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25
Chapter. 19. 술래잡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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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옥-
눈을 감으면, 고요한 수면 위로 뛰어드는 물방울 소리가 들린다.
또옥-
발 끝에 스치는 얇은 물의 감촉.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헤매이는 발걸음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편안함.
또옥-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왜 이곳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정처 없이 헤매는 사이, 어둠이 내려앉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수면을 헤치고 떠올랐다.
낡은, 아주 낡은 것. 누군가 오래도록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허름한 소파.
하이드는 그것과 마주한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심장 고동에 맞춰 수면이 들썩거렸다.
‘찾아.’
희미한 목소리. 요동치는 수면 아래, 속삭이는 누군가.
찾으라니. 무엇을?
‘찾아서, 돌아가.’
무엇을? 돌아간다면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또옥-
문득, 하이드는 이 낯설고 낯익은 공간이 이것보단 조금 더 다채로웠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 저 낡은 소파 뒤에는 잘 정리된 무언가가. 하늘에는 보석처럼, 파편처럼 빛나는 작은 은하수가 있었다.
무엇일까. 도대체 왜 그는 이토록 불안하고, 그리워한단 말인가. 무엇을. 도대체 무엇을.
‘찾아. —를 찾아.’
누구를.
‘….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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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떡!
확! 하고 젖혀지는 이불과 함께, 땀에 젖은 등허리를 스치는 서늘한 아침 공기가 느껴졌다.
“….어우, 씨바. 그놈의 꿈은 내용 한번 바뀌는 적이 없네.”
하이드는 아직도 옅게 남아있는 꿈속의 감정을 눈가에 맺힌 눈물과 함께 털어냈다.
고아였던 하이드에게 언제부턴가 반복되기 시작한 악몽.
아니, 악몽이라는 말을 쓰기는 조금 애매하군. 그 꿈을 꾸고 나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심장이 쿵쾅거려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지만, 동시에…. 어디서부터 비롯한지 모를 그리움과 안온함이 그 뒤에 따라왔으니까.
[찾아. —를 찾아.] [….하이드.]“….애미. 최소한 뭘 찾는지는 가르쳐 줘야지.”
하이드는 환청처럼 들려오는 꿈속의 목소리에 혼잣말로 답했다.
그는 ‘뭔가’를 찾아야 했다.
그게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
유일한 단서라 추측하는 것은 가끔 부정맥이라도 온 듯 날뛰는 그의 심장뿐이었다.
‘나는 모르지만, 악몽과 함께 내 머리 어딘가에 자리 잡은 [속삭임]은 찾아야 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어.’
‘내 몸이 반응하면, 그게 그 [무언가]와 관련된 소식이든, 물건이든, 아니면 행선지든 된다는 뜻이겠지.’
그런 식의 두루뭉술한 추측에 의지해 조각난 대륙을 떠돌아온 지가 올해로 15년. 고향을 떠난 고아 출신의 13세 소년은 어느새 자고 일어나면 수염이 까슬한 28세 아저씨가 되어 있었으며, 명석한 머리로 사제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아이는 ‘자타공인 이상한 놈’ 쯤으로 취급되는 떠돌이 파편사냥꾼이 되어 있었다.
‘어휴. 내 팔자야.’
사실 그 ‘무언가’를 찾는 것도, 빌어먹을 악몽에서 벗어나는 것도 반쯤은 포기한 상태였다. 무려 15년을 떠돌며 셀 수 없는 생명의 고비를 넘겼고, 그렇게 장님이 세상을 더듬듯 심장의 희미한 떨림에 의지해 여기까지 오긴 했으나 아직도 그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기엔 헛물만 켰던 15년이 너무 길었다.
“….어쩌겠어. 평생 이렇게 살 팔자인가 보지.”
도시를 헤매고, 악착같이 돈을 벌고, 번 돈을 모두 털어 마도열차의 표를 사서 또 이동하고.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 떠돌이의 삶에 제법 익숙해져서 나름의 즐거움도 어느 정도 찾은 상태였다.
예를 들면.
-달칵.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는데,
“….응?”
“어?”
“너, 너너너너! 너 이 새끼, 하이드 맞지! 하이드!”
“으악! 니가 왜 여기 있어!”
쿵! 쿵! 쿵! 쿵!
와락!
“크후하하! 하이드 맞구만! 이 개자식! 돈 갚아 이 쓰레기야!”
“우아아악!”
생각도 못한 옛 인연을 만난다든가 하는, 그런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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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 ‘안절부절 하이드’가 같은 정거장에 있었는데도 모르고 있었다니!”
“3년 만인가? 용케 살아 있네, 카투르.”
“그러는 너도 여기까지 오면서 끝내 빚쟁이가 되지 않았군. 지금쯤 무임승차 하다가 걸려서 어디 노역장에 처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2층 홀의 계단에 기대어 있던 대머리 남자는 방에서 나오는 나를 보더니 그대로 다가와서 나를 안아 들었다.
카투르. 남들보다 한 배 반은 더 큰 키 때문에 비좁은 열차에서 매일같이 욕을 먹던 녀석.
