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15
Chapter. 18. Railed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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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보글보글-
탁.
볼테우스는 작은 가열판의 마정석을 내린 다음, 적당히 끓은 주전자의 물을 찻잔에 따랐다.
쪼르르륵-
뜨거운 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스트라우그산 차 버섯의 쓴 향.
고향에 오만정이 다 떨어져버린 그였지만, 어린 시절부터 입에 붙은 차 향은 쉽사리 잊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무는군.”
해질녘 정거장의 옥상. 탁 트인 곳에 앉아 노을을 보며 차를 마시는 것은 볼테우스의 오랜 취미였기에,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건물 옥상에 의자를 가져다 놓은 참이었다.
“흠.”
푸른 증기에 휩싸인 도시. 기름때 가득한 손으로 땀을 닦아내는 사람들. 하늘에 노을을 시기하듯 주황색 불꽃을 피워올리는 대장간의 화로와 해질 시간이 되어서도 여전히 바쁜 사람들.
달리는 열차 위에서 바람과 함께 마주하는 노을에 비하면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지만, 높은 곳에서 보는 도시의 전경은 또 그 나름의 감상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완벽하진 않아도 괜찮은 휴식이다.
질겅질겅질겅질겅.
“아닌데…. 이렇게 오래 걸릴 리가 없는데….”
아니, 괜찮은 휴식 ‘이었다.’
그의 의자를 탈취해 그를 바닥에 앉히고, 손톱을 씹어며 골목 너머를 눈이 빠져라 보고있는 사람만 아니었다면.
“나엘다.”
탁탁탁탁탁탁탁탁
“나엘다, 정신 사납다.”
“닥쳐 볼테우스. 네 말대로 정신이 사나운 상태라 그러는거니까.”
나엘다.
나름 은사(恩師)라고 말할 수 있는 엘프.
그녀에 대한 감사는 분명히 간직하고 있지만…. 나엘다는 옆에서 보고있으면 그런 마음이 깎여나갈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사람과 엮였는지.’
볼테우스는 정서불안 엘프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떨어대는 엘프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역시 결혼으로 하는게 더 나았을거야.”
“나엘다.”
“다른 놈도 아니고 게리랑 바우트잖아! 제 키만큼이나 소심한 드워프 새끼들이 뭘 제대로 하겠냐고!”
“너도 동의한 계획이 아닌가.”
“그, 그거야 그땐 내가 좀 흥분해 있었잖아! 마법사는 다들 머리가 좋으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계는 10년도 살지 못한 인간이잖아! 어린애!”
나엘다는 손톱을 씹으면서도 아주 유창하게 드워프 차별적인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열 받으면 굴부터 파고보는 이상한 새끼들이니, 델피아드 그놈이 왁! 하면 깨갱! 하면서 모든 계획을 불어댈 놈들이니, 역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주제야 말로 인간의 머리를 깡통으로 만들고 어쩌고 저쩌고….
왁왁! 악악!
….호로록-
‘쉬기는 글렀군.’
정신 사나와서 차 향도 제대로 못느낄 지경이었다. 도대체가, 한 때 살아있는 나무라고도 불리던 정적인 종족 엘프에서 어떻게 이런 반골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어쩌다 이런 말도 안돼는 존재에게 마음을 주고 말았는가.’
하루의 유일한 낙이 방해받았음에도 볼테우스는 나엘다가 불안하다며 찾아온 자리가 그의 옆자리인게 퍽 마음에 들었다. 열차 위에 앉아서도 자기관조에 들어갈 수 있는 샤드 나이트가 고작 시끄럽다고 차를 즐기지 못할 이유가 있나.
“볼테우스! 나 진짜 그 마법사 영입 못하면 배 아파서 죽을지도 모르거든? 지금이라도 개입할까? 응? 응??”
그게 다, 바닥에 앉은 그의 옆에서 까딱거리는 나엘다의 하얀 종아리 때문이지.
“….차라도 한 잔 하겠나.”
“됐어. 나무는 끓는 물 안마셔.”
“그럼 너는 마시겠군. 받아라. 엘프 손톱보다는 먹을 만 할테니.””
쪼로록-
“….돌덩이 같은 녀석. 어릴땐 말랑말랑해서 재밌었는데.”
