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94
Chapter. 17. 여행 준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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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세상을 보는 창구다.’
초등학생인가, 중학생 무렵에 학교에서 들었던 얘기다. 폭넓은 지식을 두루 갖출수록, 세상을 더 다양한 방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다르게 말하면, 사람에게 있어 지식은 그 사람이 보는 세상을 가두는 ‘액자’가 된다는 것이다.
“어머나 세상에. 이거, 겨울이 오기도 한참 전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은 것 같네요? 렛 휴먼의 VIP 담당 카멜리아-클로에요. 편안하게 카멜라, 아니면 아무렇게나 원하는 식으로 부르셔도 좋아요.”
“….박교수다. 이미 알고있겠지만.”
사람이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되는 액자. 그것은 단순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몸을 담은 문화, 나고 자란 환경, 기억에 남은 사건과 교훈, 온갖 경험이 뭉쳐서 만들어진 ‘관념’을 말하는 것이며.
“물론, 돔 제일의 유명인을 모를 리가 없죠. 가실까요? 마음이 급하신 듯 한데.”
상대방의 ‘액자’를 파악하는 순간, 그 사람을 속이는 일은 숨쉬는 것처럼 쉬운일이 된다.
‘마약. 인신매매. 밀수를 주로하는 지하조직. 이미 돔의 권력자와 뒷거래를 튼 경험 있음. 카밀라씨와 같은 국소 변이 증상에 대해 잘 알고 있음.’
저런 세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간 불신이 바탕에 깔려있다. ‘사람이 원래 그렇다.’, ‘절박해지면 본성이 나온다.’ 같은 말이 입에 붙어있는 사람들. 그들이 평생 만나온 사람의 대부분은 겉과 속이 다르며, 그렇기에 저들은 착한 사람을 봐도 ‘와, 착하네.’ 가 아니라 ‘와, 속내를 기가막히게 잘 숨겼네.’ 같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국소 변이 증상’을 드러냄으로서 내가 절박하고,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고 그들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저들의 지식으로 볼 때 나의 외형은 카밀라씨 같은 환자들과 똑같으며, 그들의 병증은 지금으로선 꽤나 진행이 빠른 불치병이니까.
그들은 내가 꽤나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절박함은 ‘유명인 박교수’가 선한 사람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이런 더러운 거래를 요구하는 상황에 꽤나 그럴듯한 개연성을 부여했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아, 이런 상황이면 이게 맞지’ 라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물론 저들도 뒷머리가 맨들맨들 해질만큼 뒷통수를 맞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니 한두번쯤 의심해볼법 하지만, 그러기엔 ‘불치병 걸린 돈 많은 권력자’ 라는 상황증거가 너무 강력했다.
그러므로, 이런 고정관념으로 가득 찬 뒷세계 지하조직을 속여먹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일이다.
에에엥-! 에에엥-!
“저쪽이다!”
“출구를 봉쇄해! 제압사격으로 독안에 든 쥐로 만들어버려!”
투타타타타탓-
….그리고, 그 식은 죽 먹기에 실패해버렸다.
“무기! 무기 챙겼냐!”
“일단 보이는데로 쓸어오긴 했는데, 태반은 만들다 만거요! 나머지 절반은 어따쓰는지도 모를만큼 희한하게 생긴 불법무기고!”
푸슉- 퍼어엉!
“….가스! 야, 이거 물어!”
“용케 챙기셨- 으아악! 이거 살아있잖아!”
“만들다 만 스킨마스크다! 방사능도 막는 물건이니까 일반 방독면보다 좋아! 실험실 규모가 크더니, 사장된 해피 블라인드쪽 상품도 연구하고 있었구만!”
빗발치는 총탄에 엄폐로 삼은 기둥이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하라서 적들도 폭발물 같은 범위 화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일까.
“제기랄, 죽으면 지옥에서 평생 사과할게! 미안하다!”
“미안해하지 마쇼! 나도 참은게 아니라, 너무 놀래서 굳은거였거든! 왕대장이 1초만 더 늦게 움직였으면 내가 먼저 조졌수다!”
그래. 내가 망쳤다.
증거 확보.
인질 위치 확인.
침투까지 기가막히게 스무스하게 진행해놓고, 마지막 ‘대가리 찾기’ 단계에서 멍청하게 깽판을 놓아버린 것.
