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28
Chapter. 19. 술래잡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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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 것은 무수한 총구를 앞에 두고 꺼내들 만큼 대단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이건….”
“뭔지 알아 보시겠습니까?”
눈앞에 다가온 남자를 잠시 멈춰 세우기엔 충분한 물건이었다.
“….특유의 보랏빛 광채는 토브룬 광산에서 채굴되는 공마석의 특징이지. 오랜만에 보는 고향의 물건이로군.”
반뼘 정도 크기의 보랏빛 조각은 마도공학 장비의 필수 재료인 공마석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곳 텔드랏에서 채굴되는 공마석이 아니라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구 로드릭 령의 토브룬 광산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과거 토브룬은 질 좋은 마정석 광산을 토대로 마법사의 도시로 성장한 지역이었지만, 용맥 대폭발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으며 지금은 그 성질이 완전히 변한 지역이었다.
용맥이 품고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폭발과 함께 증발하는것에 휩쓸려 마정석 광맥의 마나도 모조리 빠져나가 버린 것.
덕분에 뮤트 종족 전쟁, 동서 제국 전쟁마저 견뎌낸 마법사의 도시 토브룬이 초토화됨과 동시에 토브룬을 마법사의 도시로 만들어낸 마정석 광산은 그대로 공마석 광산으로 변해버렸다는-
나름의 사연이 있는 지역의 물건이란 얘기.
아무튼, 그런 이유로 자연 발생한 토브룬의 공마석은 마나를 다 쓴 빈 마정석을 쌓아 만들어지는 인공 공마석과 외관의 차이가 조금 있는 편으로 토브룬 공마석은 짙은 보라색으로, 인공 공마석은 옅은 보라색 광체를 띈다.
아쉽게도 외관상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차이는 거의 없다보니 보석 세공용으로 소량만 유통될 뿐, 딱히 비싼 운송비를 들여가며 다른 지역으로 수출할 가치는 없는 물건.
“….동향 사람인가. 미안하지만, 그 정도로 외부인을 살려줄 수는 없다. 이곳의 위치가 외부에 세어 나가면 사형을 피할 수 없으니까.”
“아아, 저도 압니다. 애초에 로드릭 지방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도 고작 같은 방향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생사가 걸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테니까요. 제가 이것을 꺼낸 것은, 모종의 증명을 위해서입니다.”
“….증명?”
“예, 제가 로드릭 지역과 이곳을 오고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지요.”
물론 거짓말이다. 지금 들고있는 토브룬 광산의 공마석은 오래전 열차를 타고 이동하며 승객들과 카드 도박을 했을 때, 크게 잃은 연금술사가 돈 대신 내놓은 물건이었다.
평소 알고있던 공마석의 색과 판이하게 다른 그것이 그놈 말처럼 정말 비싼 물건인 줄 알고 돈 대신 받았는데, 알고보니 평범한 공마석과 다를 게 없었던 물건이었다. 돈이 아까워서 팔지 않고 들고 다니다가, 지금은 망토 안에 잔뜩 쌓인 마도공학 장비중 몇몇 강력한 물건들이 뿜어내는 마력을 감추는 용도로 들고 다니던 물건.
“거기, 앞에 계신 선생님?”
“….모조.”
“그래요, 모조 씨. 사는 게 참 팍팍하지 않습니까? 살고 싶어서 고향을 뛰쳐나왔는데, 정작 여기선 하루하루 사는 게 고통이라니. 뭔가 애매하지 않습니까?”
그 공마석을 꺼내든 것은, 이곳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처럼 하이드도 이곳 사람들의 궁핍함을 한 눈에 느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의 시민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도시의 뒷골목에 숨어든 사람들.
하루 일당이 물 세 컵일 정도로 물이 고가에 유통되는 세상이다.
다른 시민들이 사는 집은 그나마 비가 오면 빗물이라도 받아서 저장할 수 있지만, 이렇게 깊숙한 구석에 사는 이들은 그것마저 할 수 없기 때문에 탈수로 죽지 않으려면 다른 시민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도시를 제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처지다보니 제대로된 일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고.
하루하루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어른들은 강도짓을 하거나 열악한 버섯 재배굴에서 남들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며, 아이들은 고아인 척 신문사에 들어가 발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푼돈을 벌어들이는게 전부.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를 잡을 생각이 없으십니까?”
