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14
Chapter. 18. Railed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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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술사 길더.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얼굴. 매부리코에 창백한 피부,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
스걱- 툭.
“네가 할 일은 우리가 샤드나이트 볼테우스를 상대로 영혼술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사람 시체에 칼질하며 아홉 살짜리한테 배신을 명령하는 사람치곤 멀끔하게 생김.
“영혼술이 뭐에요?”
특징.
“네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설명하자면, 죽은 자의 결정을 조작하고 관찰하는 능력이다. 영혼을 휘두르는 힘이라 보면 되겠지.”
특징은.
“여, 영혼술사가요?”
“그렇다. 샤드 나이트는 영혼술사 없이 존재할 수 없으니, 영혼술사야 말로 인류를 구원한 새로운 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지.”
“세상에 남겨진 망자들을 재활용하는 것. 샤드 나이트를 통해 위대한 ‘대통합’의 단계로 한발 더 나아가며, 종국에는 역사에 단 한번 존재했다는 위대한 영혼술사, 모든 버려진 영혼을 다뤘다는 ‘영혼 길잡이’를 샤드나이트의 몸을 통해 재림시키는 것. 그것이 영혼술사의 비의이자 존재 이유이지.”
특징은…..
“그 영혼 길잡이가….?”
“당연히 대 영혼술사 ‘알드리치 텔드마이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모든 영혼술사는 위대한 영혼 길잡이 ‘알드리치 텔드마이어’의 계보를 잇는 존재다.”
빠드드득!
‘아홉 살짜리 답게 겁먹은 연기 중인 내가, 도저히 한마디 안 하고 넘어갈 수 없게 만들 만큼 개소리에 일가견이 있다는거다!!’
아-주, 좆같은 놈이라는 것.
‘뭐? 알드리치가 뭘 어쩌고 어째?’
자칭 ‘영혼술사’ 길더의 자부심 가득한 대답에 어린 교수 브라스톨의 유치(幼齒)가 속절없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알드리치가 누구인가. 흑마법사이자 영혼술사였으며, 버림받은 망자들을 외면하지 못해 타락해버린 어머니, 타락성녀 메아 마리아의 유지를 이은자가 아닌가?
지금도 알드리치가 파티를 떠나는 순간을 기억한다. 오랜 세월 원망했던 어머니지만 그런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마찬가지로 버림받은 영혼들을 외면할 수 없어 남은 여생이나마 그들을 올바른 흐름으로 인도하겠다며 파티를 떠난 알드리치가 아닌가?
그런데 뭐? 대 영혼술사 ‘영혼 길잡이’ 알드리치의 유지를 이어받아?
“거기, 뼈 긁는 도구 좀 다오. 손잡이 둥근 것, 그래 그거.”
북북북북! 바각! 박박!
“산채로 잡았으면 작업이 좀 수월했을텐데 말이야. 파편의 위치가 어렴풋이 느껴지니까.”
알드리치의 계보를 이어받았다는 놈들이, 내 눈앞에서 시체를 난도질 하는것도 모자라 산체로 해부하지 못한게 아쉽단다.
트드득, 짤깍!
“아, 여기 있었군. 너도 잘 봐두도록. 지하실 입구에 있던 것들이 귀하디 귀한 ‘유색 파편’이라면, 보통 사람에게서 수확되는 것은 이런 ‘무색 파편’이지. 가진 능력도 미약하지만, 그만큼 깃들어있는 영혼도 약해서 다른 강한 파편에 쉽게 종속되는 편이다.”
“저기…. 파편이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는 것은 알고 계신거죠?”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 파편이 영혼의 결정이기 때문에 오직 우리 영혼술사만이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의 비의를 탐색하는데 평생을 바친 우리 영혼술사들에게만 주어진 고귀한 권리지.”
알드리치의 계보를 이어받았다는 놈들이, 망자의 영혼을 인도하진 못할망정 그걸 가공하고 주물럭거리는게 지들 권리란다.
분명 알드리치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길잃은 자들에게 봉사하며 마무리하겠다고 떠났는데, 21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영혼술사의 전설이자 시조 격 존재가 되어 조상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었다.
‘알드리치. 당신네 학파 망했어요. 그냥 망한것도 아니고 아주 개판이 났다고.’
쓰으으읍- 하아아.
