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95
Chapter. 17. 여행 준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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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릭- 띠리릭-
딸깍.
“이 아침부터 끔찍한 사고가 난 게 아니라면, 긴급회선을 쓰는 사람은 자네뿐이겠지. 안 그런가?”
“어…. 좋은 아침-”
“같은 소리하지 말게. 사이렌 소리에 포탄 터지는 소리, 돔 전역에 울려 퍼지는 진동까지. 어제 새벽에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신경이 굵은 사람이 있다면 채용하고 싶을 정도니까. 뭐가 어떻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겠나? 어제 에젤이 약식으로 설명한 것 말고, 일의 시작부터 완료까지. 아는 것 전부 다.”
“그, 어, 그럼 38구역 사건의 후유증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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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통신기 너머의 한숨 소리. 얼음이 딸그락거리는 소리와 신경질적인 종이 넘기는 소리.
일단 돔 내부의 최대규모 오프라인 시장에 대피령이 내려졌고, 밤새 총성과 폭음이 울리고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던 만큼 가장 먼저 연락한 쪽은 총장님이었다.
국소 변이증상, 희귀하지만 적지 않은 환자, 납치, 판매, 그리고 안에서 봤던 모든 것을 다 털어놨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총장은 간간이 목을 축이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 말 없이 그 모든 것을 듣고는, 제법 오랬동안 고심하고는 말을 이었다.
“급변하는 사회에 있어 과도기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 이번 사건이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래도 돔이잖습니까? 과거의 질서 회복을 추구하는 집단인데, 이런 연쇄살인마도 두 발 벗고 도망갈 미친놈들은 좀 막아주셔야죠. 다른 곳도 아니고 돔의 앞마당이잖습니까. 제우스 벨리.”
“….알겠네. 우선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은 나도 동의하네. 돔이 해야 할 일을 그쪽 사람들이 대신해줬다는 것도 이해했고 말이야.”
“오, 그럼-”
“생각 없으니 돌아가시게.”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요?”
“우리 둘 다 다음에 이어질 말이 뭔지 아는데 말을 하고 안 하고에 차이가 뭐가 있겠나?”
“아니, 진짜 한 푼도 안 도와주실 겁니까?”
“대답도 알고 있으니 입에 담을 필요가 없겠고.”
망할.
어떻게 살살 구슬려서 피해보상에 좀 엮어보려고 했더니,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선수를 쳐버렸다.
아니 어떻게 저기까지 다 이해한다고 해놓고 나한테 독박을 쓰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다른 집 문제 해결해준 것도 아니고, 저들 집 안방에 쥐새끼가 드글드글한 걸 다 잡아줬는데!
“총장님, 당신은 양심도 없습니까?”
“물론 그대로 뒀다면 돔의 치안에 꽤나 치명적인 문제로 자라났을 테니 우리가 자네 도움을 받은 것은 맞네.”
“그죠!”
“도의적으로는 우리가 일부 부담해주는 게 맞지.”
“그렇지!”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도(道)와 의(義)로 돌아가는가?”
“그러니- 아?”
잘 가다가 급선회하더니, 갑자기 진지하게 목소리를 낮추는 영 총장.
“드러난 사실만 나열해보지. 우리는 그런 일을 의뢰한 적이 없고, 피해 규모도 우리 쪽이 상정한 것을 아득히 초과했으며, 그 과정에서 따로 우리가 협력한 적도 없지. 도의를 벗어나 법의 관점으로 보면 ‘렛-휴먼 소탕작전’은 오롯이 BDSM이라는 개별 군사 집단의 행사였다는 말이야. 이해하나?”
“아니,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게-”
“경찰이 범인을 놓쳤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발을 걸어 넘어뜨린 덕분에 잡은 경우. 행인은 경찰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러니까,”
“서비스로 고기를 썰어주는 식당에서 고기를 직접 썰었다 하여 고깃값을 깎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나?”
“그-”
“자네의 자.발.적.인 호의와 선행, 개인적인 치안 활동이 돔의 운영에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나 우리가 그것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할 의무는 없지. 하다못해 결행 전에 임시 신고서라도 한 장 보내지 그랬나.”
“….야!”
밀린다. 망할.
저 치고 나오는 타이밍 좀 보라고! 말빨에서 내가 밀려! 이 인간은 알코올 오버클럭 같은 기능이라도 탑재되어 있는지 말하는 중간중간에도 계속 호로록하고 술 빠는 소리가 들리는데 왜 이렇게 말짱한 거냐고!
