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91
Chapter. 17. 여행 준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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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우-
“….그렇게 된거다. 과거 전설적인 용병 의사(義死) 우진은 우진 비뇨기과 원장이 되었고, 두 다리가 없는 렙터의 노예 의사가 되었으며, 지금은 모비딕의 주인이 됐다는거지.”
“….나이도 많은 양반이 얼마 안남은 인생을 참 스펙타클하게도 사시는군.”
부산물 처리 구역의 좁은 창고 구석.
대충 박스 위에 둘러앉아서 시작된 이야기는 짙은 담배 연기와 함께 끝을 맺었다.
“….그 이야기 속의 두 아이는?”
“임신한 큰애는 끝내 유산. 동생 쪽도 몸이 멀쩡한 상태는 아니야. 둘 다 백치에 가까운 상태라 따로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한데, 또 영감님이 아니면 막 무서워하고 소리 지르고. 그렇다보니 아까처럼 시간되면 제깍 집에 돌아가야 하는 할아버지가 되어버렸지.”
“조금 변하신 것 같던데.”
“변했지. 꽤 많이. 평생 독고다이 일줄 알았던 인간이 이렇게 커다란 집단의 대가리가 되고. 사람 죽이기 싫어서 은퇴한 양반인데, 정작 여기 와서는 사람 꽤나 죽였을 걸? 모비딕이 이정도까지 덩치를 키우는데 마찰이 없을 리가 없으니까. 당장 바깥의 경계 인원만 봐도 그렇잖아.”
“….참 부탁 같은 거 안 하는 양반인데, 농담인 척 허허 웃으면서 나한테 말하더라고. 케셀링. 죽기 전에 그 개새끼 대가리가 몸에서 떨어지는 걸 자기 눈으로 봐야겠다고. 남은 삶은 선하게만 살려던 사람 눈에서 악의가 뚝뚝 떨어지더라. 세상이 참…. 거지같아. 몇 번을 봐도.”
“형님은 뭘 세삼스럽게. 언제는 안 그랬던 적이 있습니까?”
“[전 지역/ 적진 /기 보고된 사항]”
“저 봐. 벡스 형도 이건 동의하잖아. 황무지가 괜히 황무지겠어? 그치, 교수 형?”
“….그렇지.”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기를 쓰고 돌아온 현실인데.
생각해보니,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어가면서까지 탈출하고 싶은 곳이 우리의 현실, 황무지가 아니였나.
“….세상 좆같네. 씨발 거.”
“크흐흐흐, 그 말이 나오는걸 보니 이제야 돌아오셨군. 웰컴투 황무지다, 박교수.”
이안은 황무지 사람 다운 표정, 그러니까 자조와 허탈함이 섞인 웃음을 지으며 술병을 집어 던졌다. 챙그랑! 하는 시원한 소리가 무거웠던 분위기를 조금 풀어주었다.
“일단, 알아는 두라고 얘기한거야. 너도 우진 영감님 사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니까.”
“그래. 렙터를 모조리 죽이고, 되도록 케셀링 그놈은 곱게 포장해서 가져온다.”
“역시 잘 알아먹었군. 뭐, 그쪽은 서두를 필요 없다. 어차피 돔과 렙터는 언젠가 한판 붙을테니. 그때까지 잘 준비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신속 정확하게 저승으로 배달하면 되는거다.”
술도 떨어졌고, 분위기도 풀렸다.
다들 적당히 얼굴이 붉어지긴 했지만 취한 사람은 없는 상황. 애초에 내가 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완전히 취할 정도로 준비해오진 않은 모양이었다.
“자아, 그러면. 이제 출소한지 만 하루도 안된 박교수씨의 이야기에 대해 짚어볼 차례인데…. 변종 부산물, 그것도 아직 사람에 가까운 사람들의 부산물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 말이지?”
“알아?”“소문 정도는? 나도 돔에 머무는 시간이 그리 길진 않거든. 이런 건 여기 주인인 우진 영감님이 잘 아실텐데…. 지금 몇 시냐?”
“[23시]”
“그럼 안되겠군. 늦은 시간에 술취한 남자 넷이 들이닥쳤다가 괜히 그집 애들 트라우마 자극할 수도 있으니까. 어이, 전직 감찰부. 그쪽은 뭐 아는거 없어?”
