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3
Chapter.4 눈꺼풀(15)
***
토브룬은 수도 킹스랜드 정 북쪽으로 하루 거리에 있는, 사실상 수도에 붙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도시였다.
70년 전인 월드2 시절에 수도로 밀고 들어오는 언데드들을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 급조한 전초기지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허, 월드 3 토브룬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교수는 눈 앞에 펼쳐진 돈 지랄의 향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른 도시에 비하면 조금 낮지만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마법진이 몇 겹으로 활성화되어있는 성벽. 저 정도로 꼼꼼하게 마법진을 세기고 그 위에 마력의 원료가 되는 소재를 상감할 수 있는 기술은 드워프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런 마법진이 성벽 전체에 하나도 빠짐없이 장식되어있었고, 그 외에도 투석구나 첨탑 같은 부분에도 장인의 손길이 묻어나는 게 얼마가 들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니, 7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대형 참호나 다름없던 토브룬이 이렇게까지 변한 거야?’
커뮤니티에서 대충 듣기야 들었다. 토브룬 가면 물가 조심해라, 마탑 들어서고 확 변했더라, 건물을 무슨 옥수수 키우는 것처럼 쑥쑥 올리더라, 등등. 지도에도 그 민둥산 같던 토브룬에 집이 빼곡하게 들어찼길래 나는 급격히 발전 중인 난민촌 같은 걸 상상했거든? 내가 플레이하던 때에는 판자촌을 농지로 바꾸기 위해 애쓰는 되게 안쓰러운 도시였단 말이다. 막 여기 영주로 발령받으면 좌천당한 걸로 취급하고.
음, 계획이 처음부터 꼬인다. 성벽을 넘어들어가는 것은 취소해야겠는데? 어디 들어갈 만한 구석이 없나 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날아가던 새가 성벽에서 튀어나온 전기랑 불꽃에 실시간으로 통닭이 돼서 떨어지는게 눈에 띄었다. 병사들이 희희낙락하면서 익숙하게 받아갔다고. 성벽에 달라붙는 순간 저 즉석 통닭이랑 비슷한 꼴이 날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그럼 성문을 통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교수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넝마나 다름없는 피투성이 귀족 예식복
산발된 수염과 머리
2미터가 넘는 위협적인 체구
붉은색으로 번들거리는 피부
붉은 안광
– Jokass : 저런 게 눈앞에 돌아다니는데 안 잡는 경비병은 업무태만으로 처형해야 함.
– takealook : 그러니까. 수상한 정도가 아니라 종이 다르잖아, 종이. 좋게 봐줘도 트롤 혼혈이라고. 나 같으면 눈에 띄는 즉시 잡아다 고문실에 쳐넣고 본다.
안 그래도 성문 앞 경비의 숫자가 열 명이 넘는 게, 미리 도시 쪽에 보내둔 그 도적 녀석이 소문을 잘 내준 모양. 말하는 뮤트가 습격한다는 소문이 도는 상황에 이렇게 생긴 덩치가 성문으로 다가온다면?
‘나 같아도 선 사살 후 보고지.’
이렇게 됐으니, 정문으로 곱게 들어가는 방법도 힘들 것 같고.
“뚫고 들어가면 못할 것도 없는데….. 그렇게 되면 도시에서 계속 쫓겨 다녀야 하잖아?”
그럼 도시에 온 이유가 없다. 그 방법도 기각.
시작부터 난감하군. 성벽은 난공불락, 강행돌파는 안 되고,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면 고문실 행이라….
“잠깐만. 고문실?”
교수는 좀 전부터 간헐적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한 자신의 팔뚝을 보았다.
‘생각해보니까 아무 의미 없는 거 아닌가?’
안 그래도 어젯밤 이후로 운동도 안 하고, 다칠 일도 없어 재생이 꽤 오랫동안 멈춰있었다. 몸이 슬슬 근질거리기 시작해서 운동할 여건이 안되면 자해라도 해야 하는 건가, 하고있었는데…..
“이거 그냥 잡혀가면 되잖아? 내가 탈출할 힘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 Jokass : ㄷㄷㄷㄷㄷ
– 간장게이바 : 상상도 못 한 해결책ㄷㄷㄷㄷ
– 노루Drug해요 : 근데 고문이면 꽤 많이 힘들 텐데? 고통감소 특성이 있다고는 해도 뼈를 부수고 살을 파내는 고통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아니면 교수, 드디어 자극을 쾌락으로 받아들이게 된 거야?
“그건 아닌데······. 뭐랄까. 공포감이 없는 고통에 익숙해졌다고 해야 하나?”