“반석(半石)은 희망과 삶의 터전이니, 나쁘지 않은 칭찬이군.”
결국 다리 떨기 대신 찻잔을 선택한 나엘다의 모습에 볼테우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도시와 노을. 따듯한 차와 나엘다라.
‘기억할만한 순간이군.’
볼테우스는 앞으로를 위해 이 순간을 잘 기억해두기로 다짐했다. 샤드 나이트에게 좋은 기억은 수명과 같은 의미를 가지니.
그렇게 볼테우스가 이 순간을 눈에 새기기 위해 고개를 드는 순간.
“왔다!”
챙그랑!
“….”
“아, 미안. 내가 쓰는 금속컵 하나 줄게. 그건 던져도 안 깨져.”
“….나엘다.”
저 멀리 보이는 고만고만한 세 명의 모습에, 나엘다는 그가 아끼는 찻잔(수제, 드워프 장인의 선물 + 고가의 실반 스트라우스 차 버섯)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나버렸다.
“….어쩌다가 이런 무뢰배같은 엘프를….”
“응? 뭐라고?”
“아니다. 아무것도.”
남은 찻물을 입에 털어넣은 볼테우스는 나엘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리 저놈 얼굴이 활짝 편거 보니까 결과가 좋은가봐! 그치?”
“그래. 다행이군.”
“흐헤헤헤! 마법사다, 수계 마법사! 볼테우스, 이번 일 끝나면 화분 하나 사서 작은 나무라도 들여놓자! 마법사가 관리하면 키울 수 있을지도 몰라!”
“나무라…. 없는 돈으로 귀한 물건을 사려 하는군.”
“아니, 그게 있고 없고 차이가 크다니까! 엘프는 인간이 모르는 나무의 효능을 엄청나게 많이 알고있다고! 당장 거무튀튀한 머리 칸에 녹색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나중에 한번 구해보도록 하지.”
“오?”
허락할줄 몰랐다는 듯, 놀란 얼굴로 돌아보는 나엘다.
“너, 너 이새끼 니 입으로 말했다! 분명히 말했어! 신성한 세계수의 살아남은 다섯 가지에 맹세코, 구해온다고 했다!”
그녀는 약속을 재차 강조한 다음, 혹시나 다른 말이 나올까 싶었는지 옥상에서 그대로 뛰어내려 버렸다.
휘이이익- 쿵!
거칠게 착지하는 소리와 함께 나엘다의 환호성과 드워프들의 무용담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좋은 순간은 항상 짧게만 느껴지는 군.’
볼테우스는 어질러진 옥상을 대충 발로 정리한 다음 계단으로 향했다.
좋은 순간이 불현 듯 찾아오는 것처럼, 언젠가 또 오늘같은 날이 오겠지.
일단 오늘은, 항상 부루퉁한 나엘다의 웃는 얼굴을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 볼테우스였다.
****
텅텅텅!
“아아, 여기는 머리칸~ 볼테우스 들리십니까?”
텅텅텅!
[들린다. 애초에 객실에는 열차장의 말을 전달하는 음성 확장기가 설치되어있다.]“아 예. 좋습니다.”
[그럼, 내가 너와 열차 두 칸 이상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어볼까.]나팔처럼 생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볼테우스의 목소리.
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여기서 제일 안전하고 보안 잘 되는 곳이 어딘지를 물었고, 이구동성으로 레일 쉽이라 대답하는 기관사들을 무작정 열차로 끌고 온 참이었다.
“막내야. 아, 이제 막내라고 불러도 되지? 일단 브라스톨네 아저씨 허락은 떨어졌다니까.”
“옙, 누님.”
“그래. 일단 네 얼굴이 상-당히 진실되게 심각해보여서 다 끌고 내려오긴 했는데, 무슨 해괴한 이야기를 하려고 우리를 다 불렀니? 그것도 ‘남들 눈과 귀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에, ‘볼테우스는 교수와 멀리 떨어져있는’ 조건으로?”
“그게….”
“크게 말해. 엔진 소리 때문에 안들린다.”
“그게-!”
나는 도청 방지를 위해 최대 출력으로 틀어놓은 마도엔진 앞에서 어린 목을 가다듬었다.
