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19
Chapter. 18. Railed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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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으….”
“볼테우스님!”
“볼테우스! 또 이것저것 잊어버린 것 아니지? 나 좀 봐봐. 내 이름 뭐야? 얘는? 여기는 어딘지 알겠어?”
“으으으음….”
볼테우스는 금방 일어났다. 그리고,
“죽을 죄를 지었다.”
나엘다에게 붙들려 꿰매지고있는 내 모습에 더욱 암울한 얼굴이 되었다.
“아 뭐, 그쪽도 몰라서 그랬고, 나도 샤드 나이트가 정신적 충격에 약한 걸 몰랐으니까- 아얏!”
“엄살은. 그 포션은 마취 성분도 있는 엄청 비싼거 거든?”
“제기랄, 그래도 살을 꿰매는 느낌은 있잖아요! 아홉 살짜리가 자기 눈 밑에 바늘이 들어오는걸 보고도 가만히 있길 바라는겁니까?”
“꼬우면 아홉 살짜리처럼 행동하던가? 그럼 애 취급 해줄테니까.”
자책하는 볼테우스와 뻔뻔한 나엘다. 기관사들까지 전부 모여있는 것을 보니, 볼테우스가 말했던 것처럼 열차의 정비는 벌써 다 끝낸 모양이었다.
“흉터는 좀 남겠지만 이 정도면 금방 아물거야. 볼테우스, 너도 꽤나 큰 충격을 받았으니까 그렇게 울상 짓지 말고.”
“그럴 순 없다. 상처가 아문다 하여 상처를 입은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샤드 나이트에게 있어 기억이란 곧 수명과 같다. 교수는 샤드 나이트를 지망하고 있었으니, 소년 시절 내게 고문당한 기억은 언젠가 그의 정신을 잡아먹을 큰 화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지.”
어…. 저렇게까지 미안해하니까 내가 좀 그렇잖아. 애초에 겉보기에만 크게 다칠 수 있는 각도로 얼굴을 들이 밀었으니까. 볼테우스 저 인간이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기절할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거든.
“저…. 볼테우스님? 뭣 좀 물어봐도 됩니까?”
“뭐든지.”
딱-
나엘다가 바늘에 꿴 그녀의 머리카락을 물어 끊는 사이, 나는 풀이죽은 볼테우스에게 물었다.
“파편과 샤드 나이트의 거래. 그거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겁니까? 평소에도 샤드 나이트는 정신 수양이 중요하다고 하시고, 아까 보니까 크게 동요한 것만으로 전투 불능이 되어 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샤드 나이트 그거 하자 있는 직업 아니냐?’ 라는 뉘앙스의 질문에 볼테우스는 진지하게 답했다.
“….그래. 그러고보니 네게 알려줘야 할 것들이 많군.”
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볼테우스의 손이 그의 품속 깊숙한 곳을 뒤적거렸다.
밖으로 나온 그의 손에는, 나엘다가 보여줬던 것과 비슷한 작은 상자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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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칸에서 했던 것처럼 손을 대봐라.”
후우웅-
“….정말이었군. 혹여, 내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했는데.”
“어…. 이게 활성화 된겁니까?”
“그래. 지금 손 끝에 다른 감각이 느껴지나? 머리가 좀 어지럽다거나. 아니면 지금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다거나?”
“아뇨? 그냥 손만 가져다 댔을 뿐인데.”
“….좋다. 이번에는 이쪽으로 손을 옮겨 보아라.”
“옙.”
“절대 손대지 말고, 결정 주변의 안개를 훑어낸다는 느낌으로 손을 흔들어-”
번쩍!
까드드드드득!!
“우와앗!”
“물러나! 당장!”
근처로 손을 옮기기가 무섭게 빛을 발하더니, 내 손끝을 향해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라나는 결정.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나엘다가 재빨리 잡아당겨준 덕분이지, 아니었으면 지금쯤 저 투명한 수정에 손바닥이 꿰뚫렸을 것이다.
휘우~
“아가, 너 인기 많다?”
“방금 달려드는거 못보셨습니까? 죽일 기세던데?”
“그만큼 격렬하게 너를 원하고 있다는 뜻이지. 안그래 볼테우스? 전문가의 소견은 어때?”
“같은 생각이다. 이건…. 정말 상상 이상이로군.”
