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431
Chapter. 19. 술래잡기(7)
****
“파블로- 파블로, 이제는 더러워진 고급옷을 입은 파블로야.”
당연한 얘기지만, ‘패스파인더’ 닭살돋는 이름은 하이드가 원해서 붙은 게 아니었다.
“지금 네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지.”
“싸구려 동정심같은건 필요 없-”
우드득!
“아악! 끄아아악!”
“그런 거 아냐 임마.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유로, 네가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거슬리게’되는 바람에 처리하려는 것뿐이지.”
세간의 평가와 달리 하이드는 스스로가 굉장히 개인적인 사람이라 자부했다. 일을 하는것도, 돈을 버는 것도, 탐색도, 그 와중에 남을 돕는 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유.
보통은, 손끝에 올라온 거스러미나 한쪽만 어긋난 단추처럼 불편할 정도로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그에 해당했는데…. 문제는 파블로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그의 ‘관찰력’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것에 있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초조함과 불안증에 시달렸다. 머릿속에선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찾을 것을 종용했고,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너무 뛰어서 얼굴에 열꽃이 필 지경이었으니까.
경험을 통해 무언가 찾는 시늉만 해도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깨달은 이후, 관찰과 탐색은 하이드에게 있어 숨쉬는 것과 비슷한 행위가 되었다. 숨을 못쉬면 불편해지는 것처럼, 하이드는 무언가 찾고있지 않으면 불편한 상태가 됐으니까.
그렇게 살아온 28년.
“첫 번째 길은, 이대로 나랑 떠나는거다.”
“…?”
“그래. 네가 눈썰미 좋고 뜀박질 잘하고 그 나이에 계획 살인 경험마저 풍부한 될성부른 떡잎이라지만! 나랑 발맞춰 가기엔 하아아아아안-참 부족한 너를, 내가 데려가주겠다는 거지.”
“자유를 향하는 길이다. 끔찍한 도시, 더 끔찍한 사람들, 구질구질한 인질-난민촌…. 이 닭장같은 도시를 떠나, 광인과 개고생, 자유가 가득한 무른 땅-오오, 저주받을지어다-으로 떠나는거야.”
“도시를 떠나, 밖으로….”
“너를 구속한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라고. 모조리 잊고 새 출발. 쉽게 오는 기회는 아니지. 개박살난 마음도, 피비린내 나는 기억도 몇 년 고생하다보면 꽤 무뎌져 있을걸? 이건 경험담이니 믿어도 좋아.”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관찰 속에, 하이드가 가장 많이 관찰한 것은 사람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게, 도시 전체에 사용된 벽돌 개수를 센다거나 하늘의 별자리가 바뀌는 것 따위는 언젠가는 관찰이 끝나버리지만, 사람은 단 한 사람을 관찰해도 끝없이 달라지니까. 숨 쉬듯 탐색을 이어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신전 고아원과 전초기지의 모든 것을 머릿속에 넣어버린 어린 하이드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던 것이다. ‘탐색’이 숨 쉬는 행위와 같다면, ‘탐색 대상’은 그에 필요한 공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서 하이드는 사람을 잘 읽었다.
관찰력이라 표현했지만, 그런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잘.
그렇게 너무 잘 보이는 게 문제였다.
지나가는 남자의 유독 굳은살이 돋보이는 손바닥도, 눈이 퀭한 여자의 한숨도, 도시의 활기속에 숨은 그늘같은 남들은 그냥 지나쳐갈 사소한 것들이 정보가 되어 눈앞에 쌓여만 가는 것이다.
눈에 밟히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아저씨, 용병 조합에서 돈 날리지 말고, 도시 노동자 조합으로 찾아가봐.] [뭐….라고?] [계속 개인의 다툼으로 끌고 가면 끝이 안 날거아냐? 조합에 수수료 좀 두둑히 주고 상환 이행 좀 해달라 부탁하면 어지간하면 들어줄걸? 유명무실하긴 해도 원래 그런 일 하던 곳이었으니까.] [꼬, 꼬마야. 그 얘기 좀 자세히 해주겠니? 신전에서 왔구나! 잘 풀리면 신전에 두둑하게 헌금도 할게!] [오.]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불안증에 안그래도 짜증이 가득했는데, 눈에 뻔히 보이는 답을 두고도 푸념이나 늘어놓는 놈들이 답답해서 한마디 한 것이 시작이었다.