깎여나가는 콘크리트 기둥 뒤에서 온갖 잡동사니 같은 불법화기를 뒤적거리는 사이, 완벽한 작전에 가까웠던 몇분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맹인 소년의 뒤를 따라 내려왔고, ‘캣 클로’ 라는 가명일게 뻔한 이름을 쓰는 VIP담당 안내원도 만났다.
가격 협상도 하고, 깨끗한 지불을 위해서 또 실링을 몇다리 걸쳐서 분할 납부하는 ‘세탁’에 들어가는 수수료도 협상하고.
그러는 사이 지하 연구시설, 어디 사이코패스 의사가 하는 병원같은 피투성이 의료시설, 두 평 남짓한 감옥에 벌거벗겨진 상태로 갇혀있는 ‘상품’들까지 차례로 보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약간 긴장한 듯 하면서도 한 배를 탄 사람 특유의 안도한 표정은 제법 잘 먹혀들고 있었다.
‘자, 다음은 꼭 보셔야 할 시설이에요.’
안내를 맡은 여자가 우리를 데려간 곳.
우우우우웅-
뭔가, 기계 같은 것의 진동음 같은게 들렸다.
‘이곳은, 수렵하는 방식에 비해 한참 부족한 [인간 변이 부산물]의 문제를 해결하고, 상품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시설입니다~’
그 여자가 문을 열자 드러난 것은 괴악함을 넘어 엽기에 가까운 시설이었다.
투명하고 두터운 방음벽이 있고, 그 주변으로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신중하게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 ..! ….!”
방음벽 너머에 있는 사람은 둘이었다. 하나는 쇠사슬에 묶인 어린아이. 반대쪽은 누군가 몇 번이고 부러뜨린 듯, 복합 골절이 일어난 다리에 모래 주머니를 몇 개나 달아둔 중년의 여성.
우우우우웅-
소리의 정체는 방음벽 안에서 고속으로 회전하는 톱날의 진동이었다. 벌써 몇 번이나 같은 일을 반복한 듯 새빨간 원형이되어 작동중인 그것은 천천히 아이쪽의 머리위로 내려가고 있었으며, 반대편의 여성은 악을 쓰며 바닥을 기어 손을 뻗고 있었다.
‘안에 있는건 엄마와 딸이에요. 이 가혹한 세상에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남은, 세상에 둘 밖에 없는 가족.’
‘엄마쪽의 주머니에는 딸의 수갑을 풀 열쇠가 들어있고, 허리에 묶은 모래주머니는 해봐야 15kg밖에 안되니, 아주 열심히 기어간다면 시간 내에 딸의 수갑을 풀고 저기서 빼낼수도 있어요.’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두동강나게 속도를 조절해놨지만. 다소 극적인 면이 있죠? 오래된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는데, 다들 좋아하더라구요.’
기계장치와 모녀. 얼굴의 절반이 변종의 그것과 같이 변한 어머니는 악을 쓰며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바닥을 기고 있었다.
‘….트라우마.’
‘맞아요. 저 상품의 경우 얼굴의 피부 일부만 변이해서 상품성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이런 연극같은 장치를 만들고, 여기서 성공하면 나가게 해준다고 속삭이는거에요. 이미 이 잔인한 쇼를 방송해서 덕분에 충분한 돈을 벌었다고. 수갑을 풀고 딸을 구하면,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풀어주겠다고. 실험에, 마약성 진정제에, 대부분 바보가 되어있어서 잘 믿어요.’
우우우우웅-
‘나름 미치는 방식을 유도하는거죠. 저렇게 아슬아슬하게 눈앞에서 딸애가 두동강나면, 그 피를 뒤집어쓴 엄마쪽은 조금만 더 빨랐으면-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미치곤 하거든요. 부러진 두 다리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나약한 두 팔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게 변이를 촉진 시켜서 보다 괜찮은 상품으로 거듭나는거에요. 빠른 다리, 강인한 팔에 대한 집착은 대부분 좋은 상품을 뽑아내더라구요.’
‘미친 자식들….’
‘어머, 설마 저희한테 하는 소리세요? 여기 물건 사러 오신분이?’
또각. 또각.