볼테우스는 원래 크기로 쪼그라들어 바닥에 떨어진 파편을 상자에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진 ‘새벽의 조각’. 그리고 영혼술사의 검증을 마쳤으나 내게 적합하지 않아 소유하고만 있던 무색 파편 둘. 각각 ‘약한 종아리 근력’과 ‘미약한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던 무색 파편도 한결같이 교수에게 반응했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이런 수준의 재능은 그 어떤 도시에서도 보고된 적이 없어.”
“재능….입니까?”
“그래. 재능. 서로 병합되지 않는 각각의 파편 세 개가 모두 반응했으니, 이론상 너는 최소한 세 개의 유색 파편에 대한 적합성을 지닌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 이 무색 파편들을 병합할 유색 파편이 존재할테니 말이다.”
‘….이상한데?’
재능. 재능이라. 상태창에 등록된 내 특성 어디에도 ‘기적에 가까운 샤드 나이트 재능’ 같은 것은 적혀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인류 역사상 한번도 기록된적 없을 정도의 재능이라니.
물론 재능이 있는게 나쁜일은 아니지만, 하필 그 대상이 ‘샤드 나이트’ 재능이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도 그럴게, 샤드 나이트는 힘에 대한 리스크가 상당한 직업군이잖아?
특별한 힘을 가진 유색 파편과 일반적인 힘을 가진 무색 파편. 두 종류의 공통점은, 적합한 샤드 나이트에게서 힘을 대가로 기억을 가져간다는 것.
볼테우스도 나와 같은 걱정을 하는지, 샤드 나이트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얼굴이 마냥 편해보이진 않았다.
“마법사나 오러나이트와 달리, 샤드 나이트의 재능이란 일종의…. 권리다. 네가 스스로를 남들보다 더 많이 팔 수 있는 권리. 마냥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 능력이지.”
“그럼, 압도적인 재능이라는 것은….”
“네가 더 많은 유혹을 직면할 것이라는 뜻이다. 더 많은 힘. 더 많은 능력. 더 많은 것을 이룩하기위해 스스로를 포기하는 유혹에 빠지는 것.”
달칵. 달칵.
“방금 너에게 적합하다 확인된 이 두 개의 샤드를 넘겨주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다.”
“….기억을 잃을까봐요?”
“정확히는, 어린아이는 중요한 기억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지.”
볼테우스는 그의 품에서 꺼낸 상자 두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파편이 어떤 기억을 가져가는지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진행중이지. 어느것하나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한가지 공통점 정도는 있다.”
“뭔데요?”
“그들이 가져가는게 모두 ‘좋은 기억’들 뿐이라는 것이지.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하나같이 좋은 순간의 기억들이다.”
볼테우스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지만,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하늘을 보는 것이 좋았지만, 어째서 의자를 가져갈 때마다 자연스래 두 개째 의자를 들어올렸다 어색하게 내려놓곤 했다.
그 어색함의 자리에는 색이 다른 기억이 자리잡았다. 거친 붓으로 그린 듯 흐릿하지만 강렬한 기억. 쨍한 금속음과 피 냄새. 그것과 함께 주어진 배우지도 않은 검술, 그리고 강렬한 고통의 순간.
“….나도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어렴풋이 어떤 순간을 잃어버렸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지.”
“그럼, 파편을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나빠지지. 그래서 너의 재능을 단순한 축복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파편을 흡수할수록 좋은 순간의 기억들은 사라져간다.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껍데기만 남아, 스스로의 고통과 얼굴도 모를 다른 이의 고통이 엉겨붙은 함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것이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괴물이 된다. 오직 악의로 가득차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괴물이.”
샤드 나이트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고 한다.
볼테우스의 가라앉은 목소리와 무거운 눈빛은, 지금 내게 해주는 이야기가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와도 같기 때문일 것이다.
“볼테우스님은 지금 어느정도 선에 와 있는 것 같습니까?”
“모른다. 말했지만,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으므로.”
“동요해서 막 기절하고 헛소리 하는거, 샤드 나이트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에요?”
“흔하지는…. 않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볼테우스가 그가 말한 괴물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오호라. 이 새끼…. 그런 무저갱이나 다름없는 직업군으로 길에서 만난 아홉 살짜리를 끌어들이려 했겠다?’
나엘다가 말해준 그의 이야기. 이미 어느정도 각오를 한 것과 달리 볼테우스는 레일 쉽 사람들의 생존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상태와 레일 쉽,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재능충 소년을 버무리면….