‘그….럴 수 있다. 음, 그럴 수 있고 말고. 아무렴. 아암!’
백번 양보해서 여기까진 이해해줄 수 있다.
월드의 오염도가 극단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은, 세상에 원래 선인으로 등장했어야 할 인물 대부분이 악인으로 등장했다는 뜻이니까.
막말로 길 가다 사람 셋을 만나면 한 놈은 강도살인마, 한 놈은 사기꾼, 또 한 놈은 방화범인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거니까. 세계가 전체적으로 악해지면서 200년이 지났으니, 애들이 맛이 좀 갈 수도 있지.
그러니까, 그냥 ‘아이고 세상이 참 요지경이네~’ 하고 지나가 줄 수도 있었다.
영혼술사의 헛소리가 거기까지였으면.
“위대한…. 대통합? 그건 뭐죠?”
“….브라스톨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협력자로 보냈군. 이래서야 일이라도 제대로 하겠나.”
위대한 대통합.
저 단어가 좀 귀에 거슬렸어야지. 그냥 대충 넘기고 이놈들의 수작이 뭔지 알아볼 수가 없잖아?
길더는 귀찮은 눈빛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어느정도 이쪽에 대해 알고있는 것이 앞으로 있을 일에 도움이 된다 생각했는지 설명을 이어나갔다.
“적합자가 무엇인지는 알겠지. 접촉하는 사람에게 끝없이 저주를 쏟아붓는 파편이, 드물게 거부하지 않는 사람 말이다.”
“예…. 그렇게 적합자가 되면 샤드나이트가 될 수 있다고.”
“그렇다. 그리고 그 현상은 파편과 파편, 결정화된 영혼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파편들끼리도 적합자를 따진다면, 파편도 서로 거부하거나, 동조하는 경우가 있다는….?”
“아주 무지한 수준은 아니군. 정확히 그 말 그대로다. 파편들끼리도 서로 적합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나뉘지. 서로 적합한 파편은 접촉할 경우 조금 더 큰 힘을 가진쪽에 스며들 듯 병합된다. 샤드나이트란 자신에게 적합한 ‘유색 파편’의 적합자가 되는 것으로 탄생하며, 이후 수많은 파편을 모아 그중 자신의 파편에 적합한 것들을 병합하는 것으로 강해지는 존재를 말하지.”
파편을…. 수집해? 병합? 모아서 뭉쳐?
아니 잠깐만.
“그래서 다들 파편 수집에 목을 매는 것이다. 많이 가질수록 적합한 파편을 흡수할 수 있으며, 그 흡수한 것들에 적합한 또다른 파편을 흡수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지.”
“그, 그거 그렇게 막 건드려도 되는겁니까? 잘못 손대면 저주 걸린다면서요!”
그딴 식이면 돈 많고 세력 큰 놈이 순식간에 다 쓸어가겠다- 싶어서 황급히 물어보니, 길더는 조금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우리 영혼술사가 샤드나이트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작게는 기침병부터 크게는 즉사에 이르는 저주까지. 강인한 샤드 나이트조차 함부로 다른 파편에 손을 댈 수 없으나, 우리 영혼술사는 파편 속에 잠든 영혼의 상태를 읽어낼 수 있지.”
“아.”
“이해한 눈치로군. 한 손은 샤드나이트에게, 다른 손은 파편과 접촉하고 있으면 그 파편이 대상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아니면 공격성을 표출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샤드나이트는 이러한 ‘감정’을 통해 소유한 파편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아니면 쌓아두고 자신의 다른 파편과 적합하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며, 그렇기에 우리 영혼술사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 우리가 없으면 성장할 수 없으니. 그렇기에 우리가 이 시대에 가장 고귀한 마법사인 것이다.”
뭔가 쎄한 느낌이 든다 싶었더니.
안 좋은 예감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샤드나이트는 다단계 마냥 파편을 끌어들여서 흡수하고, 그 강해진 힘으로 더 많은 파편을 수집해서 제 몸에 병합한다는거 아냐?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술사의 파편 감정이 필수고?’
어디서 들어본 소리다.