여전히 아프긴 아프다. 죽을 만큼 아픈데, 왜 그런 거 있잖아. 배에 칼을 맞으면 고통과 동시에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온몸에 힘이 빠진다고. 깊은 상처에는 항상 상실의 공포가 함께한단 말이지. 이렇게 되면 죽겠다, 손가락이 없으면 이제 어떻게 살지. 하는 그런 상상.
그런데 사지절단급 부상을 하도 많이 입어서 그런가, 이제 그런 감각이 없다는 거다. 그냥 팔이 잘리면 감각적인 고통은 있는데 그것도 곧 재생되면서 잠깐이면 사라지거든. 그러니까 마조히즘 같은 게 아니다. 절대로.
“아무튼 일반적인 고문 정도로는 아픈 축에도 못 드니까, 한번 들어가 보자고.”
결정을 내린 교수는 숨어있던 풀숲에서 나와 당당하게 성문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
저벅-
사사삭!
저벅-
“히이익!”
성문 앞에는 강도 높은 신분검사로 인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저, 저거! 눈에서 빛이!”
“괴물이다!”
“뮤트다!”
음~ 친절한 사람들. 한국사람 성미 급한건 어떻게 알아서 이렇게 다들 길을 비켜주실까.
교수는 한 걸음 발을 내딛을 때마다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사람들을 뚫고, 성문 앞에 임시로 만들어진 경비 초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익, 뭐야! 뭐가 이렇게 시끄러….!”
“하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은데······.”
교수는 최대한 순박하면서도 지적인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경비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투란에서 탈출한 용병인데, 도시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끼이익- 쾅!
“들어갓!”
“아극!”
“이 괴물 자식! 우릴 바보로 아나! 겁도 없이 토브룬에 발을 들이다니! 마법사님이 오실 때까지 얌전이 그 안에 처박혀 있어라!”
“으흑흑! 대장! 잭슨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보나 마나 저 망할 괴물이 뭔 수작을 부렸겠지. 기다려봐! 내가 저 괴물을 수백 토막을 내는 한이 있어도 그 저주를 풀게 만들 테니까!”
‘….진짜 그냥 웃어준 것 뿐인데….’
혹시나 사람들이 잘 봐줄 수 있을까 해서 최대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사실 이 세계에는 드워프도 있고, 엘프도 있고, 케트시나 웨어울프같은 수인도 있는데 나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그래서 두건을 벗고 환하게 웃어줬더니 경비병은 내 미소를 보고 그대로 실신해 버렸으며, 죽음을 직감한 그 경비병은 자신의 마지막 힘을 끌어올려 단말마와 같은 타종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뭐. 바짝 긴장해있던 경비들이 종소리에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저항하지 않는 나를 마구 두들겨 팬 다음 꽁꽁 묶어 경비대 감옥에 쳐넣어 버렸다.
“으아으윽, 아주 제대로 밟아 주셨구먼. 재생까지 2분이라….”
정말 괴물은 괴물이다. 전신의 뼈가 부러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니.
– 간장게이바 :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걸 즐기는 게 아닐까?
– 노루Drug해요 : 망가진 블랙잭을 챙긴 건 사실 손잡이 부분의 힘줄로 자신의 몸을 찰싹찰싹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 takealook : 황무지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미치는 건 흔한 일인데, 교수는 저런 방향으로 뒤틀린 게 아닐까?
“아 좀 그만해 좀!”
캉캉캉!
“괴물! 얌전히 입 닥치고 있어! 곧 마법사님이 오실 거다!”
“어이, 개리! 괴물에게 접근하지 마! 또 어떤 사술을 부릴지 모른다!”
그렇게 쌓여가는 오해 속에서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
덜컹! 끼이익-
캉캉캉!
“어이 괴물! 일어나라!”
“커허억! 음, 어….으음. 뭐야. 벌써 일어날 시간입니까?”
“제길, 팔자 좋구먼. 감옥에서 잠이나 자고 있다니. 하지만 그 여유도 이제 끝이다! 마법사님이 너를 괴물이라고 확인만 해주시면, 흐흐흐… 그때부터는 눈꺼풀을 도려내 눈도 감지 못하게 해줄 테니까!”
교수는 하품을 하며 병사가 하는 말을 대충 끄덕이며 들어주고 있었다.
‘그래도 도시 사람들이 완전히 공황에 빠진 상태는 아닌가 보는군. 확인이 안 됐다는 이유로 아무 조치도 안 하고 가둬두기만 하다니.’
“마법사님! 이쪽입니다!”
“으음…. 정말로 말하는 뮤트가 맞는가? 일반 뮤트만 해도 이 정도 구속은 충분히 풀 수 있었을 텐데, 그냥 얌전히 잡혀왔다니….”
병사의 행동으로 보아 지금 들어온 사람이 마법사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 목소리가 좀 많이 낯이 익다?