“나는, 당신의 대체제 역할로 채용된겁니까?”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나 아까운 재능이라 생각했다.”
“볼테우스님…. 당신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구나?”
이런 결론이 나온다.
볼테우스는 레일 쉽 유일의 기사급 전투원. 그가 없으면 레일 쉽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온 암살자들에게 피떡이 될 것이 자명했다.
아니, 암살자까지 갈 것도 없이 그가 파편에 잡아먹히는 순간 끝난다. 괴물이 된 그의 첫 번째 표적이 될 것은 볼테우스와 가장 가까운 레일 쉽 사람들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
그래서 볼테우스는 정거장에 알짱거리던 소년을 레일 쉽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샤드나이트로서의 감각이 소년의 재능을 알려줬으니까. 소년에게 그와 같은 끔찍한 미래가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그의 사후에 레일 쉽을 지키게 하기위해.
‘….진짜 위태로운 상태로군.’
그의 선한 성격이 거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볼테우스가 지금 꽤나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 레일 쉽을 노리는 손길은 갈수록 노골적으로 변하는 와중에 스스로의 최후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으니 조급해질만도 하지.
따악!
“아얏! 왜 때려요! 내가 틀린 말 했습니까?”
“볼테우스한테 너무 뭐라 그러지 마. 진짜 나쁜놈이면, 이런 얘기를 해줬겠니? 그냥 ‘파편은 몸에 좋은 것이다~’ 하고 와장창 쑤셔 넣었겠지. 그리고 볼테우스 너! 너도 그 자책하는 버릇 좀 어떻게 해! 사람이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마냥 이용할 생각으로 데려온 것도 아니면서.”
“….교수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따악!
“줘 맞을라고 이게. 안 그래도 말 안한 부분 때문에 오해가 생겨서 이꼬라지가 됐는데, 뭘 자꾸 숨기는거야? 그러다 오해가 커지면, 이번엔 반대쪽 눈도 씹창내려고? 그럼 나는 아름답고 비싼 내 머리카락을 또 뽑아서 치료해주고? 언제까지. 원형탈모 엘프로 폴그라드에 소문이 자자해질때까지?”
따악! 따악! 따악! 따악!
한참 분위기가 무거워져가는 가운데, 포션과 치료도구를 정리하고 돌아온 나엘다는 예의 공구로 볼테우스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확실히 볼테우스가 말한 것들 중 틀린 말은 하나도 없어. 네가 샤드 나이트의 길을 선택하면, 너는 작든 크든 너의 행복한 순간을 대가로 지불하게 되는거다. 예정된 불운한 미래를 향해 한발짝 나아가게 되는 것이지.”
“단! 우리 수줍음쟁이 볼테우스가 너한테 말하지 않은게 하나 있거든?”
볼테우스의 등에 업힌 나엘다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바로, 볼테우스가 너를 ‘제대로’ 키울 생각이라는거지. 우리 똑똑이 양반, 이 차이를 아실랑가 몰라?”
“모르겠는데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볼테우스가 너를 그의 대체제로 삼으려는 것은 알고 있잖아. 이 섬 전체가 우릴 적대하니, 적어도 그를 대체하려면 로드 슬레이어 급은 아니라도 꽤나 강한 샤드 나이트가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많은 파편을 흡수해야 할 것이고.”
“그러니까, 그게 사람 망가지는 길이 아니고서야-”
“그리고, 파편과 샤드나이트의 거래에 사용되는 화폐는 좋은 기억, 행복한 기억이고?”
“….어?”
능글능글한 나엘다의 표정과 달리 볼테우스는 짐짓 먼산을 보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당장 너에게 파편을 주지 않겠다고 말했잖아. 너는 고작해야 9년 치 기억을 가지고 있을 뿐이니까.”
“아 예, 뭐….”
“어떤 샤드 나이트를 어려서부터 키우겠다. 당장 파편을 흡수시키지 않고, 잘 키워서 좀 크면 샤드 나이트로 만들겠다. 그건 그 사람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채워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는거야. 충분히 강할 만큼의 파편을 흡수하고도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더 많은 추억을. 나와 함께하는 과거가 고작 구멍 몇 개로 스스로를 잃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굳건한 기둥이 되도록 하겠다.”