여인이 기어가는 속도에 맞추듯 톱날은 천천히 내려갔다. 그들을 배경으로, 안내역을 맡은 여자가 뱀처럼 내 목을 휘감으며 귀에 속삭였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보고, 우리에게서 실험체를 산 다음, 아무 일 없이 양지로 돌아갈 거에요. 그 순간 당신은 이 모든 것에 동의한 게 되는거랍니다? 아무나 보여주는 시설이 아니지만, 음~ 당신은 그래도 착한 것으로 소문이 나있는 사람이니까. 보험은 많을수록 좋잖아요? 앞으로 영원히 한 배를 타게 될, 동업자님?’
이게 렛 휴먼이 일하는 방식이었다.
탐욕이든, 절박함이든 어떠한 이유로 그들의 ‘진짜’ 물건을 사는 이들을 불러들여 조직의 가장 깊숙한 어둠에 강제로 발을 담그게 하는 것.
그 본연의 모습에 질려 발을빼려해도 이미 이곳까지 들어온 모든 기록을 틀어쥐고 협박하는 것.
‘….지금껏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끌어들였나?’
‘당신 가슴팍에 그것처럼, 변종의 신체 부위는 이식해도 거부 반응이 없거든요? 변종화가 진행중인 인간의 장기도 제법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더라구요? 거부반응 없는 심장 이식, 폐 이식 같은걸 받으러 찾아오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다들 제 목숨 걸린 일이라 눈 딱 감고 무시한 다음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거죠.’
‘들어올 때는 사람이었지마안~ 쥐 소굴을 나갈 때는 모두가 목줄 매인 쥐랍니다?’
납치. 감금. 인신매매와 인체실험, 고문까지도 모자라서 저런 엽기적인 트라우마 양산 시설이라니.
‘물론, 대영웅 박교수님도 마찬가지. 축하해요? 찍찍-’
콰악!
‘뭘 축하씩이나.’
‘악, 아각- 가아아악!’
내 인내심이 바닥난 것도. ‘끝까지 참아서 대가리의 정보가 있는 곳을 확인하자’는 생각이 모조리 증발해버린 것도 이쯤이었다.
정신을 차렸을때는 그년의 머리통을 방음벽에 찍어 터트려 버린 뒤, 메뚜기처럼 튀어나가는 연구원 중 하나를 잡아다가 톱날을 멈춘 뒤였다.
에에엥- 에에엥-
시뻘겋게 깜빡이는 경광등과 사이렌 소리.
‘쓰벌. 나가리네. 이러면 여까지 기어들어온 보람이 없는데. 야, 미안하게 됐다.’
‘어, 어우, 이거 진정이 안돼서 이거…. 왕대장, 혹시 손에 든 그놈, 이제 다 썼습니까? 연구원 잡은거 그거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아직도 얼이 빠진 부들람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내게 붙잡혀 기계를 멈춘 연구원이었다.
버둥, 버둥버둥!
‘사, 살려주십쇼! 저도 어쩔 수 없이 코가 꿰여서, 놈들이 시키는 대로만-’
‘이거? 다 썼어.’
‘그럼 나도 좀 씁시다.’
스각!
내 말이 떨어지자 마자 부들람은 허리춤에 차고있던 쿠크리를 휘둘렀고,
철퍽!
캣 뭐시긴가 하는 여자의 피가 흥건한 바닥위로 깔끔하게 잘린 머리통이 떨어졌다.
‘휴우! 이제야 좀 진정이 되네. 저거 한놈도 못잡고 살려보냈으면 나 손떨려서 아무것도 못했수다.’
‘비상벨 울렸으니 밖에 있던 애들이 밀고 내려올걸? 쟤들도 다 죽을거야.’
‘내 속이 풀리려면 내가 썰어야지. 남들이 하는거야 알게 뭐요. 그나저나, 이 놈들도 퍽이나 배짱 장사였구만. 왕대장처럼 막나가는 놈이 있으면 어쩌려고 이랬는지 몰라?’
‘저들에게 보여준 내 모습은 ‘뒤지기 싫으면 사야함’ 이었으니까. 아마 다 겪어보진 못했지만 여기서 나가면 쥐새끼들의 살뜰한 에프터케어가 기다리고 있었겠지.’