잠시 후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 낯익은 목소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건….”
“아, 오랜만. 실험실에서 몇 번 봤지?”
약간 뱀을 닮은 눈매에 푸른 로브를 입은 마법사. 만달리우스 백작의 지하실에 있던 마법사 중 적극적으로 실험에 참여하던 녀석 중 하나다.
‘뮤트에 대한 연구를 하던 놈이니, 말하는 뮤트가 잡혔다는 얘기를 들으면 바로 움직일 거라 생각했지!’
아니나 다를까, 잡혀 온 지 두 시간 정도밖에 안 됐는데 그 굼뜨기로 유명한 마탑에서 사람을 보냈다.
“아이작은 잘 지내시나? 좀 아쉽네? 그래도 한 달 가까이 ‘볼 거 안 볼 거 다 보여준’ 사이인데.”
“….쓸데없는 소리는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살고 싶으면.”
“아이구 무서워라! 누가 들으면 살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줄 알겠네!”
날이 바짝 선 대화. 피차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없으니 입에서 고온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저기…. 마법사님? 혹시 이 괴물의 정체에 대해 아십니까?”
“괴물이라….. 뭔가 오해가 있었군. 이자는 괴물이 아니다. 그저 마탑의 실험에 조금······. 협조하는 과정에서 외형이 좀 변한 것뿐. 병사들의 경계를 풀어도 되겠어.”
내가 괴물이 아니라는 말에, 병사는 대단히 당황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마법사의 도시에서 마법사의 협력자를 괴물 취급하며 감옥에 가둬뒀으니.
“지, 지금 당장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잠깐.”
뱀눈의 마법사는, 묶여있는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 남자는 마탑에 중대한 죄를 저질러 강제로 노역하던 남자였다. 이대로 묶어서 리드 플로우 학파 마탑으로 보내주면 좋겠군.”
교수는 분하다는 뜻 꿈틀거리며, 마법사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며 소리쳤다!
“이 자식들! 그렇게 나를 부려 먹고도 아직도 모자라다는 거냐! 젠장! 이 밧줄만 아니었으면….!”
“죄인이 마탑에 악감정이 많아 수시로 거짓말을 할 테니 귀를 기울이지 말고, 최대한 빨리 마탑으로 압송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병사에게 명령을 내린 뱀눈은, 무릎을 굽혀 밧줄에 묶인 채 버둥거리는 교수와 시선을 맞췄다.
“그 지옥에서 살아나오다니. 명줄이 질긴 것 하나는 인정해주마.”
“퉤!”
교수의 입에서 나온 가래침을 맞은 마법사의 얼굴에 맞았다. 소맷자락으로 끈적한 침을 닦아낸 마법사의 얼굴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주제도 모르는 놈…. 탑에서 보도록 하지. 그 불안정한 몸으로 어떻게 투란에서 살아나왔는지, 지금까지 어떻게 의식을 유지하는지 낱낱이 해부해서 알아내 줄 테니.”
“이이익! 저주할테다! 너희 마법사 놈들을 죽을 때까지 저주하고말겠다아아아!!!”
마법사는 악을 쓰는 교수를 뒤로하고, 병사와 잠시 몇 마디 얘기를 나눈 뒤 천천히 감옥 밖으로 나섰다.
마법사가 나간 뒤로도 한참을 악을 쓰는 교수를 바라보며, 간수 역할을 하던 병사는 뭔가 알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찬장에서 꺼낸 빵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교수에게 다가갔다.
“대충 알겠구먼. 자네, 마법사한테 찍힌 게로군? 그 흉악한 외모도 다 마법사들 때문이겠지.”
달칵-
묶인 채로 쓰러진 교수의 앞에 접시를 가져다준 병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 토브룬은 언뜻 보기에는 잘 만들어진 도시 같지만 속은 완전히 병들었다네. 이 도시의 모든 것은 사실상 저 마탑의 지배하에 있어. 영주는 껍데기일 뿐이야. 토브룬의 방어는 전적으로 마법진에 의지하고 있고, 경제활동도 마탑에서 만들어낸 물길을 통하는 게 대부분이지. 상인들도 마법사를 거스를 수 없어. 그렇게 웃대가리를 휘어잡으니 우리 같은 아랫놈들은 도시에서 추방당하기 싫으면 따를 수밖에 없네.”
병사는 어느새 감옥 앞에 걸터앉아 속에 담겨있던 얘기를 모두 털어내고 있었다. 간수, 개리는 그게 그의 의무라고 느꼈다. 이 흉측한 남자도 원래는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경비대 일을 시작하고 도시에서 이유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은 대부분 마탑을 향해있었다. 하지만 보고를 올릴 때마다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은 보고서를 태워버리고, 무시하라는 것. 상부에서는 마탑의 더러운 부분을 의도적으로 방조하고 있었다.