“아가. 샤드나이트에게 있어서 ‘종자’라는 존재는 그런 의미를 가지는거야. 혈육처럼, 어쩌면 혈육보다 더 귀하게 보살피는 존재. 언젠가 예정된 상실의 순간이 와도 흔들리지 않도록 환한 삶으로 가득 채워줘야 할 존재. 나의 의무를 대신 짊어질 아이인 만큼, 더욱 강렬한 삶의 순간을. 캬~ 너무 낭만적이지 않니? 사실 샤드나이트보다 더 드문 게 샤드나이트의 종자란다?”
“….나엘다.”
“아 왜! 너 성격에 이런 건 죽어도 말 못하잖아! 그저- ‘내가 너를 예정된 파멸로 이끌었다.’ 같은 우울한 말이나 할 줄 알지, ‘그 대신 너를 행복한 교수 브라스톨로 만들어주겠다.’ 같은 말은 못하잖아? 내 말 틀렸어? 아니면, 직접 말해볼래?”
“볼테우스님. 그런 거였습니까?”
“으으음….”
볼테우스는 아예 등을 돌려앉았지만, 언뜻 보이는 그의 손등에는 땀이 흥건할 정도였다.
무뚝뚝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어쩌면, 기억과 함께 그의 원래 성격이 사라져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더 말해줄까? 너, 그대로 브라스톨에 있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음~ 아니, 죽었다. 무조건 죽었을거야!”
뭐? 갑자기?
“왜요?”
“그쪽이라고 샤드나이트가 없는게 아니니까. 머지않아 네 재능을 눈치챘겠지?”
“그렇….겠죠?”
알맹이가 바뀐건 당장 어제니까. 길에서 나를 만난 볼테우스가 묘한 느낌을 받은 것처럼 다른 샤드나이트들도 언젠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럼, 지금껏 길가의 개보다도 못한 취급을 하던 사생아가 말도 안되는 재능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아이를 가장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이 뭐~게? 하나. 가문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키워서, 지상 최강의 교수 브라스톨로 만든다. 둘, 그냥 본토의 대가문에 보내서 그쪽에 산더미처럼 쌓인 파편 무더기에 던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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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손놓고 있었으면 진짜 죽을뻔했군.
“….두번째로군요.”
“의심할 여지가 없지.”
나엘다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브라스톨 가문에 남아있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한계까지 파편을 흡수하는, 일종의 융화제로 사용됐을 테니까.’
사생아 출신. 홀대했던 과거.
그들은 절대로 내가 강해지는 방향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정말로 강해져서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대신,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나엘다의 말대로, 파편 무더기에 던져버리는 것.
무수한 파편들중 내게 적합한 것이 마구 흡수되어 내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렇게 하나로 녹아들던 파편들이 어느순간 나를 완전히 잡아먹는 순간-
타앙!
빠밤! 가문에 원한을 가진 재능충 위험분자 대신, 그놈의 시체와 무수한 파편이 하나로 뭉친 엄청난 가치의 파편이 탄생했답니다!
파편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딱 하나. 샤드나이트가 그것을 흡수해 하나로 만드는 것 뿐이다. 귀족 가문 입장에서 이런 사용법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니, 원한이 가득할게 분명한 서자를 일회용 파편 용광로로 쓰고 버리는게 당연하지.
“이제 폐쇄적인 것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기관사, 그중에서도 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볼테우스가 손수 외부인을 들여온 이유를 좀 알겠니? 볼테우스의 종자님~?”
“그만. 더는 듣고있기가…. 힘들군. 크흠!”
결국 나엘다의 파상공세에 견디지 못했는지, 얼굴이 시뻘겋게된 볼테우스가 돌아 앉았다.
“….열악한 마도열차의 삶이 그리 즐겁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더욱이, 레일 쉽은 폴그라드 전역에서 배척당하는 상황이고….”
“그래도, 그, 음…. 열차에서의 삶이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광활한 대지를 가로지르는 것은 이 시대의 기관사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고, 등을 맞대고 역경을 넘나든 기관사들이 가족이나 다름없이 느껴지고, 선로마을이라던가, 무른 땅 정거장이나 옛 대륙의 유적을 탐사하는 등 꽤나 흥미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수도….”
직접 소개하려는 듯, 뭔가 횡설수설하며 ‘마도열차에서의 삶과 낭만’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볼테우스.
“할게요.”
“비록 귀족 가문은 배척하지만 일반 시민에게는 어디까지나 선망의 대상이….?”
“한다구요. 그런 삶을 보장하는 대신, 당신의 사후에 레일 쉽을 책임져달라는 말 아닙니까? 끈 떨어진 깡통 열차에 매여서 우리 불우한 기관사 여러분들과 함께 해달라구요?”
