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09
Chapter. 18. World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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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질문입니다. 볼테우스 경은 유난히 오러 나이트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시는 분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혹시 개인적인 원한이나 과거사가 얽혀있는겁니까? 굴욕을 당했다거나, 여자 문제가 얽혀있다거나-”
“개인적인 굴욕이라면 지금 눈앞의 아무개에게 충분히 당하고 있다. 다음!”
“[데일리 파르다우]의 마르세크입니다. 우선, 이번 파르다우 요새 방문의 목적이 단순 물자 교류가 아닐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요, 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대답은 힘들겠군. 대신 도시 간 열차 운용 정보 노출과 스파이 행위로 당신과 [데일리 파르다우]를 어떻게 처벌할지에 대해서는 얘기해줄 수 있지. 다음!”
“[파르다우 메트로]의 신더입니다! 혹시 이번 열차 운행에서 승차감이라던가, 속도나 기타 열차의 변화에 대한 소견이 있으시다면-”
“모른다. 다음!”
“다음!”
“다음!”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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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우.
볼테우스는 오늘따라 유난히 많아보이는 기자들을 상대하며 속으론 그들을 하나하나 정거장 꼭대기에 매달아버리는 상상을 하고있었다.
“미치, 코델리아,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지난밤에 무사히 건너온 것에 대한 파티라며 귀한 술을 잔뜩 구해왔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들을 비롯한 다른 기사와 기관사들은 그 강건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셔댔으며, 그 결과 오늘 아침 정거장은 전장의 부상자 병동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취객의 신음이 가득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은 술을 마시지 않는 볼테우스 뿐. 나머지는 사제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술독이 올라버린 터라, 결국 오늘 예정된 인터뷰를 볼테우스 혼자서 전부 맡아야 했던 것이다.
“언제 뮤테이션 블러드가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저렇게 몸을 가누지 못 할 정도로 마셔대다니.”
최근 거짓말처럼 폴그라드 본섬 전체의 뮤트가 잠잠해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평소에 이런 인터뷰가 있으면 냅다 도망쳤던 평소 그의 행동에 대한 복수겠지. 다들 계획적으로 저렇게 퍼마신 것이 틀림 없었다.
타박 타박-
동료들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는 사이 인터뷰를 위한 작은 공간에 또다른 발소리가 울렸다.
‘아홉 번째 드디어 마지막이로군. [나이트 데이즈]의 기자였나’
볼테우스는 목구멍에 아우성치는 욕설을 꾹꾹 눌러담으며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신물나게 싫은 행위였지만, 마도 열차는 돈을 씹어먹고 달리는 괴물이며, 스트라우그 요새는 항상 돈이 부족해 허덕이고 있었고, 볼테우스란 그의 이름 뒤에는 ‘스트라우그’라는 성이 붙어있었으므로.
짝짝짝짝!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것은 거머리 같은 기자가 아닌, 작은 손으로 박수를 치며 걸어들어오는 어린 아이가 아닌가.
“이야아~ 감탄했습니다 볼테우스 경! 인터뷰 수준이 가십거리 씹는 구 제국 사교계 마담 뺨치던데, 용캐 한 놈도 안 패고 다 마치셨네요?”
“….아직 돌아가지 않았나?”
아침에 봤던 브라스톨 가문의 어린아이. 어차피 방문자에게 공개된 공간은 극히 한정되어있으며, 구경할 거리도 없고 다른 기사나 기관사를 만날 수도 없는 공간이라 금새 흥미를 잃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말동무가 많아서 시간이 금방 가더라구요. 아, 아직 시간 좀 남아 있으시죠?”
소년은 막 나가라고 손짓하려는 그를 막아세우며, 목에 걸린 명패를 들어보였다.
[나이트 데이즈/ 코메로 달프]“매수했나?”
“아직 열 살도 안 된 제가 그만한 돈이 있겠습니까. 아-주 우연히도, 코메로 기자님에게 너-무나도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생겼는데, 친절한 기자님이 마침 옆에 있던 이름모를 소년에게 비싼 돈주고 구매한 인터뷰 권한을 넘긴 것 뿐입니다.”
“흐으음….”
