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9
Chapter.4 눈꺼풀(11)
***
촤아악!
깊은 밤. 괴수에게 점령당한 도시의 어느 반파된 저택. 그 지하에 위치한 깊은 우물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떠오른다.
뚜둑! 우득!
우물에서 걸어 나온 인영은 우물 안에서 자는 동안 뭉쳐있던 몸을 풀기 시작했다. 몸이 커서 그런지 최근에는 저 우물도 몸에 좀 끼는 것 같았다.
“으음…. 그래도 저건 도저히 포기 못 하겠다.”
개인적으로 이곳에 나를 감금하고 실험한 마법사들에게는 상당히 악감정이 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다.
[ 수계 마나 친화 ], 가르쳐줘서 진심으로 감사한다고.교수는 방금 그가 나온 우물을 내려다보았다. 저 깊고 푸른 물결. 참을 수 없다. 방금 나왔지만, 다시 들어가고 싶다! 시원해 보여! 자, 잠깐만 들어갔다 나오면-
차악!
“어우, 정신을 못 차리겠네 정말.”
그래, 솔직해지자. 나는 물에 완전히 중독됐다. 마약보다 심하다고 저거. 마약은 하다 보면 죽는다는 경각심이라도 있지, 저건 아무런 위험도 없는 순수한 유혹이란 말이다.
특히 온종일 몸이 터져나가는 고통을 겪으며 사는 피폐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저 우물은 그야말로 생명의 샘이나 다름없었다.
뺨을 때려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은 교수는 꼼꼼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자정이 지났으니 남은 시간은 6일. 다음 도시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더는 지체할 수 없다.
꽈아악!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강인한 힘. 목표로 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할 정도로는 성장했다. 드디어 이 암울하기만 했던 캐릭터의 게임 라이프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교수는 뜯어온 커튼으로 만든 보자기에 가져갈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백작가 커튼 / 내구도 115]+ 말린 생선(소금 + 향신료) x 9
+ 피가 담긴 병 x5
+ 더러운 천 x2
+ 도르만 발다니스의 기초 수계 마법 입문 x1
+ 타르말린 마취 용액(1/2)
+ 소형 마력회로(매우 불안정함)
+ 최하급 마력석 조각
+ 354 sil
“커튼이 내 몸이랑 비슷한 수준이라니. 역시 내구도라는 수치는 너무 추상적이야.”
물론 백작가의 커튼이니만큼 질 좋고 튼튼한 천을 썼을 것이다. 웬만한 충격에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질기고 튼튼하겠지. 하지만 그래 봤자 칼같이 예리한 물건에는 결국 손쉽게 잘려나가는 물건이다.
‘유리 몸도 똑같다. 극단적으로 충격에 약했지만, 당기는 힘은 충분히 버텨주니까. 아직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거야.’
이른바 상성 차이라는 것이다. 가죽 갑옷 종류가 타격에 내성이 있지만 베기 공격에 약한 것처럼, 내가 가진 유리 몸, 지금은 극단적 재생에 포함된 이 특성도 분명히 뭔가 상성 적으로 강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있어야 한다. 제발.
혹시나 재생하는데 필요할까 봐 미리 챙겨둔 뮤트의 피가 담긴 병을 천으로 잘 감싸서 집어넣은 다음, 약간 젖은 자국이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기초 수계 마법 입문]로만의 방에서 발견한 책이다. 여기저기에 꼼꼼하게 주해라던가 설명 같은 게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는 내게 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였다. 안 그래도 수계 마나 친화가 100%가 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발견해서 더욱 반가웠다.
마지막으로…. 역시 로만의 방에서 수많은 잡동사니를 뒤지다 발견한 마력회로.
[매우 불안정함]이거, 터지는 거다.
가운데 작은 홈을 보니 아마 그 부분에 마력 석을 넣어주면 작동하는 구조로 보였다. 연구 자금이 없어서 이런 저렴한 물건밖에 만들 수 없었겠지. 최하급 마력석, 그것도 작은 조각인 만큼 마력 역류 같은 것으로 폭발한다고 해도 큰 위력을 보여주진 않겠지만, 그래도 투척 가능한 폭발물인 만큼 어딘가 쓸모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챙긴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싸서 묶은 다음, 백작의 방에서 가져온 백작의 예식용 옷을 최대한 내 몸에 맞게 고쳐서 껴입었다.
찌이익! 찌직!
