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23
Chapter. 18. Railed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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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기본 의무 교육이거든? 일단은 너도 14특작대니까.”
“만약 네가 치명적인 함정에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수단까지 막혔을 때, 넌 어떻게 할거냐?”
“뭐. 어차피 뒤질거면 달려들어서 물기라도 하지 않겠어?”
“하아아. 이래서 애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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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죽어 없어진 동료와 나눴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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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것 마저’ 못하는 상황을 얘기하는거다. 마지막의 마지막, 최악의 최악과 맞닥뜨린 경우.”
“주사위를 굴리다보면 스네이크 아이가 뜰때도 있는 법이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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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실패를 앞두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
왜일까.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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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잦아드는 바깥의 총성과, 끓어오르는 비통한 괴성도.
“미안하게 됐다.”
나와 카트레아를 겨누는 역무원장 베다르의 총구도.
“이곳 스테이션에서 아무도 생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질거야.”
“귀족들의 일이란, 언제나 입막음으로 마무리되니까.”
“내 가짜 시체가 들통날 때까지, 난 죽은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겠지.”
그리고,
“가문에서 준비한 저격수들이 사라진 것은, 당신 때문이었군요.”
“….관계자였군?”
“원래대로라면, 볼테우스와 기관사들이 서로를 저토록 고통스럽게 상잔하지 않아도 됐겠지요. 레일 쉽이 손상되지 않기를 바란 브라스톨에서 저격수를 준비했으니까. 역무원들이 공사에 동원됐다는 거짓말도, 그것을 위한 준비가 아니었나요.”
총구를 마주한 카트레아의 차분한 목소리도.
‘경계했다.’
그녀의 애정은 믿었지만, 그녀가 가문의 명령을 따르고 있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았다.
‘충분히 살폈다.’
신장 155cm. 마른 체격. 가사노동으로 단련된 수준의 근육. 오러의 기감, 마법적 개조의 흔적 모두 없음.
그녀에게 배후를 내어준 것은, 만약의 경우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트레아는 평소 그랬던 것처럼 무릎을 굽혀 나를 보듬어 안았으며,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보수의 절반은 일이 다 끝나면 지급될 텐데, 한 장으로 괜찮으신가요?”
“….괜찮아.”
각오를 마친 베다르의 눈은 응어리진 슬픔으로 가득했다.
많은 것을 담은 손끝이 방아쇠 위에 걸렸다.
“내 딸 아이 만큼은, 이 빌어먹을 섬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테니까.”
타아앙-
툭.
데구르르-
총구가 불을 뿜었다.
그리고, 잘린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어째서 저항할 수 없었는가.
분명 평범했어야 할 카트레아는 손가락을 꺾고, 관절과 신경을 누르고, 내가 계획한 모든 수단을 써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는가.
까드드득.
그 답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총구를 떠난 마력탄과 총신, 베다르의 목을 일격에 베어낸 시린 하늘빛 전투 낫.
유색 파편의 빛으로 선명한 무구와, 카트레아의 한쪽 어깨를 뚫고 자라난 결정화된 날개.
“샤드나이트.”
샤드나이트, 카트레아.
현실의 박교수도, 3월드의 성자 교수도 모르는.
오직 4월드에만 존재하는, 내 지식 밖의 산물.
“….언젠가 알려드릴 생각이었지만. 이런 장소, 이런 상황이 아니길 바랬는데.”
나를 내려놓은 카트레아는, 공손히 치맛자락을 들어올리며 인사했다.
“대귀족 브라스톨 가문의 사용인. 본가에서 파편 생산지 폴그라드의 감시자로 파견된, 카트레아입니다.”
“모두…. 거짓말이었나?”
“도련님께는,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요.”
나를 가로막고 정체를 드러내는 이 순간에도, 카트레아의 눈에는 슬픔과 애정이 가득했다.
“9년 전. 막 브라스톨에 들어온 하녀였던 네게 맡겨진 일이 나를 돌보는 것이라고 했다.”
“진실이에요.”