그야말로 아홉 살짜리도 믿지 않을 거짓말.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저 기사도 신봉자 귀족 소년은 악착같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기자를 쫓아내고 그의 인터뷰 권한을 빼앗아왔다.
“….몇 살이지?”
“아홉 살입니다.”
“기사와 기관사. 어느쪽에 관심이 있나.”
“일단은, 둘 다요?”
“흐으음….”
그저 철부지 귀족으로 치부하기엔 당돌한 구석이 있는 녀석.
무엇보다, 입구에서부터 묘하게 눈에 밟히는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아홉 살이라. 적어도 열 두 살은 된줄 알았는데, 아홉 살이라.
나이 답지않은 행동거지하며, 특히나 그 묘한 꺼림찍함은….
“….정식은 아니지만, 확인해볼 가치 정도는 있겠군.”
“예? 뭐라구요?”
“혼잣말이다.”
볼테우스는 이 기묘한 소년에게 묘한 호기심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단순 관람이라고 했나?”
“네. 열차랑 그 안에 탄 사람들에 관심이 좀 있어서요!”
“….따라와라. 열차까진 어렵지만, 기관사들 정도는 만나게 해주지.”
“와아!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노회한 상인의 분위기에서 나잇대에 맞는 순수한 얼굴을 내보이는 소년의 모습에 볼테우스는 고개를 내저으며 앞장섰다.
덜컥!
정거장 본관으로 들어가는 그의 발걸음 뒤로, 소년의 달음박질 하는 소리가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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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스톨 가문의 삼남이라. 외가는 어떻게 되지.”
“어머니는 안계십니다.”
“흠. 특별히 가문에서 교육받는 것이 있나.”
“예법 말고는 딱히?”
“기사도를 얘기하던데. 오러 나이트에 관심이 있나?”
“이야기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니까요.”
음, 이유 없이 후두부를 강타당한 코메로 뭐시기 기자님께 감사를.
정거장의 좁은 복도를 걷는 동안, 호구조사하듯 이것저것 물어오는 볼테우스를 보니 어린 몸으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역시 관심을 보이는 군.’
정문에서 확인했다시피, 4월드는 평민의 인권이 꽤나 성장한 시대였다.
그러니까 귀족 입장에서는 평민, 노예, 농노로 대표되던 ‘사람 비스무리한 노동생물’을 인간으로 취급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죽어버렸다는 뜻이다. 인구가 감소할수록 노동력의 가치는 증가하고, 그만큼 노동자 계급의 신분도 상승하는 거니까.
아무튼 요점은 사람이 뒤지게 많이 죽었다는 것.
그건 과거 기사 계급이 ‘엣헴! 나의 고절한 검술과 오러 활용을 배우고 싶으면 높은 경쟁률을 뚫고 나의 종자로 개처럼 20년은 굴러라!’
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재능있는 종자 구합니다~ 잘 키우면 내 등을 지켜줄 수 있는~ 무료로 준귀족 취급해드려요~’ 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전란의 시대에 무력은 곧 권력. 재능있는 아이를 발굴해 키우는 것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픽픽 죽어나가는 기사들의 숫자를 감당하지 못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문제는 인구가 줄어든 만큼 재능있는 인재를 발굴할 기회도 줄어들었고. 또 찾으러 다니려 해도 도시와 도시 간 이동이 제한되어있다보니 쉽게 찾을 수도 없고.
간단히 말하면, ‘유망주’급 재능있는 아이를 찾는게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자, 그럼 여기서 가문의 성만 겨우 가지고있는 천덕꾸러기 교수-브라스톨 씨의 위치를 한번 볼까?
“소년. 어머니는 사별하셨다고 했나.”
“그게, 사실 얼굴도 모릅니다.”
“음. 미안하군. 더는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재력으로 유명한 브라스톨 가문의 아들이 거친 옷을 입고 홀로 돌아다닌다라….”
귀족. 엄마 없음. 가문내 위치 밑바닥. 딱히 대우해주지도 않음.
가문내에서 나의 위치를 짐작한듯한 볼테우스는 썩 만족스러워 보였다.
“계단이 높군. 잡아주마.”
“어, 저쪽으로 가면 훨씬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이쪽이 빠르다. 저쪽 길은 지난번 습격 때 무너지고 새로 지은 곳이라 불안정 할 수도 있지.”
