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2
Chapter.4 눈꺼풀(14)
***
교수는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옆에 있던 바위를 던지고, 나무를 뽑고, 뽑아낸 나무를 발로 차 한 방에 불쏘시개 더미로 만들어버렸으며,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도적들의 얼굴에서는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커다란 나무를 발로 찬 교수의 발이 절반 정도 사라져 쩔뚝이는 것을 봤을 때 그들의 얼굴에 약간의 희망이 떠올랐지만, 그 사라진 부분에서 꿈틀거리며 새 살이 돋아나는 것을 보자 그들은 바지를 축축하게 적시며 신을 찾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그분이다…. 말하는… 말하는 뮤트야….”
“전능하신 로-하람이시여 빛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전능하신 로-하람이시여 빛으로 나를 보호하으으으…..”
“어흐흐흑! 으흐흑! 으허헝!”
교수는 도망갈 생각조차 못 하고 벌벌 떨고 있는 그들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절뚝, 절뚝, 차박, 차박.
“커, 커어어억….”
도적 중 한 명은 다리를 절던 교수가 어느새 멀쩡하게 걷는 걸 보고 기절하고 말았다.
“이봐.”
“으으으으….”
“예,예! 무무무무슨….?”
그들은 교수가 코앞에 다가오고 나서야 얼마나 몸집이 큰지 체감하게 되었다. 이런걸 사람이라고 생각하다니. 이런 것을 낫 같은 것으로 위협하다니!
교수는 시뻘개진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어렸을 때 그런 얘기 못 들었어? 마법사를 화나게 했다가 개구리로 변했다거나, 다진 고기로 변했다거나 하는 얘기 같은 거?”
– 간장게이바 : 곧 죽어도 지가 마법사래요.
– 하이웨이나초맨 : 중간에 하나가 이상한 것 같은데.
– takealook : 생각해보니까 교수도 이제 마법사잖음. 마법사니까 이상한 게 정상아냐?
“주, 주 죽을! 죽을죄를!!”
“브그르르륵!”
코앞까지 다가온 교수가 두건을 풀어 잔뜩 찌푸린 얼굴을 들이밀자, 그 흉신악살같은 모습에 또 한 명이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렸다. 남은 것은 가장 앞에서 다른 두 명을 이끌던 야비하게 생긴 도적 하나. 대충 겁이나 주고 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아까 이 녀석이 했던 말이 좀 거슬렸다.
“어이.”
“예, 옙! 말씀하십시오! 위대하신 존재여!”
“아까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그놈’이 누구냐? 위대한 존재는 또 누구고?”
이런 촌 무지렁이 도적이지만, 40일 가까이 백작의 저택 지하에 있던 나보다는 바깥의 정세에 대해서 밝을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정보를 좀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듯하자, 도적의 얼굴에 비굴한 웃음이 떠올랐다.
“헤······. 저를 시험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별자님. 비록 얼마 안 됐지만, 저도 최근에 구원 교단에 귀의했으니까요. 헤헤헤….”
“구원…. 교단?”
‘이거······. 느낌이 좀 쎄한데?’
구원 교단. 듣도 보도 못한 교단이다. 난세에 사이비가 판치는 거야 흔한일이긴 하지만…..
‘말하는 뮤트. 이건 에데오르나에 대한 얘기가 틀림없다. 말하는 뮤트를 [선별자]라고 부르는 교단이라….’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그냥 내버려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암 덩어리가 되어 굴러올 사건의 냄새가.
이럴 때는 역시-
“흠. 훌륭한 자세이나, 나를 설득하기에는 부족하구나. 내 너를 시험하겠다. 우리 교단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약 팔면서 맞장구 쳐주는 게 최고지. 저렇게 잔뜩 겁먹은 상태이니 거짓말을 할 걱정도 없고.
도적 사내는 벌벌떨면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이게 자신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는지, 손짓 발짓을 다 섞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 저희 구원 교단은 위대하신 선지자 안 다투엘라님의 가르침에 따르며, 곧 찾아올 위대한 선별에 앞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구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헤헤.”
“위대한 선별이라…. 혹 그 선별에 관해서도 알고 있느냐?”
“물론 입지요! 선별자 ‘하얀 뮤트’ 께서 부패와 악덕에 물든 왕족의 앞잡이, 그 갑옷 입은 창녀 샤를롯을 완전히 뭉개버리지 않았습니까? 안 다투엘라님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천, 수만의 뮤트 대군이 이 썩어빠진 땅을 휩쓸 것이며, 우리의 사명은 그분들의 뜻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그 뜻을 방해하는 이를 처단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띠링-!