“….거부해도 좋다. 네가 수계 마법사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보다 더 좋은 미래가 얼마든지 남아있으니.”
“아니 뭐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리고 당장 바위밖에 없는 이 동네에서 10년이고 100년이고 있어봤자 1위계 마법이라도 쓸 수 있겠습니까? 나가서 수맥을 찾던 쥐꼬리만큼 마나가 뭉쳐있는 곳을 찾아서 쪽 빨아 먹던지 해야 마법을 쓰든가 하지.”
잔뜩 주눅이 든 볼테우스의 얼굴에 불신의 감정이 스쳤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은 안도. 그리고 미안함.
“좋았어! 얘기 끝! 네 입으로 남는다고 했다? 분명히 말했어? 신성한 어머니 나무와 정결한 어쩌고….를 관장하는 엘프 앞에서 맹세했으니까, 지켜라?”
복잡미묘한 볼테우스의 얼굴과 달리, 어느새 그의 등에서 내려와 앉아있던 나엘다의 표정은….
히쭈우우욱!
얼굴 가죽이 좀 부족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꼬리가 귀에 닿도록 웃고 있었다.
“막내야, 너 어디서 일 배울래? 화부? 엔지니어?”
“볼테우스님이랑 열차 지키는쪽으로 가는거 아니었습니까?”
“그건 여기 애들 전부 다 하는거고. 볼테우스도 투탄(投炭)작업 하거든? 넌 뭐할래? 엔지니어 할 생각은 없니? 몸이 작아서 기관부 아래에 처박아두고 유지보수 시키면 딱일 것 같은데!”
해, 행복한 삶은? 고통스러운 미래를 견뎌낼 행복한 기억은 어디로가고, 소아 노동의 참혹한 현장이냐?
“보, 볼테우스님?”
“….고된 노동 끝에 물 한잔. 시원한 바람 한 조각. 스스로의 기준이 낮아지면,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 새끼가?
푸쉬이이익!
엔진에 열이 오르고, 정비를 마친 열차가 끓어오른 증기를 토해내며 언제든 달려나갈 준비를 마쳤음을 보였다.
“브라스톨에 출발 신고해라. 두 시간 정도 후에, 해가 뜨면 출발한다고.”
“알겠수다.”
“그러고 막내는…. 미리 얘기했던 것처럼, 그쪽에서 연락오면 최대한 시간 좀 끌어주고.”
“어…. 이대로 가요?”
“그럼 가야지. 아니면, 뭐 따로 할 거 있어?”
“예.”
이놈들은 바보인가? 적진에서 도망치는데, 그냥 간다고?
“얼마나.”
“많이?”
“오래걸려?”
“출발시간까진 될 듯?”
끼이익-
나엘다는 발로 열차 문을 밀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후딱 갔다와라. 이 난리를 피운 이상, 늦어도 두고가긴 좀 그러니까.”
“옙.”
후다닥!
나엘다가 그냥 콱 묶어서 보관하고 싶다는 듯 노려보길래, 마음 바뀌기전에 재빨리 뛰어나왔다.
“두 시간, 두 시간이라….”
탁탁탁탁-
정거장을 가로질러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급해졌다.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아홉 살 소년의 짧은 다리로는 한없이 커다란 도시.
철컹철컹!
“아저씨! 역무원 아저씨!”
“크어억- 음?! 아, 도련님? 아니 이 새벽에 어딜…. 누, 눈은 왜 그러십니까! 설마 기관사놈들이-”
“됐으니까 문 좀 열어주세요! 나가게!”
“예, 옙!”
끼기이익-
“혹시 신전에 가는 길은 알고 계십니까? 모르시면 제가 안내해드릴까요?”
“신전이라….”
잠시 신전에서 가능한 일들이 이것저것 떠올랐지만, 두 시간이라는 시간 제한을 생각하면 턱도 없었다.
그것보다 빠르고, 확실한게 있는데 뭐.
“역무원 아저씨.”
“예.”
나는 졸린 눈의 역무원에게, 아직 한쪽 남은 소년의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혹시, 이 도시에 유류고가 어딨는지 알아요? 석탄 저장고라던가, 연료 취급하는 곳이요!”
나는 순수했다. 정말로.
레일 쉽이라는 테러범의 일당이 된 사람으로서, 정말 순수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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