“나라고 뭐 알겠어. 형님 말대로 ‘전직’인데.”
“그래도 돔에 올때마다 한번씩은 감찰부 들르잖아. 들리는 소문 정도는 있을텐데?”
“아, 그런 거라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네. 사실, 감찰부도 그렇고 돔에서 좀 능력있는 사람들은 요즘 얼굴 보기도 힘들어. 다들 갑자기 넓어진 돔의 영향권도 관리해야 하고, 또 수상할정도로 잠잠한 렙터 새끼들도 찾아 다녀야 하고, 그놈들은 또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되어가지고 찾을 방법이라곤 지면 진동이랑 지나간 궤도 자국 뿐인데, 그걸 찾으려면 온갖 괴물이 득실거리는 황무지 깊숙이까지 나아가야 하고…. 돔이 내정에 신경을 기울일 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 정도는 확실해.”
“‘몰라요~’ 라는 말을 더럽게 길게 하는 재주가 있군. 아무튼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교수가 말한 ‘인간 사냥’에 대해서 아는 놈이 없다는 얘긴데….”
탁. 탁. 탁. 탁….
좁은 창고에 둘러앉아 머리를 맞댄 남자 넷. 손가락으로 나무상자 두드리는 소리가 점차 신경질 적으로 변해갈 즈음, 넷 중 키가 작은 쪽이 벌떡 일어났다.
“어…. 으….”
“음? 짜리몽땅. 뭐 아는거라도 있어?”
“[내부자/존재/지인]”
뭔가 떠올랐는지, 빠른 속도로 수신호를 이어나가는 벡스.
“너 지인이 우리랑 BDSM 말고 또 누가…. 아, 혹시 제수씨? 확실히 래빗 그 여자도 사업 크게 하는 사람이니까 알고 있을 가능성이-”
“[오답/지인/아군 전원 해당함/반경 20미터]”
“반경 20미터면…. 바로 옆에 있다는거 아냐? 우리 다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여기 있고, 변종 부산물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아. 혹시?”
“걘가?”
이안과 에젤의 반응에 벡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 에젤, 벡스가 동시에 아는 사람. 우리 모두라고 했으니 나도 아는 사람이고. 주변에 있다고 했으니 돔에 거주하며, 부산물 쪽에 종사하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아, 있네. 딱 한놈.
“….조카스? 47번 대화방의 그?”
내가 반문하자 셋다 긍정을 표했다.
“그놈 같은데? 확실히 그놈은 부산물 가공업계 초창기부터 굴러먹었잖아. 초창기에 다 태워 없애기도 힘들 정도로 변종 사체가 쌓일 때 그쪽에 뛰어들어서, 지금에 와서는 제법 전문가 취급 받고있다고 하던데. 걔 정도면 부산물 시장의 음습한 구석까지 알고 있지 않겠냐?”
“그럴수도…. 있겠는데?”
조카스. 플레이어명 ‘Jokass’라고 알려진 47구역 대화방 붙박이. 그러고보니 그 녀석이 돔에 넘어와서 변종 사체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느니, 부산물 가공업이 떠오르는 대세라느니 하는 소리를 주워섬기던 게 기억났다. 확실히, 변종 부산물 사업의 흥망성쇠를 직접 지켜본 녀석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이 시간에 걔가 여기 있나? 지금 밤 열한 시 라며. 이제 가족도 있는 놈이 이 시간까지 나와 있을 리가-”
“[대상/야간근무/혈육/무게]”
“아.”
“가족이 늘었으니까 이 시간에 여기 있지.”
맞다. 노루랑 그렇게 깨를 볶더니, 이제 아빠 됐다고 했었지?
평소에 그렇게 잡혀 사는 것 같더니, 이 시간까지 공장에서 핏덩이를 썰고 있나보다.
“불쌍한 놈.”
“글세? 본인은 맨날 실실 웃고 다니던데? 인구 소멸을 넘어 인류 소멸에 가까워진 세상에 가족이 늘었다고~ 늘었다고~ 막 ‘가족이 복사가 된다고!!!’ 하면서 온 동네방네 자랑하면서 다니더라고.”