‘이걸 입은 거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멋들어진 자수가 돋보이는 귀족풍 상의는 소매를 다 찢고 가운데를 터서 조끼처럼 입고 있었으며, 허벅지 부분을 풍성하게 부풀린 하의는 무릎 아래로는 찢어서 버리고 엄청나게 타이트한 반바지처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 처음 시작할 때의 누더기 같은 귀족 옷을 입었던 것이 생각나는 게, 이 캐릭터는 멀쩡한 옷이랑 인연이 없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굳이 옷을 입을 필요가 있는 거야? 어차피 나가는 길에 내 동족들과 싸우게 될 텐데?]“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이라는 게 있는 거다, 기생충아.”
아무리 이게 게임 캐릭터라고 해도, 방송에 나가는 중이라고. 이제야 겨우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됐는데, 아래쪽에 뭔가 묵직한 게 덜렁거리면서 날아다녀 봐. 으으, 나 같으면 바로 꺼버리고 커뮤니티에 욕 박으러 간다.
그렇게 대충이나마 가릴 것을 가린 다음, 교수는 그가 지난 며칠간 살던 공간을 둘러보았다. 처음 갇혀 있던 방에서 옮겨온 욕조. 그의 멘탈 관리를 담당하던 우물. 그리고 몸이 성장함에 따라 더 많은 운동량을 요구하는 감염 인자들 덕분에 만들게 된, 수많은 원시적인 운동기구들.
뭔가 이상한 기분인걸.
[아, 그건 나 때문에 그럴 거야.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 고향을 떠나는 것 같아서.]‘음? 기생충 네 고향은 저 북쪽에 뮤테이션 퀸이 있는 곳 아니냐?’
[자아가 생긴 것은 이 실험동 안에 있을 때니까. 난 여기서 태어났다고.]그렇단 말이지. 쓸데없는 지식이 늘었군.
마지막으로 보자기를 등에 단단히 동여맨 교수는, 소리 없이 지하 실험동의 출구를 열었다.
드디어, 그간의 성과를 시험해볼 시간이다.
***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고요한 분위기 속에 휘영청 하게 밝은 달만이 외로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그으으으-”
“우으으-”
‘8급. 인간형 다수. 별다른 특징은 안보임. 침투한 뮤트가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았으니…. 도시를 배회하고 있는 뮤트의 대부분은 이런 녀석이겠군.’
찢겨 나간 허름한 셔츠에 더러운 바지를 입은 뮤트. 도시가 함락되고, 탈출하지 못한 민간인이었을 것이다. 이 도시를 가득 메운 변종들이 그런 무고한 희생자이리라.
틱틱, 틱.
조심스럽게 뒤로 접근하려는데, 머릿속에서 작게 두드리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허공에 시커먼 연기 같은 그놈의 모습이 떠오른다.
[껍데기. 혹시 저 사람, 아니 사람이었던 거,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이야?]‘또 이자식이 뭔 헛소리를 지껄이려고.’
검은 연기 덩어리는 저 앞으로 날아가더니, 내가 노리고 있던 뮤트의 어깨 위에 앉았다. 실체는 없이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녀석이지만, 최고로 집중해야 할 이런 순간에 튀어나와 맥을 끊다니. 역시 짜증 나는 놈이다.
[그렇잖아. 원래 알고 있던 사람도 아니고. 살아있어서 딱히 네게 도움이 되는 사람도 아닌데 왜 화를 내는 거야? 단순히 동족이라서? 음, 나는 껍데기가 동족의 목을 잡아뽑고 피를 갈무리해도 화가 안나던데.]‘그야…..’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지난 며칠 동안 이 녀석을 상대하면서 알았는데, 이렇게 놈이 튀어나왔을 때는 곱게 대답해주는 게 제일 편했다. 그냥 무시해버리면 대답해줄 때까지 옆에서 쫑알거리는데, 진짜 끝도없이 같은 질문을 해대는게 뇌를 적출해버리고 싶을 만큼 짜증이 난다. 왜냐고?
‘몰라.’
[몰라? 방금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원흉을 죽여버려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이유도 몰라?]‘아 몰라! 애초에 그놈들은 나한테 맞아죽을 이유가 있었고! 그리고 넌 뺨 맞으면 화나는데 이유가 있냐? 그냥 좆 같으니까 화가 나는 거지!’
[오, 분노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 없다? 납득함.]“그륵? 그르륵!”
‘젠장! 너 때문에 시간 끌다가 걸렸잖아!’
막아야 한다. 저놈이 소리라도 지르면 그때부터는 전면전이라고!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순식간이었다. 이쪽으로 몸을 돌리는 놈을 뒤에서 덮쳐 한쪽 팔로 끌어안듯 목을 압박하고, 다른 팔로 입을 막은 상태에서 힘껏 반대방향으로 당기면 질식을 유도할-
푸아악!