철컹철컹철컹철컹!
화륵! 화르륵!
땅거미가 지는 정거장. 정비를 핑계로 시끄럽게 울어대는 엔진과 마정석, 불꽃의 소음.
“뭐?”
“마운틴 킹이여, 맙소사!”
“브라스톨이, 우리를?”
소음 속에 드러나는 음모와, 그것을 마주한 이들의 불신. 경악.
콰앙!
“….전부 닥쳐.”
그리고, 분노.
“퉤.”
마도 엔진의 열기로 일렁이는 그림자 속에, 아까와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된 나엘다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막내야.”
“예.”
“막내야?”
“옙, 누님.”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냐?”
기름때 묻은 바닥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스산한 눈으로 노려보는 엘프.
“신중하게 대답해. 여기서 내가 말하는 책임은, 네 말의 진위 여부에 따라 목숨을 걸게 될지도 모르는 레일 쉽 기관사 20명의 목숨만큼의 무게를 가지게 될거야.”
탁. 탁.
나엘다는 작고 끝이 뾰족한 공구로 바닥을 두드리며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손가락이 안으로 약간 굽었군.’
저만한 크기의 공구, 또는 암기를 쥐면 딱 맞아 떨어지게 굽은 손가락. 이 시대의 엘프가 고시생처럼 손가락이 휠 때까지 연필을 쥘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나엘다는 엘프의 손가락이 굽을만큼 투척을 연마했다고 봐도 되겠지.
‘지금 저 드라이버를 두드리고 있는 것은, 내 말이 사실이 아닐 경우 저 드라이버로 이마에 구멍을 내버리겠다는 뜻이고.’
한가지는 확실했다. 나엘다가 뜬금없이 털어놓은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있다는 것.
만난지 하루도 안된 아홉 살짜리의 허황된 얘기인데, 말이 통하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완벽하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제가 보고들은 것들로만 생각했을때는 확실한 것 같아요.”
나는 몇 칸 떨어진 객실에 앉은 볼테우스도 들을 수 있게, 머리칸용 수화기에 입을 바싹 붙인 상태로 다시 한번 말했다.
“브라스톨 가문에서 볼테우스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볼테우스님의 파편이 지난번 토벌에서 사라진 로드의 파편을 흡수했다 생각하고 있으며, 그걸 확보하기 위해 무슨 수라도 쓸 것처럼 보였어요.”
콰앙!
“이런…. 곪아터진 뿌리 마름병 같은 새끼가-!”
담담하게 진실에 나엘다의 노호성이 열차를 울렸다.
[….]수화기 너머의 볼테우스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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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항아리의 촉매를 이용해,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사령술을 걸겠다는 뜻이군. 교수, 지금 그 주머니를 들고있나.]“예. 그래서 볼테우스님과 제가 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거고요.”
“킁! 뭐 그런 재수없는 물건을 들고왔냐? 줘봐. 내가 여기서 멀리 떨어진 쓰레기장에 버리고 올테니까.”
[안 그러는게 좋을거다, 게리. 저쪽도 생각이 있으면 아홉 살짜리에게 아무런 조치도 없이 저걸 들려보내진 않았겠지. 원거리에서 영혼술을 쓰게 만들 정도의 촉매라면, 그게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당연히 원 주인이 알 수 있겠지. 교수는 우리에게 합류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니, 저 물건이 이곳을 떠나면 계획이 들통났다고 여길지도 모른다.]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볼테우스의 목소리에 게리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계획의 배경과 전말, 내게 주어진 임무까지 모두 털어놓은 직후. 나엘다를 포함한 열차의 정비공들은 정비를 위해 열어두었던 열차의 곳곳을 서둘러 마무리하기 시작했으며, 화부를 비롯한 나머지 기관사들은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니미럴! 애초에 왜 여기까지 들어온 우릴 덮치지 않는거야? 도시급 타격대가 몰려오면 아무리 우리라도 버티기 힘들텐데.”
“우리가 그냥 죽어주진 않을테니까. 싸우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니겠어? 원래 요새도시 놈들은 저들 재산은 하늘처럼 여기고 남들 재산은 잠시 맡겨둔 물건처럼 취급하잖아.”