“걔가 그런 이미지였나?”“대화방에서랑 달리 좀 푼수끼가 있어 보이더라.”
음. 본인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겠지.
아무튼, 지금 바로 옆에 있다고 하니 안 만나볼 이유가 없었다.
드르르륵-
“조카스라….”
그러고보니 다들 돔에 모였다는데, 한번 만나보기는 해야겠군.
머릿속으로 대화방에서 자주 보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리며, 담배 연기가 매캐한 창고의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만나야 할 사람 생각하니까 잠깐 떠오르는데.
“그러고보니까 아까 벡스 지인이 어쩌고 할 때 래빗 얘기가 잠깐 나왔던데…. 아직도 둘이 만나고 있어?”
“켁!”
그 말에 막 내 뒤에 따라 나서던 벡스가 돌처럼 굳어버렸다. 앉아있던 상자를 대충 치워두던 나머지 두 사람도, 그 말에 히죽거리며 다가섰다.
“박교수.”
“왜?”
“역시, 니가 3등이다.”
“….음?”
“짜리몽땅, 돔에 있을때는 나가서 따로 잔다고. 땀내 푹푹 풍기는 우리 애들이랑 같이 있는게 아니라?”
“?!!”
“일단, 우리 짜리몽땅도 황무지 평균라인은 얼추 맞춰줬다는 이야기지.”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굳었다.
래빗.
게드로이츠의 계획에 꽤나 깊은 곳까지 얽혀든, 완성자 후보 중 하나.
무려 GG의 [세이브/로드]권한과 GG 커뮤니티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 관리자 권한]까지 소유한 막강한 개인.
냉정하고, 재능있고, 황무지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이며, 야망이 넘치는 사람이.
“얘를?”
따아악!
“[당소/양품]”
“아니, 니가 알고보면 진국인거야 우리야 다 알지만…. 연애사에 있어서는 솔직히 벡스 네가 좀-”
“[해당분야/ 박교수/ 발언권 없음/초짜]”
번개처럼 내 뒷통수를 후려갈긴 벡스는 그런 수신호를 보내더니, 뭔가 당당해보이는 걸음걸이로 창고를 나섰다.
“벡스 형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요.”
“크흐흐흐. 분발해라 3등. 지금 만나러 가는 놈도 몇 년 전에는 니 친구였지만, 지금은 애 아빠다.”
나머지 둘도 비웃음 섞인 말을 건네며 차례로 창고를 나서고.
문장이 주는 충격에 강타당한 나만 덩그러니 창고에 남아있었다.
“뭐해! 빨리 와 임마! 조카스 만나러 간다며!”
“어, 응….”
뭐랄까.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짙은 패배감이 느껴졌다.
녀석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환한 형광등 아래, 천장에 매달린 각종 절단기를 이용해 규칙적으로 변종을 분할해 나가는 손놀림.
텅텅텅!
이안이 녀석이 사용중이던 기계를 두드리자, 녀석은 그제서야 우리를 눈치챘는지 절단기의 전원을 내리며 다크서클이 짙은 눈을 들어올렸다.
“아직 교대 멀었습-?!”
잠시 이쪽을 봤다가, 눈을 끔뻑거리고.
이안, 에젤, 벡스를 차례로 보고 다시 이쪽을 봤다가, 두꺼운 장갑을 벗고 제 눈을 비비고.
어디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극적인 반응을 보여준 녀석은, 우리가 충분히 기다려준 다음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니가 왜 여기있냐?”
“어쩌다보니?”
조카스. 스피드웨건, 떼껄룩, 노루, 흥안만두와 같이 내 7년지기 인터넷 친구. 농담을 해도 그나마 선을 지킬줄 아는 놈이며, 전문 정보상인 다나와 버금갈 정도로 GG에 빠싹한 겜돌이.
“….조 케이스다. 메탈조 아저씨랑 햇갈리니까 그냥 조카스라고 부르고.”
“어 그래. 박교수다.”
녀석은, 피투성이가 된 투명한 비닐 앞치마를 입고 섬세하게 잘려나간 변종의 사체앞에서 어설프게 손을 들어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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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업계에서 제일 뜨거운 감자를 들고 오셨군.”