[….질식?]‘어….음…. 밖에서 할 때는 이렇게 하면 숨이 막혀서······.’
밤에 이렇게 조용히 움직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밖에서 하던 것처럼 해버렸는데, 목을 조른 게 아니라 목을 아예 뽑아버렸다. 그것도 별다른 저항감 없이 포도알 따듯이 툭.
– 간장게이바 : 애초에 저런 스펙으로 암살이나 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
– Jokass : 공방 벨런스가 안맞아서 그런거지. 원래 훈련으로 저렇게 성장시키면 근력 수치가 표시돼야 정상인데, 워낙 기괴한 방법으로 커서 그런가, 변종 특성 쪽으로 묻어갔는지 근력이 몇인지 표시가 안 되네.
– 무카바 : 어디 탈출 미션에서 마나 유저급 기사가 어깨 빵으로 도시의 주택 부수는 건 봤는데.
– 흥안만두 : 그건 흙이랑 나무로 만든 집이고. 얘가 날려버린 건 지상에 있는 건물의 하중을 견딜 만큼 튼튼하게 만든 지하 연구동의 돌벽이었다고. 마나도 없이 생체력만으로.
– 스피드 웨건 : 지금으로선 적의 수준으로 전투력을 가늠할 수밖에 없을 듯. 일단 맨몸의 상급 기사 정도 전투력이 아닐까 추측함.
‘결국,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군.’
교수는 피를 뿜어내는 뮤트의 몸을 한쪽 구석에 대충 던져둔 다음, 골목 밖의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 큰 소리를 내기 전에 처리해서 그런지 아직 다른 놈들은 잠잠한 상황.
‘백작의 저택이니 도시 중심에 있겠지. 투란은 영주 성으로 향하는 중앙 대로를 빼면 전부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도시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도시 외곽까지는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우극?!”
푸하악!
교수는 자신을 눈치챈 뮤트 한 마리 몸과 머리를 분리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소리 없이 움직일 순 있어도, 이 커다란 몸이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끼이이이익!”
“이익! 빌어먹을! 곱게 좀 죽으라고!”
“끼이익! 끄에에엑!”
30분 정도 같은 방식으로 골목을 배회하는 녀석들을 암살하며 지나오다가, 결국 걸려버렸다.
‘생긴 게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닭이랑 뱀을 섞은 놈이었냐!’
도시 외곽에 접근할수록 점점 수준이 높은 녀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인간들이 도시를 다시 수복하기 위해 공격해올 것을 대비해 이런 식으로 배치했겠지.
시장처럼 보이는 골목을 지나다 만난 녀석은, 그런 녀석들 중 하나였다. 사람의 몸에 닭의 머리가 달린 녀석. 생각 없이 전처럼 다가가 목을 비틀어 당기는데, 목이 쑤욱 늘어나는 게 아닌가?
“끼이익! 끄에에엑!!!”
“젠장! 제발 좀….. 죽으라고!”
뚜둑! 뜨드드득- 촤아악!
발버둥 치는 놈을 온몸으로 덮쳐서 놈의 기다란 목을 잡아 뜯어버렸을 때는, 이미 주변에 있던 뮤트가 놈의 단말마를 듣고 난 뒤였다.
“제기랄! 곱게 넘어가나 싶었는데!”
들킨 이상 더는 조용히 갈 필요가 없었다. 교수는 전력을 다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화끈거리긴 했지만, 지금 그런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갸아아악!”
“끄어어! 끄어어억! 꺼어어어!”
“염병할! 더럽게 많네!”
주변의 가판을 보니 이곳은 시장이었던 것 같았다. 부패가 시작되어 파리가 날리는 과일 사이에서, 피 묻은 싸구려 장신구 사이에서 한때 그것들을 생업으로 삼았던 괴물들이 교수를 향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교수는 허리춤에서 미끈하게 생긴 주머니 같은 것을 꺼내, 다가오는 뮤트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퍼어억!
주머니에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맞은 뮤트의 머리가 터져나갔지만, 주머니는 멀쩡했다.
“통한다! 이거라면 타격전도 어느 정도 가능하겠어!”
주머니의 정체는, 교수가 실험체 시절에 몰래 모았던 부식된 쇠톱의 날을 잘게 빻아 주머니에 담은 블랙 잭이었다.