“위겐에는 언제 들어왔었냐?”
“나흘 전에. 그쪽은?”
“보름이다. 알다시피 ‘다이나마이트 레이디’는 연식이 좀 있는 마도열차라 자주 수리해줘야 하거든.”
“아, 그 거친 무쇠 아가씨. 미친 듯이 흔들려서 좀 무서웠지.”
카투르는 몇 년 전에 잠시 탔었던 열차의 기관사였다. 불경기라 돈은 부족한데, 충동과 강박증이 날로 심해지는 바람에 결국 가진 돈을 다 털어주고 부족한 것은 한 달간의 기관사 생활로 충당하는 조건으로 타게 된 마도열차가 카투르가 소속된 ‘다이나마이트 레이디’였고, 정말 죽을—- 만큼 개처럼 굴려졌다. 사탄도 부려먹을 노예주 같은 놈들.
“여전히 일찍 일어나는군.”
“너는 절대로 일찍 일어날 사람이 아닌데. ‘다이나마이트 레이디’의 기관사들은 정거장에서도 불침번을 세우나? 위겐에서는 딱히 사고가 났던 적도 없잖아.”
“불침번이 필요해서라기보단, 이게 없으면 다들 깊이 잠을 못 자서 말이야. 알잖아? 한 달이지만 너도 우리 열차에 탔었으니까.”
“아아, 탔었지. 한 달이나 버틴 나 자신을 존경한다 정말.”
조각난 대륙의 떠돌이에게 주어진 유일한 장점이라면, 이렇게 종종 옛 인연과 마주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마도열차는 정해진 선로 위를 달리고, 떠돌이는 그런 마도열차를 갈아타며 세상을 배회하니까. 그러다 보니 이렇게 정거장에 머무르다 보면 가끔씩 아는 얼굴을 마주치곤 했다.
“미치랑 케일슨은 잘 지내냐? 마지막에 봤을 때는 둘 사이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
“케일슨은…. 내렸어. 덕분에 미치도 썩 좋지는 않지.”
“아, 이런.”
“나름 멋있게 갔어. 시신은 내가 수습했는데, 그 새끼 웃고 있더라고. 지가 만족했으면 됐지 뭐.”
물론, 알고 있던 이들의 대부분은 부고로 마주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말이다.
잠시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카투르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더욱 키우며 말했다.
“흠흠! 애도는 나중에 열차에 내려가서 마저 하는 걸로 하고…. 너, 예의 그 ‘탐색’은 잘 되어가냐?”
“….아니. 아직 정체가 뭔지도 몰라. 희미하게 가까워진 느낌은 있는 것 같다만.”
“흐후후후! 내가 장담하는데, 분명히 여자야 여자. 남정네 마음을 그렇게 사정없이 흔들 수 있는 건 여자, 그것도 운명의 상대밖에 없다고! 운명의 반려, 혹은 부득이 한 이유로 하이드 네 녀석과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가 틀림없다. 이 둘 중 하나라는데 내 눈알 한 짝이라도 걸지!”
“으음, 글쎄.”
‘여자?’
….두근. 두근.
음. 이건 아닌 것 같고.
‘….어머니?’
두근. 두근. 두근.
오, 이쪽은 약간 반응이 있긴 한데.
“….둘 다 애매하네. 위겐에 도착한 뒤로는 희미한 반응 같은 게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이상한 녀석. 아무튼, 이번엔 좀 찾기를 바란다. 찾으면 나도 좀 보여줘. 돈은 그때 갚고.”
“어? 지금 안 받아?”
“됐어 임마. 구 텔드랏 지역에 돌아다니는 기관사 중에 니놈 주머니 사정 모르는 놈이 어딨냐. 이번에도 위겐 방향 급행 탄다고 푯값으로 한 재산 썼다며. 기관사들 중엔 널더러 ‘돈을 물어오는 천사’라고 부르는 놈들도 있다고. 뼈 빠지게 모아서 푯값으로 죄다 탕진한다고. 아니, 위겐 방향이면 좀 기다렸다 우리 차 타지 그랬어? 우리 쪽 순환 루트는 알 것 아냐?”
“어, 음…. 그 ‘충동’이 갑자기 엄청 강하게 느껴져서 그만. 위겐 방향으로 확 끌리길래 사라지기 전에 냉큼 아무 열차나 잡아서 건너왔지.”
“아이고 등신아, 천치야, 호구야….”
카투르는 도시에 집 네다섯 채는 살 수 있는 돈을 단순히 ‘마음이 급하다’는 이유로 날려버린 하이드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꼈다. 저 녀석의 기묘한 ‘역마살’은 같이 열차에 탔던 한달 동안 충분히 알게 됐으니까.
“….여전히 충성맹세하고 어디 소속될 생각은 없는 거지?”
“묶이고 싶지 않으니까.”
“네 ‘방랑’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해도?”
“그래.”
“빌어먹게 유명한 은사자 기사단과 그들의 주인, 대귀족 가이낙스 가문이 그들과 함께 유적을 탐사했던 ‘오러 없는 오러나이트’를 애타게 찾고 있다고 해도?”