“얼굴 보자마자 일 얘기해서 미안하다. 피곤할텐데.”
“됐다 임마. 하루이틀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어떻게, 좀 알아?”
“알다마다. 그것 때문에 내 주변에서만 피본 사람이 몇 명인데.”
반가운 해후도 잠시. 어쩌다 왔냐는 이야기에 카밀라씨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녀석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버렸다.
“….변종 부산물 업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아?”
“뮤트처럼 못써먹을 물건이 아니라는 정도는?”
“하나도 모른다는 소리네. 일단, 어떤 일이 있는지부터 시작할까?”
드르르륵-
조카스는 작업중이던 사체를 사슬에 걸어 위쪽으로 끌어올리더니, 피가 흥건한 책상에 물을 뿌려 걸레로 훔쳐내었다.
“….그거 그렇게 해도 되는거냐?”
“어. 이건 피는 안쓰는 종류라 버려도 돼. 편하게 앉아. 메탈조 아저씨네도 앉으시고.”
“아니, 그런게 아니라….”
무슨 ‘변종의 신비전(展)’처럼 분해가 되다 만 시체를 머리위에 걸어두고 얘기하는거 말이었는데.
“그러면. 우선 시장 구조부터 설명해보자고.”
저게 익숙해서 그런지, 조카스는 피곤해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빠르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변종 사체 처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사냥/분해/가공.”
“숲에서 사슴잡아다 처리하는거랑 크게 다르진 않네?”
“다를 게 없지. 변종이라는 카테고리에 짐승을 잡아다 처리하는 것일 뿐이니까.”
다만, 그 단순한 과정에 있어서 필요한 전문성은 일반 수렵과 궤를 달리한다고 했다.
“변종의 사냥 단계에서 유의할 것은 지금 세상에 돌아다니는 변종의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거지. 그들 중 대부분은 인간의 깨진 상상력을 토대로 변이하거나, 혹은 그 과정에서 주변에 있던 다른 생물이 섞여나거나 한 형태를 띄고 있으니까. 종으로 분류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고, 비슷하게 생겨도 내부는 전혀 다른 녀석들도 태반이지.”
“하긴. 세상에 완전히 같은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변종의 ‘사냥’단계에서는 충분히 전문성을 가진 수렵인들이 요구돼. 변종의 위험도를 떠나서 대상의 어떤 부위가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어디를 건드리면 안돼고 어디를 건드려야 하는지를 잘 알고있는 사람들을 써야 비로소 상품성이 있는 ‘변종 사체’를 확보할 수 있는거야.”
조카스는 그렇게 말하며 변종산업 초창기에 청소부-짐꾼으로 일하던 자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저 생각없이 마구 쏴갈기다가 가스 주머니를 터트려서 대폭발이 일어났던 일.
일주일 동안 변종 똥을 온몸에 문지르고 매복한 사냥꾼이 세상에 다시 없을 깔끔함으로 목표로 한 변종의 미간을 꿰뚫어서 가져왔는데, 알고보니 그 변종이 비싸게 팔리는 이유가 뇌의 연구가치 때문이라 아무도 그 물건을 받지 않았던 일.
돔에서 처리한 변종들 중 엄청나게 비싼 놈이 있었다는 소문에 소각로 앞에서 산산조각난 변종더미를 파헤치거나 한 일 등….
“결국,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교육받은 인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지. 종으로 분류가 안되니까, 계통으로 분류하는거야. 권총탄을 튕겨낼 정도의 외피를 가졌다면, 외피 자체가 상품성이 있으니 가스나 화학탄으로 제압한다. 턱이 불룩한 놈들은 높은 확률로 분비계 주머니를 가졌으니 터지지 않게 확보한다. 뭐, 아직도 주먹구구식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식의 분류표를 공부한 전문 업자들이 생긴 이후로 시장에 공급되는 변종 부산물의 양이 많이 늘어났지.”
“전문적이군”
“아까도 말했지만 짐승 사냥이랑 똑같아. 곰을 잡았는데 가죽은 넝마가 되고 쓸개가 다 터졌으면 쓸만한게 없잖아? 상품으로 취급하기 위한 사냥이니까, 전문선이 있는 인재들이 필요하게 됐다는거야. 이거 기억해두시고.”