[월드 4. 파편 전쟁의 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더 많은 파편을 모아 강력한 힘을 휘두르십시오.]영혼술사 길더는 샤드 나이트를 통해 ‘위대한 대통합’의 순간에 다가가는 것이 영혼술사의 비원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오염된 데이터 소울이 서버를 망가뜨리지 못하게 ‘월드’에 보존합니다.]샤드를 수집해 병합하는 샤드 나이트. 그런 그들을 지원하는 영혼술사.
아이고 세상에. 아이고 알드리치 맙소사.
“위대한 대통합. 샤드나이트가 서로를 죽이고 또 죽여, 그들이 병합한 파편들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모든 영혼의 통로가 되었다는 전설적인 영혼술사, 영혼 길잡이 ‘알드리치 텔드마이어’가 샤드 나이트라는 영혼 군집체를 통해 강림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면, 우리도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진정한 생사의 비의를 전수받을 수 있게 되겠지!”
“야 이-”
“진정한 불멸! 영혼술사의 최종비의, 스스로의 영혼을 다루는 비술에 다가가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육신의 세계를 벗어나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어떠한 고통도, 시련도 감내할 것이다!!!”
제 말에 도취되어 지하실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외치는 길더. 미친 개소리가 분명한데, 분주하게 움직이던 지하실의 다른 영혼술사들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영혼술사라는 놈들이 대부분 이런 새끼들이라는 것이다.
아아, 알드리치. 내 친구, 내 동료. 대머리에 수상쩍은 진정제 중독자 흑마법사 늙은이야.
‘당신, 도대체 말년에 뭘 했길래 당신네 애새끼들이 미친것도 모자라서, 시스템의 수족이 돼버린 거냐고!!!’
데이터 소울을 모조리 한데 모아 4월드에 격리하려는 시스템.
샤드 나이트를 통해 파편을 하나로 병합해서 뭔 사이비 종교 의식마냥 늙은이 하나를 강림시키겠다는 미친 영혼술사들.
목적은 달라도 최종적으로 파편(데이터 소울)의 일체화를 노리는 것은 같았다.
아마도, 처음에 그렇게 시끄럽게 굴던 시스템이 어느순간 조용해진 이유.
기계지능이 지쳐 나가떨어질리는 없으니, 나에 대한 설득을 포기하고 다른 계획으로 넘어갔다는 뜻이겠지.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준비해둔 안배로 말이다.
‘….알드리치.’
열정적으로 ‘위대한 대통합’을 주장하는 영혼술사의 모습.
산산히 조각나 황폐화된 대륙.
사라진 제국과, 다시 등장한 뮤트.
‘우리가 했던 일들은, 전부 무의미 했던 걸까요.’
굳건히 버티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건만.
나와 동료들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암담한 세계를 마주하니, 어깨에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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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술사와 파편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은 이쯤하고, 이제 계획으로 넘어가지.”
나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해야할 일들은 물밀 듯 닥쳐왔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레일 쉽과 볼테우스를 대상으로한 이놈들의 음모니까.
“주머니는 받았겠지?”
“예.”
“귀한 것이니 잘 간직하도록. 내 영혼 항아리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의 촉매를 나누어 넣었으니. 일 자체는 어려울 것 없다. 내가 촉매를 통해 볼테우스의 영혼을 감지할 수 있을 거리까지, 그 주머니를 볼테우스와 가까운 곳에 두는 것이다.”
브라스톨 가문의 계획. 일단 기본적인 목표는 샤드나이트 볼테우스 스트라우그가 소유한 유색 파편, ‘새벽의 조각’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유색 파편이라면…. 적합자를 샤드나이트로 만들어준다는 귀한 파편이죠?”
“그렇지. 민간인이나 하급 뮤트들에게서 나오는 흐릿하고 작은 무색투명한 파편이 아니라, 선명한 빛과 고유의 색을 포함한 파편. 기껏해야 힘이나 순발력, 아주 미약한 감각 발달을 선사하는 무색 파편과 달리 기적에 가까운 능력부터 고대에 소실됐다 알려진 힘을 부여하기 까지 하는 것이지. 이 지하실 입구에 보관된 파편들도 전부 유색 파편이지만, 볼테우스의 파편은 그것들보다 더욱 특출나고, 귀하다.”
“왜요?”
“그야 물론, 그는 토벌전에서 뮤트 로드를 참살한 로드 슬레이어이기 때문이지.”
파편은 세 종류가 있다.