아직도 열이 식지 않은 머리를 시답잖은 잡담으로 식히는 사이, 밖에서 고함소리와 달음박질 소리, 철컥거리는 쇳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대로 뛰어나와 건스미스의 탈을 쓴 마약쟁이들 사이에서 칼춤을 추며 급한대로 주변에 있던 화기 비스무리 한 물건을 왕창 끌어안고 도주하다가, 끝내 포위당해서 이렇게 ‘기둥 뒤에 사람있어요-’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투타타타타탓-!
피웅-!
“악! 니미! 뭐 방법 없습니까! 왜, 전에 데스몬트 형님이랑 보러갔을때는 세상에서 젤 무섭게 생기셨드만! 신체 스펙만 봐도 전차 세대랑 캐치볼도 할 수 있는 괴물이라며! 그거 못합니까!”
“나 죽어야 그거로 돌아간댄다! 못해!”
“그럼 앞날 창창한 부하 살리는 셈 치고 먼저 좀 죽어주쇼! 코듀로는 내가 책임지고 평생 보살펴줄게!”
“싫어 임마! 셋 하면 저기 옆에, 다음 기둥으로 구르는거다!”
“굴러서, 몸에 구멍 여덟 개쯤 난 다음에, 그 다음은?”
“버텨! 통신기로 밖에 연락했으니까 금방 내려오겠지!”
“금방은 얼어죽을! 여기 미로 뺨치잖-”
“하나, 둘-”
쿠우우웅-
.
.
.
.
후두둑. 후두두둑.
몇발 맞을 각오로 뛰어나가기 직전, 지하 건물 전체를 울리는 음산한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먼지가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 왕대장? 이거, 그, 어….”
“아, 아니지. 아니어야 하는데, 이런 쥐새끼 굴 같이 여기저기 파먹은 지하에서, 그것만은 아니어야 하는데….”
콰아아앙-
후두두둑! 덜컥! 덜컥덜컥!
챙그랑!
폭음이 한번 더 울리고, 이젠 발밑까지 울리는 진동과 함께 암굴 천장에 매달린 조명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를 포위한 적들 마저 주춤하며, 먼지와 유리가 떨어져내리는 천장을 살펴보는 사이.
스가가각!
그 찰나의 틈을 파고든 누군가가 포위망 사이로 피분수를 일으키며 돌파하고.
“벡스? 아니 언제,”
“어, 어어어으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온-”
“어어엎드려!”
와락!
번개처럼 달려든 녀석이 품안에서 묵직한 중형 실드 발생기의 전원을 넣는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크하하하하! 쥐- 잡아라! 쥐이이이이!”
폭염과 함께 쩍 갈라진 천장 사이로, 이렇게 들려서는 안될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려왔다.
이안. 오오, 이안, 이 미친 새끼가.
그러고보니. 저 인간이 합법적으로 폭약을 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지.
그래도…. 그래도 인간아!
“싹다 깔려죽게 생겼잖아, 이 또라이 새끼야!!!!”
“안해 임마! 나 이거 하려고 대학물까지 먹은 전문가야! 충격부터 구조물 붕괴까지, 충분히 시간을 두고 한 거라고! 나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터트렸다!”
“저게 이성이 있는 사람이 끌고올 물건이냐!”
“그럼! 날탄의 관통력은 이런 구조를 신속 안전하게 뚫는데 가장 적합하지!”
희미하게 보이는 천장의 불빛 속, 크레인에 걸어서 포격각을 아래로 낮춘 전차의 대가리를 보자 쌍욕이 절로 나왔다.
착, 차작!
지표면에서 지하까지 선명하게 뚫린 구멍. 그 구멍을 타고 레펠 강하한 BDSM 대원들은 신속하게 국소 변이가 진행중인 사람들의 케이지에 붙더니, 레이저 커터로 창살을 잘라내 그들을 품에 안은 다음 위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어이, 부들람. 고생했다.”
“위에서 봅시다 왕대장~”
“씨부럴. 나도 저거나 했으면 얼마나 좋아.”
“허….”
돌입부터 제압, 폭파를 통한 퇴로 확보와 구조까지 걸린 시간이 체 2분도 안되는 칼같은 정확함.
“야아아아! 임팩트까지 24초 남았다!!! 23! 22-! 내가 터트린걸 후회하게 하지 마라! 20-!”
“이, 이이이 일단 땅, 밧줄, 그으으, 승천!”
