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11
Chapter. 18. World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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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다우 요새 정거장, 2층 공용 공간.
갑자기 떨어진 비상에 헐레벌떡 움직이던 기관사들이 나엘다의 부름에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창문 다 가렸냐?”
“예, 누님.”
“정거장 울타리랑 건물 입구는 누가 보고 있어?”
“그나마 술이 좀 깬 포람이랑 빌케르트가 보고 있습니다.”
“눈 하나 깜빡이지 말고, 특히 썩을 기자새끼들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해. 지금 있는 곳도 정거장이지만 혹시 모르니까 마도구 감지 장비 1층부터 싹 돌리고.”
“어…. 그거 비싼 데다 몇 번 쓰지도 못 하는 거라 아껴 쓰라고 하지 않으셨습-”
“하라면 해. 나중에 내가 머리를 빡빡 밀어서 팔든지 해서 메꿀 테니까.”
진지하기 짝이 없는 나엘다의 목소리에 빠릿하게 움직이는 기관사들.
“근데, 도대체 뭣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누님 지랄하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비상까지 때렸을 정도면 그냥 장난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지…. 그럼, 장난이 아니고말고. 음, 게리? 가서 애들 차 한 잔씩만 타서 돌려라. 놀라서 토하기 전에 속 좀 가라앉히게.”
“암요, 충분히 그럴만합지요. 쓰고 정신이 번쩍 드는 놈으로다가 후딱 가져오겠습니다.”
“오냐.”
후우우-
드워프 화부가 잔걸음으로 기관사들에게 차를 돌리는 동안, 테이블 위에 앉아있던 나엘다는 큰 일을 앞둔 사람처럼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덩달아 긴장한 기관사들이 저마다 해장용 쓴 차를 호로록거릴 무렵, 나엘다는 제 심장을 뜯어내는 듯한 표정으로 지금까지도 품 안에 구속하고 있던 나를 들어 올려 보였다.
“인사해라. 우리 새 식구, 교수다.”
“….앤데요?”
“그래. 아홉 살이지. 게다가 브라스톨 가문의 아들이야.”
“심지어 귀족? 이거 우리 감당할 수 있습니까?”
“몸값이라도 받으려는 건가?”
“누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우리 재정 상태가 말이 아니긴 한데….”
웅성웅성!
술렁술렁!
약 20여 명 정도 되는 기관사들은 갑작스럽게 새 식구라 소개된 나를 보며 저마다 그 이유와 정체를 유추하기 바빴다. 물론, 예의 찻잔 묘기를 목격한 몇몇은 입을 꾹 다물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가 찢어져도 어떻게든 감당해야 한다. 왜냐하면-”
악단의 지휘자처럼 그 소란을 음미하던 나엘다는, 참기 힘들다는 듯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 꼬맹이는, 마법사거든.”
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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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라는 단어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지는 소란.
그리고,
“파하하하하하!!”
“커헉, 켁, 콜록! 크허허헉!”
“아이고오! 누님! 요즘 농담이 많이 느셨습니다!”
“저게 마법사래! 털도 안 난 꼬맹이가 마법사라고!”
“크허허허! 누님! 쟤가 귀 짧은 엘프라 쳐도 마법사 하기엔 나이가 많이 모자라 보이는뎁쇼!”
“푸하하하! 내 말이!”
기관사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나엘다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 같은 그들을 히죽거리며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하, 하, 하….”
“하하….”
“어….”
.
.
.
.
….꿀꺽.
“….누님?”
“왜에~?”
“부, 분위기가 좀 어색해지려 하는데, 이제 진짜 그 꼬맹이를 식구에 넣은 이유를 가르쳐 주심이….”
“난 한번 했던 말 두 번 하는 거 싫어하는데?”
“그러니까, 했던 말이 말 같지가 않은 말이라….”
“내가 어렵게 말했나? 우리 새 식구, 아홉 살짜리 교수 브라스톨은 마.법.사. 란다?”
싸아아악-!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멍하니 자기 뺨을 연거푸 때리는 드워프부터 숨을 집어삼키다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 기관사에, 성호 비슷한 것을 그으며 중얼거리는 수인족까지.