굳이 편한 길 냅두고 돌아가는 볼테우스는 도와주는 척 내 팔뚝과 종아리, 몸 여기저기를 주물럭 거리더니 이젠 웃음기까지 감도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볼테우스가 게이 소아성애자가 아니라면 저 만족스러운 웃음의 의미는 하나 뿐이다.
‘골격과 근육량, 그것 말고도 약간 찌릿한 것을 보니 또 다른 것을 확인하고 있군.’
나만 해도 눈대중으로 ‘저 새끼 좀 치겠는데?’를 넘어 ‘오른쪽 어깨가 조금 더 발달되어있고, 보폭이 넓은 것으로 보아 대형병기를 주로 쓰는 오러 나이트인데?’ 수준까지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이다. 초를 쪼개서 공방을 나누는 수준의 사람들에겐 움직임 이전에 근육이 긴장하는 것으로 다음 공격을 예측하는 테크닉이 필요했고, 그런 것에 숙달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대의 몸만 보고 어느 정도 견적을 뽑을 수 있게 되는 것.
지금 볼테우스가 내 몸 여기저기를 꾹꾹 누를때마다 해피해지는 것도 위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Lv.3 적당한 오러 재능]이나 [Lv,4 괜찮은 수계 마나 재능]과 달리, 육체미로 세상을 평정한 전대 마초 성자님의 특징을 이어받아 시작부터 6렙을 찍은 재능!-무골-
이름부터 무골(武骨)이다. 솔직히 4레벨 수계 마나 재능만 해도 아홉 살짜리에게 주어지긴 과분한 재능이며 충분히 마법사로 대성이 가능한 수준인데 무려 6레벨 재능으로 시작하는 [무골]을 가지고 있단 말이다.
노툼의 주술 재능은 ‘8레벨’ 이었다. 도시 인근 숲에 거주하며 ‘말, 아니면 죽음’을 외치던 어린 암컷 트롤은 나와 함께 한지 1년 정도 됐을 때 전대 대주술사의 선조령을 셋이나 달고 다녔고, 3월드 끝 무렵엔 최종 전장에서 죽은 모든 기사를 영혼병으로 부활시키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후 남부로 돌아간 노툼은 출신 부족도 없이 단신으로 남부를 평정했으며, 오크, 트롤, 오우거, 고블린을 통틀어 모든 그린스킨의 우두머리로 추앙받는 ‘대주술사’의 자리에 올랐다.
이게 하나를 보면 백을 깨우치는 재능. 위대한 주술 재능 8레벨의 위엄.
그보다 두 단계 낮다고는 해도, 무려 6레벨에 달하는 육체 재능을 가진 아홉 살 짜리라면?
아무 생각없이 맨손 파이터로 키워도 7~8년 정도 뒷면 타리그덴 군도 전체에 이름을 날리는 무투가가 되어있을만한 재능이다.
그리고, 수준급 기사인 볼테우스는 방금 이 소외받은 귀족 꼬맹이의 몸에 잠든 재능의 편린을 눈치챈 참이고.
“….브라스톨에는 눈이 옹이구멍인 놈들 밖에 없는 모양이군.”
충분히 검증을 마쳤는지, 부축하듯 도와주던 손길은 어느새 고양이처럼 목덜미를 잡아 납치하는 수준으로 변해있었다.
덜컹!
착, 착,
“거기 앉아라. 차를 즐기는가?”
“주면 먹죠.”
“….잠시 기다려라.”
달칵!
끝에가서는 거의 달리다시피 나를 데려온 볼테우스는 그의 방으로 보이는 곳에 나를 앉혀놓고 문 밖으로 나갔다.
잠시 뭔가 집어던지는 소리와 사람 패는 소리, ‘그, 그건 절대 안돼에에-’ 하는 애처로운 소리를 뚫고 돌아온 볼테우스는 누군가에게서 뺏어 온 듯한 주머니에서 갈색 반투명한 덩어리 두 개를 꺼내더니, 고심 끝에 내 차에 두 개를 모두 넣었다.
“마셔라. 스트라우그의 차 버섯은 설탕과 잘 어울리지.”
“아, 예.”
