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02
Chapter. 18. World 4(1)
****
“행정부? 거긴 왜? 밥 먹으러 안 가?”
“잠깐 접속기에 좀 들러야 할 일이 있어서.”
“밥은? 너 빼놓으면 김새는데?”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기분이 참…. 묘하다고 해야 하나.
돌아가는 길. 덜컹거리던 트럭이 포장도로에 들어서고, 어느새 빽빽하게 늘어선 가건물과 도시급 실드의 진동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거리의 사람들이 전부 나를 아는 체하고, 더러는 내 이름을 연호하며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찬양하라! 찬양하라!”
“신도, 악마도 없다! 하지만 박교수는 존재한다! 이곳 황무지 위에!”
행정부 건물 앞에는 여전히 ‘광명교단 황무지 지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한쪽 구석에, 한 팔로 깃발을 흔드는 카밀라씨와 변이 환자들이 모여있는 것도 보였다.
“휴가는 잘 갔다 왔나?”
“몽 부장님? 여기 계셨습니까?”
“줘 터지게 일하다가 무릎이 나갔어. 은퇴하는 줄 알았는데 행정부에서 내근하라더라. 망할 총장.”
오래 알고 지내던 감찰부장 몽클레르. 몽부장.
“어머~ 신수가 훤하네! 분위기 보니까 둘이 잘됐나 봐요?”
“[도움!/도움!/도움!]”
“아잇, 벡스! 청소할 거면 우리 집 청소나 가자니까!”
청소부 같은 옷을 입고 래빗에게 질질 끌려가는 벡스와 래빗 프린세스.
“빨리 복귀해줘서 고맙군. 그쪽이 마냥 놀기만 할 생각이었으면 내가 많이 아쉬웠을 텐데.”
“이따 저녁에 시간 있으면 술 한잔하지. 그간 밀린 얘기도 좀 하고.”
“교수형…. 제발 와줘…. 나 혼자 총장님 상대하면 급성 알콜중독으로 죽어….”
병동 실험실 근처에서 만난 영 총장과, 벌써 한잔하고 왔는지 죽상이 된 에젤.
“우진 영감님은 의사가 병원에는 왜 왔습니까?”
“다리에 철심 박은 거 빼러 왔다 임마. 내 손으로 내 다리 째고 드릴 돌릴 수는 없잖냐?”
휠체어를 탄 우진 영감님과 모비딕 사람들.
그리고, 신시아까지.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 아냐?”
“….내가 불렀어. 차 타고나서 개인 단말기로.”
“휴우. 다나 언니? 오랜만에 가족끼리 밥 먹고 싶다는 그 마음을 이해해서 이렇게 나오긴 했지만, 나도 관리하는 애들이 있는 여자야. 이렇게 내가 계획 없이 학교에서 나와버리면 급속도로 팽창 중인 ‘신시아 클랜’에 불온한 움직임이-”
딱콩!
“이이익! 왜 때려요! 교수 아저씨도 지도자니까 같은 지도자로서 이런 내 마음 이해하잖아요!”
“녀석. 공부는 잘하고 있었어?”
“위, 위대한 지도자의 조건에 특별한 학위 같은 건 없어요! 봐! 대학 나온 이안 삼촌은 황무지에 위명이 쟁쟁한 미치광이가 됐고, 고졸 군인 박교수 아저씨는 알아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위대한 지도자의 자리에-”
딱콩! 딱콩!
“악! 아익!”
“허허허허. 다나, 애가 이렇게 된 게 영 총장이랑 독대하고 난 다음부터라고?”
“총장 아저씨 때문이 아냐! 가정교육을 방송으로 한 양아버지 박교수 때문이다! 어, 억울하면 지금부터라도 나와서 보살펴주시지!”
딱콩! 딱콩! 딱콩!
귀여워서 꿀밤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입양하고 제대로 살펴주지도 못했는데 나름…. 잘 커버린 신시아.
.
.
.
.
.
꼭 이런 날이 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면 배가 아프고, 중요한 작전을 앞두면 뜬금없는 곳에서 사고가 터지며.
먼길을 떠나려 하면, 유난히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행정부 실험실. 온갖 굵은 전선과 의료, 실험장비에 연결된 내 접속기.
슬쩍 쓰다듬는 손길에 느껴지는 금속의 차가움이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푸쉬익-
….관을 닮았다는 생각은 되도록 안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망설이는 등을 살짝 미는 손길이 있었다.
“잘 다녀와, 살아 돌아와 같은 말은 하지 않을게. 당신은, 언제 어디에서도 살아 돌아온 사람이니까.”
눈물 대신, 차분한 전송과 부드러운 포옹이 있었다.
“돌아와. 여기, 당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푸쉬익- 철컥!
접속기의 뚜껑이 덮이며 천천히 다나의 모습이 사라져가고.
화아악-!
세상이 새하얀 빛에 잠겨 들었다.
