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399
Chapter. 17. 여행 준비(17)
****
———
“캠핑카?”
“놀러 가자며? 무장트럭에 대충 필요한 것만 쑤셔박았지. 놀러가자고. 내가 좋은 델 알아. 한 5일 정도 갔다오자고.”
“메탈조가 좋아하는 곳이라…. 어디 지뢰매설지에 삽질하러 가는거 아니지?”
“매, 매우…. 그, 긍정적 지점, 노을, 그림자, 야생….!”
“아, 네가 그렇다면 믿을만 하겠네. 가자. 인원은 몇 명 정도?”
“나 너 벡스 에젤, 다나랑 래빗 신시아까지 여섯 명. 가족급 라인으로만 챙겨가자고.”
“아, 그거 좋네. 다 같이 가서 사진이라도 하나 찍어오자.”
———
“이야아, 정말 47구역 외부에 비전투 인원이 지낼만한 지역을 확보 해놨구나?”
“절벽 위의 동굴이라니, 풍광이 좋네요! 이안, 이런 곳은 어떻게 알고있어요?”
“크흐흐흐. 바깥 생활하면서 잔뼈가 굵은 놈들한테는 좀 알려진 장소라서. 이 근처에 번식성 2.5형 무리가 서식하거든. 요즘 늘어난 ‘사냥꾼’들이 주기적으로 밀어붙인 덕분에 변종들이 기피하는 지역이 생긴거야. 놈들도 생물이니까, 천적을 피하려는거지. 변종이 멀어지니까 사냥꾼도 뜸해지고, 자연스럽게 빈자리가 된거야. 사람도 없고, 변종도 없고. 경치 좋고. 사냥꾼들이 생활하던 자리라 실드 발생기도 심어져있지. 배터리만 갈아 넣으면 돼. 이만하면 안전하게 놀기 괜찮지?”
“너 답지않게 센스있는 선택이었다. 자, 그럼 건배부터 하고 시작할까? 다나, 거기 그릇 좀 꺼내줘!”
“어디보자, 술이~ 술을 어디 넣었나~ 어어이-! 토끼 아가씨! 슬슬 벡스 좀 돌려주쇼! 걔 고기 구워야 돼!”
“네에~”
“간게야! 가서 잔이랑 간이 차폐막 가져와라! 지평선에 먼지 구름이 좀 애매하다!”
“술! 나도 술줘요!”
“10년은 이르다 이 발랑까진 꼬맹이야. 우유나 쳐먹어.”
“히잉!”
———
“죽어.”
“죽을게요.”
“[사망]”
“안해이씨.”
“신시아 투페어!”
“크하하하! 이 쪽은 킹 투페어다 이 쥐톨만한 녀석아!”
“플러시~”
와장창!
“이건 사기야! 어떻게 래빗 저 여자는 단 한 번을 안 잃는거냐고!”
“당신 앞에 있는 건~ 황무지에서 게임으로 먹고사는 사람 랭킹 1, 2위가 아닐까, 싶은데? 머리 나쁜 사람은 GG 못해요?”
“넌 얼굴에 패를 읽어주다 못해 아주 소리를 지른다고. 가서 설거지나 해라, 꼴등.”
“염병 처먹을!”
———
타아앙!
타 타앙!
“그래. 그렇게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이고, 목표물을 찾아봐. 보여?”
“음, 어두워서 잘 안보이는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윤곽선이 애매하게 다른 부분이 감으로 느껴질거야. 거기에 대고,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타아앙!
“마, 맞았어!”
“잘했어. 야간 사격도 이렇게 하니까 재밌네. 그렇지?”
“으응…. 나오길 잘한 것 같아.”
“나도. 정말…. 완벽한 하루야. 구시대의 평안함에 완벽하게 근접한, 그런 하루. 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120kg이 될 때까지 늘어지는 것도 감수할 수 있겠어.”
“이안씨에게 나중에 선물이라도 보내드려야겠다.”
“평소엔 이상한 녀석이지만 할땐 하는 녀석이니까. 이번 만큼은, 녀석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걸……”
——–
.
.
.
.
.
.
“교수. 교수!”
“음? 아. 불렀어?”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있어?”
먼지투성이가 된 다나와, 마찬가지로 흙덩어리나 다름없는 모습이 된 나.
“아아. 별거아냐.”