이 동네는 버섯밖에 없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단게 들어가니까 기분이 확 사는 것 같기도 하고.
후루루룩-
달칵.
단숨에 뜨거운 차를 다 마신 볼테우스는 내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내가 찻잔을 내려놓자 마자 입을 열었다.
“교수 브라스톨. 브라스톨 가문의 삼남이며, 마도 열차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지.”
“예.”
“좋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 볼테우스 스트라우그의 종자가 되어 우리 열차에 탈 생각이 없느냐? 어떤 면에서도 네가 너의 가문에서 받는 것보다 나은 대우를 보장하지.”
꽉 찬 직구. 아홉 살짜리 애한테 차 한잔 먹이고 스카웃 제의라….
“….그 말은, 제 아버지와 가문을 떠나 스트라우그 가문에 속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신거죠?”
“웃기는 군.”
거절에 가까운 나의 완곡한 대답에 볼테우스는 비웃음으로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행동.”
“존재조차 모르는 어머니. 가문에서 없는 취급하는 아들.”
“내가 모를 것 같으냐. 나 또한, 스트라우그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거늘.”
“네가, 너의 미숙한 증오를 눈치채지 못한줄 아느냐?”
볼테우스 스트라우그는, 그의 우묵한 눈에 오래된 감정을 담아 나와 마주했다.
“너의 이름은 가장 위대한 성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지. 나의 이름 볼테우스 또한, 오래전 존재했던 성자의 이름이다. 아이의 세례를 담당하는 사제들은 아비가 이름조차 주지 않은 아이들에게 성자의 이름을 부여하곤 하지. 너는 강하게 살거라, 교수야. 너는 흔들리지 말거라, 볼테우스야, 하면서.”
“교수 브라스톨. 내 앞에서 네가 가문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헛소리를 입에 담지 말아라. 네 어미는 가문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제거당했으며, 너나 나와 같은 사생아는 그저 다른 가문과 혈연을 위한 살아있는 계약서로 키워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문에 대한 증오,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렇게 버려져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이토록 열성적으로 움직이는 이유! 나 또한 모두 겪었던 것이니 알 수밖에 없지.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 교육받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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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뭐…. 눈에 담긴 증오가 보여? 내가 아버지를 증오해? 그 인간 아직 얼굴도 못봤는데?
입에 발린 말과 호화로운 미래로 꼬드길 줄 알았는데, 볼테우스는 내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입에 담았다.
‘사악한 기운 Lv.3! 태생적인 재능이 있었지!’
광명교의 이름과 형식을 빌렸지만, 실상은 인간 도살을 위한 의식을 빌어 탄생한 캐릭터.
그 효과로 붙언 특성 [사악한 기운 Lv.3]는 사실상 저주에 가까운 특성이다.
날때부터 사악한 존재. 선한 NPC는 웬만해선 가까이가려 하지않고, 똑같이 ‘날씨가 좋네요!’라고 말해도 내가 하면 ‘날씨가 좋군…. 사람 죽이기 딱 좋은…. 흐흐흐흐….’ 같은 느낌으로 들리게 되는 상당히 마이너스한 특성.
볼테우스는 그런 나를 보고 느낀 것이다.
이 압도적인 재능.
어린 나이에 벌써 저 정도 증오를 쌓아버린 존재.
이 녀석, 그냥 두면 천살성(天殺星)이 되겠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되어버린 것.
거기에 아직은 잘 고쳐 쓸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고, 또 태생도 비슷하다보니 나름의 책임감 마저 느낀 모양이다.
볼테우스는 세상 진지한 눈빛으로 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너는 기사도를 입에 담았지. 허나, 이미 시작부터 비뚤어져 버린 우리와 같은 존재가 오러의 독선까지 담게 되는 순간, 그 앞날에 예정된 것은 악인으로서의 미래 뿐이다. 내게는 지금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직 10년도 살지 않은 소년에게서 흘러나오는 악한 감정이. 양지로 나아가는 순간 만천하에 드러나, 이유없이 뭇매를 맞게 될 소년의 미래가 보인다.”
“열차에 타라, 교수. 물론 사람들이 생각하는 화려한 미래는 없다. 열차에서의 생활은 열악하고, 셀 수 없는 전투속에 매번 동료를 잃으며, 그를 위한 애도를 마치기도 전에 다른 도시를 향하는 열차에 발을 올려야 하지.”