“거긴 더 안돼. 나올 때 비싼 유물 잔뜩 들고 튀었거든. 새끼들 눈이 더럽게 살벌했다고.”
“야 임마, 그건-”
‘….기사단에 소속되어서 한 달이면 갚고도 남을 금액이잖아.’
카투르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이드라고 영지에 소속된 오러나이트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얼마나 큰지 왜 모르겠나.
영지 소속 오러나이트는 소속된 영지를 지나가는 모든 마도열차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 구하기 힘든 대륙간 항해선 표도 구할 수 있으며, 그 외 귀족과 다름없는 대우부터 눈이 튀어나올 만큼의 녹봉, 면책권, 사법권, 작은 암반지대 소유권이나 초야권까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혜택이 주어진다.
그만큼, 귀족에게 있어 오러나이트는 탐나는 인재라는 뜻이다. 수명이 짧고 끊임없이 값비싼 파편을 요구하며 재수 없으면 폭주할 위험도 있는 샤드나이트에 비해, 오러나이트는 수명이 길고 안전하며 충성심도 높으니까. 귀족이 둘 중 누굴 더 곁에 두고 싶어 하는지는 당연한 결과였다.
덕분에 수명이 짧은 샤드나이트는 값비싼 소모성 전투자원으로, 오러나이트는 귀중한 가신으로 취급된 지 오래였다.
하이드 정도 실력자라면 어느 귀족이라도 거부하지 않겠지. 도시 단위 큰 일을 해내고 한 달 정도 휴식기를 가지는 식으로 ‘탐색’을 이어 나간다면 그의 이상한 방랑벽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니, 악착같이 열차 푯값을 모을 시간이 줄어드니 영지에 소속되기 전보다 오히려 탐색에 속도가 붙지 않을까.
‘내 평생에 하이드 저놈처럼 머리가 좋은 놈을 본 적이 없으니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겠지.’
알면서도 녀석은 떠돌이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영지 소속의 오러나이트로 중요한 일을 하던 중에 반응이 올 수도 있으니까. 지난 15년동안 허탕만 쳤지만, 하필 그 순간에 그렇게나 찾고 있던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그의 주변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중요한 순간에 발이 묶여있을 순 없으니까.
“….알아서 해라. 이상한 녀석.”
“생각해줘서 고마워, 카투르.”
완곡하지만 확실한 거절에 카투르는 마음을 접었다. 각자의 삶이니까, 본인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어이.”
“왜 또!”
“아니, 이건 다른 얘긴데….”
카투르는 벌써 저만치 가버린 하이드를 향해 외쳤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찾고 있는 그 ‘무언가’를 정말로 찾게 되면 뭘 할 거냐? 네 꿈에도 찾으라고만 하지 찾아서 뭘 하라고 하는지는 안 나온다며!”
“아, 그거?”
살짝 침울해 있던 하이드는 물어봐줘서 고맙다는 듯 활짝 웃으며 답했다.
“줘 팰거다!”
“뭐? 그 고생을 해서 찾은 거를?”
“그러니까! 내 15년간의 개고생을 꾹꾹 눌러담아서 아주 개 박살을 내버릴 거야!”
마치 허공에 그 누군가가 있기라도 한 양 주먹을 휘저으며 선포하는 하이드.
그렇게 멀어져가던 하이드는 정거장 울타리 앞에서 웬 귀족집 시동 같은 꼬맹이랑 몇 마디 나누더니, 녀석의 뒷덜미를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먼발치에서 ‘와하하하-’하는 하이드의 웃음소리와 희미하게 ‘뉴스보이가-’ 어쩌고 하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새끼.”
기관사로서 여러 도시를 다녀봤지만, 저런 사람은 처음 봤다.
만나본 오러나이트들이 한결같이 ‘오러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오러를 눈꼽 만큼도 쓰지 못하는 오러나이트. 그런 주제에 신체능력과 감각은 오러나이트에 준하며 전투감각이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실력자.
어디를 가도 한자리 제대로 차지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데, 지난 15년간 단 한번도 오지 않은 ‘중요한 순간’이 오면 떠날 수 없다는 이유로 악착같이 돈을 벌고, 그걸 열차 푯값으로 모조리 탕진해 거지꼴을 하고 다니는 녀석.
혼자 일하는 게 편하다지만 정작 누가 옆에 있으면 눈에 띄게 좋아하는 티가 나는 녀석.
‘오러 없는 오러나이트’, ‘구 텔드랏령 최고의 승객’, ‘대-호구’, ‘안절부절 하이드’, ‘마지막 방랑기사’….
쌓아온 인연만큼의 별명과 함께, 이곳 구 텔드랏 령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녀석.
하이드. 통칭, 패스파인더(pathfinder).
“….아무튼 별종이야.”
저렇게 정처 없이 스스로도 모르는 무언가를 애타게 뒤쫓다가.
끝내 찾아내거나,
혹은 죽거나.
“적어도 여행이 끝난다는 점은 변함 없군.”
무슨 납치범 같은 모습으로 사라져가는 하이드의 뒷모습을 보며 카투르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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