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1
Chapter.4 눈꺼풀(13)
***
[세상의 모든 마법사의 숫자만큼의 깨달음이 있으며, 그만큼의 주문이 존재한다.]“오, 서문부터 심상치 않은데?”
확실히 앞에 있던 지루한 이론에 비해 책 귀퉁이가 닳아있거나, 이곳저곳에 줄이 그어져 있다거나 하는 등 많이 읽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교수는 책을 읽으며 대로를 걷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강가에 진득하니 앉아서 꼼꼼하게 읽어나가고 싶었지만, 대충 봐도 한두 페이지 안에 끝날 내용도 아니었고,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라 다음 도시를 향해 이동하며 읽기로 한 것이다.
[마법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자신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내면의 심상을 구현화 시키는 오리진 스펠(origin spell)과 다른 이의 깨달음을 빌려서 사용하는 트레이싱 스펠(tracing spell)이 있다. 오리진 스펠은 자신의 뇌리에 자리 잡은 깨달음을 세상에 투영하는 것이다. 이미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종류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주문도, 수인(手印)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그저 강한 이미지와 질료가 될 마나 뿐.많은 마법사가 ‘이미지’라는 부분에서 힘겨움을 겪는 것을 알고 있다. 나, 위대한 도르만 발다니스 또한 일곱 갈래의 물의 모습을 이해하기 전에, 1 위계였던 시절이 있었으니.
강한 이미지란 단순히 정보로 저장된 기억이 아닌, 네 안에 수십 개의 다른 기억이 얽혀 만들어진 하나의 상(想)을 의미한다.
‘도르만 발다니스’ 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라. 위대한 7위계 마법사, 아름답고 풍성한 수염, 다섯 수계 마탑의 탑주를 키워낸 스승이며, 125세의 앞날이 창창한 미중년. 그 외 마법사라면 모를 수 없는 여러 가지 특징들.
이것은 그저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일 뿐, 이미지가 아니다.
자, 그럼 ‘어머니’ 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라.]
두근!
[무엇이 떠오르지? 이름? 특기? 외형? 아니, 장담하건대, 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이것을 ‘강한 이미지’라 부른다. 대상에게 얽힌 감정, 경험, 수많은 기억이 얽혀 영혼에 새겨진 하나의 상. 마법사는 다루고자 하는 대상을 그 정도로 영혼에 각인한 뒤, 그 이미지를 현실에 강요하는 것으로 마법을 발현한다. 이미지를 영혼에 새기는 일은 걱정하지 말도록.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이미지가 이미 그대의 머릿속에 있을 테니.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더 좋다. 그대의 수사학적 수준을 뛰어넘는 방대한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영혼에 새겨진 이미지를 세상에 투영한다······.”
[물론 이것은 처음 마법의 세계에 입문한 이에게는 감각적으로 생소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마탑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1위계 마법사들에게 트레이싱 스펠의 사용을 숙달시키며, 마법사는 주문을 사용하는 감각을 익힌 다음 오리진 스펠을 만들게 된다.]….어렵다. 책의 내용 자체는 워낙 쉽게 풀어써서 그런지 이해가 쏙쏙 됐는데, 그걸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아니, 그래서 마법 어떻게 쓰냐고.
[지루한 얘기는 이쯤하고,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겠다. 트레이싱 스펠은 직접 사용해보는 게 더 이해가 빠르니. 나 도르만 발다니스가 만든 마법체계에서, 주문은 대상의 이미지를 시전자에게 심는 촉매 역할을 하며, 수인은 그것을 큰 단위로 나눈 기초가 된다.가장 기초적인 수계 마법, ‘도르만 발다니스의 수력구’에 대한 것이다.
심상 : 물의 실체
주문 : 손끝에 스치는 물이여, 내 너를 이해하니 나와 다를 것이 없다.
이미지 : 잔잔한 호수. 시전자가 곧 호수이며, 물은 호수에 담긴 것뿐이니.
수인 : 없음. 굳이 축약에 사용한다면 왼손 약지, ‘고요’의 첫 번째 마디를 접을 것.]