“브라스톨의 본가에서, 식민지인 이곳으로 파견한 감시자라고도 말했지.”
“그것도, 물론.”
“그럼 고작 열 살에 샤드나이트가 되어서, 식민지의 관리인인 델피아드 브라스톨을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건가? 고작 열 살짜리에게 한 영지의 왕이나 다름없는 델피아드 브라스톨의 감시역을 맡긴다고? 이 말도 안되는 사실 어디에 진실이 있지?”
철컥!
카트레아는 나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있었다. 내가 나엘다에게 받은 권총을 뽑아 드는 동안, 카트레아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이미 격발된 탄환을 저런 장병기로 쳐낼 정도의 실력자니까.’
이 따위 권총형 아케인슈터는 위협조차 되지 않겠지.
그래서, 총구를 돌려 내 관자놀이를 겨냥했다.
카트레아의 얼굴에서 만지면 묻어날듯한 슬픔이 느껴졌다.
분명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을텐데, 그녀는 어째서 이렇게 동요하는 것일까. 이 의미없는 협박 앞에서.
“….비켜.”
“지금 가시면, 볼테우스 스트라우그의 폭주에 휘말리실 수도 있어요.
“비키지 않으면 쏘겠다.”
“제가 이 자리에서 도련님을 잃게 되는 일은 없을거에요.”
“도대체 네 목적은 뭐지? 가문의 명령인가? 아니면, 정말 네가 말한 것처럼 나의 생존인가? 혹은 이것도 내가 모를 빌어먹을 세계의 감춰진 무언가였나!”
완벽한 무력감과 함께 깨달았다.
‘처음부터 막을 수 없는 시나리오였어.’
말하자면, 튜토리얼. 이미 내가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일 위에 얹어져, 그것을 지켜보며 깨닫는 것이 나의 역할.
무엇을 깨닫기를 바랬나.
나의 성향과 행동원리를 통해 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예측하는 존재, 시스템은 이 시기의 폴그라드에 나를 데려다 놓으며, 내가 무엇을 깨닫기를 바란 것일까.
지치지도, 싫증나지도 않는 기계지능이 어느 순간부터 [제 계획에 동참하십시오] 라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게된 이유는, 무엇인가.
지끈-
머리가 아팠다. 익숙한 욱씬거림, 한때 피부처럼 달라붙어있던 무력감.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더더욱 뭐라도 해야만 했던 기억들.
나아갈 수 없는 벽 앞에서도 내가 멈추지 않게 하는, 무력했던 과거에 대한 기억들.
“….도련님께서 살아남기위해, 꼭 아셔야 할 것들이 있어요.”
카트레아는 입을 열었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들의 이야기.
오늘에 얽힌 모든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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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조지.
그가 배신한 이유는, 탐욕이었다.
선천적으로 곱추인 그는 다른 레일 쉽 기관사들처럼 갈 곳이 없었으며, 그래서 쫓기는 레일 쉽에서 은퇴할 수 없었다.
그는 평생 ‘그만을 위한 작은 집’을 갈망했으며, 브라스톨 가문은 그에게 시민권을 약속했다.
가주의 직인이 찍힌, 확실한 효력이 있는 그 종이를 조지는 거부할 수 없었다.
“….외부와의 접촉은 전부 경계했어.”
“패밀리어를 통한 흑마법사의 메시지는 마법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요. 흑마법은 대부분 마나를 거의 쓰지 않으니까요.”
영혼술. 내가 잘 모르는 영역.
엔지니어 조지는 그렇게 브라스톨 가문의 협력자가 되었다. 그가 몸을 뉘일 작은 집 한칸, 평생 바랬던 그것을 위해.
은퇴한 레일 쉽 기관사, 역무원장 베다르는 딸이 있었다. 그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 레일 쉽에서 내렸다.
“….협박인가.”
“기관사들은 목숨을 공유한다고 할 정도로 서로를 아껴요. 그가 딸의 목숨을 포기한다면 계획은 레일 쉽에 들통날 것이기 때문에, 가문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그에게 제시된 보수가, 아까 카트레아가 말했던 ‘한 장’ 이었다. 선 보수로 한 장, 완료 보수로 나머지 한 장.