끄드득. 끄드드득- 끼익!
처참하게 망가진 쇳덩어리 사이로 간신히 손을 밀어넣으 틈을 벌리자 불쾌한 금속음과 함께 회생 불가능에 가까운 기계 부품들이 드러난다.
어제까지, 우리가 ‘캠핑카’ 라고 부르던 차량 두 대중 하나였다.
“….돌아가면, 이안과 이 일을 계획한 놈들을 어떻게 하면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버릴지 생각하는 중이었어.”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
원독에 이글거리는 나와 눈을 마주친 다나는 그녀답지않게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BDSM 패밀리, 황무지 캠핑 2일차.
1호차. 이안, 벡스, 에젤, 래빗, 신시아 탑승. 이 근방의 변종 들소떼에 쫓겨 실시간으로 이탈중.
2호차. 박교수, 다나 탑승. 사건 당시 캠핑지역 정리중이라 미처 합류하지 못하고 고립.
치직- 치지직-
환경 요인으로 광역 통신기 먹통.
주요 생존장비, 전부 1호차 적재.
….결론.
차량 없음.
생존장비 없음.
물, 식량 전무.
전투 전문가 1명, 정보 전문가 1명 이하 2명은 변종과 각종 환경재해가 들끓는 황무지에 고립되었다.
“죽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가서, 이안과 그 머저리 새끼들을 장대에 꽂아서 황무지의 모래폭풍에 천천히 마모되게 해주겠어….!”
나는 완전히 박살난 차량에서 고개를 돌려, 이제 막 해가 떠오르는 황무지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우중충한 황무지의 아침햇살 사이로, 심심찮게 무리지어 다니는 변종들이 눈에 들어왔다.
황무지 캠핑 2일차.
휴가->야생 생존으로 변경.
****
덜컥 덜컥, 짜그락-
“스테인리스 숟가락 하나.”
“숟가락…. 하나.”
“형편없이 짓밟혔지만, 그래도 방탄 성능이 있는 철판 약 100kg.”
“가공 불가능한 철판 100kg.”
“그리고 또…. 맥주 여섯 병, 정체모를 술 다섯 병에, 어제 사격 연습하던 라이플 한 정. 탄약 서른 발.”
“주류 5리터 정도에 라이플 한정에 탄약 서른 발. 술 말고 식수는?”
“없어. 물도 1호차에 다 실려있었어.”
“으음…. 식수 대신 술 밖에 없다니. 곤란한걸.”
.
.
.
.
“또 없어? 거기 트럭 내벽뒤에 조금 공간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음…. 생존에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라….”
“무슨소리야. 일단 우리가 뭘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니까 다 말해줘. 그 뒤에 있는거, 뭐야?”
다나는 모닥불에서 작은 숯 조각을 가져와 돌 위에 기록하며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도대체 왜 여기있는지 모를 물건을 박살난 트럭 뒷칸에서 꺼내보였다.
“….젤 타입 물침대. 캠핑카로 개조한 덕분에 뒷칸에 내벽이 몇 개 들어갔는데, 그 내벽 사이에 있어서 용케 살아남았나봐.”
뚝-
순간, 다나가 쥐고있던 작은 숯조각이 부러졌다.
“….수분을 머금은 젤 다량에, 넓고…. 질긴 비닐. 쓸모있겠네.”
“어…. 그러게. 이걸로 간이 판초우의를 만들어도 되겠다.”
“….어렵네. 이 정도로는, 도보로 황무지를 건널 수 없어.”
늘어놓은 물건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다나.
그 모습을 보고있노라니,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화가 치밀었다.
오늘 아침, 그러니까 캠핑 2일차.
원래 계획은 야영지에서 조금 차를 타고 이동한 다음 미리 얘기된 조카스의 지인, 전문 변종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실제 변종사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구경하고 배워볼 참이었다.
문제는, 차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않아 그 망할 변종 들소떼가 들이닥쳤다는 것.
편의상 변종 들소라고 부를뿐, 실제로는 체중이 3~4톤정도 나가는 거대 육식 변종이다. 그런 놈들이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긴 행렬을 이루어 우리쪽으로 맹렬히 돌진했단 말이다!