장님들 사이에서 눈뜬 사람이 답답함을 느끼듯, 그냥 근처에 눈에 밟히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해법을 일러준 것 뿐. 어디까지나 개인의 심적 평화를 위한 행위. 딱히 깊숙이 관여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내 속이 불편하지만 않을 정도로 방법만 일러주는 것으로.
그렇게 해가 가고, 도시를 떠나, 여전히 눈에 밟히는 기타등등에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툭툭 일러주다보니 ‘패스파인더’ 라는 이상한 별명까지 붙게 된 것이다. 가만히 길을 일러줄 뿐, 함께 길을 걷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두 번째는, 여기서 그냥 돌아가는거야. 도시로, 난민촌으로, 평소와 같은 삶으로. 지금껏 너를 구속하는 모든 것을 향해 되돌아가는 거지. 선한 마음도 갈아내다 보면 닳아 없어지거든? 한 몇 년 울고 술마시고 하면서 살다보면 편해질 수 있을거야. 갈수록 사람 사냥도 익숙해질테고. 위겐의 명물, 파편사냥꾼 사냥꾼, ‘파블로 The 고급옷을 입은’. 캬, 이쪽도 의외로 괜찮은데?”
하이드는 어느새 꺾인 손목을 놓았는데도 가만히 있는 파블로를 내려다보았다.
‘모르겠지. 어느 쪽이 좋은지. 정확히는, 어느 쪽이 더 나쁜지.’
파블로의 상태는 떼쓰는 어린아이와 다름 없었다. 머리로는 안되는거 알면서,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해 “빼애애액-!” 해버리는 것.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주저앉아 버렸다는 것은 동일했다.
“세 번째는, 이쪽.”
“기, 길은 분명 두 개라고….”
“그건 허접한 니놈 눈에 보이는 길이고. 둘 다 싫어서 주저앉은 것 아냐?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썩어가는 꼴을 봤다간 위겐 근처에만 와도 네녀석 생각이나서 머리가 지끈거릴테니 어떻게 치워버리든가 해야지.”
저벅. 저벅.
챠르륵-
하이드는 주저앉은 파블로를 지나 머리 칸 구석에 매달린 수화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아, 여기는 2-2 라인, 위겐 정규 마도열차. 정거장 정문 역무원 되십니까~”
.
.
.
치익-
연결이 됐는지 약간의 잡음과 함께 약간 헐떡이는듯한 남자의 숨소리와 철컹거리는 소리, 누군가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
[후읍, 허억, 위겐 정거장, 야간 정문 관리자입니다, 허억, 무슨 일, 이십니까?]“아, 별건 아니고 뭣 좀 물어보려고요. 그런데, 밖이 좀 소란스럽습니다? 기자들이에요? 아침도 아니고 밤까지 이러는건 관례에 어긋나는 걸로 아는데….”
[말도 마십시오. 이놈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했는지 갑자기 몰려와서는 확인할 게 있으니 안에 들여보내달라 난리를 피우는데….]“저런, 고생이셔라. 혹시 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정거장 안에서도 들릴 정도로 시끄럽다보니 궁금해져서 말입니다? 혹시 알아요? 저쪽이 난리 피우는 이유를 제가 알고 있을지도.”
[이것 참, 면목이 없습니다 기관사님. 수화기를 저쪽으로 돌려드리지요.]=========
치직-
약간의 잡음과 함께, 수화기 넘어에서 들려오는 소란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열차 내부 스피커랑 연결하는 게…. 이거였나?”
-딸깍!