“어…. 레일 쉽에는 나이트 급 전투원이 다섯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있었는데, 나머지 분들은 어디 계시죠?”
“걔들은 임대야. 기사, 마법사는 무료로 열차에 탈 수 있으며 자리가 모자랄때도 언제나 우선권을 가지지만, 대신 이동하는 사이 열차의 보호하는데 한 몫 거드는거지. 도착했을 때 내린 오러나이트 셋, 샤드 나이트 하나는 스트라우그에서 파르다우 요새로 이동하는 놈들이었어. 던전 토벌지에 새 선로를 까는 인부들을 보호하다 귀환하는 놈들이었지.”
“아.”
좋지 않은 소식이다. 우리 전력으로 계산하고 있던 기사급 넷이 전력이 아니었다는 뜻이니까.
[전력이 열세인 우리를 그냥 덮치지 않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요새도시의 문화 때문이겠지. 네 말대로 스트라우그와 파르다우, 양쪽 요새도시가 입을 맞췄다고는 해도 어디에서 소문이 새어나갈지 모르니까. 도시 차원에서 열차를 습격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는 순간, 양쪽 요새도시 뿐만 아니라 이 폴그라드 섬 자체가 고립될거다. 저쪽에선 수습 가능한 상황을 만들고 싶겠지.]“그것도 있을거요. 지금 새 암반지대에 전초기지 올리고 있는데, 우리랑 치고박다가 병력에 손실이 나면 그쪽 보호하러 보낼 인원이 줄어들잖아. 새로 확보한 영역의 파이를 놓고 무지하게 눈치싸움 중일텐데, 지원 병력이 줄어들면 당연히 이권을 덜 받을 수밖에 없겠지. 그게 싫으니까 어떻게든 손해없이 일을 처리하려 하는 것이고.”
“던전 토벌지의 이권 싸움에 밀리지 않으면서도, 그 와중에 우리를 조져서 나눠먹으려 한다라….”
기술부터 문화, 삶의 방식까지 모조리 변했으면서 어째 이런 부분은 2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지.
기관사들 속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파르다우 요새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대충 감이 왔다.
새로운 땅의 이권은 포기할 수 없겠지. 인류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 ‘살 수 있는 공간’이니까. 그래서 양쪽 도시 모두 기둥뿌리가 뽑히도록 투자해서 토벌전을 벌인 것이고.
그렇게 투자를 했으니, 원금 회수를 위해서라도 확보한 땅의 이권을 최대한 많이 가져와야 하는데. 땅 다지고 선로 깔면서 서로 소유권 주장하는 가운데, 눈이 튀어나올만큼 군침도는 먹이가 나타났내?
새 땅도 먹고싶어, 어쩌면 인류 최강의 잠재력+로드파편이 있을 수도 있는 볼테우스의 유색 파편도 가지고 싶어.
양쪽 모두를 포기하기 싫었던 브라스톨 가문은 선로 공사쪽에 지원보내는 병력은 유지하면서, 레일 쉽 쪽은 적게 투자해서 날로 먹을 생각을 하는 중으로 보였다.
“….열차 정비는 언제쯤 끝나죠?”
“20시간은 걸릴거다. 정비쪽 사람들이 오자마자 기본은 해놨는데, 이렇게 빨리 운행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마무리까진 좀 걸리겠지.”
“20시간. 내일 점심즈음 까지라….”
아직 마법사의 연락은 오지 않은 상황. 바르스톨 가문과 영혼술사가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대책을 세울 시간은 부족하지 않아보였다.
“볼테우스님.”
[말해라.]“아까, 영혼술사와 영혼술에 대해 좀 알고계시는 것 같던데.”
양 도시의 정치질이고 가문이고, 당장 급한 것은 볼테우스를 노리는 적들의 손길.
[샤드 나이트로 살다보면 알 수밖에 없지. 나도 도시 밖에 따로 아는 영혼술사가 몇 명 있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만나야 하기도 하니.]“그럼, 이게 무슨 주문을 뜻하는지 알아보시겠습니까? 어…. ‘영혼 항아리를 촉매로 발동하고, 대상의 의식세계에 균열을 만들어, 파편의 기억 탐-’ 이라고 적혀있었는데-”
[파편의 기억 탐식을 자극. 알고있지. 보편적이고 악랄한 사령술이다. 샤드 나이트를 공격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마법이지.]다행히, 멀리 갈 것도 없이 볼테우스가 해당 마법을 알고 있었다.