****
타닥!
하얀빛이 사그라들며 나타난 장소는 익숙한 관리자의 공간이었다.
“돌아왔구나.”
“아, 세계수…. 님? 세계수님 맞으시죠? 나머지는 어디 있습니까? 아틀라헤바 님이랑, 시스템새끼랑, 알다르, 세니카는?”
“외형이 조금 달라졌지만, 내가 맞단다. 그들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나는 게임의 진행에 앞서 해주고 싶은 말이 몇마디 있어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은빛 기계수를 상징하듯 은발에 은빛 눈동자, 은색 드레스까지 입고 있으니 못 알아볼 리가 있나.
다만, 전에 봤을 때보다 나이대가 한참 변해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성년에 가까워가던 소녀의 모습.
두 번째로 만났을 때는 루실라 나이대의 청소년기 소녀의 모습.
지금은….7~9세쯤 되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곧 이 세계와 같으니, 세계가 힘을 잃어갈수록 그것의 표상인 내 모습도 점점 힘을 잃고 약해져 갈 수밖에.”
“….안쪽 사정이 그렇게 많이 안 좋아졌습니까?”
“이것도 믿기 힘들 정도로 진행이 늦춰진 덕분이란다. 플레이어 ‘professor’, 네 덕에 이만큼이나마 남길 수 있었던 게지.”
“음….”
어째, 벌써부터 빡쎈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뭐가 어떻게 됐길래 세계 자체나 다름없는 세계수가 이런 땅꼬마가 될 지경이란 말인가.
안락의자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세계수는 폴짝 뛰어내리더니 총총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올려다보는 눈동자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득 담겨있었다.
“잘 들어라, 아이야. 너는 여타 플레이어들과 다르단다. 지금 너를 움직이고 있는 의식, 이것은 한번 데이터 소울화되어 GG의 흐름에 섞여든 적이 있고, 이 기록은 클리어를 통해 서버룸과 데이터 소울을 분리해낸 지금도 남아있지. 그렇기 때문에 네가 다시 GG의 세계 속으로 발을 들일 경우, 게임은 너를 그때의 데이터 소울로 분류하게 될 것이란다. 그 말은 네가 완벽하게 저 세계의 주민으로 녹아들 수 있으며, 동시에-”
“나올 수 없다. 클리어할 때까지. 알고 있습니다. 이미 각오하고 들어왔구요.”
“….그래. 각오를 했구나. 그렇겠지.”
“….손을 줘보겠니, 아가?”
무릎 어림의 세계수에게 손을 내어주자, 그녀는 기도하듯 내 두 손을 잡았다.
“네가 쉬는 사이, 세계의 시간이 흘러 4월드에 도달했단다. 모든 데이터 소울이 오랜 역사의 풍파를 거쳐 다시 한번 세계의 분수령에 도달했지.”
꼬오옥-
손끝에 느껴지는 세계수의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네 덕분에, 우리의 세계는 많이 안정되었어. 오류가 됐어야 할 수많은 데이터 소울이 자아를 유지했고, 관찰하는 우리마저 놀랄 정도로 세계는 대단한 태평성대를 이루더구나. 강력한 제국, 인류의 위기 앞에 어깨를 맞댄 여러 국가들, 눈부신 마도공학과 기술 혁명, 종족 갈등의 완화….”
“흐흐흐. 그럼 그만큼 개고생을 했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죠. 남은 애들이 잘 해줬나 봅니다? 그래서, 내 4월드는 얼마나 괜찮은 동네입니까? 이거 의외로 막 겁줬던 것처럼 어렵진 않은 거 아냐?”
“….미안하구나.”
“어…. 아닙니까?”
세계수는 그간 고생의 보상이라도 되는 듯한 밝은 미래를 얘기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목소리는 갈수록 가라앉고 있었다.
“….‘professor’, 게드로이츠의 게임은 ‘멸망을 마주한 세계에 플레이어가 구원자가 된다’ 는 게임이야.”
“그렇….죠.”
“그 말은, 네 캐릭터가 투입될 시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세계가 멸망을 앞두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겠지.”
“그건….”
어.
어어?
잠….깐만.
방금 분명 태평성대에, 눈부신 발전에, 뭐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나?
막강한 힘을 보유한 제국의 신황가, 인류 공통의 적을 상대로 어깨를 맞댄 여러 국가들, 태동하는 마도공학과 기술혁명, 이런 것들을 가진 세계가 멸망을 마주하게 되려면….
….하늘에서 운석이라도 떨어졌나? 아니, 이건 세계의 모방을 표방하는 GG인 만큼 너무 억지스럽고.
내가 너무 잘해버린 탓에 힘을 키우고 소모하지 못한 집단들이 한 판 붙었다? 아니, 나 없다고 해서 3월드의 기라성 같은 위인들이 전부 병신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많이들 살아남았으니 이런 어이없는 멸망이 일어날 확률도 없다시피 하고.