[구 로드릭 행, 대륙간 왕복선 탑승 증명서]카트레아가 목이 잘린 베다르의 품에서 꺼낸 빳빳한 종이는 섬 밖으로 향해는 배의 표였다.
“베다르는 레일 쉽 기관사로서 폴그라드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그는 이런 인간 사육장이 아닌 진짜 인간의 삶을 그의 딸에게 건네줄 기회를, 끝내 거부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베다르는 옛 동료를 배신했다. 동료뿐만 아니라 의뢰자인 브라스톨 가문도 배신했다. 여러 대가문의 이권이 얽힌 대륙간 항해선의 표는 위조가 불가능한 물건이며, 천금이나 다름없는 표와 배신자 출신 기관사의 목숨 중 귀족이 어느쪽을 더 선호할지는 불보듯 뻔했으니까.
그는 추격자를 피하기위해 그의 죽음을 연기하려했다. 그를 제외한 이곳 스테이션의 모든 사람들이 죽는 것으로. 볼테우스의 유색 파편도, 다른 어떠한 재화에도 손을 대지 않고, 오직 딸을 위한 표 한 장만 품에 안은 채.
그래서 볼테우스를 위해 준비된 저격수들, 그와 함께 이곳 스테이션에서 일하던 역무원들을 모두 죽였다.
볼테우스에게 촉매를 전달한 조지는 폭주와 동시에 저격당했어야 할 볼테우스가 죽지않아, 그의 폭주에 휘말려 죽었다.
그렇게 베다르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생존자 둘을 죽이려다 카트레아의 손에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으로, 카트레아.
“일반적으로, 재능을 떠나서 어린아이에게는 파편을 흡수시키지 않아요. 중요한 기억을 빼앗길 확률이 성인에 비해 너무 높으니까.”
반대로 말하면, 재능있는 어린아이에게 파편을 마구 흡수시킬 경우. 그 아이의 기억을 완전히 백지화 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부모에 대한 기억도, 세상의 도덕과 관습도, 얼마 안되는 삶의 기억도 모두 잊어버린 채로 파편의 힘을 손에 넣은 순백의 도화지 같은 아이들.
실패하면 백치가 된 아이를 죽여 조금 더 순도가 높아진 파편을 회수하는 것이고, 성공하면 가문의 입맛대로 키워낼 수 있는 충성스럽고 냉혈한 인간 병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만들어진 파편기사.
아직 실험적인 단계인 그들은 가문의 이권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본토 대신, 유용성의 증명을 겸하여 조각난 대륙 외곽으로 파견되었다.
누군가는 녹아내린 동토의 희토류 채굴장으로.
누군가는 가라앉은 산맥, 딥 블루 라인의 해양 인양사업에.
그리고 그녀, 카트레아는 머나먼 동쪽의 인간사육장에 그들의 가축을 관리하는 영주의 감시역으로.
“버림받은 사생아의 전속하녀.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제게 주어진 자리였어요. 사람들은 제가 없어지면 도련님과 함께 있는줄 알았고, 도련님은 제가 없으면 다른 하녀의 일을 하러 사라진 줄 알고 계셨죠.”
가문의 치부, 그냥 방치해서 죽게 내버려뒀을 아이가 살아남은 것은, 감시자인 카트레아의 신분 증명이라는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트레아는 충성스러운 감시역이었으며, 그녀의 가짜 신분증명서인 이 갓난아이가 ‘일단 살아있는 것’이 그녀의 자유로운 운신이 도움이 된다 여겼다. 감시역은 가문에서 그녀에게 내린 숭고한 임무였으며, 그 임무에 요긴한 아이를 살려두는 것은 그런 숭고한 임무 수행의 연장이라 여겼기에, 부족한 지식으로 나름 애를 써 보았다.