========
“야, 야야야야! 오잖아! 이쪽으로 오잖아!!! 에젤 이 멍청한 새꺄! 죽어도 안온다며!”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빅 헤드 불 무리는 게으르기로 소문난 변종이라, 작정하고 자극하지 않으면 저렇게 집단 행동은 안한다고….!”
“절대고 나발이고 오잖아 지금! 중화기! 중화기 어딨어!”
“형! 일단 출발 해! 일단 달리기 시작한 저놈들은 전차를 끌고와도 못막아!”
“….차키가 없어졌는데?”
“뭐?! 이런 병신같은-”
“염병할! 1호차 먼저 출발한다! 놈들의 주의를 끌테니까, 다나랑 교수 네놈은 올라가서 숨어있어! 야영지는 차폐막이 있으니까 안전할거야!”
=========
….그리고,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부셨는지 한 마리 한 마리가 트럭만한 변종 들소같은 놈들이 우리쪽으로 돌진했고.
분명 2호차에 꽂아둔 차키가 사라지는 바람에 다나와 나는 어쩔 수 없이 내려서 야영지로 복귀했으며.
1호차는 그렇게 들소떼에게 꼬리를 물려 유유히 돔 방향으로 사라졌다- 는 것이다.
야영지 구석에 다나와 함께 납작 엎드려 변종 들소떼가 지나가기를 기다린 후.
놈들의 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내 몸에 내장된 통신기로 1호차에 통신을 넣었다.
=========
“치직- 치지직- 아아, 이거 모래폭풍이 생각보다- 치직!”
“헛소리하지 말고 대답해라. 너지?”
“어…. 미안하- 됐다. 생각보다 일이 좀 커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
연락을 넣자마자 자백하는 이안.
애초에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긴 했다. 중요한 순간에 사라진 차 키 하며, 육중한 몸무게 때문에 걷기만해도 굶어죽을 정도로 열량소모가 심한 변종, ‘빅 헤드 불’ 무리가 전속력으로 우리를 향해 돌진하지 않나, 또 우리는 하필 그 시간에 그놈들이 이동할만한 장소에 내려와있질 않았나.
전부, 이안이 꾸민 일이었단 말이다. 이곳에 데려온 것도, 저 미친 변종 들소가 우리한테 달려든 것도.
=========
치직-
“어우, 벌써 통신이 아주…. 박교수, 내 사랑하는 모자란 친구야. 나는- 치직! 다 널 위해서 이걸 계획했다.”
“왜, 딱봐도 객사할 것 같은 놈이니까 가장 행복한 순간에 고통없이 보내줄 생각이었냐?”
“진정하고 들어라. 커플의 여행이란, 자고로 외딴 곳으로 가면 무조건 차가 퍼지고, 섬으로 가면 돌아가는 배는 다음날 점심때나 있고, 여관을 잡으면 방이 하나만 남아있어야 하는 법이 아니냐.”
“…뭬?”
“너희를 위해 우리 모두가 준비한 선물이었다고. 우리 다섯 명이 찬 타랑 그쪽 둘이 탄 차를 소떼를 이용해서 분리, 우리 1호차가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버리면, 딱 아슬아슬하게 기름을 남겨둔 박교수 커플의 2호차는 터덜터덜 돌아오다 돔에서 조금 떨어진 안전지대에 멈춰 버리게 되는거지. 그렇게 밤이슬과 황무지, 두 사람 밖에 없는 트럭 안에서 위기를 함께 극복하며 흔들다리 효과를 풀로 땡긴 연인은 두근 거리는 서로의 심장을 느끼고, 마침내 밤하늘과 황무지, 두 사람밖에 없는 고독한 세상에서 그날의 역사를 새기게 되는-”
“애미 씨팔 개 엿쳐먹을 좆같은 썅놈 새끼야아아아!!!!”
“치지지지지직-안하다. 사냥꾼도 자리를 옮겼으니, 사냥감인 소떼의 개체수가 늘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 치지직-”
“어우, 어우우 내가 어쩌다 이런 새끼랑 엮여가지고는. 됐고, 일단 알겠으니까 돌아가서 얘기하자. 1호차 애들이랑 안전하게 귀환하고, 나는 영 총장한테 무전때려서 감찰부 차 타고 돌아갈거야. 알았냐!”