하나, 방금 길더가 시체에서 꺼낸 것과 같은 작고 불투명한 무색 파편. 평범한 사람이나 하급 뮤트에게서 드물게 발견되는 것. 가벼운 근력이나 지구력, 손재주부터 춤, 요리, 달리기등 작고 하찮고 큰 쓸모가 없는 힘을 포함한 것이 대부분인 평범한 영혼 결정.
둘, 드물게 발견되는 파편들 중에서도 극히 드물게 나타나는 크고 색이 있는 파편. 적합자인 샤드나이트가 죽으면 무조건 그 자리에 남는 것. 한번도 전투를 배워보지 못한 자에게 달인에 가까운 전투능력을 부여하거나, 사라진 고대의 고위계 마법을 한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예측할 수 없는 대단한 능력을 포함한 고귀한 파편.
셋, 마지막으로, 지금은 로드의 파편이라 불리는 조각난 뮤트 여왕의 파편. 이것에 포함된 힘이 너무 강한 나머지 접촉한 자를 즉시 뮤트화 시켜버리며, 조각이나마 신위를 담았기에 상식에서 벗어난 종류의 힘을 소유자에게 부여한다. 통상적으로 붉은 색. 모든 뮤트 로드가 무조건 하나 이상의 파편을 보유하고 있으며, 뮤트의 던전을 제거하고 로드를 참살하는 ‘토벌전’에 있어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확보, 격리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논재가 된 것은 세 번째 파편.
“5년 전. 스트라우그 가문과 브라스톨 가문은 두 요새에서 가장 가까운 던전, ‘불경한 자 로드 쿨-파그’의 던전의 토벌을 선언했지.”
“요새도시 두 개가 허덕일 정도로 막대한 돈이 들었으며, 두 영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이 동원된 것은 물론 스트라우그 건너의 요새도시 마르텔과 중앙섬 밖의 군도에서도 실력자를 끌어모아 일대 결전을 벌였다.”
로드 쿨-파그. 볼테우스의 입에서도 나왔던 이름이다. 자신의 손으로 쿨-파그를 죽이고 로드 슬레이어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했다.
희생 끝에 전투는 승리로 끝났고, 뮤트 로드와 던전은 제거되었다. 쿨-파그의 던전이 가로막고 있던 지역에는 제법 넓은 암반지형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 요새도시의 터를 확보한 양측 도시는 손해를 매꾸고도 남을 이득을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쿨-파그의 참살자, 살아남은 기사들 중 누구도 로드의 파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지.”
로드의 파편은 뮤트 로드를 만들어내는 씨앗이나 마찬가지. 그게 사라진 이상, 언제 어디에서 또다른 로드와 던전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두 도시는 사제가 포함된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그 누구도 뮤트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정말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로드의 파편이 누군가에게 벌써 흡수됐던게 아닐까요? 아니면 큰 힘을 가진 물건인 만큼 따로 챙겨서 팔기위해 숨겼다거나….”
“어린 너는 모르겠지만, 신성력과 뮤트의 피는 상극이다. 그것은 뮤트가 인간을 증오하는 것 만큼이나 확고한 사실이지. 만약 누군가 흡수하거나 숨겼다면 사제들의 눈을 절대로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제조차 찾지 못한 로드의 파편.
양 도시의 수뇌부는 사라진 로드의 파편을 찾기위해 토의를 거듭하던 중, 한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파편이 사라지는 경우는 딱 하나. 다른 파편에 삼켜져 병합되었을 때 뿐이다!』
『살아남은 샤드 나이트들 중 하나의 유색 파편이, 로드의 파편을 흡수했다!』
지금껏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론만은 충분히 재기된 가설.
말도 안되게 높은 우선순위를 가진 유색 파편이 있다면, 로드를 참살하고 봉인하는데 그쳐야 했던 로드의 파편을 흡수해 제거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한 지역을 초토화 시키는 그 비상식적인 힘을 인류의 손에 넣을 수 있지도 않을까?
“지금껏 허황된 소리로만 치부했던 그러한 가설들이, 이번 토벌전으로 인해 수면에 떠올랐다는 것이다.”
강한 힘을 가진 유색 파편의 경우 다른 유색 파편을 병합하기도 하니, 로드의 파편이라고 흡수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토벌전에서 살아남은 샤드 나이트중 가장 강한 샤드나이트가 로드의 파편을 흡수했겠지?