[정보 업데이트 – 수상한 집단 : ‘구원 교단’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 키워드 : 구원 교단, 선별자, 뮤트 숭배, 사보타주]“그래…. 그렇구나.”
“헤헤헤…. 선별자님. 저도 믿음을 증명하였으니, 언젠가 선별자님처럼 강한 힘을 받을 수 있겠지요?”
“흐음….”
교수는 생각에 빠졌다.
‘교단 강령 자체는 단순한 것으로 보여. 평민, 하층민들의 귀족에 대한 반발심을 이용하여, 그 불만을 해소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초월자에 대한 숭배 사상을 심는 것. 난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이비종교의 모습 그대로야. 문제가 있다면 그 숭배 대상이 뮤트라는 것인데······.’
도적 사내의 말을 들어보니 단순히 믿는 것을 떠나 뮤트를 위해 테러도 불사할 기세. 단순하고, 단순한 만큼 위험한 놈들이다.
‘몰루딕 캐슬, 펠라스에 이어 투란까지 함락되면서 뮤트에 대한 공포가 전에 없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증거야. 에데오르나의 명성이 도시전설처럼 퍼졌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뮤트를 숭배하는 집단이 생긴다? 중간에 과정이 너무 생략된거 아냐?’
이상한 일이다. 지금까지 여러 랭커의 월드3 플레이를 봤지만, 이런 기이한 이벤트는 처음이다.
– professor : 야, 혹시 월드3에서 구원 교단 같은 거 본 사람 있냐?
– Jokass : 금시초문이다. 애초에 월드3은 진행이 좀 단순한 편 아니었나? 랭커들 클리어 영상 보니까 기껏해야 귀족들 뺨이나 좀 후려갈기다 흑마법사 잡고, 뮤트 잡고 하다보면 끝나는 것 같던데.
– 스피드 웨건 : 커뮤니티에 지금 저 남자가 말하는 사이비 집단 같은 것을 봤다는 글은 있지만, 뮤트를 숭배하는 집단은 단 한 번도 발견된 적 없음. 네가 최초임.
“최초라니. 별로 기분 좋은 단어는 아닌데.”
시청자야 늘어나겠지. 하지만 최초라는 것은 커뮤니티에 참고할만한 정보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지하조직의 특성상, 아무리 쳐내도 잡초처럼 또 어디선가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본단을 잘 찾아서 조지는 게 중요한데, 아무 정보도 없다니. 골치 아프군.
‘그나마 지금은 초창기로 보이니, 최대한 뿌리를 뽑아봐야지…’
교수는 상태창에 [구원 교단. 죽인다.] 라고 짧게 메모해둔 다음,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도적 사내에게 말했다.
“….인간. 이름을 말하라.”
“옙! 제스커라고 합니다! 노다르 마을에서 가죽을 가공해 먹고살았으며….”
“잡설은 됐다. 네 너의 신실함을 어여삐 여겨, 그 안…. 안다테?”
“안 다투엘라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안 다투엘라님께 너의 이름을 올리려 하는데, 인간들의 방해로 무리와 떨어져 어디서 모이기로 했는지를 듣지 못했구나. 혹시 알고 있는 게 있느냐?”
“아아아, 애석하게도 저는 구원 교단에서 높은 신분을 받지 못하여 그것까지는 잘….”
으음. 역시 이런 일개 도적한테서 급이 높은 정보를 얻어내는 건 무리인가. 그리고 신분이라니. 교인들 내부에 계급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규모가 클 수도….
“아, 아! 선별자님! 한가지 아는 게 있습니다! 있어요!”
자신의 신분 상승이 걸려있다고 생각했는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던 제스커가 별안간 비명처럼 외쳤다.
“말! 주인 없는 말들의 고향이라고 했습니다! 분명 제가 마을에서 세례받을 때 상급 신도님 옆에 있던 종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띠링-!
‘예스!’
GG에서는 이런 식으로 어떤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많이 찾아내면, 시스템에서 하나로 뭉쳐서 정리를 해주기도 한다. 당연히 ‘우리집 고양이좀 찾아주세요.’, ‘우리 아이가 먹을 사과 900개만 구해주세요’ 같은 쓰잘대기없는 부탁에는 통용되지 않는 시스템. 이 구원 교단이라는 녀석이 제법 비중이 있는 놈들이라는 반증이다.
‘이 이상 털어도 정보가 더 나올 것 같진 않고. 이쯤 해둘까?’
이런 작업은, 마무리를 제대로 해야 탈이 나지 않는 법. 교수는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도적에게 다가갔다.
“인간 제커스. 고개를 들라.”