이 도시는 썩었다. 그리고 그는 그 썩은 도시의 경비대원이었고,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미안하네. 나는…. 힘이 없어….”
툭툭.
주저앉아 울먹이는 그의 어깨를 누군가 위로하듯 부드럽게 두드려주었다. 그래. 그래도 누군가는 내 기분을 알아주는구나.
“훌쩍! 고맙네. 내 언젠가, 이 도시의 비리를 세상에…..응?”
잠깐만. 이 주변에는 자신과 그 흉측한 남자밖에 없는데. 그럼 누가….?
화들짝 놀란 간수가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한 손에 빵을 들고 우물거리며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 교수가 있었다.
“고맙긴. 원래 세상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
콰악!
“커헉!”
“쉬이이. 잠깐만 자고 있어, 양심 넘치는 간수님.”
창살 너머로 간수의 목을 졸라 기절시킨 교수는, 발치에 끊어진 밧줄을 대충 쓸어낸 다음 양손으로 쇠창살을 힘껏 당겼다.
끼기이익! 끄으윽! 끼긱!
“좋았어! 이로써 몸의 자유와 완벽한 신분 획득!”
교수는 남은 빵을 입에마저 욱여넣으며, 감옥 한쪽 구석에 있는 자신의 소지품을 챙겼다.
“이제 내 신분은 완벽하게 ‘감옥에서 탈주한 범죄자’ 라 이거야. 심지어 마탑의 마법사가 오래전부터 마탑에 협력하던 ‘사람’이라고 공증한, 절대로 뮤트일 수가 없는 범죄자!”
그렇다. 이곳에 잡혀 올 때부터 노리고 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말하는 뮤트가 잡혔다고 하면 마법사, 그것도 뮤트에 관한 연구를 하는 놈이 무조건 오게 되어있지. 여긴 리드플로우 학파 마탑이 있는 도시이니 그 마법사는 나를 연구하던 백작의 따까리일 수 밖에 없고.’
그리고 이제 그 녀석의 입에서 ‘이 자는 괴물이 아니다’ 라는 증명이 나왔으니, 적어도 신분 증명 하나는 확실히 된 것이다.
– 하이웨이나초맨 : 이야, 언제 거기까지 생각했냐?
“아니, 생각해보니까 이 몸으로는 도시에 어떻게 잘 들어간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힘들 것 같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도시에 내 신분을 증명해줄 사람이 누가있지?’ 하고 머리를 굴리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거야. 마탑 놈들. 내가 얼굴 비치면 좋다고 끌고 가겠구나. 어차피 녀석들은 내가 이렇게 강해진 줄 모르니까, 대충 옛날에 쓰던 목욕통 같은 거나 가져와서 끌고 가겠거니, 하고 생각했지. 그러면 그 중간에 탈출하면- 나는 ‘탈주범’ 이라는 안정적인 신분을 획득하게 되는 거지.
경비대로서는 도시에서 그렇게 위세가 대단하신 마탑의 ‘협력자’를 놓쳤으니 최대한 빨리 잡아주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도시 방방곡곡에 내 수배서가 붙고, 사람들은 ‘괴물 교수’가 아니라 ‘탈주범(사람) 교수’의 얼굴에 익숙해지게 되는거야. 음…. 이렇게 해주면-”
짐을 다 챙긴 다음 간수가 가지고 있던 단검으로 [나는 삶을 찾아 떠납니다 – 교수] 라고 책상위에 새겨주었다.
“그 수배서에는 내 이름도 붙겠군. 그럼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내 누명을 벗겨주지 않겠어? 나를 찾기도 쉽고.”
내가 킬킬거리며 대충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주니, 대화방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반응했다.
– 간장게이바 : 일동, 박수.
– takealook : 이건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
– Jokass : 나도 인정. 성문 하나 뚫는 거로 저렇게 이득을 보네. 그렇지. 그냥 들어가면 저 얼굴로는 어디를 가도 괴물 취급이지만, 탈주범으로 소문나면 적어도 도시의 음지에서는 활동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노린 것도 그거야. 어차피 나는 이 도시에서는 음지에서 놀 생각이었으니까.”
끼이익-
“어- 개리냐. 아직 교대할 시간 아닌데 왜 나왔- 으읍!”
“아, 개리 아니고 탈주범입니다 탈주범~ 탈주범 교수라고 기억해주세요~”
감옥에서 나오며 차례로 마주하는 병사들의 귓가에 친절하게 속삭여준 교수는, 그렇게 해가 지고있는 거리로 소리 없이 숨어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