마지막 가능성을 꼽아 보자면…. 그 강대한 세계가 멸망을 마주하려면….
.
.
.
.
.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거나.
“이런 씨-”
순간 나도 모르게 상상해버린 장면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아니지.
이건, 정말 아니지!
“….이해한 표정이구나.”
슬프게도, 세계수는 쓰레기처럼 구겨진 내 얼굴을 보며 그게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덕분에 세계의 수명이 늘어났지만, 그 대신 너는 네가 있던 3월드에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시점에 다시 등장하게 될 거란다.”
아아, 이 좆같음. 실로 익숙한 GG다움이 아닐 수 없구나.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아주 강력한 평화. 그 평화를 이룩한 대가로 세계는 오염으로부터 한시름 놓게 됐지만, 정작 구원의 당사자는 그 무지막지한 평화가 박살 날 때까지 등장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왜냐? 하나의 월드란 하나의 멸망을 마주한 시점이니까. 스스로 멸망을 이겨낼 힘이 있다면 플레이어라는 구원자는 필요 없다.
어쨌든 이건 게임이고, 게임 시스템상 플레이어-구원자는 멸망을 앞둔 세계에 등장하는 게 원칙이다. 그 멸망을 앞둔 세계를 ‘월드’라는 배경으로 부르는 것이고.
….내가 이룩한 강력한 평화가 무너지는데 필요한 시간이라.
“얼마나. 대체…. 얼마나?”
“제국이 무너지고, 인간의 황금기가 무너지며, 너와 함께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노력, 그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것들이 무너지고, 바스라지며, 사라져간 다음에서야. 그 흔적조차 미미해져 다시금 멸망을 마주한 세계에 외로이 남게 되는 것이지.”
세계수가 입에 담은 것은 이미 모든 것이 사라진 시점이었다.
한때 내가 꿈꾸었던 즐거운 상상들.
2월드에서 3월드로 넘어오는데 걸린 게 70년이니, 장생종인 이드라실은 무조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법사는 장수하는 편이니, 운이 좋으면 꼬부랑 늙은이가 된 아스트라드를 찾아가 앳된 목소리로 ‘마! 옛날처럼 인사 함 박아 봐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롤은 자식을 많이 낳는 편이니 노툼의 후손들에게 ‘내가 너네 할머니 대가리였다’ 하면서 거드름을 피울 수도 있을 것이고, 광명 교단에서 ‘다시 부활한 성자님’으로 그야말로 신의 현신이라며 꽃가마를 타고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제국 신황가의 초대 황제, 황후의 무덤 앞에 꽃 한 송이 바치며 ‘제국 잘 키웠네.’ 하고 옛 동료를 추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
.
.
.
라는, 즐거운 상상.
“‘professor’. 아니, 박교수. 너는 고통을 각오했으나, 네가 처음 마주해야 할 고통은 그대가 각오해본 적 없는 고통이란다.
세계수는 그 모든 상상이 헛된 꿈으로만 남게 될 것을 입에 담았다.
그녀의 손짓과 함께 투영되는 거대한 은빛 기계수. 마치 지옥에서 자라난 나무처럼 뒤틀린 그것의 꼭대기에서 선명하게 빛을 내는 단 하나의 가지.
나의 세계. 나의 4월드.
너무 평화롭고 아늑했기에 너무 멀리 가버린 나의 세계.
“사랑하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게 될 아이야. 기계지능 ‘World Tree’가 인간의 모성애를 품게 될 만큼의 고통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할 아이야. 부디 네가,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사라락-
마지막 위로의 말과 함께 세계수가 사라지고, 홀로 남겨진 내 앞에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띠링-!
무미건조한 시스템의 기계음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의 경고처럼 들렸다.
[Player ‘professor’의 3월드가 클리어됐습니다.] [‘정산’이 종료되었습니다.] [Player ‘professor’의 모든 행동, 모든 영향력, 영향을 준 모든 NPC와 모든 사건을 계산하여, 역사가 기록되었습니다.]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와, 시스템의 무미건조한 목소리.
탁. 타각. 탁.
망설임의 시간이 끝났다는 듯, 시스템의 메시지는 눈앞에 찍어누르듯 한 글자씩 떠올랐다.
[World Log- stand by] [소요시간, 약 3시간] [3월드 클리어 이후부터 4월드 진입까지의 역사. 텍스트 기록과 일부 영상으로 제공됨] [준비되셨습니까? Y/N]….꿀꺽.
“준비….됐다.”
띠링-!
시작의 각오와 함께 지나간 역사의 기록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없는 세계에서 나와 함께 했던 이들의 역경과 고난을 담은 일대기였으며, 그들이 스러져 멸망이 다가오기까지의 이야기였다.
=========
[World log] [기준. 플레이어 사망 시점] [year +0 : 성자 교수의 장례식. 참여 인원 15명. 성자의 죽음을 숨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