“예, 예! 선별자님!”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준 것이 너무나 기쁘다는 듯 제커스는 환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내 너의 신실함을 어여삐 여겨 중요한 임무를 내리겠다. 제대로 수행한다면, 너도 언젠가 나와 같이 선별 받은 자가 되어 맨손으로 바위를 으깨고, 사슴처럼 대지를 달릴 수 있을 터!”
“오오, 오오오오!!!”
이 녀석을 그냥 대충 놔줬다간 오늘 겪은 ‘종교적 경험’을 다른 신자들과 나누다 내가 가짜라는 것이 들통 날 수도 있으니, 어디 멀리 보내서 바쁘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앞으로 할 일에 도움이 되는 쪽이 좋겠지.’
“제커스, 너는 도시로 가거라.”
“도시로…. 어디를 말씀하십니까? 뮤트님들이 모여계시는 투란으로 갈깝쇼?”
뭔 소리 하는 거야 얘는. 자살 지망인가.
“아니. 너는 이 길로 곧장 토브룬으로 간다. 가족들은 옆에 쓰러진 두 머저리에게 잠시 맡기고, 최대한 빨리. 숨이 차 가슴이 터져버릴 만큼 빨리 도시로 가서, 소문을 내라. 최대한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소문? 어떤 소문 말씀이십니까?”
어떤 즐거운 상상을 하는지, 교수의 입가에 악동 같은 미소가 맺혔다.
“마법사. 마법사들에게. 말 하는 뮤트. 붉은 뮤트가 너희를 찾아가노라고.”
황무지에서 원한을 오랫동안 머리에 담아두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그냥 묻어두고 사는 건 또 멍청한 짓이지.’
원한을 잊어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갚는 것이다. 속이 뻥 뚫릴 때까지 후련하게.
아이작의 냉막한 미소를 떠올리는 교수의 눈이 위험한 빛으로 이글거렸다.
***
“흐아아암~”
그렇게 제커스를 떠나보내고, 교수는 책을 뒤적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주문을 줄이는 방법…. 주문을 줄이는 방법….”
마법사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끄럽다고 포기해버리기엔 너무 매혹적인 힘이었으니까.
– 간장게이바 : 그렇게 쪽팔렸어? 아이참, 이것도 다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니깐?
– takealook : 방송인이라는 것은 결국 엔터테이너 아니냐? 너 아까 끝내주게 웃겼다고. 잘하고 있는 거 맞다니까?
“닥쳐!”
절대 싫다. 아까 같은 꼴을 당하는 것은. 주문을 줄이는 방법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이작이 처음에 나를 잠들게 한 마법. 그리고 로만이 사마귀 같은 뮤트를 상대할 때 썼던 마법. 둘 다 저렇게 긴 주문을 사용하지 않았어.’
아이작은 슬립, 로만은 도르만 발다니스의 파고드는 물결. 두 주문 다 별도의 준비과정 없이 시동어 만으로 발동했었다.
로만의 시동어를 보면 딱히 오리진 스펠인 것도 아니야. 분명…. 분명 저 쪽팔리는 주문을 생략하고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팔락
“있다!”
발다니스님! 감사합니다! 역시 수계 마법의 대종사야!
교수는 누가 훔쳐가기라도 할 듯 서둘러 책장을 읽어나갔다.
[….해서, 주문은 이미지를 강화하지만, 시전 속도에는 극악한 영향을 미친다. 주문을 듣고 상대가 마법의 종류를 알아차리는 것도 매우 중요한 단점이다. 마법전에 있어 이런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개발되었는데,혹여 마법에 익숙하지도 않은 어리숙한 마법사가 단순히 주문을 외우는 것이 외부의 시선에 거슬린다 하여 이 장을 학습하고 있다면, 당장 돌아가라.]
“으익-”
어디서 보고있나?
교수는 괜히 찔려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법사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의 법칙을 어그러트리는 자. 그 정도 자존감도 없다면 마법의 길에 들어설 자격이 없는 것이다. 주문이 부끄럽다? 한 마법사의 깨달음의 정수와도 같은 주문을 비웃는 자가 있다면 그자의 머리통에 가능한 최대의 위력을 가진 마법을 먹여주어라. 마법사적으로 합법이다.]“으음…. 마법사의 세계도 상당히 빡쎄구나.”
어쩐지 마법사들이 죄다 나르시즘에 쩔어있는 자존감 덩어리더라니. 역시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주문 생략이 필요하다고.”
쪽팔린 것도 그렇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전투 중에 마법을 쓰려면 무조건 생략은 필수였다.