반응은 천차만별이었지만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인 것은 동일했다.
“지, 진짜요?”
“그래. 우리 충직한 볼테우스가 드디어 바다같이 넓은 나의 은혜를 갚기 시작한 거지!”
“우, 우리 브라스톨가의 마법사를 훔친 겁니까?”
“아-니? 이 꼬맹이가 마법사라는 건 여기 있는 우리, 레일 쉽의 기관사들 말고는 아무도 몰라. 브라스톨 가에서 만든 마법사는 아니니까, 그냥 그 집 아들을 훔친 것뿐이지. 그것도 애가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그런 놈들에게서 말이야.”
“무, 무료 마법사….”
털푸덕!
계속 헉, 허윽! 하면서 숨을 집어삼키던 기관사 하나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속성은! 속성은 어떻게 됩니까!”
“역시 바람입니까? 방랑벽 있는 그 치들 말고는 이렇게 제발로 걸어들어올 이유가 없죠?”
“땡~”
“불이다! 특급 화부가 들어왔구나!”
“뭐하고 있냐! 엔진부 다 튀어나와! 너네 막내, 아니 늬들 상전 오셨다! 당장 가마 태워서 엔진실부터 보여드리지 않고-”
“때엥~ 불 마법사도 아닌데?”
“….불도 아닙니까?”
“그럼 설마, 대지 계열?”
털푸덕, 털썩!
드워프 둘이 추가로 고꾸라지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위대한 대지의 뿌리시여-’ 같은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대지 마법사라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선로 정거장 확보할 가능성도 생기는 거지?”
“지금 우리 인원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지만, 아직 어린 아이니까…. 조금 더 클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인원도 늘리고, 일단 대지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으면 네발로 기어서라도 합류할 놈들이 천지에 널렸으니까….”
벌써부터 뭔가에 홀린 듯 미래를 그리기 시작하는 기관사들. 나엘다는 그들 앞에 나를 내려놓으며, 손가락으로 가위표를 만들어 보였다.
“땡! 아쉽지만, 귀하기 짝이 없는 대지 마법사도 아니지롱!”
그 말과 함께 기관사들의 얼굴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아쉬움.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
“바람, 불, 대지도 아니면. 뭐지? 영혼술사?”
“이렇게 멀쩡한 영혼술사 봤냐. 아홉 살짜리가 죽은 사람을 보면 얼마나 봤으려고.”
“그럼 남은 게….”
.
.
.
.
“물?”
“정답!”
….찰싹!
찰싹찰싹찰싹찰싹찰싹!
아까 전부터 제 뺨을 후려치던 몇몇 기관사들이 더욱 세게 손을 휘두르더니, 더러는 옆 사람보고 자기 뺨 좀 쳐달라고 부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이, 일번 화부장! 엑센 아우트라! 바, 발언 요청합니다!”
“응~ 오늘은 뭐든 들어줄 기분이니까, 말해.”
“아, 아까 우리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마법사라고 하셨는데, 그럼…. 천연입니까?”
“맞아. 사고로 우연히 ‘깨달음’을 얻은 진짜 마법사. 인간 마정석 광산 같은 요즘 마법사 말고.”
“처, 천연으로 수계 마법사가 나올 수도 있는 겁니까?”
“적어도, 타리그덴 군도에서 알려진 인물은 없지?”
히쭈욱-!
“그런 관계로, 지금부터 이곳에 있는 레일 쉽 관계자 전원에게 함구령을 내린다. 마법의 ‘마’자라도 꺼내는 인간은 내 이름을 걸고 아가리를 뜯어서 엔진에 쳐넣어 버리겠어. 알겠냐!”
“예, 예스 멤!”
“좋-아. 엘프는 거짓말을 싫어하니까, 내 손으로 우리 식구를 찢어발기는 일이 없도록 해줬으면 좋겠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기관사들에게서 다짐을 받아낸 나엘다는, 그야말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런 촌극에 가까운 장면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궁금한 게 생겼다.