그렇게 ‘로드 슬레이어’ 볼테우스 스트라우그가 흡수한 유색 파편, ‘새벽의 조각’은 현존하는 유색 파편 중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파편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가설이 사실이라면 볼테우스의 유색 파편은 그렇게 허술하게 돌아다녀선 안될 물건이지. 인류가 던전을 토벌하고 로드의 파편을 봉인한 것 이상으로, 뮤트 로드들이 샤드 나이트를 참살하고 귀중한 유색 파편을 흡수한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요새도시 차원에서 볼테우스가 가진 파편을 흡수하려는 거였군요.”
“맞다.”
“샤드 나이트가 흡수한 유색 파편을 내놓는 방법은….”
“죽음 뿐이지. 레일 쉽에겐 불행한 일이지만, 모두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흠….”
어쩌면 현존하는 유색 파편중 가장 큰 잠재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볼테우스의 파편.
만약 지금 영혼술사가 한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브라스톨 가문이 이런 수작까지 부려가며 볼테우스의 파편을 확보하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스트라우그 요새도시는 이 일에서 배제되었다. 딱히 인류를 위한 목적은 아닌 것 같군.’
가주는 일이 성공할 경우 마도열차 레일 쉽은 스트라우그 가문으로, 볼테우스의 파편은 브라스톨 가문으로 나눠 가진다고 했다. 만약 스트라우그 측에서 새로 제시된 볼테우스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면 절대 그런식의 분배에 동의했을 리 없겠지.
‘브라스톨 가문은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볼테우스의 파편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직접 그 힘을 휘두르고 싶은거야.’
레일 쉽은 브라스톨의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이곳 파르다우 요새로 왔다.
그런 준비 과정을 생각하면, 변수인 내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다른 습격 수단을 갖춰둔 상태라고 봐야겠지.
“좋습니다. 그 주머니를 볼테우스의 근처에만 놔두면 되는거죠?”
“최대한 가깝게. 적어도 한 시간 이상 그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곳으로. 샤드 나이트도 잠은 잘테니 침소에 넣어둘 수만 있으면 그 이상 좋은 위치도 없겠지.”
‘일단 무조건 내가 한다고 해야한다.’
그냥 하는게 아니라 아주 잘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볼테우스와 레일쉽을 습격할 다른 수단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저쪽에서 일이 잘 풀려간다고 착각하는 동안은 그들의 습격을 지연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 지연된 시간이 이미 파르다우 요새에 들어와버린 레일 쉽 사람들이 도시에서 탈출할 시간을 벌어주겠지.
“주머니를 놔두면 무슨 일이 벌어지죠?”
“말했다시피, 이쪽에서 볼테우스에게 영혼마법을 걸 수 있게 되지.”
“영혼마법이라면 어떤 것이죠? 어떤 종류의? 어떤 효과를 가지는?”
“그런 것은 몰라도 된다. 너는 우연한 기회에 그쪽 일원이 되었으니, 기회를 살려 촉매를 볼테우스에게 가져다 놓기만 하면 되는거야.”
“하지만….”
“그만! 더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마법으로 연락할테니 올라가서 얌전히 기다려라.”
“만약 계획이 조금이라도 세어나간다면, 네 방정맞은 입이 실수를 한 것으로 알고있겠다. 가문 차원에서 벌이는 큰 일을 망쳤다간 어떻게 되는 줄 알고있겠지? 널 영혼없는 인형으로 만들어버리면 신전에서도 친족 살해의 죄를 물을 수 없을테니 말이다.”
“윽.”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
조금 더 알아내고 싶었지만, 길더는 일의 배경과 내가 할 업무 외의 정보는 발설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알아내야 한다. 하나라도 더 캐내야 불확실한 변수를 방지할 수 있어.’
생각보다 큰 일. 생각보다 더 맛이 간 4월드.
당장은 재능만 가지고 있을 뿐 직접적인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변수가 발생하면 상황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지금 가능한 것은 힘을 가진 동료들이 변수를 차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것 뿐.
언제 어디서 불확정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적 본진의 정보만큼 값어치 있는게 또 어디 있을까.
길더가 안된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찾아야했다.
휙, 휙!
‘중앙. 유색파편 보관함.’
‘12시부터 3시. 파편 회수 및 시체 처리구역.’