전투에 들어가면 필수적으로 사지가 날아가고 내장이 뒤틀리는 나로서는, 전투하는 내내 비명이 입에서 끊이지 않는다. 아프다고. 진짜 죽도록 아픈데 물이 어쩌고~ 하고 중얼거릴 틈이나 있을까. 입 벌리면 아아악! 소리 지르기 바쁘지. 정신이 멀쩡할 때 최대한 간결하고 빠르게 주문을 시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 앞에 상기한 무모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지금부터 주문을 줄이는 방법에 관해 설명하겠다.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냥 주문을 많이 쓰는 것이다.]
“엥?”
뭐지. 이건 내가 생각한 그런 게 아닌데. 이건…. 그런 느낌이잖아. 국영수를 중심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라는거.
[트레이싱 스펠이란 결국 남의 심상을 빌려온 것. 끊임없이 주문을 사용하여 그 심상을 스스로의 영혼에 각인하는데 성공한다면, 그 순간부터 대상 주문은 본인의 오리진 스펠과 다를 것이 없어 주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이 경우 주문을 생략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위계와 다른 깨달음에 가까워질 수도 있으니, 무조건 주문은 많이 쓰는 것이 좋다.]음. 첫 번째 방법은 그거다.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느낌.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어. 더 빠르고 쉬운 방법을 원하는 거지.
[두 번째는, 수인(手印)을 사용하는 것이다. 학파마다 여러 가지 방식이 있지만, 나의 경우 각 손가락과 그 관절에 의미를 부여해 긴 술식을 하나의 형태로 완성해 단숨에 의미를 표현하는 것을 애용하였으며, 가르쳐왔다.]‘이거다. 수인법.’
커뮤니티에서 마법사 플레이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규모가 큰 마법은 주문을 외워 썼지만, 자잘한 것들은 전부 시동어 만으로 시전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영상에서도 이상하게 손을 꼬았던 것 같았다.
[마법의 사용에 있어 이미지는 구체적일수록 좋지만, 익숙한 마법이라면 큰 맥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시전이 가능하다. 수인법의 경우, 그 맥락의 각 손가락과 손가락의 마디에 각인 시킴으로써 마법의 구상을 모듈화 시키는 것이다.예를 들어보지.
검지를 들어라. 검지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지?]
교수는 책을 들고 있던 손으로 검지를 들어보았다.
“검지? 음…. 가리키다?”
[대부분의 사람이 검지에서는 ‘지시’와 연관된 것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검지는 지시를 상징하며, 마디를 접는 것으로 그 단계를 나누는 것이다. 검지를 곧게 펴면 지시. 첫 번째 마디에서 접으면 명령. 모두 접으면 계약. 이런 식으로 각 손가락에 의미를 나누어 부여하여, 떠올리지 않아도 의미를 부여한 손가락을 조합하는 것으로 그 모든 이미지를 완성하는 것이다.]“오오, 뭔가 있어 보이는데?”
물론 그걸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하나도 모르겠다. 일단 주문을 말이 아니라 손으로 표현한다는 소리 같은데….
[각 손가락에 들어갈 의미는 본인이 정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엄지에서 권위를 느끼지만, 어떤 이는 왜소함을 느끼기 때문. 수인식을 사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손가락과 마디에 대응하는 이미지를 삽입하는 것.이것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저 죽어라고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것 뿐.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를 잘 선별하여 하루에 수 천, 수 만번씩 손가락을 보며 상기하는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자가 마탑에 있다면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2,3위계 마법사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모두 이 과정에 있는 수련마법사들이다.]
탁!
교수는 책을 접었다.
“뭔가 했더니, 코딩이네.”
한참 길게 설명했지만, 결국 손가락을 보자마자 원하는 단어가 떠오를 때까지 주입식으로 이미지를 형성하고, 사용하고자 하는 주문에 맞게 그 단어를 조합하라는 뜻이 아닌가?
교수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았다. 정말 뇌에 새기 듯 이미지를 각인해야 하니 들어갈 단어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이다.
“결국 자주 사용할 주문을 배운 다음에 쓸 수 있는 거잖아….”
– takealook : 원래 교육 과정이라는게 다 순서를 지켜서 배워나가야 하게 만들어진 거거든.
“염병. 어쩔 수 없네. 마법은 천천히 배워나가는 수밖에.”
교수는 들고 있던 책을 짐 속에 잘 갈무리 한 뒤 고개를 들었다. 이 이상 마법을 공부할 시간은 없다. 어느새, 눈앞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한 성벽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법사의 도시 토브룬.”
교수는 머릿속에서 마법에 대한 생각을 잠시 지웠다. 아쉽지만, 여기서 필요한 것은 마법의 힘이 아니니까.
사실 이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이미 여기서 뭘 할지는 정해두었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리드플로우 학파의 마탑은 이 도시의 한가운데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