“진짜 그렇게 나올 겁니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우리가 남이가!
“미안하지만 돔은 지금 그런 돌발 지출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서 말이야. 구역 내 미신고 군사행동에 대한 건은 없었던 것으로 넘어 가주지. 나머지 금전적인 부분은, 알아서 하고.”
“총장님!”
“아, 그리고 양심에 대한 것이라면, 몇 해 전에 제법 비싸게 팔아치웠네. 혹시나 궁금해할까 싶어서.”
“총장니이임!!!”
“아, 하나 더. 빌려 간 백만 캣은 지정된 계정으로 조속한 시일 내에 상환하도록. 따로 이자는 안 받겠네. ‘우리 사이’인 만큼.”
뚝.
뚜우- 뚜우- 뚜우-
“여보세요, 여보세요?”
끊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추하게 인정에 매달리기까지 했지만, 돌아온 것은 비참한 통신기의 울음뿐이었단 말이다.
“허어어어….”
점차 밝아오는 제우스 벨리를 허망하게 보고 있자, 옆에서 히죽거리던 친구놈들이 실실거리면서 다가왔다.
“뭐래?”
“….이빨도 안 들어간다. 망할 알콜로 움직이는 기계인간 같으니라고.”
“캬! 내가 그래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니까! 마!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해야지! 한 집단의 수장이면 때로는, 아니 매일같이 냉정해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심지어 이번 일은 딱히 돔에서 보상해줘야 할 의무도 없는데!”
“아주 벼룩의 간을, 아니 벼룩으로 오마카세를 차리라고 해라. 씨발 거.”
“크흐흐흐. 너는 벼룩이 아니라 시지프스지. 돈, 충분하지 않냐?”
“….어떻게 돈이 되긴 하네.”
총장에게 연락하기 전, 어지러울 만큼 0이 붙은 종이 때문에 호달달 떨어가며 코듀로에게 연락했다.
[네- 당신의 삶에 완벽한 동반자- 박교수씨네 하우징 AI 코듀로입니다~ 지금은 주인님이 부재중이오니-] [나야 임마.] [….엥?]뚜.
뚜.
뚜.
[네에~ 음성 확인 됐구요~ 미등록 발신지인 것도 확인됐습니다~~~ 임마!!! 요새 어떤 멍청한 AI가 음성지문 카피한 보이스 피싱에 걸리겠냐! 앙! 너 같은 놈이 한두 명이었는 줄 알아! 어! 우리 주인님이 돈 좀 벌었다고 말이야, 아주 온 동네에서 어떻게 해 먹겠다고 수작을~ 수작을 아주 귀찮게! 어! 너 거기 딱 기다려! 내가 지금 당장 발신지를 추적해서! 온 커뮤니티에 싸그리 뿌려버리겠다!] [야.] [심지어 커뮤니티 등록도 안 된 통신으로 말이야! 요즘 사기꾼들은 해 먹겠다는 정성도 없어가지고-] [집에 딱 한발 든 리볼버. 탄환에 칼집 일곱 개 그어놓은 그거, 난 이제 쓸 일 없는데 너한테 써줄까? 정신 안 차려?] [주, 주인님?] [간만이다 임마. 집은 잘 지키고 있는 모양이군.] [주인니이이이이이이이임!!!!!]그동안 뭔가 시달린 게 많았는지 특유의 전자음 섞인 하이톤으로 꺼이꺼이 울어대던 녀석.
[아이고오~ 커뮤니티에서 주인님이 나오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서도! 요 몇 달 사이 연락이라고 오는 것들이 죄다 사기꾼에, 해커에, 이 방정맞은 놈이 그만 의심만 잔뜩 학습 해버렸습니다요!] [됐고. 나 계정에 잔액이 얼마나 있는지 좀 불러줘 봐.] [돈! 돈 말이지요! 암요, 불러드려야죠! 제가 주인님 계좌를 볼 때마다 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걱정이! 돈 늘어나는 속도가 아주 메모리를 잡아먹을 정도란 말이지요! 계좌에 숫자가 너무 길어지면 자동으로 글씨체가 작아지는 기능이 있는 거 아십니까? 세상에 이거 직접 본 AI 몇놈 없을걸요?]그렇게 녀석이 호들갑을 떨어대면서 불러준 액수에, 사시나무 떨듯 달달 떨리던 손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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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주인님? 고장 난 거 아니죠?]몸에 내장된 통신기라 수화기가 없는 게 아쉬웠다. 지금 이런 상황에는, 충격받은 얼굴로 수화기를 떨어트리는 리액션이 딱인데.