“저기…. 나엘다?”
“으응~ 아가? 무슨 일이니? 레일 쉽에서 내리겠다는 얘기만 아니면 뭐든 들어줄게?”
“그…. 마법사라는 게 구체적으로 얼마나 귀한 거예요? 속성마다 차이도 좀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얼마나 귀하면 드워프고 수인이고 서로 뺨을 때려주면서 ‘이건 현실이야. 입에서 피 맛이 나.’ / ‘아무래도 현실인 것 같아.’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게 만드는 거냐고.
“마법사의 가치라…. 쉽게 말하면, 소규모 마정석 광산 하나에서 채광할 수 있는 마정석 전체를 한 명에게 쏟아부을 정도의 가치라고 할 수 있을걸?”
나엘다는 내 볼을 쭉쭉 잡아 늘이더니, 하나씩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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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열차에 타는 것은 대부분 바람 마법사야. 그 치들은 일종의…. 저주? 태생적인 불안증 같은 게 있어서 한 도시에 계속 머무르면 미쳐버린다고 하거든. 그래서 열차에 소속된 마법사는 대부분 바람계열 마법사지.”
“그럴 만하네요.”
속성 마나 특성상 어디 한자리에 있지 못하는 마법사들인데, 날아다닐 수 있다 해도 중간에 내려와서 쉬어줄 필요가 있고. 어딜 가나 위험천만한 무른 땅에서 쉴 수는 없고. 도시와 도시 사이를 날아서 건널 만큼 대단한 마법사가 되는 것도 쉽지 않으니, 결국 육로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유일한 수단인 열차에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로 하는 일은 열차 환기와 방어.
푹푹찌는 데다 잘 씻지도 못한 기관사들이 우글거리는 열차는 숨을 쉬는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인데, 바람 마법사 하나 있으면 자체 공기 정화기 및 냉각기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마도 엔진 컨디션 관리에도 유용하고, 전투에도 유용하고, 무엇보다 열차를 좀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어줘서 크게 대접받는다고 했다.
“바람계열 마법사가 전투원/기호성 장비 취급이라면 불을 다루는 화염마법사부터는 본격적으로 열차의 운용에 도움이 되는 단계지.”
“마도 엔진을 쓰는데 불이 필요해요?”
“그럼! 엄청 구형 마도엔진은 마력 자체를 동력으로 움직이지만, 그것들은 요즘 나오는 마정석이랑 호환이 안 되거든!”
용맥 대폭발로 인해 대륙 전체의 마나 농도가 옅어졌으며, 그 결과 마정석의 질도 상당히 떨어져 버렸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옛날처럼 짙은 농도의 마력을 가진 마정석이라면 자체 마나로 움직이는 구형 마도엔진을 움직일 수 있고, 그쪽이 훨씬 힘도 좋고 효율도 좋지만 요즘 나오는 빈약한 마정석은 한 트럭을 쏟아부어도 움직이는 게 힘든 관계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의 열차에서 쓰는 마도-증기 혼합엔진.
한쪽에선 석탄이나 나무로 불 때고, 다른 쪽에선 마정석이 연결된 발열 기관으로 열을 생산해 증기기관을 움직이는 하이브리드 엔진으로 보였다. 기본 운행에는 마정석을 쓰고, 가속이나 장애물 돌파 같은 큰 힘을 필요로 할 때는 추가로 불을 때서 동력을 보충하는 식이라는데.
이런 상황에서 불 마법사를 한 명 정도 영입해서 엔진 앞에 세워두면?
“섬세한 가속 조절은 물론이고, 급한 경우 일반 열차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힘과 추진력으로 열차를 움직일 수 있지.”
그냥 엔진 파워가 좀 좋아지는 수준이 아니란다. 땅굴벌레의 공격으로 선로가 끊어져 레일에서 튕겨 나가버렸는데, 화염 마법사의 똥파워로 레일을 벗어나서도 질주한 열차가 기어이 다음 도시에 도착했다는 실제 사례가 있을 정도라니 사실상 마도 열차의 최후를 위한 보험이요, 연료와 이동 시간을 줄여주는 최고의 화부라고.