‘….4시. 책상 위 종이와 깃펜. 편지를 마감하는데 쓰는 밀랍.’
시야에 들어온 장소에서 정보가 있을만한 장소를 추려낸다.
‘후드 입은 인원 다섯. 경비 여덟.’
‘내 몸무게. 평균보다 체격이 좀 있으니…. 30kg에서 오차 약간. 경무장 성인 남성을 휘청거리게 할 수 없음.’
‘하지만, 운동능력이 0에 가까운 마법사라면, 오금 정도는….’
목표로 한 책상. 그 주변을 서성이는 마법사 중 손목과 소맷자락에 잉크 번진 자국이 있는 놈이 있었다.
신중하게, 작은 키를 이용해 은밀하게 접근해서….
콰당탕탕!
“제기랄! 뭐, 뭐야!”
사사사삭!
“죄, 죄송합니다! 안이 어두워서 부딪혔어요!”
“제기랄, 이런 빌어먹을 애새끼가…! 귀한 자료가 뒤섞였잖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무릎 오금에 충격을 받은 영혼술사가 넘어지며, 허우적거리는 그의 손이 테이블 위의 서류들을 흩뿌리고 말았다.
“저, 정리! 정리 도와드릴게요!”
울먹이는 아이의 얼굴로 허겁지겁 종이를 주워담는 손길. 하지만, 그 눈동자 만큼은 정신없이 바닦을 훑고 있었다.
‘한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만약 없어졌다는게 들통나면, 소란을 일으킨 외부인인 내가 용의선상에 오를 것은 분명하니까.’
‘다 읽을 필요도 없어. 저주. 저주나 술식에 관련된 것만. 마법에 관한 기록은 단어를 적는 것 만으로도 흔적이 남는다.’
팔락, 팔락, 팔락, 팔락,
….탁-
“뭐해! 멍하니 있지 말고 이리 내놔!”
“이건….”
쉴새없이 넘겨지던 기록들 중 한 장. 희미하게 마법의 흔적이 남은 것이 있었다.
[영혼 항아리의 촉매로 발동. 대상의 의식세계에 균열을 만들어, 파편의 기억 탐-]“뭘 멍하니 있는거야! 이리 내!”
“어어어-!”
챠악!
대상이라면 볼테우스. 파편의…. 뭘 한다고?
뒤에 뭔가 중요한 설명이 있었는데, 미처 눈에 담기전에 기록을 빼앗겨버렸다.
‘영혼 항아리 촉매. 의식에 균열. 파편의 기억을 탐-어쩌고. 일단 키워드는 어느정도 건졌어.’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영혼술에 대해 아는 사람이 주문을 특정할 정도의 정보는 얻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내쪽에 시선이 몰린 상황. 여기서 더 활동하면 자칫 의심을 살 수도 있었으니, 지하실에서의 탐색은 이쯤에서 끝내야지 싶었다.
‘볼테우스도 샤드 나이트다. 레일 쉽에는 볼테우스를 제외한 샤드 나이트도 있었으니, 그들 또한 알고지내는 영혼술사가 있을거야.’
‘도시 전체를 다스리는 가문대 아직 피해를 회복하지 못한 레일 쉽. 전면전은커녕 추격전도 힘들어.’
‘최대한 걸려넘어간 척, 적들이 우릴 속이기 위해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동안 거리를 벌려야 한다.’
남은 것은, 알아낸 것을 공유하고, 조심스럽게 탈출하는 것 뿐….
이 아니라, 하나 더.
드드드득-
쿵!
무겁게 닫히는 지하실 문을 뒤로하자, 어렴풋이 피냄새가 벤 계단이 나타났다.
“우선, 볼테우스를 만나봐야겠지.”
볼테우스 본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남아있었다.
결국, 로드의 파편은 어디로 갔는가.
이쪽 가정처럼 정말 볼테우스가 소유한 유색파편이 그것을 집어삼킨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사라졌나.
그것도 아니면….
‘이미 생존자중 하나가 뮤트 로드가 되어, 어떤 방법으로 사제들을 속였나.’
어둑한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4월드는,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이 악인인 세상이니까.’
슬프게도, 볼테우스와 레일 쉽 사람들을 완전히 믿기에는 그들과 함께한 시간도, 경험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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