“….게임 좆같이 만들었네.”
아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꾹, 참고 공부 좀 해보려고 했더니!
그 정신 나간 마력습득 과정을 이겨냈으면, 그냥 마법 정도는 ‘파이어볼!’ 하면 슉슉 나가게 해줘야 되는 거 아냐?
원리는 알겠다. 저 ‘수력구’ 라는 마법은 도르만 영감탱이한태는 오리진 스펠이겠지. 그리고 도르만은 그 깨달음을 최대한 축약해서 주문으로 만든 것이다. 저 주문을 읽는 이가 자신의 내면에 담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 말 그대로 깨달음을 주문을 통해 ‘빌리는’ 행위인 것이다.
– Jokass : 정보 :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 takealook : 도대체 그 훌륭한 몸을 가지고 왜 무투가로 안키우는거냐….
– 간장게이바 : 엌ㅋㅋㅋㅋㅋ 마법사가 괜히 ‘사’ 인줄 아심? 공부 개 빡씨게 안하면 아무것도 못 쓴다고 ㅋㅋㅋㅋ
– 홀리 : 그래도 멋있잖아요! 주문을 외치면 허공에 막 물도 생기고, 번개도 나오고!
– 스피드 웨건 : ‘주문을 외치면’.
– 노루Drug해요 : 야, 교수! 그거 해봐 그거! [황혼보다 어두운 자여, 피의 흐름보다 붉은 자여. 시간 속에 파묻힌 위대한 너의 이름을 걸고 나 여기서 어둠에 맹세하노라.] ㅋㅋㅋㅋㅋㅋ 이미지 확실하지 않음? 영상으로 띄워줄 수도 있다고! 보고 해!
– 간장게이바 : 드레곤ㅋㅋㅋㅋ슬레이븤ㅋㅋㅋㅋㅋㅋ
– Jokass : 근본 마법사 못 참지 ㅋㅋㅋㅋㅋ
– 스피드 웨건 : 수치사도 GG하다 미쳐 죽은 거로 쳐주냐.
“아오, 쪽팔려….”
이게 문제였다. 이 주문이라는 게 사람의 내면을 정말 꾸밈 하나 없이 표현한 것이다 보니 큰소리로 내뱉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매혹 주문. 뭐, 나의 매력으로 그대를 사로잡아 영원토록 내 곁에 어쩌구 하는 건데, 전장에서 털이 북슬북슬한 아군 마법사가 손을 요염하게 꼬아가며 이 주문을 외는걸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아찔해진다고. 귀에서 막 피도 나고. 눈도 썩고.
문제는 그런 행위를 이제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수십, 아니 이제는 수백 명으로 늘어난 시청자들 앞에서.
“으음…. 손끝에 스치는 물이여….”
– 간장게이바 : ㅋㅋㅋㅋㅋㅋㅋㅋ
– 노루Drug해요 : 야! 쟤 진짜 한다!
– 하이웨이나초맨 : 예끼 이놈! 배에 힘 딱주고! 더 크고 간절하게! 그렇게 개미 눈깔만 한 목소리로 하면 오던 이미지도 다 날아가요!
– 홀리 : 멋있는데.
“아익, 진짜! 방해좀 하지마! 니들도 마법사 하는 거 보고 싶을 거 아냐!”
– 스피드 웨건 : 그건 그럼. 마법사 플레이어가 워낙 희귀하니까.
– Jokass : 1개 중대급 뮤트를 맨손으로 으깨서 미라를 만들어 놓고 물 쫌 가지고 논다고 지가 마법사래 ㅋㅋㅋㅋ
– 간장게이바 : 음? 아아, 이건 ‘중력 마법’이라는 것이다. 내가 널 던지면, 네 목이 부러지는 신비한 효과가 있지.
‘또 건수 하나 잡았다고 신이 나셨구만.’
시청자들의 조롱 사이로, 슬그머니 기생충 녀석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부끄러워? 부끄럽다는 감정은 이해하기가 어려운걸? 이게 나쁜 일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아닌데 거부감이 왜 생기는 거야?]‘그런게 있다.’