“….기회?”
“예, 우리 삶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 기회 말이죠. 모조 씨? 혹시, ‘밀수’에 관심이 없으십니까?”
“밀수….라니. 그쪽과, 우리가?”
“말하자면, 저희 상단에 협력자가 좀 되어주십사 하는, 그런 이야기지요! 이게 돈이 참 많이 되는 일이거든요!”
하이드는 분명히 보았다. ‘밀수’와 ‘돈’이라는 말에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조의 눈을.
그것은 금전적인 탐욕에 앞선, 보다 근본적인 욕망에 얽힌 눈이었다.
“최근에 돈이 좀 생겨서 사업을 확장하려 했거든요! 마침 연이 닿은 마도열차가 생겨서 멀리 떨어진 로드릭 쪽 도시들과 중개 무역을 한번 터보려고 했는데, 그쪽 사정을 모르다보니…. 그만 완전히 속아서 이런 토브룬 공마석만 잔뜩 사왔지 뭡니까?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음. 종종 그런 식으로 얼치기들을 털어먹는 녀석이 있지. 그쪽에서는 유통도 활발하고, 실제로도 많이 쓰이니까. 보기좋게 당했군?”
“예에! 그래서 오며가며 열차 푯값에, 화물칸 빌린 값에 아주 대차게 깨졌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쪽 지방을 아주 잘~ 아는 로드릭 출신의 협력자를 한명 대려가려는 것이지요. 이만하면 설명이 됐습니까?”
“….협력의 대가는, 어떻게 정산하지?”
‘좋아! 넘어왔다!’
상대가 일이 성사된 다음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이미 같이 일할 마음이 머리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조는 하이드의 손에 들린 토브룬 공마석과 마을을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총구를 내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들어보니 우리가 있는 곳을 알고 찾아온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지?”
“신문사를 찾아가 로드릭 소식에 정통한 아이를 찾았지요. 그리고 알다시피, 아이들의 입은 어른들보다 가벼운 편이 아닙니까.”
“그 녀석들, 내가 그렇게 입조심하라고 당부했건만….”
그리고, 사라지는 마지막 의심과 함께 모조의 총구가 완전히 바닥을 향했다.
그가 손을 흔들어 보이자, 난민촌 곳곳에서 튀어나온 총구가 안으로 들어가며 호기심 반, 적개심 반의 사람들이 하나둘 문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모조가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멀어지는 사이, 멀찍이 떨어져 도망갈 준비를 하고있던 파블로가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우와아아….”
“거봐. 내가 된다고 했지?”
“세상에. 이게 되네.”
이런 식으로 숨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외부인을 경계하는지 알고있는 파블로는 눈앞에서 마법처럼 사라지는 적개심을 보며 경이로운 눈으로 하이드를 올려보았다.
“상인이요? 밀수?”
“쉬잇. 목소리 낮춰. 아, 너는 내가 이곳을 찾기 위해 고용한 뉴스보이 인 것으로 하고.”
“알았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거 먹힐거라고 확신했던 거냐구요!”
“니가 그랬잖아. 이곳의 위치는 여기 사람들에게 생사가 걸린 문제라, 뭘 들이밀어도 우릴 죽여 입막음하는 걸 우선시 할 거라고.”
“어…. 그렇죠.”
“그럼, 마찬가지로 생사가 걸린 문제를 들이밀어서 해소해야지. 세상에 먹고 사는 문제만큼 피부에 와닿는 일도 없으니까.”
곳곳에 나타난 다른 사람들은 물론, 이곳의 리더로 보이는 모조라는 남자조차도 입술이 마르고 피부에 마른버짐이 있었다. 흔한 탈수 초기증상.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찾아오는게 탈수다. 조각난 대륙의 빈자들은 굶어죽기 전에 말라죽는다.
바위틈과 집 사이에 널어둔 빨랫줄에 아이들 옷은 있는데, 마을에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이 전부 일을 나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모조라는 남자의 옷 곳곳에 피어난 갈색 솜털 같은 것. 하이드도 거기에서 일해봐서 잘 아는, 식용 버섯 재배지의 버섯 포자다. 이 버섯 포자는 사람의 피부 위에서도 자랄 수 있다보니 인부들에게 밀폐된 작업복을 제공하도록 도시 법이 강제하고 있으니, 평상복에 포자를 붙이고 다니는 이런 사람들은 불법으로 고용된 인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궁핍함의 끝자락에 다달은 흔적이 마을 곳곳에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들이 큰 돈벌이가 되는 ‘밀수’에 관심을 가지리라 확신할 수밖에.