“여기까지가 ‘열차에 있으면 좋다!’ 급.”
“그럼 대지 마법사, 수계 마법사는요?”
“거기서부터는 도시 운영권이 걸린 전략 자원 수준이란다.”
대지 마법사는 사실상 현생 인류 생존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당장 사는 곳만 해도 암반지대로 한정되지 않았나?
땅과 바위를 다루는 대지 마법사는 평시에는 그런 도시의 한계선을 야금야금 늘려나갈 수 있는 영토 확장 장비이며, 전시에는 부득이 무른 땅에 진출할 경우 발밑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벽이고, 무엇보다 던전을 점령하고 뮤트 로드를 제거했을 경우, 인근 새로운 암반 지형과 도시를 잇는 선로 건설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존재였다.
다행인 것은, 뮤트가 세상을 죄다 황폐화시키며 무른 땅/ 단단한 땅 밖에 없는 세상으로 만드는 바람에 대지 계열 마법사는 그나마 다른 마법사에 비해 좀 많이 나온다는 것. 3 위계가 넘어가면 거의 요새도시의 영주와 맞먹는 취급을 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열차에 타는 대지 마법사는 대부분 1, 2위계. 그것도 다른 대지 마법사의 제자를 임대하는 형식으로 태우게 되는 거야.”
대지 마법사를 태운 열차의 경우, 도시와 도시 사이를 쭉 달리는 다른 열차들과 달리 선로 ‘옆’으로 탐사를 나갈 수 있게 된다.
소속된 대지 마법사가 동행한 인원들의 발소리나 땅울림을 막아주고, 땅굴벌레나 기타 뮤트의 습격을 살펴주는 덕에 인류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
주로 구 인류의 도시에서 황금기의 유물을 캐오거나 ‘스테이션’으로 불리는 선로 사이의 간이 정거장 부지를 확보, 건설 및 보수작업에 투입된다.
황금기 유물은 제대로 건지면 마도 엔진 하나를 새로 살 수 있는 돈이 나오는 노다지고, 스테이션 건설에 성공하면 지나가면서 이용하는 열차들에게 두고두고 이용료를 받을 수 있으며, 일부 도시에선 세금도 감면해준다.
덕분에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지 마법사의 임대료는 1, 2위계만 해도 열차 한 대의 운용료와 맞먹는 수준이며 그 이상은 모조리 각 도시에 소속되어 그 위치조차 엄중히 보호되는 1급 전략자원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귀하구나….”
“엄청 귀하지. 용맥 뒤틀기 이후로 마나가 희박해지면서, 마법사가 되는 길이 거의 막혀버렸거든.”
“환기, 엔진 추력 조절, 수행 범위 및 한계의 확장이라…. 마법사가 귀하면 마도 공학으로 어떻게 커버할 수는 없습니까?”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불가능한 부분도 있으니까. 마법은 신비의 영역이잖니? 기계적인 방식으론 열차 석 대만 한 마도공학 장비가 필요한 일이 마법사 한 명으로 가능한 경우도 있으니까. 마법사가 쓰이는 부분은 전부 그런 영역이고, 그래서 귀한 거야.”
다음. 마지막으로, 나 같은 수계 마법사의 가치.
“가치만 따지면 대지 계열 마법사를 조금 더 쳐주는 편이지. 무엇보다 도시 간 선로의 보수, 건설에 필요하다는 면에서 그 가치를 비할 바 없으니까.”
“다만…. 가치를 벗어나서 귀한 것으로 따지면, 4대 속성을 통틀어서 수계 마법사가 1등이란다.”
“왜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거든.”
익히 알려지다시피, 주변 모든 생물군을 초토화시키는 뮤트가 세계 전역에 퍼져서 각자 던전을 파버리는 바람에 조각난 대륙 대부분의 땅이 황폐화됐고, 덕분에 어딜 보나 땅덩어리라 대지 마법사의 비율이 늘었다.
바로 그 늘어난 비율만큼 줄어든 것이 수계 마법사란 말이다.