교수는 대충 무시하고 넘어가려다, 생각을 고쳤다.
이대로 저 악질들의 조롱을 정면으로 뚜드려 맞으면서 마법 연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은 한데, 심리적으로 불가능해. 광화문 한복판에서 춤추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나는 그런 방면에서 긴장하지 않는 훈련이 돼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야, 기생충.’
[응?]‘너 옆에서 나한테 계속 말 좀 걸어봐.’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지만, 어차피 달고 살아야 한다면 잘 써먹어야지.
편의상 기생충이라 부르고 있는 놈과의 대화는 내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놈이 말을 걸 때마다 시간이 살짝 느려지는 기분과 함께 주변이 고요해진다. 집중하기 딱 좋은 환경이라는 소리다.
[키득키득…. 원한을 잊는 게 빠르구나?]‘어쩔 수 없으니까. 황무지에서 기분 나쁜 거 일일이 다 곱씹으면서 살면 금방 죽는다고.’
음. 역시 조용해졌다. 쓸만하군.
교수는 숨을 가다듬고, 눈을 감은 다음 최대한 단어에 들어있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하며 주문을 외웠다.
“손끝에 스치는 물이여, 내 너를 이해하니 나와 다를 것이 없다.”
아까 강가에서 물을 움직일 때처럼 뭔가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긴 했다. 물, 나는 물이다. 나는 호수다. 호수에 물이 담겨있는 것처럼, 내 몸에 물이 담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오, 제법.]중이 염불하듯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이미지를 반복하던 중, 기생충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눈을 떠보니, 정말로 손목 언저리에 꿀렁거리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물 덩어리가 맺혀있는 게 아닌가!
띠링-!
[스킬 습득 – 수력구 : 대 마법사 도르만 발다니스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초마법. 물을 만들어내거나, 투척한다. / 공격력 0~5 / 마나소모 0~5]스킬로 등록이 된다니. 내가 해냈다. 정말로 수력구라는 마법을 시전하고 만 것이다!
“돼, 됐다! 물이 생겼어!”
– 스피드 웨건 : 정확히 수력구 주문이라고는 못함. 다른 마법사들 쓰는 것 보면 손 위에 완벽하게 구체의 형태로 떠올라있는데, 저건 몸에 붙어있는 느낌에 물의 양도 얼마 안 되잖음.
– 간장게이바 : 이런 제기랄! 이 혹독한 환경 속에서 정말로 해내다니! 역시 보통이 아니야!
– 노루Drug해요 : ‘교수 The 수치심이 없는 자’
– 남바쓰리 : 신기하긴 하네.
신기해? 단순히 그런 감정이 아니다. 나의 의지와 상상에 따라 무언가 세상에 구현됐다는 느낌. 그 고양감, 그 전능감이 정말 말도 안 됐다. 참으려고 해도, 내가 쳐다보는 방향으로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물 덩어리를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게임하면서 처음으로 아무 걱정도 없이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
화악!
한참 낄낄거리며 물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별안간 감각에 무언가 걸렸다.
타다닥!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워낙 빤히 보이는 곳에 숨어있었으니까.
오솔길 비슷한 곳의 입구 나무 뒤에 숨어있는, 비쩍 마른 남자 셋.
‘이 상황, 이 구도. 아아, 그건가.’
– 간장게이바 : 그거네.
– 스피드 웨건 : 그거다.
– 홀리 : ???
– 하이웨이나초맨 : 그거네 그거.
– 노루Drug해요 : 지금까지 너무 특이한 플레이만 해서 잊고 있었음.
– takealook : 너무 평범한 이벤트라 오히려 이질적인걸?
전쟁이 벌어지면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게 몇 개 있다.
첫 번째는, 피난민.
도시에서 도망쳐온 사람들도 있지만, 인근 마을에서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뮤트를 피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인근 마을을 탈탈 털어서 전쟁물자와 징집병을 채워가는 영주의 병사들을 피해 도망친다.
두 번째는, 구울.