다음은 분해.
“지금 내가 하는 거. 마찬가지야. 그렇게 곱게 잡아온 변종 사체가 이런 처리구역에 들어오면, 경매를 통해 주인이 결정되고, 그 다음은 나 같은 분할 전문가가 수수료를 받고 쓰임새에 따라 잘 나눠주는거지. 사냥 단계에서 눈대중으로 파악했다면, 분해 단계에서는 직접 실험을 해가면서 분해해야 할 때도 있어. 음, 아무래도 눈으로 보는게 빠르겠지. 이거 볼래?”
조카스는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더니, 깔끔하게 토막난 뼛조각 하나를 꺼내 절단기 벨트 위에 얹었다.
“이걸 레이저 커터로 자르면 어떻게 될까?”
“음…. 잘리나?”
“거기까지가, 비전문가의 영영.”
딸깍.
위이이잉-
전원을 누르자, 위에서 내려온 레이저 커터의 날이 뼛조각 위를 천천히 지났다.
그리고,
펑!
따다다다다닥!
제법 사납게 터져나갔다.
“워우.”
“보다시피, 폭발해버려. 이게 꽤나 날카롭다보니 나처럼 절단기에 투명 방탄판 안둘러놓고 작업하던 사람들중 다친 사람들이 좀 되는 편이지. 다관절 변종의 뼈가 대부분 저런식이야. 경질화된 구조, 열을 받아도 연성은 그대로인데 팽창하는 성질. 가열하면- 펑! 그래서 저건 워터젯으로 깎아서 쓰거나, 안 받는 집도 많아.”
그 외에도 온갖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변종 사체를 다루다보니 이쪽도 제대로된 전문가가 아니면 작업하다가 죽어나가기 십상. 그래서 사냥꾼보다 분해, 가공 업자는 훨씬 숫자가 적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가공. 이건 우진 영감님이나 돔의 과학자들, 소수의 목숨 내놓고 사는 건스미스의 영역이지. 여긴 나도 잘 모르고.”
“확실한 것은, 이쪽 업계는 하나같이 전문가가 아니면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닫힌 구조라는 말이야.”
“전문가라…. 그러면, 어디서 흘러들어온 어중이 떠중이들이 손댈만한 일은 아니라는 소리네?”
“맞아. 사냥 단계야 뭐, 황무지 사람은 전부 인간 사냥꾼이니 전문성을 제쳐둔다고는 해도, 분해와 가공 단계에서는 무조건 전문가를 필요로 해. 떡하나 사람이었던 부분이 남아있던 물건을 처리해줄 전문가. 그냥 손재주 좋은 정도로는 안되는 물건을 처리할 수 있는 놈.”
부산물과 관련한 일에 대해서 돔은 제법 엄격한 규정을 적용해뒀다고 했다. 사람과 같은 형태를 유지한 변종. 두 발로 걷고 손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변종. 대화를 시도하거나 지성의 흔적이 남은 변종은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한 죽여선 안되며, 부득이 죽였다 하더라도 시중에 유통되어선 안된다.
어기면, 감찰부 행.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지?”
“사람 손이나 머리 닮은 물건을 팔고, 경매하고, 그걸 알고도 가공할 수 있는 전문가와 그들이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작업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전문가 눈에는 딱 봐도 티가 나거든? 그런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실용품으로 가공할 수 있는 또라이. 그걸 모두 가지고 있는 집단이 아닌 한 그런 물건을 제대로 융통하긴 어렵지. 이곳 모비-딕 급은 되야 한다는 말이야.”
모비 딕은 아니다. 남은 거라곤 복수심과 아직 의사로 남아있다는 자의식 뿐인 우진 영감님이 관리하는 집단에 그런 인간 백정이 들어올 자리는 없을 것이고.
이만한 사이즈에 이만한 사업을 벌이는 집단이라면, 남은 건 둘.
“렛 휴면이랑…. 뭐였더라?”
“스네일라 컴퍼니. 둘 다 질이 좋은 녀석들은 아니지만, 스네일라 컴퍼니 쪽은 인력 사업, 좀 깊이 들어가면 노예 매매나 약물, 전자 마약이나 불법 접속기용 에드온을 주로 취급해. 그쪽 애들은 이런 시설이 없거나, 규모가 작지.”