“유용성으로 따지면 2등이거든? 세상은 바싹 말라버렸고, 물은 어떤 생물이든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며, 저급 마정석을 이용한 마도 증기엔진은 물 잡아먹는 괴물이나 마찬가지니까. 수계 마법사가 대지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도시급 전략 자원 취급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지.”
이 도시라는 게 무조건 근처에서 제일 두텁고 큰 암반지형 위에 세워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하수 같은 수자원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이 흐른다는 것은 그만큼의 틈이 있다는 뜻이고, 땅굴벌레의 습격에 취약한 지형이라는 의미니까.
그래서 대부분 도시는 한-참 떨어진 곳까지 파이프 라인을 만들어 물을 뽑아 올려야 하는데, 공사비용이 영주들 뒷목 잡게 만드는 수준인 것은 물론이고, 말라붙은 땅 깊숙한 곳에서 물을 퍼올리는 엔진에 들어가는 마정석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물이 나올 만큼 무른 땅에서 마도 엔진의 소음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다 보니 해당 지역을 방어할 시설과 인원을 또 따로 편성해야 한다.
만약 도시에 수계 마법사가 상주하면 이 모든 비용을 마법사 혼자 해결할 수 있다. 도시에 상주하면서 통제력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물길을 끌어당기면, 자연스럽게 도시를 향하는 새로운 물길이 생기니까.
추가로 도시 차원의 수로 공사까지 지원된다면 도시의 지반을 건드리지 않고도 우물을 파는 것도 가능했다. 물이 충분하면 그동안 수자원이 충분하면 추가적인 엔진과 기타 장비를 유용할 수 있고, 그만큼 도시의 산업능력과 자원이 영구적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열차에서는?”
“물장사. 마도 열차는 한 도시에 장기체류하지 않으니 대규모 공사는 힘들겠지만, 있는 동안 물을 끌어오는 정도는 가능하니까. 물 끌어다 팔면 되지. 물론 우리 탄수차에 물 채우는 것 공짜인 것만 해도 엄청난 이득이고.”
“수계 마법사가 열차에 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어 봐서 어디까지 유용한지는 알 수 없지만, 네가 잘 성장한다면…. 우리 마실 물이랑 씻을 물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씻을…. 물?”
나엘다의 말에 그동안 얌전히 듣고만 있던 기관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기관사 주제에 씻고 다닌다고?”
“몸에서 누런 소금이 떨어지는 악취 덩어리들이랑 같이 안 자도 돼?”
“지하수면…. 시원한 물일 거야! 더워 죽을 것 같을 때 뜨거운 물 안 마셔도 된다고!”
“내, 냉수샤워!”
“오오오오!”
“이건…. 범죄적이야! 기관사의 삶이 아니라고!”
까딱 까딱,
“보다시피. 대부분 기관사들은 열과 탈수,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고통이 상상 이상이거든. 매일 전투를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 컨디션 관리는 무시 못 할 이득이지. 물만 제대로 마셔도 사망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걸? 운행 끝 무렵엔 탈수에 가까운 상태로 전투에 임해야 하니까.”
“물론, 이제 막 수계 마법사의 길에 입문한 너한테는 아직 먼 얘기지만.”
이뻐 죽겠다는 듯 내 머리를 헝클어트린 나엘다는 손으로 책상을 두드려 단꿈에 젖은 기관사들을 주목시켰다.
“다들 우리 레일-쉽의 장밋빛 미래는 충분히 내다봤겠지. 앞으로 몇 년이면 쾌적한 운행은 물론이요, [마도열차-수계 마법사 포함]이라는 타이틀로 우리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도 꿈이 아니라는 거다!”
“과거의 영광?”
“스트라우그 요새도시 차원에서 대규모 던전 토벌전을 열었을 때 이야기다. 레일 쉽도 참여했고, 덕분에 로드 슬레이어라는 허명과 가문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열차 운영권을 손에 넣었지만 몇 년을 함께 해온 기관사들을 대부분 잃었다. 유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고, 반파된 열차를 수리하다 보니 열차를 운용할 자금조차 빠듯한 상황이 되어버렸지.”