『아 확인만 하고 나온다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동안 약속 안 지킨 적 있어! 있냐고! 어!』
“아, 나온다.”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차량 내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함소리.
“어이, ‘기로에 선 파블로’씨. 저 목소리 누군지 알지?”
“설마…. 사, 사장님? 사장님이 여기는 왜….”
“그러게나 말이다. 아까 정거장 담 넘어올 때, 그때부터 저 반대편 정문에서 꽥꽥거리는 아저씨 목소리가 들리더라고. 신문사 ‘빅마우스’. 네가 살인을 위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일터. 민간인인 너는 못 들었을지 몰라도, 오러나이트의 청력은 다르거든.”
그냥 무시하기엔 꽥꽥거리는 고함속에 ‘파블로’의 이름이 너무 선명했다.
=========
『우리 쪽 뉴스보이 하나가 분명히 이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이드, 패스파인더 그 새끼한테 정식 허가 받았다면서 오늘 아침에 출발했단 말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복귀를 안 했어!』
[하이드…. 라면 방금 도시에 수배령이 내려온 그 오러나이트 말씀이십니까? 놈이라면 뒷골목에서 추적 중인 것으로-]『그러니까 확인 좀 하겠다고오오! 우리 빅마우스의 사원이 범죄자 새끼한테 납치당했는지, 같이 쫓기고 있는지, 아니면 이 안에 남아있는지! 너 이자식, 나 몰라! 감히 우리 빅마우스의 사원을 꼬드겨 납치, 감금하다니! 당장 들여보내주지 않으면 네놈의 모든 치부를 낯낯이 조사해서 위겐 전역에 퍼트리겠다!』
[그러니까 그 뉴스보이는 이 안으로 들어온 적이 없다고 몇 번이나-]『그걸 확인해야 하니까 비키라고 이 돌대가리 같은 새끼야!!!』
=========
왁왁-
철컹철컹!
“음~ 과연 명망있는 신문사야. 정보는 신선도가 생명이니, 사장님씩이나 되는 사람이 당일 보고하러 복귀하지 않은 사원을 찾으러도 오는군. 어때? 너 찾으러 온 사장님이 깽판 놓는 모습을 본 감상이.”
“어, 아니, 왜…. 역무원들과 사이가 틀어지면 앞으로 일하는데 문제가 생길텐데….”
“그야 당연히 이 일로 생길 손해보다 당장 네 녀석의 안위 확인하는 걸 더 크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 사측 재산을 위해 몸을 아끼지않는, 참된 상인의 귀감이로구만?”
파블로는 그야말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상상도 해본적 없는 상황에 절대 그럴리 없는 인물이 나타난 상황.
툭하면 쓸모없다 욕하고, 고함치고, 눈물이 쏙 나오게 혼내기만 하던 저 배불뚝이 사장이,
나를?
왜?
“파블로. 애들이 제일 많이 착각하는게 뭔지 알아?”
“….?”
“하나같이 세상이 자길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거야. 네가 과거에 매여있다고 해서 네 주변까지 과거에 멈춰있는 게 아닌데, 여전히 네 세상이 오래전 그날과 똑같다고만 생각하거든.”
휘익!
파블로는 그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손길과 함께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쿵!
“아윽!”
“패스파인더가 추천하는 세 번째 길이다.”
돌아가라.
네 머릿속의 끔찍하고 피비린내 나는 도시가 아니라, 구석구석 네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곳이 없는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의 빈 자리가 아니라, 말도 안되는 네 계획에마저 말없이 동참하는, 너를 이해해서 끝내 말리지 못한 할아버지 곁으로.
네가 복수에 눈이 멀어보지 못한 사이, 어느새 너의 비어버린 옆자리를 채운 사람들 곁으로.
“네가 총을 버리지 않았으니, 나도 이 수첩은 버리지 않고 내가 가지도록 하지.”
하이드는 소년의 원한이 가득 담긴 수첩을 망토에 쑤셔넣었다.
“꺼져, 뉴스보이. 구독은 취소다.”