“그렇기에 마도 열차야 말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인 것이다! 기관사, 화부(火夫), 그 외 열차에 타는 기사들 모두 너나 나 같이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소원한 이들이다. 불경한 것 취급당하는 우리도 이 열차 위에서는 그 누구보다 빛나는 가치를 증명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세상의 어떤 이들도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선망하며 따르기까지 하지.”
“증오를 버리고 우리와 함께 떠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함께 열차에 오르는 모든 이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너의 새 가족이 되어주마.”
볼테우스의 눈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그렇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브라스톨 가문에서 나를 빼내어 주겠다는 그런 눈빛.
‘파편기사라…. 당장 아무런 권한도 없는 가문을 떠나, 이름있는 파편기사 밑에서 수학한다라….’
….나쁘지 않은데?
대충 들어보니 마도 열차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열차 소유주의 사용인이라기 보단 하나의 폐쇄적인 집단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옛날에 모래 배 위에서 사선을 넘나들던 선원들 같은 끈끈함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당장 브라스톨 가문의 영지인 이곳은 무역 허브로 유명한 곳이었다. 특산물도 대단한 거 없이 바위틈에서 자라는 목재 조금, 철광석 약간 정도.
이동이 용이한 게 제일 큰 장점인 동네인데, 좀 알아보니까 이 열차라는 물건이 아무나 탈 수 없는 물건이더라고.
오러만 보고 폐관수련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다른 능력을 키우기엔 썩 좋지 않은 환경이라 이거다. 마법을 쓰려면 그래도 종잣물이 될 마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나마 마나가 좀 남아있는 땅으로 이동해야 하고. 샤드 나이트로 성장하고 싶으면 파편 모으러 돌아다녀야 하는데, 정작 이동에 필요한 열차 탑승권은 어느정도 성장해서 내 자리를 확립한 다음이 아니면 얻을 수 없고.
이런 상황에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스트라우그의 열차 소속인원이 된다니, 더 할 나위없이 좋지 않은가?
“음…. 가문에서 저를 보내줄까요? 당신 말대로라면 나도 사실상 가문의 재산 취급인데.”
“스트라우그 가문의 힘을 보태면 어려울 것도 없지. 필요하면 가짜 약혼이라도 시켜주마.”
“가문에서 없는 사람 취급해서 나왔다면서?”
“나올 때야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지. 그 누가 ‘불경한 자, 로드 쿨-파그’를 참살한 로드 슬레이어를 무시할 수 있겠느냐?”
“오.”
심지어 굳이 가지고 있는 가문의 성을 버릴 필요도 없었다. 어쨌든 열차 타면서 명성을 쌓으면 ‘교수 브라스톨’이라는 이름으로 가문의 위세를 드높이는 것이니 훗날 브라스톨 가문에도 어느정도 입김을 행사할 수 있는 것. 다만, 그쯤되면 남의 도시 열차에 태운 내 자식이 아까워질 뿐이지.
“….앞으로 뭐라고 부르면 됩니까?”
나의 대답에 볼테우스는 대견하다는 듯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볼테우스 님으로 충분하다. 성으로 불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니.”
“옙. 볼테우스님.”
“따라와라. 새 가족이 될 열차 사람들을 소개해주지.”
달칵.
푸화악-
볼테우스가 방문을 열고, 아직도 장내에 가득한 술냄새가 기다렸다는 듯 방 안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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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저런 사람들이 아니다.”
“옙. 볼테우스님.”
“드물게 사상자가 한명도 나오지 않은 운행이라, 축하하는 자리가 조금 과해진 것 뿐이다.”
“그럼요. 그럴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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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더 하겠나.”
“그러죠.”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달칵!
볼테우스는 예의 버섯 차를 한잔 더 내어준 다음,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호로록-
“음. 묘하게 중독되는 향이네.”
스트라우그 요새도시 특산품이라는 이름답게 차는 나름의 향과 정취를 가지고 있었다.
밖에서 아까보다 조금 더 많은 물건을 집어던지는 소리와 비명소리를 배경으로 음미하니, 더욱 그윽한 맛이 잘 느껴지는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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