“일단 나가서, 나가서 생각합시다 왕대장님!”
“….”
천장의 구멍에서 내려온 레펠을 붙잡기 전, 지하 공동의 안쪽 부근이 시선을 붙잡았다.
두 번째 폭음이 들리자 화력조를 지휘하던 놈이 달려간 곳. 탈출구를 부르짖던 놈들과 다른 방향이니 필시 내가 찾던 중요한 자료나 파기해야할 무언가가 있는 곳일 터.
“15! 14! 야! 12!”
“쓰읍. 부들람? 아까 우리 막 끌어모았던 잡동사니들, 얼추 기억하냐?”
“씨발 나가서 얘기합시다! 먼저 가우!”
그 말만 남기고 밧줄에 끌려 올라가는 부들람의 모습에, 나도 밧줄에 발을 걸었다.
쿠구구구궁-
“….쫌 아쉽네.”
“뭐가 아쉬워 뭐가. 깔려 죽는 패티쉬 같은거 있으쇼? 응?”
윈치로 끌어올리는 듯 순식간에 위로 솟구치는 몸과, 아슬아슬하게 무너지는 지하 공동.
코앞에서 제일 큰 먹이를 놓쳤다는 생각에 아쉽긴 했지만, 일단 당장에 확보한 정보들로 만족하기로 했다.
“살살좀 하자, 제발.”
“크흐흐흐. 니가 통신으로 그랬잖아? ‘최대한 빨리! 나 죽어!’ 라고. 이보다 더 빠를 수 있냐?”
“애미.”
“됐고, 끝났으니까 마무리 해. 지금까지는 내가 해줬지만, 돌아왔으면 이제 니가 해야지. 난 하기 싫어.”
“니미.”
나도 하기 싫지만, 다들 날 쳐다보는 꼴이 뭔가 기대하기는 하는 모양.
히죽거리는 이안의 엉덩이를 걷어차 준 다음, 폭연을 뒤집어써서 거지꼴이 된 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어…. 새벽부터 고생들 하셨수다! 잔반처리 팀은 따로 나가있나?”
“저어-기 제우스 벨리 외곽까지 둘러놨습니다!”
“됐네 그럼. 거기 환자들은 돔…. 아니, 우리 본부에 잠시 보호하고, 나머지는 들어가서 쉬어! 고생했다!”
“야아~ 들어가 쉬랍신다! 차빼! 집에 가자~!”
“비싸게 쳐주쇼! 시간 외 수당은 싯가야!”
“제우스 벨리에 빵구낸거, 청구 나오면 다 몰빵해주셔야 합니다! 우린 몰라-! 우린 위에서 시킨대로 움직인거 뿐이라고~”
대충 말해주자 히죽거리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각자 장비 챙겨서 할 일들 하러 가는 대원들.
“전차는. 샀냐?”
“렌트. 견인용 구난까지 세트로다가. 위험한 일 하는데 장비라도 좋아야지.”
“….애들 잘 키웠네.”
“그치? 나 좀 소질있나봐.”
얄미웠지만 빈말로라도 아니라고 하지 못할정도로 잘 키웠다.
“아, 이거.”
“뭔데?”
“케스가 약식으로 계산한 청구서. 오면서 전차로 밟은 가게랑, 상인이랑 손님 전부 대피시키면서 발생한 손해 배상이랑, 제우스 벨리 밑바닥 아작내면서 주변 지반 다 갈아버린거 보수 공사하는데 필요한 비용.”
“어…. 나 혼자…. 이걸?”
“아, 잠깐만. 이걸 빼먹었군.”
사각사각-
“추가로, 박교수씨가 개인 적으로 받아온 일에 동원된, BDSM 전원 시간외 근무 수당. 메탈조, 벡스 포함. 나는 쟤들보다 더 비싸. 니가 개인적으로 받아온 일에 동원됐으니, 계산은 확실해야겠지?”
찰칵 찰칵, 화르륵!
계산서를 내 품에 쑤셔넣어준 이안은, 멋들어지게 불을 붙이곤 벌써 저만치간 대원들을 따라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스락.
나는, 놈이 쑤셔넣은 종이를 꺼내 어스름한 새벽 빛에 비춰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 열하나, 열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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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한테 좀 더 빌려야하나?”
몇 번을 읽어도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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