시체가 많아지면서 음지에 사기(死氣)가 고이면서 시체를 기주로 하는 언데드가 발생하는 것인데, 월드3에서는 이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전장에서 사망한 자의 시체는 제 발로 일어나 여왕을 향해 걸어가거나, 도시 쪽에서 회수하여 화장해줄 테니까. 시체가 남아있지 않으니 구울도 발생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어이! 거기 덩치! 가진 거 다 내놓고 꺼져! 주, 죽기 싫으면!”
지금 눈앞에 있는 산적들이다.
안 봐도 뻔한 이야기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헐레벌떡 도망친다고 빈손에 가깝게 도망쳐 나와, 초근목피를 캐 먹으며 영주의 눈을 피해 살며 굶주리기를 며칠째. 눈앞에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자식들을 보면 제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눈이 뒤집히기 마련이다.
‘세 명 다 피골이 상접한 데다 겁에 질려있군. 아직 피 맛을 본 적이 없는 초짜들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에, 심하게 더듬는 목소리. 심지어 내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 자기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오합지졸 그 자체. 다른 게임으로 치면 Lv1 짜리 들개나 토끼 같은 수준의 적.
그래도 다들 농사하던 사람들이라 농기구 날 하나는 참 시퍼렇게 잘 갈아왔는데….
‘음…. 저 정도면 한 10분 정도 난자당해줘도 문제없겠는데?’
잠깐 대화창을 살펴보자, 사람들의 생각도 나와 비슷한 것 같았다.
– Jokass : 건드려도 왜 하필 이놈을 건드렸어….
– 간장게이바 : 돔황챠! 눈앞에 있는 건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다!
– 스피드 웨건 : 냉정하게 생각하면 몇 대 맞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음. 교수 오늘치 운동 아직 못했잖아. 지난밤에 소모를 좀 많이 하긴 했는데, 그건 그날 운동 안 한 거 때운 거라 치고. 꾸준히 감염 인자를 괴롭혀주지 않으면 또 기어오를 테니까, 앞에 앉아서 좀 맞아줘.
– takealook : 안녕? 나는 피난민 도적 1이야! 오늘은 즐거운 첫 강도질을 하는 날! 조금 긴장되지만, 우린 무기를 들었고 상대는 덩치가 크긴 해도 무기가 없으니 문제없어! 이것 봐! 낫이 박혔어! 어…. 왜? 멀쩡하지? 저 시원하다는 표정은 뭐지?
– 남바쓰리 : 형님, 저놈 웃고 있는데요?
– 간장게이바 : 저렇게 생긴 교수한테 덤비는 것부터 저 강도들이 멍청한 거지.
그 말에 교수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2m가 넘는 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근육은 감염으로 검붉은 색에 가까운 구릿빛을 띄고 있었고, 그 위로 수십 개의 깊은 흉터가 덮여있었다. 심지어 대충 두건 같은 것으로 가리고 있긴 했지만, 눈에서는 약간 붉은 색 안광마저 나오고 있는 상태.
덜덜 떨면서도 쥐고 있는 농기구를 꽉 잡고 눈을 부라리는 강도들의 모습에, 교수는 가슴이 찡해졌다.
“이게 가장의 무게라는 건가….”
“헤, 헤헤헤…. 보아하니 부상당한 군인 같은데, 얌전히 주머니에 든 것만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주지….”
“그, 그 신발! 신발도 놓고 가!”
“옷도! 잘 빨아쓰면 될 거야!”
“닥쳐! 어이 형씨! 이쪽은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빨리 움직여! 허튼수작이라도 부렸다간…. 그래. 한쪽 귀를 베어주지!”
“히이이익!”
아무래도 저 가운데 있는 녀석이 나머지 둘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였다. 하는 짓들이 조금 괘씸하긴 하지만….
“결심했다. 이 녀석들은 적당히 겁만 줘서 쫒아내기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버지라니. 나 이런 거에 약하다고.’
놈들의 말에 순순히 등에 메고 있던 짐을 풀어 땅에 내려놓은 교수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 Jokass : 오, 마법 쓰게?
“응. 촌 무지렁이들이라도, 마법이 무서운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까.”
