 몸에 접합해도 어떠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죠. 여러 형질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변종 바이러스가, 같은 바이러스 개체군과 완벽히 호환하여 접합 부위를 안정시키는 거예요.”
간단히 말하면 사람을 무엇으로든 변이시키는 바이러스가 생물학적 접착제 역할을 한다는 것.
그렇게 해서 어떤 소재를 수술 부위에 사용할 것인지를 토의했으며, 45구역에서 관측된 유연한 금속 피부를 가진 3형 변종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BDSM에게 특별히 녀석을 사냥해올 것을 의뢰했으며….
거기서 변종을 무더기로 썰어서 쌓아둔 천류제를 만났다고 했다.
천류제는 BDSM 훈련 시설에 보관하고,
가져온 3형 변종의 금속 피부는 지금 내 가슴에 이어 붙이고.
“그게, 지금의 당신이에요. 겨우 살아났다는 체감이 되나요?”
“어, 음….”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가슴을 튕겨보자, 텅- 하는 금속음이 몸 안쪽에서 들려왔다.
….확실히 죽을 걸 살려냈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하긴, 10미터짜리 ‘돔의 비밀병기 박교수’ 보다는 ‘점박이 아이언 박교수’가 훨씬 낫지. 좀 이질감이 있는 것 빼면 원래 몸이랑 다를 것도 없-
끼이익-
“자, 그럼 갈비뼈랑 가슴 근육 대신 텅 빈 공간에 무엇을 넣어뒀는지 설명을 드릴 텐데, 우선 여기 보이는 광대역 통신기부터 시작해서-”
“흐이이익!”
….많았다. 원래 몸과 다른 게, 아주 많이.
설명과 함께 체이샤는 이번에는 진짜로 전자제품 설명서에 가까운 서류철을 건네줬으며, 나는 앞으로 먹어야 할 약들과 ‘내 몸 사용 시 주의 사항’, 각 이상 반응과 그에 대응하는 해결책에 대한 것들을 해 질 무렵까지 교육받아야 했다.
“….상태창?”
“예? 뭐라구요?”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흐음. 아무튼, 연결 부위는 총기 수입하듯 주기적으로 관리해줘야 하는데-”
온갖 설명과 사용법, 위기 시 수동 심박 조절 방법 따위를 듣고 있노라니 내가 현실에 있는 건지, 아직 GG 안에 있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
덜컥!
“오늘 배운 것 꼭 기억하시고. 당분간 매일 행정부 방문해서 경과 확인하시고, 약은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하는 것 잊지 마세요!”
“예예.”
그렇게, 충격적이고 지루한 ‘박교수 사용법’ 강의를 수강한 뒤.
실험실 밖으로 나오자 반가운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기다렸어? 다른 애들은?”
“이안이나 벡스는 바쁘잖아. 나야 뭐, 어차피 재활 중이라 행정부 병동에 머무르니까. 다들 준비할 게 있다고 어디 갔어.”
“….재활?”
“응. 재활. 네가 안에서 열심히 사는 동안, 나도 나름 힘을 내봤거든.”
끼리릭-
휠체어에 앉아서 졸고 있었는지, 다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가다듬으며-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수술은 잘 끝났는데, 워낙 오랫동안 걷지 않다 보니 다리가 많이 약해졌대. 걷는 연습 많이 해야 된대.”
“그럼…. 이젠 심장이 조금 괜찮아진 거야?”
“어느 정도? 아, 그래도 부축은 좀 필요해.”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내디디며, 조심스럽게 내 팔에 매달리는 다나.
자세히 보니, 평이한 말투와는 다르게 얼굴이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마치, 이 순간을 오랫동안 연습해서 맞닥뜨린 사람처럼.
세상 귀여워라.
다나도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매달린 팔 뒤로 얼굴을 감추며 말했다.
“네가 없는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어. 나가자.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
“말투가 변했네?”
“이게 내 원래 말투잖아. 이전에는…. 조금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야. 현실의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한 지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맞아. 원래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었지. 스피드웨건. 내 7년 지기.
여전히 조금은 딱딱하고, 고저 없는 말투.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만큼은 꽤나 풍부한 사람.
내가 없는 동안 세상도, 사람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자. 얼마나 변했는지 보고 싶어졌어.”
자기가 매달려놓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다나를 보니, 문득 내가 밖에 나와서 뭐가 하고 싶었는지가 떠올랐다.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우리 다나 양한테 병원 밥 말고 제대로 된 밥도 먹이고.
흰 병원복이랑 검은 상복밖에 없다는 아가씨한테 옷도 사주고.
휠체어 끌고 먼지투성이 황무지 구경도 시켜주고.
어, 그리고, 음…. 아무튼.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다.
펄럭!
나는 위에 걸친 실험용 가운을 대충 벗어 던진 뒤, 누군가 실험실 문고리에 걸어둔 가죽 재킷에 팔을 집어넣었다.
내 사이즈에 맞춰 준비된 검은 가죽 재킷.
약간 그래피티 같은 느낌으로 선명하게 박힌 ‘BDSM’의 표식.
추가로, 그 위에 키 작은 누군가가 손수 바느질해 새겨넣은 듯한 황금색 이니셜, H
“어울려?”
“….조금.”
다나.
내가 만든 집단과, 옛 친구들과의 이니셜.
그래, 몸이 좀 변했으면 어떠냐. 이게 내 자리고, 내가 나라는 것은 변함없는데.
꽤나 변해버린 몸 때문에 뒤숭숭했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해졌다.
그렇게 다나와 나는, 한결 당당해진 걸음걸이로 행정부 밖으로, 돔의 밤거리를 향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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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두두
『교수님! 교수님! 교수니이이이이임!!!!』
『선구자께서 죽음을 딛고 부활하셨다!』
『라투라! 라투라 교수!』
『신도 악마도 없다! 그래도 박교수는 있다! 지금 우리 눈앞에에에!!!!』
콰앙!
“허억, 허억, 거, 잘 아시는 분이, 왜 그러십니까? 머리도 좋으신 분이.”
“죄송합니다….”
“여긴 우리 쪽에서 통제할 테니 뒷문으로 가십쇼. 돌아오신 것 축하드립니다.”
“예….”
그리고, 정문에 죽치고 있던 ‘광명교단 황무지 지부’ 소속의 인파에 파묻혔다가 감찰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광명교단? 여기서도?”
“말했잖아. 이쪽도 많이 변했다고.”
“아니, 변해도 왜 이런 식으로만….”
물론, 그 당당함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지만.
….정말, 많이 변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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