낯익은 고향의 물건으로 극에 달한 경계심을 낮추고.
혹할 수밖에 없는 제안으로 상대의 대화를 유도하며.
합리적인 거짓말과 모르는 상대라면 믿을만한 증거로, 이쪽의 당위성을 확신시킨다.
“와…. 사기꾼.”
“아까 말했잖아? 서로 알아갈수록 친해지는 거라고. 이것 봐. 벌써 이곳 난민촌에 초대받을 정도로 이곳 사람들과 친해졌잖아? 다 알아가는 과정이라 이거야. 우리가 중개상인이라는 확신을 심어줬으니, 이제 구 로드릭령의 소식에 대해 마구 물어봐도 되겠지. 애초에 그런 식으로 정보를 얻을 요량으로 그들과 협조하는거라 했으니 말이야.”
“이곳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알려줄거구요. 우리가 로드릭 지방의 현황에 대해서 아는게, 저들이 앞으로 얻게 될 이익과 연결된다고 알고있으니까!”
“죽이면 정보원이 줄어들고, 협박하면 정보의 신빙성이 떨어지지.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선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거야.”
“갑자기 하이드님과 친해지는게 두려워지는데요.”
“히히히. 미안하지만, 물러서기엔 넌 이미 나를 너무 많이 알아버렸단다.”
하이드는 파블로의 품안에 있는 목판을 꾸욱 눌러준 뒤, 모조의 뒤를 따라 난민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파고드는 일.
하이드가 어려서부터 유난히 잘하던 것이었으며, 사람 좋아하고 친해지는 거 좋아하는 떠돌이가, 머릿속에 뒷통수 치는것만 가득한 조각난 대륙의 사람들과 부대껴 살아가다 보니 그런 쪽 재능이 꽃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소 무계획하고 즉흥적인 하이드가 지금까지 무른 땅을 헤매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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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하셨습니까.”
“예. 아무래도 큰 사건이 얽히면 그만큼 시장의 변동도 커지니까요. 지난번처럼 실패하지 않기위해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 갈 생각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구 로드릭 지역에서 벌어진 큰 사건이나 이변, 널리 퍼진 소문 같은걸 알고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상행위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좋을대로 하십시오. 이곳 사람들도 전부 밀수에 대해 찬성했으니 다들 성실하게 답해드릴겁니다. 다만, 지금은 이곳에 모여 살고 있어도 다들 위겐에 도망쳐온 시기, 원래 살던 도시가 다른 만큼 특별히 일관된 정보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하하하하. 그런 것을 가려 듣는 것은 제가 할 일이지요. 어차피 여러분의 일은 로드릭 방면으로 떠날 때 부터이니, 지금은 저희들끼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조의 말투가 변한 것에서 보이듯이, 이곳의 피난민들은 밀수 상인으로 알려진 하이드에게 대단히 협조적이었다.
물어본 것은 물론, 물어보지 않은 정보까지 알려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
그들과 대화 사이에 ‘워로드’라는 키워드를 슬쩍 끼워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일 나간 사람을 제외하고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과 대화한 것 치고는 제법 소득도 있었다.
“그 워로드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도시에 찾아왔던 남자가 그였다는 소문은 있었습니다.”
“소문이라….”
“예. 이놈이 살던 요새도시는 선로로 연결된 도시도 한 군데 뿐이고, 인근에 뮤트 로드의 던전이 세 개나 있어서 사는 게 무지하게 팍팍한 곳이었거든요! 시도 때도없이 뮤트가 쳐들어와서 성벽의 포문이 쉴틈이 없는 그런 동네였는데…. 어느날, 굉장히 이상한 샤드나이트가 찾아왔습지요.”
“그게 워로드였던 겁니까?”
“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를 만났던 사람들 말로는 자기 몸보다 커다란 총을 매고, 망토에 가린 한쪽 어깨가 유난히 불룩한 이상한 외부인이었거든요. 특이한 점은 그가 열차를 타지 않고, 자그마한 핸드카를 타고 왔다는 겁니다. 핸드카가 뭔지 아시죠? 작은 시소 같은 걸 사람 힘으로 누르면 선로 위를 움직이는 그거.”