아이가 계속 울면 목이 쉴 것 같아서, 뺨을 때리며 울지말라고 조언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는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서도 그녀가 건넨 버섯 볶음을 먹지 않았으며, 카트레아는 고민 끝에 육아중인 여성을 수소문하여 아이를 보였다. 엄청나게 혼이 난 뒤 그녀 몫의 식사 절반을 매번 그녀에게 주는 대가로 아이의 젖을 먹일 수 있었다.
맹세컨대, 그녀의 삶에서 이렇게까지 성가시고 불합리한 존재는 단연코 없었다.
아이가 임무에 방해되는 정도가 그 유용성을 넘어서는 즉시 목을 졸라 죽여버리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델피아드 브라스톨은 착실한 농장주였으며,
“어, 어우아. 어므아!”
“으….”
그녀의 손에 맡겨진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가문에서는 그녀가 개인 소유물을 가져선 안된다 가르쳤고, 카트레아도 그 말을 누구보다 확고하게 믿었다.
….하지만.
‘어차피 버리는 것.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무가치한 아이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라면, 내가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사생아 교수 브라스톨은 어린 카트레아의 첫 소유물이 되었다. 가문이 아닌, 그녀 개인에게 가치를 가진 유일한 대상으로, 소유물로, 그녀의 아이로.
목숨보다 더 귀한 무언가로.
“참…. 이상하지요? 분명 제가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도련님한테 샤드나이트의 재능 같은 것은 없었는데. 왜 하필 이럴 때, 제가 아닌 다른 이들의 눈앞에서 그런 대단한 재능이 개화했을까요.”
브라스톨 가문은 레일 쉽 내부에 이미 조지라는 첩자를 두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도는 이야기를 전부 전해듣고 있었다.
사생아인 셋째 도련님이 레일 쉽과 작당하고 가문을 벗어나려는 것.
조용히 지내던 것과 달리, 머리가 비상하다는 것.
그리고, 나엘다와 볼테우스가 말하길,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정도의 샤드나이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델피아드는 그 소식을 곧장 본가로 전했으며, 안 그래도 볼테우스라는 값진 상품 덕분에 이쪽에 눈길을 주고있던 본가는 그 소식에 제법 흥미를 보였다.
‘제법 써먹을만 해 보이는구나.’
‘….’
‘카트레아, 그 아이를 본가로 데려와라.’
‘….하지만 주인님, 이곳의 임무는’
‘네 다음 감시역을 보내지. 너는 9년이나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으니 이제 다른 일을 맡겨도 되지 않겠느냐. 나이도 찼고, 미색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본토에 얼굴이 알려지지도 않았으니…. 여러모로 쓸만한 곳이 많겠지.’
귀환 명령. 그리고, 도련님을 본가로 데려오라는 명령.
아마도, 도련님은 그녀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뛰어난 재능만큼 넘치도록 많은 파편을 흡수하고, 그 대가로 살아온 9년의 삶을 모두 빼앗기게 되겠지.
도련님의 머릿속에서 그녀의 존재가 사라진다.
카트레아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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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에요.”
“여기까지….라고?”
“네! 그래서 어떻게든 도련님이 저쪽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을 계획한거에요. 물론 계획이라곤 해도, 베다르의 계획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카트레아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도련님이 볼테우스와 함께하게 할 수는 없었어요. 그는 도련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불안정한 상태였고, 브라스톨에서 손을 쓰지 않았어도 머지않아 폭주했을게 분명했거든요. 무른 땅 어딘가, 달리는 열차 위에서 지금처럼 폭력적으로. 그런 이들과 도련님이 함께하게 둘 수 없었어요.”
“그는 충분히 자신을 억제하고 있었어.”
“정말요? 도련님, 혹시 볼테우스가 입에 달고 사는 차가 각성 효과가 있는 마약을 우려낸 물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마약? 그게?
“육신과 정신의 거리를 벌려 파편으로부터 정신을 보호하는 것. 끝에 다다른 샤드나이트가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에요. 제대로된 영혼술사의 감별도, 연금술사가 만드는 비약의 서포트도 없이 무작정 적합한 파편을 전부 흡수했으니 순식간에 끝에 다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볼테우스는, 힘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했어요. 마약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 못할 정도로.”