부자다.
난 부자야.
이 고철이 생철이니, 구리가 섞였느니 하면서 언성을 높이던 개인 생존자는 더 이상 없다! 난 이제, 눈이 튀어나올 만큼 부자가 됐단 말이다!!!!
손에 든 간이 계산서와 코듀로가 불러준 금액을 비교해 보았다. 어디 보자. 대충 이 정도면….
“지불하면 얼마나 남냐?”
“어…. 지반이 가라앉아서 제우스 벨리 벽면 쪽도 위험해졌다고 하고, 실시간으로 피해 금액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을 계산하면….”
“하면?”
“….일시불도 되겠는데?”
그랬다. 사람 머리통을 맨손으로 터트리고 시산혈해 속에서 커피도 한잔할 수 있는 상남자 박교수를 달달 떨게 했던 영수증은, 할부도 필요 없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그래 임마. 박교수라는 인간은, 더 이상 과거의 개인 생존자가 아니란 말이다. BDSM 대원 숫자가 350명을 돌파했다고. 심지어 우린 쉬지 않고 위험지역에서 작전을 이어 나가는 집단이란 말이다. 우리가 하루에 얼마를 쓰는지 알아? 넌 그 집단의 수장이라고. 소시민처럼 오늘 계란이 할인이네 뭐네 할 깜냥이 아니란 말이다. 영 총장 그 인간도 네가 얼마나 알부자인지 아니까 냅다 떠넘긴 거지. 그거 갚는다고 돔의 영웅이 거렁뱅이가 되게 생겼으면 너보고 갚으라고 했겠냐. 이참에 속에 든 그 거지근성을 좀 버려라. 한 몇천억이 계좌에서 쑥 빠져나가는 걸 보면 달라지겠지.”
“적응이 안 되는 걸 어쩌냐.”
돈이 많은 건 많은 거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 개고생해가면서 번 돈이 한 번에 쑥 까이는 게 마음 아픈 건 아픈 거지.
아무튼, 다소 충격적이었던 돈 문제가 대원들 보너스까지 넉넉하게 뿌릴 정도로 해결됐으니, 이제 다음을 생각해야 할 차례였다.
“환자들은?”
“돔으로 보내지 말래서 일단 우리 본부에 데려다 놨다. 역시, 쥐대가리는 돔에 있는 거냐?”
“추측이지만, 일단은.”
아직도 돌가루가 날리는 현장을 내려다보며 저 아래에 수집한 정보들을 떠올렸다.
“암시장답지 않게 제대로 갖춘 최신 시설. 이건 돈만 많다고 가능한 게 아니지.”
실험, 의료장비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온갖 기술과 재료 등은 하나같이 흔한 것이 아니고, 그만큼 흔적을 남긴다.
꼬리 하나.
“조카스가 그랬지. 저 변종 부산물이 사냥은 몰라도, 가공 업자는 진짜 전문가밖에 없다고. 안에 보니까 장인으로 보이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더라고. 두세 명이면 직접 키웠다고 보지만, 이렇게 좁은 바닥에서 지하 범죄자들이 양지보다 체계적으로 전문 인력을 양산했다고 보기는 힘들어. 아마, 부산물 가공 전문가 중 갑자기 소식이 끊긴 놈을 찾으면 뒤를 밟을 수 있을 거다.”
미로나 다름없던 쥐 소굴인 만큼, 아예 지반을 무너뜨리고 제우스 벨리를 포위하다시피 해도 어떻게 살아나간 놈들이 있기는 할 것이다. 제우스 벨리 밖까지 대피로를 뚫어놨다면 그건 감찰부까지 다 뛰어나와도 찾을 수 없는 수준이니까.
대체 불가능한 인력인 가공 전문가는 대피 시 구조 1순위였을 것이고, 지하에서 봤던 놈들 중 몇 명은 필히 살아서 튀었을 것이다.
감찰부를 풀든, 돈으로 사람을 사서 풀든 그놈을 찾아서 누구랑 어떻게 접선해서 거까지 기어들어갔냐-를 캐내면 쥐꼬리가 하나 더.
“잡혀 온 변이 중인 인간의 용도. 변이 부위는 일반 변종과 같이 가공해서 팔고, 나머지 인간인 부분은 변하지 않아도 변종 특유의 특징인 ‘이식 시 거부반응 없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장, 간, 폐, 기타 모든 장기를 모조리 적출해서 팔아먹는다고도 하더라고. 누구에게나 적합한 만능 이식 장기가 있다면 장기 이식의 난이도가 단순 외과수술 수준으로 확 낮아지니까, 이거 진짜 많이 팔린다고 그년이 그러더라고.”