“핸드카를 탄 남자라….”
.
.
.
.
.
욱-씬!
….!!
“사, 상인님?”
“하이드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좀…. 피곤했던 모양이군요.”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등골을 스치는 소름과 오한. 목구멍까지 울리도록 날뛰는 심장과,
츠즉- 츠즈즉-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게 떠오르는 누군가의 뒷모습.
‘이건…. 뭐지? 내 기억? 아니면…. 설마?’
끼익- 끼익-
드르르르르르-
낡은 핸드카의 손잡이가 오르네리며 선로위를 나아가고 있었다.
도시 내부에서나 짐을 옮기는 용도로 사용하는 핸드카를,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선로까지 몰고나온 남자.
끼이이익-
도시가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멀어진 곳에서 남자는 핸드카를 세웠다.
끊어진 선로와, 어지러이 쓰러진 표지판이 뮤트에게 점령당한 지역임을 나타내는 곳.
남자는 휴식을 취하듯 그의 작은 핸드카에 걸터 앉아 있다가, 차량에 실어둔 물건들을 하나씩 차분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순도가 높아 보이는 마정석이 박스로 몇 개 씩. 기름통으로 보이는 것도 한 가득에, 천으로 감아둔 것은 분명 마도공학 장비일 것이다.
“혹시…. 그 남자가 도시에서 물건을 사갔습니까?”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도시에서 그 남자의 소문이 돈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그 작은 핸드카에 탑을 쌓아 올릴 정도로 많은 물건을 사간 큰손이었거든요! 마정석이랑, 기름이랑, 마력 카트리지랑…. 도시에 비축된 물량도 많았고, 안 그래도 방어 시설을 증축하려던 도시의 귀족은 흔쾌히 그만한 물량을 팔아넘겼습니다.”
마을 남자가 이야기 하는 동안에도 흐릿한 영상속 남자는 움직이고 있었다.
산더미 같은 물자를 다 내린 남자는 등에 메고있던 커다란 총을 들어 꼼꼼히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가 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쯔즈즉- 치직!
알 수 없는 기억은 남자가 끊어진 선로 너머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칼로 잘라낸 것처럼 뚝 끊겼다.
“그날 밤부터 내리 사흘 동안 아주 세상을 쪼개는 것 같은 폭음이 들려왔지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사람들은 한동안 조용하던 뮤트가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보려는 줄 알고 난리가 나고, 귀족 나으리는 마법사를 닦달해서 인근 도시에 지원병력을 요청하고. 사흘내내 밤잠을 쪼개가며 수성준비를 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군요.”
“예에. 다른 도시에서 보낸 마도열차도 도시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조용해진 겁니다. 기다리다 지친 기사들이 도시 밖으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기사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던전이 사라졌습니다. 세 개가 전부 다요.’ 이상한 일이지요?”
“….예. 아주…. 이상한 일이네요.”
하이드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몸을 가늘게 떨며, 겨우 대답했다.
‘찾았다.’
남자였다. 자기 몸을 다 가릴 정도로 큰 총을 매고 다니며, 그처럼 망토로 몸을 가리고, 어딘가 불균형한 모습으로, 그처럼 무른 땅을 떠도는.
평생 찾아 헤맨 ‘무언가.’
하이드의 모든 감각이, 평생에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충격적인 현상이 마침내 그것을 찾아내는데 성공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에…. 아무튼, 여기까집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전투물자를 그렇게나 많이 사서 그쪽으로 나간 그 남자가 이변의 주인공인 것을 알 수 있었겠지요. 귀족 나으리께서 애타게 찾으셨지만, 이미 그는 사라져버린 뒤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문에 ‘워로드’라는 사람이 혼자서 던전을 토벌하고 깡그리 비웠다고 하니, 우리도 그날 찾아온 남자가 워로드였구나, 할 따름이지요. 그때 왔던 기사들이 확인한 던전도 죄다 텅 비어 있었거든요. 싸구려 파편 하나 남기지 않고.”
“알….겠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도움이 되는 정보였습니다.”
“상인님, 지금 일어나셔도 되겠습니까? 몸도 떨고, 숨도 헐떡이시는게 이거 아무래도-”
“사례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벌떡!