“어떤 마법입니까?”
[써있는 그대로다. 파편의 기억 탐식을 자극해서 샤드 나이트가 파편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기억 탐식? 파편을 감당 못해?
내가 대답이 없자 수화기 너머에서 볼테우스의 낮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파편이 무엇인지 알고있나.]“예. 죽은 자의 영혼이 담긴 결정같은거라고….”
[그렇지. 따라서 파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영혼을 샤드 나이트 본인의 영혼에 기워넣는 행위와 같다.]볼테우스의 목소리에 망설임이 묻어났다.
[샤드 나이트는 그런 식으로, 파편을 통해 과거의 영혼으로부터 계승된 힘을 사용하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가 영혼에 섞어넣은 파편은, 원래대로라면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악해져 있는 존재들이지.] [그들은, 자신의 기억과 경험, 능력을 빌려주는 대가로 샤드 나이트의 기억을 요구한다.]“기억….이요?”
[그래. 기억. 일종의 거래와 같지. 우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지식과 경험을 손에 넣지만, 파편 속의 악한 영혼은 아직 그들과 같이 악에 받히지 않은 인간의 삶, 그 일부를 완전히 소유하게 된다. 그것을 ‘파편의 기억 탐식’이라 표현하지.]‘그렇구나.’
파편이 데이터 소울이라는 사실에 입각해보면,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파편은 대부분 오염된 데이터 소울이고, 그들은 반복되는 고통과 죽음 끝에 무너져버린 사람들이니까.
굶주린 자가 빵에 달려들 듯, 나락에 떨어져버린 그들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데이터 소울의 ‘살아있는 기억’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깐만.
‘그렇다면, 파편을 모아서 힘을 축적한다는 것은….’
오싹!
“볼….테우스님? 혹시, 당신은 어떤 기억을 대가로 줬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모른다.]제기랄.
[선택권은 파편에게 있지. 그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힘과 능력만큼, 그들은 입맛에 맞는 기억을 가져간다. 그게 어떤 기억인지, 내게서 무엇을 가져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그래서 오러와 샤드는 양립할 수 없다. 오러는 독선에 가깝게 쌓아올린 자아의 총아. 스스로의 일부를 바쳐 힘을 얻은 샤드 나이트의 구멍난 영혼으로는 오러의 힘에 도달할 수 없지. 반대로, 스스로를 완전히 굳혀버린 오러나이트 또한 샤드의 힘을 얻을 수 없다. 그들의 자아는 일부를 내어주는게 불가능한 수준으로 굳어버렸으니까.]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볼테우스의 담담한 이야기.
그가 정신 수양을 그렇게나 강조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대가 없는 힘은 없다. 우리가 오러 나이트를 혐오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중심적이라 여기기 때문이지.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대가를 치르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보듬어 안을 힘을 얻을 수 있는데도, 그들은 자기 자신만큼은 절대 다치지 않는 방향을 택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러를 손에쥐고 기사도를 입에 담는 이들을 혐오한다.]샤드 나이트는, 강해질수록 스스로의 일부를 깎아내게 되니까.
“그렇다면, 파편의 기억 탐식을 자극한다는 것은….”
[추가적으로 기억을 잃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폐인이 되며. 더러는, 아예 존재 자체를 해당 파편의 영혼에게 먹히기도 한다.] [수양이 부족한 샤드 나이트가 능력 이상의 파편을 흡수할 경우, 굳이 영혼술사의 수작 없이도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지.]영혼에 섞여든 다른 영혼이, 정당하게 교환한 기억을 넘어 다른 기억을 탐내기 시작한다.
오류에 물든 데이터 소울. 타락한 영혼이 아직 월드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의 몸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
악의만 가득한 영혼이 샤드 나이트의 힘과 몸을 가지게 되면 무슨 짓을 벌일까?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보통은 그렇게까지 되기 전에 죽여주는 것이 서로를 위한 예의다.]나는, 너무나 익숙한 ‘황무지식 예의’를 입에 담는 볼테우스의 목소리에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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