“그렇게 된 거였구나.”
환호하는 나엘다와 기관사들 뒤에서 슬쩍 다가온 볼테우스가 알려줬다.
어쩐지. 4월드에서 제일 고급 인력에 인기도 하늘을 찌르는 열차 운용 인력들이 심각하게 빈곤해 보인다 했더니. 거의 망하기 직전의 열차를 되살린다고 허리를 마구 졸라맨 상황이었다. 원래 큰 토벌전 이후에 해산되는 열차가 제법 된다고 한다. 반파된 열차는 분해되어 다른 열차의 수리에 쓰거나 새 열차 제작의 부품으로 들어가고, 살아남은 기관사들은 영지나 다른 열차의 소속으로 흩어진다고.
“다들 들떠있지만, 우리 모두 먼 미래의 가능성인 것을 알고 있으니 너무 부담스러워할 것 없다. 우선은 어떤 힘을 가지든 그 힘의 기틀이 되는 육체를 가꾸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옙.”
“잊지 말거라. 네가 다소 희귀한…. 매우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샤드 나이트 볼테우스 스트라우그의 종자라는 이름도 그리 가볍지 않다는 것을. 파편을 안전하게 소유하기 위해서는 정련된 정신을 가꿔야 하며, 너의 태생적인 악성을 억누르는 데도 힘을 써야 할 것이다. 마법도 정신적인 학문이라 들었으니,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되겠지.”
“알겠습니다.”
모조리 반쯤 나사 풀린 사람들 사이에 볼테우스 같은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이지 싶었다.
‘그나저나, 파편을 [안전하게] 소유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수양을 필요로 한다니. 수양이 부족하면 안전치 못한 상황도 발생한다는 뜻이네?’
파편의 정체가 데이터 소울인 것을 감안하면 묘하게 익숙한 상황이다.
3월드 초창기, 하이드랑 툭탁거리면서 껍데기네, 기생충이네 싸우던 시절과 비슷한 느낌이 아닌가?
‘하이드. 그러고 보니, 하이드도 그때 헤어진 이후로 200년을 넘게 경험했겠구나.’
아직도 혼자 생각할 때면 어딘가 묘하게 비어있는 느낌이 선명했다.
녀석도 데이터 소울로 GG의 세계에 섞여들었으니, 성자의 죽음 이후의 세계를 살아왔겠지.
….너무 많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다시 말하지만! 우리 레일 쉽 기관사 역사상 가장 큰 이벤트인 만큼 무조건 성사시켜야 한다!”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나엘다와 기관사들 쪽 소란은 정점에 치닫고 있었다.
“우리는 마법사 교수의 정체를 절대로 숨긴 채 브라스톨 가문에서 꼬맹이를 빼온다! 일말의 의심도 받아선 안 돼! 브라스톨의 의뢰도 완수하고! 평소랑 완전히, 똑-같이 행동하는 거다! 알겠냐!”
“예스-멤!”
“그런데, 어떻게 빼내오실 작정이십니까? 서자라고 해도 정식으로 브라스톨의 성을 받은 그 집 혈육인데.”
“글쎄…. 옛날에 볼테우스 빼올 때처럼 한번 해볼까?”
나엘다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와선 나를 들어올렸다.
“아가.”
“옙. 누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치광이 같은 눈을 하고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엘프, 나엘다.
“혹시, 조혼에 관심이 있니?”
“….예?”
어째서인지, 볼테우스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아, 아직 이런 건 모를 나이구나? 결혼 말이야, 결혼! 앞으로 네가 늙어 죽을 때까지 이 젊고 탱탱한 모습으로 남을 엘프 누님이랑 결혼 안 할래?”
“….설마?”
내가 눈짓으로 볼테우스와 나엘다를 번갈아 가리키자, 이 미친 엘프는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씨발. 모든 엘프를 보살피는 세계수시여.
설마 이런 꼬라지를 견디다 못해 화병으로 돌아가셨습니까.
나름 머리가 굴러간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이 미친 엘프의 정신세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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