사람의 장기기관을 로봇처럼 갈아 끼우고, 후유증도 거의 없게 만들어주는 의료 혁신에 가까운 장기 이식. 파는 놈이 있으면 사는 놈도 있다. 비싼 돈 주고 장기를 갈아 끼울 정도의 사람. 돈도 많고, 돈이 많은 만큼 저 쥐 소굴의 막장까지 가기 전에 그 돈으로 어떻게든 치료하려고 했을 것이며, 당연히 그런 의료 행위의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그런 놈들을 찾아서 감찰부 지하에 매달아 둔 다음, ‘배 까고 장물 회수할래, 아니면 그냥 불래?’ 같은 질문으로 탈탈 털면, 쥐꼬리 셋.
“마지막으로 지하에서 봤던 만들다 만 화기. 아무리 쥐 소굴이 첨단 시설을 다 갖췄어도 금속 주조시설은 힘들지. 거기서 나오는 열이며 가스며 다 케어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화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을 납품한 업체가 있을 거다. 건스미스부터 중고 화기 업자까지 먼지 나게 털어서 납품한 업체를 찾으면, 쥐 꼬리가 넷.”
급하게 끌어모은 정보지만, 잠깐이나마 내부자가 되어 확인했던 만큼 정보의 질은 괜찮은 편이었다.
“이렇게 쥐꼬리 하나, 하나 확인하면서 잡아당기다 보면, 결국 찾을 수는 있을 거야. 누가 이런 규모의 범죄집단을 모색했고, 운영했으며, 어디까지 엮였는지.”
“됐네 그럼!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냐?”
“….찾을 수만 있을 거다, 라는 얘기야. 그 과정에서 돔 전체를 벌집처럼 쑤셔야 할 테니까.”
하나같이 굵직한 쥐꼬리 네 개. 그걸 잡아당기다 보면 아무리 숨겨도 티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지금쯤 여기 남아서 다시 판을 키울지, 아니면 다 접고 돔을 떠날지 고민하고 있을 쥐 대가리는 소란이 일면 곧바로 돔을 나가버릴 것이다.
“이런 꼬리잡기 식 조사는 어떻게 해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쥐 소굴은 묻었고, 꼬리부터 몸통까지는 토막을 친다 해도, 대가리는 못 잡게 됐다. 이번 작전은 실패야.”
엄밀히 말하면, 인간 사냥의 주력 집단을 돔에서 퇴거시켰으니 당장 의뢰 자체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쏘우 뺨치는 ‘인간 트라우마 양산 시설’을 만든 놈을 못 잡았으니, 앞으로 한달은 자기 전에 이를 부득부득 갈지 싶었다.
“어쩌겠냐. 사람이 매번 완벽하게 성공만 하고 살 수도 없고. 작전이라는 게 맨날 성공만 하면 그걸 작전이라고 부르겠냐. 그냥 일이나 업무지.”
“….에이, 몰라! 이제 뒤처리나 좀 하고, 놀러 가자! 난 끝!”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여기서부터는 내가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 일은- 여기서 끝.
한 참 걸릴 줄 알았던 일이 이렇게 어설프게 끝나는 바람에 이미 포기한 휴가가 6일이나 되돌아왔다. 이 정도면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해야 할지, 다마호사(多魔好事)라고 해야 할지.
“뒤처리…. 이번 일이 끝나도, 국소 변이가 진행 중인 환자들이 평범한 삶을 살기는 힘들겠지?”
“아무래도. 옆집에 언제 괴물이 될지 모르는 사람을 두고 싶어 하는 생존자는 없으니까. 황무지 사람들은 안전에 관해서는 아주 철저하지.”
“그, 그…. 지하, 버, 범죄자…. 바퀴벌레….”
“음? 아, 그것도 그렇네. 이런 희귀한 증상의 사람들이 돈이 된다는 사실은, 결국 어떻게든 음지에서 알음알음 퍼질 테니까. 제2, 제3의 인간 사냥꾼이 생기는 것도 금방이겠군.”
사람들의 인식 변화. 그리고 조금 더 실질적인 보호를 필요로 한다라….
일단 본부 가면서 생각하라는 말에 차 문을 열던 중, 벡스 녀석을 보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야, 벡스.”
“어….?”
“너 래빗 개인 연락처 가지고 있지? 아직 만나고 있다고 했으니까.”