[Item : `meat` my black Jack! : 뮤트의 가죽과 힘줄을 엮어 만든 주머니에 잘게 빻은 쇳가루와 돌 부스러기를 넣어 만든 무기. 질기고 탄력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강한 힘에도 잘 버티지만, 어쩐지 남들이 보는 앞에서 사용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 한 손 둔기 / 공격력 38 / 내구도 168 / 추가옵션 : 피격 대상에게 40% 확률로 기절 부여]수많은 실패와 좌절 끝에 만들어낸 양품. 철 가루가 새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뮤트의 위장을 들어내 그 안에 내장재를 넣은 다음 앞뒤를 묶고, 다시 뮤트의 가죽으로 감싸 힘줄로 단단히 엮어 만든 무기.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고유 이름마저 부여할 수 있었다.
– takealook : 그래서 어느 쪽이 괴물이냐고.
– 노루Drug해요 : ??? :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
+ Player `홀리‘ 님이 대화방에서 나가셨습니다!
– 간장게이바 : 교수네 방송이 전체 이용가는 아니지.
– Jokass : 그…. 좀…. 이쁘게 만들 수는 없었냐? 기능미가 넘치는 걸 넘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을 조성하는데?
– 스피드 웨건 : 역시 쇠좆매의 민족이다 이건가.
– 흥안만두 : 사실상 힘줄에 묶은 위장을 휘두르는 거잖아. 사이코 갱도 저런놈 만나면 빤쓰 벗고 도망갈걸?
– takealook : 저거 만들 때 교수가 막 뮤트 내장 꺼내면서 겁나 히죽거리는데, 인간형 아닌거로 골라잡아왔다고 해도 완전히 미친놈처럼 보였음.
“시끄러! 그딴 거 신경 쓸 상황이냐!”
교수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무기를 보았다. 손에 쥔 힘줄 다발에 연결된, 얼기설기 이어붙인 반쯤 마른 가죽. 금방이라도 꿈틀거릴 듯한 힘줄 사이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사뭇 그로테스크 하긴 했다.
“크아아아아!”
퍼어억!
“크으으! 손맛 죽인다! 그래! 생긴게 대수냐! 이렇게 좋은데! 원래 용도대로 쓰였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교수는 터져나가는 뮤트의 머리를 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원래는 부식된 쇠톱을 모아서 만든 블랙잭으로 마법사 놈들 뒤통수를 후드러 까고 탈출할 생각이었다.
퍼어억!
교수는 달려드는 뮤트를 처리하며, 주기적으로 블랙잭의 내구도를 확인했다.
+[‘meat’ my black Jack! : 공격력 38 / 내구도 78]
‘팍팍 줄어드는군.’
블랙잭이나 플레일 같이 손으로 잡는 부분과 타격부 사이가 끈이나 쇠사슬같이 유동체로 연결된 무기의 가장 큰 장점은, 원심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타격 시 반작용의 충격이 대부분 허공으로 흩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도시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창이나 칼 대신 직접 만든 블랙잭을 사용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특별한 스킬이나 기술도 없이 임시방편으로 만든 무기다 보니 금방 못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캬아아악!”
파아악!
‘그래도 거의 다 왔다. 성벽만 넘어가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어!’
타격음이 달라진 것을 보니 겉을 꿰맨 힘줄이 끊어지며 알맹이가 흩어지기 시작한 모양. 교수는 망가진 블랙잭을 등에 맨 보따리에 잘 집어넣고 골목을 나왔다. 지금까지는 골목길을 통해 숨어왔지만, 도시를 나가기 위해서는 결국 성문 앞의 대로를 거쳐야 한다.
쿵! 쿵! 쿵!
“그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래…. 저놈이 있었지.”
저택을 헤집고 다니던 커다란 놈. 반쯤 부서진 성문 주변에 몰려있는 놈과 수십 마리의 7급 뮤트를 보며, 교수는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성벽 위에도 제법 한가락 하게 생긴 놈들이 득실거리는 것을 보니, 섣불리 기어올라가려 했다가는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 아무래도, 저 사이를 돌파하는 수 밖에 없었다.
[쫄았어?]“흐흐흐…. 그럼, 쫄았지. 이 말랑한 몸으로 저런 덩어리들이랑 붙어야 하는데.”
[그럼…. 왜 웃어?]놈의 말에, 교수의 입에 맺힌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바싹 긴장한 교수의 몸이,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갈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잘 계산해야 한다. 소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몸. 이렇게 힘을 쓰면 그때 그 팔처럼 작살이 나겠지만, 쓸때는 써야 하는 법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뚜둑, 우두둑!
드드드드드드드드!
한계까지 부풀어오른 허벅지에 옷의 솔기가 뜯어지며, 감당하지 못할 거력에 교수의 몸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도 몰라 임마.”
투확!
전력을 다해 땅을 박찬 다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오며, 교수의 몸이 대포알처럼 쏘아져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