단단한 돌바닥에 떨어졌으니 아플법도 한데 여전히 멍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는 소년.
‘다 아는 척해도, 결국 열한 살짜리 애였을 뿐이었던 거지.’
하이드는 소년 파블로의 상태를 정신적 ‘표류’라고 판단했다.
아직 미숙한 아이에게 보금자리인 동시에 삶의 중심이 되는 부모를 잃은 녀석. 중심을 잡지 못한 끝에,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릴 감정에 매달리고 말았겠지.
복수를 이룬 뒤로는…. 이미 사는 방법을 그것밖에 모르게 되었으니, 사그라드는 복수심에 불을 붙여 이전처럼 살아가게 된 것이고.
하이드는 그렇게 휩쓸려 사는 것밖에 모르는 소년의 고개를 살짝 돌려준 것 뿐이었다. 네가 과거에 매달려 사는 사이, 그 위로 이미 충분히 뿌리내릴 만큼의 삶이 쌓인 것을 말이다. 제 뿌리가 땅에 박힌줄도 모르고 그걸 끊어내고 휩쓸려 사라지려고 하길래, 뒷덜미를 잡아 챈 것 뿐.
딱 여기까지가 하이드가 스스로에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개입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마지막 가는 길까지 지켜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놔! 놔아아아! 언론인을 건드리다니! 네 니놈들을 기필코-!!!!』
“….아득바득 세 번째 길로 끌고가겠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뭐.”
특별히, 더 마음을 쓰진 않아도 되겠지.
끼이이익- 철컹!
하이드는 이제야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열차의 문을 닫고, 엔진의 레버를 올렸다.
부우우웅- 웅웅웅웅!
철컹…. 철컹….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열차와, 어둑한 선로를 향해 열리는 정거장 차고의 문.
그리고,
치직-
[그냥 열차도 아니고 도시의 정규 전선지원 열차를 훔치다니. 담이 큰 건지, 생각이 없는건지 모르겠군 패스파인더.]“아이고, 돌기사님! 거 반쯤 무생물이나 다름없는 아저씨가 왜 또 나오셨어! 당신 야근도 해?”
[누구 덕분에 밤눈 어두운 아군의 집중 오사를 받아낸 덕분에. 오랜만에 움직일 의욕이 생겨서 말이다.]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중저음의 목소리와, 열린 성문 밖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거대한 성벽.
“과연 대도시를 혼자 지킨다는 명성에 걸맞는 능력이구만, 돌덩이 놈.”
하이드는 이번 일의 유일한 정규 보수…. 라고 할 수 있는 파블로의 수첩을 펼쳤다.
여러 파편사냥꾼에 대한 정보가, 소년의 깊었던 원한만큼 편집적일 정도로 자세하게 기록된 수첩.
강한 샤드나이트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죽여 파편을 흡수한 경험이 있는만큼 타첼름에 대한 정보도 적혀있었다.
대도시 위겐의 수호자, 스톤 자이언트 타첼름.
과거 6위계 마법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유색파편 ‘회색 선언’의 주인이며, 그것 외에도 수십개의 파편을 흡수한 강자. 최소 마스터나이트 급.
기사로서 능력도 출중하지만, 특히나 4위계 급 마법을 시전없이 100개 이상 동시에 발동할 수 있는 그 능력이 압권이며, 약점은-
“고위 샤드나이트 특유의 무감각함과, 피로감. 비 마법사로서 파편의 힘으로 마법을 쓰기에, 이미 시전된 마법이 파괴될 경우 심각한 피로감을 느낀다…. 좋은데?”
탁!
하이드는 새로 얻은 수첩을 닫으며 열차 지붕으로 기어올랐다.
두두두두두두두두-
푸쉭! 푸쉬이익-!
최고속력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 위에 서자 밤공기 너머로 순식간에 가까워져 가는 타첼름의 석벽이 보였다. 겉이 번들번들한 게 그냥 돌이 아니라 금속 수준으로 이것저것 섞어 넣은, 과연 위겐의 수호자라는 명성에 맞는 위용.