“그럼 하나 남았군.”
렛 휴먼. 쥐 인간이라….
“이름부터 자아 정체성이 확고한 집단인 것은 분명하군 그래.”
“끄응. 렛 휴먼이라…. 그쪽이면 사이즈가 좀 감당하기 힘든데. 교수 형, 지금 감찰부에 연락해볼까?”
“뭐 그럴 것 까지야. 애들 자는데 귀찮게.”
얘기를 듣고있던 교수는 벽에 걸려있는 시계에 눈길을 주었다. 자정. 안그래도 어둑한 계곡에 꽤나 깊은 어둠이 내렸을 시간.
“우리끼리 해.”
“뭐?”
“크흐흐흐. 거 좋지!”
당장 통신기를 들어올리던 에젤은, 어느새 작당모의에 들어간 세 사람의 모습에 아연해지고 말았다.
“어떻게. 잠입으로 할까? 아니면 정문부터 작살낼까.”
“잠입으로. 아직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잖아. 아, 맞다. 야 메탈조. 나 총 몇 개만 줘봐. 안들고 나왔어?”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가는 길에 몇 개 가져가자고. 나도 오랜만에 내 등짐좀 매봐야겠으니까.”
“….헤, 햅번…. 헤헤.”
“이거 간만이네. 나름 그리운 기분인데?”
벌써 어디를 어떻게 치고 들어갈지, 저쪽 구조는 좀 아는지 둘러앉아 쑥덕거리는 세 남자의 뒷모습.
에젤은 순간, 동네 푼수같은 세사람의 뒷모습에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 글자의 의미가 확 와닿는 것이 느껴졌다.
BDSM
가죽 재킷위에 멋들어지게 수놓아진 문양.
그리고, 보통 단원들과 달리 추가로 그 위에 커다란 이니셜이 새겨진 그들의 가죽 재킷.
H
I
V
햅번. 이안. 벡스.
셋이서 45구역 지하 벙커를, 당시 돔과 렙터의 정예가 모두 투입된 상황에서 전부 박살내고 독차지한 황무지의 도시 전설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뒷골목 집단 탑3 중 하나랑 맞붙는다고 할 때, 어느쪽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야될까?
“음…. 일단 나머지는 가면서 생각하고. 아, 조카스 너도 만나서 반가웠다. 다음에는 다른 애들이랑 어디, 한적한데서 한번 보자고. 오늘은 일이 좀 있어서.”
“어, 음, 그래. 진짜 가게?”
“니가 글로 가라고 알려줬잖아?”
“아니, 그렇다고 당장 갈줄은….”
슬슬 몸을 푸는 교수나 뒤에서 목을 뚝뚝 꺾는 이안. 스트레칭 중인 벡스를 보는 조카스의 눈빛은 에젤의 그것과 별반 다를 리 없었다.
“음…. 돔 쪽에는 가스 폭발이라도 있었다고 얘기하자. 아, 에젤 너는 지금 바로 감찰부쪽에 좀 가줘라. 되게 시끄러워 질텐데, 거기 나랑 우리 애들 있다고 얘기좀 해줘.”
“도와달라고?”
“아니, 좀만 천천히 와달라고. 괜히 폴리스 떴다가 애매하게 처리되면 골치아파. 이런 애들이 또 근성은 좀 있는 편이라.”
가서 아니면 냅두고, 맞으면 뿌리를 뽑아버릴 생각이었다.
뒷골목 집단이 나름의 필요 악이라고도 하고, 이렇게 한 순간에 공백이 생겨버리면 거기에 또 다른 놈들이 자리잡는 사이에 혼란이 가중된다고는 하지만.
적당히 썩은 선을 넘었으면 아예 흔적도 안남게 긁어내는게 좋거든.
“이 몸으로는 데뷔전이 되겠네.”
“아, 맞다. 박교수, 너 가슴에서 빔 안나오냐? 내가 그거 해달라고 그 의사한테 뒷돈까지 찔러줬는데.”
“이 쓰레기가.”
마침 바뀐 몸 상태도 실험해볼 겸, 좋은 상대가 될 것 같았다.
나름 의미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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