“하지만…. 볼테우스는 전혀 환각에 취해있는 것 같지 않았어.”
“고위 샤드나이트라면 누구나 그 정도는 해요. 마법사보다 더 정신력을 갈고 닦는게 샤드나이트 들이니까.”
카트레아는 시한폭탄과 같은 레일 쉽에 내가 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레일 쉽의 몰락을 방관했다.
“네가 그 정도 힘을 가진 샤드나이트였다면, 나와 같이 레일쉽에 합류할수도 있었잖아. 볼테우스가 폭주해도, 나 하나 정도는 데리고 탈출할 능력은 되잖아. 다들 살아서 빠져나갔다가, 정말 그 순간이 오면…. 그때가서 최악의 선택을 해도 되는거잖아.”
“아, 그건 정말 꿈만 같은 미래네요. 그렇게 할 수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련님과 마도 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라니. 저도 그런 방법이 없을까, 오직 이런 길 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해봤지만.”
사라락-
“….몸이 이 꼴이라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답니다.”
카트레아는 옷섶을 풀어 가슴 위쪽을 드러내 보였다.
뽀얀 피부 위로 비죽 튀어나온, 한눈에 봐도 위험한 기운이 감도는 작은 결정.
“가문에서 ‘백지화 샤드나이트’를 만들 때 심어둔 기아스(Geas, 금제)에요. 본가에서 제 배신을 확인하면 발동시키게 될 강력한 술법이랍니다. 여기 심장이랑, 머리 안이랑, 척추랑, 또 여기저기 비슷한 게 있어요.”
“효과는 주인의 명령을 어길 시 자동으로 시전. 발동시 대상의 기억을 모조리 소거하고 일주일간 시전자의 꼭두각시가 되게 하는 것.”
그녀는 마치 부끄러운 장신구를 보이듯,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은 도련님을 제가 붙잡아 두고 있으니 ‘교수 브라스톨을 붙잡아 본가로 보내라’는 명령을 어기지 않은 상태에요. 제가 도련님을 떠나보내는 즉시 기아스는 발동하고, 저는 명령에 따라 도련님을 본가로 끌고가겠죠.”
….까드드득.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막고싶었어요. 도련님도, 제 안에 남은 도련님과의 지난 9년간의 기억도 모두 잃지 않으려면. 도련님을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오직 이것 뿐이었어요.”
할 말을 다 마친 카트레아는 다소곳이 일어나, 그녀가 앉았던 식량포대를 치우고 그 아래 숨겨져있던 작은 가방을 꺼냈다.
작지만 튼튼한, 아홉 살 소년도 충분히 맬 수 있는 크기의 가방.
카트레아는 그 안에 베다르의 품에서 꺼낸 대륙간 왕복선의 배표를 소중히 집어넣었다.
“열흘치 물과 식량, 튼튼한 옷이 들어있어요. 이대로 선로를 따라 걸어가면 이곳과 비슷한 버려진 스테이션이 나올거에요. 사람은 없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보존식은 늘 정해진 자리에 구비되어 있어요. 그곳에서 물과 식량을 보충하고 다시 선로를 따라 걷다보면 선착장이 있는 전초기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에요.”
“카트레아.”
“선로 위로만 걸으면 땅굴벌레나 다른 무서운 괴물들이 덤벼들 걱정은 안해도 될거에요. 혹시 작은 선로마을을 만나면, 지금 입고 계신 귀족 옷을 보여주세요. 그 사람들은 귀족을 병적으로 무서워하니 그것 만으로도 해코지하지 못할거에요.”
“카트레아,”
“유색 파편을 꼭 챙겨가세요. 선착장이 있는 항구에는 반드시 밀수와 얽힌 암시장이 있어요. 어리숙한 귀족인척 하고 헐값에 내다 팔면 도련님 혼자 먹고살 정도의 돈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거에요.”