“치지직- 치지지직- 무드 방해할까ㅂ- 기상정보도 미리 확인하고 계획- 치직! 모래폭풍이 지나가면서 전파가 다 끊어 버릴- 어어 이거, 심상치가 않- 치지직! 치지지지지지지지—–”
“야, 야야! 1호차! 메탈조! 씨발 새꺄!”
“치이이익, 굿 럭- 치이이이이—-”
=========
….이렇게 된 일이라는 뜻이다.
‘제대로 좀 쉬어야 겠다’는 내 말을 아-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안과 그 일당은 평범한 휴식대신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값진 이벤트를 준비하고자 이런일을 계획했으며.
원래대로라면 적당히 ‘먼저 간다~ 뒤 쫓아와라~’ 수준으로 나눠졌어야 할 일행은 1호차 전력 도주, 2호차 완파라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으며.
모래폭풍에 섞인 금속성 먼지 때문에 내 통신기도 먹통이 된 지금, 다나와 나는 그야말로 맨 땅에 내팽개쳐진 황무지 거렁뱅이 생존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주 빌어먹게 두근두근 하시구만. 망할 머저리 새끼들.”
철컥!
나는 모래먼지가 섞여든 라이플의 약실을 확인하며, 다나와 내가 돌아가야할 길을 어림잡았다.
차로 몇 시간 거리. 도보로는, 적어도 며칠은 야영하며 걸어야겠지.
박살난 트럭에서 건져온 잡동사니들을 늘어놓고 골몰하는 다나를 보고있노라니-
“하아아. 인생 시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저 가녀린 아가씨와 나는, 스캐빈저보다 못한 장비만 가진 채 앞으로 며칠을 황무지에서 행군해야 한다. 다름 아닌 내 친구들의 호의 덕분에.
참으로, 참으로 화려한 휴가가 아닐 수 없었다.
****
휘우우우-
파라락, 파라라락!
세찬 모래바람이 음산한 울음을 흘리고, 바람에 휘날린 비닐 우의가 끝자락을 마구 떨어대고 있었다.
우리 친절한 메탈죶 씨가 준비해준 푹신푹신한 물침대는 사정없는 칼질 끝에 먼지와 바람을 가려줄 두툼한 판초우의가 되었다.
라이플은 천으로 둘둘 감아 단단히 매어들었고, 먼지 투성이 작은 가방에는 술과 모닥불에 남아있던 숯, 트럭 연료통 구석에 조금 남아있던 휘발유를 담은 병을 넣었다.
그리고.
“….꼭 이렇게 가야해? 나도 아직은 체력이-”
“황무지를 우습게 보지마, 다나. 한참 가서 탈진한 너를 업고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편해.”
철판과 차량 부품, 파이프 등을 끼워맞춘 작은 지게를 단단히 등에 맨 다음, 그 위에 다나를 앉혔다.
안전한 야영지에 남아 남은 물자를 소모하며 모래폭풍이 끝나기를 기다리느냐, 아니면 도보로 황무지를 가로질러 자력으로 복귀하느냐.
어느것 하나 예측하기 힘든 선택을 결정한 것은 다나가 찾아낸 작은 가방 덕분이었다.
‘….생존지용 은닉물자?’
‘응. 옛날에 내 정보원들도 이런 생존지를 곳곳에 만들어 뒀는데, 혹시나 비상시에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필요한 물건이 담긴 가방을 묻어놓는다고 들었거든.’
다나는 사냥꾼의 야영지를 여기저기 쿡쿡 찔러보더니 어렵지않게 낡은 가방 하나를 찾아내었다.
녹슨 리볼버 하나에 습기가 스며든 탄환 여덟 발.
먹을 수 없는 육포 다섯 조각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금속 수통 하나.
그리고, 수기로 작성한 지도.
과거 개인 생존자 시절 나도 이런 식으로 만든 나만의 지도를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읽어내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도에는 이곳 사냥꾼의 야영지에소 돔으로 가는 길과 위험지대, 쉴만한 장소와 물이 있는 곳 등이 표시되어 있었다.
“지도에 따르면 도보로 3~4일 정도면 돔의 순찰대가 다니는 지역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여기를 떠나는 게 옳은 선택일까? 물은 없지만 아껴먹으면 술로 며칠을 버틸수도 있고, 탄약이 적긴 해도 총이 있으니 사냥을 해서 식량을 구한다면….”