하이드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남자의 집을 박차고 나왔다. 그가 걷는지, 뛰는지, 아니면 무릎으로 기고있는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몸이 떨리고 있었다.
‘사흘 동안 혼자서 던전 셋. 로드릭 구석에 처박힌 그리 유명하지 않은 로드의 던전이었다지만, 하루에 던전 하나를 깨부수는 것은 그 유명한 은사자 기사단의 마스터 나이트도 불가능한 일이다.’
‘특이해. 아주 특이해. 도시의 숙원 사업이나 마찬가지인 던전 토벌을 혼자 해내고도 아무 보수를 요구하지 않았어. 영주까지 나서야 할 정도로 많은 물자를 살 돈이 있으면서도, 마도열차를 타지 않고 핸드 카를 끌고 다닌다니. 열차를 타지 못할 사정이 있나? 아니면, 이동 정보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하나뿐인 선로 위에서 다른 열차가 달려오면 어떻게 하는거지? 들고 피하는건가?’
“하이드님, 하이드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을 끊은 것은 그의 옷깃을 붙잡는 파블로의 손길이었다.
“진짜 괜찮으세요? 얼굴도 붉고, 숨도 갑자기 거칠어진게 영…. 안좋아보이는데.”
“아니, 그 반대다. 내가 간절하게 찾던 것의 실마리를…. 드디어 찾은 것 같아.”
이보다 좋을 순 없다.
15년, 무려 15년간 안개 속을 헤매이듯 세상을 더듬은 끝에, 드디어 명확한 이정표 하나를 얻은 것이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
하이드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억누르기 위해 한참을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흥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직이 마을 사람들 중 다른 단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모조가 말한대로, 이곳 사람들은 구 로드릭령 출신이라는 것만 같을 뿐 다른 도시, 다른 시간에 이곳으로 피난온 사람들이니까.
‘나와 비슷한 떠돌이. 남자.’
‘아직 구 로드릭 령을 떠돌고 있을까? 낡은 핸드카를 타고 무른 땅을 홀로 여행하면서?’
‘선한…. 사람일까?’
처음보다 더욱 신중하게, 토씨하나 빠지지 않을 정도로 이곳 피난민들과 얘기하는 동안에도 아까 봤던 영상속 남자의 뒷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의 친숙함. 한번도 본적 없지만 낯이 익은, 기이한 느낌.
“워로드. 설마 여기까지 그 이름이 따라올줄은 몰랐는데….”
두 번째로 그 이름을 입에 담은 것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노인이었다.
뿌옇게 흐려진 눈, 자글자글하게 말린 수염. 그에 반해 아직도 탄탄해보이는 근육질 팔과 어깨.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절대로, 죽는 순간까지 잊을수가 없지.”
하이드는 노인의 뿌연 눈속에 회오리치는 감정을 엿보았다.
추억과 후회. 회한과 분노, 슬픔이 한데 섞여 응어리진 눈빛.
끝에가서는, 대부분이 분노에 휩쓸린 그런 눈빛이다.
“그놈과 얽히지 말게.”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워로드는…. 악마라네. 악의가 없어서 더 무서운 끔찍한 괴물. 사악함이 없는 악이지.”
악. 악한 이라.
그 남자가, 대가없이 던전을 토벌하고 사라진 그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럴 리 없다. 워로드는, 그런 사람일 리가 없다는 알 수 없는 확신과 함께 그에대한 험담을 입에 담는 노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해하네. 나 또한, 처음 그자와 만났을 때 평생 그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겠다 맹세했으니.”
츠즈즉-
노인의 한숨과 함께, 또 한번의 두통이 하이드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이전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무른 땅.
끼익- 끼익-
아까 봤던 것보다 조금 더 낡아보이는 핸드카의 삐걱이는 소리.
그리고-
‘물러서지 마라!!’
‘이곳에서의 전투가 도시의 명운을 가른다!!’
저 멀리 보이는, 오직 사람만이 가득한 전장.
“나는 그를 두 번 만났다네.”
“한번은 나와 내 가족, 나와 가까운 이들의 목숨을 모두 구해주었고.”
끼익- 끼익-
낡은 핸드카와, 그 위에 선 남자가 서로 마주한 열차와 치열한 전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또 한번은…. 그 손으로 구해준 목숨을, 모두 거두어 갔다네.”
“내가 보는 앞에서, 나를 제외한 모두를. 한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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