“어어….. 그렇….지?”
“나 통화 한 번만 연결해주라. 안 그래도 여러 가지 일에서 엮여있어서 한번 볼까 했는데, 이번 일까지 해서 한 번에 처리하게.”
“나, 난해- 어렵지는 않은데…. 라비카는 닫, 다른 살, 사람 말…. 잘 안 들어….”
“괜찮아. 한 번 정도는 무조건 만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있거든.”
“마법의…. 주문?”
“푸핫-! 박교수가 무조건 여자를 불러낼 수 있다고? 지나가던 변종이 텝댄스를 추겠군.”
운전대를 잡은 이안이 비웃고, 벡스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통신을 연결했지만.
이번 만큼은 진짜 자신 있었다.
딸깍-
“네에! 래빗 프린세스의 개인적이고 은밀한 연락처랍니다! 벡스-! 설마 먼저 전화를 다 걸고! 그래, 내가 매일같이 말했지만 말 더듬는다고 맨날 수화나 하고 있지 말고, 조금이라도 말을 해 버릇해야 나아지는 게-”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속사포처럼 뻗어 나오는 밝은 목소리.
“어, 으응…. 노,녿, 노력하고 있…. 아냐. 아니, 아니고, 지금 만나자는 건 맞는데, 그쪽이 아니라….”
심적으로 꽤 편한 상대인 듯 나름 말을 좀 하던 벡스는, 이내 부탁한다는 듯 내게 수화기를 넘겼다.
“내가 지금 좀 바쁘긴 한데, 시간을 쪼개면 한 시간 정도는 나올 것 같으니까-”
“아, 한 시간은 더 걸릴 테니까, 쪼개지 말고 웬만하면 일정을 캔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1초 정도, 침묵이 흘렀다.
“어머. 박교수씨에요? 오랜만?”
“예. 좀 걱정했는데, 벡스랑 생각보다 더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요.”
“나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취향이라. 그래서, 연애사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예요?”
“그런 건 아니고. 슬슬 한번 제대로 이야기를 해봐야 할 때가 된 게 아닌가, 싶어서.”
“흐응~ 얘기라면, 어떤 얘기?”
짐짓 모르는 척 이쪽을 떠보는 느낌.
어울려줄 수도 있지만, 이쪽은 휴가가 초 단위로 날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박교수는 3월드 클리어 보상으로 무엇을 받았는가.”
“어머.”
“완성자 후보끼리 좀 봅시다. 그거 말고 할 얘기도 있고.”
“….그냥 넘어가기엔 미끼가 너무 괜찮네. 좋아요. 조건 하나만 맞춰주면 오늘 남은 일정은 다 내리겠어요.”
“조건이라면?”
“벡스, 그 사람이 맨날 타는 트럭이나 버기카 말고, 세련되고 깔끔한 차를 혼자 몰고 나를 데리러 올 것. 아, 정장도 부탁해요. 몸이 불편한 옷을 싫어해서 억지로 입히기도 힘든데 이 기회에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네?”
“그 정도야 뭐. 백마 위에 태워서 백만 송이 장미로 치장까지 해드리지.”
“어마~ 멋져라. 그럼 이따 봐요~”
띠리릭-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저쪽에서 끊긴 통신.
“….벡스. 내가 근 40년 살면서 여자를 참 많이 만나봤는데, 저거 보통여자 아니다. 너 평생 잡혀 살겠어.”
“한바탕 폭풍이라도 지나간 느낌이군.”
“헤…. 헤헤….”
잠깐 통화했는데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화였다.
어쨌든, 온다고는 했으니까. 래빗이 협조해주면 남은 일이 대부분 쉽게 끝날 것이다.
“이것만 끝내면 진짜 쉰다. 야, 어디 놀러 갈만한 데 아냐?”
“다나씨랑 둘이? 아니면 다 같이.”
“….다 같이?”
“에라이 고자 같은 놈. 오냐, 마침 좋은 곳이 있으니 오늘 일만 끝나고 갔다 오자고.”
“땡큐땡큐. 나 좀만 잔다. 도착하면 깨워.”
그렇게 말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밤을 새운 피로가 한번에 몰려왔다.
‘완성자 후보. 남은 휴가 6일. 즐거운 추억이라….’
어째, 하나같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가만 보면 게임과 얽혀있으니.
새삼 게드로이츠 그 인간이 내 삶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를 느끼며, 몰려드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잠결에, 장미 생화가 어쩌고 말 키우는 집이 어쩌고 하며 벡스와 이안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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