“…. 쯧. 영광으로 알아라, 돌덩이.”
….찰칵.
하이드의 손이, 검집을 향했다.
촤아악.
자세는 낮게. 바닥을 밀어내듯 묵직하게 내딛어 몸을 지탱하고.
혈관으로 숨을 쉬듯, 호흡과 심박이 일치하도록,
낮게,
더 낮게,
두근- 두근-
훅- 훅-
호흡을 낮출수록 심박이 빨라져가며 몸에 열이 올랐다.
‘한번. 단 한번의 베기로 해결하지 않으면….!’
바위 벽이 열차에 닿기 직전, 하이드의 검집 밖으로 나오며 불꽃이 쏟아졌다.
오러도, 샤드나이트의 힘도 담기지 않은, 마치 예술품같이 화려한 검이 검집 입구의 발화석과 마찰하며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검집 안쪽의 기관이 움직이며 저장된 마력을 쏟아내고, 손잡이부터 검날까지 통짜 공마석으로 이루어진 검이 검집 안을 가득 채운 마력과 반발하며 그 모든 마력과 반발력을 한 번에 쏟아내는 검.
하이드의 재산 1호이자, 오러없는 오러나이트인 그의 화력을 보충해주는 수단.
“흡!!”
-서걱!
그림같은 베기에, 밤의 어둠과 함께 솟아오른 석벽을 가로지르는 빛줄기.
….쩌어억-
허무하리만치 갈라지는 거대한 석벽과,
파아아아아앙-!!
뒤늦게 검광을 따라 펼쳐지는 거대한 마력의 참격.
….털썩!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은 하이드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그의 검을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허억, 허억! 괘, 괜찮나? 괜찮지? 괜찮은거지?”
숨이 차서가 아니라, 머리끝이 쭈뼛 설 정도의 공포로 숨을 헐떡이며 검날을 내려다보는 하이드.
그를 겁에 질리게 한 것은 금속 성벽을 손짓 한번에 일으킨 적도, 경종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사격음도 아니었다.
그의 검. 밤의 어둠속에서 눈으로 핥듯 살피고 있는 바로 그의 검.
섬세한 마도공학 장치, 작은 크기로도 저 정도 출력을 낼 수 있는 최고급 마정석, 녹지 않아 깎아내는 것만 가능한 공마석의 특징 덕분에 저 사이즈 원석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통짜 공마석 검까지가 한 세트인 물건.
극단적인 내구도 문제 덕분에 하루 한 번만 휘두를 수 있으며, 사용 후 검집 안에서 장시간의 자가 회복이 필요한 검이었다.
끔찍한 제한조건만큼 일격에 뿜어내는 마력은 감히 마스터나이트의 오러와 맞먹는다는 기형검.
마도공학 시대, 모든 것을 마도공학으로 뛰어넘겠다는 광기 만들어낸 시대의 산물.
안티 오러소드.
“괜찮아라, 제발 괜찮아라…. 너까지 골로가면 나는 정말….”
….파삭!
“아, 안돼! 안돼에에에에!!!!”
일명, 자본주의의 마검.
하이드의 손에 들린 것은 역사서에도 기록된 마도공학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그 무시무시한 내구도 덕분에 두 번 휘두르면 주인을 파산시킨다는 악명과 함께 ‘이격 파산검’ 이라는 끔찍한 이명을 얻은 검이었다.
덕분에 하이드가 잘 때도 품에 안고 잠들며, 주기적으로 산산히 부서진 ‘파산검’의 악몽까지 꾸는 그런 물건.
깊은 밤, 양단된 바위 성벽을 가로지르는 열차 위로 하이드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쳤지만, 비극을 알아들을 귀가 없는 열차는 유일한 승객의 비극을 뒤로하고 달릴 뿐이었다.
제 길도 찾지 못하는 패스파인더를 태우고, 북으로.
한때 기사의 나라라 불리던, 구 로드릭 지역으로.
****