“불확실해. 모래폭풍은 길면 한 달도 넘게 지속되기도 하고, 애초에 술은 식수 대용으로 사용할 수 없어. 알콜을 분해하는데 섭취한 수분 이상을 소모하게 되니까. 애초에 이런 위험한 지역에서 취한 상태로 있는 것 만큼 죽기 딱 좋은 행동도 없고. 지도가 있으니, 알아서 돌파하는 쪽이 훨씬 안전할거야.”
철그럭!
다나와 철재 지게. 거기에 라이플과 소소하나마 이것저것 생존물자를 얹었으니 대충 60~70kg 정도는 짊어지지 않았나 싶다.
‘반쯤 변종이 된 덕을 보는군.’
다행인 것은 평범하지 않은 몸 덕분에 이정도 무게는 부담이 없어졌다는 것. 슬쩍 몇 걸음 옮겨보니 이 정도면 체력은 충분하겠지 싶었다.
마지막으로 지게를 비롯한 다른 장비의 결속을 확인한 다음, 야영지에 숯으로 큼지막하게 우리가 이동한 방향을 그려넣었다.
사사삭!
바닥에 화살표를 그려넣던 중, 무언가 작은 생물이 쏜살같이 움직이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찍! 찌이익! 끼이이익!”
“교수, 그건….?”
“쥐달팽이. 어제 우리가 먹고 흘린 음식찌꺼기를 찾아왔나보군.”
황무지에서 다방면으로 인기 없기로 유명한 생물. 단단히 옥죈 손아귀를 벌써 끈적한 액체 범벅으로 만든 녀석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대로 목을 꺾어 대충 가방 아래에 매달았다.
“?”
“다른거 못잡으면, 오늘 점심.”
“저거…. 먹기도 하는거야? 내가 알기론 쥐달팽이 고기는 고문이나 사적인 복수에 효용성이 있다고 하던데.”
“독은 없어. 독은. 들리는 말로는 술이나 약에 취한 놈들을 깨울 때 이놈 고기를 조금 씹게 한다고 하더라고. 지옥에서 끌려나온 사람처럼 소리 지르면서 일어난다던데.”
“….먹을 수는 있다는 소리구나.”
다나는 가방에 매달아둔 쥐달팽이를 가져가더니, 목이 꺾인 녀석을 치약짜듯 짜내어 녀석의 분비액을 받아낸 다음 대충만든 우의의 구멍과 연결 부위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이놈의 체액은 방사능 차단제 대용으로도 사용되는 물건이었지.
우의와 함께 몸의 드러난 부분에 끈적한 체액을 바르고, 모래 섞인 바람 속에 서있다보니 어느새 우리 둘은 황무지를 걸어다니는 샌드골램 같은 꼴이 되어있었다.
“후후후후.”
“거기 아가씨, 재밌는거 있으면 같이 좀 우습시다?”
“아니, 38구역 지하 도서관에 살때는 이런 황무지에서의 삶을 동경한 적도 있었거든. 조금 고단해도 자유로운 바깥의 삶이 방사능 지대의 지하 건물에 틀어박힌 내 삶보다는 즐겁지 않을까, 싶어서.”
“하이고. 그래서. 진짜 황무지 사람이 되어보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흙투성이 다나양?”
“음…. 나쁘지 않네. 말 잘듣고 듬직한 탈것도 있고.”
“거 마음에 드신다니 영광입니다 아가씨. 샌드맨을 탄 샌드맨이라니. 지나가다 변종 사냥꾼이라도 만나면 살려달라고 하기 전에 일단 숨어야겠군.”
철그럭, 철그럭.
그렇게, 나와 등을 맞댄 다나와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며 먼지가 가득한 황무지로 발을 옮겼다.
모래 바람과 버석거리는 발소리. 엉성하게 만든 금속 지게가 찌그럭거리는 소리와, 등뒤에서 들려오는 작은 숨소리.
“….죽일 필요까진 없을지도.”
“응? 교수, 뭐라고 했어?”
“아, 아냐. 아무것도.”
조금 고단한 것을 제외하면, 세상에 우리 둘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가 제법 가슴에 와닿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아-주 마음을 넓게 가지면, 이것도 ‘휴식’의 범주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철그럭. 철그럭. 쩔컥!
고즈넉한 지게 소리가 대답없는 상념의 꼬리를 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