평범한 농민들에게 마법사는 그야말로 전설과 신화속의 존재. 음유시인들의 입을 통해 떠도는 대부분 용사극에서 마법사는 사악한 연쇄 납치범으로 표현되는 만큼, 겁을 주는 데는 이만한 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좀 더 크게 만들어봐야지.’
교수는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좀 전의 감각을 떠올리며 주문을 외웠다. 한 번 해봤더니 이게 그렇게 막 부끄럽고 그런 짓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손끝에 스치는 물이여, 내 너를 이해하니….”
“크헤헤, 좋아. 그렇게 얌전히….”
“잠깐만….. 제, 제스커! 저저저저게뭐야!”
“허공에서…. 물이 생겨?”
주문이 완성되자, 들어 올린 두 손 사이에 사과 알 만한 물 덩어리가 맺혀있었다. 이번에는 몸에 붙어있지도 않고, 공중에 잘 떠 있었다.
“마법사! 마법사다!”
“흐흐흐흐. 그래! 이 몸은 물의 마법사다! 물의 포용력을 이해하고 있는 자! 그것이 바로 나다!”
쾌감이 발끝부터 짜르르하게 올라온다. 그래 이거지! 이게 게임을 하는 맛이지! 저 겁에 질린 눈! 선망 어린 시선! 게임이다! 내가 제대로 게임을 하고 있어!
힘을 써도 몸이 아프지도,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말을 거는 놈도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힘! 그 힘이 나의 것이라니!
겁에 질려있는 도적들을 보자, 가슴속에 그간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던 자존감이 마구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아, 정신을 못 차리겠어! 너무 행복해! 역시 물은 최고야!
“크헤헤헤! 너희 하찮은 것들이 이 마법사님의 심기를 어지럽혔으니, 대가를 치르리라!”
“으으으…. 으아아아!!!”
“애니, 밀리! 아빠는 먼저간다아아!!”
– takealook : 어, 잠깐만. 야, 그걸 던지면….
‘아차!’
분위기에 너무 취해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물을 던져버렸다. 서둘러 취소하려 했지만 이미 손을 떠나버린 물은 빠르게 도적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피, 피해라! 죽일 생각은….!”
“으아아아악!”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로지른 수력구는 겁에 질린 도적들 사이로 파고들어….
촤아악!
“우푸푸!”
“앗 차거!”
.
.
.
.
“…..?”
“……? 앗 차거?”
놈들을 적셨다.
홀딱 젖은 도적들과 수력구를 던진 그 상태로 얼어있는 나. 넷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 Jokass : ㅋㅋㅋㅋㅋ`주, 죽일 생각은….!’ 엌ㅋㅋㅋㅋㅋ 죽는데ㅋㅋㅋㅋ 저거 맞고 ㅋㅋㅋㅋㅋ
– 간장게이바 : 젠장! 몸이 젖다니! 선선한 가을 날씨에 옷이 마르지 않았다면 얼어죽었을 거야! 넘모 무섭다! 마법사!
잠시 멍해져 있던 도적들은, 슬슬 내 마법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는지 웃기 시작했다.
“헤, 헤헤헤헤! 뭐야, 별거 아니잖아?”
“크히히히. 내가 뭐랬어! 마법사는 그냥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거라니까?”
“그러고보니 이야기 속의 마법사는 다 부자였지! 저놈도 보기보다 가진 게 많을 거야!”
“크헤헤헤!”
“우히히히히!”
“킥킥킥킥!”
– 간장게이바 : ㅋㅋㅋㅋㅋㅋ
– Jokass : ㅋㅋㅋㅋㅋㅋ
– 홀리 : ㅋㅋㅋㅋ
– 노루Drug해요 : 엌ㅋㅋㅋㅋ숨을, 숨을 못 쉬겠어 ㅋㅋㅋㅋㅋㅋ
‘쪽팔려….! 쪽팔려서 뒈질 것 같아!’
현실과 게임, 두 세계에서 서라운드로 울려 퍼지는 비웃음 속에 교수의 얼굴은 더 이상 붉어지지 않을 정도로 붉어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