“….카트레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분과 기원. 그리고, 작별인사?”
탁.
꼼꼼하게 점검한 가방을 내려놓은 그녀는, 조용히 손을 들어올렸다.
견갑골에서 시작된 결정이 손끝을 타고 자라나며, 자신의 색을 발한다.
시린 하늘빛. 그녀처럼 가녀린 체형의 여성이 쓴다고 믿기 힘든, 2미터가 넘는 대형 전쟁낫 형태의 파편.
그것의 푸른 날끝이 카트레아의 목에 걸렸다.
카트레아는 죽으려 하고 있었다. 나를 놓아주기 전, 아직 본가의 명령을 수행하는 단계에서 그녀가 죽는 것이, 그녀의 기억을 지키고 꼭두각시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니까.
‘마지막의 마지막. 최악의 최악을 마주했을 때,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죽은 동료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막고싶다. 카트레아는 그저 나를 살리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게된다. 그녀는 명령을 따라야 하고, 명령을 거부하면 꼭두각시가 된 그녀가 명령을 수행할 것이다.
오늘 내 앞에서 죽어간 이들 중, 누가 악인이고 누가 선인인가.
평생을 곱추로,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소망하던 그만의 작은 집을 꿈꾸던 기관사 조지?
하나 남은 딸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혹시나 모를 귀족의 배신이 두려워 자신의 몫으로 예정된 배표 한 장까지 저버린 채 모두를 배신한 베다르?
그 모든 죽음을 방관하고, 이용하여, 끝내 자신의 죽음으로 나의 자유를 완성하려 한 카트레아?
“도련님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오직 그 순간만이 제 삶이었어요.”
“부디, 안녕하시길.”
그녀를 소개할 때와 마찬가지로 다소곳이 무릎을 굽혀보인 카트레아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대낫을 당겼다.
사라락.
평온한 얼굴의 카트레아.
그녀의 길게 땋은 머리가 풀어지며 부드럽게 물결치고.
머리가 풀어진 경계선을 따라, 천천히. 그녀의 목이 기울어.
….툭.
떨어졌다.
나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있었다. 카트레아의 대낫이 그녀의 목을 스쳐가는 동안. 그녀의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도련님께서 살아남기위해, 꼭 아셔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카트레아는 내가 살아남기위해 필요한 이야기라며 배신자들과 그녀의 이야기를 꺼냈고.
그 이야기들은 나를 묶어, 마지막 순간 카트레아의 죽음을 방관하게 만들었다.
카트레아가 그토록 간절하게 가르치고 싶었던 것.
그녀의 손을 떠나 홀로 살아가게 될 아이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
“이게…. 4월드.”
선인도, 악인도 모두 같은 결과로 귀결되는 이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머리로, 가슴으로, 이 순간의 선택으로 영혼에 새기는 것.
카트레아는 원하던 것을 이루었다.
그녀는 지난 9년간의 기억을 잃지도, 나를 본가로 데려가게되지도 않았으며,
이 잔혹한 세계를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귀중한 교훈을 그녀의 아이에게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마스터 나이트에 필적하는 카트레아가 확언했으니 레일 쉽 인원들 중 생존자는 없었다.
역무원은 베다르의 손에 죽었으며, 역무원장인 베다르는 카트레아의 손에 죽었다.
카트레아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으로, 이곳의 참상을 밖으로 전할 이도, 아홉 살 소년 하나가 항구를 향해 떠나간 것을 알릴 이도 사라졌다.
또르륵-
죽은 카트레아의 손끝에서 푸른 보석이 떨어져나왔다.
그녀 이전의 무수한 주인과 함께, 그녀의 영혼을 삼키고 빠져나온 파편. 눈물을 닮은 푸른 사파이어 빛 보석.
웃을 수도, 울 수도, 화를 낼수도 없었다. 나의 감정과 나 사이에, 그녀의 죽음 앞에 갈등하던 내가 앉아있었다.
….찰칵.
나는 카트레아의 머리를 품에 안고 창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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